시간은 약 10년 전으로 되돌아 가 캐나다 몬트리올이다. 에단 구트만(Ethan Gutmann)이 취재했던 대상은 ‘장기적출’에 대한 중요성을 아예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옥에서의 경험만을 얘기해 구트만은 할 수 없이 그녀에게 다시 당시 상황을 상기시킬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이 여성은 노동교양소에서 감금 당시 자신이 신체검사를 받았던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구트만이 대수롭지 않은 신체검사에 대해 여러 번 질문하자 그녀는 심지어 화를 냈다. 구트만은 “그녀는 나의 방문과 강제 장기적출 간의 관계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취재 대상의 이런 반응은 구트만으로 하여금 이 배후에 숨어있는 무서운 흑막을 느끼게 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것은 의사가 진행하는 정상적인 신체검사가 아니라 의사가 싱싱한 시신을 처리하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한 줄기 심상치 않은 찬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고 구트만은 회상했다. 처음으로 강제 장기적출 고발의 심각함을 느낀 것이다. 몬트리올에 그때 세 명의 여성이 막 중국 대륙에서 캐나다에 도착했다고 구트만은 소개했다. 그들은 모두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노교소에 수감당한 경력이 있었다. 그들은 영어를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들을 만나면서 구트만은 처음으로 중국공산당의 강제 장기적출의 ‘엄숙함과 심각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중 한 사람은 농촌에서 왔는데 사투리가 심했다. 그녀가 노교소에서 겪은 신체검사는 나는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때 신체검사는 모두 신장과 간장 기능, 눈, 혈액형, 조직일치 등이었기 때문이다. 눈 검사는 시력 검사인 것이 아니라 눈 각막 검사였다.” “그녀는 신체검사와 강제 장기적출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이 신체검사에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겼다. 그녀는 나에게 자기가 당한 고문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구트만은 그 후의 조사에서 많은 응답자의 경험이 한 번 또 한 번씩 그의 마음속 공포인 강제 장기적출의 진실한 존재를 실증했다. 많은 파룬궁 수련자들은 심지어 자신의 집에서 강제로 혈액 샘플과 조직 샘플을 채취 당했다. “나는 응답자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도록 몹시 조심하면서 신체검사의 일만 물은 것이 아니었다. 어떤 땐 나는 상대방과 8시간 대화하며 전반적인 이야기를 얻어냈는데, 노동교양소에서 발생한 일체를 포함해서였다. 이러면 나는 상대방의 말이 믿을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나는 독자들께서 이 이야기를 읽으신 후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를 바란다. 이것은 나의 생각이다.” 중국 많은 고위층·공안인원이 파룬궁 수련 구트만은 그의 조사 이야기가 1999년 4월 중공의 파룬궁 박해 시초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는 더욱 일찍부터, 파룬궁이 중국에서 전해질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딩징(丁靜)이란 여성은 그의 생각을 만족하게 했다. “처음에 그녀는 이야기하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별로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대화에서 딩징은 자기는 베이징에서 3개 파룬궁 수련장의 연락인이었다고 소개했다. 중국중앙텔레비전방송국(CCTV), 공안국(PSB), 위위안탄(玉淵潭) 공원이었다. 그곳에는 많은 고위층 관리가 파룬궁을 수련했다고 말했다. “1997~1998년 사복 경찰이 딩징이 소재한 수련장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파룬궁에 흥취가 있는 것처럼 가장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몰래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다(파룬궁 수련자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들은 늘 왔고, 줄곧 파룬궁 수련자의 성명, 주소 등 개인 정보를 캐물었다. 1998년 베이징TV에서 반 파룬궁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딩징은 1999년 초반부터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발생할 것을 예측했다.” 이 단락 이야기는 전체 책 속에서 적어서는 안 될 일부분이었다고 구트만은 밝혔다. “중공 내부의 이런 사람들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은 그들은 파룬궁이 좋다는 점을 인정했음을 의미하며, 이는 공산당을 두렵게 했다.” ...
미국 하원은 2016년 6월 13일 오후 6시 30분, 표결을 거쳐 중국공산당이 자행하고 있는 ‘파룬궁(法輪功)수련자 등 양심수에 대한 강제 장기적출’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343호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파룬궁수련자와 기타 양심수에 대한 ‘강제 장기적출’을 즉각 중단할 것, 17년간 지속되고 있는 파룬궁 박해를 즉각 중단할 것, 모든 파룬궁수련자와 기타 양심수를 즉각 석방할 것을 중국공산당에 요구했다. 또한 장기이식 시스템에 대한 신빙성 있고 투명한 독립적 조사 진행을 허용할 것을 중국공산당에게 요구했다. 343호 결의안은 2015년 6월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공동 발의했으며, 2016년 1월 12일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 소위원회에서 통과된 후 3월 16일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결의안 공동 발의자로는 공화당에서 미 하원 외교위원회 전 위원장이자 중동ㆍ북아프리카 위원회 위원장으로 중진 의원인 일레나 로스-레티넨(플로리다) 하원의원을 비롯해 다나 로라바커(캘리포니아), 테드 포(텍사스), 마리오 디아즈-발라르트(플로리다), 데이비드 바라다오(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이, 민주당에서는 샘 파르(캘리포니아), 제럴드 코놀리(버지니아) 하원의원 등 8명이 이름을 올렸다. 양당 의원이 공동으로 박해 비난 6월 13일 오후 6시 30분에 진행된 하원 본회의 ‘343호 결의안’ 표결에서 양당 의원들은 살아있는 파룬궁수련자의 몸에서 강제로 장기를 적출하는 중국공산당의 행태를 비난하면서 이런 만행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결의안 발의자인 일레나 로스-레티넨 연방하원 의원은 표결 전 실시된 연설에서 발언했다. “2015년 프리덤하우스 보고서에 따르면, 파룬궁수련자는 중국 양심수 중 가장 주요한 부분으로 343호 결의안을 통해, 미국은 중국공산당의 심각한 인권침해 행태를 반대하며 특히 ‘파룬궁 박해를 반대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중국에 전달한다. 우리는 중국공산당의 파룬궁수련자를 겨냥한 지속적인 박해를 비난하며 이 박해는 극도로 혐오스러운 것이다. 더욱이 개인의 동의를 얻지 않고 진행된 강제 장기적출과 같은 비도적적 행태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범죄가 계속되는 것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엘리엇 엔겔 의원 “장기적출은 천인공노할 죄” 엘리엣 엔겔 하원의원(민주·뉴욕)도 표결 전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343호 결의안은 아주 중요한 법안이다. 장기적출 만행은 특별히 파룬궁수련자를 포함한 양심수를 겨냥한 것으로 엄중한 인권침해 범죄행위다. 중국공산당 감옥은 사람의 신앙을 이유로 그들의 장기를 적출하는데 이는 그야말로 사람을 경악시키는 일이며 이보다 더 혐오스러운 만행은 없을 것이다. 장기적출은 천인공노할 범죄로 사람을 충격에 빠뜨리게 한다. 우리는 끝까지 내막을 철저히 파헤쳐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아야 한다. 이 결의안은 중국공산당에게 장기적출 행태를 중단할 것과 파룬궁 박해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나는 이 결의안을 지지하는 바이다.” 크리스 스미스 의원 “파룬궁 박해는 최대 테러 중 하나”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공화·뉴저지)은 표결에 앞서 실시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이 결의안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고, 말로써 형용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한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며, 중국 감옥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 내는 것이다. 이 결의안은 21세기 최대 범죄 가해자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중요한 첫 걸음이다.” 스미스 의원은 이어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에 대해 17년간 지속해온 박해는 최대 테러 중 하나다. 파룬궁 박해 증거는 사람을 경악시키는 장기적출 만행을 포함해 갈수록 많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스미스 의원은 또 말했다. “데이비드 킬고어(전 캐나다 아·태담당 국무장관), 데이비드 메이터스(캐나다, 국제인권변호사), 에단 구트만(미국, 언론인 겸 작가)이 실시한 정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충격적인 것은 짧디 짧은 몇 년 사이에 약 4만 5천 명에서 6만 5천명에 달하는 파룬궁수련자들이 생체 장기적출로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3명 조사관의 최신보고에 근거하면 생체 장기적출로 사망한 숫자는 아마 더욱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스미스 의원은 마지막으로 “우리가 얻은 신빙성 있는 증거자료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이 비록 사형수 장기사용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강제 장기적출로 사망한 수감자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중국 병원도 실제 장기이식 건수를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아래는 미 연방하원이 통과시킨 제343호 결의안 전문이다. 미국 제114기 국회 343호 결의안 우리는 중국에서 대량의 파룬궁 수련자와 기타 종교ㆍ소수민족 인사를 포함한 양심수의 몸에서 체계적으로, 그리고 범국가적 제제 차원에서 본인의 동의 없이 이뤄지는 장기 적출에 대한 지속적이며 신빙성 있는 소식을 접하고 이에 우려를 표명하는 바이다. 도덕적 기준에 의거해 실행될 경우에만 장기이식은 현대 의학의 위대한 성과 중 하나다. 아울러, 중국에서 이식에 사용된 장기의 대부분이 처형된 사형수로부터 입수했다는 2011년 중국 당국의 발표와 더불어, ...
이른 봄날씨는 몹시 쌀쌀했지만, 그날은 따스한 바람이 불었고 교도관이 모든 감방문을 열도록 했다. 여성 수감자들은 모두 난간이 세워진 베란다에 섰다. 먼 산봉우리는 흰 눈에 덮여 있었고 봄을 맞은 꽃망울은 막 터질 듯했다. 파룬궁 수련자인 쑨(孫)모씨가 나지막이 노래 ‘웨이니얼라이(爲你而來·그대 위해 왔노라)’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신을 구하기 위해 산과 물을 건너왔다는 내용의 노래였다. 다른 파룬궁 수련자도 함께 따라서 불렀다. 파룬궁 수련자가 아닌 다른 수감자들도 가사를 한번 듣고 나더니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수많은 산 넘고 물 건너, 나 이렇게 한 번 또 한 번, 그대 위해 왔노라……그대를 사랑하기에 나 이렇게 그대 위해 왔노라……” 수감자들은 울기 시작했다. 감방 7개 모두에서 수감자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를 지켜보던 교도관이 “그만, 그만,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하자 모두 감방 안으로 돌아갔고 감방의 철문은 굳게 닫히고 다시 열리지 않았다. 이상은 언론인 출신의 작가 에단 구트만이 전한 중국 창춘시 헤이쭈이즈 여자 감옥의 일화다. 가을 저녁, 기울어져 가는 햇빛을 바라보며 워싱턴DC 미 의회 공청회장 밖의 한 잔디밭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에단 구트만은 감정이 격앙된 듯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햇빛을 바라봤다. 눈가에는 희미한 눈물이 반짝였다. “무척 감동했다.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다. 노래 속에서 히말라야의 찬바람과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지난 2008년 7월의 어느 날 새벽 2시경, 방콕에서 태국으로 도피한 창춘 지역 파룬궁 수련자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미 의회서 열린 중국 인권문제 공청회 참석 미국 시민권자인 구트만은 ‘잃어버린 신중국(Losing the New China)’, ‘대학살(The Slaughter)’의 작가이자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다. 미국의 한 싱크탱크 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파룬궁 수련자는 아니지만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얼마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그는 미 의회에서 열린 ‘파룬궁과 중국 인권문제에 관한 공청회’에 초청받아 참석했다. 구트만은 공청회 후 본지와 인터뷰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이 중국에서 강제로 장기를 적출 당하게 된 사건을 조사하게 된 동기와 조사과정에 관해 설명하며 “오늘 공청회에서 파룬궁에 대해 말한 모든 내용은 알다시피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진정한 본질은 사람, 비범한 용기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야기에서 말하는 용기에 감동받았다. 창춘 TV에 영상을 삽입·송출한 사람의 이야기는 특히 더 감동을 줬다. 이는 내가 이번 사건에 대해 독자적으로 조사하기로 결심하게 된 동기”라고 소개했다. 지난 2002년, 중국 창춘의 파룬궁 수련자들은 지역방송인 창춘 TV 방송신호에 당시 톈안먼에서 발생한 파룬궁 수련자의 분신자살 사건이 사실은 공산당에서 연출한 조작극임을 알리는 내용을 삽입·송출했다. 당국의 사건 은폐·왜곡 보도에 대한 항거였다. 이 사건으로 창춘 지역의 수많은 시청자가 공산당의 거짓말과 파룬궁의 진상을 알게 됐으나, 이후 사건에 연루된 다수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체포돼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 목숨을 걸고 진상을 알린 사건이었다. 1999년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을 때, 구트만은 베이징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다. 구트만은 자신이 거주하던 베이징 고급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파룬궁은 불법이다. 연마하지 말라”는 방송을 들었다. 살벌한 분위기가 느껴졌고 방송을 듣고 무서워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7월 20일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푸유제(府右街)를 지나다가 경찰이 노년 부녀자들을 버스에 던지듯 강제로 태워 어디론가 가는 것을 목격했다. 붙잡혀간 이들은 모두 파룬궁 수련자들이었는데, 구트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
중국은 자본조달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신흥시장 에너지 기업들에게 최고의 채권자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난 24개월간 브랜트유가 64% 폭락한 가운데, 중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더) 러시아나 브라질 같은 신흥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에너지 회사에다 대량의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중국은 조금씩 접근방식을 조정해왔다. 전면적인 구매를 피하면서 돈을 대출해주거나 소지분을 가지는 방식으로 중국은 장기적인 소유권의 복잡한 문제를 피하면서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3월 초에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Gazprom)은 중국은행으로부터 5년간에 걸쳐, 20억 유로의 차관을 받았다. 이 회사가 얻어낸 가장 대규모 차관이다. 이 자금으로 가즈프롬이 야심적인 기반시설 프로젝트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결정적인 생명줄이 제공되었다 지난 달, 고전하던 브라질의 국영기업, 페트로브라스(Petrobras)는 중국 기업에 석유 공급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100억 달러의 차관을 중국개발은행으로부터 받았다. 페트로브라스는 석유업계에서 가장 부채가 많은 기업으로 유가가 몇 년래 최저치로 떨어진 지난 2년간 파산의 위기에 처해있는 기업이다. 최근의 에너지 거래건 (공급계약조건 대출 구조)은 과거 중국이 선호하던 에너지업계의 자산을 인수하던 구매 패턴에서 벗어나 있다. 중국의 최대 해외 에너지 기업 인수건으로, 골치거리가 되어버린 넥센(Nexen) 관련 실패의 교훈으로, 중국인들이 크게 배웠다고 추정된다. 지난 2012년,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150억 달러 규모의 캐나다 오일샌드 시추사 넥센을 많은 규제당국의 검토 끝에 150억 달러라는 이례적인 가격에 구매했다. 그 거래는 캐나다 총리 스티븐 하퍼가 승인을 했고, 중국은 일자리를 유지하고 캐나다에서의 성장촉진을 약속했다. 넥센은 롱레이크 오일샌드 프로젝트로 가치창출을 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여러 해 동안 비용만 발생했고, 비엠오캐피털마켓(BMO Capital Markets)에 따르면, 현재 알버타주에서 최저 생산성의 오일샌드다. 실망스런 재무결과에 더해 넥센에 기업홍보 악재가 발생했다. 2015년 넥센 송유관이 터져, 3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알버타주로 누출되어, 일시적으로 감산했다. 회사는 공개 사과해야 했고, 수개월동안 넥센의 에너지 생산량은 축소되었다. 넥센은 또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있고, 3월 17일에는 유가하락을 이유로 북미와 영국에서 400개의 일자리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오랫동안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는 캐나다 오일샌드를 탐내왔다. 하지만 캐나다트러스트(Canada Trust)분석에 따르면, 캐나다 오일샌드는 추출비용이 높고 저등급 중질유여서 생산자로서는 배럴당 50달러 수준이 손익분기점이다. CNOOC의 넥센 인수 이래, 요즈음의 저유가 환경이 넥센의 가치를 더 하락시켜, 넥센의 사례는 중국기업에 의한 최악의 에너지 기업 인수로 기록되고 있다. 원유가 하락이 2014년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 후 곧이어 시작되었다. 중국은 특히 러시아의 북극과 시베리아의 몇몇 석유 가스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떠나간 서방 기업을 대신해 기술적 재정적인 갭을 메우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 에너지 소비대국으로서, 중국은 에너지 사업이 특별히 어려운 시기에, 자금부족에 시달리는 에너지 생산자를 이용할 만하다. 넥센의 인수 경험 이후 현명해진 중국은 대출과 전략적 파트너십에 의존해 선택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러시아의 제일 큰 오일 생산업체, 로스네프트 NK 오에이오(Rosneft NK OAO)는 중국기업과 협상 중이다. 서방제재로 엑손모바일이 합작 사업에서 빠져나간 후에, 2014년 원래 취소 되었던 북극 연안 프로젝트에 중국기업이 투자하도록 협상 중이다. 로스네프트는 지난해 중국과 5000억 달러 상당의 20년 계약을 체결했고, 이로써 중국 넘버원 석유 공급자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러시아로 대체될 수 있다. 글로벌리스크인사이트(Global Risk Insight) 보고에 따르면, 모스크바는 중국기업이 특정 프로젝트에서 지배지분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러시아의 제한적인 국가 소유권 규제 완화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의 20억 유로에 달하는 가즈프롬에 대한 차관은, 회사의 전반적인 자본요구에 비해서는 적은 액수지만, 주요 중국은행과 러시아 기업 간의 첫 번째 금융계약이란 점이 중요하다. 가즈프롬은 2014년 11월, 중국국영석유공사(CNPC)와 4000억 달러 상당에 달하는 30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시간이 흐르면, 러시아의 가장 큰 가스 고객으로서 중국이 독일을 제칠 것이다. ...
스웨덴 예테보리에 본부를 둔 볼보(Volvo)차가 같은 스웨덴 경쟁사 SAAB처럼 폐차장행 길을 걸을 운명으로 보였던 것은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요즈음 볼보는 번창일로에 있다. 2015년 자사 역사상 가장 많은 5십만 대를 운송했으며, 전년도 대비 수입은 3배, 경영수익은 2배가 되었다. 2010년 중국의 저장 겔리 홀딩스 (Zhejiang Geely Holdings )가 헐값으로 볼보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장기적으로 성과가 나기 힘들 것으로 보였지만 볼보는 회생해 중국 모기업에 수익으로 보상해주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틈새시장 주자였던 볼보는 글로벌 경제위기 때, 판매에 손실이 나기 시작했다. 점점 늘어나는 손실은 모기업, 포드 모터 컴퍼니(Ford Motor Company)에 짐이 되었다. 2009년, GM과 크라이슬러가 미국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을 때, 유동성 위기에 처해있던 포드는 볼보를 처분해야 할 자산으로 여겼다. 중국 저장 겔리 홀딩스는 2010년 볼보를 15억 달러 현금과 포드부채 부담 조건으로 사들였다. 중국회사로서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이 거래는 중국 자동차회사가 외국 경쟁사를 100% 인수하는 첫 사례였다. 경제위기 와중에 드라마틱한 헤드라인 뉴스에 묻혀 볼보가 넘어간 일은 서구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그 당시 전체 자동차 산업이 고통 받고 있었기에 겔리가 볼보를 구해낼 수 있을지는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어떤 분석가들은 겔리가 볼보의 기술만 인수하고 나머지는 버릴 것이란 예측을 하기도 했다. 거대한 도박 대부분의 중국회사들이 해외자산을 취득하려고 할 때는, 업계 내에서 자리잡은 주자에게 다가가 해외시장에 자신들의 제품을 론칭하기 위한 발판으로 활용하거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섹터에서 빠른 성장을 하려 할 때이다. 겔리의 볼보 인수는 중국기업으로서는 드문 유형이다. 당시 자동차 산업은 유가상승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두 자릿수 판매 감소를 경험하고 있었다. GM은 폰티악과 새턴을 생산 중단하고 SAAB를 처분했다. GM과 크라이슬러가 둘 다 정부지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볼보의 구입은 성공 가능성이 적은 거대한 도박이었다. 볼보의 회생에는 돈과 행운과 얼마간의 혁신이 필요했다. 겔리는 자본을 제공하되 스웨덴의 경영팀을 유지하도록 하여 독립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볼보가 신모델과 신기술을 개발하고, 중국과 스웨덴에 조립공장를 세울 수 있도록 11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새 자본이 유입되자 볼보는 정체되던 업계에서 혁신주자가 되었다. 겔리 휘하에서 처음 개발된 볼보의 ‘XC90 SUV’는 볼보가 SPA(Scalable Product Architecture)로 이름 붙인 차세대 초경량 플랫폼에 얹혔다. 차종에 따라 각각 새로운 차 골격을 개발하는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와는 달리, 모듈방식 플랫폼은 볼보가 각각 다른 사이즈의 차량들 간에, 대부분의 중요한 요소를 공유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비용을 감소시키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볼보의 유연성은 전기시스템에까지 확장된다. 볼보의 전기시스템은 차량제조사가 나중에 더 쉽게 더 새로운 기술로 교체할 수 있게 해준다. “볼보처럼 상대적으로 소규모 회사는 생산라인 유연성이 특별히 크게 중요하다”고 카앤드라이버(Car and Driver)보고서가 밝혔다. 또 다른 색다른 결정을 들자면, 볼보는 앞으로 4-실린더 엔진(3-실린더 엔진이 개발 중이므로 더 작아질 수도 있다)만 사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러한 전략은 강하면서도 연료절약형인 엔진이 셀링 포인트인 고급 자동차시장에서는 듣기 힘들었던 이야기다. 볼보의 선택은 배기량을 낮추면서도 힘을 희생하지 않는 효율성에 노력을 기울여온 자사의 철학에 뿌리를 둔 것이다. 현재 XC90 SUV는 보통 경차용으로 쓰이던 터보차저 4-실린더를 활용한 유일한 고급중형SUV이다. XC90은 지난해 나오면서 호평을 받았다. 연료 절감성, 외관 디자인, 소재 품질 등에서 극찬을 받았다. 이 차의 성공으로 볼보는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5십만대 이상 판매를 달성하게 되었다. 경영이익이 지난해 66억 크로나(7억 8천만 달러 )에 이르렀다. 볼보는 지난 2월 판매가 2015년보다 34,551대로 15% 올랐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유럽이 31%와 21%로 성장을 주도했다. 볼보는 2016년, 신차 S90고급 세단이 소개되면, 자동차 판매고에 새로운 획기적 도약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의 확장 볼보를 향한 겔리의 첫 모험은 중국자동차 시장에서의 겔리 자신의 위치라는 문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겔리는 중국에서 메이저급 자동차회사가 아니다. 차이나오토웹(ChinaAutoWeb)에 따르면, 2014년 현재 겔리는 중국에서 17위로 랭크되는 인기승용차 브랜드였다. 연간 50만대 미만의 차량을 판매하면서 국내시장 3% 이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해에 수백만 대의 차량을 판매하는 국유 거대기업들인 상하이기차 (SAIC Motor), 제일기차(FAW Group), 둥펑기차(Dongfeng Motor), 창안기차(Chang'an Motor)등에 비해서는 작은 회사이다. ...
지난 6일 북한은 수소폭탄 발사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혀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으며 세계 각국에서는 즉각 비난이 이어졌다. 북한은 과거 세 차례에 걸친 핵실험 당시 모두 최소 30분 전에 중국과 미국에 통보해 왔으나 이번 실험은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다. 중국은 이에 대해 신속히 대응, 실험 여부를 사전에 알지 못했음을 알리는 한편 실험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2006년 10월 9일부터 현재까지 북한은 총 네 차례 핵실험을 진행했다. 이 글에서는 네 차례에 걸친 핵실험의 내막을 밝히고자 한다. 식상해진 ‘말 안 듣는 北, 타이르는 中’ 북한 김씨 정권은 세계 2차대전 이후 공산주의 진영과 서방 자유세계 진영이 서로 대치하는 가운데 수립됐다. 김씨 정권의 배후에는 구소련과 중공이 뒷받침하고 있었는데, 김씨 정권이 폭정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경제와 군사 방면에 걸친 구소련과 중공의 폭넓은 지지 덕분이었다. 중국은 북한의 최대 교역국이자 식품·무기·연료 공급처로서, 90년대 이후 북한의 식품과 에너지의 90%는 모두 중국에서 공급받은 것이었다. 전반적으로 살펴볼 때, 북한과 중국 간의 관계는 김씨 정권과 중공과의 관계로 볼 수 있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거의 중공의 원조에 의지하고 있으며, 중공은 그 대가로 북한을 서방국가에 대항하는 도구로 삼고 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간 북한은 공산주의 독재국가로서 3대에 걸친 김씨 정권의 독재 치하에 공산 독재정권의 병폐를 남김없이 재현해왔다. 김씨 일가는 대내적으로 독재통치를 시행, 국민을 탄압하고 국력을 자신의 이익에 사용했다. 북한에서는 전역에 기아가 만연하고 굶어 죽는 일이 속출해 사람들이 남한으로 탈출하고 있다. 김씨 일가 3대는 당내 정적을 지나칠 정도로 잔혹하게 숙청하는데, 심지어 김정은은 취임 이후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사형시켰다. 김씨 정권은 대외적으로 세계를 협박하는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중공의 지지를 얻어냈고, 중공은 북한이라는 불량배 아우를 미국과 서방세계에 대항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북한은 핵 위협이라는 위험한 게임을 반복해 왔는데, 그 목적은 독재자 김정은의 개인적 권력을 극대화함으로써 독재정치의 기반인 경제적 지원을 보장받으려는 데 있다. 이러한 북한의 막후 조종자는 바로 중공이다. 중공은 6자회담을 이용해 여러 차례 이러한 게임을 벌여 왔는데, 늘 이런 식이었다. 우선 북한이 핵 위협을 통해 UN 제재를 받고 미국의 경고를 받는다. 이어 미국과 국제사회는 중국의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 등을 주문한다. 중공은 이를 기회 삼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내부문제를 해결한다. 사실 6자회담은 중공과 북한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다름없다. 북한, 중공 장쩌민파와 밀월관계 시진핑 정권 출범 이전까지 북한 관련 정책을 결정한 것은 중공 장쩌민파였다. 북한 김정일 정권은 장쩌민 일파와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선데이타임스 셰리든 극동지역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장쩌민파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은 중공과 김씨 부자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김정일이 2010년 김정은을 후계자로 정식 지정해 열병식을 거행했을 당시, 저우융캉은 김씨 부자와 함께 단상에 섰던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장쩌민파로 분류되는 장더장 현 상무위원은 과거 북한으로 유학해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과에서 2년 과정을 수료한 바 있다. 장쩌민의 책사 쩡칭훙 역시 김정일과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쩡칭훙은 2001년 3월 장쩌민의 방북 당시 선발대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며 북한은 이후 쩡칭훙과 김정일이 함께 그려진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또한, 보시라이, 저우융캉은 정변 기도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도피처로 북한을 고려했던 것으로 언론에 알려졌다. 이처럼 장쩌민파 주요 인물들과 북한 고위층은 긴밀히 서로 협조해왔는데, 과거 쩡칭훙·저우융캉·장더장 등이 그랬다면 지금은 류윈산 상무위원이 그러한 인물이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열병식 당시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공 국가부주석이 이끄는 사절단의 방북을 거절한 반면, 장쩌민파 류윈산만은 특별초청했다. 보도에 따르면 류윈산은 북한 열병식의 TV 중계방송을 뒤에서 총지휘했으며 베이징 열병식을 중계한 중공 CCTV 주요 기술자들을 사전에 파견해 북한을 돕기도 했다. 최근 취소됐던 북한 모란봉 악단의 베이징 공연 역시 류윈산이 북한 방문 당시 협의해 내린 결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北 핵실험, 中 정치적 사건과 겹쳐 북한의 1차 핵실험(2006년 10월) 전에는 후진타오에 대한 함포사격 사건이 있었다. 그해 5월, 당시 군사위원회 주석이었던 후진타오는 북해함대 시찰을 위해 서해를 방문했다가 군함 2척의 공격받는 사건을 겪는다. 이 사건은 장쩌민파 해군 사령관의 명령으로 인한 것으로 밝혀졌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후진타오는 6월 중앙기율검사위위원회 조사팀을 상하이로 파견해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서기를 낙마시켰다. 장쩌민파의 후계자였던 천량위는 2년 뒤 18년형을 선고받았다. 북한의 2차 핵실험(2009년 5월) 역시 후진타오에 대한 암살모의와 시기적으로 겹쳤다. 그해 4월 중공은 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열병식을 칭다오 해역에서 개최했는데, 홍콩 언론에 따르면 후진타오는 열병식 직전, 개막과 동시에 장쩌민파 요원들의 암살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고 갑작스럽게 계획을 변경해 암살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
생체장기적출 다룬 美 다큐 ‘하드 투 빌리브’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 쉐바 의료센터 심장이식 외과 전문의 자콥 랍비 박사는 병원 입원 환자의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박사님, 2주 안에 날짜가 잡히는 대로 중국에서 심장이식을 받기로 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네요. 그 사람들(중국 의료진)은 무슨 수로 2주 남겨놓고 심장이식 날짜를 잡는답니까?” 의학적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의 심장은 장기이식용으로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다. 먼저 기증자가 뇌사상태로 생명유지 장치에 의존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수혜자는 기증자와 혈액, 조직 적합성이 맞아야 거부반응을 피할 수 있다. 이상은 자콥 랍비(Jacob Lavee) 박사가 다큐멘터리 ‘하드 투 빌리브’(Hard to Believe)에 출연해서 밝힌 2005년에 겪은 실화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국에서 공산정부가 양심수의 장기를 적출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세계 최초로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조사팀은 다큐멘터리에서 이 사건을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량살인’이라고 부르면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이유에 대한 해답도 제시한다. ‘하드 투 빌리브’는 의료계 종사자, ‘파룬궁’(法輪功) 수련자, 미 의회의원과 다양한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수록했다. 현재 미국 PBS 채널을 통해 미 전역에 방송 중이며 지난달 29일 DVD로도 출시됐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 랍비 박사는 이스라엘 환자들이 신장이식을 받으러 중국을 드나드는 상황을 알고는 있었지만, 기증자에 대해서는 중국의 가난한 사람들일 것으로만 짐작했다. 생계를 위해 장기를 판매한다는 것만으로도 윤리적 문제가 크지만, 어쨌든 사람은 신장 하나만으로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심장 기증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중국에서는 형이 집행된 사형수의 장기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장기이식 숫자와 사형집행 건수를 집계해 본 적은 없었다고 랍비 박사는 지적했다. 이에 의문을 품은 랍비 박사는 중국의 장기 출처와 기증자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됐고, 우연히 한 보고서를 발견했다. 이 보고서는 캐나다 인권변호사와 전직 국무장관이 작성했으며, 중국에서 양심수, 특히 1999년부터 탄압받고 있는 파룬궁 수련자들이 장기를 적출당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한 조사내용이 실려 있었다. “매우 일리 있는 내용이었다”고 랍비 박사는 다큐멘터리에서 말했다. 그는 이 보고서를 읽은 후 이스라엘이 이 사건에 말려들지 않도록 노력했고, 중국의 장기 적출 관행을 밝혀내고 중단시키기 위해 국제사회와 공조하는 등 이 분야 주요 인물로 부각됐으며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하게 됐다. 다큐멘터리 ‘하드 투 빌리브’는 중국 감옥에 갇힌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장기 적출이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 이유와 그 과정을 파헤친다. 그리고 미국 민주주의 진흥재단(NED) 루이자 그레브(Louisa Greve) 부총재의 말처럼 왜 그리 “믿기 힘든”(hard to believe)지, 그래서 왜 국제사회의 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지 의문을 갖고 해답을 찾는다. 피로 흥건한 자국을 뒤쫓다 가장 간단한 해답은 ‘정부가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민의 장기를 약탈하고 이를 상품 목록으로 만들어 부유층과 원정 장기이식 환자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야만적이고도 효율적인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위구르족, 티베트인도 장기 적출의 희생양이 됐지만, 가장 심각한 피해자는 파룬궁 수련자다. 1999년 7월 20일 전 공산당 지도자 장쩌민(江澤民·강택민)은 진·선·인을 가르치는 중국의 심신수련법 파룬궁을 국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
세계 각국은 중국 공산당이 산 사람의 장기를 꺼내 다른 이에게 팔아먹는 범죄에 분노한다 백악관 방문 중인 중국 지도자 시진핑은 중국 전역에서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는 파룬궁, 가정교회, 티베트인 및 위구르 양심수에 대해서 장기 강탈(밀매)을 중단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회피했다. 워싱턴을 방문한 또 다른 존경받는 인물인 프란체스코 교황은 1년 전 로마 시장 이냐지오 마리노(Ignazio Marino)와 다른 장기이식 의사들과 만난 후에 “장기를 사고파는 행위는 비도덕적이며, 인간성에 대한 범죄”라는 내용의 공개 발언 위임을 승인했다. 국제 비정부기구인 DAFOH(강제장기적출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톨스턴 트레이(Torsten Trey) 박사는 중국 정부가 2014년 말 수감자로부터 장기를 강제로 적출하는 것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양심수는 포함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장기 적출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어떠한 죄를 저질러서 구금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경찰 서명 하나만으로 최대 3년까지 노동교양소로 보내진 이들이다. 현재 희생자 절반 이상이 이러한 사람들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관료 단 한 사람도 양심수들로부터 장기를 적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장기 적출은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 '기증자'들은 다양한 사형범죄를 저질러 기소된 사람들이었으며, 이를 기증받은 사람들은 중국 정부 고위 관원이었다. 1984년 안보장관은 상업적 행위 제재를 언급하였으며, 이러한 장기를 사용하는 것은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령은 아직도 유효하다. 1990년대에는 신장 지역에서 상당한 학대를 당한 위구르인 정치사범들이 장기에 대한 추가적인 자원으로 등장하였다. 위구르족 출신 의사인 엔버 토티(Enver Tohti) 박사는 영국 하원 증언에서 1995년 6월 처형된 위구르 죄수들이 사망하기 전에 간과 신장을 제거하도록 명령을 받았다고 발언했다. 1990년대 후반, 정부 추정에 의하면 1억 명 이상의 중국인이 파룬궁을 수련했다. 2001년, 당시 중국 주석 장쩌민이 전국적으로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지시한 이래로 파룬궁 수련자의 장기는 비자발적으로 적출되었으며, 장기 중일부는 중국으로 장기 이식 여행을 온 외국 방문객들에게 높은 가격으로 거래됐다. 중국 전역의 장기 이식은 2001년 이후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군(軍)병원들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주요 장기들은 단지 몇 주만 기다리면 이식할 수 있다고 광고하기 시작했다. 심장을 이식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심장이 준비될 정확한 시간을 알게 된다. 이는 수요가 발생하면 처형이 이루어지는 살아있는 장기 공급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
일부 최고의 서구 의료 기관은 8월 21일~23일 중국 광저우에서 중국의 장기 이식 시스템이 향상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 당국이 학수고대했던 소식이지만, 많은 비평가는 이를 인권 재앙으로 보고 있다. 이제 서구 의료 기관들이 수감자들과 양심수에 의존해 장기를 얻는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중국의 장기 이식 제도를 자신들과 동급으로 인정할 날만 남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논란이 있는 가운데, 중국서 벌어지고 있는 잔인한 장기 이식의 역사를 소개한다. 장기 이식의 시작 중국의 장기 이식은 1970년대에 실패로 끝났다. 이후 중국의 장기이식 산업은 1980년대에 사형수들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해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장기 수혜자는 대부분 최고위급 중국공산당(이하 중공) 관리들이었다. 사형수들 1984년 중국 공안부와 다른 정부 기관들은 수감자의 장기를 이식할 수 있는 법률 조항을 공포했다. 기술된 조항에 따르면, ‘사형수들의 시체나 장기를 사용한다는 비밀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오늘날까지도 이 법률 조항은 폐지되지 않고 있다. 위구르 수감자 1990년대에는 특히 위구르족 출신의 정치범들이 장기 적출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경찰이었거나 외과 의사였던 사람들은 수감자들의 심장이 멎기도 전에 장기가 적출했다고 증언했다. 이는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서 장기를 빼내는 생체 장기적출이 알려진 첫 사례였다. 파룬궁(法輪功) 1999년,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공산당 주석은 중국 전역에서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다. 중공 관리들이 조사한 수치와 파룬궁의 추정치에 따르면, 1990년대 말 7000만~1억 명 정도의 중국인들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었다. 장기 이식수술 급등 2000년 중국 내 장기 이식 수술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장기 이식수술 센터가 곳곳에 설립됐고, 새로운 외과 의사들이 수술 훈련을 받았다. 중국 병원들은 장기 이식 대기 시간이 몇 주에 불과하다고 광고하기 시작했다. 심장 이식을 받는 환자들은 수술에 쓰일 장기가 정확히 언제 준비되는지를 들었다. 이는 장기가 필요한 시간에 맞춰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확보된 많은 장기가 어디서 왔는지 그 출처는 미스터리였다. 폭로 2006년을 시작으로, 파룬궁 수련자들이 중국의 새로운 주요 장기 공급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목격자들의 증언, 비밀 전화 통화 내용, 조사 보고서가 속속 발표됐다. 중국에서 탈출한 파룬궁 난민은 이상한 혈액 검사와 장기 기능 검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일부 파룬궁 수련자는 파룬궁 수련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으면 장기를 적출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점점 드러나는 진상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파룬궁 수련자들이 장기적출의 표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 양심수 6만 명 이상이 장기 때문에 사형 집행을 당했고, 심지어 파룬궁 수련자들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장기를 적출(생체장기적출)당하기도 했다. 은폐 2012년 이후, 파룬궁 박해로 저지른 범죄에 책임이 있는 많은 고위급 관리들이 중국공산당 내 권력투쟁 과정에서 숙청당했다. 2015년 전 중국 위생부 부부장이자 중국 장기기증 이식위원회 주석인 황제푸(黃潔夫)는 수감자들의 장기를 적출하는 “지독히도 더러운” 장기적출 시스템을 운영했다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전 공안부 부장을 비난했다. 중국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ARS) 실상을 폭로한 인민해방군 베이징 301 군병원 의사인 장옌용(蔣彦永)은 중국군 최고의 실세였던 쉬차이허우(徐才厚)가 생체 장기적출을 허용했다며 비난했다. 파룬궁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대중은 이를 두고 장기적출에 대한 현 지도부의 책임을 피하려는 시도로 보았다. 한편, 황제푸는 수감자들의 장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겠다고 국제 사회에 약속했다. ...
“메스가 가슴을 한 번 긋자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심장의 혈관을 자르자 그녀는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2002년 4월 9일 오후 5시, 선양 군구 총 병원 15층의 한 수술실에서 두 군의관(한 사람은 선양 군구 총 병원 군의관이고, 한 사람은 군의 대학을 졸업한 젊은 군의관)은 마취 없이 살아 있는 30대 여성 파룬궁 수련자의 장기를 적출했다. 이 파룬궁 수련자는 이미 일주일간의 혹독한 고문으로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 2009년, 랴오닝성 진저우시에서 현장 경비를 담당했던 목격자가 파룬궁 박해 추적 조사 국제 조직에 제보한 내용. 헤이룽장성 완자(萬家) 노동교양소에 수감된 임산부가 발끝을 의자에 디딘 채 대들보에 매달려 있었다. 당시 그녀는 임신 6~7개월이었다. 경찰이 의자를 차버리자 몸은 순식간에 허공에 떠버렸다. 굵은 밧줄이 3m 높이의 대들보의 도르래를 지나 경찰의 손에 쥐여 있었다. 줄을 당기면 그녀의 몸은 번쩍 들렸고 줄을 놓으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은 그녀가 유산할 때까지 계속됐다. 경찰은 그녀의 남편을 데려와 이 광경을 지켜보게 했다. - 2004년 11월 5일 완자 노동교양소에서 100여 일 혹형을 당한 왕위즈(王玉芝)에 대한 밍후이왕 취재 보도. 2000년 10월,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는 여성 파룬궁 수련자 18명의 옷을 모두 벗긴 채 남자 감방에 집어넣어 죄수가 윤간하게 했다. 한 목격자는 여러 죄수가 한 수련자를 덮치는 것을 목격했다. 며칠 후 그중 한 명이 자살을 시도했다가 구조됐다. 이 사건으로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정신 질환에 걸렸으며, 나머지는 불구가 됐다. 그 후 이 광적인 악행은 기타 교양소 및 감옥으로 확산됐다. 마싼자에서 고문을 자행했던 경찰은 수감된 파룬궁 수련자에게 “강간을 당해도 고소하지 않아야 ‘참음’이다.”라고 말했다. - 2001년 2월 UN 인권위원회 부녀 혹형 특별 조사 보고서. 1999년 7월 중국 공산당 주석 장쩌민은 파룬궁 탄압을 시작했다. 많은 파룬궁 수련자가 혹형과 고문, 생체(生體) 장기 적출, 약물 강제 주입 등을 포함한 여러 방식의 탄압으로 사망했다. 이상의 탄압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비폭력, 평화적인 방법으로 항쟁해 온 파룬궁 수련자들은 올해 5월부터 전국적으로 장쩌민을 고소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민중이 고위관료를 대규모로 고소하는 현상은 유례없는 일이다. 5월 1일, 중국 법원은 공식적으로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심리하고, 안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건한다”고 밝혔다. 7월 15일 현재 6만 명 이상의 파룬궁 수련자와 친족이 각종 경로를 통해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 최고 검찰원, 최고 법원에 형사 고소장을 제출해, 반(反)인류죄, 혹형죄, 집단학살죄 등의 죄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하고 파룬궁 탄압을 주도한 장쩌민을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모두가 궁금할 것이다. 장쩌민은 왜 이번 탄압의 원흉으로 지목돼 법정에 서게 될 날이 머지않게 되었을까? 장쩌민은 왜 파룬궁을 탄압하려 했을까? 장쩌민의 수치스러운 성공 1942년,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걱정한 많은 청년이 항일 구국 운동에 뛰어들어 전선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 17세 장쩌민은 오히려 왕징웨이(汪精衛)의 친일 정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장쩌민 그 사람(江澤民其人)’이란 책과 여러 조사에 따르면 장쩌민의 친부 장스쥔[江世俊·일명 장관첸(江冠千)이라고도 한다]은 일본의 난징 점령 기간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 선전기구 간부였다. 소련 붉은 군대는 1945년 창춘에서 일본 육군 대장 도이하라 겐지(土肥原賢二)가 거느린 특수요원에 대한 서류를 조사했다. 그는 1913년부터 중국에서 침략, 음모, 획책 활동을 벌인 바 있다. 그 자료 중에는 중국 침략 특수 요원을 양성하는 위 중앙대학 ‘청년 간부 양성반’에서 장쩌민이 교육을 받았다는 언급과 사진과 관련 서류가 있었다. 후에 조사를 거쳐 장쩌민이 장관첸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소련 유학 기간에 장쩌민은 KGB 미녀 스파이의 유혹에 넘어갔고, 소련은 그의 비밀을 폭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장쩌민을 KGB 극동국에 가입시켰다. 역사학자이자 중국의 2차 세계대전사 연구원인 뤼자핑(呂加平)은 ‘장쩌민의 ‘두 가지 간사함과 두 가지 거짓(二奸二假), 정치 기만 문제에 대한 조사를 호소한다’는 문장에서 ‘첫 번째 간사함(奸)’은 장쩌민 본인과 친부는 모두 일본의 앞잡이로 매국노(漢奸)라는 점이고, 두 번째 간사함은 장쩌민이 소련 정보기구에 충성을 하고자 중국의 넓은 영토를 넘긴 사실을 말한다. 첫 번째 거짓은 장쩌민 자신이 1949년 전인 1946년에 중공 지하당에 가입했다고 속인 사실로 실제로는 가짜 당원이라는 점이고, 두 번째 거짓은 자신을 애국열사의 아들로 위장한 것이다. 장쩌민은 줄곧 자신을 중공에 가입해 활동하다 훗날 토비의 총격에 사망한 장상칭(江上靑)의 아들이라고 거짓말했다. 장상칭은 실제로는 숙부이며, 친부인 장스쥔의 친일 행적은 장쩌민이 숨기고 싶은 가족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