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국 ‘장기적출’ 밝혀낸 에단 구트만(上)

2016년 6월 13일 업데이트: 2019년 10월 31일

 이른 봄날씨는 몹시 쌀쌀했지만, 그날은 따스한 바람이 불었고 교도관이 모든 감방문을 열도록 했다. 여성 수감자들은 모두 난간이 세워진 베란다에 섰다. 먼 산봉우리는 흰 눈에 덮여 있었고 봄을 맞은 꽃망울은 막 터질 듯했다.

파룬궁 수련자인 쑨(孫)모씨가 나지막이 노래 ‘웨이니얼라이(爲你而來·그대 위해 왔노라)’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신을 구하기 위해 산과 물을 건너왔다는 내용의 노래였다. 다른 파룬궁 수련자도 함께 따라서 불렀다. 파룬궁 수련자가 아닌 다른 수감자들도 가사를 한번 듣고 나더니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수많은 산 넘고 물 건너, 나 이렇게 한 번 또 한 번, 그대 위해 왔노라……그대를 사랑하기에 나 이렇게 그대 위해 왔노라……”

수감자들은 울기 시작했다. 감방 7개 모두에서 수감자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를 지켜보던 교도관이 “그만, 그만,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하자 모두 감방 안으로 돌아갔고 감방의 철문은 굳게 닫히고 다시 열리지 않았다.

이상은 언론인 출신의 작가 에단 구트만이 전한 중국 창춘시 헤이쭈이즈 여자 감옥의 일화다.

가을 저녁, 기울어져 가는 햇빛을 바라보며 워싱턴DC 미 의회 공청회장 밖의 한 잔디밭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에단 구트만은 감정이 격앙된 듯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햇빛을 바라봤다. 눈가에는 희미한 눈물이 반짝였다.

“무척 감동했다.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다. 노래 속에서 히말라야의 찬바람과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지난 2008년 7월의 어느 날 새벽 2시경, 방콕에서 태국으로 도피한 창춘 지역 파룬궁 수련자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미 의회서 열린 중국 인권문제 공청회 참석

미국 시민권자인 구트만은 ‘잃어버린 신중국(Losing the New China)’, ‘대학살(The Slaughter)’의 작가이자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다. 미국의 한 싱크탱크 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파룬궁 수련자는 아니지만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얼마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그는 미 의회에서 열린 ‘파룬궁과 중국 인권문제에 관한 공청회’에 초청받아 참석했다.

구트만은 공청회 후 본지와 인터뷰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이 중국에서 강제로 장기를 적출 당하게 된 사건을 조사하게 된 동기와 조사과정에 관해 설명하며 “오늘 공청회에서 파룬궁에 대해 말한 모든 내용은 알다시피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진정한 본질은 사람, 비범한 용기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야기에서 말하는 용기에 감동받았다. 창춘 TV에 영상을 삽입·송출한 사람의 이야기는 특히 더 감동을 줬다. 이는 내가 이번 사건에 대해 독자적으로 조사하기로 결심하게 된 동기”라고 소개했다.

지난 2002년, 중국 창춘의 파룬궁 수련자들은 지역방송인 창춘 TV 방송신호에 당시 톈안먼에서 발생한 파룬궁 수련자의 분신자살 사건이 사실은 공산당에서 연출한 조작극임을 알리는 내용을 삽입·송출했다. 당국의 사건 은폐·왜곡 보도에 대한 항거였다. 이 사건으로 창춘 지역의 수많은 시청자가 공산당의 거짓말과 파룬궁의 진상을 알게 됐으나, 이후 사건에 연루된 다수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체포돼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 목숨을 걸고 진상을 알린 사건이었다.

1999년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을 때, 구트만은 베이징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다.

구트만은 자신이 거주하던 베이징 고급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파룬궁은 불법이다. 연마하지 말라”는 방송을 들었다. 살벌한 분위기가 느껴졌고 방송을 듣고 무서워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7월 20일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푸유제(府右街)를 지나다가 경찰이 노년 부녀자들을 버스에 던지듯 강제로 태워 어디론가 가는 것을 목격했다. 붙잡혀간 이들은 모두 파룬궁 수련자들이었는데, 구트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틀 뒤에는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서 파룬궁을 격렬히 비난하는 뉴스를 방송했다. 그는 회사 동료가 “파룬궁에 대한 뉴스가 나온다”고 알려줘 보게 됐는데 “하지만 전혀 믿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고집이 센 사람이다. 남의 말만 듣고 뭔가를 믿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다. 중국 정부에서 ‘넌 이것을 하면 안 돼, 보면 안 돼’라고 한다면 나는 ‘난 할 수 있고 할 거야’라고 말할 것이다.”

이후 수년 동안 중국에서는 파룬궁을 비난하는 뉴스와 프로그램, 신문보도가 쏟아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실종됐다.

1999년 10월 베이징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구트만의 언론인 동료 두 명이 참석했는데 그중 한 명은 영국 인디펜던트 특파원 칼룸 멕레오드(Calum MacLeod)였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멕레오드가 쓴 기사를 게재했다가 인터넷판이 몇 달씩 중국에서 접속 차단됐다.

진실을 알고 파룬궁 관련 책 쓰기로 결심

“기자회견 주최 측은 경찰의 추격을 따돌려야 했다. 이들은 여러 번 택시를 갈아타고서야 기자회견장에 올 수 있었다. 기자회견이 열리는 장소는 비밀이었는데 젊은 여성 수련자 딩옌(丁延)이 자신이 받은 고문을 직접 시범 보이기도 했다. 헤어 디자이너였던 그녀는 3년 후 감옥에서 익사했다. 허베이성 출신인 그녀는 기자회견 당시 26세로 똑똑하고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이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슬펐다.”

2004년, 미국으로 돌아온 구트만은 뉴욕에서 ‘잃어버린 신중국’이란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의 한 장은 전부 파룬궁에 관한 내용이었고, 위에 서술한 내용을 소개했다.

‘잃어버린 신중국’ 출판을 계기로 한 파룬궁 수련자가 구트만에게 “파룬궁에 관한 책을 쓸 수 없느냐”고 물었는데, 구트만으로서는 놀라운 제안이었다. 광적인 탄압으로 인해 중국에서 파룬궁이 이미 말살됐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트만은 “중국에 파룬궁이 아직 있느냐”고 되물었고 “있다”는 답을 들은 후 다른 파룬궁 수련자들을 만나 사전 취재에 착수했다.

한번은 중국에서 건너온 여성 수련자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감시의 눈길을 피해 밤중에 파룬궁 관련 전단을 나눠주다가 개가 짖어 위험에 처할 뻔한 일화 등 목숨을 걸고 사람들에게 파룬궁에 대한 탄압이 잘못되었음을 알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구트만은 이후 2005년부터 중국에서 이뤄지는 파룬궁에 대한 탄압을 본격적으로 조사했고, 2014년 책 ‘대학살’을 출간했다.

그는 출간에 관한 일화도 소개했는데, “동료 한 명과 함께, 캐나다 몬트리올에 사는 파룬궁 수련자 2명을 방문했는데,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차 안에 있던 모든 물건이 사라져 있었다. 몸에 지니고 있던 신분증과 노트북만 빼고 전부 도둑맞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구트만은 중국 당국이 몬트리올에도 많은 스파이를 파견했음을 알게 됐고 “이후 보안에 철저히 신경을 쓰게 됐다”면서 “조사하는 기간에 어디를 가든 선불 핸드폰을 사서 1~2주 쓰고 다시 새 핸드폰을 사서 썼다. 나를 심하게 감시했기 때문에 내가 만난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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