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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은 대만에 대선이 열리는 해이다. 선거 전 대만 정계의 동향이나 민심을 살펴보면, 통제 불가능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차이잉원 여사가 거의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진짜 문제는 대만에 대한 중-미 양국의 정치적 입장이 선거 전이나 당선 후에도 대만 좌우 정치의 향방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점이다. 민진당의 대만 정계 복귀 전망 현재 대만에서 가장 큰 정치 세력은 국민당과 민진당의 양당 세력이다. 2014년 11월 ‘구합일’ 선거에서, 국민당은 정치적 기반을 크게 상실했고, 주리룬만이 5대 도시 시장 선거에서 유일하게 승리했다. 이 때문에 주는 국민당 주석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정세를 잘 아는 주리룬은 여러 차례 2016년 대만 총통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물론 어려운 선거를 피하려는 의도이다. 2016년 대만 총통 선거는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이 독주할 것으로 보여, 국민당 총통 후보는 그저 아무 승산 없이 ‘들러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민진당이 대만 정계에 복귀하고, 차이잉원이 미래 대만 총통이 되는 상황에 대해, 베이징과 워싱턴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의견을 나눴을 것이다. 이는 미국재대협회(AIT)의 전 고위임원 두 명이 연이어 한 말에서 알 수 있다. 시진핑은 베이징에서 주리룬과 정상 오찬 회담을 가졌다. 우선 그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면서, 민진당에 베이징이 누구를 ‘자신의 사람’으로 여기는지 보여주면서, 내년 대선 형세를 바꾸는 데 많은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을 드러냈다. 대만해협 관계 중 미국 요인 대만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보통 미국재대협회(AIT) 관료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드러난다. 올 3월 하순, 전 AIT 관료 두 명이 연이어 동일한 입장을 표시했다. 한 명은 미-대만 사무를 오랫동안 주관해 ‘대만통’이라고 불린 바바라 슈레그 여사이다. 3월 21일, 그녀는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에서 주최한 미-대만 관계 토론회에서 2016년 민진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상황에 관해 이야기했다. 과거 몇 개월 동안, 베이징 지도층은 ‘9·2 공동의식’과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해 점점 강경한 입장을 표하고 있다. 이는 민진당과 차이잉원 당 주석뿐 아니라 대만 전체 국민에게 내보내는 경고이다. 그녀는 “미국도 민진당 총통 후보의 양안 정책을 매우 주시하고 있다. 이는 대만 해협의 안정 국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미국은 매우 근본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슈레그는 차이잉원에게 중국 정책을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내년 대전이 있기 전, 대만 민중은 민진당이 선거에 승리할 경우 양안 관계를 어떻게 처리할지 알 권리가 있다. 미국은 대만의 민주 절차에 개입하지 않지만, 양안이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게 미국 이익에 부합한다. 따라서 미국 행정부는 양안의 대립을 축소할 중국 정책을 만들도록, 차이잉원을 포함한 민진당 지도층에 압력을 넣으려고 한다.” 이와 동시에 슈레그 여사는 베이징에도 경고했다. “베이징 당국은 어느 정도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불필요한 행동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베이징도 민진당이 승리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쌍방의 긴장 관계가 대만 해협의 안정을 해친다면, 모두에게 해가 될 것이다.” 더글러스 폴 카네기 국제 평화 기금 부원장 겸 미국재대협회(AIT) 대북사무처 전 처장은 3월 24일 워싱턴에서 열린 ‘아태지역에서 대만의 경제적 역할’ 토론회에 참석한 후 기자 인터뷰에서 동일한 견해를 밝혔다. 이에 대해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은 “민진당은 미국 정부에 이를 확인했으며, 퇴직한 관료의 말은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응답하면서도, “폴이 언급한 양안 관련 상황을 모두 들었다”라고 답했다. 차이잉원의 이 말은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을 담고 있다. 베이징과 워싱턴에 어떻게 응대할지는 실제로 민진당과 차이잉원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중국에 융통성 있게 접근해야 중국과의 관계와 이해 면에서, 대만의 양대 정치 세력은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국민당은 베이징과 너무 가깝고 민진당은 거리가 너무 멀다. 국민당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눈앞의 이익(특히 개인 이익)에 쉽게 이끌렸다. 그 결과, 베이징은 대만 언론을 적색으로 물들이고, 곧이어 서비스 무역 협정을 준비하면서, 하마터면 눈앞의 ‘평화통일’이 사라지고 대만의 민주제를 잃어버릴 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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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증시가 강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개인 투자자들이 끊임없이 증시에 뛰어들고 있다. 그들에게 증시의 교훈을 다시 일깨우고 싶지만, 그저 인심만 잃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투자자들에게는 ‘증시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원래 정보’라는 사실과 정부에게는 ‘정부의 손이 만능이 아니며, 주사위를 던져 타인의 빈부를 결정할 때, 국가 경제의 방향이 왜곡되고 있다’라는 사실을 말이다. 정책 증시의 특징: 내부 정부가 주식의 신을 만든다 중국 증시는 정부가 이끌고 있지만, 정부 기관과 증시 거물들이 내보낸 소식이 종종 증시를 출렁이게 하는 근원이 되곤 한다. 정보의 유포와 전달에는 차등성과 시기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적시에 정보를 파악해 반응하느냐에 따라, 증시에서 수많은 투자자의 성패가 좌우된다. 정보 유포의 정점에는 정부 및 기관 투기꾼들이 있다. 이 기관들은 중국 증시를 움직일만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이 증시에서 매매를 진행할 때면, 종종 미리 획득한 내부 소식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곤 한다. ‘중국 증시를 흔들려면 얼마나 많은 자금이 필요한가’라는 글을 보면 여러 가지 예시가 나와 있다. 이 기관들은 정책 동향을 분석하는 전문 인원 외에 정보 수집을 전담하는 전문 홍보 인원도 육성한다. 그들은 중국 증시의 ‘번영’이 정부의 손에 의존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정부의 손의 조그마한 움직임(즉, 새로운 정책 추진)도 놓치지 않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올 양회 기간 중 저우샤오촨이 증권과 관련된 연설을 하자, 그들은 곧바로 의도를 파악했다. 4월 중순 증시가 과열돼, 상하이, 선전 양 증시의 거래량이 1.3조~1.5조 사이가 되자, 전문 분석가들은 ‘정부가 증시의 온도를 낮출 것’이라고 예상했고, 4월 19일 지급준비율이 인하됐다. 그 결과 20일 상하이, 선전 주가지수가 크게 요동쳐, 종가가 1% 이상 하락했다. 하지만 정부 및 기관 투기꾼은 이런 분석보다 증권관리감독위원회나 상장기업의 내부 소식을 더 중시한다. 증시 감독을 맡은 관료는 종종 공과 사에서 모두 이익을 챙긴다. 그들은 증시를 감독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동시에, 일반 투자자보다 먼저 얻는 중요한 내부 소식을 통해 자신 또는 친지가 부당한 이익을 챙긴다. 감독 부문의 공무원이 법을 위반한 사례는 대단히 많다. 2014년 11월 중국 증권관리감독위원회, 공안부,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는 공동으로 ‘내부거래 경고, 교육전’을 개최해 상하이, 광둥, 선전, 샤먼 등에서 연속 전시회를 열었다. 그들은 내부거래를 한 일부 관료들을 조사했지만, 추문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해 오히려 혐의를 지닌 수많은 관료를 이직시켰다. 이들은 증권관리감독위원회를 떠난 후 종종 펀드회사나 증권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기업들도 이들을 흔쾌히 받아들였는데, 예전에 진 신세를 갚는 동시에 그들이 증권관리 기관에서 맺은 인맥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상장기업의 내부 소식도 매우 중요하다. 2014년 리젠거 선인완궈 이사장(국무원 계통에서 장기간 근무)은 상장기업이 회의할 때마다, 일부 감독기관에서 인원을 파견해 이사회 회의에 참석한다고 공개적으로 폭로했다. “그들은 회의에 참석하는 도중 화장실에 간다. 화장실에 가기만 하면 증시가 요동친다.” ‘화장실에 간다’는 말은 회의장을 빠져나와 전화로 내부 소식을 흘린다는 것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런 회의에는 감독기관뿐 아니라 현지 금융기관에서도 사람을 보내고, 갖가지 이유로 참석하는 사람이 많아, 뒤에 앉은 사람이 이사회 인원보다 더 많다고 한다. 그들이 상장기업의 이사회에 이렇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이사회가 상장기업의 주요 정책결정 기구여서, 회사 경영과 발전에 관한 주요 문제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사업 비밀과 증권 거래와 관련된 내부 소식을 다루기 때문에, 이사회에서 결정된 내용은 해당 기업의 주가 추세 및 투자자의 이익과 직접 연관돼 있다. ‘기업법’과 ‘증권법’에는 정부 관료가 이사회에 참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는 명백히 권력을 남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책 증시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인맥 자원은 내부 정보의 품질과 수량을 결정하며, 증시에서 승리자를 만드는 주요 자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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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증기가 반년 가까운 상승세를 보이며 계속 급증하고 있다. 각 언론은 이번 증시 급등에 연이어 찬사를 보내지만, 이것이 ‘정책적’인 상승이라는 걸 인정했다. 이는 경제적인 요인과는 무관하며, 경제적 지식으로 해석할 수 없다. 중국 증시는 경제와 무관하고 오직 정책과 연관되기 때문에, 국제 금융업계의 평론가는 그저 방관만 할 뿐 여기에 참견할 수 없다. 이 현상은 업계의 전문적인 분석을 완전히 뛰어넘기 때문이다. 중국 로직: 증시에서 세계 기업 순위를 바꾸다 사실 증시를 자극하는 정책은 일찍부터 몰래 실행돼 왔다. 상하이 지수는 지난해 10월 28일부터 반년 동안 72.8% 상승해, 전 세계 주요 자본시장에서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중국 증시에서 ‘경제 펀더멘털이 탄탄하다’ 등의 말은 이미 퇴출당했고, 시가총액, 거래량만이 증시 번영을 나타내는 표지가 됐다. 아래는 최근 보도된 소식이다. ‘부동산기업 시장가치 증시와 함께 급등, 10대 기업의 총 규모 1조 위안 돌파’, 이 기사의 요점은 증시 강세에 힘입어 부동산 시장도 기세를 올린다는 것이다. “새로운 증시 정책이 연이어 계속되면서, 브랜드 부동산 기업의 증시 반응도 순조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렇다. “전 세계가 중국 부동산 거품을 쓸데없이 걱정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통제하고 있어 문제없다. 현금화하기 힘든 부동산시장에 들어갈 수 있으며, 현금화하기 쉬운 주식시장은 더욱 들어갈 수 있다.” 예전에는 증시 수준을 보존하기 위해, 매매가 제한된 상장기업도 적합한 때에 해금됐다. 상하이, 선전 증권거래소의 안배로 올해 양 시장은 상장기업 115곳의 주식 매매 제한을 풀었고, 해금된 시가총액 규모는 2,500억 위안에 달했다. 이후 주가조작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증시 큰손들은 주가를 조작할 공간이 더욱 커지자, 일부 주가를 불시에 끌어올린 뒤 매매에 큰 수익을 올렸고, 개인 투자자들도 그 뒤를 미친 듯이 쫓아 매우 떠들썩했다. 2014년 홍콩 증시와 상하이 증시의 교차매매를 허용하는 ‘후강통’이 시행되자, 홍콩 증시는 중국 증시와 보조를 같이 했다. ‘홍콩 증시 급등으로 전 세계 기업 순위 변동, 건설은행 시가총액 모건스탠리를 앞서’라는 기사에서 중국 증시가 전 세계 기업 순위를 바꾸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거 1개월 동안, 홍콩 증시는 17.6% 상승해(누계), A주식을 제외한 전 세계 증시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홍콩증시의 총 시가총액은 4월 10일 처음으로 3조 홍콩달러를 돌파해, 최고 기록을 세웠다. 홍콩 증시가 급등하자, 중국 건설은행의 시가총액도 모건스탠리, 페이스북, 셰브런을 초과했다. 기사는 “여기서 보듯이, 홍콩 증시의 급등으로 현재 전 세계 기업상승쉴위가 재편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말을 살펴보면, 세계 경제는 이제 사이버 시대로 접어들어, 상장기업상승실제 실적은 중요하지 않고, 기업 주식의 시장가치가 얼마나 올라가느냐가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믿지 못하겠다면, 건설은행을 살펴보라. 내부 경영방식은 변하지 않고 부실채권도 여전히 많지만, 정부의 보조와 수많은 주식 투기꾼들의 지원 아래, 건설은행은 모건스탠리 등 저명한 국제 기업을 이미 뛰어넘었다. 증시 급등: 경제와 상관없이, 정부 지원 때문 이번 증시 급등은 중국의 각 경제 지표가 악화될 즈음에 일어났다. 4월 10일 발표된 데이터를 보면, 중국의 3월분 수출은 동기간 대비 1.5% 하락했고, 1사분기 GDP 증가속도는 지난해 4사분기의 7.3%에서 7%로 떨어져,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 언론도 이 점을 인정했다. “증시의 펀더멘털을 보면, 증시 강세의 근거와 로직을 찾기 어렵다. 거시적으로 볼 때 경제 성장의 둔화 압력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산업 방면에서는, 부동산, 철강, 자동차, 석탄 등 많은 산업이 불경기로 산업 이윤이 계속 하락하고, 산업 전체의 손실도 적지 않다. 기업 방면에서는, 기업 경영이나 영업이 크게 어려워졌다. 과거 호황이었던 금융업도 수익이 끊임없이 하락하고 있다. 경영상태가 모두 좋지 않은데, 증시는 무엇을 기반으로 호황을 맞는 걸까?” 해답은 간단하다. 정부가 개입해 움직이는, ‘정책적 강세’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중국 정부는 은밀히 ‘적극적인’ 증시 정책을 취했고, 10월 이후 강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정부의 증시 자극에 대해 그저 수군거릴 뿐이었다. 올해 3월 12일 ‘양회’ 기간 중, 한 기자가 저우샤오촨 중앙은행장에게 물었다. “통화완화 정책으로 늘어난 자금이 증시에 들어가면 어떡할 것인가?” 저우샤오촨의 대답은 이랬다. “자금이 증시에 유입된다고 해서, 실물경제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실물경제에 투입될 돈이 다른 쪽으로 세는 것도 아니다. 자금이 증시에 들어가는 것도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것이다. 상장기업은 대부분 실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증시 문제에서 이렇게 명확한 태도를 보인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는 중앙 정책부서가 증시 자극에 이미 합의한 것을 의미한다. 정책의 인도 아래, 중국 경제 관리부서 및 금융기구는 증시의 수문을 열어젖혔고, ‘국가대표’로 불리는 각계 사람들과 기관 자금이 연이어 증시로 들어왔다. 그중 금융기관이 적지 않았는데, 그들의 진입으로 수많은 사회 자금이 연이어 증시로 들어와, 현재의 ‘증시 강세’를 이끌었다. 약 보름 후, 중국 증시는 매일 1조 2천억~1조 5천억 사이로 거래도 세계 최고의 거래량을 기록했다. 사람들은 이것이 정책성 증시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돈만 벌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해, 경제가 이끄는 증시이건, 정책적으로 조성된 증시이건 상관하지 않았다. 정책적 증시도 어쨌든 ‘강세’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증시 정책을 취한 것은 중국 증시 25년 동안 전례 없던 일”이라고 평가하지만, 이는 너무 보수적인 말이다. 더욱 사실적으로 말한다면, 인류 사회에 증시가 나타난 이후, 정책에 의지해 증시를 번영한 것은, 오직 중국 정부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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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 동안 중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비푸젠의 마오쩌둥 모욕 사건은 정부와 마오 좌파와 연합해 만든 강대한 압력 아래, ‘장본인’이 웨이보에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이에 마오 좌파는 날 듯이 기뻐했지만, 이 사건이 중국의 2중 언어 시스템이라는 함정을 열어젖혔다는 걸 알지 못했다. 일단 시범효과가 형성되면, 전체 중국인(마오 좌파 자신도 포함해서)은 언제 어디서든 이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중국의 ‘돤쯔문화(段子文化)’와 구소련의 ‘주방문화’ 난 비푸젠이 ‘지취위호산’을 부르는 동영상을 보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는 중국의 식탁 돤쯔문화(段子文化)를 좀 더 발전시켰을 뿐이다. 혼자 1인 2역을 하면서 뛰어난 말과 노래 솜씨로 좌중의 손님들을 웃긴 것이다. 이러한 식탁 돤쯔문화는 1990년 중반에 형성됐다. 처음에 베이징에서 시작됐다가 크게 유행하자, 전국 각지에서도 이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선전의 일부 사장들은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돤쯔를 잘하는 사람을 회식에 부르곤 한다. 나도 여러 지역의 식탁 돤쯔문화를 경험했는데, 외지의 돤쯔문화는 베이징의 돤쯔처럼 생동감 있고 재미있으며 창의적이지 못하다. 돤쯔는 정치류, 외설류 및 유머류로 나뉜다. 정치, 경제 엘리트가 모이는 베이징에는 외설이나 유머보다는 정치류가 주를 이룬다. 관계가 좋은 사람끼리 모임을 가지면, 정치적 뒷이야기를 안주 삼아 하는 것이다. 사실 비푸젠이 노래한 것은 그리 특출한 것도 아니다. 1990년대 중후반, 내가 베이징에서 들은 마오쩌둥과 동료 혁명가들을 조롱하는 돤쯔는 더 심했다. 예를 들어 마오와 장칭이 연안 토굴에서 밀회한 일이나 주, 류, 저우 등이 몰래 엿들은 일, 덩샤오핑이 키가 작아 벽돌을 나르고 축사 흙을 날랐다는 것 등이다. 돤쯔를 하는 사람은 쓰촨, 후난, 장쑤 등의 사투리로 혁명 지도자들을 흉내 내 사람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장쩌민과 동료를 비꼬는 것은 더 많다. 예를 들어 5명의 상무위원을 ‘5자 치국(딴따라, 미치광이, 바보, 귀머거리)’이라고 놀리거나, 장쩌민이 클린턴에게 ‘위로는 천국과 통하고 아래로는 지옥과 통하는’ 휴대전화를 선물했다는 유명한 돤쯔도 있다. 사실 이는 ‘6·4 학살자’인 덩샤오핑이 지옥에 살고 있음을 풍자하고, 전화요금 명세서를 통해 중국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돤쯔는 실로 예술이라 부를 수 있다. 많은 사람은 식탁 돤쯔문화가 소련의 ‘주방문화’에 중국 특색(외설)과 시대적 특징이 가미된 것으로 생각한다. 스탈린 통치 후반기, 소련에는 ‘주방문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공개 장소에서는 빈말과 거짓말만 늘어놓던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 가족이나 친구들과 주방에 모이면,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각종 정치 뒷이야기를 전하며 현실의 각종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소련 시기 유명한 정치 유머는 대부분 ‘주방문화’의 산물이었다. 사회주의 정치의 위선과 몰염치가 만든 2중 언어 시스템의 함정 중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두 가지 언어 시스템을 운용하는 데 익숙할 것이다. 즉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원칙적인 말, 상투적인 말, 거짓말을 하고, 가족과 친구 사이에는 진심 어린 말을 말하고, 일부 현실이나 주변 사물에 대해 자신의 진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정부의 이데올로기가 현실과 심각하게 어긋나면서 일어난 부작용이다. 중국의 이데올로기 언어는 마르크스주의, 마오쩌둥 사상 및 사회주의제도를 굳건히 지지하고 드높이며, 이러한 사상이론의 인도와 사회주의제도의 보장 아래, 중국이 부유한 강대국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 수십 년간의 중공 통치를 통해,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자신과 타인을 속이는 거짓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인민 사상을 규범화하는 주요 도구로 삼고 사람들을 압박해, 초등학교 때부터 2중 언어 시스템 속에서 왔다 갔다 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시스템에 잘 적응한 사람은 공청단, 공산당에 입당해 앞날을 보장받고, 부정부패의 길로 들어섰다. 운이 더욱 좋으면, 멋대로 부정부패를 일삼아도 감옥에 가지 않고, 평생 부와 명예를 누렸다. 중공은 줄곧 거짓말로 마오쩌둥을 포장했다. 예를 들면, 마오쩌둥이 인민을 이끌고 제국주의를 무너뜨렸다느니, 가난한 자를 주인으로 만드는 구세주니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1949년 이후 중공이 중국을 통치하면서, 잘된 일은 하나도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중공 자신도 마주하기 어려운 어두운 일면으로 가득했다. 예를 들어 반혁명 진압, 반우파, 대약진, 3년 대기근, 문화대혁명, 6·4 등은 마오쩌둥이 이끈 중공이 만든 국가적 범죄이자 과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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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동안 중국 상인들이 정경 무대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는 어떠한 소설보다도 더 기이하다. 또한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것’처럼 그 물결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이 상인의 길이 얼마나 멀리 뻗어 있고 얼마나 큰 장면을 지탱하는지는, 그들이 중국 특색의 상업계에서 발휘하는 능력 외에도 그 배후에 얼마나 단단한 배경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쓰촨 기업가 류한과 산둥 기업가 궈원구이는 각각 ‘정경유착’의 길을 걸었지만, 궈원구이는 자신의 배후 덕분에 해외로 도망쳐 공개적으로 도발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국내외 간첩업무를 주관했던 국안부 부부장 마젠은 이 신비한 권력 때문에 ‘정법 차르’ 저우융캉보다 더 거만했다. 정경유착 도구로 전락한 보안 권력 중기위가 마젠을 체포한 것은 사전에 결정을 내리고 취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소식은 저우융캉 때와는 달리 반년이 지나서야 중국 언론에서 점차 보도됐다. 먼저 아들, 딸의 사돈 집안, 형제 가족들을 언급한 후 마지막에 그에 관한 소식을 폭로하는 식이었다. 마젠이 1월 9일에 체포된 후, ‘환구인물’ 잡지는 1월 16일에 ‘반간첩 활동을 총괄하던 마젠 부부장 낙마’라는 기사에서 그가 낙마한 배경에 대해 네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첫째는 그가 리여우 베이다팡정그룹 전 회장의 체포와 연관됐을 가능성이다. 나머지 세 가지 가능성은 각각 링지화 연관설, 저우융캉 연관설, 지도층 담화 도청 등 불법 활동 참여설 등이다. 궈원구이의 이름은 재신망이 1월 16일에 발표한 ‘팡정 분쟁은 완화 국면? 숨겨진 투쟁은 더욱 격화돼’라는 기사에서만 언급되었다. 당시 기사에서는 팡정그룹과 정취안홀딩스 간의 복잡한 다툼을 소개한 바 있다. 당시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숨겨진 투쟁’의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후 3월 24일부터 국내 3대 언론은 이를 앞다투어 다루기 시작했다. 당일 QQ 재경은 ‘궈원구이와 그의 신비한 ’반고회‘’를 보도했고, 3월 25일 재신망은 ‘궈원구이의 고위관료 사냥기. 결탁에서 반목까지’를 발표했다. 3월 26일 재신망은 ‘궈원구이 폭로’를 보도했고, 3월 30일 재신주간은 ‘권력 사냥꾼 궈원구이’를 발표했다. 이 기사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어지러운 상업계 갈등이 아니라, 궈원구이와 안전부서와의 관계였다. “관련 부서의 조사에 따르면, 마젠이 직접 관할하는 한 부서가 중국의 대형 경제 사건을 처리하고 기술적 수단을 동원할 권리를 가졌다고 한다. 마젠은 궈원구이와 안팎으로 협력해 보안 권력을 정경유착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해당 부서의 많은 간부가 관련 조사를 받았다.” “궈원구이가 공격한 관료 중에는 ‘보안부문과 관련된’ 특수 인물들이 포함되었다. 이 때문에 그의 신비감을 더욱 커졌고 비즈니스 활동에 막대한 편이를 제공했다.” 자오궈싱 RFI 상하이 특약기자는 이 사건의 특이성을 날카롭게 간파해 ‘궈원구이 이야기 협정보기구 장악 논쟁’(3월 27일)을 보도했다. 그는 위에서 언급한 기사들을 축약해 이 사건의 핵심을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궈원구이 사건의 핵심은 반부패가 아니라 정보 권력의 재편성이다. 이번에 궈원구이 사건이 전면적으로 폭로되면서, 궈원구이의 정보부문 맹우인 마젠이 낙마했다. 새로운 집권자는 이를 기회로 정보부문을 깨끗이 정리하고 철저히 장악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내용을 보면 그가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것을 알 수 있다. 마-궈 동맹의 ‘공격’ 마젠이 돈세탁 및 자금 유용에 궈원구이 한 사람만 이용하지 않듯이, 궈원구이의 배후도 마젠 한 사람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재신망은 ‘마젠은 궈의 가장 중요한 동맹 중 하나’라고 보도했고, 궈 자신도 “더 높은 지도자를 알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기사에서는 마젠 이야기만 다뤘다. 재신이 보도한 ‘궈원구이의 고위관료 사냥기. 결탁에서 반목까지’를 보면, 마-궈 동맹의 시기와 맥락을 분석할 수 있다. 2006년 마, 궈가 동맹해 공격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궈원구이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기 시작했고, 매우 중요한 동맹을 기반으로 승승장구했다. 18대 이후 형세는 완전히 역전됐다. 궈원구이는 특수 신분의 비호를 등에 업고 상업계 적수를 강제로 복종시켰고, 자본 운용에 실패하자 자금을 맘대로 끌어왔다. 이때부터 그에 대해 빙산의 일각만큼 폭로됐다. 궈원구이는 3월 30일 남화조보와의 인터뷰에서 마젠과의 관계를 인정했다. 그는 마젠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며,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내가 없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여기서 말한 ‘빙산의 일각’은 무엇일까? 아래의 재신 기사를 살펴보자.궈원구이가 류즈화를 고발한 사건에서 ‘궈원구이가 동원한 특별한 수단’은 바로 30분의 비디오테이프였다. 이 비디오테이프는 관련 부문의 특수 채널로 중난하이에 직접 전달돼 고위 지도층의 분노를 샀다. 이 특수 채널은 바로 마젠이 제공한 것이다. 그 결과 궈원구이는 2006년에 잃었던 모건 센터를 다시 찾아 사업에 전환점을 맞았다. 마젠의 힘을 빌린 무시무시함은 류즈화 같은 문관을 처리하는 데 있지 않다. 2008년 베이징 진촨광장 프로젝트에서 베이징 바오리와 분쟁을 겪을 당시, 결국 서로 화해하고 마무리한 것이 진정한 실력이라 할 수 있다. 베이징 바오리의 모기업인 중국 바오리그룹은 군수기업으로 이사장은 허핑 총장비부 소장이다. 그는 개국 공신인 허뱌오의 아들이자 덩샤핑 딸인 덩룽의 남편이다. 허는 2010년 이사장 자리에서 은퇴했다. 최고 명문집안의 기업을 상대로 ‘화해’를 이끌어낸 전략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전략은 ‘강호 전설’이 되어 궈원구이가 다시 한 번 비즈니스 적수를 물리치는 개선가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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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융캉이 공안부와 정법위 장악한 후 중국은 세계 최대 장기 이식 대국으로 성장 황제푸 전 위생부 부부장은 봉황 위성TV의 ‘공익중국’ 프로그램에서 사형수 장기 이식은 추악한 이익 사슬을 형성했으며, 저우융캉이 낙마한 후 이런 이익 사슬이 깨졌다고 밝혔다. 이 말이 전혀 근거 없는 건 아니지만, 정부가 저우융캉을 공개 재판하는 시점에 이렇게 ‘당을 반대하고 배신하는 집단’의 배후를 계속 언급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 이 사건의 저항이 매우 커서 이 정도로 계속 폭로하지 않으면 당내 고위층이 민중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저우-보와 사형수 장기와 시신 밀매의 관계 중공이 언급하기 꺼리는 추악한 실상 중 하나는 사형수의 장기를 이식하거나 사형수의 시신을 판매해 인체 표본으로 제작한 일이다. 사형수와 관련된 일은 모두 정법위를 거치지만 저우융캉이 직접 연관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이징이 저우융캉을 공개 재판한 것은 사형수에 대한 반(反)인류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내용은 ‘저우-보 반당 집단’의 주요 인물과 그들이 연관된 반인류 범죄를 분류한 것이다. 저우융캉, 2002~2003년 중앙 정치국 위원, 중앙 정법위원회 부서기, 공안부 부장 겸 서기. 2007~2013년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 정법위원회 서기(2012년 11월까지), 중앙 사회치안 종합처리위원회 주임. 확실한 사실은 저우가 공안부와 정법위를 장악한 전후, 중국이 세계 최대의 장기 이식 대국이 되었다는 점이다. ‘장기 기증의 미궁(남방주말 2010년 3월 26일)’이라는 기사에서 허샤오쉰 광둥성 중산병원 부원장은 2000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장기 기증이 매우 증가했다고 밝혔다. “2000년 전국의 간 이식은 1999년보다 10배 증가했고, 2005년에는 다시 3배 상승했다.” 중국이 강대국 되기 위해선 생명 존엄성 되찾아야 장기가 부족해지자 사형수의 장기는 끊임없이 솟아나는 노다지가 되었다. 2002년 이전의 상황은 다른 사람이 책임져야겠지만, 2002년 이후의 상황은 저우융캉이 결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보시라이, 1994~2000년 랴오닝성 부서기 및 성장 대리, 그는 행적이 랴오닝성과 다롄시를 벗어나지 않는다. 보가 다롄시 정계에서 결정권을 얻은 것은 대략 1989년 랴오닝성 다롄시 상무위원 겸 부성장에 취임한 이후부터이다. 1992년 보가 다롄시 시장 대리로 임명된 후 곧바로 시 서기 및 시장이 되자 다롄은 그의 영지가 되었다. ‘죽음의 의사’로 불리는 독일인 군터 폰 하겐스는 1999년 다롄에 하겐스 시신표본제작회사를 설립했다. 하겐스는 표본에 사용되는 시신을 누가 제공했는지 밝히기를 거부했지만, 중국 청년망은 ‘다롄 하겐스 공장, 사형수 시신으로 인체 표본 만든다는 논란 일어(2012년 8월 22일)’라는 보도에서 하겐스뿐 아니라 그의 경쟁 상대인 미국 최대 전시 기업도 인체 표본용 시신을 중국 파트너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보도했다. 이 기업은 공개적으로 “신체 및 인체 부위, 기관, 태아 및 배아가 중국 감옥에 수감되거나 처형된 사람에게서 나오는지는 독립적으로 조사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하겐스의 다롄공장은 2012년 2월 29일에 폐쇄됐으며, 폐쇄되기 20여 일 전인 2월 6일 심야,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으로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일어난 후 보사라이의 정치 운명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이 사건은 누가 책임져야 하나 최근 중공이 선포한 ‘당을 반대하고 배신하는 집단’의 배후로 지목된 쩡칭홍은 위의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1999년 하겐스는 다롄에 하겐스 시신표본제작회사를 설립했다. 저우융캉은 그가 공안부 및 정법위에 취임하기 전에 일어난 시신 제공 사건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 조사에 따르면, 중앙 정법위 서기는 1992~1998년 2월까지 런젠신이, 1998년 3월~2007년 10월까지 뤄간이 맡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중기위의 조사 명단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배후는 중앙 정법위의 상급 부서인 중앙서기처 책임자일 수밖에 없다. 당시 쩡칭홍은 1997~2007년 12월까지 중앙서기처의 실질적인 책임자를 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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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그 문제를 다룬 CCTV 전 여성 앵커 차이징(柴靜)의 '돔 지붕 아래서(穹頂之下, 충딩즈샤)'는 매우 잘 만든 과학 다큐멘터리다. 숫자로는 관중들에게 직관적인 인상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차이징은 베이징대 실험실에 가서 직접 실험할 인원을 찾았다. 하지만 연구원은 실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험을 하려면 윤리 안전치를 설정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실험실의 공기가 외부보다 더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인의 생존 환경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공기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안다. 사회적 합의가 심각하게 파괴된 오늘날 중국에서 이 문제는 매우 쉽게 사회적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하지만 차이징 다큐에 대한 논의를 보면, 중국 사회는 이미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쏟아지는 음모론 각종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림 형식으로 널리 퍼진 짧은 문장은 음모론의 대표격이 되었다. “차이징의 다큐멘터리는 정부가 인터넷 여론을 이용해 민관 소통을 잘한다고 하는데 이는 좋은 일이다. 영상이 전하는 가치관도 매우 좋다. 다큐멘터리도 잘 만들었다. 일부 사람들은 차이징이 미래를 걱정한다는데 이는 전체 줄거리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1. 신임 환경보호부장이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2. 프로그램이 방영되자 인민일보 등 관영 언론이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3. 많은 현직 관료들이 인터뷰에 응했다. 4. 반부패 칼날이 중석화, 중석유를 향하고 있다. 5. 인터넷에 두 기업이 합병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6. 곧바로 양회가 개최된다.” 음모론이 성행할 때 가장 강렬했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차이징의 배후에는 지지 세력이 있으며, 그녀는 당국이 저우융캉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하는 체스 말이다. 중석유, 중석화 제품이 오염을 일으킨다는 것은 예전부터 있었던 문제이다. 오랫동안 현지 민중이 반대했던 PX 프로젝트도 사실 중석화, 중석유가 건설에 참여했었다. 당시 판웨는 대형 국유기업의 석유화학 건설 프로젝트는 적지 않은 오염을 일으키며, 강 근처에 건설할 경우 수질 오염을 일으키는 원흉이 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스모그는 자동차 배기가스, 산업의 오염 배출, 겨울철 석탄 사용, 농촌의 연료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돔 지붕 아래>가 중석화, 중석유를 겨냥한 것은 사실상 막강한 힘이 발휘된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오염 사건을 보도하지 않던 관영 언론이 대거 참여한 것은 이 프로그램이 음모라는 것을 증명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명백한 오해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중국 관영 언론과 각종 민간 언론은 신분상의 제약이나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선호도 차이는 있었지만, 환경보호 문제에 관해서는 일정 수준의 보도 공간을 확보하고 열심히 소식을 전했다. 중앙급 언론은 지방 정부의 관할을 받지 않는 이점을 이용해, 지방의 환경보호 문제를 여러 차례 폭로했다. 당시 ‘타이후 수호자’ 우리훙이 일정 기간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전국의 수많은 언론이 지지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차이징이 토지 오염과 수질 오염은 놔두고 공기 오염만 다룬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토지 및 수질 오염은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예를 들어, 2006년 중국 정부는 10억 위안을 들여 토지 조사를 실시했지만,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줄곧 공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론의 압박에 밀려 2014년 4월 데이터를 공개했는데, 토지 중 5분의 1이 심각하게 오염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신망은 <대국의 오염된 토지> 제목하에 <상편: 늦어진 보고>, <하편: 심각한 카드뮴 오염>을 보도했다. 차이징 다큐로 본 사회적 합의의 부재 알 권리는 사실 민중의 기본권 중 하나이다. 몇 년 전, 판스이가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의 공기 데이터를 웨이보에 공개하자, 분개한 사람들은 환경보호국에 공기 데이터의 진실을 공개하라고 잇달아 요구했다. 그 결과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중국 내정을 간섭하고 있다며, 공기 데이터를 공개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당시 사람들은 토지 오염과 수질 오염은 지역적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이 같지 않은 반면, 공기는 모든 사람이 호흡하는 것이어서 집단행동에 나서기 매우 용이하다고 생각했다. 스모그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차이징은 지난 몇 년간 ‘정부에 협조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사회적 관점으로 보면, 이는 중국의 사회적 이익이 극단적으로 나뉘어, 이미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이를 수 없음을 뜻한다. 특히 심각하게 주변화된 사회 집단은 ‘나와 상관없는 국가는 일찍 썩을수록 좋다’는 강렬한 ‘반발 의식’을 가지고 있다. 통치 계층과 이 집단 사이에는 ‘네 기회는 내 불행이고, 네 재난은 내 기쁨’이라는 극단적인 대립 국면이 형성돼 있다. 그 결과 차이징이 다룬 스모그 문제는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났다. 오염 관리는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거대 공정이지만, 중국의 현대화 열차에서 떨어진 집단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다시 기다려 줄 인내심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라 말기, 군주 하걸은 폭정을 일삼으며 자신을 태양에 비견했다. 그러자 살기 고달팠던 백성들은 태양을 가리키며 “태양은 언제 질 것이냐. 나는 너와 함께 망하리라”라며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는 분노를 토한 것일 뿐, 사실 왕조가 망해도 백성들은 계속 살아가야 했다. 현 정권이 가진 특수한 문제는 신구가 교체된 후 중국은 이미 사회를 재건할 자본을 잃었으며, 생존 환경이 대규모로 파괴됐다는 것이다. 중국 오염의 정치적 책임에 관해서는 중국 생태계를 다룬 문장에서 모두 언급했다. 최근 발표한 문장은 <중국 오염의 공범 결탁-중국 2013 ‘경제개혁’의 초점(2)>이다. 환경 문제는 민주화로 자동 해결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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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정부가 제품 구매 루트를 해외에서 국내로 돌리면서, 정부 구매 명단에 일부 해외 첨단제품이 빠지는 대신 중국 본토 제품이 많이 추가됐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와 줄곧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시스코 등 외국 기업들은 초대형 고객을 놓치게 됐다. 이에 중국 여론은 국가 안전을 보장하는 중요한 조치라며 환호했지만, 사실 중국 정부의 진짜 목적은 안전 보장이 아니라 내수 진작에 있다. MS 등 외국자본이 잇달아 철수하고 수십 개 산업의 생산능력이 과잉되면서, 중국 내수는 줄곧 허약한 모습을 보였다. 만약 정부가 자국 기업에 주문을 내지 않는다면, 이는 스스로 동맥을 끊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 구매와 주문 외교 중국 정부의 소비는 크게 국내와 국외로 나뉜다. 국외 소비의 경우, 2012년 이전 국제 정치의 수요에 따라 ‘주문 외교’가 자주 사용됐다. 이 정책은 특히 EU에 효과적이었는데, EU는 중국의 대규모 주문으로 생산이 증가하고, 실업률이 감소했으며, 기업 세수가 보장됐다. 그래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베이징을 매우 선호했다. 정부의 구매 목록에 포함된 물품 중, 일부는 에어버스, 보잉기처럼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종류였고, 일부는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지만 외국 제품과 비교할 수 없는 조악한 품질이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당시 중국 경제의 3두마차 중 투자와 수출이 호황이어서 중국 정부가 내수의 약점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내 상황을 살펴보면 정부 소비도 매우 중요하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00~2011년 동안 소비 수요가 GDP에 기여한 비율은 65.1%에서 55.5%로 낮아진 반면, 투자 기여도는 22.4%에서 48.8%로 높아졌다. 소비 수요 중 민간 소비는 2000년 74.5%에서 2011년 72.2%로 낮아졌지만, 정부 소비는 25.5%에서 27.8%로 높아졌다. 산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정부 소비가 민간 소비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2012년, 중국 경제학계는 정부 소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신망의 <내수 원동력 왜곡, 정부 소비가 민간 소비를 잠식하다>라는 기사이다. 이 기사가 발표된 후 관련 자료는 더는 공개되지 않았고, 이후“최근 몇 년 동안, 정부 소비는 줄곧 13% 수준을 유지했다”는 내용만 광범위하게 인용됐다. 하지만 27.8%였던 정부 소비가 어떻게 13%로 감소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기관도 나서서 해명하지 않았다. 중국은 민간 소비를 끌어올려야 한다. 국가통계국이 2014년에 발표한 조사결과를 보면, 농촌 소비자 중 여유자금이 없는 소비자의 비율은 23.6%이고 도시의 경우에는 15.9%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구매 루트를 외국에서 국내로 바꾸는 것은 반드시 취해야 하는 조치이다. 또한 국내 기업이 제품 품질을 보증해 정부가 제공한 수요를 만족하게 할지 여부는 앞으로 기업의 생존과 직원의 취업이 걸린 큰 문제이다. 세계 제1의 관광 소비국 된 중국 중국은 내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중국인은 오히려 한·미·일 및 유럽 각국의 최대 소비자가 되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중국인의 해외여행 소비 금액이 2011년 730억 달러에서 2012년 1020억 달러로 증가해, 미국, 독일 등을 제치고 세계 최대 해외여행 소비국이 되었다. 2013년 중국 관광객의 해외 출국 회수는 9819만 번이었고, 관광에 소비한 총금액은 1,287억 달러에 달했다. 2014년 해외여행 출국 회수는 1억 번을 넘었고, 소비 총액도 1648억 달러로 증가했다. 그중 한국, 일본, 홍콩이 중국 쇼핑관광의 주요 3대 지점이 되었다. 2014년 삼사분기, 중국 관광객이 일본에서 소비한 금액은 15.7억 달러로 외국 관광객이 소비한 총금액 중 3분의 1을 차지했다. 그들이 한국에서 소비한 금액은 일본보다 더 많았다. 2011년 27.58억 달러, 2012년 33.93억 달러, 2013년 40.62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인이 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카드는 인롄카드이다. 데이터에 따르면, 2014년 인롄카드의 전 세계 사용금액은 41.1조 위안에 달한다. 같은 해 중국의 추정 GDP가 61.15조 위안인 걸 생각하면, GDP의 3분의 2에 달하는 금액이 사용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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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중국은 화폐가 대량으로 풀리면서 화폐 공급량이 122조 8400억 위안에 달했다. 2013년 말의 110조 7000억 위안과 비교하면 11% 증가한 것으로 경제 성장률보다 높은 셈이다. 2014년에 신규 증가한 12조 1400억 위안 중에서 80% 이상이 대출에 사용됐고, 전년 신규 증가 대출액은 9조 7800억 위안에 달한다. 2013년보다 8900억 위안 증가했고 2009년의 9조 5900억 위안의 최고기록보다도 1900억 위안이나 높은 수준이다. 이렇게 증발된 많은 지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모두가 인정하는 한 가지는 대부분 대출금액은 실물경제가 아닌 비생산 영역 금융시장으로 유입됐다는 사실이다. 2014년 중국 주식시장 지탱한 ‘통화’ 지난 1월 24일, 중국 주식상장 회사 시장가치 관리 연구센터가 ‘2014년 A주식 연도 보고’를 통해 중국 국민들에게 두 가지 호재를 전했다. 한 가지는 작년 A 주식 시장 시장가치 총 규모가 37조 1100억 위안을 기록하며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주식시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중국 증권화율이 58.3%(A주식 시장가치 37조 1100억 위안/GDP 총량 63조 6500억 위안)에 달하며 2013년 40.1% 증권화율보다 훨씬 높아 미국 증권화율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필자는 찬물을 끼얹어야겠다. 중국 증권업계 인사들은 증권화율을 이용해 중국 주식시장 발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목표는 미국의 증권화율을 뛰어넘는 것이다. 이러한 수단은 두 가지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 첫 번째, 미국 주식시장은 전 세계 주식시장으로 시장가치는 전 세계 자본으로 위탁된다. 중국의 A주식 시장 자본의 근원은 주로 국내이며 위조 외자까지 더하면 국내에서는 각종 루트를 통해 내보낸 자금이 되돌아온 것이다. 두 번째, 미국 주식시장은 건전한 신용제도에 의지한다. 중국의 신용제도 결함은 비교적 많으며 각종 기만 수단이 따른다. ‘2014년 A주식 시장가치 관리 행위 연도 보고서’는 2014년 주식시장 조작 행위에는 세 가지 새로운 변화, 새로운 특징이 있고, 또 하나가 ‘시장가치 관리’를 핑계로 내외를 결탁, 주식상장 회사를 통해 주가 조작을 펼친다고 밝혔다. 국내 주식시장 운영 봉쇄와 기만행위가 만연한 상황에서 증권화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주식시장의 거품이 크고 투기성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찬물을 끼얹어야겠다. 금융권 개인 고객들은 속기 쉬운 사람들이다. ‘시장가치 연도 보고’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상하이 선전 두 도시의 1284개 회사 핵심 주주와 고위관료가 소유한 주식은 모두 2218억 위안 감소했고, 그중 고위관료 보유분은 641억 위안 감소하면서 역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이러한 현금 바꾸기는 중앙기율검사위에서 머지않아 시작하려는 국유기업 반부패 정책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이다. 10여 년 전 국유기업 개혁 당시 적지 않은 국유기업 고위관료(그중 대부분이 리샤오린 등 혁명 후대)가 경영자 매수 방식을 통해 국유기업 주식을 획득했다. 또한, 자신의 자금이 반부패 정책 과정에서 수포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주식시장에서 현금 바꿔치기를 했다. 부채 악순환에 말려든 대량 화폐 2009년 4조 위안을 들인 경제부양책 실시 이후 수십 조 위안의 신규 증가 화폐가 인쇄됐다. 지방정부는 화통하게 자금을 소비했고 관료 집단은 대수롭지 않게 자금을 착복했다. 옥에 티는 지방정부 부채였다. 하지만 지방정부도 중앙정부가 절대 지방정부를 파산시키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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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기위)는 여러 지역 여러 직위에 대한 순시 목록을 공개했다. 그 중 특히 국영기업 내 이권 및 인사 문제가 비교적 많았다. 국제방송국(國際廣播電台), 중국선박, 차이나 유니콤, 화전그룹, 둥펑자동차, 신화그룹 등 6개 기업 중에서 국내외 언론의 관심은 특히 차이나 유니콤의 부패 스캔들에 집중되었다. 그 원인은 차이나 유니콤의 배후에 귀공자 장몐헝(江綿恒)이 있기 때문이다. 이권의 중심, 상하이 연합투자 주식회사 2014년 12월 두 명의 차이나 유니콤 고위직 장즈장과 쭝신화가 조사받았지만 정작 외신의 관심은 장몐헝에 집중되어 있다. 그 이유는 차이나 유니콤이 2008년 장몐헝이 운영하던 중국망통을 합병하면서 탄생되었으며, 장몐헝이 차이나 유니콤의 실세이기 때문이다. 차이나 유니콤 합병 과정은 복잡하다. 그 중 주력인 중국망통은 2001년 남북전신의 스핀 오프 과정에서 여러 사업체를 재편성해 탄생했다. 장몐헝과 관련된 것은 상하이 연합투자 주식회사가 투자 창설한 라오왕통(老網通)이었다. 2001년 남북전신 스핀 오프 이후, 퇴출된 것은 장몐헝과 합작했던 IT 거물 티앤수닝(田溯寧)이었다. 장몐헝은 계열사를 순순히 양보하지 않았다. 장몐헝이 기업가가 되고 싶었던 열망을 미루어보자면 남 좋은 일을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장즈장과 중신화 두 사람이 장몐헝에게 인정받는 심복이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재신망에 따르면 최근 차이나 유니콤 사건은 이제 막 무르익었고, 중앙 순시조 순찰은 이미 종결되었지만 각종 고발은 여전히 차이나 유니콤 고위층과 언론을 향하고 있다. 장몐헝에 대해 소극적인 언론으로 인해 바이두 백과사전에 등재된 장몐헝의 이력은 매우 간략하다. 경제계의 거물에 대한 설명이 50 글자에 불과하다. 차이나넷센터, 상하이자동차공업, 상하이공항그룹회사 이사라는 이력이 전부이며 언제부터 이사직을 맡았는지도 나와 있지 않다. 문제는 위풍당당한 전 중공 총 서기의 아들이 과연 한낱 평범한 이사회 성원에 그쳤을까 하는 것이다. 장몐헝과 상하이 연합의 관계 2015년 1월 19일 북청망(北青網)은 ‘장몐헝의 인생 역할’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해당 문장에는 1994년 9월 상하이 연합투자 주식회사가 창립되고 장몐헝은 법인대표(법인대표 겸 이사장, 초임 사장은 양송 현 상하이 시장)가 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상하이 연합투자는 상하이 시 정부가 비준 성립한 국유 독자 주식회사로서 상하이시 국자위 소속이다. 투자 영역은 과학기술, 전신, 항공 등 여러 방면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면 마이크로소프트 MSN, 상하이자동차, 상하이항공, 상하이공항, 상하이 은행, 봉황TV 및 중미 합자사인 동방몽 등이 있다. 이러한 산업의 배후에는 모두 상하이 연합투자의 그림자가 있다. 이 글에는 상하이 항공 주식 회사 2002년도 보고서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장몐헝의 신분은 해당 회사의 법인대표(통례적으로 법인대표는 이사장)였다. 新태자당, 자본시장으로 훙얼다이(紅二代)라는 말이 유행하기 이전에 중국 고위층의 자녀들은 외신에 의해 태자당이라 불렸다. 그 중 중공 정권 설립에 참여한 고위 간부의 자제들은 ‘노태자당’으로 분류되었다. 제 3, 4대 영도자의 자녀들은 신태자당이라 불렸다. 이 두 태자당의 재산 증식 방식은 달랐다. 후자의 경우 더욱 금융 영역에 집중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10년 3월 29일 ‘금수저 물고 태어난 중국 태자당’이라는 기사에서 “장몐헝이 20세기 90년대에 상하이로 돌아가 외국 투자자들의 지지를 받았고 그들은 장몐헝을 가장 가치 있는 합자 파트너로 여겼다. 현재 그가 장악하고 있는 상하이 연합투자 주식회사는 운영상에 있어서 사모펀드인 정부 투자회사와 매우 유사하다”라고 표현했다. 이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아들 원윈쑹(溫雲松)의 뉴호라이즌캐피털,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의 아들 류러페이(劉樂飛)의 시틱캐피탈 등 사모펀드와 비슷하다. 하지만 장몐헝의 상하이 연합은 이들보다 10여년 가량 빠르다. 즉, 자본시장에서 장몐헝은 신태자당의 개척자의 칭호를 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장몐헝의 개척자 역할도 잊지 않고 서술했다. 장몐헝과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도 아들 주윈라이(朱雲來)는 현재 태자당의 전성기를 위한 전초 작업을 했다. 이들은 공산당 고위층 일가의 국가 통치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들의 행동은 젊은 1세대 태자당을 제지하지 않았고 그들의 돈주머니를 채워주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들은 이런 현상이 공산당과 지도층에게 어떠한 부작용을 가져올지는 고려치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사모펀드는 어디에 투자할까? 일반적으로는 영업 비밀이다. 그러나 최근 한 정보는 투자가 비슷한 지위를 가진 친인척에게 쓰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재신망의 2월 2일 기사 ‘안방대모험’에서는 상하이자동차그룹과 시노펙 그룹은 우샤오휘의 안방회사 최초 주주로서 초기에는 지분 20%로 1위 대주주로 자리 잡았다. 그 후 시노펙은 천퉁하이 사건이 일어나자 점차 약세를 보였고, 안방의 계속되는 주식 증자에 못 이겨 상하이자동차, 시노펙 그룹 주식은 희석되었다. 2011년까지 증자한 이후 상하이자동차의 점유 비율은 6.317%까지 떨어졌고, 시노펙은 2.817%까지 떨어졌다. ‘진둔’공정 핵심, IT 장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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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합보험사인 안방(安邦)그룹 CEO 우샤오후이(吳小暉)가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주간지 남방주말에 이어 지난 1월 29일에는 여러 매체에 보도됐다. 베이징의 재경, 재신, 북청주말도 모두 우샤오후이와 중국 최초 민영은행인 민생은행 마오샤오펑(毛曉峰) 은행장 등 경제계 거물에 대해 보도했다. 그중에서도 재신망의 ‘안방 대모험’이 제일 볼 만 했다. 덩샤오핑의 외손자는 옛말 2월 1일 남방주말은 “해당 언론사는 1월 29일 안방보험 보도와 관련해 실제와 다른 부분이 있으며, 안방보험 그룹과 주요 책임자들에게 사과를 표한다”는 성명을 게재했다. 1월 29일 보도 내용은 장장 4면에 걸친 관련 소식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실제와 다른 소식이 어떤 부분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남방주말이 압력을 받아 비로소 사과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재신망 ‘안방 대모험’ 기사와 비교해보면 남방주말 사과 성명의 이른바 실제와 다른 정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아마도 우샤오후이와 덩샤오핑 외손녀 덩줘란(덩난의 딸)의 혼인 상태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재신망 기사는 생동감 있는 필치로 “우샤오후이는 3번의 결혼 경험이 있으며 두 번째 결혼은 저장성의 부성장 딸과 결혼했고, 세 번째 부인은 공산당 원로 천이(陳毅)의 아들 천샤오루(陳小魯)의 회사 투자 그룹에서 일할 때 우연히 만난 덩샤오핑의 외손녀이자 전 중국 과학기술협회 당조 서기 덩난의 딸 줘란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있었지만 최근 부부 관계는 틀어졌다. 2014년, 해외 언론은 안방과 덩 씨 일가의 관계에 대해 떠들자 덩 씨 일가는 안방 관련 사항에 대해 토론했고 덩 씨 일가와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서술했다. 해당 문장은 혼인 관계가 종결되었다는 또 다른 증거를 제공했는데 '안방그룹 31명 주주 중에 원래 2곳의 회사에 덩줘란의 간접적 주식이 있었지만, 2014년 12월, 덩줘란은 이미 이 두 곳의 주주 명단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어쩌면 덩줘란이 주주에서 퇴출당한 시기가 그녀와 우샤오후이 혼인 관계가 끝난 시기일지도 모른다. 기사를 총괄해보면 우샤오후이가 경영에 불성실했다는 내용과 우샤오후이가 파벌 관계에서 발휘한 힘에 대해 ‘안방 대모험’ 보도가 서술한 사실은 두 가지다. 첫째, 우샤오후이는 이미 덩샤오핑 가문의 손자사위가 아니다. 따라서 우샤오후이의 사업은 덩 씨 일가의 사업이 아니다. 둘째, 정부가 어떻게 덩 씨 일가의 전 손자사위를 처리했는지도 덩 씨 일가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 세계의 입에 오르내리는 우샤오후이는 덩샤오핑의 손자사위 자리에 몇 년 있었고, 사건 발생 이후에 파국 사실이 재신망 보도로 밝혀졌다. 10년 전 기세등등한 철모자였던 우샤오후이가 원래는 원저우 상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붉은색 망토가 벗겨지면서 안방보험의 실소유주로 지목된 천샤오루의 SNS 웨이보에 올라온 글보다 타격이 컸다. 라이창싱 사건은 자칭린 부인 린요우팡과 연루됐고, 소문에 의하면 장쩌민이 자칭린과 린요우팡 이혼을 유도했으며 이번에 덩줘란과 우샤오후이 혼인 종결 또한 전례와 같다. 덩줘란과 우샤오후이는 언제 헤어졌을까? 문장은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설령 혼인 체결에 이해가 깊은 천샤오루라도 1월 29일 남방주말 문장이 퍼진 이후 홍콩 빈과일보 인터뷰를 통해 우샤오후이는 덩샤오핑 외손녀의 사위라는 것을 증명했고 부자들의 대저택은 경비가 삼엄하여 일반인들은 출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중국식 출세 모델 오샤오후이 수완이 좋은 우샤오후이는 결혼을 이용할 줄 알았다. 우샤오후이의 두 번째 결혼은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관건적인 단계였다. 저장성 부성장 집안의 사위가 되면서 우샤오후이는 비로소 저장성에서 자동차 판매에 성공할 수 있었고, 천샤오루와 친분을 맺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그 후 비로소 덩샤오핑의 외손녀와 인연을 맺고 부부가 돼 당시 회사와 중요한 관계를 맺었다. 최근 들어 자본의 세대를 뛰어넘은 변화는 경제학 연구의 한 분야가 되었고 이러한 세대를 뛰어넘는 변화는 주로 부모와 자식 간에 발생하지만 장인, 장모와 사위 사이에 일어나기도 한다. 이 연구는 가족관계가 개인의 성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특히 아시아 문화에 적용된다. 아시아 국가에서 이는 특히 두드러지고 연고 관계는 매우 중요한 사회 자본이기 때문이다. 우샤오후이와 관련된 모든 보도 내용은 우샤오후이가 기세등등한 것은 그의 연고 관계 때문이고 그와 안방의 성장이 중국이 신분형 사회임을 증명해주는 것이며 권세가에게 아첨하고 장인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중국, 대만, 홍콩, 일본 사람은 모두 부자에게 장가가면 적어도 2~3년은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샤오후이의 특출한 점은 결혼을 밑천으로 잘 사용했다는 것이다. ‘안방 대모험’은 “배경 지렛대의 극치”라는 표현을 썼고, 그중에는 몇 가지 사실이 거론되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우샤오후이가 제어한 인프라 회사나 저장성에서의 명성은 그다지 좋지 않고, 저장성에 있는 몇 가지 고속도로 프로젝트 상황 또한 투자자가 없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경은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 일을 통해 우샤오후이의 야망을 엿볼 수 있다. 철모자왕의 신분으로 지방정부를 눈에 들지 않았다. 또한 “안방은 수정 법규를 포함해 감독 관리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필자가 말한 ‘이익집단이 국가를 장악하는’ 현상에 속한다. 금융업계 먹이 사슬을 예로 들자면 한 곳의 금융기관이 부분 임대료를 상급자에게 상납하는 것은 일부 금융 감독관리 기관과 정부 부처에서 얻은 비즈니스 기회와 위법 행위에 구애받지 않기 위한 것으로 결국 감독자와 비감독자의 부패 공모를 형성했다. 우샤오후이는 자금 세탁으로 이익을 얻었을 뿐 아니라 덩샤오핑의 손녀사위라는 신분을 얻었다. 중국 금융업계는 지금까지 여전히 반시장 반행정 개입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치 신분은 광활한 부를 창조할 공간을 가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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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및 신흥 경제국은 경제 침체 국면에서 발버둥치고 있지만, 미국 경제는 승승장구하면서 세계의 관심 속에 ‘이즈두슈(一枝獨秀, 홀로 출중하다)’라 불리고 있다. 최근 사람들은 미국 경제를 부흥시킨 각종 요소 외에도 미국 경제의 호황이 계속해서 지속될지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본 문장은 미국 경제의 부흥을 촉진시킨 원인에 대해 전 세계가 익히 알고 있는 셰일가스 개발 성공 외에 더 많은 여러 요소에 대해서도 서술하고자 한다. 부활 부른 몇 가지 요소 작년 미국 경제 성장률은 3.5%를 기록하며 2003년 이후 11년 만에 성장률이 가장 높은 한해였을 뿐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 발전이 가장 양호한 해였다. 2003~2007년 미국 경제 발전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 중국이 모두 경제 구조 조정을 위해 몇 해 동안 고뇌중일 때 미국은 5년 만에 경제 구조 조정을 완료했으며 현재 빅 데이터, 지능형 제조, 무선 인터넷 혁명을 필두로 한 세 번째 기술 변혁이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미국 경제 부흥의 원인은 주로 미국 경제 기반이 두터운 데 있다. 또한, 환경 자원과 기술 자원이 뛰어날 뿐 아니라 유럽과 비교했을 때 자본주의 경제의 자유 경쟁 특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위기시에도 일련의 적합한 경제 산업 정책을 도입했다. 1. 2008년 금융위기는 단지 금융계통과 같은 미국의 가상 경제에만 타격을 가했을 뿐이다. 실물 경제도 비록 비교적 큰 충격을 받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큰 손실을 입지 않았다. 미국 경제의 기둥인 첨단 과학기술, 교육 및 기타 산업은 대부분 완전무결했다. 이 점에 대해 중국 총리 원자바오는 당시 정확한 판단을 했었다. 2008년 9월 24일, 원자바오는 뉴욕에서 열린 미국 경제 금융계 좌담회에서 “현재 상황과 20세기 30년대 상황이 다 같지는 않다. 미국 실물 경제는 첨단 과학기술을 포함해 기본적으로 양호한 편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미국 재계에서 널리 퍼진 “믿음은 황금과 돈보다 더 중요하다”라는 명언을 덧붙이기도 했다. 2. 2008년 이후 많은 미국 자본이 돌아왔다. 중국의 토지, 인력 원가는 나날이 높아지고 제도 자본금도 낮아질 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미국은 실물 경제와 수출 발전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일련의 경제정책을 출범시켰다. 이를테면 2010년 8월 ‘제조업 촉진 법안’을 통과시키고, 제조업이 사용하는 수입 원료에 대한 관세를 중단하거나 낮췄다.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미국 전국 제조업 협회는 보고서를 통해 해당 법안은 미국 제조업 생산액을 46억 달러 증가시킬 것이며 9만개에 가까운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라 예측했다. 사실이 증명하듯 ‘상대적으로 낮은 원가’ 정책 속에 운송, 전자설비와 기계, 가구, 플라스틱, 고무, 금속, 컴퓨터 업계 등 미국 제조업 자본은 대량으로 복귀했다. 이러한 종류별 상품은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상품의 70% 가까이를 차지했고, 위 상품들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연간 소비액은 2조 달러에 달했다. 외자 끌어들이는 ‘황금의 땅’이 되다 일찍이 외자 투자 황금의 땅이었던 중국과 비교해보면 미국의 원가 우세(토지가격 염가, 양호한 제도환경)는 계속해서 부각되었다. 게다가 미국 세일 오일이 개발된 후 에너지원 가격 우세까지 더해져 많은 외자가 미국으로 유입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연속 다년간 끌어들인 외자 투자금액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미국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유럽, 일본, 호주, 캐나다 등의 자본이 계속해서 미국으로 유입되었고 주로 금융보험(저축기관 제외), 제조업, 도매무역, 소매무역, 전문업, 과학 및 기술 서비스, 부동산 분야에 대한 투자가 진행되었다. 유럽 경제 상황이 나빠 유로가 남아돌자 유럽연합 경제의 기둥이었던 독일은 미국에 대량 투자를 진행했다. 시장 조사기관인 딜로직(Dealogic)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8개월 동안 독일 지멘스 등 대기업들이 매입한 미국 기업 거래 총액은 700억 달러에 달한다. 캐나다 회사가 미국 회사에 투자한 규모는 무려 770억 달러에 달한다. 연이어 일본의 도요타, 혼다 등 일본산 3대 자동차 회사들이 미국에서 업무를 확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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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일보는 15일부터 16일까지 연속으로 평론 문장을 발표해 부정부패에는 ‘철모자왕’이 없다면서 “부패 문제와 정치 문제는 서로 삼투 작용을 일으켜 당의 영도와 단결 통일을 해친다”라고 밝혔다. 봉황망은 “올해 잡아들이려는 큰 호랑이는 작년과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이로써 인민일보가 가리키는 이른바 철모자왕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철모자왕과 전설속의 면죄부 필자는 최근 2년 동안 이루어진 반부패 정책을 ‘소문이 주도하는 패턴’이라고 개괄하려 한다. 인민일보의 특수한 정치적 지위를 고려하면 해당 언론사가 내보낸 소식은 절대적으로 소홀하게 봐서는 안 된다. 이른바 면죄부란 세간에 떠도는 ‘입국불사 입상불죄(入局不死 入常不罪)’를 가리킨다. 저우융캉 사건이 터지면서 면죄부 관련 법규가 깨졌고, 인민일보는 철모자왕 이라는 네 글자를 대신 사용했다. 철모자왕이라는 명칭은 청나라 봉작 제도에서 쓰던 말이다. 청나라 황족이 작위를 물려받던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혈연관계로 작위를 봉한 것이 가장 흔한 관례이며, 자손이 지위를 계승받아 각 세대마다 한 등급씩 내려간다. 또 다른 방식은 유공자가 물려받는 방식으로 청조에는 총 12명의 왕의 후손이 작위를 세습해 강등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는 황제가 공로를 치하하는 것이며, 철모자왕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 중 8명은 청나라 개국 초에 공을 세운 황제의 종실이었으며, 또 다른 네거티브명은 중말기 황실 권력투쟁에서 공을 세워 책봉을 받은 이들이다. 인민일보가 말하는 철모자왕은 장쩌민, 후진타오 총 서기 및 그 외 리펑, 주룽지, 원자바오 세 명의 전 총리들과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태자당 원로 쩡칭홍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부패 문제와 정치 문제는 서로 삼투 작용을 일으켜 당의 영도와 단결 통일을 해친다”에서 지적한 죄와 관련이 있는 인물은 장쩌민, 쩡칭홍이다. 소문이 주도하는 정책 패턴 최근 2년간 이루어진 반부패 정책은 소문이 주도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 마오쩌둥이 애용하던 바람몰이와 유사하다. 마오쩌둥은 누군가를 정리하고 싶을 때 반드시 작은 범위에서 여론몰이 회의를 열어 문건을 하달했다. 그 후 정리하고자 하는 대상의 태도에 근거해 다음 목표가 되는 인물의 전략과 방향을 잡았다. 인민일보 평론가 문장(사설에 버금가는 평론)은 여론몰이 이후 나팔 불기 단계에 해당한다. 왕치산이 만들어낸 소문이 주도하는 반부패 정책 패턴에서 주로 사용한 조작 과정은 네티즌들에 의해 여섯 단계로 총괄되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소문 확산→측근 및 일가 사건 발생→공개적 노출 혹은 공문을 통해 소문 반박→중국매체 여론몰이, 홍콩 및 해외매체 공개 토론→정부측 공표→언론에 의한 명예 실추로 나뉜다. 뒤에 다섯 단계와 비교하면 첫 번째 단계의 소문 확산은 이른바 ‘전쟁에는 고정된 방식이 없고, 물은 고정된 모양이 없다’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앞서 말한 소문은 두 분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중국 및 해외 매체를 이용해 소문을 퍼뜨리고, 소문을 퍼뜨린 책임은 매체가 감당한다. 두 번째는 각기 다른 계급의 고위직 관료들의 언급을 통해 각종 신호를 내보내고, 외부의 추측을 유도한다. 결과로만 보면 일부 소문들은 바람처럼 불었다가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 양샤오두가 2014년 5.26 연설을 통해 “제18차 당 대회 이후에 수렴되지 않은 사항들만 중점 조사한다. 현재 중요한 요직은 당원 간부”라고 언급한 사례가 그 예다. 그는 제18차 당대회를 기준으로 선을 긋고 이미 퇴직한 정치국 상무위원과 부패(가족 부패 포함)에 대해 더 이상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지금 보면 헛수고에 불과하다. 만약 시진핑, 왕치산이 발표한 각종 연설이었더라면 반부패 정책 표적으로 정해진 이들은 모두 화제 인물이 되어 매체에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됐을 것이다. 간접적 정치 문제로 위협 보시라이 사건 초기, 원자바오는 해당 사건을 노선투쟁으로 키우려 했지만 당내에서 반대에 부딪혔다. 따라서 보시라이의 죄는 부패와 친인척 문제로 포괄되었고 정치 문제와 연관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우융캉 사건은 달랐다. 국가 기밀 누설죄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을 뿐 아니라 최근 저우융캉에 내려진 형에 대해 살펴보면 저우융캉, 보시라이, 쩡칭홍과 함께 큰 판을 벌이려고 공모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월 12일, 인민일보는 중국경제주간 문장에 관해 저우융캉이 사형이나 사형집행유예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 바 있다. 1월 13일, 봉황망은 저우융캉이 보시라이와 밀담을 통해 ‘큰 판 벌이기(봉황주간 2015년 제2기(총 제531기)표지 보도’, ‘도당에 대한 중공의 선전포고-저우융캉 6대 죄행 분석’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해당 문장은 처음으로 저우융캉이 충칭에서 보시라이와 밀담을 가졌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기사에 따르면 두 사람이 나눈 주요 대화 내용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론과 실천을 철저히 부정하고, 마오쩌둥이 말년에 제시한 중국 사회과 관련된 무산계급과 자산계급,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주요 모순의 논술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저우융캉, 보시라이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과 가치관은 일맥상통했고, ‘큰 판 벌이기’ 공모에 어려운 점이 없었다. 69세인 저우융캉은 정치국 상무위원은 연속으로 두 임기를 재직할 수 없다는 법규와 ‘칠상팔하(68세가 되면 퇴직해야하며 67세 이하의 정치국 위원은 상무위원으로 진급 가능)’의 퇴직 제도를 위반했다. 또 조직을 구성해 전국 인민대표대회 위원장으로서의 진급을 노려 일부 세력의 막후 인물이 되고자 했다. 이와 동시에 저우융캉은 곳곳에 심복을 심어 당내 반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노선투쟁이라는 네 글자는 평범한 말이 아니다. 이 죄명은 사건을 처리하는 규모와 연루된 인원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저우융캉이 지속적 연임을 시도했다는 죄명이 성립되면 반역을 꾀한 대죄에 해당한다. 2015년 반부패 정책의 3가지 핵심 인민일보와 봉황망이 앞 다퉈 내보낸 소문과 최근 중국 및 외신이 보도한 각종 소식을 종합해보면 시진핑이 최근 세 가지 큰 일을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반부패 정책을 통해 군대와 국가안보 계통에 대한 막중한 임무를 처리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실세가의 자녀들에게 간접적 경고를 주는 방법으로 솔선수범하여 훙얼다이(紅二代, 공산당 고위직 2세)가 경제계에서 물러나는 모범을 보이도록 했다. 세 번째로 국가급 큰 호랑이 저우융캉 사건에 반역을 꾀했다는 낙인을 찍은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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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이체방크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1981년 이후 가장 심각한 재정 위기를 맞게 될 것이며 중국 경제와 시장의 안정을 위협할 것으로 전망했다. 줄곧 중국 경제를 낙관적으로 내다봤던 투자계에서 사고를 전환하는 계기가 되는 분석일지 모르지만, 중국 정부나 중국 경제인들에게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전 세계가 모두 중국 고위층의 권력투쟁에 주목할 때 중국인의 돈주머니와 관련된 각종 세제개혁 방안과 지방정부 부채 청산을 위한 ‘43호문’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예측 가능한 재정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지방정부 부채 폭탄을 제거하라 2014년, 중국 부동산 시장 불황의 여파는 지방 정부와 은행으로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토지 양도금 규모가 축소되어 지방 정부 부채 상환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 지방 정부 재정이 부동산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2014년 토지 양도금 수입 축소는 직접 재정 수입 증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통계에 따르면 10개 도시 토지 양도금 수입은 8841억 위안으로 2013년과 비교해 15.4%나 떨어졌다. 부동산 시장 불황이 은행에 끼친 영향은 은행 악성 부채를 증가시켰다는 점이다. 4대 국유 악성 부채 은행 중의 하나인 동방자산관리회사는 최근 ‘2014 : 중국 금융 불량자산 시장 조사보고’를 통해 2014년 4분기 불량 대출 금액이 8277억 위안일 것으로 예측했으며, 불량 자산율이 9월 말의 1.16%에서 1.23%까지 올랐고 올해 은행 악성부채는 최고점에 달해 부동산 업계는 은행 악성 부채의 화근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상 내용은 단지 위기의 부분적인 상황이다. 최근 발개위 소속 리티에가 지방 부채(18조 위안) 상환율은 실제 부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공개했다. 지방에 10개가 넘는 도시에 조사연구를 진행한 결과 상환율은 10%에 불과했고, 일부 지역은 20~30%인 곳도 있었다. 상환율이 실제 부채의 50%를 초과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2014년 9월 21일, 지방 부채의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지방정부성 부채 관리 강화에 대한 국무원 의견’ 문건이 하달되었다(이하 43호문). 해당 문건의 내용은 2014년 말까지의 부채 금액은 2015년 1월 5일 전에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또 각 부채는 분류에 따라 예산 관리에 적용된다. 2016년부터는 재정자금 상환 기간이 만료된 부채를 포함한 모든 부채는 성급 정부를 통해 지방정부 채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이 문건은 시장의 권력을 박탈하고 지방정부의 권력 구조에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해당 문장은 단지 이 문건이 부채 폭탄을 제거했다는 내용만 담고 있다. 지방정부가 상부에 보고한 18조 위안 부채에서 공익성 부채는 중앙 정부가 지급하고 시장성 부채는 시장이 부담하며 나머지 부분은 지방정부와 성 정부가 부담한다. 중앙은행이 지폐 발행을 통해 부채를 부담하게 되면 인플레이션 희석을 통해 결국은 전 사회가 부채를 부담하게 되는 셈이다. 시장성 부채 일부는 각종 그림자은행 상품을 구매한 투자자들을 가리키는데 이 부분의 위험성은 스스로 감수하도록 하고 정부는 관여하지 않는다. 나머지 부분은 지방정부가 부담하게 된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시치미를 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집단행동이 일어나면 부채 일부를 무마하려 할 수도 있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부채 충당을 담당한 ‘폭탄제거 부대’는 아래의 두 가지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앞으로 지방정부는 43호 문건의 내용에 따라 직능 역할에 충실하고 ‘小정부’가 되어 지출을 줄인다. ▲지방정부를 위해 세수의 근원을 구분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부동산세, 지방정부 세금 버팀목 12월 22일, 중국정부망은 국무원이 정식 서명한 ‘부동산 등기 임시 조례’를 공개함과 동시에 2015년 3월 1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등기는 부동산세, 유산세 등 각종 세금 출시를 가속화 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규정에 따르면 2014년 12월 31일 이전에 전국 모든 도시는 반드시 부동산 서류 문건을 컴퓨터 시스템에 입력해야 하며 현지 부동산 정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 정부는 전국에 분포된 부동산의 대략적인 숫자를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남은 문제는 어떻게 세금을 징수하느냐다. 최근 가장 실행 가능성이 높았던 방법은 상하이와 유사한 항저우판 부동산세 시행 방안이었다. 부동산세 징수를 늘리기 위해 1인 평균 60m²의 징수 면제 면적을 구획하고, 가정 단위에 근거해 세금을 징수하는 방식이다. 이때 세율은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일반주택은 거래가격의 4% 세율을 징수하고, 그 외 주택은 거래가격의 8% 세율을 징수한다. 부동산세 세율에 관한 여론도 들끓고 있다. 예를 들어 주택 3개 이상 보유 시 누진부동산세를 실시하면 전체 부동산업계는 매년 임대금 수입의 12%를 부동산세(재정부, 국가세무총국의 또 다른 규정 제외)로 내야 한다. 부동산 세율이 2.8%인 미국도 높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중국에서 이 세율 수준은 매년 6000억 위안의 토지 양도금 구멍을 메울 수 있는 수준과 상응한다. 다시 말해 중국 지방재정이 과거 20년 동안 토지 양도금에 의존했던 추세가 점점 부동산세에 의지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징수되는 부동산세는 해당 세율로 계산되며, 이는 중국의 많은 중산층 가정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며 그들의 가정 지출 패턴을 바꿀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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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 인민일보에 실린 ‘시진핑은 왜 파벌을 비판했나’는 2014년 시진핑의 반부패 정책의 핵심이라 불릴만하다. 파벌에 타격을 가한 결과 저우융캉(周永康), 쉬차이허우(徐才厚), 링지화(令計劃) 등 당내 파벌을 대표하는 거물들을 숙청했다. 군부 소식통을 종합해 보면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가 시작한 창훙다헤이(唱紅打黑·공산당 찬양 및 범죄와의 전쟁을 의미) 이후 시작된 당내 권력투쟁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파벌정치는 전제정치의 토양 수년째 공공연하게 벌어진 권력 투쟁은 공산당에게 손실을 입혔다. 인민일보는 “병소를 제거하지 못해 고질병이 되었다. 저우융캉 쉬차이허우, 링지화, 쑤룽(蘇榮)과 같은 큰 호랑이의 배후에 존재하는 파벌에는 모두 부정부패의 풍조가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에서는 링지화를 향한 타격이 진작부터 최고 지도자의 계획안에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시진핑은 지난해 5월 8일 내부 연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사무처 간부는 반드시 충성해야 할 것’을 통해 중앙위원회 주임의 해당 지위 특수성을 겨냥해 “중앙위원회 간판을 이용해 연줄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지도자 명목으로 사적인 일을 처리하지 않아야 하며, 공권을 남용하지 말며, 업무적 유리함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지 말 것, 한순간 생각 하나의 잘못으로 제방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시진핑의 링지화에 대한 평가는 “평소에 표면적으로는 충성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결국 신뢰할 수 없다”는 말 속에 담겨 있다. 시진핑이 링지화를 불신하게 된 것은 전임 지도자 후진타오와 링지화 사이의 관계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후계자 지위에 대한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링지화는 사실 후진타오가 퇴진한 이후에도 2년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링지화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멸문지화를 당할지도 모를 ‘황위’ 계승 전쟁에 뛰어들었느냐는 앞으로 정부 쪽 소식을 기다려봐야 알 수 있겠다. 최근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은 저우융캉이 석유방(石油幫)과 쓰촨방(四川幫) 및 정법계 우두머리라는 점, 쉬차이허우는 매관매직을 통해 복잡하게 꼬인 군부 파벌을 형성했다는 점, 링지화는 서산회(西山會·산시성 출신 기업인들이 만든 조직)와 함께 무형의 비서방(秘書幫) 세력을 장악했다는 점이다. 시진핑이 파벌 정치를 근절하고자 하는 염원은 상당히 컸지만, 중국의 전제 체제 속에서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파벌정치는 전체정치의 부속품이자 토양이기 때문이다. 파벌정치는 중공의 관리 시스템 중공은 권력 구조를 종적, 횡적 관리 체제로 총괄했다. 중국의 현대 정치 제도에는 기관 사이의 수직적 관리 시스템과 지역 사이의 수평적 관리 시스템이 동시에 존재한다. 종적 지도 체제란 정부 기구 상하로 연결되는 직능 부문으로 모두 권력 체계에 속한다. 공안 계통을 예로 들자면 중앙정부에는 공안부가 있고, 성급 정부에는 성 공안청이 있고, 지급시 및 현급 정부에도 시현 공안국이 존재한다. 저우융캉이 정법계통을 장악한 여러 해 동안 성 공안청장 등용 권한을 장악해 모든 시스템을 통제했다. 지역적 횡적 관리 체제란 각 지방정부가 직권에 따라 나뉘는 부문이다. 20년 동안 종적 횡적 관리 체제는 새로운 의미가 생겨났는데, 종적 지도 체제는 때때로 중앙의 거시적 제어 정책을 의미하며 횡적 관리 체제는 지방 발전계획을 뜻한다. 종적 횡적 관리 체제에는 권력계가 장악한 직무와 영전 시스템이 공존하면서 이렇게 얽히고설킨 이익집단이 형성된 것이다. 저우융캉 수중의 석유계는 종적 관리 체제이면서 횡적 관리 체제(각 유전 관리국)이기도 한데, 정법계 주요 권력은 종적 관리 체제에 있지만 쓰촨 지방관료의 이익(횡적 체제)의 결합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 또 다른 단체는 공산주의 청년단 출신 관원들로 이루어졌지만, 어수선한 구조로 진정한 이익 집단을 구성하지 못했다. 지방 파벌 근절 못 하는 중앙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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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유명인사에 관련된 기사가 많았는데 그중 하나는 저명한 중국 민간 기업가 쑨다우(孫大午)가 미국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두 차례의 미국 입국허가 거절 경험 –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국 주중대사관에 보내는 공개서한(이하 공개서한)’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필자가 해당 공개서한을 자세히 들여다 본 바로는 전반부에서 주로 사실을 서술했고, 마지막 몇 단락은 보상, 약소국의 천민, 비자발급 조건 등 모욕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진위를 밝히기 어렵지 않았다. 비자 신청을 거절당한 원인은 사실 매우 명백하다. 순다우의 중국식 사유가 미국 규칙의 벽에 부딪힌 것인데 쑨 선생이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만약 비자발급 거절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해당 국가의 비자 규칙부터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쑨 선생이 2008년 당시 처음으로 비자발급을 거절당한 자세한 상황은 이러하다. 그는 “발급 직원이 ‘당좌 예금이 있나요’라고 물어서 있다고 대답하자 예금이 있는 것을 증명할 수 있냐고 물어서 예금 증명서는 없지만 기업 자산 증명서가 있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더는 묻지도 않고 비자발급을 거절당했다”고 서술했다. 사실 책임은 쑨 선생에게 있다. 비자를 신청할 때 필요한 것은 개인 예금 증명서와 중국 4대 은행 개인 예금 통장(20만 전후)만 있으면 문제 될 리가 없다. 그러나 쑨 선생이 내민 것은 기업 자산 증명서였다. 개인 예금 증명서는 기업자산 증명서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서류인데 쑨 선생은 왜 굳이 어려운 길을 찾았을까? 이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떠도는 미국 비자발급에 관련한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중국인이 미국 비자발급을 받을 때 이민 경향 유무가 관건 요소로 작용한다. 만약 자신이 부유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가난해서 미국 복지를 누릴 생각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어쩌면 쑨 선생이 기업 자산 증명서를 꺼내 든 것은 개인 예금 증명서보다 이민 경향이 없다는 것을 더욱 증명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나 문제가 조금 귀찮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 기업에는 일반적으로 책임제 제한이 있어 기업가의 기업자산과 개인자산에 차이가 있고, 기업자산과 상환 기업부채는 연관성이 있다. 따라서 기업가가 마음대로 자산을 지배할 수 없다. 미국 주중 대사관 비자발급처 관계자에 따르면 발급 직원은 비자 신청자의 자세한 중국 특색의 사유기업 재산 소유권에 대해 들을 수 없게 되어 있고, 신청인이 규정에 따라 구비서류를 제출하지 않았을 시에 비자발급은 당연히 거부된다. 중국인들 사이에 떠도는 또 다른 미국 비자발급 경험 사례 중의 하나는 비자발급 거절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또다시 비자 발급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다. 필자도 이와 관련한 극단적인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 한 여성과 그녀의 남편이 미국을 방문해 몇 년 동안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혼 위기에 처했지만, 그녀는 다시 친지를 방문해 결혼생활을 만회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매년 비자 발급을 거절당했고, 거절당할 때마다 그녀의 심리적 부담은 가중되었다. 비자를 10번 거절당한 후 비자발급 직원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하다 결국 이혼수속을 밟게 되었다. 쑨 선생은 한 차례 비자발급을 거절당하고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는 굴욕을 안고 베이징에서 손꼽히는 여행사를 찾았고 여행사의 요구에 따라 충분한 서류를 준비했다. 하지만 2008년 비자발급 거절을 당한 이력을 밝히지 않아 또 비자발급을 거절당했다. 과거 비자발급을 거절당한 이력을 왜 언급하지 않았냐는 것에 대해 쑨 선생은 “미국 주중대사관에 들어가기 전에 여행사 직원이 이미 미국대사관과 이야기가 된 부분이며 2013년 이전의 비자발급 거절 기록은 모두 깨끗해졌으니 과거 이력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서술했다. 필자는 그 여행사 직원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을 경우 쑨 선생에게 이런 현명하지 않은 방법을 알려줄 리가 없다. 비자발급 신청자는 미국은 각 급 정부 당국과 개인 문건 보관이 중시되는 국가이며 신청인의 신청기록은 모두 대사관의 컴퓨터 시스템에 저장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증발급 직원은 비자발급 수속 시에 문건을 매우 쉽게 조회해볼 수 있고 신청인은 이전의 비자발급 거절 기록을 절대 은폐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은폐 행위는 거짓말로 여겨져 또다시 비자발급을 거절당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쑨 선생이 공개서한에서 “비자발급 거절을 당할 이유가 없는데 이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비자신청 규정에 따르면 처음에 적합한 문건을 제출하지 않거나 두 번째 비자신청 과정에서 과거 비자발급 거절 기록을 은폐할 경우, 또다시 비자발급을 거부당할 수 있는 충분한 사유가 된다. 게다가 미국 국무원의 비자 신청 관리제도는 비자발급 직원의 심증에 의존하기 때문에 직원의 판단하에 비자발급을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상급의 비준 없이도 비자발급을 거절할 수 있다. 쑨 선생은 오바마에게 서한을 통해 비자발급 직원의 결정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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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리커창이 건강 문제와 국가 경영 능력 부족으로 퇴진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리 총리 퇴진에 시진핑 주석이 관련돼 있는지 여부와 후임자가 누구인가도 관심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 소문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간과한 것 같다. 자원 고갈, 내수 부진, 기형적인 산업구조, 부동산 버블, 금융문제가 속출하는 중국 경제를 그 누가 구제할 수 있단 말인가? 리커창이 이어받은 경제 자산 상술한 문제의 화근은 제18차 전국대표대회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제화 시대에 한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려면 자원, 생산요소(기술개발능력, 노동력 등), 산업, 제도환경 요소 중에서 반드시 2~3가지 우세를 확보해야 한다. 오늘날 중국은 이러한 우세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열세를 보이고 있다. 12월 중순에 열린 중앙경제업무회의에서 다시 제기된 다섯 가지 임무는 사실상 상술의 열세를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자원 부문에서 중국의 생태환경은 육해공을 막론하고 종합적인 오염 위험에 빠져 있다. 특히 광산자원은 대외 의존도가 높아 회의에서는 이를 놓고 회의에서 “과거 에너지 자원과 생태환경과는 달리 현재 환경의 지탱능력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생산 요소면에서 과거 중국은 저렴한 노동력에 의존한 반면 기술 및 관리 수준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모조품 대국이 되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자주’ 개발한 고속철도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사실 이는 훔쳐온 기술을 규합한 것으로 지금까지도 해외 판로를 찾지 못했다. 또 부동산 버블이 심각한 것은 정부와 기업이 지탱하지 않으면 파멸되는 시장이기도 하다. 산업구조의 심각한 기형으로 전국 각 업계에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났으며 생산설비 이용률은 70% 전후다. 현재 추진중인 실크로드 경제 계획의 취지는 해외 수출을 통한 공급 과잉 해소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원자바오 전 총리가 주롱지로부터 인수받은 경제력에 비하면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원자바오는 국무원을 10년 동안 주관했는데 7년 전에 이미 중국에 세계 공장이 형성된 전성기로 자원과 생태환경 공간이 커 수출, 투자, 내수 세 박자를 두루 갖추고 경제 마차를 한창 빨리 끌던 시기였다. 4대 국유 상업은행은 21세기 초부터 9110억 달러의 거대 악성 부채를 누적하자 미국 유럽 등 외자 은행 전략투자자를 끌어들여 홍콩과 국내 상장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원자바오 임기 동안 이러한 좋은 기운도 다 떨어졌다. 권력을 넘기기 전에 중국의 세계공장은 늘그막에 빠지게 된다. 과도한 부동산 개발의 결과로 전국 열 곳 이상 도시에서 유령도시가 형성되고 일부 업계들은 심각한 공급과잉 현상을 면치 못했으며 스모그가 도시를 뒤덮기도 했다. 2009년 이후 4조 위안의 정부 투자금에 지방 융자까지 더해져 권력 이양 시기에 ‘경제 번영’을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거대한 지방정부 부채와 은행 악성부채를 남겼다. 이것이 리커창이 원자바오 전 총리로부터 물려받은 경제 기반이다. 실현불가능한 ‘리커창 경제학’ 리커창은 총리가 되기 이전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세계은행과 국무원 발전 연구센터를 초청해 공통으로 ‘장기 개혁 노선도’를 구상했고 금융개혁 직무를 이어받은 후 제일 첫 번째 임무로 책정해 두었다. 직무를 인계받은 후 리커창이 주장한 경제부양책 미실행, 경제 레버리지화, 구조적 개혁 등 세 가지 요점은 서양 투자은행으로부터 ‘리커창 경제학’으로 명명되었다. 필자는 2013년 6월 ‘리커창 경제학의 제도 기초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문장을 통해 그의 경제정책은 부족한 중국의 제도 기초 위에 존재하며 실행 불가능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2개월 후 러우지웨이(樓繼偉) 중국 재정부장이 중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중국 정부는 더는 경제부양책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고, 직후 중국 장수, 안후이, 충칭, 쓰촨, 구이저우, 샨시 등에서 잇달아 서류가 하달되었고 관련 회의를 열어 하급정부에 철도, 고속도로, 공항 등의 ‘십이오(十二五)’ 계획을 가속화할 것을 요구했다. 약 36개 도시의 개발부문이 현지 건설 도시 교통 프로젝트의 착공 계획을 회답해 왔다. 이로써 도시 판자촌 재개발은 새로운 지방정부 투자의 중심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낡은 유령도시는 여전히 존재했으며 신규도시 건설로 인해 더 큰 부동산 버블을 초래됐다. 낡은 공급과잉 현상은 소화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공급과잉 추세를 형성했다. 국제투자은행계에서 ‘경제 레버리지’ 실행은 중국 금융계가 시장화 개혁에 들어서게 만들었고, 중국 정부는 은행이 지방정부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는 방책을 결정했다. 2013년 7월, 국무원은 ‘금융 지지 경제구조 조정과 전형 승급의 지도의견’을 발표해 소기업에 대한 금융 서비스 정책을 늘리도록 규정했다. 리커창 총리는 4개월 만에 경제부양책 미실행 상태를 미니경기부양책 상태로 전환했고, 레버리지화를 ‘금융계 지지’로 변경했다. 그 이후 은행대출 증가는 거의 멈추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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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파이낸셜타임스는 상하이시 서기 한정(韓正)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기에서 중국의 특성이 드러나는 내용이 있었다. 바로 중국 고위관료들이 매일 전담자를 지정해 전 세계의 정보를 별도로 수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스로 먹이를 찾는 방식은 기존의 기밀문서 시대가 지나갔음을 뜻하며, 당국의 정보 봉쇄 정책이 터무니없음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 대세 ‘인터넷 우회 접속’ 이른바 ‘한정 탐방록’의 내용은 풍성하다. 한정은 매일 부하가 수집한 전 세계 정보를 열독했다. 원 대화 내용은 이러하다. 기자: 매일 몇 시간씩 할애해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가? 가끔 직접 우회 접속을 시도하나? 한정: 매일 아침 전 세계 각종 정보가 사무실로 도착한다. 그중에는 심지어 날카로운 비평도 있다. 직접 내게 보낸 것이다. 기자가 둘러 표현했지만 질문의 중점은 ‘우회 접속’이었다. 몇 년 전 한 소식통에 따르면 중공이 등급을 매겨 인터넷을 통제하고 있으며, 일반 국민이 중국내에서 방화벽을 회피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인터넷 우회 접속을 하는 것을 제지했다. 하지만 정부 사업 기관에게는 등급에 따라 전 세계 인터넷 접속을 개방한다. 한정은 정치국 위원 겸 상하이시 서기로서 전 세계 인터넷 서비스를 공유할 수 있었다. 중국어 사이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댓글부대(우마오) 또한 해외 사이트 접속이 가능하며, 단지 개방 등급이 다를 뿐이다. 문제는 정보화 사회에서 사람들의 정보에 대한 갈망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기관이 등급을 매겨 정보 공유를 차별화하자 많은 인터넷 업체와 매체 또한 사무실 컴퓨터에 우회 접속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있다. 이는 물론 전자보다 합법적이지는 않은 ‘반 합법’ 상태에 해당한다. 상술한 바와 같이 합법과 불법으로 인터넷망을 공유하는 집단은 우회 접속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보통 중국인들과 함께 중국의 ‘우회 접속’ 진영을 구성했다. 일반인들에게 반드시 ‘고양이와 쥐 게임’을 함께 설치해야 한다는 점은 고충이다. 당국은 우회접속 소프트웨어를 막기 위해 항상 고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회접속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어쩔 수 없이 지속해서 프로그램을 업데이트시킨다. 우회 접속 프로그램을 자주 사용하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가끔 우회접속이 어려워 2~3시간이 걸려서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이미 습관이 되어 하루라도 해외 사이트를 접속하지 않으면 허전함을 느낀다. 우회접속이 어려운 날에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접속에 성공할 때까지 시도한다. 결국 중국 당국은 거액을 투자해 방화벽을 만들어냈다. 본래는 철의 장막을 만들려 했지만 결과는 ‘철조망’을 만드는 데 그쳤다. 철조망 내에 갇힌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그물을 통해 자유롭게 드나드는데 이를 정보 수요의 자기만족이라 일컫는다. 정보수요의 자기 만족은 무엇인가 ‘정보 수요의 자기만족’이라는 말의 의미는 매우 복잡하다. 첫째, 중공 고위층이 당과 정부 사업 기관에 전 세계 인터넷을 개방하면 반드시 정보의 왜곡을 불러온다. 원래 신화사 편집사와 내부 발행인의 ‘대참고’, ‘내부 선거 출마’ 등의 기밀문서는 관료 각계에 정보 공급의 방식을 제공했지만 인터넷 시대에 내부인의 수요에 만족할 방법이 없었다. 하물며 관료사회는 특히 해외매체의 중난하이 내부 동태에 관해 관심을 가지므로 이러한 것은 기밀문서라 할 수 없다. 그러나 해외 사이트를 둘러보면 이른바 ‘적대 세력’ 사이트에서 이러한 동태 소식은 쉴새 없이 나온다. 상술의 두 가지 원인 외에도 고위관료들은 가끔 자료에 대한 해석이 모호해 갈피를 잡지 못할 때, 해외 전문가들의 견해를 참고해 도움을 받았다. 관료사회에 몸담고 있지만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면 ‘소경이 눈먼 말을 탄’ 지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주요 요직에 있을수록 소식이 빠르고 매우 기민해야 한다. 그래야지 관료사회 처세에 능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입지를 굳힐 수 있다. 두 번째, 일부 중하층 관료들은 정보 공급 반열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 수요의 자기 만족자 행렬에 오르길 원한다. 그들은 세계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중난하이 내부의 동태를 살피고 입지를 다지고 싶어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정치소식 범위는 고위층 영도자의 개인과 일가 생활, 고위층 영도자 간의 은혜와 원한 관계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해외소식의 수요에 대해 정치 내부 분란 등 방면으로 치중하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그들은 홍콩의 정치적 운명을 점칠 수 있는 잡지를 통해 정보수요에 만족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 정보량은 매우 광범위하다. 보시라이가 ‘창훙다헤이(唱紅打黑, 공산주의 이념을 선전하고 범죄를 척결한다)’ 운동을 벌이고 ‘충칭 모델’을 추진해 고위층의 내란을 불러일으킨 사실이 해외로 퍼져 전 세계가 알게 되자 중국 내에서 브로커들의 자질구레한 소식을 듣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아이피를 우회시켜 정보를 찾아보는 것이 낫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들의 우회 접속 행위는 비교적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어떤 사람은 직장 자원을 끌어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쥐죽은 듯이 일을 하기도 한다. 벽을 무너뜨리자 일반 중국인들에게 우회 접속은 주로 알 권리에 대한 만족이다. 그들과 주동적으로 우회접속을 시도하는 중공 내부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중공 통제하에 발표된 공개정보는 믿을만하단 사실이 못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우회접속으로 진실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본국 정권을 신임하지 못하는 선전은 공산당 독재 강권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후루시초프의 이야기가 전형적인 예이다. 후루시초프 이전의 소련 공산당 영수 레닌과 스탈린은 모두 직계와 존망이 직결되는 종신 집정자들이며 어느 날 돌연히 직위를 일었다. 은퇴 후의 생활은 매우 적막했다. 그제야 그들은 비로소 공산 정권 체제의 폐해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고려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루시초프는 체제 내 비평자에서 소련체제의 반대자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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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실크로드 열풍이 불고 있다. 38억 명과 연계되는 신 실크로드에 대한 장밋빛 전망, 중국의 공급 과잉을 얼마나 방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과 밝은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문장들이 넘쳐난다. 대 중국 투자에 이해도가 얕은 사람들은 어쩌면 이토록 좋은 기회를 두고도 총명한 중국인들이 여태 뭘 하고 있었는지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투자는 ‘수익성과 위험성’을 검토해야 다년간 중국 해외투자 정황을 조사한 경험에 따라 쓴 필자의 글에는 투자의 생산 능력만 드러나 있을 뿐 투자 수익이나 보증에 대해서는 정확한 계산이 없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상급 정부의 정책 제한을 해제할지, 은행 자금을 어떻게 쓸지를 고민할 뿐 진정한 시장경제는 없었다. 그렇다면 실크로드는 얼마나 많은 국가와 지역을 망라하고 있을까? 인민망의 분석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유럽이 포함되어 있다. 추산에 따르면 실크로드에 인접한 지역은 대부분 공업화 초기 단계 국가다. 대부분 국가의 산업이 에너지와 광물과 같은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산업 구조상 중국은 실크로드에 인접한 대다수 국가와 확실한 산업 구분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 노동력을 비롯한 우세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여기까지 봤을 때 실크로드는 전망이 밝다. 하지만 인접국가 중에서 한국,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벨기에, 러시아 등 국가들은 당연히 공업화 초기 단계에 속하지 않는다. 해당 국가들의 철도, 고속도로, 교량, 항구 등 기초 인프라 건설은 이미 성숙한 단계로 중국의 대규모 공급과잉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중국의 부실한 건축 공정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인도의 제조업, IT업계도 중국만큼 낙후되지 않았다. 인도는 인구가 많아서 많은 기초 건설 인프라가 필요하다. 하지만 좋은 일은 남에게 줄 수 없듯이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나라는 기껏해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이다. 이러한 국가들이라면 중국의 바람처럼 대규모 신규 기초건설 인프라가 있어야 하는 중국의 공급과잉 현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국가들과 합작하면 중국은 직접 자금을 얻는 동시에 대오를 꾸릴 수 있다. 투자 수익은 몇 가지 형식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인프라를 필요로 하는 국가는 중국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제공한다. 두 번째는 중국이 기초시설을 건설한 후 일정 기간 비용을 상환한다. 예를 들어 철도 운행권, 통행료 등을 말한다. 세 번째는 정부가 상환을 책임지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식이든 모두 두 가지 조건을 전제로 한다. 하나는 해당 국가의 정치가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것과 또 하나는 경제발전 전망이 양호한 국가신용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술한 국가 중에 어떤 국가는 정치가 불안정하고 어떤 국가는 국가의 신용을 소홀히 하며 어떤 국가는 두 가지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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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APEC 회의에서 중국이 큰 기대를 건 ‘아시아 기초건설 투자은행 계획’은 여전히 정체 상태다. 게다가 멕시코 정부가 37억 달러 수주의 중국 기업 고속철 프로젝트를 철회함에 따라 여유 생산분의 수출이 주목표였던 중국판 마샬 플랜의 시작은 순조롭지 못했다. 공급과잉이라는 핵폭탄급 위협에 직면해 베이징 당국은 갖은 방법을 다해 곤경에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다. 왜 중국판 마샬 플랜인가? 국내에 많은 여론은 중국판 마샬 플랜에 대해 언급할 때, 중국의 해외투자에 눈길을 돌렸다. 수출 생산 능력이라는 말은 언급했지만, 오히려 과잉 생산이라는 주요한 수식어는 일부러 생략하기도 했다. 우선 무엇을 마샬 플랜이라고 하는지 소개할 필요가 있다. 마샬 플랜의 정식명칭은 ‘유럽 부흥 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각국은 전쟁의 타격을 입어 경제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미국이 유럽 동맹국을 도와 경제를 회복시키고, 소련과 공산주의 세력이 유럽에서 한층 더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시한 재건계획이다. 마샬 플랜은 1947년 7월 정식으로 출범되었고 4개 재정 연도 동안 지속되었다. 해당 기간 서유럽 미국을 포함한 각국으로부터 금융, 기술, 설비 등을 합친 총 130억 달러를 원조 받았고(2006년 환산 시 1300억 달러 수준), 이로써 전쟁 후 경제는 부흥할 수 있었다. 계획이 추진될 당시의 미국 국무장관 조지 마샬의 이름을 따 마샬 플랜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중국은 아시아 기초건설 투자 은행을 기획 건립을 핵심으로 한 ‘실크로드 경제구역’과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계획을 통해 해외 대량 수출을 기획하는 것을 두고 평론가들은 ‘중국판 마샬 플랜’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국 마샬 플랜과 비교하자면 국제 환경이나 미국과 유럽 등의 관계, 미국의 유럽 원조에 대한 성질 등을 막론하고 두 사례는 차이점이 많다. 유일한 표면적 공통점은 수출 생산 능력(기술, 설비)뿐이다. 두 사례의 차이점에 관해 관심 있는 독자들은 통다환의 ‘중국 고속철 마샬 플랜’을 읽어보길 바란다. 해당 문장은 두 계획을 비교해 분석하고 있다. 필자가 본 문장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이 마샬 플랜을 필요로 하는 원인은 중국 대다수 산업이 모두 공급과잉 현상에 놓여 있고, 중국 경제의 정상적 운행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급과잉은 왜 위험한가 이른바 공급과잉이란 생산능력의 총계가 소비능력의 총계보다 큰 것을 말한다. 그해 미국은 주로 제조업 설비 쪽에 수출이 많았었다. 하지만 중국의 공급과잉은 주로 기초 인프라 시설(철도, 고속도로 등) 영역과 부동산업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공급과잉은 중국 경제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생산의 근원은 곧 ‘투자는 사회주의의 것, 수요는 자본주의의 것’이라고 개괄할 수 있다. 이른바 ‘투자는 사회주의의 것’이라는 말은 즉 투자 자금은 주로 정부 혹은 국유 상업은행의 자금에서 오는 것으로 투자 리스크는 결국 은행 대금회수불능으로 번져 대출자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국유기업 사장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설령 민간 기업의 사장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수요는 자본주의의 것’이라는 말은 즉 생산 능력은 곧 시장의 수요로 이어져 만약 수요가 부족하면 공급과잉이 형성된다. 따라서 중국의 공급과잉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 번째, 공급과잉은 정부가 관여해야 하는 경제의 필연적 산물이다. 중국 경제 성장은 흔히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과 관련이 있다. 중앙 정부가 경기 부양 정책을 출범시키면 각지에서는 반드시 각종 항목을 내놓아야 하고, 이러한 항목들은 결과적으로 심각한 공급과잉 현상을 불러온다. 중앙정부는 거시적 제어를 통해 일부 업계의 과도 성장을 억제하길 희망하지만, 공연히 헛수고만 해 공급과잉 현상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을뿐더러 새로운 공급과잉 현상까지 자아내고 있다. 2009년, 전인대 재경위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2005년부터 지금까지 19개 업계에서 각기 다른 정도의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났으며, 국무원 상무회의에서는 공급과잉 억제가 중요함을 인정했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GDP 성장률 증가를 정치 업적으로 연결하는 풍토를 따르면서 공급과잉을 억제 시킬 방법은 사라지고 말았다. 2013년이 되자 에너지 다소비 알루미늄 전해, 철강제조, 신흥산업의 태양광 발전과 풍력, 조선, 철강업, 규소강에는 업계가 공인하는 과잉공급 현상이 일어났다. 두 번째, 중앙정부의 제어 정책은 더 많은 공급과잉 현상을 야기했다. 중국 철강업계를 예로 들자면 최근 10여 년 동안 몇 차례 반복을 겪었지만 일부 지방은 항상 방법을 찾아 제어를 모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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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센트럴 점령 시위가 한 달 남짓 지속되고 있다. 시진핑이 홍콩에 “타협도 없고 출혈도 없다 ”라는 지침을 통보하면서, 홍콩 행정장관 렁춘잉(梁振英) 어쩔 수 없이 열기가 식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센트럴 점령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베이징 당국은 이미 “시간은 점령자에게 있지 않다”는 기준을 산정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센트럴 점령 운동이 조직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다음 행동이 필요한 시점에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홍콩 학생 북상 항의 실행 가능성 홍콩 학생들이 베이징 방문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결정에 대해 월스트리트는 “이 조치는 시위 활동의 한층 더 발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평가했지만 필자는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홍콩 학생 및 상술의 월스트리트 기자의 중공의 본질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우리처럼 공산당 통치하에 장기간동안 생활하고 항쟁했던 사람만 못하다. 필자가 예상하기에 베이징 당국은 홍콩 학생들의 북상 시위에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대응 방법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방법은 중공이 가장 사리가 밝은 부분이다. 학생들이 관문에서 전부 저지되는 등 근본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실행 가능성이 가장 많고 중공이 원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두 번째 방법은 먼저 학생들이 북상에 성공하게 만든다. 전술상에서는 유적심입(誘敵沈入)이라 말할 수 있는데, 목적지에서 기다리다가 홍콩 학생들이 모여 표어를 들고 항의하게 만든 후 ‘행패를 부렸다는’ 죄명으로 체포하는 방법이다. 법률상으로 보면 홍콩 시민들이 중국에서 중국 법률을 적용하고, 중공은 홍콩에 가서 법을 집행해 체포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과거 많은 홍콩 시민들이 뤄후교 해관만 건너면 실종되곤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그들은 체포된 것이었다. 이 같은 사례는 매우 많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가장 번거롭지만 학생들을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이다. 홍콩 학생들이 현장에 도착해 기습 시위를 성공하게 둔 뒤 중국 정부 조직은 현장에서 ‘반 센트럴 점령’ 시위를 조장해 중국인들이 홍콩 센트럴 점령 시위에 대한 반감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제3자 입장에서 베이징 정부가 민심을 날조한 것이라 차마 말하기 힘들 것이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센트럴 점령에 대해 이해하지는 못해도 확실히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홈 그라운드 우세 포기하면 안 돼 홈 그라운드 우세를 포기하게 되면 맞이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말할 내용이 많다. 축구경기에서도 홈 어드밴티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에 참가하는 운동선수 소속 국가 혹은 도시에서 경기가 열릴게 되면 더 쉽게 승리할 수 있는 효과를 홈 어드밴티지라고 부른다. 홍콩 센트럴 점령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어 온 것은 홈 그라운드가 홍콩이기 때문에 홍콩인들간에 이견이 있더라도 홍콩 센트럴 점령 시위 참가자들은 어쨌든 모두가 같은 시민 사람들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홍콩은 법치사회이므로 홍콩 정부가 관례를 벗어나면 법률과 제도로 처리한다. 폭력 행사, 후추가루 사용, 장내 정리, 체포 등과 같은 현상은 중국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홈 어드밴티지와 상반되는 것은 원정 경기이다. 원정 경기는 타지에서 온 참가 선수단은 홈 그라운드 선수단만 못하다. 홈 그라운드 선수에게는 승리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주어지며 적어도 응원단 목소리 또한 상대편 팀 응원단보다 우렁차다. 홍콩 학생들은 젊다. 하지만 홈그라운드에서 홍콩 학생이 승리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에 있고 홍콩 법률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공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원정 경기에 들어가면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한달 여 동안 홍콩 홈 그라운드에서 베이징 당국은 홍콩에 반(反) 센트럴 점령 시위자들을 대거 파견해 센트럴 점령 시위자들과 대립시켰다. 홍콩 학생들의 고군분투가 중공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중국에서 이루어진다면 베이징 당국이 홈 그라운드 우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위세가 드높은 반 센트럴 점령 시위대를 조직해 홍콩 학생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려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 수로 봤을 때 홍콩 학생들이 북상하면 많아봤자 2천여 명일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규모가 큰 반 센트럴 점령 시위대를 조직한다면 그건 마른 땅에 말뚝 박기와 같이 수월한 일이다. 중국 정부는 몇 만 명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반미, 반일 전국 도시 연합 시위를 겪은 중국인들은 당연히 중공 정부의 강한 동원 능력을 익히 알고 있다. 지속적인 항쟁은 자유로 가는 통행증 홍콩이 시위를 통해 민주화를 쟁취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다는 것은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 국제적 사례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강권에 대한 항쟁은 줄곧 막중하고 어려운 것이었고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중국의 80~90년대생 청년들은 이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간혹 현실에 부합되지 않은 희망을 가져 강권통치는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역사의 한 부분만 보자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는 90년대 초 빠르게 와해되었다. 역사 전경을 보지 못했기에 공산당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 이러한 국가의 인민들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체코, 폴란드, 헝가리는 거의 소련으로부터 대포와 탱크를 이용해 사회주의 제도가 해당 국가에 적용되자 인민들은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예를 들어 헝가리 사건, 1956년 10월 폴란드 사건, 체코 프라하의 봄 등등 큰 사건들에 대해 사람들은 대략 알고 있겠지만 사실 그 외에도 더 많은 셀 수 없는 사건들이 있었다. 폴란드를 예로 들자면 1948년부터 사회주의 제도를 실행하고 소련 스탈린의 형식을 도입해 해당국 자원 및 인력 관리 문제가 나타나 지속적인 정치 항쟁이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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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구매력을 기준으로 추산한 2014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17조 6000억 달러로 17조 4000억 달러인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전 세계 중국 전문가들은 비논리적인 평가라고 일제히 논평했다. 한 언론은 ‘세계 경제 1위 중국, 1인당 GDP 미국과 50년 격차’라는 기사를 통해 여론을 바로잡으려 나섰다. 중국이 세계 1위? 해외 평론과 중국의 반박을 비교해보면 대략의 전개는 모두 올해 4~5월 사이에 세계은행이 유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비롯됐다, 세계은행과 IMF가 사용한 통계 출처는 모두 중국 정부가 제공한 것이며 분석방법이나 결과도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4월 30일, 세계은행은 중국이 2014년 세계 1위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중국은 넘버원(No.1)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거절했다. 필자가 이전에 ‘중국은 왜 GDP 세계 1위를 거절하는가’라는 문장을 통해 구매력 평가 산정 방식에 결함이 있음을 지적한 바 있고, 세계은행 및 IMF가 근거로 제시한 통계 수치가 모두 중국이 제공한 조작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이 통계를 조작하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라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따라서 본 문장에서는 더 이상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겠다. 자료의 진실성과 해외 학자들의 설명으로 더 이상 이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서양의 중국 연구진들은 초보적인 인식을 가지고 이에 대해 몇 년에 한 번씩 언급하곤 했다. 9월 27일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된 ‘서양이 중국에게 가지는 오독(誤讀, 틀리게 읽음)'은 비록 원동경제평론 4월호에 발표된 ‘중국 학자는 모두 매수됐나?’만큼 내용이 깊지는 않지만 다른 각도에서 해당 연구영역의 문제점을 찾아 분석했다. 중국이 No.1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거절한 것은 자신의 결점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본국에서 통계 수치를 거짓으로 꾸며내는 일은 이미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실 GDP가 나타내는 경제규모는 실제 경제상황과는 차이가 있다. 첫째, GDP 전체 총량은 크지만 1인당 GDP는 높지 않다. 둘째, 빈부 격차가 매우 커 가정 소비 패턴이 양극화 되었고 내수가 부진하다. 내수는 곧 국가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주요 동력이다. 셋째, 한 국가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지탱하는 주요 기반은 자원인데 중국의 자원 수요는 과도하게 외부에만 의존하고 있다. 심각한 빈부격차 2013년, 세계에서 GDP 총량이 1조 달러를 넘긴 국가는 모두 16개로 미국은 16조 1900억 달러로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9조 달러를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5조 9900억 달러를 기록한 일본이었다. 하지만 1인당 GDP로 비교해보면 미국은 51248달러로 11위, 중국은 6629달러로 86위에 머물렀다. 이와 같이 GDP 총량만으로 중국 경제의 부강함을 증명하기는 무리가 있다. 1인당 GDP 또한 대다수 중국인들이 이에 상응하는 수입 수준을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중국의 빈부격차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올해 7월, 베이징대 사회과학 조사센터에서 발표한 ‘중국 민생발전 보고 2014’에 따르면 2012년 중국 가정 순재산 지니 계수는 0.73에 달했으며, 상위 1%의 가정이 중국 전체 부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하위 25%의 가정이 보유한 자산 총량은 겨우 1% 전후에 머물렀다. 기타 통계 수치 또한 중국의 부가 과도하게 한 곳에만 집중되어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스위스 자산 정보업체 웰스 X(Wealth X)와 스위스 연방은행 UBS의 ‘2014년 전 세계 억만장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순자산이 10억 달러가 넘는 중국 부자는 총 152명으로 세계 2위를 차지해 미국 다음으로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하다. 전 세계 부호 순위는 2위를 차지한 반면, 1일 평균 소비가 1달러에 못 미치는 가난뱅이는 2억 명, 또 1일 평균 소비가 2달러보다 낮은 인구는 무려 4억 6800만 명에 달했다. 허약한 내수시장 사람들은 베이징대학교 보고서에 공개된 지니계수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해당 보고서의 또 다른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 중국 가정의 소비 패턴이 양극화를 나타내고 있음을 분석했다. 중국 가정 소비 패턴은 총 5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가난질병형, 개미형, 달팽이형, 온당형, 향락형이다. 소비수준은 낮지만 소비를 억제하는 가정(개미형) 혹은 의료, 교육, 주거 부담이 큰 가정(달팽이형, 가난질병형) 패턴이 전국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가정은 극히 적었다. 농촌에는 가난질병형 가정이 비교적 많은 반면 온당형과 향락형 가정은 적었다. 도시에는 가난질병형 가정은 비교적 적은 반면 향락형, 온당형 가정이 농촌보다 훨씬 많았다. 그 동안 중국경제는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외국무역, 투자, 내수 이 삼두마차에 의존해왔다. 그결과, 중국은 세계 시장에서 지위를 잃고, 외국무역에도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간혹 회복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 하락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 투자 유형에는 정부투자(국유기업 포함), 개인투자, 외국자본 세 가지가 포함된다. 현재 정부투자는 통제 상황에 놓여있고 중국을 겨냥한 해외 투자율은 하락했다. 부자들의 신용카드 이용, 경외투자 명목으로 자본을 유동시키고 개인의 외화로 바꿀 수 있는 규정된 액수 제한은 유명무실하다. 계속되는 자금 유출에 7월경 결국 중국 정부가 돈세탁 반대 정책을 내놓는데 이르렀다. 삼두마차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내수는 장기적으로 존재하는 중국 소비율 저조 현상이다. 정부측 통계에 근거하면 최근 몇 년 동안 소비율이 중국 GDP의 48%를 차지했다. 이는 소비율이 GDP의 80%를 차지하는 세계 평균치와는 거리가 먼데다가, 심지어 중국 20년 전 수치인 60% 수준보다 낮았다. 2013년, 국내 한 연구자는 중국 소비율이 낮은 이유는 거주 소비율이 포함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거주소비에는 임대료, 인테리어 보수비용, 광열수도비 등이 포함하고 있어 큰 수치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거주소비가 소비율에 포함됐는지 안됐는지의 여부를 떠나 중국 가정 소비 패턴 양극화의 현실을 바꾸기 힘든 것은 물론 내수를 촉진시키는 것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떠한 시장이라도 경제력을 부호들에게만 의지하고 있다면 더 이상의 발전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 부동산 시장이 관료들과 부호들에 의해 지탱된다면 중국인들의 실제 소비 능력과 수요를 완전히 벗어나 결국 큰 경제 버블을 일으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한 국가의 생산과 분배는 마치 자동차의 앞뒤바퀴처럼 생산이 공급량을 결정하고 분배가 수요량을 결정한다. 공급이 많고 수요가 적으면 오로지 앞바퀴만 돌아가 자동차는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로써 유추하자면 사회 분배가 불공평한 국가에서 각종 사회모순이 격렬히 충돌한다면 경제 번영은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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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는 1989년 ‘6.4’ 이후 중공정부를 정치적으로 진정 신뢰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간 지속된 중국의 경제성장은 국제투자자들에게 많은 믿음을 줬고 중국경제가 장기간 번영할 것으로 믿게 했다. 하지만 최근 국제사회의 이런 의심은 경제영역에까지 확산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과거 중국경제발전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믿어왔던 GDP와 성장속도마저도 이런 의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리커창마저 불신하는 GDP통계 이런 의심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차기 국무원 총리로 내정된 리커창마저 자국의 GDP통계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선 이 일의 전후맥락을 살펴보도록 하자. 2010년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베이징주재 미국 대사관이 ‘07BEIJING1760’이라 칭한 비밀전문에 따르면 2007년 3월 12일 베이징 양회에 참가하러 온 당시 랴오닝성 서기 리커창이 미국 대사관저를 찾아와 대사관 직원들과 만찬을 한 적이 있다. 리커창은 랴오닝의 경제상황을 설명하면서 중국의 GDP수치는 조작된 것으로 믿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랴오닝 경제를 평가할 때 3가지 데이터를 중시한다고 했다. 첫째는 전력소모량, 둘째는 철도운송량, 셋째는 대출금액이다. 이 세 가지 데이터를 통해 상대적으로 정확한 경제성장률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웃으면서 “다른 모든 데이터들 특히 GDP 통계는 단지 참고만 할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중국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지금 리커창이 18대 이후 국무원 총리가 될 것으로 보는 많은 외신들은 그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즉 리커창이 총리가 되면 이런 불신은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리커창이 전력소모를 중시한 이유는 리커창이 전력소모량 등의 데이터를 중시하게 된 이유는 2002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에 보도된 중국 통계데이터 조작에 관한 문장 때문이다. 당시 논쟁을 유발한 인물은 미국 피츠버그대학 경제학과의 토머스 로스키 교수로 2001년 ‘중국 GDP통계에 무슨 일이 있는가?’라는 문장을 발표했다. 로스키 교수는 이 문장에서 중국의 에너지소비, 교통운송과 건축자재 등의 생산량을 통해 추론할 때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중국 GDP의 실제 성장률은 관방에서 발표한 것보다 절반 내지는 그 이상 낮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영국의 파이낸션타임스, 이코노미스트는 물론이고 미국의 뉴스위크, 비즈니스위크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학계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중국 국내에서도 널리 인용 보도돼 수년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중국정부는 통계자료의 부실과 불투명으로 내외적으로 지탄을 받았으며 통계제도의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만약 통계제도가 개혁돼 국제수준에 근접한다면 정책 결정비를 절약할 수 있고 외국 기업인들의 신뢰를 얻어 보다 많은 외국투자를 이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중국 국가통계국의 리더수이(李德水)국장과 다른 직원들도 이 논쟁에 참가했는데 이들은 허위 보고된 수치가 총액의 약 20%에 달한다고 인정했다. 가령 2004년을 예로 든다면 허위보고가 총액의 19.47%였다. 이들 정부관원들조차 한 가지 사실을 인정했는데 바로 중국 각 지방에서 보고하는 GDP 수치는 모두 정치적인 고려를 거친 것으로 결코 중앙정부에서 목표로 정한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수치가 나올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지방정부에서 중앙에 보고하는 GDP성장률에 상관없이 국가통계국은 전체적으로 평균 20% 정도는 과장된 것으로 본다. 끊임없이 향상되는 조작기술 2002년 외국 학자에 의해 시작된 논쟁을 거친 후 중국은 GDP를 조작하려면 전력사용량이나 에너지소비량 등을 세트로 맞춰야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리커창은 학습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과거 이런 논쟁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리커창이 자신은 전력소모량, 철도운송량, 은행대출만을 믿는다고 밝혔을 당시에도 이미 이들 분야의 조작도 같이 시작됐다. 은행대출 용도의 조작은 중국의 오랜 관습이다. 최근 수년간 저장성 일대의 민간기업들은 은행대출을 받을 때 생산자금 등의 명목으로 대출을 받지만 실제로는 부동산에 투자했다. 2011년 부동산이 전면적으로 하락한 후 이들 기업은 더 이상 은행대출을 받지 못하자 도주하거나 일부는 자살을 선택했다. 도피한 기업인들 중에서 원저우 상인이 특히 많았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은행대출은 더 이상 경제발전 상황을 추산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전력사용량도 믿기 어려워 문제는 중국에서는 어떤 일이든 모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GDP데이터가 조작될 수 있다면 전력사용량 데이터도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 우선 전력데이터에는 두 가지 다른 지표가 있는데 바로 발전량과 전기사용량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두 지표가 따로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방정부는 전력데이터를 조작할 충분한 동기가 많이 존재한다. 때로는 과장하거나 때로는 일부러 축소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전력데이터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지난 7월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발전소 직원이 발전용량 수치를 키워서 보고하도록 상부로부터 요구받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지방 및 성(省) 1급 정부에서 발전소 측에 중앙에 경제상황을 사실대로 보고하지 말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부정적인 경제데이터’를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발전소 측에 ‘마이너스 성장’을 ‘제로 성장’으로 보고하도록 요구했다. 일찍이 21세기 초 중국경제에서는 이미 ‘경기하강’이란 단어를 폐기했다. 즉 ‘마이너스 성장’으로 ‘경기하강’을 대신하고 ‘제로성장’으로 ‘정체’를 대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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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보이콧에 놀란 中共, 관영매체 해외 진출 확대 현지 유력인사 필진으로 포섭, 공산당 이미지 쇄신 노려 올해 1~2월 무렵부터, 베이징 당국의 대외 선전 계획에 관한 뉴스가 줄을 잇고 있다. 최초 보도한 홍콩의 난화짜오바오(南華早報)에 따르면, 정부가 중국 공산당의 국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450억 위안(7초 6500억 원)을 들여 주요 관영 언론사의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3일, 관영 신화사 산하 환추스바오(環球時報)는 “중국 정부가 국가 홍보 활동을 위해 450억 위안을 투입한다”라고 보도했다. 이 소식은 곧바로 신화넷에 전재됐으며 펑황저우칸(鳳凰週刊) 등에도 실렸다. ‘국가 홍보 활동’ 즉 대외 선전이 화제 거리로 떠오르면서 사람들은 450억 위안의 용처에 호기심을 가지게 됐다. 급기야 중공 선전부는 450억 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라고 언론에 지시했다. 해외 중국어권 언론사들은 450억 위안이 해외 중국어 매체를 사들이는데 쓰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당국은 거액의 자금을 기존의 관영 매체에 투입해 ‘대외 선전 계통’을 강화하고, 해외 진출 매스컴의 현지화를 앞당기는 데 사용할 방침이다. 대외 선전의 핵심 ‘외문국’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티베트 탄압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올림픽 횃불 릴레이를 보이콧했다. 중공 당국은 중국 정부의 국제적인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중공이 얻은 교훈은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 이미지를 쇄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중공 당국과 언론은 여론을 선점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첫 번째로 해외에 새로운 언론사를 설립하고 각국 정부 부처와 지도층에 정보를 전달했다. 신화사, 중국신문사, 중국국제방송국, CCTV 위성방송, 중국일보 등의 해외 지사를 증설하고 현지 직원을 모집했다. 여기에 대외 선전기구인 중국외문출판발행사업국(中國外文局·외문국)이 발행한 수십 종류의 출판물도 동원됐다. 중공 관영 언론사들은 각자의 역할과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신문사는 보도를, 라디오는 평론을, TV방송국은 공연을, 잡지와 서적은 해설과 설득을 담당한다. 이 중 두드러지는 것은 해외 186개 지사를 설립한 신화사다. 신화사는 궁극적으로 알자지라와 같은 글로벌 뉴스 채널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대외 선전 기구의 핵심인 외문국은 1949년 10월 1일 설립됐다. 당시의 명칭은 중앙 인민 정부 신문총서 국제 신문국이며, 중공 외교계의 거물 차오관화(喬冠華)가 제1기 국장에 취임했다. 대외 선전의 주요 기구로서 외문국의 주요 업무는 중공 지도자의 저작, 정부 공고, 정책 자료, 국정 소개, 중국 문학 작품과 중국어 잡지를 외국어로 번역하고 보급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편집, 출판, 인쇄, 발행, 인터넷 선전 등 광범위한 업무를 맡고 있다. 외문국이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43종의 언어로 약 13억 권의 서적이 출판돼 세계 180여 개 국가에 보급됐다. 이는 중국의 출판물 수출의 50% 이상에 해당하며, ‘베이징 주보’, ‘인민 화보’, ‘오늘의 중국’, ‘인민 중국’이 대표적인 간행물이다. 외문국의 간행물은 전량 중국 정부가 사들인 후 중국 대사관과 영사관을 통해 배포한다. 외문국은 중국 문화계의 거물을 포섭해 공동 작업하며, 해외에서도 좌파 인사를 중심으로 ‘친구’를 모으고 있다. 2004년부터 외문국은 대외 선전 간행물의 현지화에 착수했다. 2004년 10월, 잡지 ‘오늘의 중국’은 카이로와 멕시코 시티에 지사를 설립했다. 이 잡지의 아라비아어와 스페인어판이 현지에서 발행됐다. 이른바 대외 선전 간행물의 현지화를 위해, 현지 유력 언론 관계자와 관리를 고문으로 고용하고 기획과 주제 선정에 참여시킨다. 또 현지 주류 언론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사들을 고용해 잡지에 기고하도록 하고, 그들의 입을 빌려 중국 정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한다. 교묘하게 의도를 숨긴 유명인의 기고문은 현지 매스컴에도 인용돼 선전 효과가 극대화된다. 러시아, 한국,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타이, 몽골 및 중앙 아시아 5개국에서 ‘포탈라(티베트어)’, '진차오(金橋, 한국어), '다루차오(大陸橋, 러시아어)', '연꽃(베트남어)', '파트너(러시아어)', '지샹(吉祥,미얀마어)', '메콩강(타이어)‘, '소론(몽고어)’, '센바(라오스어)‘, '유방(友邦, 카자흐스탄어)’ 등을 발행중이다. 이외에도 ‘오늘의 중국’은 페루판, 브라질에 포르투갈판을 발행할 계획이다. 외문국은 이미 2007년에 24종의 간행물과 27종의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다면, 450억 위안이 어디로 흘러갈지 쉽게 알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중국 공산당이 좋아할 소식을 전하고 있는 언론들은 자신들에게 이 돈이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할 것이다. 선전은 이미지 제고로 이어질까? 상술한 바와 같이 중공의 대외 선전은 올해 들어 처음 기획된 것이 아니라 정권을 장악한 초기부터 시작됐다. 개혁개방 이후 중공은 이미지를 치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1980년, 중앙정부는 대외 선전팀을 설립하고, 90년대 국무원 신문 사무실을 설립해 대외 선전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총괄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신통치 못하다. 신화사의 해외 고객은 1450개 언론사와 기관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국제 주류 언론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중공의 언론학자인 리시광(李希光)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현재 상황에서 중국의 대외 선전물은 국제 주류 사회로 진입하기 어렵다. 특히 서방의 사회 중심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일부의 해외 호텔에서는 중앙 TV의 중국어 프로그램을 볼 수 있지만, CCTV의 영어 프로그램은 볼 수 없다. 신화사의 기사는 좀처럼 현지 매스컴에 인용되지 않는다. 인용되더라도 부정적인 쪽이며, 오히려 중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히틀러는 일찍이 선전 효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언한 바 있다. “선전의 임무는 사물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불리한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데 있다. 반대로 우리에게 유리한 정보를 반복해서 보도하고 선전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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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일보 방문 주룽지 前 총리 "인민의 대변인이 되자" 동행한 선전부부장의 첨언 "공산당 이익과 일치할 때만…" 중국 공산당 선전부와 어용 악플러들은 당국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제기될 때면 여지없이 "중국과 공산당을 반대하는 국외 세력의 책동"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공 간부들과 공무원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서 알 수 있다. 그들의 말에는 중국의 실정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가 담겨 있고, 사상 분야 선전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들어 있다. 중공 관료계에는 2가지 어투가 있다. 하나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사용하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 놓은 사적인 대화에 사용하는 말이다. 관료계에 대한 통제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는 요즘 그들의 사적인 대화가 인터넷에 심심찮게 돌아다니고 있다. 부정부패는 동지, 언론자유는 적? 먼저 이른바 "정부식" 말투를 몇 개 분석해 보자. 해외 반체제 사이트인 보쉰(博迅)넷에는 지난 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선전부문 내부 회의에서의 한 고위공무원의 발언이 공개돼 있다. "중국은 아직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다. 언론의 방향을 우리가 확고하게 통제해야 한다. 부정부패는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지만 여론의 향방을 잃게 되면 공산당과 공산당의 집권은 끝이다." 이 말의 뜻인즉 공산당과 정부의 임무는 부정부패 방지에 있지 않고, 당원들을 공산당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게 해 자아를 보호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관건은 언론을 통제해 국민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우고 정부에 불리한 소식을 모조리 봉쇄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중공이 만들어 낸 언론의 창(窓)에 둘러 싸여 "중국 공산당의 위대한 업적"과 "서방국가의 부패상과 몰락"을 보면서 중국이 태평성세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물론 이런 말은 인민일보나 신화사에 실리지 않는다. 언론에는 공산당 고위층이 즐겨 쓰는 "부정부패는 공산당과 나라를 망하게 한다"라는 그런 말을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어떻게 시작됐나 다른 문장을 하나 더 살펴보면 중국에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던 "보시라이가 폭력조직을 단속하게 된 계기"라는 문장이다. 여기서 보시라이는 "우리가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폭력조직의 핍박에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보시라이의 말은 사실 그대로라고 봐야 한다. 국민들은 보시라이의 말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첫 번째 "폭력배들이 너무 날뛴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두 번째 해석은 "폭력 조직 소탕이 사실은 부담스러웠던 보시라이가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끝으로 "보시라이가 실언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필자가 중국 폭력조직과 정치계의 결탁을 다룬 연구에 따르면 첫 번째 해석이 가장 정확해 보인다. 여러 매체에서 충칭시의 폭력조직이 지역 정부와 유착해 성장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사실 보시라이가 상무부장이라는 중앙직에서 충칭시로 온 것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충칭시 당서기 취임 직후 발생한 택시기사 집단 파업, 공무원 뺑소니 사건, 초병 살해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보시라이는 무능하다는 평가를 듣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보시라이는 노심초사 끝에 "폭력조직 소탕"을 택하게 됐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폭력조직은 경찰과 정부의 부패 집단과 함께 세력을 키우고 있어 지역을 정부와 함께 다스린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조직이 정부보다 더 정부 노릇을 잘하는 지역도 있다. 보시라이의 말은 관료들과 밀착된 폭력조직을 원래 소탕할 계획이 없었지만, (자신의 출세를 위해) 할 수 없이 작전을 실행했다는 뜻이 된다. 주룽지 전 총리의 황당한 경험 공산당 문화에 젖어 있는 관료들은 자신도 모르게 본심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한 기자가 허난성 정저우시에서 서민주택에 대해 취재할 때 기획국장 루우쥔은 기자에게 "당신은 공산당의 편에 서서 말을 하려는 겁니까? 아니면 시민들을 위해 말을 하려는 겁니까"라고 반문했다. 루우쥔은 은연중에 공산당과 시민의 이익이 대립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공분했다. 중국 공산당은 줄곧 국민들에게 "공산당은 인민 이익의 최고 대변자"라고 선전했지만 실제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90년대 말 장쩌민이 주창한 "3개 대표론"도 국민을 우롱했다. 베이징에는 이런 말이 나돌고 있다. 1999년 설날 즈음, 국무원 총리 주룽지(朱鎔基) 가 중공 선전부 부부장과 인민일보를 시찰했다. 주룽지는 직원들에게 "당신들은 시민들의 좋은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라고 격려하자, 부부장은 "공산당과 인민의 이익이 일치할 때 당신들은 인민의 좋은 목소리가 되어야 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공산당의 좋은 목소리가 되는 것"이라고 보충 설명했다. 이 일화도 공산당과 인민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인들이 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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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정상회의 즈음 중국은 "새로운 국제통화가 필요하다"는 달러 흔들기로, 이번 회의를 중국과 미국의 "G2" 회의로 만들었다. 국제사회도 중국의 행보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발언은 사실 회담 전부터 있었다. 지난 3월 중국 중앙은행 저우샤오촨(周小川) 총재는 "달러를 대신해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새 기축통화로 사용하자"고 주장했고, 중국 정부의 영향권에 있는 도널드 청(曾蔭權) 홍콩 행정장관도 홍콩달러의 "미 달러 페그제" 폐지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왕치산(王岐山) 중국 부총리도 "타임즈"에 기고를 통해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개발도상국의 발언권이 더욱 커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더했다. 이에 중국언론들은 위안화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매우 흥분했다. 하지만 기업의 이익을 고려한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강대국 쇼"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 결과 중국 정부의 "위안화 무역결제 시범지역 선정" 정책은 지난 4월 광교회(광저우무역박람회, 캔톤페어)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중국 언론의 "정부찬양"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중국은 왜 달러에 도전했나 저우 총재의 달러화 도전은 미국의 정치, 군사적 지위에 도전하려는 중국 정부의 예행연습이다. 지난 2005년 미국에 핵 공격도 불사하겠다던 주청후(朱成虎) 소장의 발언에 비하면 많이 부드러워진 셈이다. 국제통화는 그 나라의 국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 2차대전 동안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자,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에서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금환본위제도를 채택했다. 하지만 1971년 닉슨 정부가 금태환 정지선언을 함으로써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하였다. 이후 1976년 자메이카 협정을 통해 선진국들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했고 보유 외환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미국의 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달러는 여전히 국제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고, 국제통화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금융위기를 틈타 공세를 취한 것은 영리한 행동이다. 궁핍한 서민층과 산재한 경제문제 등 현재 중국이 직면한 문제는 미국보다 훨씬 크지만, 독재정부인 중국은 미국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다. 자원을 강제적으로 동원해 부를 과시하거나, 통계수치를 위조해 전 세계가 불경기인데도 오직 중국만은 회복기라는 가상을 만들어낸다. 이는 서구에 중국 자본은 끝이 없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자유가 보장된 미국 언론들은 자국 경제를 통렬히 비판하지만, 자유가 통제된 중국 언론들은 자국 경제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영리한 선택에도 "위안화 무역결제 시범지역 선정"은 시기가 좋지 않았다. 왜 그런지 한번 살펴보자. 중국이 기대한 "일석삼조" 효과 사실 중국의 목표는 위안화를 곧바로 국제통화로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국제통화가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국제통화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며, 둘째 자유로운 교환이 가능해야 한다. 셋째 해당 통화가 국제시장에서 안정적인 구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각국 중앙은행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위안화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해 새로운 국제통화가 되기는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중국은 새로운 국제통화 주장을 통해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첫째, 중국의 단기목표는 IMF에서 자국의 발언권과 투표권을 확대하는 데 있다. 최근 국제사회는 새로운 국제통화 시스템을 만들어도 여전히 달러화가 중심이 된 통화 다원화가 되어야 한다며, 달러화의 파워를 인정하고 있다. SDR도 달러, 엔, 유로, 파운드의 통화바스켓으로 운영되고 있어, 중국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하다. 이는 중국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둘째, 중장기목표는 위안화가 국제통화 시스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번 G20 회의에서 SDR을 주장한 이유도 위안화의 국제화, 2020년 위안화의 자유교환, 상하이 국제금융센터 설립 등을 위한 사전작업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중국이 역점을 두는 현실 목표는 중국이 아시아통화를 추진할 때,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다. 지난 4월에 열린 보아오(博鰲) 포럼에서 중국 고위층은 세계 각국에 제공하는 중국의 자본을 무기로 미국의 대규모 양보와 아시아 중심의 새로운 국제기구 설립을 주장했다. 저우 총재는 아시아개발은행 같은 지역 금융기구가 국제기구의 역할을 넘겨받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결국 중국의 목표는 아시아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를 가로막은 것은 놀랍게도 서양 선진국들이 아니라 보아오 포럼 전에 열린 광교회(광저우무역박람회)였다. 위안화 국제화의 꿈을 깨버린 "광교회" 저우 총재와 왕 부총리의 발언 직후, 중국 국무원은 상하이, 광저우, 선전, 주하이, 둥관 등 5개 도시를 위안화 무역결제 시범지역으로 선정했다. 중국 언론들은 일제히 "위안화 결제를 통한 환율위험 회피, 무역조건 개선 등은 수출기업 성장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광교회에서 위안화로 견적을 낸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한 일간지는 "광교회에서 위안화 결제기업 없어"라는 기사에서 위안화 결제는 매우 시기상조이며, 중소기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부분 기업들의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첫째, 위안화 결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역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안화가 결제통화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위안화로 보유자가 원하는 모든 재화나 서비스를 살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해외주문에 절박한 중국기업들도 구매자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양청완바오"는 참가자의 말을 인용, "외국 상인들이 위안화 결제는 환율위험을 자신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의심한다"라고 보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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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악한 제도 때문인가, 사악한 인성 때문인가 최근 중국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독재정부에 아부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마치 경쟁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여성작가 장이허(章詒和)는 최근 남방주말에 두 편의 기고문을 통해 황먀오쯔(黃苗子), 펑이다이(馮亦代) 등 중국 유명 예술인들이 과거 공산당에 동료를 밀고한 사실을 폭로했다. 곧이어 베이징대 쑨둥둥(孫東東) 교수는 "상방민의 99% 이상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이런 문화인재들의 타락은 최근 독재정부의 대변인을 자처한 영화배우 청룽(成龍)의 "중국인은 통제가 필요하다"라는 발언으로까지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펑이다이 등의 밀고 행위는 마오시대 정치탄압의 산물이기 때문에 개인의 잘못을 탓할 수 없다고 한다. 정치탄압의 산물이라는 의견에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당시 독재정권은 개인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통제했기 때문에, 살기 위해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체제는 개인을 완전히 분리된 개개 입자로 나눠 사람들을 철저히 고립상태로 만들었다. 가족, 친구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이런 거대한 탄압과 공포 속에서 진웨린(金岳霖), 펑유란(馮友蘭) 등 명성이 자자한 학자들조차도 중공에 머리를 조아리는 "사상범"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들의 잘못을 탓할 수 없다는 생각에는 반대이다. 오히려 과거의 경험과 잘못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과거사를 다시 논하는 이유는 당사자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괴물로 만든 독재 정권의 만행을 알리는 데 있다. 어쨌든 많은 중국인이 오랜 기간 정치탄압을 받았거나 아직도 받고 있지만, 그들 모두가 타락한 것은 아니다. 펑이다이의 밀고행위를 시대의 잘못이라고 한다면, 최근 쑨둥둥과 청룽의 태도는 정치탄압에 의한 굴복이 아닌, 그들 스스로 정권에 영합하려는 행동으로 보인다. 현 체제의 통제와 탄압이 매우 잔혹하지만 마오시대 만큼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 생각해 볼 것은 쑨둥둥은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 학생들을 보호했고, 청룽은 당시 학생운동을 지지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다. 무엇이 정의감에 불타던 이 두 인재의 가치관을 이렇게 바꿔놓았을까? 단지 경제적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중국 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대중 여론이 정권에 아부하는 그들의 모습에 결코 호의적일 수 없다. 또한 정부 당국도 수많은 아부꾼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그들이 얻는 "한계효용"은 0에 가깝다. 쑨둥둥도 자신의 정치적 위치가 바로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밝힌 바 있다. 청룽의 이런 영합이 당국을 움직여 그의 중국 내 티켓수입을 늘릴 것이라고 기대하기 역시 힘들다. 그렇다면 이런 인재들을 파렴치한 정치 하수인으로 만드는 독재정부의 능력은 어디에 있는가? 쑨둥둥이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 살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공산당의 장기간 교화에 의한 결과라고 한다면, 청룽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청룽은 중국에 반환되기 전의 자유 홍콩에서 자랐고, 중국인들이 겪었거나 현재 겪는 사상교화를 받은 적이 없다. 그가 독재정권의 대변인이 된 이유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 스탈린체제의 진상을 담은 자신의 저서 "모스크바 일기"를 사후 50년 후에 공개하라는 로맨 롤랑(Romain Rolland)의 유언이 폭로되면서, 나는 매우 가슴 아픈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자유세계에서 오래 생활한 지식인은 자국의 민주정치하에서는 불공정한 현상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마치 로맹 롤랑이 "프랑스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하지만 그들이 독재정권과 만나게 되면, 알았건 몰랐건 간에 독재정부에 아부하고 빌붙게 된다.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쓴 존 리드(John Reed)나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처럼 이런 굴욕의 길을 걸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소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혹자는 서양 사람들이 속은 건 공산독재 국가의 진상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독재정권에 아부하는 많은 화인 인재들의 사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무협소설을 문학의 전당에 올려놓은 소설가 진융(金庸)은 중국 당국에 대한 아부로 인해 그의 명성에 도움은 커녕 스스로 오점을 남겼다. 일부에서는 그의 유약한 성격 탓이라고 옹호하지만, 타이완에서 부처와 선조를 욕하던 그 사나운 리아오(李敖)도 중국에서는 내성적으로 바뀌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독재정권이 어떻게 수많은 "인재"들을 굴복시킬 수 있을까? 이는 제도가 사악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인성이 사악하기 때문인가? 이 문제는 거대한 가시가 되어 수년 동안 내 마음을 찔렀다. 이것은 중요한 연구과제가 되어야 한다. "인재"가 비겁한 밀고자, 아첨꾼이 되는 촌극이 아직도 중국에서 상연 중이기 때문이다. 더욱 무서운 건 요즘의 밀고자에게는 펑이다이가 쓴 "회여일록"같은 참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타인, 그리고 자신에 대한 "영혼의 고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