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이 맞닥뜨린 벽 ‘파벌 정치’

2015년 1월 15일 업데이트: 2019년 11월 3일

지난해 연말 인민일보에 실린 ‘시진핑은 왜 파벌을 비판했나’는 2014년 시진핑의 반부패 정책의 핵심이라 불릴만하다.

파벌에 타격을 가한 결과 저우융캉(周永康), 쉬차이허우(徐才厚), 링지화(令計劃) 등 당내 파벌을 대표하는 거물들을 숙청했다.
군부 소식통을 종합해 보면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가 시작한 창훙다헤이(唱紅打黑·공산당 찬양 및 범죄와의 전쟁을 의미) 이후 시작된 당내 권력투쟁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파벌정치는 전제정치의 토양

수년째 공공연하게 벌어진 권력 투쟁은 공산당에게 손실을 입혔다. 인민일보는 “병소를 제거하지 못해 고질병이 되었다. 저우융캉 쉬차이허우, 링지화, 쑤룽(蘇榮)과 같은 큰 호랑이의 배후에 존재하는 파벌에는 모두 부정부패의 풍조가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에서는 링지화를 향한 타격이 진작부터 최고 지도자의 계획안에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시진핑은 지난해 5월 8일 내부 연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사무처 간부는 반드시 충성해야 할 것’을 통해 중앙위원회 주임의 해당 지위 특수성을 겨냥해 “중앙위원회 간판을 이용해 연줄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지도자 명목으로 사적인 일을 처리하지 않아야 하며, 공권을 남용하지 말며, 업무적 유리함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지 말 것, 한순간 생각 하나의 잘못으로 제방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시진핑의 링지화에 대한 평가는 “평소에 표면적으로는 충성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결국 신뢰할 수 없다”는 말 속에 담겨 있다.

시진핑이 링지화를 불신하게 된 것은 전임 지도자 후진타오와 링지화 사이의 관계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후계자 지위에 대한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링지화는 사실 후진타오가 퇴진한 이후에도 2년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링지화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멸문지화를 당할지도 모를 ‘황위’ 계승 전쟁에 뛰어들었느냐는 앞으로 정부 쪽 소식을 기다려봐야 알 수 있겠다.

최근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은 저우융캉이 석유방(石油幫)과 쓰촨방(四川幫) 및 정법계 우두머리라는 점, 쉬차이허우는 매관매직을 통해 복잡하게 꼬인 군부 파벌을 형성했다는 점, 링지화는 서산회(西山會·산시성 출신 기업인들이 만든 조직)와 함께 무형의 비서방(秘書幫) 세력을 장악했다는 점이다.

시진핑이 파벌 정치를 근절하고자 하는 염원은 상당히 컸지만, 중국의 전제 체제 속에서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파벌정치는 전체정치의 부속품이자 토양이기 때문이다.

파벌정치는 중공의 관리 시스템

중공은 권력 구조를 종적, 횡적 관리 체제로 총괄했다. 중국의 현대 정치 제도에는 기관 사이의 수직적 관리 시스템과 지역 사이의 수평적 관리 시스템이 동시에 존재한다. 종적 지도 체제란 정부 기구 상하로 연결되는 직능 부문으로 모두 권력 체계에 속한다.

공안 계통을 예로 들자면 중앙정부에는 공안부가 있고, 성급 정부에는 성 공안청이 있고, 지급시 및 현급 정부에도 시현 공안국이 존재한다.

저우융캉이 정법계통을 장악한 여러 해 동안 성 공안청장 등용 권한을 장악해 모든 시스템을 통제했다.

지역적 횡적 관리 체제란 각 지방정부가 직권에 따라 나뉘는 부문이다. 20년 동안 종적 횡적 관리 체제는 새로운 의미가 생겨났는데, 종적 지도 체제는 때때로 중앙의 거시적 제어 정책을 의미하며 횡적 관리 체제는 지방 발전계획을 뜻한다.

종적 횡적 관리 체제에는 권력계가 장악한 직무와 영전 시스템이 공존하면서 이렇게 얽히고설킨 이익집단이 형성된 것이다.
저우융캉 수중의 석유계는 종적 관리 체제이면서 횡적 관리 체제(각 유전 관리국)이기도 한데, 정법계 주요 권력은 종적 관리 체제에 있지만 쓰촨 지방관료의 이익(횡적 체제)의 결합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 또 다른 단체는 공산주의 청년단 출신 관원들로 이루어졌지만, 어수선한 구조로 진정한 이익 집단을 구성하지 못했다.

지방 파벌 근절 못 하는 중앙정부

그동안 중공 정치는 지방 통치에 집중해 왔다. 마오쩌둥 시대는 중앙 집권으로 지방 세력의 형성에 극도로 민감했다.

일단 지방 세력의 불씨가 보이면 곧바로 잔혹하게 숙청했다. 과거 중앙은 광둥성에서 발생한 평화 토지 소유제 개혁이 광둥성 간부의 ‘지방주의’, ‘봉건관념’에서 근원 한 것으로 규정하고 1952년과 1957년 두 차례에 걸쳐 반(反)지방주의 운동을 펼쳤고 광둥성 간부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개혁개방 때까지 광둥성 간부들은 지방 세력이라는 말만 들어도 안색이 변하고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한 것으로 보아 당시 지방 세력이 얼마나 처참하게 숙청됐는지 상상이 갈 정도다.

개혁개방 이후 세제개혁으로 세금 분배제도가 생기자 지방정부는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경제의 권력과 능력을 갖추게 된다. 가장 먼저 농촌 지방 세력이 지방 자치단체를 지지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필자는 ‘현대화의 함정’ 제9장 ‘사회가 통제한 다원화 및 지방 악세력의 부흥’에서 해당 정치 추세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21세기가 되기 10년 전, 현급 지방정부 정치권에서 정치 일가 독점은 보편적인 추세가 되었다.

2011년 9월 1일, 남방주말은 ‘중현(中縣) 일가 정치 현상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의 저자는 베이징대 사회학과 박사 과정 펑쥔치로 그는 중부 모 현에서 부 향장과 현장 보좌인을 임시 역임하면서 해당 현의 복잡한 정치관계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작가는 현급 정권계통 내부에 각 일가 일원들의 재직 관계를 철저히 기록했다. 작가는 한 일가에서 간부를 얼마나 배출해내느냐에 따라 대가족과 소가족으로 분류했다.

한 일가가 5명 이상의 부과급 간부를 내면 대가족, 5명 이하거나 2명 이상이면 소가족으로 정했다고 서술했다. 저자의 세세한 조사에 따르면 현 내부에서 21개의 정치 대가족과 140개의 정치 소가족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뤄창핑은 링지화가 낙마한 후 ‘링지화와 비서장의 권력장’이라는 문장을 통해 링지화의 서산회를 자세히 소개했다. 뤄창핑은 이러한 정치 파벌에는 고정된 당헌, 조직 질서, 지점이 없으며 심지어 서열도 없지만 전국 곳곳에 석유방, 전력소비 설비, 철도대장 또는 지역 분류인 후난성 창더(常德), 장쑤성 옌청(鹽城), 지린성 옌볜(延邊)과 같은 기업이나 지역 꼬리표가 붙었다고 설명했다.

2014년 중국 반부패 정책으로 지방정치 이익집단 중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산시성이다. 산시성 관계자는 ‘쉐메이(血煤·피 묻은 석탄)의 부패’라고 설명했다. 중앙이 링지화와 연결되면서 관가와 기업계 모두 심각한 손실을 보았다.

권력 인수과정서 파벌정치의 역할

정치파벌 세력이 점차 커지자 중앙정부는 파벌 내부에서 이익이 전달되는 경로에도 관여하기 힘들어진다. 파벌과 세력 간에는 위험한 평행선이 형성되었다.

지방 파벌 세력은 보통 중앙 권력에 주동적으로 도전할 수 없었지만 만약 최고층에서 권력 투쟁이 일어날 때에는 주종 관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개입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각기 다른 세력 사이에 일단 투쟁이 일어나면 쏜살처럼 되돌릴 수 없는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중공 역사상 총 11차례 노선 투쟁이 있었는데 결과는 대부분 승리자는 왕이 됐고 패배자는 반역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권력 인계 과정 중에서 권력투쟁에 개입한 사람은 때때로 본인의 지위보다는 다른 이유로 참여했다.

저우융캉, 쉬차이허우는 중공 제18차 고위 권력 투쟁에서 보시라이를 위해 개입했다. 보시라이가 급부상하면 그들은 퇴직 후에도 본인과 일족의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러한 과정은 퇴직 후에 자녀들과 가족들의 평안도 책임지는 길이다.

최근 중공이 제정한 법률에 따라 시진핑의 임기는 10년이다. 지난날 주요 정력을 모두 과거에 형성된 파벌세력을 견제하는 데 집중했지만, 그는 집권을 방해하는 파벌세력을 소멸시켰을 뿐이지 파벌정치 자체를 없애지는 못했다.

파벌정치는 중공 정치제도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 체제가 존재하는 한 파벌정치는 제거될 수 없다.

최고 통치자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파벌이 모두 각 파벌의 균형을 통해 본인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명예를 지키는 것이다.

스탈린, 마오쩌둥의 재위 당시 권력과 명예는 하늘을 찔렀고 두 사람이 고위 파벌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자유자재였지만, 훗날 힘이 미치지 못했다. 그들이 죽으면서 당내 고위층 각 정치파벌은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각축을 벌였다. 권력투쟁에 패배한 자들은 구금되거나 죽음을 맞이했다.

덩샤오핑 체제 출범 이후 중공 고위층은 안정되는 듯했지만 모든 사람이 중공이 이미 성공적으로 권력 인계 제도를 규정하고 후계자 위기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해놓았노라고 굳게 믿게 했다.

그러나 최근 4년 동안 중국 고위층의 격렬한 충돌과 시진핑이 내놓은 2014년 반(反) 부정부패 정책의 중점은 정치파벌 제거에 초점이 맞춰있어 세계에 다시 한 번 중국의 잔혹한 현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중공의 강권 정치가 불러온 질병 즉, 파벌정치와 최고권력 인수 위기는 여전히 존재하며 중국 정치의 미래 향방을 제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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