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일보가 말하는 ‘철모자왕’은 누구인가?

허칭롄
2015년 1월 30일 업데이트: 2019년 11월 3일

인민일보는 15일부터 16일까지 연속으로 평론 문장을 발표해 부정부패에는 ‘철모자왕’이 없다면서 “부패 문제와 정치 문제는 서로 삼투 작용을 일으켜 당의 영도와 단결 통일을 해친다”라고 밝혔다. 봉황망은 “올해 잡아들이려는 큰 호랑이는 작년과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이로써 인민일보가 가리키는 이른바 철모자왕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철모자왕과 전설속의 면죄부

필자는 최근 2년 동안 이루어진 반부패 정책을 ‘소문이 주도하는 패턴’이라고 개괄하려 한다. 인민일보의 특수한 정치적 지위를 고려하면 해당 언론사가 내보낸 소식은 절대적으로 소홀하게 봐서는 안 된다.

이른바 면죄부란 세간에 떠도는 ‘입국불사 입상불죄(入局不死 入常不罪)’를 가리킨다. 저우융캉 사건이 터지면서 면죄부 관련 법규가 깨졌고, 인민일보는 철모자왕 이라는 네 글자를 대신 사용했다.

철모자왕이라는 명칭은 청나라 봉작 제도에서 쓰던 말이다. 청나라 황족이 작위를 물려받던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혈연관계로 작위를 봉한 것이 가장 흔한 관례이며, 자손이 지위를 계승받아 각 세대마다 한 등급씩 내려간다. 또 다른 방식은 유공자가 물려받는 방식으로 청조에는 총 12명의 왕의 후손이 작위를 세습해 강등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는 황제가 공로를 치하하는 것이며, 철모자왕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 중 8명은 청나라 개국 초에 공을 세운 황제의 종실이었으며, 또 다른 네거티브명은 중말기 황실 권력투쟁에서 공을 세워 책봉을 받은 이들이다.

인민일보가 말하는 철모자왕은 장쩌민, 후진타오 총 서기 및 그 외 리펑, 주룽지, 원자바오 세 명의 전 총리들과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태자당 원로 쩡칭홍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부패 문제와 정치 문제는 서로 삼투 작용을 일으켜 당의 영도와 단결 통일을 해친다”에서 지적한 죄와 관련이 있는 인물은 장쩌민, 쩡칭홍이다.

소문이 주도하는 정책 패턴

최근 2년간 이루어진 반부패 정책은 소문이 주도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 마오쩌둥이 애용하던 바람몰이와 유사하다. 마오쩌둥은 누군가를 정리하고 싶을 때 반드시 작은 범위에서 여론몰이 회의를 열어 문건을 하달했다. 그 후 정리하고자 하는 대상의 태도에 근거해 다음 목표가 되는 인물의 전략과 방향을 잡았다. 인민일보 평론가 문장(사설에 버금가는 평론)은 여론몰이 이후 나팔 불기 단계에 해당한다.

왕치산이 만들어낸 소문이 주도하는 반부패 정책 패턴에서 주로 사용한 조작 과정은 네티즌들에 의해 여섯 단계로 총괄되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소문 확산→측근 및 일가 사건 발생→공개적 노출 혹은 공문을 통해 소문 반박→중국매체 여론몰이, 홍콩 및 해외매체 공개 토론→정부측 공표→언론에 의한 명예 실추로 나뉜다. 뒤에 다섯 단계와 비교하면 첫 번째 단계의 소문 확산은 이른바 ‘전쟁에는 고정된 방식이 없고, 물은 고정된 모양이 없다’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앞서 말한 소문은 두 분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중국 및 해외 매체를 이용해 소문을 퍼뜨리고, 소문을 퍼뜨린 책임은 매체가 감당한다. 두 번째는 각기 다른 계급의 고위직 관료들의 언급을 통해 각종 신호를 내보내고, 외부의 추측을 유도한다. 결과로만 보면 일부 소문들은 바람처럼 불었다가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 양샤오두가 2014년 5.26 연설을 통해 “제18차 당 대회 이후에 수렴되지 않은 사항들만 중점 조사한다. 현재 중요한 요직은 당원 간부”라고 언급한 사례가 그 예다. 그는 제18차 당대회를 기준으로 선을 긋고 이미 퇴직한 정치국 상무위원과 부패(가족 부패 포함)에 대해 더 이상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지금 보면 헛수고에 불과하다. 만약 시진핑, 왕치산이 발표한 각종 연설이었더라면 반부패 정책 표적으로 정해진 이들은 모두 화제 인물이 되어 매체에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됐을 것이다.

간접적 정치 문제로 위협

보시라이 사건 초기, 원자바오는 해당 사건을 노선투쟁으로 키우려 했지만 당내에서 반대에 부딪혔다. 따라서 보시라이의 죄는 부패와 친인척 문제로 포괄되었고 정치 문제와 연관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우융캉 사건은 달랐다. 국가 기밀 누설죄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을 뿐 아니라 최근 저우융캉에 내려진 형에 대해 살펴보면 저우융캉, 보시라이, 쩡칭홍과 함께 큰 판을 벌이려고 공모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월 12일, 인민일보는 중국경제주간 문장에 관해 저우융캉이 사형이나 사형집행유예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 바 있다.

1월 13일, 봉황망은 저우융캉이 보시라이와 밀담을 통해 ‘큰 판 벌이기(봉황주간 2015년 제2기(총 제531기)표지 보도’, ‘도당에 대한 중공의 선전포고-저우융캉 6대 죄행 분석’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해당 문장은 처음으로 저우융캉이 충칭에서 보시라이와 밀담을 가졌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기사에 따르면 두 사람이 나눈 주요 대화 내용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론과 실천을 철저히 부정하고, 마오쩌둥이 말년에 제시한 중국 사회과 관련된 무산계급과 자산계급,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주요 모순의 논술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저우융캉, 보시라이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과 가치관은 일맥상통했고, ‘큰 판 벌이기’ 공모에 어려운 점이 없었다.

69세인 저우융캉은 정치국 상무위원은 연속으로 두 임기를 재직할 수 없다는 법규와 ‘칠상팔하(68세가 되면 퇴직해야하며 67세 이하의 정치국 위원은 상무위원으로 진급 가능)’의 퇴직 제도를 위반했다. 또 조직을 구성해 전국 인민대표대회 위원장으로서의 진급을 노려 일부 세력의 막후 인물이 되고자 했다. 이와 동시에 저우융캉은 곳곳에 심복을 심어 당내 반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노선투쟁이라는 네 글자는 평범한 말이 아니다. 이 죄명은 사건을 처리하는 규모와 연루된 인원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저우융캉이 지속적 연임을 시도했다는 죄명이 성립되면 반역을 꾀한 대죄에 해당한다.

2015년 반부패 정책의 3가지 핵심

인민일보와 봉황망이 앞 다퉈 내보낸 소문과 최근 중국 및 외신이 보도한 각종 소식을 종합해보면 시진핑이 최근 세 가지 큰 일을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반부패 정책을 통해 군대와 국가안보 계통에 대한 막중한 임무를 처리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실세가의 자녀들에게 간접적 경고를 주는 방법으로 솔선수범하여 훙얼다이(紅二代, 공산당 고위직 2세)가 경제계에서 물러나는 모범을 보이도록 했다. 세 번째로 국가급 큰 호랑이 저우융캉 사건에 반역을 꾀했다는 낙인을 찍은 점이다.

그렇다면 올해의 반부패 운동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1월 16일 봉황망은 “새해에 잡힐 호랑이 등급은 작년보다 덜 하진 않을 것” 이라며 올해도 숙청이 이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1. 반부패 정책 표적은 철모자왕

최근 장쩌민 전 주석의 아들 장몐헝(江綿恆)이 면직당했다. 중국 언론은 장멘헝이 연령 문제로 더 이상 중국 과학원 상하이 분원 원장을 맡을 수 없다고 보도했다. 이 직무는 차장급으로 퇴직 연령은 65세이지만, 장멘헝은 1951년 4월생으로 65세가 되려면 아직 1년 3개월이나 남았다. 중국 과학원 상하이 분원 원장직을 앞서 면직당한 것으로 보아 장쩌민이 세력을 잃을 날도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외부에 비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늙은 호랑이는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국가 부주석 쩡칭홍이다. 최근 국안부에 발생한 정치적 혼란은 국안계통의 실세인 쩡칭홍에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최근 구류된 국안부 부부장 마졘은 쩡칭홍의 ‘비밀무기’로 불리며 과거 국안부 제10국(대외보방정찰국) 소속으로 재외기관 및 유학생을 감시하며 각종 적대 조직 활동을 정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직무는 일부 중요한 특수임무를 관할한다. 마졘이 맡은 직무의 중요성과 공산당 국가의 권력투쟁을 고려하면, 마졘의 체포소식은 중대한 신호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2. 반부패와 정치 문제 연관성

1989년 6.4 사건 이후 중공 정치 고위층에는 ‘노선 문제(정치의식 형태 문제)’로 표적이 되는 사람은 없었다. 봉황망이 중요한 매체임을 고려할 때 최근 표지 문장이 폭로한 저우융캉, 보시라이가 밀모한 ‘큰 판 벌이기’ 기사와 인민일보가 1월 16일 평론을 통해 보도한 ‘중공 부패 관계도’ 기사의 특징은 부패문제와 정치문제가 상호 작용해 당의 영도와 단결 통일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최근 연설에서 반 부정부패에 끝은 없다고 밝혔다. 이로써 인민일보가 가리키는 철모자왕이 누구인지는 거의 드러난 셈이다.

3. 훙얼다이는 어떻게 경제계에서 물러났는가?

이 점에 대해서 필자는 ‘시진핑이 호소하는 훙얼다이 경제계 퇴출’ 이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이는 중국 및 국제 여론이 베이징 당국의 반부패 정책을 검증하는 기준이 되었다. 최근 시진핑의 연설은 때마침 대대적인 본보기가 되었고, “높은 태세”, “절대 묵인 불가”, “극약처방”, “치료 가능” 등 반부패 정책에 대한 결심을 읽을 수 있는 단어로 가득하다. 반부패 정책에 참여할 수 없는 중국 국민들은 2015년 반부패 정책의 진행 결과를 침착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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