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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물에 용해되는 알약, 핵폭발과 흡사
알약은 복용한 후 인체 내에서 용해된 후 흡수된다. 알약이 용해되는 과정을 빠른 화면으로 보면 핵폭탄이 폭발하듯 순식간에 알약의 형체가 와해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유튜브 매크로룸(Macro Room)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서는 다양한 알약이 물에 용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
구글 엔지니어가 알려주는 유튜브 영상 처리과정
2005년에 설립돼 현재 구글사에 속해 있는 유튜브는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 사이트다. 매 분 업로드 되는 동영상 길이는 영화 184편과 맞먹는 400시간에 이른다. 구글 엔지니어는 이런 방대한 동영상 자료를 어떻게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유튜브 낫앤로(Nat and Lo) 채널은 최근 유튜브 사이트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소개하는 두 편의 영상을 제작했다. 영상에서는 두 명의 주인공이 구글의 여러 엔지니어들을 방문해 자신들이 업로드한 동영상이 어떻게 처리되고 정상적으로 재생되는 지에 대한 비밀을 캐냈다. 먼저 동영상 업로드의 경우, 유튜브 사이트는 먼저 사용자가 업로드한 다양한 해상도, 파일 형식의 동영상을 전 세계 사용자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유튜브 재생이 가능한 방식으로 변환시킨다. 유튜브 사용자들이 업로드 한 동영상 파일은 보통 데이터가 매우 커서 쉽게 재생할 수 없을 뿐더러 처리 지연, 스마트폰 과열 심지어 버퍼링까지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유튜브는 처리 프로그램을 사용해 즉시 영상을 검사한 뒤 다시 작은 크기의 파일로 축소시킨다. 이 시스템은 동영상을 여러 화면으로 분할하는데, 매 화면은 약 5초로 각 화면을 서로 다른 서버로 보내 처리해 압축 버전을 생성한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 압축된 화면들이 전부 새롭게 연결돼 방영할 수 있는 동영상 버전이 된다. 이후 사용자의 영상 해상도에 따라 시스템에서는 다양한 플레이 장치에 필요한 25개의 각기 다른 동영상 버전을 송출할 수 있다. 구글 엔지니어들은 설령 동영상 파일이 수백 배로 작아져도 사람의 시각은 화질이 감소된 것을 알아볼 수 없다고 한다. 이 밖에 사용자들이 동영상을 업로드한 후 유튜브는 가장 적합한 압축 비율을 찾아내며, 동영상 속 음성을 인식해 자동 자막도 생성할 수 있다. 동영상 재생은 단순하게 파일을 다운받게 해 사용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이 방법은 10년 전에 사용하던 구식이며, 구글 엔지니어들은 현재 일종 ‘식빵 조각(Sliced Bread)’이라고 부르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동영상을 몇 개 조각으로 나누는데 사용자들은 한편으로는 영상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영상을 다운로드하는 것이다. 한 조각을 다운받으면 유튜브 시스템에서 어느 조각을 이어서 다운받아야 할지와 그 크기를 판단한다. 사용자들이 동영상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유튜브는 우선 사용자들의 상황을 분석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 광대역망, 화면 크기, 다운로드하는 영상의 크기 등을 분석하는데, 만약 시스템에서 모든 상황이 양호하다고 판정하면 먼저 고해상도 영상조각을 방영하고, 인터넷이 느려지면 해상도를 낮춤으로써 재생 속도 지연을 피한다. 동영상 재생 속도에 영향을 끼치는 또 다른 요소는 동영상 파일의 실제 위치다. 사용자가 동영상을 재생하면 유튜브는 먼저 사용자와 거리가 비교적 가깝고 유튜브와 제휴관계가 있는 인터넷서비스공급업체(ISP)로부터 영상을 확보하는데, 그 영상은 보통 ISP 하드웨어에 임시저장 되어 있다. 만약 ISP에 이 영상이 없으면 시스템에서는 상위 서버에 그 동영상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며, 만약 그래도 없으면 구글 자료센터에서 영상을 확보해 사용자에게 보여준다. 인기 동영상의 경우 ISP 하드웨어는 보통 내용을 임시 저장해 사용자가 즉시 감상할 수 있도록 제공함으로써 대기 시간을 줄여준다. -
4천년 전 중국 ‘대홍수 전설’, 사실로 밝혀져
중국 황하에서 4000년 전에 대홍수가 발생했다는 증거가 처음 발견돼 ‘대우치수(大禹治水)’ 이야기도 신화가 아님이 입증됐다. 세계적으로 역사 깊은 문명에는 ... -
진시황 (4) -법제를 통일하다
5. 화폐 및 도량형을 통일하다 전국 시대에는 각국의 문자와 화폐, 도량형이 제각기 달랐다. 제나라와 연나라 등 국가에서는 도폐(刀幣)를 발행했고, 조나라, 위나라, 한나라 등 국가에서는 삽 모양의 지폐가 통용되었으며 진나라와 동주에서는 사각형의 구멍이 뚫린 원형 동전이 유통되었으나 초나라에서는 조개 화폐가 사용되었다. 진시황은 전국적으로 사각형의 구멍이 뚫린 원형 동전을 발행해 사용하도록 하고 거북이 등껍질, 조개, 옥 등으로 만든 6국 각자의 화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전국적으로 통일해서 금, 동으로 만든 원형 화폐를 사용하도록 했는데, 그중 금으로 만든 화폐는 상폐(上幣), 동으로 만든 화폐는 하폐였다. 이런 동전들은 2천여 년이 지난 청나라 때까지도 사용되었다. 도량형은 화폐(교환수단)과 함께 국가의 세수와 관련된 중요한 요소다. 도량형의 도(度)는 길이, 양(量)은 용적, 형(衡)은 중량을 가리킨다. 당시 중국은 7개국의 도량형이 제각각이었다. 나라마다 사용하는 길이의 단위와 양을 제는 도구의 크기와 단위도 달라 상품 교역과 세금 부과에 혼선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바로 직후 조령을 내려 진나라의 제도를 기준으로 도량형을 통일했다. 또한 길이·부피·무게의 단위를 십진제로 변경한 후 실제 바뀐 도량형을 사용하는지 정기감찰을 실시했다. 또한 관부의 책임 하에 각종 기구를 개선하거나 새로 제작해 전국에 배포, 사용하도록 했다. 수레바퀴 폭을 통일한 ‘거동궤(車同軌)’ 역시 이 같은 노력의 하나였다. 6. 문자를 통일, 후대를 이롭게 하다 ‘문이재도(文以載道)’라는 말처럼 문자는 사람과 신(神) 사이의 소통에 이용된다. 상나라 갑골문 단계에 이르렀을 때 한자는 성숙기에 접어들어 있었다. 그러나 전국 시대에 이르러 각 열국이 오랜 기간 분열된 후 같은 글자를 다르게 발음하는 현상이 늘어나 문자의 형태까지 달라지는 현상이 발생, 사람들 간의 문화적 교류에 지장이 생기고 서로 오해하는 일이 발생했으며 문화 역사를 정확히 기재하는 데도 지장이 있었다. 6국을 멸망시킨 후 진시황은 도량형을 통일하는 한편으로 6국의 옛 문자를 폐지하도록 명령하고 정위(廷尉) 이사(李斯)로 하여금 문자 통일 사업을 담당하도록 했다. 이사는 원래 진나라 자체를 기초로 하여 자형이 일정하고 획수가 간단하며 쓰기 편리한 소전(小篆·진전[秦篆]이라고도 함)체를 표준 문자로 삼아 전국에 보급함으로써 ‘서동문(書同文)’을 실현했다. 소전체는 6국 문자의 우수한 부분을 취해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획 수가 간단하다는 특징을 갖추고 있어 보급하기 쉬웠다. 한편 민간에는 소전체보다도 한층 간단한 문자인 예서(隸書)가 유행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 중국 문자의 전신이다. 문자 통일은 역사 문화가 정확히 보전되도록 함으로써 후대 사람들이 신전 문화와 정법(正法), 정리(正理)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 후손들을 이롭게 하였다. 후세에 ‘만불이 속세에 내려오고, 만법이 하나로 돌아갈(萬佛臨凡·萬法歸一)’때가 오면 후대 사람들은 오해 없이 대법(大法)과 대도(大道)를 얻고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 인류의 마지막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7. 궁과 왕릉, 천문대를 건설하다 진시황은 인류 역사를 창조하고 중화 문화의 찬란함을 떨치고자 하늘의 궁전을 인간 세계로 옮겨옴으로써 유명한 아방궁(阿房宮)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란과 후세 사람들에 의한 파괴로 인해 끝내 준공되지 못했고 후세에 전해지지도 못했다. 청나라 원요(袁耀) <아방궁도> 12첩, 채색 견본, 높이 194.5cm, 가로폭 60.5cm, 베이징 고궁박물관 소장 | 위키피디아 커먼스한 왕조의 천자와 민중, 문화와 복식, 사회상과 특징은 모두 그 왕조에만 국한되는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성군과 훌륭한 임금들은 궁전, 왕릉, 지하 궁전들을 지어 당대의 가장 훌륭한 문화를 집대성한 후 지하에 매장, 해당 왕조의 문화적 성취를 보존하고자 했다. 이는 즉 각 왕조 및 각 왕조에 대응되는 천국 문화의 특징을 보존하는 것이기도 했다. 1974년 진시황 여산묘(驪山墓) 동쪽에서 발견된, 총면적 2만여㎡에 달하는 병마용에는 신장 1.8m 가량의 도자기 인형 7천여 개 및 실제 말 크기의 도자기 말 7백여 필, 전차 130승가량이 진열되어 있었다. 인류 문명의 보물이자 문화, 예술, 기술의 정수인 이들 유물은 2천여 년간 지하에 안전하게 잠자고 있었다. 현대인들은 병마용에 들어가 발굴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천여 년 전 후세인들 및 전 세계를 위해 이처럼 귀중한 유물을 남겨 준 진시황의 업적에 대해 감탄하고 감사하게 되었다. 하늘과 별을 관찰하는 것, 신의 계시를 얻는 것은 인류가 신을 믿고 경배하며 신령의 계시를 얻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한 방식이다. 고대 서적에서는 사람들이 하늘과 별을 관찰하고 점성술을 통해 인류의 변화와 길흉화복을 알고 각종 행위와 활동에 있어 참고로 삼았다.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 3대 왕조 모두 별을 관찰하는 천문대를 다수 지었다. 수많은 지상 천문대는 천인합일의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하늘 위의 별자리에 대응해 지어졌다. 천문대 가운데 다수는 신령들에게 제사 지내기 위한 용도의 제대(祭臺) 부근에 있었다. 진나라를 건립한 이후 진시황은 천문대를 진나라 전역으로 확대 보급했다. <한서 지리지>에서는 산시(陝西) 위린(榆林)을 ‘정림(楨林)’이라고 일컫고 있는데 ‘정(貞)’은 ‘정복(貞蔔)’, ‘성점(星占)’이라는 뜻으로, ‘정림’이라는 지명은 곧 천문대가 무척 많아 숲을 이룰 정도라는 의미다. 천문대 건설은 진 제국 시기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았다. 진시황은 일년 내내 볼 수 있는 별자리 332개(성수(星宿) 1424개)를 지면 위에 그대로 옮기고 흙을 다진 것으로 외곽선을 만들거나 흙을 깎아 토대(土臺)를 만들어 표시했다. 총 1424개에 달하는 원형 혹은 타원형 모양의 이들 토대는 2만8천㎡의 면적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진나라 당시 상군(上郡) 지역의 절반에 해당하는 천문대의 분포 범위는 동쪽으로는 황하, 서쪽으로는 장성, 남쪽으로는 수연하(秀延河) 하류, 북쪽으로는 우르도스 고원 동북부에 이르며 천문대의 수량이 무척 많다. 2008년 산시성 위린에서 발견된 진나라 천문대 유적은 그 윤곽이 여와보천(女媧補天·여와가 하늘을 보수하다)의 형상을 띠고 있다. 여와의 머리는 북쪽, 다리는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옆으로 기울인 몸과 높이 치켜든 머리, 팔을 구부려 평평하게 받치고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보천(補天)하는 모습이다. 여와의 신장은 809진리(秦裏·진나라의 길이 단위, 1진리=0.42㎞)로 약 337㎞에 해당하며, 사타구니 폭은 365진리로 약 152㎞다. 여와의 신장은 곤륜산의 거대함을 상징하고, 사타구니 폭은 하늘 전체의 위도를 나타낸다. 키와 신체 각 치수를 합하면 구오지존(九五之尊)이 되는데 이는 여와의 존귀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와 형상을 띠는 천문대는 아래쪽(남쪽)에서부터 위쪽(북쪽)으로 분포하며 총 아홉 가지 부분으로 나뉘는데 부분마다 약간씩 분포된 성수 혹은 성관(星官)은 각각 9층천(天)을 상징, ‘하늘은 9개 층이 있음(天有九層)’을 표현했다. ... -
‘욕구’ 이해하면 건강한 식생활 유지된다
우리 몸이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안다면, 우리는 왜 정크푸드에 끌리는가? 텍사스 A&M 공중보건대학 영양사 테일러 뉴하우스에 의하면 욕구와 ...진시황(3) – 만대의 기틀을 닦은 성군 통치
1. 천하를 평정하고 영토 확장하다 진시황은 원대한 포부와 큰 뜻을 지닌 성군(聖君)으로서 평생 나랏일을 돌보는 데에 힘썼다. 사서에는 진시황이 ‘낮에는 옥사를 판결하고 밤에는 업무를 보았다(晝判獄而夜理書)’다고 기록해 밤낮없이 부지런히 일했다고 전했다.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이 매일 처리한 각종 상소문 간찰은 무게가 130여 근에 달했다고 한다.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룬 후에도 진시황은 비상한 재능과 원대한 계략을 통해 영토 확장을 계속해나갔고, 새로운 법령과 조치를 빠르게 제정·반포함으로써 중국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통일 황조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진시황이 제정한 황조의 예절은 이후 2천 년간 이어지는 중국 역사에 있어 같은 튼튼한 기틀이 되며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진나라 이전의 하(夏)·상(商)·주(周)는 모두 대국이었다. 중간 규모의 국가를 가리켜 방국(方國) 혹은 제후라고 하고, 촘촘히 분포되어 있던 소규모 국가는 민족명을 따라 이름 붙였다. 이러한 국가들 사이에는 융·병합이 끊임없었다. 하나라 영토는 오늘날의 황하 중류의 남북 양측 일대였다. 상나라는 하나라를 멸망시킨 후 영토를 황하 중하류 양측 일대로 확장했으나 국경을 명확히 설정한 적은 없었다. 서주(西周)는 상나라를 멸망시킨 후 “천하에 왕토 아닌 곳은 없다”(溥(普)天之下,莫非王土)’(<시경·소야·북산>)고 자처했다. 춘추시대 전기 왕실 대부였던 첨환백(詹桓伯)은 “우리(주나라는) 하나라 때 후직(後稷)의 공로로 위(魏)·태(駘)·예(芮)·기(岐)·필(畢) 지방을 서쪽 영토로 삼았고, 무왕이 상나라를 이긴 후 포고(蒲姑)·상(商)·엄(奄) 지방을 동쪽 영토로 삼았고, 파(巴)·복(濮)·초(楚)·등(鄧) 지방을 남쪽 영토로 삼았고, 숙신(肅慎)·연(燕)·박(毫) 지방을 북쪽 영토로 삼았다”(<좌전·소공9년>)고 말했다. 주나라 왕실은 이러한 범위 내에서조차 통일을 이루지 못했던 관계로, 왕실은 다만 방기(邦畿) 이내의 구역만을 점거했고 이외에는 모두 크고 작은 제후국들로서 독립 혹은 반독립 상태를 유지했다. 춘추시대 왕실이 쇠퇴함에 따라 대국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기 시작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7웅이 서로 다투니 통일을 논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러한 영토 판도는 진시황 당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본질적인 변화를 나타냈다. 진시황은 6국을 멸망시킨 이후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초나라를 멸망시킨 군사통수 왕전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동남쪽으로 진군하도록 했다. 동월(東越)이 투항한 이후 그 영토를 회계군(會稽郡·오늘날의 장쑤성 쑤저우)으로 편입시켰다. 민월(閩越)이 투항한 이후에는 그 영토에 민중군(閩中郡·오늘날의 푸젠성 푸저우)을 세웠다. 이후 장군 도휴(屠睢) 등을 보내 영남(嶺南) 지방에 진군, 남월 북구에 남해(南海·오늘날의 광둥성 광저우), 계림(桂林, 오늘날의 광시성 구이핑), 상(象, 오늘날의 충쭤(崇左)) 3군을 설치했다. 또한 상안(常頞)을 서남이(西南夷)로 보내 오척도(五尺道)를 열었는데, 오척도는 오늘날의 쓰촨성 이빈(宜賓) 남쪽에서부터 윈난성 취징(曲靖)을 포괄했다. 진시황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중원 남북의 영토 대통일을 이루어냈다. 진나라 영토는 “동쪽으로는 바다에 이르고 조선에 미쳤으며, 서쪽으로는 임조(臨洮)와 강중(羌中)에 다다랐고 남쪽으로는 북향호(北向戶, 오늘날의 베트남 중부), 북쪽으로는 황하를 요새 삼아 음산(陰山)에서 요동까지 이르렀다.”(<사기 진시황본기>) 이는 서주 시대 영토에 비해 최소 5배 이상 확대된 것으로, 현대 중국의 영토 판도에 있어 기틀이 되었으며 중화 문화가 보다 많은 종족들과 지역까지 포괄하도록 하였다.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총 549년간 지속된 춘추전국시대 동안 제후국들 간에는 혼전이 끊이지 않았으며 백성들이 전란을 피하느라 갈 곳 없이 이곳저곳 떠돌아다닌 탓에 경작지가 대량으로 황폐해지는 등 농업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중원 각지에서 전쟁을 벌이느라 북방을 신경 쓸 여력이 없던 틈을 타 남쪽으로 진격해 온 흉노족은 진나라, 조나라, 연나라 3국의 북쪽 변경 지대를 공략, 주변 지역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화하 민족의 자손들에게 경제 및 생활상의 각종 재난을 안겨주었다. 진시황 32년(기원전 215년), 명장 몽염(蒙恬)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북진, 흉노족을 공격하여 하남(河南, 오늘날의 내몽고 이커자오멍(伊克昭盟))을 수복하고 34현을 설치했다. 그 후 북쪽으로 황하를 건너 음산을 기반으로 옛 진나라, 조나라, 연나라의 장성을 하나로 이었다. 이렇게 연결된 장성은 서쪽으로는 임조(오늘날의 간쑤성 민(岷)현), 동쪽으로는 압록강까지 약 1만 리에 달했으며 북방의 흉노족을 방어하는 용도로 쓰였으니 이것이 바로 유명한 만리장성이다. 흉노족의 위협을 제거한 직후 진시황은 곧바로 공격 방향을 전환, 월족(越族) 거주 지역을 굴복시켜 대거 개발하고자 했다. 그는 50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월족 지역, 월인 잡거 지역으로 이주시킴으로써 중화 문화를 주변 지역과 그 거주인들에게 전파시켰다. 진시황 재위 기간의 영토는 전국시대의 지도를 기준으로 볼 때 전국 7웅의 세력 범위의 거의 2배에 달한다. 진시황은 군현을 설치해 정복한 토지에 대한 관리와 제도 수립에 힘썼는데 이는 통일한 토지에 대한 통치를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다. 후세 사람들은 진시황과 한 무제의 공이 가장 크다고 평가하는데 이는 진시황의 역사적 업적이 한 무제와 나란히 평가될 정도라는 의미다. 2. 황제 아래 3공과 9경을 두다 황제를 국가의 원수로 삼다 : 진시황은 왕(王)이라는 호칭을 폐지하고 황제(皇帝)로 이를 대신했는데 이는 역사를 새로 연 위대한 업적이다. 옛날에는 삼황과 오제만 있었을 뿐 황제라는 칭호는 존재하지 않았다. 황제는 이미 옛 제도상의 원주민 중 대종(大宗)을 넘어선 지고 무상의 국군(國君)이었다. 이에 걸맞도록 황후 역시 옛 제도상 국왕의 여러 비빈 중 정실에 불과했던 존재에서 6궁을 관장하는 천하의 어머니 격인 존재로 탈바꿈했다. 황태자 또한 더 이상 옛 제도상 원주민 가운데 종자(宗子)가 아니라 법률상 황위 계승자인 저군(儲君)이 되었다. 황제는 군(君)과 왕(王)의 위에 위치한 존재로, 군과 왕에 대한 임명권을 가졌다. 황권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었기에 황제는 인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존재였다. 진시황은 2천여 년에 걸친 선진(先秦)시기를 종결시킨 동시에 이후 2천여 년의 역사를 개창함으로써 이번 인류의 중화 역사상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진시황(2) – 전란시대를 끝내고 천하를 통일하다
진시황은 천시(天時)·지리(地理)를 얻어 순식간에 중국을 통일했고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냈다. 이 시기의 역사는 언뜻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신(神)께서는 전쟁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정의를 지키고 하늘을 경외하며 분쟁을 종결짓도록 가르치셨다. 동시에 진시황의 천하통일로 혼란이 일단락됐다는 사실은 ‘하늘의 뜻은 거스를 수 없다’는 이치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제2장 진시황, 천하를 통일하다 1. 진나라 6대에 걸쳐 부국강병 달성 기원전 361년 왕위를 승계받은 진나라 효공(孝公)이 적극적으로 현인을 찾아 나서니 순식간에 천하 인재들이 서쪽으로 몰려들었다. 진나라에서 등용된 승상과 주요 책사들 가운데는 범수(範睢), 여불위, 이사(李斯) 등 다른 제후국 출신이 많았다. 이들은 본국에서는 중용되지 못했으나 진나라에 와서 주요한 재상이나 고위 관리가 됐다. 전국시대 중기, 두 강국인 진나라와 제나라는 동서로 대치하고 있었는데 진나라의 군사력은 당대 최강이었다. 이러한 대치상태에 강한 불안감을 느낀 각국은 소진(蘇秦)이 제시한 합종전략을 받아들여 서로 연합해서 진나라에 대항했다. 진나라는 장의(張儀)가 주장한 연횡전략으로 연맹에 맞섰다. 기원전 318년부터 269년까지 진나라는 주변 6개국과 정복전쟁을 벌이면서 나날이 강성해져 갔다. 6국은 여러 차례 합동으로 진나라를 공격했으나 진나라의 기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진나라는 이미 6대에 걸친 왕들의 노력을 통해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춘 상태였다. 이는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탄탄한 기반이 됐다. 2. 천하통일의 예언과 진시황의 탄생 진시황은 기원전 259년 책력 정월 조나라 수도 한단(邯鄲)에서 태어났다. <사기·진시황본기>에서는 “태어났을 때 이름은 정(政)이고 성은 조(趙)씨였다”고 기록했고 <동주열국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태어나던 때 온 방 안에 붉은빛이 가득하고 온갖 새들이 날아올랐다. 태어난 아이를 보니 코는 오똑하고 눈은 가늘고 길며, 이마는 네모지고 눈동자가 두 개였으며 입안에는 치아가 여러 개 있었다. 등에는 용비늘이 돋아 있었고 울음소리가 아주 커서 길 가는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천하를 통일할 영웅이 진나라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은 예전부터 있었다. 진나라 사람들은 문공 4년(기원전 762년)에 견하(汧河)와 위수가 만나는 지점에 도시를 건설하고 정주하기 시작했다. <사기·봉선서(封禪書)>에는 이런 기록이 전해졌다. “어느 날 밤, 문공은 꿈에서 누런 뱀을 보았는데 그 몸은 하늘에서 땅까지 이어져 있었고 입은 부현(鄜縣·오늘날의 산시성 옌안 부근) 일대까지 뻗어 있었다. 문공이 태사 돈(敦)에게 물으니 돈은 상제께서 보여주시는 징조라며 제사를 지낼 것을 권했다. 이에 문공은 부현에 제단(鄜畤)을 세우고 소·양·돼지를 바쳐 백제(白帝)께 제사 지냈다.” <사기·봉선서>에는 문공 19년 진보(陳寶)를 얻은 일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제단을 세운 지 9년 되던 해, 문공은 옥석을 하나 얻게 되어 진창산(陳倉山) 북쪽의 산비탈에 성을 짓고 그 옥석을 모셔 제사를 지냈다. 옥석의 신령은 어떤 때는 한 해가 다 가도록 오지 않았고 어떤 때는 한 해에 여러 번 오기도 했다. 신령은 항상 밤에만 왔는데 마치 유성처럼 광채를 발했다. 동남쪽에서 사성(祠城)으로 들어왔는데 모습은 수탉 같았으며 밤중에 큰 소리를 내니 들꿩들이 놀라 울었다. 짐승을 한 마리 바쳐 제사 지내고 옥석을 가리켜 진보라고 했다.” <사기·봉선서>에는 진보에 대한 주석도 달렸는데 “질감이 돌 같고 허파를 닮았다”, “옥으로 된 닭 혹은 돌으로 된 닭 같았다”고 적었다. 진보에 지내는 제사를 보계신사(寶雞神祠)라고도 불렀는데, 오늘날의 산시성 바오지(寶雞)시 이름의 유래가 됐다. 또한 진보를 얻는 자는 패왕이 될 운명이었다. <사기·봉선서>에서는 “진나라 문공은 사냥을 나갔다가 흑룡을 얻었는데 이는 그 수덕(水德·오행 중 물에 상응하는 왕자의 덕)의 길상물이었다”고 했다. 진나라가 수덕에 힘입어 불(火), 즉 주나라를 대체하리라는 것을 암시한 것이었다. ...진시황(1) – 혼란한 분쟁 시기
백년 전쟁으로 도탄에 빠졌던 백성들이 순식간에 태평천하 얻었고 백가(百家) 난립으로 정도가 흐리더니 단숨에 재가 되어 사라졌네 부흥을 고대하던 대업이 시작되니 모든 분야의 정통이 확립됐나니 백세(百世)의 기반 닦아 기본을 바로 세운 진시황은 대대로 찬양받으리 百年征戰, 生靈塗炭, 一朝得太平. 百家亂世, 惑擾正道, 一炬化灰揚. 百廢待興,, 大業初始, 萬端啟正統. 百世築基, 本正源清, 萬代讚始皇!. 제1장 혼란한 분쟁의 시기 신전(神傳) 문화 지구상의 어떤 민족이든 모두 역사를 거쳐오면서 신령의 존재와 인과응보의 법칙을 굳게 믿어왔다. 그렇기에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자발적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사회의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류의 도덕성이 점차 악화됨에 따라 신에 대한 신앙도 줄어들었고, 신 역시 사람들에게 기적을 잘 보여주지 않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노자가 세상에 나와 도를 전파했으며 다른 국가에서는 석가모니와 예수가 출현해 이번 인류에게 부처와 도, 신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수련을 통해 인간의 본연으로 되돌아가고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한편 인류의 도덕성을 회복시켰다. 이러한 시기가 지나간 이후 춘추 오패가 앞다투어 흥기, 전국 칠웅이 서로 패권을 다투더니 진시황이 6국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했다. 이는 ‘무력으로 천하를 제패하고 왕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이치가 발현된 것이기도 했다. 1. 도가와 유가의 출현, 백가의 어지러운 논쟁 수많은 나라들이 서로 다투며 세상을 어지럽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춘추전국시대. 창세주 및 여러 신은 선각자를 조용히 인간 세상으로 내려보냈으니 그 분이 바로 노자다. 성은 이 씨,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이었던 노자는 법과 도를 설파하는 한편 도가 수련법을 담은 경전인 <도덕경>을 남겼다. 노자는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을 가르치며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본연으로 회귀하는 것(返本歸眞)”임을 알려 주었다. 노자가 쓴 <도덕경>은 5천 자라는 적은 분량 속에 ‘도생만물(道生萬物)’이라는 도리를 여래 부처의 차원에서 설명했다. 또한 우주의 특정한 공간 속에서 운용되는 상생상극이라는 원리를 해설, 수련자들에게 인간 세상에서 무위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도를 얻고 성불할 수 있으며 결국 신통을 얻어 무불위(無不為)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형태가 없는 큰 도는 무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불위로서, 도를 따르는 자는 흥하지만 도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 노자는 왕도와 유가사상 그리고 용병의 묘를 몇 자 되지 않는 언어 속에 모두 담아냈다. 명나라 <공자성적도(孔子聖跡圖)> 화책 중 <문례노담도(問禮老聃圖)> | ...오천 년 신전(神傳)문화와 천고 영웅들
수천 년 중화역사를 살펴보면, 창세주께서는 성황(聖皇), 진인(真人), 명신(名臣), 전신(戰神), 시선(詩仙) 등을 통해 화하(華夏)민족에게 살아갈 터전을 열어 주고 도덕 기준을 정해 줬으며 사상의 깊이를 풍부하게 해주고 전통문화의 기초를 닦아 주셨다. 또 직접 나라를 세우고 체제를 수립했을 뿐만 아니라 누대로 천국 중생들을 인간세상에 내려보내 연을 맺게 함으로써 중화 세계에 다양한 천국 문화가 전파되고 재해석되게 해 신전(神傳) 문화를 보다 풍부하게 하셨다. 중토(中土) 신주(神州)가 비록 넓다고는 하나 우주 곳곳의 천조(天朝) 중생들을 이곳에 모두 모이게 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오천 년 화하민족 역사가 비록 길다고는 하나 모든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한 세대 안에 담아낼 방도는 없다. 그런 이유로 한 세대의 천자, 민중, 문화, 복식, 풍속 그리고 특징과 의미들이 한데 모여 찬란히 빛나고 사방 곳곳으로 퍼져나가 온 세상이 우러러보니 이로써 눈부시고도 방대한 오천 년 신전 문화가 완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신전 문화, 즉 전통 혹은 정통 중화문화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 가운데 조상을 섬기지 않는 민족은 없으며, 어느 국가라도 자신들만의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추앙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하늘의 점지를 받고 신의 선택을 받아 천혜의 자원을 갖추고 유사 이래 역사 기록이 끊임없이 이어져 온 유구한 오천 년 중화문화만은 유독 지난 수십 년간 신주(神州) 본토에서 비방과 악의적인 묘사, 자의적인 왜곡, 모욕을 받아왔으며 근본을 망각한 이들에 의해 화하민족의 생명의 근원이 훼손되어 왔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존경과 경외, 그리고 뿌리를 되찾겠다는 의지를 갖고 오천 년 눈부신 신전 문화에 가장 큰 공로를 세운 이십여 인물을 조심스럽게 골라 ‘천고영웅인물’ 시리즈를 완성했다. 오천 년 눈부신 신전문화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들어가며 4천여 년 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대홍수는 인류를 거의 궤멸 상태로 몰고 갔다. 창세주께서는 중국 땅에 요, 순, 우 세 성군을 보내 차례대로 역사의 새로운 기원을 열도록 계획하셨다. 창세주께서는 줄곧 화하민족의 자손들을 보우하셨으며, 반신(半神) 문화 시기였던 이 당시에는 수많은 신선과 진인들이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리며 사람들에게 각종 문화, 기예 등을 전수한 한편 인류의 도덕 및 사상적 깊이를 형성, 인류로 하여금 수련을 통해 참된 인간의 본원으로 돌아가도록 지도했다. 이 시기 사람들의 도덕 수준은 매우 높았으며 수련을 통해 신선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 화하민족의 자손들은 요, 순, 우 세 성군 재위 이후에도 하나라, 상나라 두 왕조를 겪었으며 천여 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주나라 무왕이 주나라를 건국한 이후로 서주, 동주, 진나라에 이르기까지 다시 800년 동안 화하 선민(先民)들은 수많은 혼란과 분쟁 그리고 풍부한 문화를 향유하는 중요한 역사적 시기를 보냈다. 특히 춘추전국시대와 진나라 건국 초기에는 춘추 오패(五霸)와 전국 칠웅(七雄) 그리고 진나라의 천하 통일이라는 현상들이 ‘무력으로 천하를 제패하고 왕이 나라를 다스린다[兵征天下, 王者治國]’는 이치가 인간 세상에서 문화가 전파되는 방법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또 도가와 유가 등 백가가 나타나 반본귀진(返本歸眞)의 의미 즉 수련하여 도를 얻는 것이 사람의 근본 목적임을 알려줬다. 그러나 ‘생겨나고 머무르고 나빠지고 사라진다(成住壞滅)’는 우주법칙에 따라 인류의 도덕성 역시 점점 내리막길을 걸었다. 당시 사람들의 도덕성은 삼황오제 시기에 훨씬 못 미치는 상태였다. 인류 사회가 도덕적인 위기 상태에 처할 때마다 창세주께서는 신(神)과 부처로 하여금 인간 세상에 내려가 법과 도를 전파, 인류의 도덕성을 회복하고 사람들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본연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한편 인연이 닿는 이들을 천국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함곡관(函谷關)을 지나 서쪽 방향으로 떠나 종적이 묘연해지기 전 노자는 5천자 분량의 진언을 남겼는데, 이번 인류에게 도가 수련의 규범을 정해준 것이었다. 공자는 여러 나라를 주유하며 중용지도(中庸之道)에 대해 설파, 일천 년 중국 유가에서 말하는 사람된 도리를 재정의 했다. 그러나 음양선악은 상생상극하는 법, 전국시대 말에 이르러 제자백가가 어지러이 일어나 세상을 혼란케 하니 정도(正道)가 흐려지고 사상이 혼란해진 데다 수백 년간 계속된 전란으로 민심이 흉흉해졌다. 진나라 왕 영정(嬴政·진시황)은 천시, 지리, 인화를 모두 얻어 일순간에 전란을 일소했으니 부흥을 고대하던 여러 가지 대업들을 처리하는 동시에 천하를 통일, 기본이 바로 서게 함으로써 화하 역사에 바른길을 닦고 훌륭한 기초를 다지는 위대한 공적을 남겼다.버섯으로 지구를 치료하다
버섯은 인류 문명에게 더욱 건강하고, 더욱 지속 가능한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다. (Shutterstock) 버섯을 떠올리면 아마도 흔히 ...[인터뷰] 국민배우 안성기,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삶
“상대방을 나와 똑같이 생각하면 그게 ‘배려’ 아니겠어요?” 항해하는 사람이 항상 북극성을 지켜보듯이 우리는 마음의 북극성에 의해서만 방향감각을 유지할 ...아기는 사람 얼굴 좋아해…표정 구분능력 탁월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의 얼굴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며 엄마의 얼굴 보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또한 아기들은 표정을 보고 기쁨, 슬픔과 놀라움 등 다양한 감정을 구분하며 이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의 연구에 따르면, 신생아는 사람의 얼굴을 다른 사물보다 더 좋아할 뿐만 아니라 출생 몇 시간 후면 엄마와 낯선 사람의 얼굴을 구분할 수 있다. 아기가 엄마의 영상을 보는 시간은 다른 여성의 영상을 보는 것보다 길다. 아기는 생후 5개월 무렵부터 기쁘거나 슬픈 표정을 목소리와 연결 지었으며 생후 약 8~12개월이 되면 다른 사람(특히 엄마)의 얼굴을 보고 새로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배운다. 예를 들면 기어 다니거나 걸음마를 막 배운 아기는 경사진 위험한 곳을 만나게 되면 엄마의 얼굴을 보고 표정에서 단서를 찾는다. 엄마가 격려하는 표정을 지으면 경사진 곳으로 내려가고 걱정하거나 반대하는 표정이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새로운 장난감을 접하게 되어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 아기는 장난감을 피하고 엄마가 웃으면 아기도 새로운 장난감에 접근한다. 또한, 막 출생한 아기는 흡인력 있는 얼굴을 보기 좋아한다. 첫돌이 지난 아기는 흡인력 있는 얼굴의 사람을 접하거나 함께 지내게 되면 크게 웃으며, 여러 사람 중에서 흡인력 있는 얼굴의 사람을 선택해 함께 있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아기가 사람의 표정을 어떻게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관련 연구진들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아기에게 주변 세계는 미지의 사물로 가득 찬 공간이며 사람의 얼굴은 성장 과정에 도움이 되는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다. 어떤 사물이 안전한지, 위험한지, 기분을 즐겁게 하는지 무섭게 하는지 등은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다. 생활 속에서 짜증나게 하는 사람이나 사물을 대하게 되더라도 주변에 아기가 있다면 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0대 여드름 치료를 위한 7가지 천연 치료법
10대 여드름은 10대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효과 좋은 천연 치료법이 10대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춘기에 있는 내 ...미국 과학자,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비밀을 발견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원인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 이것이 인과율 또는 인과의 법칙이다. 이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10가지 강력한 증거
과학자들은 우주 성체간의 기본적인 구성원소는 탄소, 질소, 산소 등의 원자인데, 그 물질은 우리 생명의 기본 원자성분을 구성한다는 것을 명확히 밝혀냈다. 그로 인해 우주 항성계가 수십억 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존재해 오는 동안 지구의 생명을 구성하는 원자들이 기체구름, 항성과 행성 같은 물체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각종 생물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비즈니스 인사이더》지의 최근 보도에 의하면 그런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그렇다는 입장이다. 지금 문제는 ‘지구 밖에도 생명체가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들을 찾을 수 있는가?’이다. 최근 몇 년간 과학자들은 이를 증명할 강력한 증거들을 많이 찾았다. 이는 지구 밖의 생명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화성에서 나온 증거들이 가장 많다. 보도에 의하면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화성이 과거에는 물이 많은 별이었다고 확정지었고 지금까지도 흐르는 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화성을 제외하고도 태양계 속의 수많은 별들이 물이 있거나 혹은 고체로 된 물이나 지하바다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태양계 밖에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조건을 가진 별들이 존재한다. 화성에는 지금도 물이 존재한다. 10월 13일, 펜실베니아 대학의 과학자가 화성의 자갈을 분석한 결과 화성에는 적어도 5억년 동안 물이 존재해왔다는 판단을 했고, 고대 화성에는 액체수가 흐르는 환경일거라는 추정을 했는데 이는 지금 현재의 지구 상황과 상당히 비슷하다. 심지어 과학자들은 45억 년 전 화성의 5분의 1 면적에 깊이는 450피트(137m)의 바다가 있었을거라 추측했다. 그러나 물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생명체의 존재를 주장하기 어렵고 물이 장기적으로 존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은 9월 28일 미국항공우주국이 선포한 관찰결과에서 증명된다. 화성에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 소금물이 존재한다. 《허핑턴 포스트》의 9월 28일 보도에 의하면 외계지적생명체탐사(SETI)의 수석 천문학자 셋 쇼스탁(Seth Shostak)은 만일 화성에 미생물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는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인간이 생명에 대해 가지는 생각들을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이라는 가설은 합리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에우로파의 물은 지구보다 많다. 에우로파(Europa)를 보면 갈색 무늬가 온 행성을 뒤덮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과학자들은 이는 따뜻하고 불순물이 있는 액체수가 형성되고 있는 흔적이라고 추측했으며 게다가 에우로파에는 지구보다 물이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엔셀라두스에는 지하바다가 존재한다. 엔셀라두스(Enceladus)의 지각 아래에는 거대한 지하바다가 존재하는데 심지어 바다 속 깊숙한 곳에는 열을 생산하는 온정(溫井)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이로 인해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엔셀두라스에는 각기 다른 형태의 생명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엔셀두라스(Titan)는 추운 별이다. 그러나 그 곳엔 강이 있고 비가 내리며 바다와 대기층이 있다. 올해 3월에 코넬 대학의 화학자 제임스 스티븐슨(James Stevenson)등은 엔셀두라스에는 지구의 생명체와는 완전히 다른 아조토솜이라는 생물체가 살 수 있다고 했다. 아조소톰은 우수한 안정성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으며 아조소톰 세포막에는 지구생물과 비슷한 인지질 세포막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소행성과 혜성은 생명을 퍼트린다. 과학자들은 소행성과 혜성이 지구생명을 형성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혜성은 아미노산을 생명의 기초물질로 조성해 준다고 했다. 과학자들이 주장한 행성의 형성에 대한 이론에 따르면 다른 태양계 행성에도 이러한 일이 똑같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태양계의 많은 행성에 얼음바다 혹은 물바다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가령 명왕성(pluto), 가니메데(Ganymede), 칼리스토(callisto), 에리스(eris), 세드나(sedna), 레아(rhea), 트리톤(triton), 오베론(Oberon) 등이다. 그 중에 2015년 3월에 미국항공우주국은 가니메데에 덮힌 얼음 아래에 함수(咸水)로 이루어진 바다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트리톤, 즉 해왕성의 첫 번째 위성에는 질소와 메탄으로 구성된 대기가 있는데 그 내부에는 액체수 층이 있고 지하 바다에는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이로 인해 미국항공우주국은 태양계의 도처에 물이 있다고 했다. ...기억력·인지력 향상..구 소련 기밀로 분류됐던 약초 ‘로디올라'(홍경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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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를 향한 개 자세(Downward Dog)’는 요통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자세가 어려운 사람에게는 아기자세(Childpose, 아래)를 하는 것이 ...상처 치료에 효과적인 꿀의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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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의 계절이다. ‘과일의 왕’이 어떻게 우리 몸에 이로운지 알아보고 그에 얽힌 상식과 몇가지 주의사항도 알아보자. 1. 암을 예방한다 망고에 ...우울증 치료, ‘장 건강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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