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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방중에 맞춰 중국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사설을 통해 ‘북-중간 교류에 세계가 기뻐해야 한다’는 취지의 사설을 발표했다. 하지만 중국전문가들은 중공정권이 자국 이익을 위해 북한이라는 ‘불량 정권’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정일은 작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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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6일 ‘비지니스 위크’에 호주독립연구센터(Center for Independent Studies)의 정책 연구원 존 리의 칼럼 ‘종이 호랑이 중공은 미국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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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영되는 영화 중 최고의 화제작을 꼽으라면 ‘아바타’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집계에 따르면 아바타는 1월 2일 중국에 상륙한 이래 23일까지 이미 7억 3천만 위안의 수입을 올렸고 사상 최초로 10억 위안을 돌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아바타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지고 긍정적인 평가가 줄을 잇는 가운데 지난 1월 19일 중공 당국의 탄압 소식이 전해졌다. 중국 극장업계의 지적에 따르면 중공 당국이 ‘공자(孔子 저우룬파 주연의 대형 중국 영화)’의 흥행을 돕기 위해 전국적으로 아바타 2D 상영을 취소하고 비교적 스크린이 적은 3D에서만 상영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중공 관방은 겉으로는 탄압이 아니라 시장논리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2D 극장에서 당국의 방침에 ‘항명’하고 있고 아바타 표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을 보면 이런 설명은 분명 근거가 희박하다. 그렇다면 중공은 왜 아바타를 탄압하는가? 첫째, 많은 누리꾼들과 인터넷 평론에서 분석한 것처럼 아바타의 내용이 중국 민중들에게 중국 사회의 불공정한 현황을 연상케 한다. 가령 정부에 땅을 뺏기고 무장경찰의 폭력 진압을 당하는 철거민들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몇몇 장면들은 중국사회의 현실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중공 당국이 우려하는 것은 지금도 매일 평균 246건의 민중항쟁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아바타를 관람한 많은 관중들이 일종의 강력한 집단 정서를 형성해 폭발적인 저항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둘째, 아바타에는 판도라 행성의 여러 부족들이 서로 연락하고 집결해 자신들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외부의 ‘사악한 세력’(여기서는 지구인들이야말로 진정한 외계의 침략자이다)을 몰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판도라 행성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강력한 저항세력을 만들고 떨쳐 일어나 외부침략자들과 맞선다. 중공 정권은 본질상 60년간 신주(神州)대지를 절취한 ‘서양유령’이다. 때문에 중공은 장기간 거짓, 폭력, 공포통치를 받아온 중국 민중들에게 아바타가 ‘집단 계몽’을 통해 지혜가 열리고 언젠가 영화에서처럼 강력한 힘을 길러 중공 폭정에 대항할까 두려워한다. 셋째, 중공이 ‘무신론(無神論)’을 고취하는 목적은 민중들이 공산당보다 더 높은 진리나 신성한 힘이 존재하지 않음을 믿게 하여 쉽게 사상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바타에서 순진하고 낭만적인 나비족은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믿으며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자연법칙을 중시한다. 이는 중국 고대의 선인들과 상당히 흡사하다. 때문에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선진적인 물질조건, 기술, 무기는 없을지라도 순수한 영혼으로 신을 공경한다. 이에 나비족은 비할 바 없이 강력한 후원자를 얻었으니 그것은 바로 신의 힘이다. 결국 판도라의 신(에이와)은 행성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마음을 바르게 하고 사악에 대항해 자신의 고향과 신성한 땅을 지키려 하는 것을 보고 행성의 각종 생명들을 보내 협력하고 그들을 도와 ‘지구인’들을 격퇴하게 한다. 지구인은 원래 복잡하고 무거운 기계를 통해서만 자신의 정신을 아바타 속에 주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말미에서 에이와의 힘에 의해 주인공 제이크의 생명은 한순간에 아바타 속에 들어가 영원히 그들과 한 무리가 되었다. 아바타의 이런 줄거리는 영화의 안과 밖에서 보다 사람보다 높은 ‘신’과 ‘천도(天道)’가 우주 중의 만사만물을 지켜보며 통제하고 균형을 잡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며 신을 비방하는 사람이나 혹은 조직은 설사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고 아무리 선진적인 기술을 지녔을지라도 결국 신을 이길 수는 없다. 중공은 현재 정권이 붕괴되고 경제적 기반이 상실될 위기에 처해 있다. 만약 사람들이 아바타를 통해 진일보로 신의 존재를 깨닫고 신의 도움을 믿고 사악을 제거한다면 중공의 폭정이 끝날 날도 그리 머지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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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환자 대부분이 마약중독자나 성매매자, 성이 문란한 사람들인 다른 나라와 달리 중국의 에이즈 환자는 대부분 생계를 위해 피를 판 가난한 농민들이다. 그들은 병원에서 수혈을 받던 중 에이즈에 걸렸다. 1988년 허베이성 담당의사였던 쑨융더(孫永德)는 혈액은행에 보관 중인 혈액이 이미 에이즈에 오염된 것을 발견했다. 이는 90년대 초 중국정부가 일으킨 ‘매혈경제’의 참혹한 결과였다. 중국 민간 에이즈 전문가 가오야오제(高耀潔) 씨는 이를 ‘중국정부의 독직(瀆職-부정부패)이 불러온 사상 유례 없는 공중위생의 위기’라고 비판했다. “주민 여러분, 돈을 벌어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현 방역센터와 공립병원 수혈센터로 오셔서 피를 파세요. 매일 50위안을 벌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거래가 없겠죠?” 이는 95년 허난성의 한 작은 현 현장이 농민들에게 매혈로 돈을 벌라고 권유한 연설이다. 매혈을 통한 돈벌이는 중국 농촌에서 매혈이 성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으며, 중공정부가 매혈경제를 소리 높여 외쳤던 이유이기도 했다. 매혈 독려한 정부 주민 3천여 명이 사는 허난성의 작은 마을 솽먀오촌은 정부 주도로 주민 2천여 명이 매혈에 참여했고, 그 중 7백여 명이 에이즈에 걸렸다. 솽먀오촌에서 40여 년을 살아온 리샤(李霞) 씨도 매혈로 에이즈에 걸린 사람 중 한 명이다. 리 씨는 신기원과의 인터뷰에서 매혈은 93, 94, 95년도에 성행했다고 밝혔다. 당시 농민들은 세금과 공물, 산아제한 위반 벌금 등에 시달렸으며, 더욱이 사람에 비해 땅이 부족했다. 정부는 매일 TV와 라디오, 전단 등을 통해 매혈할 것을 강요했고, 농사를 마친 농민들은 매혈센터에 가서 피를 뽑았다. 당시 8백cc를 뽑으면 45위안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리 씨는 국가 위생부가 92, 93년에 혈장매매를 금지했으나, 현지 관리들이 사설 매혈센터를 차려 혈장매매를 계속 했다고 회상했다. "96년 초가 돼서야 정부가 위법센터를 모두 중지시켰다. 우리 현의 매혈센터도 문을 닫게 되어 사람들은 더는 헌혈을 하지 않았다." 매혈센터의 열악한 위생 허난성 둥관촌에 사는 에이즈환자 자오융(趙勇) 씨는 과거 자신이 피를 팔던 매혈센터에 대해 이야기했다. 1981년 군대에서 퇴역한 그는 무역국에서 일하다 개인사업을 벌였지만 결국 실패해 도산하고 말았다.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그는 어쩔 수 없이 매혈을 하게 되었다. “돈이 없으면 먹고 살 수도,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었어요. 다른 방법은 전혀 없었죠.” 당시 허난 핑딩산 군부대에 매혈센터가 있었다. 중국 인민해방군 152병원 매혈센터였다. 그곳에서는 기본적인 단백질검사조차 실시하지 않았고, 하루에 매혈하는 사람이 4,5백 명 정도였다. 매혈자들은 새벽 3시 반부터 접수를 할 수 있었고, 접수비는 5위안(850원)이었다. 허난성 타이캉현 방역센터 내 매혈센터에는 하루 천여 명이 매혈접수를 하였고, 90% 이상이 적합판정을 받았다. 자오 씨는 95년에 자신의 현에 직접 매혈센터를 차렸다. 그곳의 위생상태는 최악이었고, 매혈자에게 적혈구를 다시 수혈할 때, 혈액형이 같은 다른 사람의 적혈구가 마구 섞인 채 수혈했다. 매혈센터는 1년 여 동안 계속됐고, 96년 하반기가 돼서야 문을 닫았다. 리샤 씨는 94, 95년 매혈 열풍이 불었을 때, 3개의 매혈센터에서 아무런 검사도 하지 않은 채 피를 뽑았다고 폭로했다. 비정상적인 사망자 급증은 매혈 때문 “죽음의 그림자가 피를 판 농민들에게 닥치자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라고 리샤 씨가 술회했다. 99년부터 솽먀오촌에 비정상적인 죽음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사망 원인을 알지 못했다. 2000년까지 사망률이 너무나 높았고 사망자 중 99%가 매혈한 사람들이었다. 매혈을 많이 한 사람들은 자비를 들여 건강검진을 받았고, 그 결과 자신들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일 한두 명씩 죽어나갔고, 어떤 때는 더 많이 죽기도 했다. 2002년 당시 마을에서 죽은 사람은 2백 명이 넘었고, 사람들은 위생국으로 달려가 대책을 요구했다. 허난성 둥관촌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99년 하반기부터 에이즈 환자가 죽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무슨 병인지 알지 못했다. 매일 설사와 미열에 시달리고 몸이 천천히 말라간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어떤 이는 발병한 지 10일이 채 안돼 죽었고, 사람들이 연이어 죽어나갔다. 마을에는 총 7백 호가 살고 있었는데, 35호 이상이 에이즈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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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매혈자 99%가 에이즈 감염 2002년 6월 저청현 위생국은 모든 매혈자에게 건강검진을 실시했고, 8월에 결과가 나왔다. 매혈자 2천 명 중 7백여 명이 에이즈에 걸렸고, 성분매혈자 중 99%가 에이즈에 걸렸다. 리샤 씨는 “당시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라고 폭로했다. 당시 현이나 시 매혈센터의 위생상태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촌의 매혈센터는 너무나 열악했다. 94, 95년 성분매혈을 했던 사람들의 에이즈 감염률이 특히 높았는데, 당시 5위안의 수속비만 내면 아무런 검사도 받지 않았다. 에이즈에 걸린 7백 명 중 현재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3백 명 정도이며, 나이대는 30대에서 50대 사이이다. 리 씨는 매혈이나 수혈로 에이즈에 걸린 사람이 허난성에 5만 명에 달한다는 현지 관원의 말을 전했다. 현재 중국 정부는 매혈로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약만 제공하고 있다. 더 치료를 받으려면 개인이 부담해야 하며, 매혈로 간염에 걸린 경우에는 기본치료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93년 여름부터 매혈을 시작한 자오융 씨는 한 번에 400mL씩 뽑았으며 백 위안의 돈을 받았다고 밝혔다. 리샤 씨는 93년 성분매혈을 했을 당시 8백cc에 45위안(7600원)이었지만, 대부분 셰터우(血頭, 매혈중개업자)나 센터주인에게 돌아갔다고 진술했다. 매혈센터를 운영하는 사람은 현지 관리이거나 관리를 매수한 사람이 센터를 열고 이익을 나누는 방식을 취했다. 2005년에는 혈액 4백cc당 160위안(2만 7천원)에서 2백 위안(3만 4천원)을 받았다. 일부 매혈자들은 전국의 성을 돌며 피를 팔아 3~4천 위안을 벌기도 했다. 이는 1년 내내 농사지어도 만질 수 없는 큰돈이었다. 작년 상반기에는 혈액센터 내에서 혈액매매를 중개해 폭리를 취한 광저우 혈액센터 관계자가 드러난 바 있다. 그는 매매 건당 천에서 천8백 위안을 받아 1년에 수십만에서 수백만 위안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지만 매혈자에게 돌아간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중국 언론은 귀저우 전위안 매혈센터 원장이 매혈자에게 수십만 위안을 사기 친 사건을 보도하기도 했다. 매혈문제에 손 놓은 중국 정부 하지만 중국 정부는 매혈이나 수혈 등 혈액과 관련된 안건은 입안을 금지하고 있으며, 에이즈 감염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셰터우나 셰바(血?) 역시 처벌받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리샤 씨는 "2004년과 2005년 셰터우와 셰바를 고소했지만, 허난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매혈센터를 운영해 큰돈을 번 병원원장은 돈으로 관직을 사 시 공무원이 되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리 씨 일행은 매혈, 수혈로 에이즈에 걸린 문제를 베이징에 직접 알리기로 했으나, 허난 정부의 제지로 모두 실패하였고 오히려 매년 주요 기념일이 되면 정부의 감시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리샤 씨 역시 상팡(上訪)을 이유로 수감되기도 했다. "사람들과 함께 상팡간 사실을 알면 정부는 무조건 잡아 가둔다. 2007년 4월 2백여 명과 함께 허난성 정부에 상팡하러 갔지만 반도 가지 못하고 제지당했다. 당시 공안이 나와 내 동료를 공안국을 끌고 갔다. 그들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에이즈 환자의 불행한 삶 허난성 에이즈 환자들은 매월 60위안의 생활보조금을 받았지만, 2007년 리 씨 등이 허난정부에 상방을 한 이후 50위안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농촌의 한 달 생활비가 적어도 4,5백 위안이 들고 정부의 기본 치료 외에 추가로 많은 약을 사야 돼 보조금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다른 에이즈 환자 가정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에이즈 환자는 노동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부모 대신 외지로 일을 나가는 상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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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일보 방문 주룽지 前 총리 "인민의 대변인이 되자" 동행한 선전부부장의 첨언 "공산당 이익과 일치할 때만…" 중국 공산당 선전부와 어용 악플러들은 당국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제기될 때면 여지없이 "중국과 공산당을 반대하는 국외 세력의 책동"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공 간부들과 공무원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서 알 수 있다. 그들의 말에는 중국의 실정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가 담겨 있고, 사상 분야 선전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들어 있다. 중공 관료계에는 2가지 어투가 있다. 하나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사용하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 놓은 사적인 대화에 사용하는 말이다. 관료계에 대한 통제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는 요즘 그들의 사적인 대화가 인터넷에 심심찮게 돌아다니고 있다. 부정부패는 동지, 언론자유는 적? 먼저 이른바 "정부식" 말투를 몇 개 분석해 보자. 해외 반체제 사이트인 보쉰(博迅)넷에는 지난 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선전부문 내부 회의에서의 한 고위공무원의 발언이 공개돼 있다. "중국은 아직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다. 언론의 방향을 우리가 확고하게 통제해야 한다. 부정부패는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지만 여론의 향방을 잃게 되면 공산당과 공산당의 집권은 끝이다." 이 말의 뜻인즉 공산당과 정부의 임무는 부정부패 방지에 있지 않고, 당원들을 공산당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게 해 자아를 보호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관건은 언론을 통제해 국민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우고 정부에 불리한 소식을 모조리 봉쇄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중공이 만들어 낸 언론의 창(窓)에 둘러 싸여 "중국 공산당의 위대한 업적"과 "서방국가의 부패상과 몰락"을 보면서 중국이 태평성세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물론 이런 말은 인민일보나 신화사에 실리지 않는다. 언론에는 공산당 고위층이 즐겨 쓰는 "부정부패는 공산당과 나라를 망하게 한다"라는 그런 말을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어떻게 시작됐나 다른 문장을 하나 더 살펴보면 중국에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던 "보시라이가 폭력조직을 단속하게 된 계기"라는 문장이다. 여기서 보시라이는 "우리가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폭력조직의 핍박에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보시라이의 말은 사실 그대로라고 봐야 한다. 국민들은 보시라이의 말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첫 번째 "폭력배들이 너무 날뛴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두 번째 해석은 "폭력 조직 소탕이 사실은 부담스러웠던 보시라이가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끝으로 "보시라이가 실언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필자가 중국 폭력조직과 정치계의 결탁을 다룬 연구에 따르면 첫 번째 해석이 가장 정확해 보인다. 여러 매체에서 충칭시의 폭력조직이 지역 정부와 유착해 성장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사실 보시라이가 상무부장이라는 중앙직에서 충칭시로 온 것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충칭시 당서기 취임 직후 발생한 택시기사 집단 파업, 공무원 뺑소니 사건, 초병 살해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보시라이는 무능하다는 평가를 듣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보시라이는 노심초사 끝에 "폭력조직 소탕"을 택하게 됐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폭력조직은 경찰과 정부의 부패 집단과 함께 세력을 키우고 있어 지역을 정부와 함께 다스린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조직이 정부보다 더 정부 노릇을 잘하는 지역도 있다. 보시라이의 말은 관료들과 밀착된 폭력조직을 원래 소탕할 계획이 없었지만, (자신의 출세를 위해) 할 수 없이 작전을 실행했다는 뜻이 된다. 주룽지 전 총리의 황당한 경험 공산당 문화에 젖어 있는 관료들은 자신도 모르게 본심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한 기자가 허난성 정저우시에서 서민주택에 대해 취재할 때 기획국장 루우쥔은 기자에게 "당신은 공산당의 편에 서서 말을 하려는 겁니까? 아니면 시민들을 위해 말을 하려는 겁니까"라고 반문했다. 루우쥔은 은연중에 공산당과 시민의 이익이 대립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공분했다. 중국 공산당은 줄곧 국민들에게 "공산당은 인민 이익의 최고 대변자"라고 선전했지만 실제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90년대 말 장쩌민이 주창한 "3개 대표론"도 국민을 우롱했다. 베이징에는 이런 말이 나돌고 있다. 1999년 설날 즈음, 국무원 총리 주룽지(朱鎔基) 가 중공 선전부 부부장과 인민일보를 시찰했다. 주룽지는 직원들에게 "당신들은 시민들의 좋은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라고 격려하자, 부부장은 "공산당과 인민의 이익이 일치할 때 당신들은 인민의 좋은 목소리가 되어야 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공산당의 좋은 목소리가 되는 것"이라고 보충 설명했다. 이 일화도 공산당과 인민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인들이 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G20 정상회의 즈음 중국은 "새로운 국제통화가 필요하다"는 달러 흔들기로, 이번 회의를 중국과 미국의 "G2" 회의로 만들었다. 국제사회도 중국의 행보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발언은 사실 회담 전부터 있었다. 지난 3월 중국 중앙은행 저우샤오촨(周小川) 총재는 "달러를 대신해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새 기축통화로 사용하자"고 주장했고, 중국 정부의 영향권에 있는 도널드 청(曾蔭權) 홍콩 행정장관도 홍콩달러의 "미 달러 페그제" 폐지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왕치산(王岐山) 중국 부총리도 "타임즈"에 기고를 통해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개발도상국의 발언권이 더욱 커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더했다. 이에 중국언론들은 위안화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매우 흥분했다. 하지만 기업의 이익을 고려한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강대국 쇼"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 결과 중국 정부의 "위안화 무역결제 시범지역 선정" 정책은 지난 4월 광교회(광저우무역박람회, 캔톤페어)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중국 언론의 "정부찬양"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중국은 왜 달러에 도전했나 저우 총재의 달러화 도전은 미국의 정치, 군사적 지위에 도전하려는 중국 정부의 예행연습이다. 지난 2005년 미국에 핵 공격도 불사하겠다던 주청후(朱成虎) 소장의 발언에 비하면 많이 부드러워진 셈이다. 국제통화는 그 나라의 국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 2차대전 동안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자,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에서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금환본위제도를 채택했다. 하지만 1971년 닉슨 정부가 금태환 정지선언을 함으로써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하였다. 이후 1976년 자메이카 협정을 통해 선진국들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했고 보유 외환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미국의 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달러는 여전히 국제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고, 국제통화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금융위기를 틈타 공세를 취한 것은 영리한 행동이다. 궁핍한 서민층과 산재한 경제문제 등 현재 중국이 직면한 문제는 미국보다 훨씬 크지만, 독재정부인 중국은 미국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다. 자원을 강제적으로 동원해 부를 과시하거나, 통계수치를 위조해 전 세계가 불경기인데도 오직 중국만은 회복기라는 가상을 만들어낸다. 이는 서구에 중국 자본은 끝이 없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자유가 보장된 미국 언론들은 자국 경제를 통렬히 비판하지만, 자유가 통제된 중국 언론들은 자국 경제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영리한 선택에도 "위안화 무역결제 시범지역 선정"은 시기가 좋지 않았다. 왜 그런지 한번 살펴보자. 중국이 기대한 "일석삼조" 효과 사실 중국의 목표는 위안화를 곧바로 국제통화로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국제통화가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국제통화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며, 둘째 자유로운 교환이 가능해야 한다. 셋째 해당 통화가 국제시장에서 안정적인 구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각국 중앙은행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위안화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해 새로운 국제통화가 되기는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중국은 새로운 국제통화 주장을 통해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첫째, 중국의 단기목표는 IMF에서 자국의 발언권과 투표권을 확대하는 데 있다. 최근 국제사회는 새로운 국제통화 시스템을 만들어도 여전히 달러화가 중심이 된 통화 다원화가 되어야 한다며, 달러화의 파워를 인정하고 있다. SDR도 달러, 엔, 유로, 파운드의 통화바스켓으로 운영되고 있어, 중국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하다. 이는 중국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둘째, 중장기목표는 위안화가 국제통화 시스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번 G20 회의에서 SDR을 주장한 이유도 위안화의 국제화, 2020년 위안화의 자유교환, 상하이 국제금융센터 설립 등을 위한 사전작업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중국이 역점을 두는 현실 목표는 중국이 아시아통화를 추진할 때,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다. 지난 4월에 열린 보아오(博鰲) 포럼에서 중국 고위층은 세계 각국에 제공하는 중국의 자본을 무기로 미국의 대규모 양보와 아시아 중심의 새로운 국제기구 설립을 주장했다. 저우 총재는 아시아개발은행 같은 지역 금융기구가 국제기구의 역할을 넘겨받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결국 중국의 목표는 아시아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를 가로막은 것은 놀랍게도 서양 선진국들이 아니라 보아오 포럼 전에 열린 광교회(광저우무역박람회)였다. 위안화 국제화의 꿈을 깨버린 "광교회" 저우 총재와 왕 부총리의 발언 직후, 중국 국무원은 상하이, 광저우, 선전, 주하이, 둥관 등 5개 도시를 위안화 무역결제 시범지역으로 선정했다. 중국 언론들은 일제히 "위안화 결제를 통한 환율위험 회피, 무역조건 개선 등은 수출기업 성장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광교회에서 위안화로 견적을 낸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한 일간지는 "광교회에서 위안화 결제기업 없어"라는 기사에서 위안화 결제는 매우 시기상조이며, 중소기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부분 기업들의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첫째, 위안화 결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역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안화가 결제통화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위안화로 보유자가 원하는 모든 재화나 서비스를 살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해외주문에 절박한 중국기업들도 구매자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양청완바오"는 참가자의 말을 인용, "외국 상인들이 위안화 결제는 환율위험을 자신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의심한다"라고 보도했다. ...▲ 사악한 제도 때문인가, 사악한 인성 때문인가 최근 중국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독재정부에 아부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마치 경쟁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여성작가 장이허(章詒和)는 최근 남방주말에 두 편의 기고문을 통해 황먀오쯔(黃苗子), 펑이다이(馮亦代) 등 중국 유명 예술인들이 과거 공산당에 동료를 밀고한 사실을 폭로했다. 곧이어 베이징대 쑨둥둥(孫東東) 교수는 "상방민의 99% 이상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이런 문화인재들의 타락은 최근 독재정부의 대변인을 자처한 영화배우 청룽(成龍)의 "중국인은 통제가 필요하다"라는 발언으로까지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펑이다이 등의 밀고 행위는 마오시대 정치탄압의 산물이기 때문에 개인의 잘못을 탓할 수 없다고 한다. 정치탄압의 산물이라는 의견에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당시 독재정권은 개인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통제했기 때문에, 살기 위해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체제는 개인을 완전히 분리된 개개 입자로 나눠 사람들을 철저히 고립상태로 만들었다. 가족, 친구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이런 거대한 탄압과 공포 속에서 진웨린(金岳霖), 펑유란(馮友蘭) 등 명성이 자자한 학자들조차도 중공에 머리를 조아리는 "사상범"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들의 잘못을 탓할 수 없다는 생각에는 반대이다. 오히려 과거의 경험과 잘못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과거사를 다시 논하는 이유는 당사자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괴물로 만든 독재 정권의 만행을 알리는 데 있다. 어쨌든 많은 중국인이 오랜 기간 정치탄압을 받았거나 아직도 받고 있지만, 그들 모두가 타락한 것은 아니다. 펑이다이의 밀고행위를 시대의 잘못이라고 한다면, 최근 쑨둥둥과 청룽의 태도는 정치탄압에 의한 굴복이 아닌, 그들 스스로 정권에 영합하려는 행동으로 보인다. 현 체제의 통제와 탄압이 매우 잔혹하지만 마오시대 만큼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 생각해 볼 것은 쑨둥둥은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 학생들을 보호했고, 청룽은 당시 학생운동을 지지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다. 무엇이 정의감에 불타던 이 두 인재의 가치관을 이렇게 바꿔놓았을까? 단지 경제적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중국 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대중 여론이 정권에 아부하는 그들의 모습에 결코 호의적일 수 없다. 또한 정부 당국도 수많은 아부꾼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그들이 얻는 "한계효용"은 0에 가깝다. 쑨둥둥도 자신의 정치적 위치가 바로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밝힌 바 있다. 청룽의 이런 영합이 당국을 움직여 그의 중국 내 티켓수입을 늘릴 것이라고 기대하기 역시 힘들다. 그렇다면 이런 인재들을 파렴치한 정치 하수인으로 만드는 독재정부의 능력은 어디에 있는가? 쑨둥둥이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 살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공산당의 장기간 교화에 의한 결과라고 한다면, 청룽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청룽은 중국에 반환되기 전의 자유 홍콩에서 자랐고, 중국인들이 겪었거나 현재 겪는 사상교화를 받은 적이 없다. 그가 독재정권의 대변인이 된 이유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 스탈린체제의 진상을 담은 자신의 저서 "모스크바 일기"를 사후 50년 후에 공개하라는 로맨 롤랑(Romain Rolland)의 유언이 폭로되면서, 나는 매우 가슴 아픈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자유세계에서 오래 생활한 지식인은 자국의 민주정치하에서는 불공정한 현상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마치 로맹 롤랑이 "프랑스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하지만 그들이 독재정권과 만나게 되면, 알았건 몰랐건 간에 독재정부에 아부하고 빌붙게 된다.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쓴 존 리드(John Reed)나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처럼 이런 굴욕의 길을 걸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소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혹자는 서양 사람들이 속은 건 공산독재 국가의 진상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독재정권에 아부하는 많은 화인 인재들의 사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무협소설을 문학의 전당에 올려놓은 소설가 진융(金庸)은 중국 당국에 대한 아부로 인해 그의 명성에 도움은 커녕 스스로 오점을 남겼다. 일부에서는 그의 유약한 성격 탓이라고 옹호하지만, 타이완에서 부처와 선조를 욕하던 그 사나운 리아오(李敖)도 중국에서는 내성적으로 바뀌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독재정권이 어떻게 수많은 "인재"들을 굴복시킬 수 있을까? 이는 제도가 사악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인성이 사악하기 때문인가? 이 문제는 거대한 가시가 되어 수년 동안 내 마음을 찔렀다. 이것은 중요한 연구과제가 되어야 한다. "인재"가 비겁한 밀고자, 아첨꾼이 되는 촌극이 아직도 중국에서 상연 중이기 때문이다. 더욱 무서운 건 요즘의 밀고자에게는 펑이다이가 쓴 "회여일록"같은 참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타인, 그리고 자신에 대한 "영혼의 고문"이 필요하다.최근 중국관영매체들이 로이터통신의 앨런 위틀리(Alan Wheatleyㆍ중국경제편집자)가 쓴 기사 "중국 데이터 또다시 정보 주기보다 논란만 일으켜(Chinese data generate more heat than light-again)"를 반박했다. 기사에서 위틀리는 "중국통계는 비밀의 보자기로 싼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특히 "2008년 4분기 성장률은 경제 분석가 대부분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며 "GDP 통계가 잠재된 미미한 성장 추세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 기사는 "중국통계를 크게는 아니더라도 약간은 에누리해서 들어야 한다"며 "정부가 통계를 조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충고했다. 지난 1월 22일 이 기사가 나간 후 2월 6일 중국정부는 반박을 시작했다. 먼저 국가통계국의 마젠탕(馬建堂) 국장은 "GDP를 수정하는 것은 국제관례다. 중국의 통계를 의심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중국의 공식 통계는 진실하며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월 18일 인민일보(중국공산당 기관지)는 베이징대 류웨이(劉偉) 교수와 카이즈저우(蔡志洲) 교수의 인터뷰 기사 "중국통계가 정말 비밀의 보자기로 싼 수수께끼인가?"를 게재했다. 이 학자들은 로이터 기사에 인용된 전문가들이 중국 통계는 "정부 조작"이라 언급한 부분에 대해 무책임하다며 비난했다. 인민일보 기사는 전문가들이 중국의 통계지표, 통계방법, 통계제도뿐만 아니라 실제 경제활동에 대한 이해가 결핍돼 있으며, 이들의 오판으로 중국경제를 걱정하는 이들을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오쩌둥, 대약진 때 이중장부 명령 대외용ㆍ내부용 구분, 지위별로 달라" 사실상 국제 경제계는 중국 통계에 대해 의심을 멈춘 적이 없다. 2002년엔 수 개월간 많은 이들이 참여한 논란도 있었다. 중국정부가 아무리 해명을 해도 공식 통계를 둘러싼 의심은 가시지 않아, 중국정부에 대한 낮은 신인도를 보여줬다. 최근엔 두 가지 사례가 있었다. 2월 2일 중국정부는 실직하고 귀향한 농민공 수가 2,000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이 통계를 발표한 사람은 원자바오 총리와 말을 맞추는 것을 깜빡한 모양이다. 앞서 2월 1일 원 총리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실직하고 귀향한 농민공 수가 1,200만 명"이라고 밝혔다. 800만 명 차이가 났다. 또 중국정부는 지난 30년간 농촌 빈곤층 인구가 2억5000만 명에서 2,000만 명으로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월 9일 열린 UN인권이사회의 한 회의에서 중국대표단의 리바오둥(李保東) 단장은 지난 30년 간 농촌 빈곤층 인구가 2억5000만 명에서 1,400만 명으로 감소했다고 말했다. 600만 명이 또 차이가 난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중국의 통계자료를 사용, 분석하려는 연구자에게 중국 통계는 도전과 같다. 이는 중국 정부 관료와 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29일 관영잡지 랴오왕(了望ㆍ신화통신 자매잡지)은 "위기를 맞아 진실한 통계가 필요하다"는 기사를 발표했다. 기사에서 "금년 통계자료는 충실해야 하며, 반복되는 검증에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통계학자의 지옥" 중국공산당은 태생적으로 통계 조작이란 병근을 가졌다. 통계 조작은 중공 정치문화의 일부가 되어, 중앙정부의 인심 무마용으로 때론 각급 관원들의 정치업적용으로 사용됐다. 이런 나쁜 선례를 처음 남긴 이는 바로 마오쩌둥(毛澤東)이다. 1958년 1월, 마오쩌둥의 지도로 발표된 대약진운동의 안내서 <공작방법 60조>의 제9조에는 생산계획 관련 장부를 세 종류로 만들라고 지시한다. "첫 번째 장부는 달성 가능한 목표량에 관한 것으로 대외 발표용으로 사용한다. 두 번째 장부는 예상량으로 이것은 공포하지 않는다. 지방 정부 또한 두 가지 장부를 운영한다. (지방정부의) 첫 번째 장부는 중앙정부의 두 번째 장부와 같은 것으로, 이것은 지방정부가 달성해야 하는 생산량이다. (지방정부의) 두 번째 장부는 지방 정부의 예상량이다. 우리는 중앙정부의 두 번째 장부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이때부터 중국정부는 이중장부 체계(兩本帳)를 운영해 왔는데, 이 중 하나는 바로 외부인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바로 이 영광스런 전통을 계승, 이중 데이터 시스템을 사용한다. 내부용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부 내 공산당원을 위한 것이다. 이 내부용도 관원의 지위고하에 따라 버전이 달라진다. 따라서 통계와 관련해 중국정부는 여러 개의 입을 가지고 있고, 어느 입을 사용할 것인지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중국이 "통계학자의 지옥"이란 악명을 떨치고자 한다면, "악의적 추측"이라며 다른 이들을 비난하지 말고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문화를 없애야 할 것이다. 출처: 화샤(華夏)전자보(중국 인권전문 전자저널)뉴질랜드 국영 텔레비전 채널1은 10월 19일, "선데이"의 특집으로 중국 "싼루 독 분유" 사건에 관해 보도했다. 싼루사의 주주회사인 폰테라사의 ...중국의 독분유 사건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각국에서 드러난 중국산 유독성 유제품 목록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인들은 이처럼 신뢰를 상실하고 있는 중국제품에 대해 매우 곤혹해 하며, "중국인은 이제 도덕 기반을 완전히 상실했는가"라는 의문을 갖는다. 중국제품 문제는 사실상 도덕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 나라의 상품은 그 나라의 기술 제조 수준을 나타내는 것 외에, 각종 사회·문화적 요소도 반영하고 있다. 가령, 상품의 가격은 그 나라의 노동력, 임금 수준과 복리후생을 반영하며, 상품의 품질은 상업적 신용, 도덕 기준과 그 나라의 사회제도 등을 나타낸다. 중국의 식품 안전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산업계에서 발생하는 경제 문제로 간주할 수 있지만 그 실제적인 모습은 중국의 정치제도의 부패, 경제 윤리의 추락, 자연 생태 환경의 지속적 악화가 만들어 낸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산 유해 식품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첫째는 소위 "과학적 수법"의 문제다. 통상 농업 생산에는 대량의 농약과 화학 비료를 사용한다. 대부분 가축 양식의 경우에도 보편적으로 항생 물질과 호르몬을 대량 투여하고, 담수 또는 해수의 양식업으로 자란 수산물은 각종 오염수에 침식된다. 둘째는 식품의 가공 과정의 문제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기업은 각종 식품 첨가제와 화학물질을 대량으로 사용한다. 이번의 경우처럼 단백질 함유량을 속이려고 우유에 멜라민을 넣는 것은 중국에선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는 중국의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다. 중국 국가 환경보호국의 통계에 의하면 중국에서 현재 카드뮴, 비소, 크롬, 납 등에 오염된 경지 면적은 2000만 ha로 경지 총면적의 1/5이다. 중금속에 오염된 식량은 전국에서 연간 1200만 톤이 생산되며, 이런 곡물을 대부분 중국 소비자들이 섭취하고 일부는 세계 각국에 수출되고 있다. 국가 관리 기능은 유명무실 유독성 상품이 광범위하게 범람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감독 관리 능력은 식품의 안전을 보장하는 마지막 가이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은 강한 정부와 약한 국민이 공존하는 국가이다. 민간 사회는 감독 관리의 권한이 없으며 그 힘도 없다. 그러나 관련 식품의 안전 문제에서 중국 당국의 대응은 최소한의 책임의식도 희박하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민족주의(애국주의)를 남용하고 국민을 선동해 정권과 기업의 책임을 회피한다 예를 들면, 작년에 중국 제품의 결함 문제가 다수 발생해 각국이 중국 제품 품질 문제에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을 때, 중국 당국은 국내에서는 보도 규제를 한층 강화해 민중에게 진실이 전해지는 것을 저지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의 항의에 대해서는 "해외의 반중국 세력이 중국 제품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고 선전하고 "그 목적은 중국 제품을 요괴화(妖怪化)해, 경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수출 무역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정치적으로는 국제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것이다"라고 했다[2007년 7월 17일 국가질검총국 리창장(李長江) 국장의 발언]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불량 완구 제품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완구의 페인트에 납이 포함된 사실을 발견하고 항의를 해도 정부는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즉 중국 정부는 국내 기업에 대해 "민족주의"라는 보호 카드를 제공하며 기업을 보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 결과 납 함유의 완구는 다른 나라 아동의 건강을 해쳤고, 지금도 여전히 중국 아동들을 해치고 있다. 둘째, 국가의 검사 면제 제도를 남용한다. 중국 당국은 "국가 검사 면제 제도"를 제정하고 있다. 이 제도는 일정한 시장규모를 가진 기업에 대해서 그 제품이 연속 3번, 성 수준 이상의 "질량 검사기구"의 검사에 합격하고, 중앙의 "국가질검총국" 허가를 얻으면, 검사 면제 제품이 된다. 그 유효기간은 3년인데 해당 기업은 3년 동안, 제품의 품질을 스스로 관리한다. 중국의 정치제도가 고도로 부패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기업이 "검사 면제" 허가를 획득하기까지는 5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실권을 쥔 간부들은 부정을 저지를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다. 2004년 안후이성 푸양(阜陽)에서 단백질 함유량이 낮은 분유를 섭취한 유아가 영양실조로 머리가 이상하게 부어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그 분유를 만든 회사가 이번 멜라민 분유를 만든 "싼루 분유사"인데 수 년 전에 벌써 불량 분유를 만든 회사였다. 그러나 이 회사는 정부 당국과의 강력한 커넥션을 이용해 징계를 피했다. 뿐만 아니라 "국가질검총국"이 이 회사의 분유를 검사 면제 브랜드 종목으로 소비자에게 추천까지 했다. 검사 면제라는 프리미엄을 얻은 싼루사는 제품에 멜라민을 투여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결국 이번 독 분유 사건의 시발점이 됐다. ...현재 중국경제는 급격한 주식시장의 하락과 부동산 시장의 버블화, 가파른 인플레이션과 미미한 올림픽 특수 등 지속적인 악재로 신음하고 있다. ...또다시 중국 원정 불법 장기 이식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장기이식 브로커들은 장기이식 알선 카페를 운영하면서 공공연히 장기 공급 ...최근 "중국산(Made in China)"이 여러 방면에서 곤경에 처해있다. 국제시장에서 "중국산"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과 "중국산"을 가능케 했던 중국 내 두 가지의 큰 요소가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공 당국의 수출보조금 정책 변화도 한 가지 큰 요소다. 우선 "중국산"은 현재 전례없는 신용위기에 처해있다. 이제까지 중국이 미국으로 수출했던 상품들은 기본적으로 자원소모성 제품들로 구성됐고 노동집약형 제품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은 미국의 일상 소모품들이다. 이번에 신용위기를 불러일으킨 주요 상품은 식품과 식품원자재다. 미국에서 시작된 중국상품 불신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며 세계각국에서끊임없이 중국상품의 품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중국 국가품질감독검사검역총국은 지난 7월 3일 공개성명을 통해 2007년 상반기에 중국 내에서 소비된 상품 중 19.1%가 불합격이라고 발표했다. 소규모 회사의 상품 불합격률은 30%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산"에 대한 불신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고 도미노식 연쇄반응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면 완구에 납이 함유된 페인트를 칠해 시장에서 반품되거나 하는 식이다. 항저우의 '종스 러버' 타이어 제조사는 안전에 관련된 중요한 공정을 생략해 미국에서 소송에 휘말려 있다. 타이어제조 시 내구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철사묶음 사이에 6mm의 고무층을 넣는 공정이 있는데 이 회사는 이같은 공정을 생략함으로써 사망사고를 초래한 것이다. 이 사건은 미국인들이 "중국산"이 안고 있는 품질불량 문제에 대해 또다시 시선을 집중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5년도 영국 BBC방송에서 시작해 미국 "뉴스위클리", "타임지" 등에서 잇따라 "중국의 해"를 대거 선전할 때와는 달리 이들 메이저 언론들은 더이상 중국에 대한 찬미와 장미빛 미래를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불신과 비평, 비관적인 예측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팬더곰을 옹호하는 파"들은 전례없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다음으로 '중국산'을 가능케했던 두 가지 큰 요소가 더이상 작용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이 두 가지 요소 중 하나는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이고 다른 하나는 생태환경 파괴다. 저가 노동력은 중국노동자들의 생명을 댓가로 한 것이다. 중국의 노동력은 의료보험, 노후보장, 실업 등 여러 측면에서 복지정책이 거의 없다. 또한 중국노동자들은 작업시간과 노동강도, 위험요소에 비해 턱없이 싼 임금을 받고 있다. 중국은 또 '세계의 공장이 되기 위해 심각한 환경파괴를 그 대가로 치렀다. 최근 20년간 중국의 생태환경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철저히 오염됐다. 여태까지 이러한 문제를 다루지 않았던 관영매체들도 지난 해부터는 각종 오염사건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중국의 생태환경이 이미 인간의 생존을 위한 최저수준까지 오염됐다는 것을 설명한다. 비록 세계은행이 중공 당국의 요구를 참작해 보고서 중에서 "환경오염으로 중국에서 매년 75만여 명이 조기 사망한다"라는 내용을 삭제하긴 했지만 중국국가환경보호총국 부국장 판웨이는 "중국은 현재 이미 수질오염이 빈번히 폭발하는 단계"라고 공개적으로 승인한 바 있다. 타이호(太湖), 차오호(巢湖) 등지의 녹조류 오염은 바로 이러한 사실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생태계 파괴에 의한 중국 노동자들의 생명위협은 이미 더 이상 감당키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상처투성이가 된 중국생태환경도 더는 미친듯한 약탈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세째 요소는 "중국산"이 전세계 제품가치 연결사슬 중에서 이윤이 가장 작은 연결고리에 속한다는 점이다. 저렴한 노동력 때문에 중국은 수많은 주문을 받았지만 주문을 받은 중국생산회사에서 얻는 최종이익은 얼마나 되겠는가?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완구를 예로 들어 계산해보았는데 이 제품이 미국시장에서 판매되는 가격이 100달러라고 가정할 때 대충 계산해봐도 중국의 생산기업에게 남겨진 이윤은 건당 3달러밖에 되지 않으며 중국무역회사에서 남는 이윤은 건당 7달러에 불과하다. 이 제품으로 중국내 생산회사와 무역회사가 얻는 총 이윤은 10달러로 상품판매가의 10%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낮은 이윤은 중국 수출업계 절대다수가 겪는 현실이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수출보조금제를 실시했던 탓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지만 현재 중공당국이 이 제도를 바꾸는 바람에 숱한 수출기업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 "중국산" 불신 문제로 인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중국 상반기 수출무역량 통계에는 잠시나마 이 같은 사실이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공 당국은 여전히 자신감에 도취돼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즉, 올해 상반기 중국의 수출입총액이 1조 달러에 육박하며 작년 동기에 비해 24%정도 증가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또 무역차액은 1천억 달러를 넘어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60%이상이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공 당국은 반드시 이 한점을 알아야 한다. ...최근 2년, 중공 정부가 이렇게 심하게 부패했어도 계속 정권을 유지해 나가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 중국이 민주국가라면 이 정부는 유지될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은 독재국가이며, 정치탄압, 스파이망, 경찰통치 등 가혹한 수단을 총동원했기 때문에 현재의 표면적인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통치의 안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두 가지 기준으로 측정해볼 수 있는데, 바로 중국사회의 부패허용도와 관료들의 부패안전도이다. 이 두 가지 기준은 필자가 만든 것으로 서로 이익이 상충하는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부패에 대한 태도를 관찰하기 위해 사용되는 지표이다. "부패허용도"를 알기 위해 주요한 몇 가지 사항을 조사한다.1. 부패침투율, 특히 부패가 국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지 관찰한다. 2. 국민과 사회의 여론, 3. 사회 소요사태의 발생율 통치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부패안전도, 즉 부패처벌율(부패 관료가 부패를 위해 지불하는 기회비용)이다. 처벌율이 높을수록 부패안전도는 낮아지며 반대관계도 성립한다. 하지만 이를 계산하기는 쉽지 않다. 부패관료가 체포되기 전에는 공무원 중 탐관오리가 얼마나 있는지 확실히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치 "모든 관료를 처벌하면 누명을 쓰는 사람이 생기고, 둘 중 하나만 처벌하면 빠져나가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처럼 말이다. 부패안전도는 부패가 심각하게 발생하는 것을 나타낼 수 있지만, 연구의 근거자료로 사용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필자가 "현대화의 함정"을 출판했을 때, 중국사회의 부패허용도는 비교적 높았다. 당시의 부패는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았고, 대규모 도시철거나 토지 강제징수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굉장히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은 중국 관료의 부패에 대해 굉장히 관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료들의 무분별한 약탈로 국민들은 점점 생존하기조차 힘든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4백만 명의 도시 거주자들이 집을 잃었고, 6천만 명의 농민이 농사지을 땅을 빼앗겼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부패허용도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 관료와 일반인에 대한 조사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2004년 중앙당교 지방관료를 대상으로 " 정치개혁 성공을 위한 주요 요인"을 조사한 결과, "부패척결을 위한 강도 높은 정책시행"이 다섯 번째로 뽑혔으나, 2006년 "사회주의와 조화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조사에서는 "부패문제"가 "사회보장문제"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드러났다. 일반인들에게도 부패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관심사다. 올해 "중국경제시보" 여론조사센터와 QQ가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누가 조화사회를 방해하는가"에 대해 "감독기구 부족으로 인한 부패성행"을 "10대 방해요소"중 최우선으로 꼽았다. 사회소요사태 발생율도 작년에 이미 8만 건에 이를 정도로 크게 상승하였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관료들의 부패안전도는 여전히 낮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부패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한 국토관련 자료에 의하면, 2003년 토지관련사건은 16만 8천 건에 달하였지만, 관련자중 134명만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738명은 내부 행정조치를 받았다.) 즉 처벌율은 1%에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사회보장기금관련 부패사건을 들 수 있다. 광저우시에서 사회보장기금 10억 위안을 유용한 사건이 적발되어 2001년 조사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2005년까지 조사를 지연시키다 당사자 몇 명을 처벌하는 선에서 무마하였다. 또 특별규정을 만들어 언론에서 관련문제를 토론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사회보장기금 결손분은 정부재정에서 보조하기로 결정하였다. 위 예를 통해 관료부패는 정치적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당교 지방관료 조사에서 보듯이, 관료들은 사회의 부패허용도 하락으로 인한 사회적 긴장을 명확히 알고 있지만, 제도적 보호장치로 인해 관료들의 부패안전도는 여전히 낮아지지 않고 있다. 또한 중국은 부패관련 연구에 특별한 예를 제공하였다. 고도로 부패한 국가 중, 중국만이 부패척결을 소리 높여 주장하지만, 관료의 부패안전도는 여전히 높고 국민의 부패허용도는 한계에 도달했으며, 관료들이 처벌을 피하고 동료를 보호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국외도피를 택하고 있다. 관료의 부패안전도가 계속 높을 경우, 사회의 부패허용도 사이에 형성된 격차는 점점 벌어질 것이다. 그 결과 권력계층은 스스로 붕괴될 것이며, 그 과정 중에 국민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1. 대외 개방정책이 중국정치 경제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 중국은 WTO 가입 5주년이 지난 시점에 큰 산을 앞에 두고 있다. WTO 가입 회원국은 자국의 역량을 국제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시킬 때까지 개방유예기간을 갖는데 그 기간이 5년이다. 중국은 이 개방유예기간이 작년으로 끝났고, 약속한 금융시장을 개방해야한다. 하지만 중국은 교묘하게 대외 개방정책을 조정하고 개방과정에서 축적해온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WTO의 원칙규정에 위반하지 않는 정도로 개방을 진행해 오고 있다. 중국의 진실한 문호개방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외자, 특히 금융자본 그룹의 실망은 깊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외쳐대고 있는 이 "개혁 개방"이라는 것이 일찍이 덩샤오핑때부터 내건 기치로써 소위 "현대화의 길" 이라고 한다. 이 "현대화의 길" 을 또다시 1990년대 후반에는 검토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개혁 개방"의 이미는 무엇인가? 중국 내 학계와 민중 대부분에게 "개혁"은 정부가 민중의 이익을 가로채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정권, 어용학자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중국 현대화의 양 날개 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소위 "개방" 뿐이다. 중국정부가 말하는 "개방"은 정치적 개방도 정치문화 개방도 아닌, 경제개방을 가르키는 것이며, 정치와 무관한 유행문화의 개방이 포함된다. 정치에 있어 중국은 20년 가까이 U턴을 해왔다. 개혁 당초 민주정치 건설을 위한 학습이 제기됐지만, 작년 민주건설 백서에서는 서방의 민주정치는 중국의 국정에 맞지 않는다고 평가하고 학계의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전통문화로 회기해 중국식 왕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또, 정치문화상, 80년대, 90년대 전반기에는 미국 200개 대학에서 채용된 교과서 "민치정치"와 같이 미국의 민주정치에 관해 소개한 서적이 적지 않았지만, 현재 이러한 출판물들을 세상에 발표하는 일은 기본상 불가능하다. 경제 개방으로 중국은 적지 않은 수혜를 입었다. 대표적인 것은 자금 고갈에 통감하고 있던 중국에 대량의 혈액을 수혈한 것이다. 20년이 지난 후, 특히 90년대 중후반기 이후, 구미의 다국적 기업이 앞 다투어 중국에 진출하고, 외자는 국유기업, 민간자본과 함께 3대 경제지주의 하나가 되었다. OECD가 올해 1월 발표한 바에 의하면, 2005년에 영국이 받아들인 해외 간접투자는 2190억 달러로 세계 1위, 미국이 1060억 달러로 2위, 3위가 중국으로 600억 달러였다. 정치적인 수혜도 뚜렷했다. 중국이 구소련과 다른 것은 소련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왜 중국은 분명 공산주의 소련과 마찬가지로 공산국가이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해갈수 있었는가? 그 이유는 현재 국제 경제의 재편이 소련, 동유럽 경제단위와 구미, 일본의 자본주의 경제권으로 분단되어 있었던 것이다. 경제이익에서 그 어느 나라와도 교착이 없어 정치상 이익도 분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외자를 도입한 뒤부터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국적 그룹이 중국에 진출함에 따라, 그들은 자국의 정치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초래했다. 예를 들면, 중국에 진출한 많은 대기업이 미국 워싱턴 국회에서 로비활동을 하고,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로비활동을 한다. 결과적으로 이렇다. 다국적 기업들의 적극적인 로비활동은 각국 정부가 중국의 독재정치, 열악한 인권상황에 관해 용인하는 태도를 갖게 했다. 이 상태는 현재 이러한 단계까지 이르렀다. 즉, 인권단체가 중국정부를 비판하면, 중국 정부가 표면에 나서 변명할 필요없이, 해외에 있는 중국정부의 이익 대변자가 스스로 변명하고, 로비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외국정부가 중국을 제제하려고 할 때, 만나게 되는 주된 곤란은 중국정부로부터의 반발이 아니고 자국의 대자본그룹으로부터의 반발이라고 한다. 따라서, 근래 수 년동안 이렇듯 기묘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즉, 국내에서 줄곧 경제정세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지만, 해외 투자자는 자신있게 중국경제의 독주를 칭송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정치상황은 부단히 후퇴하고 있지만, 해외 여론은 중국정부가 또 정치개혁을 실시했다, 중국정부가 언론개혁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계속 흘려 보낸다. 물론 이러한 선전이 결국 빈 수레로 끝났지만, 이들 이익 대변자들을 비난하는 자는 몇 사람이나 될까? 2. 민족주의 대두와 중국 경제환경의 중대한 변화 중국 열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 이후, 시멘스를 포함한 전력 기업 등, 일부 외자가 중국에서 철수하고 동시에 해외에서는 중국이 해외투자자의 천국인지, 아니면 무덤인지를 모색해보자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숫자에서도 밝혀지듯이 중국내 외자의 좌초상황은 놀랄만한 것이 있지만, 이러한 목소리가 초래하는 효과는 상당히 미약하다. 그 원인은 각 산업별 이익이 다르다는 것이다. 제조업, 전력산업은 중국에 진출한지 오래지만, 마침 이들이 철수하는 시점이 바로 금융업의 거두가 중국문호개방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시기와 같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중국 금융업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갖고 있다. 이 시점에 중국 민족주의가 대두됐다. 이것은 민간인에 의한 민족주의와는 다르며, 배후에 있는 이익집단이 선동한 것이다. 2006년 8월2일,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 속하는 투자연구소는 "중국증권보"에서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즉 중국정부는 전문기관을 만들어, 외자에 의한 국유기업의 M&A를 "엄격하게 심사"하고 "외자 투자가 초래하는 다양한 폐해를 방지"해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폐해"가 가리키는 것은 "충실한 자산을 가진 외국기업이 중국의 전략적 공업계통 지배권을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美투자 회사 "카라일"과 중국의 건설기계 대기업 "쉬궁그룹"의 M&A를 둘러싼 교섭이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지만, 이것 역시 "쉬궁그룹"이 단연 자국기업의 전략적 의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카라일"에는 강력한 정치적 배경이 있으며 이 사건은 "애국"과 "매국"의 분쟁초점이 되고 있다. 실제, 중국의 민족주의는 나날이 대두되고 있으며, 외자 제한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하루 이틀 사이에 시작된 것도 아니다. 민족주의자들은 계속해서 선동 문장을 발표하고 있다. 하나는 국무원연구발전센터가 발표한 보고서로서 이 보고서는 외자로 인해 중국산업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증거로써 폭 넓게 인용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중국 공산정권은 경제개혁을 해오고 있으며 중국 경제발전 속도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경제성장률의 고공행진과 동시에 ...중공 공안부 부부장 류진궈(劉金國)는 11월 6일, 사회 치안 종합치리회(社會治安綜合治理會)에서 올해 1월부터 9월 사이에 전국 공안기관이 처리한 각종 민중 사건은 합계 1만7천9백 건으로 전년 대비 22.1%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해외에서는 조화사회건설 영합을 위한 조작된 수치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중국 국가신용등급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계 수치는 통상적인 대외 선전용이라는 게 해외 언론이 우려하는 주요 논점이다. 또한 대폭적인 감소는 나름대로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여하튼 시야를 가리고 있는 안개를 걷어내고 원인을 분석해 봐야 한다. 최근 몇 년간, 중국 내 민중 항쟁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해외 언론이 자주 다루어 온 지난 3년간의 통계자료인, 2003년에 58000건, 2004년에 74000건, 2005년은 87000건에 의하면, 대부분이 정부에 의한 토지 강제징수, 주택 강제 퇴거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와 같이 민중 항쟁의 특징은 생존권 박탈과 직결되어 있으며 양상은 점점 격렬해 지고 있다. 이러한 민중들의 권리항쟁을 완화시키기 위한 중앙정부의 조치 또한 전무한 상태임에도 중공 당국은 민중항쟁이 전년대비 22.1% 감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이두(중국 검색 사이트)에서 "군체성 사건(군중 사건) 응급예안"이라는 9자를 입력하면, 58400여건의 자료가 나타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중앙정부는《국가 대규모 군체성 사건예안》을 발표한 것 외, 각 지방 정부에 대해 경찰력 투입을 강화할 것과 구체적인 책임범위, 관리들에게 민중 항쟁 수치를 정치실적 평가 지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각 지방 정부는 이러한 민중항쟁에 대한 세부 지침을 일선에 하달, 각 부문은 전국에 보편적으로 적용된 "응급예안"외에도 각지의 특수상황에 근거한 대응 방식을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면, 헤이룽장성에 있어서는 최근 음식물 중독 사건이 빈발했지만, 성 정부와 관할 시, 현은 이런 종류의 사건에 대해 "무단강시 약품 돌발성 군체 불량 사건 응급예안"라는 응급예안을 책정하고 있다. 다른 지방에서도 "샤먼시 출조기차행업 군체생 사건 응급예안", "선전시 교육 계통예방과 처치 군체성 사건 응급예안"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중국 중부 지역를 대표하는 후난성에서는 성위원회, 성 정부가 "산자(三甲)사건, 다오린(道林)사건, 훙장(洪江)사건, 루청옌서우(汝城延壽), 샤오위안(小垣)사건 등 중대 민중 사건의 교훈을 진지하게 검토,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규범적이고 질서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선언, "후난 중대 군체성 사건 응급 처치예안", "후난성 공포 사건 응급예안", "후난성 엄중 폭력 범죄 응급예안"등 10여 개의 응급예안을 발표했다. 또, 2004년의 1년에만 성위원회와 성 정부는 성 공안청의 특별 경찰, 무장 경찰특근대대에 대해 22억 위안 상당의 반 테러 장비를 배치했다. 이러한 응급예안들을 해독해 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통되는 특징이 있다. "▲사전방지에 주력하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돌발적 공공 사건 발생을 막는다. 방지할 수 없거나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최대한 악영향, 재난적인 결과를 피하도록 한다. ▲지위에 따라 책임을 지고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가며 이를 위해 명확한 직책 관리 체계를 구축한다. ▲전문가가 책임을 지고 말단 부문의 정보 수집에 임한다." 이상과 같은 사실에서 중국 내 민중 사건이 급감한 이유는 지방 정부가 정치 실적을 고려해 축소, 허위 보고를 한 것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이는 정부가 사회 통제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무장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조화 사회"란, 정치적 폭력에 의해 항의자들을 억압하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중국 광둥성 산웨이(汕尾)시 당국이, 시 소속 둥저우(東洲)촌에서 토지를 강제징수한 후 오히려 이를 비난하는 주민들을 "야만적이고 비문명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