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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사망설’, 후계구도에 영향 줄까
장쩌민(왼쪽에서 세 번째) 전 국가주석이 중공 지도부와 함께 2008년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모습. Liu Jin/AFP/Getty Images 장쩌민(江澤民·85) 전 중국 국가주석의 ‘사망설’이 해외 및 대만, 홍콩 언론을 중심으로 계속 ...中언론 과장보도에 韓國기업 ‘몸살’
중국시장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연일 중국 언론들의 비판적인 보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의 ‘한국기업 때리기’가 수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訪中 무엇 노렸나
김정일 방중에 맞춰 중국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사설을 통해 ‘북-중간 교류에 세계가 기뻐해야 한다’는 취지의 사설을 발표했다. 하지만 중국전문가들은 ...종이 호랑이 중공, 채권으로 미국 위협?
지난 달 26일 ‘비지니스 위크’에 호주독립연구센터(Center for Independent Studies)의 정책 연구원 존 리의 칼럼 ‘종이 호랑이 중공은 미국을 ...중국 血의 재난, 매혈자의 비극 ①
에이즈 환자 대부분이 마약중독자나 성매매자, 성이 문란한 사람들인 다른 나라와 달리 중국의 에이즈 환자는 대부분 생계를 위해 피를 판 가난한 농민들이다. 그들은 병원에서 수혈을 받던 중 에이즈에 걸렸다. 1988년 허베이성 담당의사였던 쑨융더(孫永德)는 혈액은행에 보관 중인 혈액이 이미 에이즈에 오염된 것을 발견했다. 이는 90년대 초 중국정부가 일으킨 ‘매혈경제’의 참혹한 결과였다. 중국 민간 에이즈 전문가 가오야오제(高耀潔) 씨는 이를 ‘중국정부의 독직(瀆職-부정부패)이 불러온 사상 유례 없는 공중위생의 위기’라고 비판했다. “주민 여러분, 돈을 벌어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현 방역센터와 공립병원 수혈센터로 오셔서 피를 파세요. 매일 50위안을 벌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거래가 없겠죠?” 이는 95년 허난성의 한 작은 현 현장이 농민들에게 매혈로 돈을 벌라고 권유한 연설이다. 매혈을 통한 돈벌이는 중국 농촌에서 매혈이 성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으며, 중공정부가 매혈경제를 소리 높여 외쳤던 이유이기도 했다. 매혈 독려한 정부 주민 3천여 명이 사는 허난성의 작은 마을 솽먀오촌은 정부 주도로 주민 2천여 명이 매혈에 참여했고, 그 중 7백여 명이 에이즈에 걸렸다. 솽먀오촌에서 40여 년을 살아온 리샤(李霞) 씨도 매혈로 에이즈에 걸린 사람 중 한 명이다. 리 씨는 신기원과의 인터뷰에서 매혈은 93, 94, 95년도에 성행했다고 밝혔다. 당시 농민들은 세금과 공물, 산아제한 위반 벌금 등에 시달렸으며, 더욱이 사람에 비해 땅이 부족했다. 정부는 매일 TV와 라디오, 전단 등을 통해 매혈할 것을 강요했고, 농사를 마친 농민들은 매혈센터에 가서 피를 뽑았다. 당시 8백cc를 뽑으면 45위안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리 씨는 국가 위생부가 92, 93년에 혈장매매를 금지했으나, 현지 관리들이 사설 매혈센터를 차려 혈장매매를 계속 했다고 회상했다. "96년 초가 돼서야 정부가 위법센터를 모두 중지시켰다. 우리 현의 매혈센터도 문을 닫게 되어 사람들은 더는 헌혈을 하지 않았다." 매혈센터의 열악한 위생 허난성 둥관촌에 사는 에이즈환자 자오융(趙勇) 씨는 과거 자신이 피를 팔던 매혈센터에 대해 이야기했다. 1981년 군대에서 퇴역한 그는 무역국에서 일하다 개인사업을 벌였지만 결국 실패해 도산하고 말았다.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그는 어쩔 수 없이 매혈을 하게 되었다. “돈이 없으면 먹고 살 수도,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었어요. 다른 방법은 전혀 없었죠.” 당시 허난 핑딩산 군부대에 매혈센터가 있었다. 중국 인민해방군 152병원 매혈센터였다. 그곳에서는 기본적인 단백질검사조차 실시하지 않았고, 하루에 매혈하는 사람이 4,5백 명 정도였다. 매혈자들은 새벽 3시 반부터 접수를 할 수 있었고, 접수비는 5위안(850원)이었다. 허난성 타이캉현 방역센터 내 매혈센터에는 하루 천여 명이 매혈접수를 하였고, 90% 이상이 적합판정을 받았다. 자오 씨는 95년에 자신의 현에 직접 매혈센터를 차렸다. 그곳의 위생상태는 최악이었고, 매혈자에게 적혈구를 다시 수혈할 때, 혈액형이 같은 다른 사람의 적혈구가 마구 섞인 채 수혈했다. 매혈센터는 1년 여 동안 계속됐고, 96년 하반기가 돼서야 문을 닫았다. 리샤 씨는 94, 95년 매혈 열풍이 불었을 때, 3개의 매혈센터에서 아무런 검사도 하지 않은 채 피를 뽑았다고 폭로했다. 비정상적인 사망자 급증은 매혈 때문 “죽음의 그림자가 피를 판 농민들에게 닥치자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라고 리샤 씨가 술회했다. 99년부터 솽먀오촌에 비정상적인 죽음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사망 원인을 알지 못했다. 2000년까지 사망률이 너무나 높았고 사망자 중 99%가 매혈한 사람들이었다. 매혈을 많이 한 사람들은 자비를 들여 건강검진을 받았고, 그 결과 자신들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일 한두 명씩 죽어나갔고, 어떤 때는 더 많이 죽기도 했다. 2002년 당시 마을에서 죽은 사람은 2백 명이 넘었고, 사람들은 위생국으로 달려가 대책을 요구했다. 허난성 둥관촌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99년 하반기부터 에이즈 환자가 죽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무슨 병인지 알지 못했다. 매일 설사와 미열에 시달리고 몸이 천천히 말라간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어떤 이는 발병한 지 10일이 채 안돼 죽었고, 사람들이 연이어 죽어나갔다. 마을에는 총 7백 호가 살고 있었는데, 35호 이상이 에이즈에 걸렸다.중국 血의 재난, 매혈자의 비극 ②
성분매혈자 99%가 에이즈 감염 2002년 6월 저청현 위생국은 모든 매혈자에게 건강검진을 실시했고, 8월에 결과가 나왔다. 매혈자 2천 명 중 7백여 명이 에이즈에 걸렸고, 성분매혈자 중 99%가 에이즈에 걸렸다. 리샤 씨는 “당시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라고 폭로했다. 당시 현이나 시 매혈센터의 위생상태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촌의 매혈센터는 너무나 열악했다. 94, 95년 성분매혈을 했던 사람들의 에이즈 감염률이 특히 높았는데, 당시 5위안의 수속비만 내면 아무런 검사도 받지 않았다. 에이즈에 걸린 7백 명 중 현재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3백 명 정도이며, 나이대는 30대에서 50대 사이이다. 리 씨는 매혈이나 수혈로 에이즈에 걸린 사람이 허난성에 5만 명에 달한다는 현지 관원의 말을 전했다. 현재 중국 정부는 매혈로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약만 제공하고 있다. 더 치료를 받으려면 개인이 부담해야 하며, 매혈로 간염에 걸린 경우에는 기본치료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93년 여름부터 매혈을 시작한 자오융 씨는 한 번에 400mL씩 뽑았으며 백 위안의 돈을 받았다고 밝혔다. 리샤 씨는 93년 성분매혈을 했을 당시 8백cc에 45위안(7600원)이었지만, 대부분 셰터우(血頭, 매혈중개업자)나 센터주인에게 돌아갔다고 진술했다. 매혈센터를 운영하는 사람은 현지 관리이거나 관리를 매수한 사람이 센터를 열고 이익을 나누는 방식을 취했다. 2005년에는 혈액 4백cc당 160위안(2만 7천원)에서 2백 위안(3만 4천원)을 받았다. 일부 매혈자들은 전국의 성을 돌며 피를 팔아 3~4천 위안을 벌기도 했다. 이는 1년 내내 농사지어도 만질 수 없는 큰돈이었다. 작년 상반기에는 혈액센터 내에서 혈액매매를 중개해 폭리를 취한 광저우 혈액센터 관계자가 드러난 바 있다. 그는 매매 건당 천에서 천8백 위안을 받아 1년에 수십만에서 수백만 위안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지만 매혈자에게 돌아간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중국 언론은 귀저우 전위안 매혈센터 원장이 매혈자에게 수십만 위안을 사기 친 사건을 보도하기도 했다. 매혈문제에 손 놓은 중국 정부 하지만 중국 정부는 매혈이나 수혈 등 혈액과 관련된 안건은 입안을 금지하고 있으며, 에이즈 감염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셰터우나 셰바(血?) 역시 처벌받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리샤 씨는 "2004년과 2005년 셰터우와 셰바를 고소했지만, 허난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매혈센터를 운영해 큰돈을 번 병원원장은 돈으로 관직을 사 시 공무원이 되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리 씨 일행은 매혈, 수혈로 에이즈에 걸린 문제를 베이징에 직접 알리기로 했으나, 허난 정부의 제지로 모두 실패하였고 오히려 매년 주요 기념일이 되면 정부의 감시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리샤 씨 역시 상팡(上訪)을 이유로 수감되기도 했다. "사람들과 함께 상팡간 사실을 알면 정부는 무조건 잡아 가둔다. 2007년 4월 2백여 명과 함께 허난성 정부에 상팡하러 갔지만 반도 가지 못하고 제지당했다. 당시 공안이 나와 내 동료를 공안국을 끌고 갔다. 그들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에이즈 환자의 불행한 삶 허난성 에이즈 환자들은 매월 60위안의 생활보조금을 받았지만, 2007년 리 씨 등이 허난정부에 상방을 한 이후 50위안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농촌의 한 달 생활비가 적어도 4,5백 위안이 들고 정부의 기본 치료 외에 추가로 많은 약을 사야 돼 보조금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다른 에이즈 환자 가정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에이즈 환자는 노동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부모 대신 외지로 일을 나가는 상황이다. ...“中 공산당 간부, 독 분유 사건 공개 거부”
뉴질랜드 국영 텔레비전 채널1은 10월 19일, "선데이"의 특집으로 중국 "싼루 독 분유" 사건에 관해 보도했다. 싼루사의 주주회사인 폰테라사의 ...중국, 몰려드는 핫머니에 경제위기 가능성
현재 중국경제는 급격한 주식시장의 하락과 부동산 시장의 버블화, 가파른 인플레이션과 미미한 올림픽 특수 등 지속적인 악재로 신음하고 있다. ...다시 고개드는 중국 원정 장기이식
또다시 중국 원정 불법 장기 이식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장기이식 브로커들은 장기이식 알선 카페를 운영하면서 공공연히 장기 공급 ...[심포지엄] 중국 개혁 모델에 대한 분석
지난 20여 년간 중국 공산정권은 경제개혁을 해오고 있으며 중국 경제발전 속도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경제성장률의 고공행진과 동시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