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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이 막 시작될 때, 페이마펑(飛馬峰)호 화물선에 가득 실린 2천만 달러 상당의 미국산 대두 7만t이 첫 관세 부과 대상이 됨으로써 한때 중국에서 이 화물선이 ‘인터넷 스타’가 되기도 했다. 6월 6일부터 바다를 떠돌던 페이마펑호는 한 달이 지난 7월 12일 마침내 다롄(大連)항에 정박해 하역을 시작했다. 선박의 주인인 중추량(中儲糧)은 "(관세 조치로) 최대 6백만 달러의 세금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마치 냄비에 담긴 생선처럼, 중국은 이번 무역전쟁에서 마치 표면적으로는 아무 것도 잃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무역전쟁으로 인해 고위층 내부에는 상당한 의견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다. 고위층과 가까운 몇몇 소식통은 로이터통신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중국의 앞날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의 중국 싱크탱크 학자는 “중국 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했고 일부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의 생산라인에서 철수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경제학자와 지식인들은 무역전쟁을 지속하는 데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처음에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다'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세를 낮추고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한다면 중국과 무역전쟁을 하지 말라”는 '온순한' 메시지를 보내며 꼬리를 내리기도 했다. 최근 중국 당국은 강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연한 척 애매한 태도로, 미국과 장기간의 무역전쟁을 지속하겠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그동안 주춤했던 시진핑 개인숭배 선전도 다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의 소리(VOA)’는 중국 관영 매체의 보도를 분석하며 '시진핑은 여전히 초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무소불통(無所不通), 무소불능(無所不能)' 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시진핑은 각 분야에 지시를 내려 “당·정·군·민·학교·동서남북과 중앙의 모든 곳에서 당이 일체를 영도하고, 중국 공산당의 영도가 정우일존(定於一尊: 모든 것은 황제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 대중의 불안, 외국 언론에 광범위하게 보도되는 논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또한, 베이다이허 회의 중 중국공산당은 이례적으로 올해 참석한 전문가의 범위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홍콩경제일보는 “중국공산당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중국 제조 2025’ 계획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중요한 신호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불투명한 정치를 감안할 때, 이 같은 소식은 마치 머리가 없는 파리처럼 여기저기 부딪치며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VOA는 분석가의 말을 인용해 관영 매체들이 무엇을 선전하는가도 봐야 하지만, 무엇을 외면하는지를 더 잘 봐야한다고 전했다. 베이징은 무역전쟁 문제에 관해서는 철저히 숨기고 있으며, 심지어 외국 언론인들이 미국의 무역 공세에 어떻게 대처할지 캐묻자 그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갔다. 베이징이 이미 진퇴양난의 처지가 됐음을 설명하고 있다. VOA는 “이 같은 분석과 판단이 대체로 신뢰할 만하다”고 전했다. VOA는 중국이 무역전쟁의 문제를 회피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하나는,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대신해 패권을 잡으려는 중국공산당의 야망이 서방국가 특히 미국의 각성을 불러일으켜 중국에 대항하도록 만든 것인데, 이 같은 사정을 서민들에게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이 자주 사용하는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수단이 이젠 효력을 잃고 심지어 반작용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예로 최근 공개된 네티즌의 다음 대화를 들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까지 미국과 맞서 싸울 것이다.” “됐거든. 네가 ‘우리’에게 속한다고 생각하니? 꿈 깨라! 그것에 희생되는 게 대가를 치르는 거냐?” VOA는 “이런 널리 보급된 자발적인 ‘시민 교육’은 중국 당국이 막을 수 없으며, 대응할 방법도 찾지 못한다”고 전했다. 시사평론가 리린이(李林一)는 “무역전쟁의 압력으로, 중국은 미국의 무역 요구 사항을 점차 충족시키고 있다. 앞으로 보조금이 삭감될 것이고, 투자 제한은 이미 없어졌으며, 비록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지적재산권 보호는 암묵적 또는 단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중국이 겉으로 강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실제로는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는 이미 설명할 수 없는 비밀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클레어몬트 매케나 칼리지의 페이민신(裴敏欣) 교수는 스위스 ‘노이에취르허차이퉁’에 “미중 무역전쟁의 경제적 결과는 아직 명확히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이미 베이징의 권위에 도전하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무역전쟁으로 인해 베이징의 권위가 약화됐으며, 그 압박은 경제적 손실을 훨씬 초과한다”고 전했다. 최근 베이징은 중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문제로 인해 곤혹스러워하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가령, 베이징이 제안하고 지원한 P2P 온라인 대출 플랫폼 다수가 도산했고, 피 같은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피해자들이 권익을 찾으려 베이징으로 갔지만, 강력한 ‘안전 조치'에 물러서야만 했다. 중국 당국은 안면 인식 기술로 신장(新疆)을 감시하고 신원을 추적해 100만 명을 ‘재교육 수용소’에 수감했다. 닝샤(寧夏)에서는 완공된 그랜드 모스크를 철거해 현지 후이족의 시위가 촉발했고, 심지어 이슬람교도조차 이에 연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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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부패 스캔들로 불리는 화룽자산그룹의 라이샤오민(賴小民) 전 회장이 또 놀라운 사건을 터트렸다. 그의 집 여러 채에서 대량의 위안화와 외화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안화로 환산하면 총 2억7000만 위안으로, 무게만 해도 3t에 달한다. 이는 집에 2억3000만 위안을 은닉해 두었던 웨이펑위안(魏鵬遠) 전 국가에너지국 석탄사 부사장의 기록을 뛰어넘는 수준이며, 수사 당시 지폐 계수기 4대가 과열로 고장 나기도 했다. 이 소식은 중국 차이신왕(財新網) 사이트를 통해 최초로 보도됐으며, 이후 해외 언론들도 이를 인용했다. 하지만 8월 11일 오전, 중국 사이트의 관련 보도가 모두 삭제됐다. 차이신왕엔 여전히 관련 영문 보도와 짧은 중문 보도가 게재돼 있지만, 이 기사마저 중요한 내용은 모두 빠져 있다. 사실 2억7000만 위안의 돈다발은 라이샤오민의 부패 스캔들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화룽자산그룹은 중국 당국이 은행의 부실자산을 없애기 위해 설립한 자산관리회사 4곳 중 하나로, 2015년 10월 30일 홍콩 증시에 상장됐다. 이때부터 해당 그룹의 회장 라이샤오민의 부패 스캔들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소리(VOA)’는 부실자산관리 회사인 화룽자산그룹은 상장 조치로 단번에 23억 달러를 조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현재 환율(달러당 6.88위안)로 환산하면 158억3200만 위안에 달하고, 당시 환율(달러당 6.35위안)로 환산할 경우 146억500만 위안에 달한다. 2억7000만 위안은 얼마만한 규모일까? BBC뉴스가 이를 다른 수치와 비교해 보았다. 작년 중국인의 평균 소득은 2만6000위안, 농민은 1만3000위안, 공기업과 사기업의 평균 임금은 각각 7만4000위안과 4만5000위안이었다. 그렇다면 2억7000만 위안은 각 소득의 1만 384배, 2만 769배, 3633배, 5900배에 달하는 정도다. 다르게 말하면 일반 중국인은 1만 384명, 농민은 2만 769명, 공기업 직원은 3633명, 사기업 직원은 5900명이 1년 동안 먹지도 않고 모아야만 쥘 수 있는 금액이다. 최근 10년 동안 중국은 필사적으로 지폐를 발행해 시중에 유통했다. 2013년 중국 중앙은행이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당시 위안화를 100조 위안이나 초과 발행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초과 발행된 위안화가 얼마나 될까? 만약 다른 국가였다면 벌써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야기됐을 것이다. 비록 중국의 물가가 상승하긴 했으나, 여전히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이에 관해 일부 학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 현상’이라고 한다. 중국 국민들은 인플레이션과 같은 악영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탐관오리들이 거액의 현금을 집에 보관해 유통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라이샤오민’이 있을까? 중국 당국이 체포한 관리는 성급 관리부터 농촌의 말단 관리까지 다양하다. 그들의 불법 소득은 보통 천만 위안을 웃돈다. BBC는 “공식 발표된 수치에 근거하면 수백만 위안 정도의 ‘소심한’ 부패를 저지른 관리는 찾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직급이 낮은 관리들도 부패 상한선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라이샤오민은 그저 국장급 관리였으며 웨이펑위안은 부국장급이었다. 이 직급은 높지 않은 편이다. 이들보다 더 낮은 직급의 관리들이 저지른 부패자금 규모도 수억 위안에 이른다. 신화왕(新華網) 보도에 따르면 마차오췬(馬超群) 베이다이허(北戴河) 수도공급총공사 사장은 자택에 수억 위안에 달하는 현금과 황금 37kg, 그리고 68채의 부동산 서류를 숨겨두었고, 리우따웨이(劉大偉) 안후이(安徽)성 화이베이(淮北)시 리에산촌 촌지부 전 서기는 1억5000위안을 횡령했으며, 위판(於凡)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옌타(雁塔)구 장빠(丈八)거리 전 주임은 수억 위안의 부패 사건에 연루됐고, 리화보(李華波) 장시(江西)성 포양(鄱陽)현 재정국 전 계장은 1억 위안에 달하는 공금을 횡령했다. 이 관리들은 중국 내에서 직급이 한참 낮지만, 부패자금 규모는 수억 위안에 달했다. 한 네티즌이 댓글을 통해 이런 공기업 회장이 기술적인 노력 없이도 ‘포브스’지의 부자 순위에 오를 정도의 부를 쉽게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상의 문제일 수도 있다며 누가 그를 등용하고 수년간 눈감아 주었는지, 얼마나 많은 ‘라이샤오민’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얼마 전 랴오닝(遼寧)성이 발표한 비영리기관 개혁 방안에는 공직자의 씀씀이를 감당할 수 없어 공직자 90%를 해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소후(搜狐)닷컴에 게시된 글에서는 2016년 랴오닝성의 전체 인구 중 공직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9.7%에 달했다. 이 비율로 계산해보면 14억 인구 중 공직자는 약 7000만 명이라는 것이다. 공직자 8명 중 1명이 관리라고 한다면(보수적으로 잡았을 경우) 전국 각급 정부의 관리는 875만 명이라는 얘기다. BBC는 “이 모든 관리가 부패를 저지른다면 그들이 자택에 숨겨 둔 돈을 평균 100만 위안으로만 잡아도 총 8억 7500만 위안에 달하는 금액”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나머지 6100만 명의 공직자가 부패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BBC는 상식적으로 그중 일부는 직권을 남용해 전용 기사와 개인 비서를 고용하는 등의 사리사욕을 채울 것이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따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 공산당 18대 이래로 체포된 관리 중 부패혐의가 드러난 관리는 약 20%를 차지했다.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공산당의 부정부패 7월 31일, 아이원리(艾文禮) 허베이성 정치협상회의 전 주석이 자수를 함으로써 지난 허베이성 위원회에서 가장 마지막에 체포된 상무위원이 됐다. 자오쯔양(趙紫陽)의 정치 비서였던 바오퉁(鮑彤)의 말을 인용하면 지난 허베이성 위원회는 이미 '전멸’했으며, 허베이성 위원회 지도층은 모두 '범죄자’나 마찬가지다. BBC는 “공산당 관리의 부정부패는 전반적,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다른 성급 도시의 관리가 전멸하지 않은 이유는 그곳의 탐관오리가 적어서가 아니라 아직 적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사평론가 샤샤오창(夏小強)은 “중국공산당이 체계적인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으며 어떤 반부패 조치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중국의 부패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사실상 반부패 운동이라는 것도 일찍이 효력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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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를 이용해 무역 파트너를 1대1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며 수많은 불공정 무역에 대처해 왔다. 7월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장클로드 융커(Jean-Claude Juncker) EU 집행위원장이 회담 후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과 유럽 간의 ‘관세 제로, 무역 장벽 제로, 비자동차 보조금 제로’의 자유무역을 위해 WTO 개혁을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8월 9일, 미국과 일본이 제1차 무역협상을 개시했다. 이는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경제재생담당상이 8월 1일 밝힌 것이다. 미∙일 무역 협상은 미국과 EU가 맺은 협정처럼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서방세계에 곧 새로운 ‘부국(富國) 클럽’이 탄생할 것이며, 냉전 종식 후 세계 정치경제 질서의 재조정으로 인해 WTO는 점차 영향력을 잃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는 줄곧 WTO의 불공정성이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며 미국에 장기적인 대규모 적자를 초래한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이 규칙이 지속돼선 안 되며 반드시 개혁을 해야 한다고 밝혀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렇게 진행될 경우 미국의 국가 안보가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주장을 펴면서 단번에 WTO의 영향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는 이미 미국의 WTO 탈퇴를 주장했다. 올해 6월 로이터통신은 트럼프가 백악관 인사에게 여러 차례 WTO 탈퇴를 희망한다고 말한 바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 내용 중에는 소식통이 “WTO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설계한 것이다”는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작년 무역 고문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WTO는 중국 등의 국가가 불공정한 방식을 취해 생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이는 미국을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하기 때문에 WTO는 반드시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WTO 회원국들 역시 현행 규칙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 유럽의 목소리는 미국보다 온화하지만 이들의 우려도 마찬가지다. 도날드 투스크(Donald Tusk)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지난달 WTO 개혁과 새로운 무역 규칙 제정을 호소했다. 또한, 중국은 경제 규모를 확대한 이후 세계를 장악하려는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부 개도국에 수출한 ‘홍색(공산당) 이데올로기’는 미국과 유럽을 몹시 불편하게 했다. 지난달 열린 WTO 회의에서 미국은 중국이 스스로를 ‘개발도상국’이라고 정의 내린 이유는 세계 무역 규칙의 점진적 자유화에 대한 요구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직접 지적했다. WTO에 가입한 이후 중국은 줄곧 규칙을 따르지 않고 국제 시장에 맞는 시장개방, 법제화 등을 하겠다고 공언하며 세계화에 합류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WTO에 계속 간섭함으로써 많은 국가가 불만과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중국이 시장경제가 아니며 중국과 무역 거래를 할 때 많은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WTO는 이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왜냐하면 WTO의 분쟁 해결은 설득과 협상을 통해서 이뤄지며 법원이 아닌 전문가 집단으로 160개 회원국 간의 무역 분쟁을 조정하기 때문이다. 어느 회원국이 규칙을 어기면 WTO 전문가 집단은 똑같은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말라고 요구할 뿐이다. 중국은 이처럼 불완전한 규칙을 악용해 WTO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외교적 수단과 이익을 이용해 WTO 회원국 중 70여 개도국이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WTO는 160개 회원국으로 구성돼 있다. 이처럼 방대한 국제기구는 효율도 낮을 뿐만 아니라 개혁 속도도 느리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가 WTO를 좋게 보지 않는 이유다. 그는 차라리 자신이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EU의 경제 규모를 합치면 세계 경제의 50%에 이르러 발언권과 실질적인 권력을 거머쥘 수 있으며 다른 국가의 가입을 쉽게 유도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WTO가 자발적인 개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WTO의 핵심 조항에 대한 수정은 ‘만장일치, 한 국가 한 표’ 규칙을 따라야 하며 모든 회원국이 동의를 해야만 발효된다. 만약 반대표가 하나라도 있으면 규칙을 수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은 ‘만장일치, 한 국가 한 표’ 규칙을 이용해 미국의 발언권을 축소시키고 있다. 이는 미국이 WTO를 벗어나 해결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트럼프와 융커가 체결한 ‘쓰리 제로’ 협정은 WTO를 벗어난 단독 행위로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에 대해 "현실적인 선택"이라며 "미국이 기대하는 WTO 개혁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만약 수정을 한다면 실질적으로 WTO를 재구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는 많은 국가의 이익에 저촉될 것이며 강한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국제문제 전문가 탕하오(唐浩)는 "WTO의 규정은 부국이 빈국을 도와 발전시킨 뒤 WTO의 회원국으로 만들어 함께 다른 국가를 돕는 국제적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할 당시엔 개도국이었지만, 20년 동안 WTO의 허점과 빈틈을 노리며 대량의 부당한 재산을 축적해 왔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후엔 당시에 했던 약속을 이행한 적이 없으며 여전히 이익만 도모하고 그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 탕하오는 트럼프가 유엔(UN)을 포함한 국제기구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여러 차례 비난하면서 “UN, WTO 등 기구가 모두 어떠한 변화도 시도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이러한 기구들을 피해 스스로 EU와 독립적인 협정을 맺는 것은 WTO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만약 미국이 일본과도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면 미국과 유럽, 일본의 제로관세 시장의 실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점점 더 많은 국가가 WTO가 아닌 ‘국가 대 국가’로 협정을 체결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WTO는 영향력을 잃는 데 그치지 않고 존립 위기까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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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이 지속적인 교착 상태에 빠진 이후 중국은 대외적으로 매우 상반된 태도를 번갈아가며 노출했다. 미국을 대상으로 강경한 입장과 한 수 접는 입장을 동시에 피력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일관성 없다”는 평가를 받아온 중국은 마침내 최종적인 대응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일 중국 외교부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에게 맹비난을 퍼부었고, 심지어 미국을 ‘세계의 적’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이와 관련, 펜스 부통령은 상무부 연설 중 “중국이 미국에 대한 보복을 계속 이어간다면, 미국 또한 강경한 조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하며 “결코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강조했다. 미국 매체 ‘미국의 소리(VOA)’는 “중국은 향후 모든 미국 제품에 대해 3배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고, 곧이어 중국 내에서 미국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배척할 것”이라고 전했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고 의지를 꺾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무역전쟁에 대응하는 방향을 바꿀 때까지 미국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계속할 것이고, 중국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확실하게 뜻을 밝혔다. 무역 전쟁이 진행된 과정을 지켜보면 트럼프 행정부가 공언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겉으로 큰소리만 칠 뿐 실제로는 뒤로 물러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미국 재무부가 18일 발표한 ‘국제자본흐름보고서(International Capital Flow Report, TIC)’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중국이 보유한 채권 규모는 약 1조 1831억 달러(한화 약 1300조 원)로, 미국 채권의 최대 보유국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미국 재무부의 보고에 의하면, 중국이 미국 채권을 매각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위안화 가치 절하, 희토류 수출 금지 및 미국 채권 매각 등 이른바 3가지 조치는 모두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는 격으로, 결코 좋은 전략이 아니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중국은 트럼프의 연쇄적인 무역 공세에 맞서기 위한 효과적인 대응책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중국, 트럼프 연구 위해 ‘싱크탱크연합’ 결성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이어가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진핑 주석과 개인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을 상대로 이토록 가혹한 조치를 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중국은 그동안 자신이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를 오인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의 최근 정치, 경제 및 무역 상황을 재검토하기 위해 20여개 이상의 기관으로 구성된 ‘싱크탱크연합(Think Tank Alliance)’을 설립했다. ‘미국의 소리’는 “7월 14일 연합 설립을 위한 모임이 베이징에서 개최됐다”고 전했다. 해당 모임에는 재무부 국제금융경제센터,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거시경제연구소, 상무부 국제무역 및 경제협력 연구소, 베이징대학 국가발전연구소 및 칭화(清華) 국가금융연구소에 소속된 인사들이 참석했다. 중국은 해당 싱크탱크를 통해 트럼프 내각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를 넓힌 후, 이에 대한 대응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즉, 중국은 여전히 스스로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타자를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류웨이둥(劉衛東) 중국 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부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의 중간 선거 이전까지 미국의 대(對) 중국 정책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전했다. 싱크탱크의 중국정책(China Policy) 부서에서 근무한 가오(高) 씨는 VOA에 “중국의 의사 결정 과정은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며, 미국 내부의 정치 및 경제 체제에 통달한 전문가들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유학파인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는 두 차례나 미국을 방문했지만 결과적으로 무역 전쟁을 막지 못했다. 류 부총리는 두 번째 방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지만, 역시나 뚜렷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소위 ‘미국통’으로 여겨졌던 류 부총리조차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왔다는 사실은 중국 고위층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미국은 중국에 무엇을 원하는가? 무역 전쟁이 향후 중국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중국을 골치 아프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선거 공약을 실천에 옮기지 않을 것이며, 또한 작은 이익으로 매수당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여겼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공약을 이행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익에 유혹되지 않으며 심지어 ‘예측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중국 당국은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18일 미 재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스티븐 므누신(Steven Mnuchin) 미 재무장관은 이번 주말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G7 국가들과 함께 중국과의 무역 행태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독일의 소리(Voice of Germany)’는 “므누신은 중국 관료들과 실질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라인을 가지고 있으며, 회의 도중 중국과의 공식적인 양자 회담을 주선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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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미국의 소리(VOA)’는 “미중 간 무역 전쟁이 한창인 이때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앞당겨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19일부터 해외 방문을 시작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발표하며 두 매체의 보도가 엇갈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처럼 최근 며칠 사이에 발생한 언론 매체들의 이상 현상이 많은 이들의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5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报)’의 1면에서 또다시 시 주석의 이름이 사라졌다. 이는 지난 9일과 12일에 이어 세 번째로 발생한 사태이며 또한 재임 5년 동안 세 번째이기도 하다. 앞선 두 번의 경우를 모두 우연으로 치더라도, 일주일에 세 번이나 시 주석의 이름이 게재되지 않은 현상은 사뭇 심상치 않다. 이와 더불어 베이징 내부에서는 달갑지 않은 소문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중난하이(中南海) 내부의 상황은 아직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최근 들어 좌편향 추세를 보이는 베이징 당국이 국내외의 반감을 사고 있다” “이로 인해 내우외환의 각종 위기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중국 중앙방송(CCTV)의 7시 뉴스 프로그램 ‘신원롄보(新聞聯播)’에서도 심각한 방송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2일 방송 도중,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이 갑자기 화면에 나타나 앵커에게 원고를 전달한 것. 원고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원고 전달 이후부터 예전과 달리 시진핑 주석을 언급할 때 ‘주석’의 호칭을 배제한 채 직접 이름을 불렀다. 지난 11일 관영 매체 ‘신화망(新華網)’은 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인 ‘학습시보(學習時報)’의 과거 기사를 다시 꺼내들며 ‘개인숭배’에 대해 비판했다. 과거 국가주석이던 화궈펑(华国锋)이 당시 ‘개인 우상화’를 명목으로 고발당했고, 정치국 회의에서 잘못을 인정하며 사죄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이 일은 화궈펑이 퇴진하게 된 배경 중 하나인데, 이와 관련해 SNS에서는 베이징의 현 상황에 관한 각종 추측과 소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는 “일부 공산당 원로들이 시진핑 주석의 우상화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화궈펑 전 주석의 일화를 다시 세간에 공개하고, 이후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시진핑 주석이 화궈펑의 경우처럼 물러나게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에서는 ‘1번은 휴식하고, 대해(大海)가 이끈다’는 내용의 글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 공영방송 ‘RFI’는 “‘1번’은 시진핑 국가주석을, ‘대해’는 왕양(汪洋)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왕양 주석은 현재 당 내부에서 개혁 의지와 외교 경험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이미지가 좋은 편이라고 전해진다. 원로들의 반발에 대해 ‘RFI’는 “언론이 시진핑 주석을 지나치게 띄우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산시(陕西)성 사회과학원에서 시진핑 사상을 연구하기 위해 기획한 ‘량자허(梁家河) 대학문’ 연구 프로젝트는 시진핑 주석에 대한 개인숭배를 절정으로 끌어올렸다는 소식이다. 량자허 프로젝트는 현재 긴급 중단된 상태이며,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 인민일보는 ‘아부 문체’ ‘과장되고 거만하다’는 표현을 섞어가며 과거와는 다른 논조의 비판적인 기사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VOA’는 “인민일보는 공산당의 기관지로 지금까지 이 방면에서 두드러지게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1면 톱기사의 헤드라인에는 예외 없이 시 주석의 이름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지방에서도 이에 적극 호응했는데 창춘(長春)에서는 ‘시 주석 어록’을 표기한 지하철 객차가 등장하기도 했으며, ‘19대 정신’과 시 주석의 역대 발언을 객차 안에 붙여놓기도 했다. 또한 지난 6일,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첫날, ‘인민일보’ 1면에는 미중 무역전쟁 관련 소식이 실리지 않았다. 이에 앞서 중국 관영 매체들은 시 주석이 서양 여러 기업의 주요 인물들을 만날 때 발언한 내용을 보도하며 “미국의 관세 제재에 대해 보복에 나설 것이며 ‘이에는 이’로 맞설 것”이라는 소식을 내보낸 바 있다. 중국의 선전 방식을 파악하고 있는 인물들은 공산당의 대변인인 ‘인민일보’와 ‘CCTV’가 잇달아 이런 현상을 보인 것을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VOA’는 “중국 내외의 분석가들은 당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지 파악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RFI’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연이어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고위층 내부의 상황이 매우 혼란스럽고 심각하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산당 내부에서 쿠데타는 줄곧 존재해 왔지만, 최고 권력을 쥐고 있는 시진핑 주석에게 퇴진을 강요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학자 장룬(張倫)은 “시진핑 주석에게 퇴진을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내부 인사들이 극심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장룬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혼란에 대해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현상은 고위층 내부에 매우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국 언론 매체들이 시진핑 주석에 대한 대대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현상은 시 주석이 여전히 국면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4일, “시진핑 주석이 중국의 정치 개혁을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는 뉴스가 포털 사이트를 통해 확산됐다.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은 “정치를 명확하게 논하고” “당의 권위를 수호하며” “자각적으로 중앙과의 일치를 유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난 13일, 시진핑 주석은 인민대회당에서 대만 국민당의 롄잔(連戰) 전(前) 주석과 만남을 가졌다. ‘VOA’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이날 처음으로 양국 관계에 대해 긴 연설을 발표하고, ‘평화통일’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주창했다. 해당 연설에서 시 주석은 ‘정확한 방향’과 ‘정확한 길’이라는 표현을 각각 세 번씩이나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시진핑 주석이 19일부터 24일까지 아랍에미리트, 세네갈, 르완다와 남아공을 국빈 방문하며, 귀국길에 모리셔스를 우호 방문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시사평론가 저우샤오후이(周曉輝)는 “이러한 일련의 보도를 통해 시진핑 측이 다시 언론을 장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진핑 측은 보도를 통해 '흔들림 없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외부에 암시함으로써 혼란을 조성하는 자들에게 경고장을 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사평론가 샤샤오창(夏小強)은 “SNS상에서 나돌고 있는 소식들과 언론의 기이한 행태는 모두 공산당 내부 투쟁을 의미하며, 지도부는 정치적 수요에 따라 종종 의도적으로 정보를 방출해 자신의 정적에게 타격을 입힌다”면서 “시진핑 주석은 지난 5년 동안 진행해온 반부패 투쟁을 통해 관료계를 뒤흔들었고, 공산당 내부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이익 집단을 건드렸다. 시진핑 주석의 권력은 과거보다 커졌지만, 이익 집단들은 하나같이 그를 주시하고 있으며 재기의 손을 쓰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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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이 막을 내렸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매우 도발적’인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의 이 충격적인 발언에 한국과 일본은 조금 당황했고, 중국은 속으로 기뻐했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것은 중국이 이전에 제안한 쌍중단(雙暫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군사훈련 동시 중단) 의견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미국 언론은 트럼프가 한국과 일본에 사전 통지 없이 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했으며, 이로 인해 두 동맹국은 손해를 입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북미정상회담에서 체결한 공동성명에는 사실 실질적인 내용이 담겨있지 않은데 트럼프가 바로 이어서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양측에 ‘공개’와 ‘비공개’ 두 가지 합의가 존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양측이 발표한 공동성명은 모두 네 가지다.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비핵화 약속과 전쟁포로 유해 송환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 항목 중 가장 관심 있는 항목이 ‘핵 폐기’ 문제인데, 공동성명에서는 이 항목을 세 번째에 놓은 데다 ‘판문점선언’의 내용과 거의 중복된다. 또한, 단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약속만 있을 뿐, 구체적인 약속 이행 일정도 제시하지 않았고 어떻게 비핵화를 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이 성명으로만 보면 새로운 내용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한 발언과 폭스뉴스(FOX News)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을 들어보면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트럼프는 북한에 찬사와 긍정적인 발언 외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많이 던졌다. 트럼프는 어떻게 말했나? 트럼프는 “북한은 이미 다른 정부이다.” “우리는 양국 관계에 새 장을 열 준비가 됐다.” 등의 발언을 했다. 중국에는 “배추는 속을 먹고, 징과 북은 소리를 듣는다(숨은 속뜻을 잘 파악해야한다는 뜻)”는 말이 있다. 예전의 북한 정부는 중국 공산당의 허수아비 정권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중국은 줄곧 북한에 돈과 물자 지원을 했고 특히 북한에 핵 기술을 제공했다. 그러고는 이 ‘공산 아우’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을 내리곤 했다. 과거 북한은 항상 국제사회에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했는데, 이는 바로 중국 공산당이 배후에서 꾸민 짓으로, 그 목적은 서방 자유국가들이 북한에 신경 쓰느라 그보다 더 사악한 중국 공산당 정권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은 이미 다른 정부이다’는 말을 김정은이 중국 공산당의 구속에서 벗어나 미국과 가까이하려 한다고 이해해도 될 것이다. 헝허(橫河) 시사평론가는 “김정은은 단지 중공을 이용할뿐 중공을 절대 믿지 않는다”며, “중공의 ‘꼭두각시 황제’가 되길 원하지도 않는다”고 분석했다. 헝허는 또 “김일성 일가 삼대는 모두 중공과 사이가 틀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근본적으로 중공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중공의 구속에서 벗어나 미국과 한국으로 기울 가능성이 매우 크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강력히 추진한다는 명제하에 김정은에게 중공에서 벗어날 기회를 만들어 줬다는 것이다. 만약 김정은이 이 기회를 잡고 ‘화려한 전환’을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 또한 트럼프의 큰 업적이 될 것이고 미국과 북한 양국 관계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것 또한 자명하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트럼프는 기자 질문에 “북한이 머지않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핵 폐기 조치를 내릴 것이고, 많은 사람이 현장에서 검증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미국은 매우 강하게 김정은을 검열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양국이 공개 발표한 공동성명과 완전히 다르다. 바꾸어 말하면, 공동성명은 '핵 폐기'문제를 의도적으로 호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북미정상회담의 공동성명과 트럼프 개인 발언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파이낸셜 타임스는 “공개한 공동성명 외에 북한의 핵 폐기와 북미 양자 평화문제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비공개 합의가 있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렇게 한 까닭은 북한의 체면과 북한 내부의 다른 이익집단의 정서를 고려해서이고, 김정은의 ‘핵 폐기’에 유리한 국내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북미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쉴 틈도 없이 바로 중국과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13일, 그는 트위터를 통해 14일에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미국의 소리’는 폼페이오의 이번 중국행은 ‘북미정상회담 합의를 이행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피터 밴 뷰렌(Peter Van Buren) 미 전 국무부 외교담당관은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든 간에 정상회담 개최 자체가 승리라고 말했다. 뷰렌이 로이터 통신에서 발표한 글에서 북미정상회담은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정은이 현재 이미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했고, 미국 인질을 석방했으며, 탄도미사일 시험장과 주요 핵실험 시설을 폐쇄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트럼프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는 몇 개월 전만해도 북한이 이런 것들로 전쟁에 대한 공포심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중국 언론에는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보도가 많지 않았지만 네티즌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고, 미국 언론만큼 비관적이지도 않았다. 일부 네티즌들은 북미정상회담은 트럼프의 엄청난 승리로 막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만약 김정은이 정말로 핵을 없앤다면 트럼프의 지위는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 로널드 레이건과 동등해지고 노벨평화상 수상도 당연하다고 보는 네티즌들도 있다. 그들은 또한, 만약 김정은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배후에서 훼방을 놓는 중국에 그 책임을 떠넘기고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면 트럼프는 민심을 얻어 2020년 선거에서 쉽게 재선에 성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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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이후 중국에 줄곧 강경한 태도로 일관해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의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미 의회 양당은 이례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對中) 전략을 지지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독일·호주 등 서방 국가들도 중국의 침투를 막기 위해 중국에 대한 협공에 가세했다. 중국이 '샤프 파워(Sharp Power)'와 '소프트 파워'를 통해 타국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미국과 서구가 갈수록 더 경계하고 주목하는 가운데 점차 많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즉 서방 국가들은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에 진정한 위협과 공포를 느끼고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했을까? 분석가들은 중국이 세계 각지에서 서로 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소리’에 따르면 중국이 유럽과 미국에서 노리는 가장 큰 목표는 정권의 합법성 수립을 위해 발언권을 쟁취하는 것이다. 중국은 아프리카 개발 도상국에 자신의 발전 모델을 수출하려 한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중국이 이미 양국의 정치적 핵심에 접근해 그 두 나라를 거의 중국의 세력권에 집어넣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보니 글래서(Bonnie Glaser) 연구원은 중국이 미국과 유럽에서 사용하는 수법을 ‘공공 외교'라고 부른다. 즉, 어떤 문제를 겨냥해 외국 민중을 교육하고 설득하는 동시에 국가 이미지를 높이려 한다. 이것이 중국의 ‘소프트 파워’다. 중국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중국어 매체를 인수했고, 서양 주류 매체도 매수한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은 이런 방식으로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가치관을 수출하고 서구 주류 사회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중국이 이렇게 하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공산당 정권의 합법성을 강화하는 것, 민주주의 합법성을 약화해 그들의 모델을 수출하기 위한 여론 조성이다. 글래서 연구원은 “이것은 결코 위험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며 "미국은 반드시 중국에 투명성을 요구하고 관련 입법과 집행을 강화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데이비드 샴보(David Shambaugh)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도 중국이 구미에서 하는 활동이 '발언권 다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미디어, 싱크 탱크, 대학과 학자, 그리고 각 주(州)와 지방 정치인, 그리고 중국인 학생, 학자, 기타 중국인들이 모두 중국의 '침투'와 '영향'의 표적이라고 했다. 구미에서와 달리 중국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거의 목적을 달성했다. 중국의 침투는 거의 양국의 정치적 핵심에 접근해 정치 시스템을 건드렸다. 호주 언론의 5월 28일자 보도에 따르면, 호주 정부의 한 기밀 보고서에서 “중국이 각층 정치 활동에 영향을 미치려 했고 이런 행위는 이미 10년이나 지속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 작성자는 호주 총리 말콤 턴불의 고문 존 가넛(John Garnaut)이다. 그는 국회 증언에서 "중국의 활동이 뻔뻔스럽고 과격해졌다. 우리는 더는 그것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한 언급했다. 중국이 뉴질랜드에 침투한 실상은 호주와 마찬가지로 심각하다. 미국 전직 정보분석가 피터 매티스(Peter Mattis)는 의회 청문회에서 뉴질랜드 집권 노동당 고위층이 중국과 가까운 자들로부터 막대한 기부금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뉴질랜드 전현직 총리들은 중국의 영향력 행사 문제를 부인하고 있다. 반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는 소프트 파워 침투 방식을 채택하고 이들 국가에서 중국식 모델를 수출하려 했다. 중국은 이들 국가의 정치 지도자, 정당 지도자, 젊은 세대 지도자, 그리고 언론계 엘리트 등을 상대로 정치 교육을 진행하면서 이런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국 민간연구소 스팀슨 센터의 쑨윈(孫韻) 연구원은 중국의 이른바 ‘치국이정(治國理政·국가 통치)’ 경험 교류가 직접적인 ‘혁명’ 수출은 아니지만, 중국이 이데올로기를 수출한 것은 확실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을 사용했지만 목적은 하나다. 영향력 수출과 침투를 통해 궁극적으로 그 국가들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야심찬 공작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나라가 거의 동시에 이를 저지하고 협공에 나선 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이후 미중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그는 중국에 대해 일련의 복합적인 조치를 취하며 다방면에서 타격을 가했다. 캐나다, 호주, 독일 등도 가세해 미국과 함께 중국을 향해 포위 공세를 펴고 있다. 호주 언론은 끊임없이 중국의 침투 행위를 폭로하고 있다. 말콤 턴불 호주 총리는 새로운 ‘반(反)간첩법 및 반(反)외국개입법’의 입법을 추진하면서 특별히 중국어로 “호주 인민들 일어서라(澳大利人民站起來)”고 말했다. 4월 27일, 독일 연방 상원은 의안을 통과시킨 후 연방 정부에 “국가 안전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외국 투자 심사에 개입하는 조건을 낮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캐나다 의회는 4월 24일 청문회를 열고 캐나다에 가하는 중국의 영향력 행사와 서방에 대한 침투 그리고 강제 장기적출 등에 주목했다. 샤예량(夏業良) 전 베이징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세계는 새로운 냉전 구도가 형성되고 있고, 문명 세계는 중국과 북한, 이란, 시리아 등 몇몇 사악한 국가들을 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악수를 두고도 스스로 총명하다고 여긴다”며 “그러나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미 기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트럼프의 리더십 아래서 전면적으로 중국에 반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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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남중국해 해상에서 중국해군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이 실시됐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제18차 보아오포럼 개막식에 참석한 직후 남중국해 해상 열병식으로 이동해 연설을 진행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3일 간 진행될 예정이던 군사훈련이 하루 앞당겨 종료됐다는 점이다. 중국 국방부는 이번 열병식에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7명이 대동했다고 밝혔다. 열병식 당일에는 48척의 전함과 76대의 군용기, 그리고 해군 장병 1만여 명이 동원됐다. 시 주석은 중국의 유일한 항공모함인 랴오닝호에서 시행된 함재기 이륙 훈련을 참관한 후 이내 자리를 떠났다. 그 직후 중공의 대규모 군사훈련은 예정보다 앞당겨 종료됐다. 3일로 예정됐던 군사훈련을 서둘러 마무리한 배경은 무엇일까? 중국 해군은 일찍이 포럼 기간에 남중국해 일부 해역에서 군사훈련을 진행하겠다고 했고 중공은 선박 항행 금지 구역에 입항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공의 군사훈련이 시작된 직후인 4월 11일 미국의 루스벨트호 핵추진 항공모함 전대(戰隊)도 남중국해에서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미국·중국·일본과 일부 동남아 국가의 해군 역시 남중국해에서 훈련했다. 로이터 통신은 미군이 필리핀 당국자와 군부 장성들을 군사훈련 현장에 초청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훈련에서 미군은 전투기 F-18 20대를 동원했으며, 약 20분 동안 중공이 설정한 항해 금지 구역에서 진행했다. 루스벨트호 항모 전대 지휘관인 스티브 쾰러(Steve Koehler) 해군 소장은 “몇몇 선박들이 루스벨트호 주변에 있는 것을 관측했다. 남중국해에서 훈련 중이던 각국의 해군 중 일부로 추정된다"면서도 "우리가 만난 선박들은 전쟁의 프로를 존중했다"고 말했다. 쾰러 소장의 발언은 미국의 핵추진 항모가 중공이 설정한 항해 금지 구역에 진입해 핵심 지대에까지 도달했다는 뜻이다. 이는 미군이 중공의 금지령을 완전히 무시한 것으로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던 급박한 상황이었다. 중공이 남중국해에서 위력을 과시한 배경에는 중미 간 경제무역 마찰의 격화가 있었다. 중공은 정권 붕괴를 가장 두려워한다. 그래서 본격적인 무역전을 개시할 수는 없지만 체면마저 잃을 수는 없기에 남중국해에서 무력을 과시함으로써 대만과 미국을 위협하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좌시하지 않고 남중국해에서 똑같이 무력을 과시했다. 중공 혁명원로 뤄루이칭(罗瑞卿)의 아들 뤄위(羅宇)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시절에 암암리에 만연했던 관직매매가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심각하다고 밝혔다. 뤄위는 “중공군은 부패할 대로 부패해 전투력을 상실했으며, 시진핑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에서 이러한 오합지졸 군대가 전투에 돌입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중공은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미군의 무력 앞에서 중공은 대만해협으로 자리를 옮겨 ‘무력통일’을 위한 맞춤형 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는 공포를 두어 발 쏘는 데 불과했지만 자국에는 군사훈련이 잘 마무리됐다고 전했다. 이때 중공의 심리는 아마 '내가 설정한 범위 내에서 활보하다니··· 감히 싸우지는 못하겠고 가만히 있자니 화가 나 억울하기 그지없다'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럴 바에야 명분을 찾아 철수하는 것, 즉 대만해협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 낫다고 계산한 것일터. 중공은 시 주석이 연설에서 “위대한 중화민족이 부흥하는 과정에서 강대한 해군이 지금처럼 절박하게 필요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시 주석은 왜 랴오닝호에 오르지 않았을까? 왜 급하게 보고만 갔을까? 이에 대해 한 가지 연관된 과거를 떠올릴 수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2006년 5월 황해에서 베이하이(北海) 함대를 시찰했을 때 일이다. 갑자기 군함 2척이 당시 후 전 주석이 탄 함정을 공격해 왔다. 후 주석은 무사했지만 병사 5명이 사망했다. 이후 이 군함은 장딩파(張定發) 당시 해군사령관의 명령을 받고 후 전 주석을 살해하려 했다고 전해졌다. 장 사령관은 장쩌민의 심복 중 하나다. 홍콩 시사지 ‘동향(動向)’에 의하면, 후 전 주석은 2009년 4월 23일 칭다오(青岛)에서 14개국의 해상 열병식을 사열하던 도중에 ‘열병식 직후 장쩌민파 요원의 암살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후 전 주석은 계획을 급작스레 변경해 암살을 피했다. 이런 신변 위협은 시 주석에게도 제18차 당대회 이후 최소 10회 있었다. 지난해 12월처럼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는 일이 최소 5차례, 항공기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도 4건이었다. 시 주석이 랴오닝호에 오르지 않고 황급히 떠난 모습에서 아무래도 후 전 주석이 봉착했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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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수락한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6년여 만에 베이징의 초청을 받고 4일간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국제 정치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서도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악의 축으로 불리던 불량국가의 지도자가 단번에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은밀히 진행된 이번 회담은 한반도 문제에서 ‘차이나 패싱’은 없다는 메시지를 외부에 보여주려 한 것 같으나 아직 북중 관계의 정상화를 말할 수는 없다. 단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중국과 북미 정상회담 준비에 착수한 북한 양국의 필요성이 맞아떨어져 성사됐을 뿐이다.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과 김씨 정권이 맺어온 관계는 역사적으로 다소 독특하게 발전해왔다. 미국의 소리(VOA)에 따르면, 중공은 소련의 지지를 등에 업고 중국대륙에서 정권을 탈취한 뒤 한동안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다. 이때 김일성이 스탈린과 결탁해 한반도 전쟁을 발발한 것이 중공에는 자국의 정치적 불안정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도 중공은 지금도 이를 ‘항미원조(抗美援朝)’라고 선전한다.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은 수십만 군인을 한국전에 참전시킨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처음에 스탈린은 마오쩌둥에게 소련군이 공중에서 엄호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막상 중국이 참전하자 지키지 않았다. 그 결과, 중국군은 유엔연합군의 무차별적인 공중폭격에 노출돼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도 공중폭격으로 사망했다. ‘태자’ 신분인 마오안잉은 군 규율을 무시하고 대낮에 불을 피워 계란볶음밥을 해 먹다가 유엔군의 전투기에 발각돼 사망했다고 한다. 한국 전쟁은 수십만 중국 장병의 목숨을 앗아갔다. 1961년, 중국과 북한은 <중-북 우호협력 및 상호 원조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흔히 말하는 ‘혈맹’이 됐다. 한국 전쟁이 휴전된 후 김일성이 평양의 친공파(親共派)를 숙청하자 살아남은 고위 간부들은 중국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현재까지도 이 역사는 중공과 그 지지자에게 말하기 힘든 상처로 남아 있다. 인민일보는 최근에 이 사실을 언급하면서 김정은 정권이 배은망덕하다고 비난했다. VOA는 70여 년간 북한이 중공을 이용하면서도 적대시하고 경계했다는 것이 많은 정치평론가의 평이라고 보도했다. 김정은 역시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고모부 장성택을 포함해 다수의 친(親)중 고위간부들을 숙청했다. 이렇듯 북중의 비정상적인 관계로 볼 때 김정은의 이번 방중은 확실히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 넘은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이 김정은의 방중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 역시 트럼프 정부가 주도한 대북제재가 김정은의 방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국제 사회에서 대북 제재 목소리가 커지자 중공은 마지못해 동참했고 이는 북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중국의 대북 수출은 여러 분야에서 눈에 띄게 감소했다. 바로 이 때문에 김정은은 공손한 태도로 시진핑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중국 관영방송 CCTV는 시진핑 앞에서 매우 공손한 태도로 경청하고 열심히 메모하는 김정은의 모습을 내보내면서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 같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북한으로 돌아간 이튿날, 북한 매체는 40여분짜리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프로그램에는 김정은이 베이징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는 장면만 나왔을 뿐 시진핑 앞에서 메모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CCTV에서 보도한 “김정은이 한반도 비핵화에 주력하고 있다”라는 메시지나 남북 정상회담‧북미 정상회담에 관한 언급도 없었다. 현재 중공은 ‘한반도에 전쟁도, 혼돈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것이 북한에 보호막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으나 그렇다고 북한은 중공의 이런 태도가 결코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중공의 보호 하에 있으면서도 감사와 존중을 표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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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3차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유일한 국가 부주석 후보였던 왕치산이 ‘선출’됐다. 이번 표결에서 반대표는 단 한 표밖에 나오지 않았다. 앞선 5년에 시진핑 주석과 왕치산이 ‘시왕연맹(習王聯盟)’을 이뤄 움직였다면 이제는 본격적인 ‘시왕체제(習王體制)’가 시작될 전망이다. 그동안 왕치산은 ‘칠상팔하(七上八下, 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의 관례에 따라 19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정계에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왕치산은 이번 전인대에서 인민대표대회 대표로 파격 선출된 데 이어, 양회 기간 상무위원 7명과 함께 자리를 지키면서 국가 부주석으로 정계 복귀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었다. 외부에서는 시진핑이 긴장 국면에 빠진 미중관계에 대응할 목적으로 ‘슈퍼외교팀'을 구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번에 국가 부주석으로 선임된 왕치산이 슈퍼 외교팀의 수장으로 유력하다는 게 지배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왕치산이 과거 관례를 깨고 시 주석의 고문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왕치산을 통해 상징적인 직책이었던 국가 부주석직에 실질적인 역할이 부여될 것이라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또한 시 주석과 왕치산의 긴밀한 관계에 비추어 볼 때 69세인 왕치산이 해당 직책에 재임하면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왕치산이 미중관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책임질 것이라고 전했다. 미중관계는 중국의 국제외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왕치산은 특수한 자리에서 중요한 임무를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소식통은 시 주석이 왕치산에게 대미정책 뿐 아니라 정치·경제 분야에 대한 관리감독, 반부패 운동에서도 도움을 주기 원한다고 밝혔다. 왕치산의 외교 역량과 국내경제 관리 능력에 대한 많은 분석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대체적인 평가는 긍정적이다. 왕치산은 이미 국내경제를 주관한 적 있을 뿐만 아니라 인맥도 넓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의 정계, 기업계와도 꾸준히 교류한 바 있다. 외부에서도 왕치산이 해당 영역의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면서 지금 중국이 처한 3가지 위기 국면을 제시했다. 첫째, 미중관계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공산당과 공산주의가 국제사회에 발휘하는 영향력을 전면 억제해왔다. <파이낸셜타임즈>가 보도한 바와 같이 미중관계는 근 30년간 볼 수 없었던 최악의 단계로 들어섰다. 둘째, 미중간 무역 분야에서 마찰이 거듭되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100여 가지의 중국산 품목에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무역전쟁의 신호탄이 될 이번 결정과 관련해 중국 측이 대처할 카드는 없어 보인다. 이는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셋째, 중국 경제 성장률의 둔화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됐다. 중국 경제 전문가 리쉰레이(李迅雷)는 올해 중국 경제는 계속 하강 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월, 스웨덴 글로벌 금융그룹 UBS의 왕타오(汪濤) 중국 수석이코노미스트 역시 작년까지 6.8%였던 경제성장률이 올해 6.4%로 하락, 내년에는 6.3%까지 주저앉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같이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한 중국이 향후 5년을 보내면서 더 첨예하게 내부 갈등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그리고 지금 중공은 대처하기에 급급해 전혀 반격할 힘이 없기에, 시진핑은 왕치산의 손을 빌려 경제ㆍ외교 분야를 처리할 심산으로 보인다. 이 같은 난관을 감당해낼 수 있는 사람은 왕치산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ㆍ외교 분야뿐 아니라 왕치산이 반부패 운동을 지휘했으면 하는 시 주석의 바람 또한 같은 맥락이다. 왕치산이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기위) 서기로 재임하면서 시진핑의 반부패 정책을 주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 정계에서 ‘차라리 염라대왕을 만날지언정 왕치산은 만나고 싶지 않다(寧見閻王 不見老王)’라는 말이 돌아다닐 정도였다. 이 기간 동안 부패 관료들은 가시방석에 앉은 것과 같이 하루를 보내며, 거물급 부패 호랑이들이 왕치산의 손에 낙마하는 것을 지켜봤다. 여기에는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을 비롯해, 링지화(令計劃) 전 중앙판공청 주임, 궈보슝(郭伯雄),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군사위원회 부주석, 보시라이(薄熙來) 2기 정치국 위원 겸 충칭시 서기, 쑨정차이(孫政才)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19차 당대회를 앞두고서는 막상 반부패 정책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국민이 기대했던 ‘최후의 호랑이’ 장쩌민(江澤民)과 쩡칭훙(曾慶紅)은 척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반부패 정책에는 ‘철모자왕(鐵帽子王·청나라 세습 귀족)이 없다’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특히 19차 당대회에서 왕치산이 물러난 뒤에는 반부패 정책이 더욱 고착됐다. 최고위급 관리의 낙마가 중단되면서 반부패 정책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이제 왕치산이 다시 반부패의 칼자루를 잡게 됐다. 그가 전과 같이 강력한 사정을 이어가며 ‘최후의 호랑이’를 사냥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우샤오후이(周曉輝) 시사평론가는 왕치산이 경제ㆍ외교를 담당하든 반부패를 이어가든 그의 행보는 결코 평탄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왕치산 개인이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해도 그의 등에 붙은 ‘호랑이’는 하늘을 거스르고, 죄악으로 가득하며, 모순이 빈번한 중국 공산당이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공산당은 국제사회의 규칙을 빈번히 어기고 보편적인 가치를 존중하지 않아,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왕치산이 마주하고 있는 곤경은 매우 분명하다고 말했다. 시진핑과 함께 이 혈로를 뚫고 나가려면 오직 천심과 민심에 따라 공산당을 포기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그때서야 중국은 열반재생의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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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장>을 읽었다면 양육랑(楊六郎)의 수하 맹량(孟良)과 초찬(焦贊)이라는 인물을 기억할 것이다. 두 사람은 형제같이 행군과 작전에서 항상 함께 행동하며 떨어지지 않았기에 ‘초불리맹, 맹불리초’(焦不離孟 孟不離焦, 초찬은 맹량을 떠날 수 없고, 맹량은 초찬을 떠날 수 없다)란 말이 생겨났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널리 전해지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시진핑과 왕치산은 손을 맞잡고 반부패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외부에서는 이를 두고 ‘시왕연맹’이라고 불렀다. 최근 왕치산은 중앙기율검사위원이 아닌 국가부주석으로서 시진핑의 옆에 다시 서게 됐다. 두 사람이 보여주는 ‘시왕체제’가 마치 현대판 ‘초불리맹 맹불리초’와 같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간 외부에서는 왕치산이 ‘제8의 상무위원’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왕치산이 국가 부주석 자리에 앉음으로써 이번에는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의 실질적인 2인자가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중공 혁명원로 뤄루이칭(羅瑞卿)의 아들 뤄위(羅宇)는 중화권 매체 '칸중궈(看中國)'와의 인터뷰에서 “왕치산이 19차 당대회에서 퇴임한 것은 시진핑이 함께 계획한 대책의 일환”이라면서 “장쩌민(江澤民)파인 장더장(張德江), 류윈산(劉雲山), 장가오리(張高麗)를 퇴출시키기 위해 왕치산 또한 함께 물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69살인 왕치산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퇴임한 것은 겉보기에 중공 내부의 ‘칠상팔하(七上八下, 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의 규정을 따른 것이지만 그것이 시진핑의 본의는 아니었단 뜻이다. 홍콩 매체는 지난해 “시진핑은 왕치산을 상무위원회에 유임시키고 싶었지만 당내 이익집단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관료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왕치산이 실시한 반부패 정책이 관료집단 전체를 대적했기에 왕치산이 유임한다면 해당 관료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안에 떨어야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왕치산은 여러 차례 쩡칭훙(曾慶紅)을 불러 조사하면서 본인과 가족의 부패문제를 고백하라고 요구했다. 쩡칭훙은 왕치산이 유임되면 자신의 앞날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므로 왕치산의 유임을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이외에 장더장과 류윈산, 장가오리 역시 왕치산의 유임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지어 류윈산은 자신도 유임하려 상무위원 숫자를 11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제의했다. 강력한 저지에 부딪힌 왕치산은 건강 문제 때문에 상무위원직을 유임할 수 없다고 표명했다. 시진핑은 지금까지 왕치산과 손을 잡고 장쩌민파벌의 수많은 관료를 척결해 왔지만 19차 당대회부터 현재까지 반부패 운동은 별 성과가 없는 상태다. 게다가 왕치산이 완전히 물러날 경우, 그를 대체할 다른 인물을 찾기도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시진핑은 ‘한 걸음 물러나는 차선책’을 취하기로 했다. 왕치산을 중앙 권력에서 내보낸 뒤 다시 권력의 핵심부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뤄위는 “왕치산은 공산당 내에서 직위가 없기 때문에 국가 부주석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이라며 “시진핑과 왕치산의 계획한 전략이 통하면서 왕치산이 정치무대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왕치산의 등용은 중공의 ‘칠상팔하 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니기에 중공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지 않는다. 이른바 칠상팔하-임기교체가 있는 연도에 중공 정치국 상무위원이 67세가 되면 5년 연임을 할 수 있지만, 68세가 되면 퇴임해야 한다는 규정은 장쩌민이 명망이 높고 능력 또한 출중한 정적들을 제거한 후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심어 놓기 위해 정한 것이다. 69살인 왕치산은 여기에 해당한다. 시사평론가인 헝허(橫河)는 “국가 부주석이 비록 실권이 없을지라도 누가 맡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사람에 따라 권력의 크기도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왕치산의 성공적인 복귀는 새로운 ‘시왕체제’를 시작하게 할 것이다. 게다가 헌법에서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임기가 사라지면서 이제 시진핑과 왕치산은 국가주석과 부주석 자리에서 무기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시왕체제’가 시작되면 장쩌민파는 판을 뒤집을 기회를 잃어버리고, 이미 낙마했지만 불복하던 크고 작은 부패 관료들에게는 일말의 희망조차 사라질 것이다. 아직 낙마하지 않은 장쩌민파 관료에게 시왕체제는 그 자체로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시진핑이 절묘한 대책을 쓴 것이다. 뤄위는 “시진핑은 권력을 안정시킨 직후 ‘6·4텐안먼 사태’를 바로잡아야 하고, 파룬궁 탄압의 원흉 장쩌민을 법으로 처리한 다음, 중국공산당을 해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끊임없는 화근이 남을 것”이라며 “시진핑이 무엇을 하든 중공이 붕괴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앞으로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지금 잡은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되며, 이런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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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규범을 준수하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다(沒有規矩,不成方圓)'는 옛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규범에 따라 행하지 않으면 일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규범을 따른 적이 없는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은 이제 강제로 쓰디쓴 과실을 삼켜야 할 상황에 놓였다. 중공 양회가 끝나가면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새로운 외교팀도 확정됐다. 왕치산(王岐山) 국가 부주석이 중공 최고위 외교관에 오르면서 미국과의 관계 처리에 주력하게 될 것으로 보이고 왕이(王毅)는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중공의 외교 등급도 향상됐다. 이 외에도 시 주석의 경제브레인 류허(劉鶴) 역시 부총리로 승진하면서 미국과의 경제 무역에 주력할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이미 정치국 위원에 진입한 양제츠(楊潔篪) 외사판공실 주임도 가세했다. 외교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한 중공은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중-미 관계 개선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18일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보도에 따르면 데이비드 말파스(David Malpass) 미국 재정부 국제담당 차관은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중국 경제가 시장 자유화에서 이탈해 양국의 소통창구였던 ‘포괄적 경제대화(CED)’도 중단됐다”고 전했다. 말파스 차관은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실망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중국과의 비공식적인 소통은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트럼프 정부는 연이어 중국을 골치 아프게 하는 행보를 보이며 무역제재의 수위를 높여왔다. 이에 대해 중국은 줄곧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중국이 미국의 제재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싶어 하는 건 분명하지만,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피하려 하는 게 더 크다. 무역전쟁은 중국이 가장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다. 미국 언론은 “미국이 현재 중국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일 계획을 구상하고 있으며, 매년 최소 3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산 상품에 관세를 추가 부과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미국 내 중국의 투자를 통제하고, 중국 유학생 및 학자, 관리자의 비자를 제한하며, 중국이 저지른 무역 규칙 위반 사례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에 지명된 래리 커들로(Lawrence Alan Larry Kudlow·71)는 보수파 경제학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기존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 “대형 무역 파트너 및 동맹국을 이끌고 중국에 대항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같은 보도만으로도 중국은 이미 초조하고 불안하지만, 이 내용이 가장 주요한 사안은 아니다. 중공은 또 다른 문제가 줄지어 일어난 직후 또 한 번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여행법’에 직접 서명하면서 미국-대만 간의 관계가 전반적으로 개선된 것이다. 이는 1979년 미국의 ‘대만관계법’ 입법 이후 가장 큰 움직임이다. 중국의 한 연구원은 “대만여행법이 이미 중-미 관계의 정치기반을 서서히 바닥내고 있다” “중-미간 무역전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문제”라고 밝혔다. 한편, 시 주석은 지난 17일 중국 국가주석 연임에 성공했다. 국제관례상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 원수라면 시 주석에게 축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개인적으로 관계가 좋고 시 주석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가장 먼저 축전을 보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시 주석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해 10월 중공 19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이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연임하자 전하를 걸어 와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러나 오 개월 후 트럼프 대통령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실로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외부에서는 중-미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심지어 ‘중국이 어려운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 관계자는 “향후 행정부처가 대만여행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집행하던, 이 입법 과정과 서명 발효 자체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입장이 크게 변화했음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정책 결정에 참여한 한 중공 관료는 ‘월스트리트저널과(WSJ)’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시달리느라 죽을 지경"이라고 밝혔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밝혀졌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은 흔히 말하는 ‘기분파’이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신념을 갖고 행동한다. 말과 행동이 간결하고 재빨라 머뭇거림도 없다. 중-미 경제대화의 메커니즘은 조지. W. 부시 정부부터 시작됐다. 당시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경제 대화를 전략적 대화에서 분리해 재정 부처가 전담하도록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시기에 소위 ‘중-미 전략 및 경제 대화’는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중국과 담판을 내려는 듯 보였어도 당시 물밑으로는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며 중공과의 대화를 지속하지 않았다. 취임 초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의 이익을 우선순위에 두고, ‘미국 우선주의’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를 강조했다. 그러나 중공은 여전히 과거의 미국 대통령들을 대했던 수법을 유지하고 있다. 작은 이익으로 매수하고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은 뒤 또 다시 공공연하게 국제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수법이 더 이상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날린 또 하나의 강펀치로 인해 중공은 아우성치고 있다. ‘권하는 술은 안마시고 벌주는 마신다(敬酒不吃吃罰酒)’는 속담이 있다. 중공은 국제적인 규칙을 줄곧 무시해왔고, 무역 규칙을 파괴했다. 세계적 보편 가치를 무시하고 국내외의 문제를 제멋대로 처리했다. 시 주석이 외교팀을 재정비하고 보완했지만, 중공이 남긴 쓰레기와 같은 방식으로 국제무역과 국제관계를 처리한다면, 중공이 억지로 삼켜야 할 쓴 과실은 계속 커져갈 것이며 점점 더 삼키기 힘들어질 것이다. 중국인들은 ‘일에 대해서 논하지 사람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對事不對人)’고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 사회와 독재 폭정 체제는 타고난 상극관계다. 시 주석이 지금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하늘의 뜻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공산당 체제를 포기하는 길이 유일하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되고 지체해서도 안되며 빠를수록 좋다. 밤이 길면 꿈이 많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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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만여행법’에 서명하면서 해당 법안이 정식으로 발효됐다. 이로써 미국-대만 간의 모든 상호 방문이 용이해졌으며, 대만의 고위층 관료가 기존보다 존중받는 상태로 미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국무원과 국방부 관료와의 면담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법안은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실질적으로 변화했으며 미국-대만 관계가 지속적으로 가열될 것임을 보여준다. 대만 총통부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 서명’에 감사를 표했고, 미국 행정부처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양국 관계가 발전될 것이라 밝혔다. 대만 외교부도 성명을 내어 미국에 사의를 표했다. 이를 바라보는 중국의 반응은 과거와 다소 달랐다.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의 공식적인 반응은 비교적 담담했다. 최근 중공 양회가 중요 단계에 접어들면서 고위층의 과중한 업무로 인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공 외교부는 ‘엄중한 항의’를 거론한 것 외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가 미국을 대상으로 제기한 ‘엄중한 항의’는 대만 정부와의 왕래를 중단하고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지켜달라는 요구뿐이다. 중국의 반응은 “베이징이 워싱턴과 정면충돌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중국과 미국의 무역 마찰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중-미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교적 담담했던 중국 정부의 반응에 비해 일부 언론과 누리꾼의 반응은 오히려 격렬했다. 중국 매체 환구시보는 ‘대만을 쳐부수자! 트럼프가 대만여행법에 서명했다!’라는 험악한 제목을 사용했고 한 누리꾼은 “너 잘났다! 체면을 조금도 안 주네” “‘반분열국가법(反分裂國家法)’을 가동할 때다” “무력으로 대만을 통일하는 것이 순리다”라며 과격한 모습을 보였다. “체면이 있다면, 왕이(王毅) 부장은 스스로 얼굴을 때리고 살찐 척하겠다(억지로 허세를 부리고 있다)” “미국을 제제하자. 미국 국채를 매도하고, 미국에 거주 중인 처자식의 부동산을 팔아 치우자. 미국에서 고소비로 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불러들이고, 모든 재산을 다시 중국으로 가져오자…” 같이 조롱하는 누리꾼도 있었다. 또 이들에게 “이건 자신을 제재하는 방안 아닌가?” “하하, 미 제국에 누구의 자녀와 가족이 있는지 알기는 하는가?”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1979년 중-미 수교 이후, 미국과 대만 간의 정부 왕래는 매우 적었다. 있다고 해도 경제 무역이나 교육 분야 정도였고 국방‧외교 등 민감한 분야에서는 전무했다. 대만 총통과 외교부장, 국방부장도 줄곧 미국을 공식 방문한 적 없다. 명문화된 규정은 없었지만 양국은 암묵적으로 이 규칙을 지켜왔다. 공산당이 정권을 탈취한 이후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물러났다. 미국은 중공을 인정하지 않고 중화민국과 교류했다. 하지만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중-미 관계가 ‘해동’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대만과의 교류는 단절됐다. 이렇듯 수십 년 동안 지켜온 암묵적인 규칙을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상원이 깨뜨리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의 소리(Deutsche Welle)’는 전문가를 인용해 “대만은 미국의 10대 무역 파트너이기에 해당 법안의 통과는 미국의 이익과 직결된다”며 “미국은 대만과의 적절한 접촉을 통해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려 한다”라고 주장했다. 국민당 싱크탱크 고문 쩡푸성(曾複生) 교수는 “현재 중-미 양국이 여러 사안에서 불협화음을 내는 와중에 미국이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베이징(北京)을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많은 미국 인사가 민주 사회인 대만에 호감을 느끼고 있으며 대만이 국제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대만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쩡푸성 교수는 “더 중요한 점은 트럼프 정부가 이미 중공을 ‘전략적 경쟁 상대’로 지정했고, 미국 국회와 행정부처 역시 이 기회에 중공에 대한 태도를 조정하려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쑤쯔윈(蘇紫雲) 단장(淡江)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문건에 직접 서명하면서 중대한 상징적 의미가 더해졌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는 대만 정부에 ‘민주주의를 지지하겠다’는 의도를 전달함과 동시에 베이징에는 ‘미국의 정책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신호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법률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지 않더라도 법안은 자동 발효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왜 자동 발효 몇 시간을 남기고 직접 서명했을까? BBC는 “‘타이완 문제의 해결이 여전히 자기 손안에 있다’는 것을 중공에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중-미간에 무역 전쟁은 시작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사업가적 기질을 발휘하고 있다. 중공이 경제 무역에서 양보하지 않을 때 대만여행법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좋은 카드가 될 것이다. 법안에 직접 서명함으로써 미국-대만 문제를 끝맺고 상황을 정리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마이크 폼페어 신임 국무총리가 국회 청문회를 순조롭게 통과할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문제를 조속히 처리했다는 것이다. 법안 통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중-미-대만 삼국 관계의 균형이 깨지고, 이 때문에 중국이 대만에 압박 수위를 높이거나, 무력으로 대만을 통일시키려는 움직임이 커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타이완대학 쩡젠위안(曾建元) 법학 박사는 “무력 사용의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중공은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만에 대한 무력행사는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지역의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이며, 곧 이 지역과 관련 깊은 미국에 대한 도전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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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핵보유국 8개 국가 중 중국과 북한만 경제적으로 가장 빈곤한 처지에 놓여 있다. 중국 공산당은 핵보유국 지위를 얻기 위해 국민들의 허리띠를 졸랐고 그렇게 만든 자금을 연구 개발에 투자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바지보다 핵을 원한다”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주고, 물건이 필요하면 물건을 주고, 돈이 필요하면 돈을 주면 된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다”라고 말한 바 있다. 30여 년 동안 국민을 채찍질해 강행한 결과는 상처로 남았고,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여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중국 서북 고원지대 칭하이(青海)성에 진인탄(金銀灘)이라는 곳이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공산당의 선전 가요와 1953년에 촬영한 영화에 따르면 진인탄은 ‘울창한 초원, 유목민이 야크와 양을 이끌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곳'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1958년 이후, 초원의 아름다운 모습은 찾기 어려워졌다. 중국 과학자와 구소련 고문단이 이곳에 중국판 로스 앨러모스(Los Alamos) 연구소를 세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현재 이 이름보다 '221공장'이라는 별칭으로 기억되고 있다. 마오쩌둥이 계획한 ‘혁명의 성과’를 내기 위해 만들어졌던 이 핵무기 연구개발기지는 이미 폐허로 변했다. 그러나 그곳에 거주하던 천여 호 가까운 장족과 몽고족은 이 프로젝트의 피해자로 여전히 살고 있다. 221공장 박물관의 소개에 따르면 이들 유목민은 이주를 자원했으며, 지원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중국 정부가 수천 마리의 양을 보상금으로 지불했다는 것이다. 이는 과연 사실일까? 뉴욕타임스는 올해 80세인 경찰관 인수성(尹曙生) 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인씨는 1963년 이 사건을 조사했는데, 이 과정에서 박물관의 소개와는 전혀 다른 사실이 드러났다. 221공장은 중국 공산당이 추진하던 대약진의 한 부분으로, 당시 칭하이성 상당수 지역의 유목민들은 이에 저항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씨는 그들이 자신의 토지와 가축 몰수에 반대해 당국에 저항했다고 증언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 당국은 반란을 우려하고 핵공장 건설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 판단했다. 따라서 인씨는 당국이 유목민을 그곳에 거주하게 했을 리 없고 쫓아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씨가 2012년에 작성한 회고록에 따르면 공산당 관료는 진인탄 인근 유목민 700여 명을 ‘반혁명 분자’라는 죄목으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당시 ‘반혁명죄’가 얼마나 무거운 죄였는지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이른바 ‘죽지 않아도 껍질이 한층 벗겨’지는 죄였던 것이다. 현재 중국에는 ‘반혁명’이라는 죄는 사라졌지만 ‘국가정권 전복죄’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살아 있다. 즉 이름만 바뀌었을 뿐 사실상 맥락은 같은 말장난인 것이다. 인수성 씨는 이들 유목민은 반혁명죄로 투옥돼 이중 17명이 잔인한 고문으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진인탄의 유목민 9,000명은 어쩔 수 없이 이주를 해야 했고 24시간 내에 이주준비를 마쳐야 했다. 데려갈 수 있는 야크는 몇 마리에 불과했다. 또 이주 과정 중 경위들에게 구타, 학대를 당하기 일쑤였고, 몇백 명이 사망했다. 대이동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한 몽고족은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우리는 사람에 속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유목민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유목민이 강제 이주된 이후 과학자, 기술자, 사병 등 3만여 명이 221공장으로 입주했다고 보도했다. 그들은 이전에 쫓겨난 유목민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221공장의 전성기에는 작업장 18개를 포함해 각종 실험실과 건축물이 약 570평방 킬로미터, 220평방 마일에 걸쳐 들어섰다. 현재 폐허가 된 핵 작업장 인근에 거주 중인 몽고족 유목민 56세 펑춰줘마(朋措卓玛) 씨는 당시 그곳에 있던 과학자들에게 고기와 우유를 공급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중국의 핵개발은 극비였기 때문에 출입통제 구역로 지정되어 있었으며 출입증을 필요로 했다고 증언했다. 이 비밀 도시에서는 마오쩌둥의 지시 하에 수소탄 연구 제조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의 정치 활동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966년 마오쩌둥이 문화 대혁명을 일으켰을 당시, 이 핵 실험장은 정계에서 문제가 됐다. 급진파에 대한 청산, 심문, 적대 투쟁이 핵 연구단지에까지 퍼진 것이었다 약 4,000명의 직원이 구류되거나 취조를 받았고, 50여 명은 처결, 구타 끝에 사망했고 아무런 이유 없이 자살로 처리됐다. 당시 중국의 유명 과학자였던 첸진(錢晉)은 취조 중 몽둥이로 구타당해 며칠 후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진인탄을 취재하던 한 여성 작가는 당시의 중국이 현재의 북한과도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마오쩌둥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순수한 정신 같은 것이었어요. 그가 하라는 대로 했지요”라고 말했다. 당시 중국 국민은 공산당의 정치 운동으로 공포에 떨었다. 이 공포가 극에 달해 자주적인 사고는 불가능했다. 속으로 다른 생각을 가졌다할지라도 말할 수 없었다. 말하는 순간 비판, 괴롭힘, 구타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움직였고, 마오쩌둥을 맹목적으로 따랐다. 이성은 논할 수조차 없었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청춘과 평생을 바치고, 자손까지 바친다’는 식이었다. 퇴직한 중국계 물리학자 웨이스제(魏世杰)는 221공장의 기폭 및 폭발 작업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는 “원자 폭탄과 수소탄, 그리고 인공위성의 발사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이 있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그 희생은 불필요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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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펑후이(房峰輝)가 낙마한 가운데 중국 공산당이 이를 공식 발표한 시점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그가 마지막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141일 만에 낙마 사실을 발표했다. 팡펑후이는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60주년 열병식 총지휘를 맡은 바 있으며 7대 군구 사령관 중 최연소로 베이징군구 사령관을 지냈고 중앙군사위 연합참모부 초대 참모장을 맡은 스타 장성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그는 출세 길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팡펑후이의 낙마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옛말을 다시금 떠오르게 만든다. 현재 중국 국방부 공식 홈페이지에는 그에 관한 내용은 비공개로 처리되었으며, 미처 삭제되지 못한 일부 게시물의 제목만 남아 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팡펑후이는 1951년생으로 산시(陝西)성 빈(彬)현 출신이다. 1968년에 입대해 말단에서부터 군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복무 기간 대부분을 참모 업무를 담당하며 보냈다. 전환점은 그의 나이 56세에 이르러 찾아왔다 2007년 중장이던 팡펑후이가 베이징군구 사령관으로 승진해 수도 경비라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이는 당시 7대 군구 사령관 중 최연소에 해당하는 나이였다. 2010년 7월 팡펑후이는 상장으로 승진하고 2012년 총참모장을 역임하면서 중앙 군사위원이 됐다. 2016년 1월, 군사위 기관 조정으로 팡펑후이는 군사위 연합참모부 초대 참모장에 임명됐다. 팡펑후이는 2009년 중국 공산당 건립 60주년 열병식 총지휘를 맡으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가 이를 맡게 된 것은 베이징군구 사령관이 열병식의 총지휘를 담당한다는 군의 관례에 따라서였다. 당시 팡펑후이는 베이징군구 사령관으로 재직하며 후진타오(胡錦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열병식 지휘까지 맡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은 중국 각종 뉴스 포털의 메인을 장식했다. 언론은 팡펑후이를 ‘군사계의 눈에 띄는 샛별’이라는 평가를 쏟아냈다. 이후 그는 총참모부 총참모장에 임명되면서 다시 한 번 높아진 지위를 과시했다. 2015년 시진핑이 군 개혁을 실시하면서 총참모부의 권한은 대폭 축소됐다. 2016년 초 군사위 기관은 기존의 4개 총부에서 7개 부(청), 3개 위원회, 5개 직속 기구 등 15개 직무 부처로 개편됐다. 그중 군사위 연합참모부는 팡펑푸이가 초대 참모장을 지낸 부처였다. 이로 인해 그의 권한은 크게 축소되었지만 이때까지 낙마 조짐은 포착되지 않았다. 2017년 8월 26일 팡펑후이가 군사위 연합참모부 참모부장을 사임했으며 이 자리에 리쭤청(李作成) 전 육군 사령관이 임명됐다는 소식이 국방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알려졌다. 하지만 팡펑후이의 거취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이후 그가 19차 당대회 군 대표에서 탈락하면서 낙마설은 확산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뉴욕 민주인사인 왕쥔타오(王軍濤)는 글을 통해 2016년 7월 중하순 경부터 쑨정차이(孫政才) 실각, 징시(京西)호텔에 개최된 이른바 ‘삼무(三無)’ 회의(펜, 종이, 물컵이 없는, 듣기만 하고 기록 불가), 네이멍구(內蒙古)에서 열린 대열병식 등 시진핑 주석이 특이한 행보를 보여 왔다고 지적했다. 왕쥔타오는 시 주석의 이러한 움직임이 정변 미수사건을 진압했거나 조직 중이던 정변을 제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시 주석은 이미 군대 내 ‘호랑이 사냥’를 추진하며 ‘궈보슝(郭伯雄), 쉬차이허우(徐才厚)의 잔재를 말끔히 청소하자’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팡펑후이와 당시 총정치부 주임이었던 장양(張陽)은 자신들의 오랜 동기와 동향을 보호하려고 애썼다. 이를 눈치 챈 시진핑 주석은 팡펑후이와 장양에게 불만을 가졌으며 그 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왜 시진핑에게 불만을 가졌을까? 팡펑후이의 ‘후견인’이 바로 그의 매형인 궈보슝이고, 장양의 ‘은인’이 쉬차이허우였기 때문이다. 궈보슝과 쉬차이허우는 장쩌민(江澤民)이 발탁한 인물로, 장은 그들을 통해 후진타오의 실권을 빼앗고 군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 공산당은 줄곧 ‘총구에서 정권이 나온다’고 말해왔다. 군권을 장악하는 것이 곧 모든 권력을 손에 넣는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을 실각시키면서 이들 중 한 명은 죽고 다른 한 명은 투옥됐다. 이를 본 팡펑후이와 장양은 어떤 기분이겠는가? 그 심적 괴로움은 어떠하겠는가? 팡펑후이와 장양은 18대 이후 ‘문제가 있음에도 발탁(帶病提拔)’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러나 지난 5년 간 그들은 대외적으로는 ‘시진핑 핵심’을 옹호하면서 내심 자신들의 ‘주군’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시진핑과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왔다. 이와 관련해 시사평론가 저우샤오후이(周曉輝)는 하나의 기이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의 해외 순방 때마다 중국 군대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하고 심지어 군사 정변의 소식까지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중국군 내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팡펑후이가 이러한 일들과 전혀 관련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우샤오후이 평론가는 이는 너무나 자명한 일들이라고 말했다. 작년 중국 19차 당대회 전에도 중국과 인도 국경에서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이 발생한 바 있었다. 당시 팡펑후이는 군사위 고위직에 있었다. 얼마 전 <힌두스탄 타임즈(Hindustan Times)>는 대치 상황을 끝내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팡펑후이라고 암시적인 보도를 내놓았다. 중국-인도 간 철군 협의는 팡펑후이가 연합참모부 총참모장에서 해임된 후에야 마무리됐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이 시진핑을 불안하게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 지뢰를 두기를 원하지 않았다. 한 언론은 시진핑이 당초 팡펑후이와 장양을 ‘19차 당대회’ 군사위 임기 교체 기간에 조기 퇴직시킬 계획이었다고 보도했다. 둘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조기퇴진이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요직에 앉아 탐욕이 절정에 달했을 시기였기 때문이다. 홍콩 언론은 팡펑후이와 장양이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이대로 실각되기보다 차라리 먼저 공격하자는 합의를 보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둘은 군사 정변을 모의하고 ‘19대’ 이전에 행동을 개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보가 유출되면서 정변은 시도조차 못하고 막을 내렸다. 시 주석이 둘을 체포하면서 군사 쿠데타의 음모는 물거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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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 출신으로 장쩌민에 의해 군적과 당적 발탈 후 민주화 길 軍부패, 생체장기적출 기밀 폭로 올해 71세인 뤄위는 마오쩌둥의 심복이자 중공 초대 원로 뤄뤼칭 장군의 아들로 전형적인 '훙얼다이(红二代:혁명 원로 2세)'다. 중공 총참무부에 근무한 바 있으며 1988년 대교(大校, 한국군의 대령에 해당)로 임명됐다. 군대 내 부패상 및 1989년 천안문 사건 당시 학생들에 대한 중공의 진압에 불만을 느껴 1990년 중국을 떠나면서 중공 체제와 단절했다. 1992년 장쩌민의 명령으로 군적과 당적을 박탈당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뤄위는 최근 시진핑을 향해 '일당전제를 폐지하라'고 촉구하는 등 민주화의 길을 걸어왔다. 일생토록 마오쩌둥을 따라 '천하 평정'에 나섰던 부친의 아들인 그는 왜 같은 '훙얼다이'인 시진핑이 중공 일당전제를 폐지하기를 바랄까? 뤄위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시진핑의 집권에 얽힌 기밀, 군대 내 부패상, 생체장기적출, 보시라이 부자(父子)의 진실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자: 안녕하십니까? 선생께서 최근 <빈과일보>에 기고하신 글을 봤더니 제목이 '시진핑 아우에게 보내는 상의문'이고 또 형제의 정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뤄위: 그야 시진핑이 옛날 아우니까 그랬습니다. 게다가 분명 형제의 정이 있다고 할 수 있고요. 사실 시진핑 본인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그 부모님을 압니다. 기자: 시진핑이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보십니까? 뤄위: 내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내가 그 글을 쓴 것은 바로 그래서이기도 합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부모님은 매우 친절하고 진실한 분들이셨거든요. 시중쉰(習仲勳, 시진핑의 부친) 선생님은 민주파이자 진보파였는데, 역시 여러 차례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마오쩌둥에게도 몇 차례 핍박을 당했고 덩샤오핑에게도 한 차례 당했어요. 시진핑이 취임한 이후에서야 사람들은 기대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대는 시중쉰 선생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온 것이죠. 선생이 민주파이자 진보파였으니 사람들은 자연히 '아들인 시진핑은 아버지보다 한층 더 진보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진핑에게 희망을 걸게 된 것입니다. 장쩌민은 시진핑을 조정하려 했으나 실패 기자: 선생께서는 ‘시진핑이 집권하게 된 것은 우연에 의한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시진핑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뤄위: 중국의 일당전제 시스템 하에서는 사실상 권력 승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마오쩌둥 때부터 이어져왔는데, 중국에는 선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장쩌민은 왜 시진핑을 선택했을까요. 우선 장쩌민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후진타오를 승계자로 삼게 되어 내심 불쾌해 하고 있었습니다. 후진타오를 고른 사람은 덩샤오핑이었습니다. 후진타오는 나중에 분명 리커창에게 권력을 넘겨줄 텐데,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장쩌민은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자기 체면을 세우기 위해 후진타오가 누구를 고르든 간에 무조건 그 사람 외의 다른 사람을 지목한 것이죠.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이유입니다. 장쩌민이 시진핑을 고른 것은 매우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장쩌민이 후진타오 집권 시절 쉬차이허우(徐才厚)와 궈보슝(郭伯雄)을 통해 후진타오를 견제해 왔던 버릇대로 마음껏 조종할 수 있는 인물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시진핑의 어수룩해 보이는 겉모습에 속은 것이겠죠. 1인자가 되기 전 시진핑은 어떤 일도 묵묵히 받아들였습니다. 장쩌민은 시진핑을 높은 자리에 올려 두고 조종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기자: 보시라이는 린뱌오(林彪)와 유사하다고 보십니까? 뤄위: 하나도 그렇지 않습니다. 린뱌오가 수재라면 보시라이는 건달에 불과합니다. 지모도 책략도 없고, 어리석으며 머리도 나쁜 깡패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자: 말씀하신 것처럼 지모도 책략도 없다면 어떻게 관직을 수행했을까요? 전부 아버지 보이보의 권세에 편승한 덕분인가요? 뤄위: 보이보와 장쩌민의 결탁에 편승한 것이죠. 중국에서 관직에 앉는 것은 꼭 책략이 있어야만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관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중국 관리들 가운데 많은 수가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