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민주화”

Li Muyang
2016년 1월 12일 업데이트: 2019년 10월 23일

장교 출신으로 장쩌민에 의해 
군적과 당적 발탈 후 민주화 길 
軍부패, 생체장기적출 기밀 폭로 

올해 71세인 뤄위는 마오쩌둥의 심복이자 중공 초대 원로 뤄뤼칭 장군의 아들로 전형적인 ‘훙얼다이(红二代:혁명 원로 2세)’다. 중공 총참무부에 근무한 바 있으며 1988년 대교(大校, 한국군의 대령에 해당)로 임명됐다. 군대 내 부패상 및 1989년 천안문 사건 당시 학생들에 대한 중공의 진압에 불만을 느껴 1990년 중국을 떠나면서 중공 체제와 단절했다. 1992년 장쩌민의 명령으로 군적과 당적을 박탈당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뤄위는 최근 시진핑을 향해 ‘일당전제를 폐지하라’고 촉구하는 등 민주화의 길을 걸어왔다. 일생토록 마오쩌둥을 따라 ‘천하 평정’에 나섰던 부친의 아들인 그는 왜 같은 ‘훙얼다이’인 시진핑이 중공 일당전제를 폐지하기를 바랄까? 뤄위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시진핑의 집권에 얽힌 기밀, 군대 내 부패상, 생체장기적출, 보시라이 부자(父子)의 진실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자: 안녕하십니까? 선생께서 최근 <빈과일보>에 기고하신 글을 봤더니 제목이 ‘시진핑 아우에게 보내는 상의문’이고 또 형제의 정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뤄위: 그야 시진핑이 옛날 아우니까 그랬습니다. 게다가 분명 형제의 정이 있다고 할 수 있고요. 사실 시진핑 본인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그 부모님을 압니다.

기자: 시진핑이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보십니까?

뤄위: 내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내가 그 글을 쓴 것은 바로 그래서이기도 합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부모님은 매우 친절하고 진실한 분들이셨거든요. 시중쉰(習仲勳, 시진핑의 부친) 선생님은 민주파이자 진보파였는데, 역시 여러 차례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마오쩌둥에게도 몇 차례 핍박을 당했고 덩샤오핑에게도 한 차례 당했어요. 시진핑이 취임한 이후에서야 사람들은 기대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대는 시중쉰 선생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온 것이죠. 선생이 민주파이자 진보파였으니 사람들은 자연히 ‘아들인 시진핑은 아버지보다 한층 더 진보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진핑에게 희망을 걸게 된 것입니다.

장쩌민은 시진핑을 조정하려 했으나 실패

기자: 선생께서는 ‘시진핑이 집권하게 된 것은 우연에 의한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시진핑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뤄위: 중국의 일당전제 시스템 하에서는 사실상 권력 승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마오쩌둥 때부터 이어져왔는데, 중국에는 선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장쩌민은 왜 시진핑을 선택했을까요.

우선 장쩌민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후진타오를 승계자로 삼게 되어 내심 불쾌해 하고 있었습니다. 후진타오를 고른 사람은 덩샤오핑이었습니다. 후진타오는 나중에 분명 리커창에게 권력을 넘겨줄 텐데,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장쩌민은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자기 체면을 세우기 위해 후진타오가 누구를 고르든 간에 무조건 그 사람 외의 다른 사람을 지목한 것이죠.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이유입니다. 장쩌민이 시진핑을 고른 것은 매우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장쩌민이 후진타오 집권 시절 쉬차이허우(徐才厚)와 궈보슝(郭伯雄)을 통해 후진타오를 견제해 왔던 버릇대로 마음껏 조종할 수 있는 인물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시진핑의 어수룩해 보이는 겉모습에 속은 것이겠죠. 1인자가 되기 전 시진핑은 어떤 일도 묵묵히 받아들였습니다. 장쩌민은 시진핑을 높은 자리에 올려 두고 조종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기자: 보시라이는 린뱌오(林彪)와 유사하다고 보십니까?

뤄위: 하나도 그렇지 않습니다. 린뱌오가 수재라면 보시라이는 건달에 불과합니다. 지모도 책략도 없고, 어리석으며 머리도 나쁜 깡패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자: 말씀하신 것처럼 지모도 책략도 없다면 어떻게 관직을 수행했을까요? 전부 아버지 보이보의 권세에 편승한 덕분인가요?

뤄위: 보이보와 장쩌민의 결탁에 편승한 것이죠. 중국에서 관직에 앉는 것은 꼭 책략이 있어야만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관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중국 관리들 가운데 많은 수가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동창이었던 우리들은 보이보의 아들 보시라이가 항상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보시라이 역시 많은 고생을 겪었고, 감옥에 있었던 기간은 나보다도 길었지요. 보이보가 비교적 늦게 복권되었기 때문에 보시라이는 줄곧 감옥에 있었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나는 이 일당전제라는 것은 몹쓸 제도이니 반드시 민주제로 가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7, 8년간 감옥에 있었던 보시라이(보시라이는 문화대혁명 기간 중 절도죄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공식 약력에는 문화대혁명 기간 중 1968년 1월부터 1972년 11월까지 노동에 참가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위조된 것으로 그는 사실 복역했었다)는 어떤 결론을 내렸습니까?

나중에 그가 관직을 차지하는 과정을 보고 나는, 그가 이 전제 제도의 폐해를 겪고도 제도가 나쁘다거나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도 이 전제 제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박해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매관매직은 한 시대 종말을 알리는 신호

기자: 선생께서 군대 내 부패상을 보고 중국 대륙을 떠나신 것은 천안문 사태 때였습니다. 당시는 덩샤오핑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상태였죠. 그렇다면 장쩌민에게 권력이 넘어간 이후부터 제18차 전국대표대회 시점까지, 즉 장쩌민이 군권을 통제하던 기간 동안 군대 내 부패 정도는 어땠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뤄위: 그야 내가 있던 시절보다 훨씬 심해졌지요. 내가 있을 당시에는 아직 매관매직은 없었고, 리베이트를 챙기거나 무기, 탄약을 내다팔거나, 무기상에게 커미션을 받는 정도였지 ‘장군이 되려면 수천만 위안을 내야 한다’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중국 역사를 살펴보면, 관료제도라고 하는 관직 시스템이 매관매직 수준에 이르게 되면 그야말로 끝장이 난 것입니다. 매관매직은 한 시대가 몰락해 간다는 신호입니다.

기자: 현재 시진핑이 군대 내 부패 청산을 추진한 결과 장군 47명을 이미 체포한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면 선생께서는 군대 내 부패 청산 운동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군대 내 부패 청산은 당내 부패 청산, 정부내 부패 청산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장군 몇 명을 잡아냈든 간에 이는 좋은 일입니다. ‘크고 작은 호랑이들’을 백 명 넘게 청산해도 어쨌든 좋은 일이지요. 그렇지만 사실상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시진핑에게 ‘지금 부패 청산에 나서봤자, 부패하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는가? 몇 명 있기야 하겠지만, 대부분은 부패한 상태다. 모조리 숙청하면 관료제 자체가 무너질 판이니, 아무리 부패 청산이라도 대다수를 숙청할 수는 없다’고 말한 것은 바로 그래서입니다.

부패를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민주화입니다. 사람만 바꿔서야, 사람이 없는데 어디 가서 사람을 데려오겠습니까? 현재 시진핑의 최대 문제는 바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점진적으로 민주화를 추진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며, 보폭이 너무 커서도 곤란합니다. 한 발짝 한 발짝씩 민주화를 추진해야만 비로소 관리들이 감히 부정부패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생체장기적출은 시스템을 갖춘 거대한 작업

기자: 장쩌민은 1998년 ‘군의 상업활동 금지’를 규정했고 시진핑은 지난해 11월 재차 ‘군의 유상 서비스 금지’를 규정했는데,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장쩌민이 당시 ‘유상 서비스’는 건드리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뤄위: 유상 서비스라는 여지를 남겨둔 것은 기본적으로 군대 내 부패 관리들의 돈줄을 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유상 서비스는 장쩌민 자신의 돈줄이기도 했지요. 생체장기적출, 장기이식 이런 것들이 모두 유상 서비스입니다. 군대에 장기를 이식해줄 사람이 어디 그렇게 많겠습니까? 지방에 일임해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고, 여기서 돈을 벌 여지가 생겨났습니다.

기자: 이런 일들이 모두 장쩌민이 군권을 장악했던 시기에 일어난 것입니까?

뤄위: 그렇습니다. 인터넷에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들 하지만, 아마 요즘은 암암리에 이루어지지 장쩌민 시절처럼 그렇게 대놓고는 못할 것입니다. 생체장기적출을 주도한 황제푸(黄洁夫)는 이러한 죄상을 저우융캉에게 모두 뒤집어씌우려고 했지만, 저우융캉 기소장에는 다른 죄명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시진핑이 이러한 일들을 모르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진핑은 이 일을 해결하고자 하지만, 진전이 있는 듯하다 멈추었다가 다시 반 발짝 물러나는 형세입니다.

기자: 이러한 저항 세력은 어디에서 온다고 보십니까?

뤄위: 남의 장기를 강제로 적출해 팔았던 이 악랄한 일에 가담했던 자들, 이 일에 관련된 시스템 내부의 인원들 전체로부터 오겠지요. 왜냐하면 그들도 이것이 위법 행위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진핑이 만일 지금 이 일을 끄집어낸다면, 관련된 자들은 곧 범죄자가 되고 말테니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한두 명도 아니고 하나의 시스템이었으니 말입니다. 이 시스템이 없었다면 누가 혼자서 장기 이식에 나설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을 잡아다가 감옥에 넣고 안에서 (장기를) 매칭한 다음 강제로 적출해 파는 것은 시스템화 된 방대한 작업입니다. 즉 국가와 정부가 주도한 작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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