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가 끝나면서 사회에 만연하던 악정(惡政)이 사라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 악정은 베이징 당국이 민중을 분노하게 만든 ‘하층민을 내쫒고, 팻말을 떼고, 석탄 사용을 금지한’ 조치를 가리킨다. 이러한 가운데 12월 13일 여론의 눈길을 끈 사건이 벌어졌다. 슝안신구(雄安新區) 관영매체에 따르면 12월 11일 '9∙06’ 특별 수사대 간담회 자리에서 슝안신구 당국은 관할지역 3개 현(縣)의 공안에게 ‘임무, 책임, 시한을 명확히 할 것’ ‘모든 현은 한 달에 최소 한 건의 범죄조직 사건을 조사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논란을 키운 것은 범죄조직 사건을 한 달에 한 건 이상 처리하라는 당국의 요구였다. 이는 슝안신구의 범죄조직 단속을 법률 집행이 아닌 상급기관의 행정명령으로 대체하는 조치로, 지표를 할당해 의무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범죄조직 사건이 없다면 공안은 사건을 조작해 일명 ‘암흑사회’를 만들어야 되는 것이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민중을 위한 봉사, 사회 시스템의 정상적 운영을 기반으로, 대외적으로는 주권을 보호하고 정부통치 유지, 범죄단속 등 대내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다. 한 시사 평론가는 이 같은 원칙은 존중하나 “슝안신구 정부의 이번 행정조치는 법제 관념이 부족하며 부당해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이번 조치는 중국 공산당이 역사적으로 자주 활용했던 정책을 이어받은 것이다. 즉 '적을 만들어내고' '필요에 따라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통치방식과 일맥상통한다. 공산당은 1950년대 반혁명 진압 및 반우파 운동을 일으켰고 80년대까지 엄격한 단속을 실시했다. 또 최근 충칭에서는 보시라이(薄熙來)가 ‘범죄조직 단속(打黑)’이라는 명목으로 반대 세력을 탄압했다. 공산당은 하룻밤 사이에도 수백만에 이르는 반혁명, 우파, 범죄분자를 조작해 수백 만 명을 희생시켜왔다. 구즈팡(賈植芳) 작가는 <나의 인생기록>에서 “한 문화선전공작단(文工團) 단원이 반우파 운동 시기에 우파 두 명을 할당 받았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이에 대해 토론을 했으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 소녀가 화장실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 자신이 이미 우파가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어느 노교수는 당 조직으로부터 "당의 어려움이 바로 당신의 어려움입니다. 현재 우파가 한 명 부족합니다. 당신이 해결해 주시죠?"라는 말을 들었다. 교수는 결국 우파로 규정됐고, 노동교양 징역 20년을 살아야 했다”고 썼다. 공산당이 신봉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투쟁 철학은 당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투쟁의 대상을 찾도록 만들었다. 정권찬탈과 유지 및 당내 투쟁을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적을 만들었다. 정세가 바뀌면 공산당의 적도 계속 바뀌었다. 중국 공산당의 역사는 그야말로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가는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1999년 7월 장쩌민은 단 하루 만에 수천 만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을 적으로 둔갑시켰다. 이로 인해 18년 동안 파룬궁 수련자들은 학살 또는 강제 장기적출을 당했다. “중국 공산당은 반혁명분자 숙청으로 홍군 10만 명을 살해했고 그 후엔 옌안정풍과 토지개혁으로 지주를 탄압했다. 1949년 이후까지 잇따른 정치 숙청 운동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전쟁이든 역사 속의 폭군이든 적이 먼저 있어야 살인을 감행했다. 하지만 공산당은 반대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적을 만들고 적이 없으면 만들어냈다.”('9평 편집부', 공산주의의 최종목적) 공산당 체제하에서 모든 중국 국민은 언제든지 당의 '적'이 될 수 있으며 신변과 생명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지표를 할당해 암흑사회를 조성하는 슝안신구의 이번 조치를 국민들이 눈여겨봐야 할 이유이다.
최근 호주 정부가 외국 간섭 반대 법안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내부 단속에 나섰다. 이를 두고 중국이 극렬히 반발하는 가운데 말콤 턴불 호주 총리는 12월 9일 중국의 내정 간섭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호주 ABC 방송국은 턴불 총리가 이날 중국을 겨냥해 외국 정부의 정치 개입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날 “현대 중국은 1949년 ‘중국 인민이 일어섰다’는 말과 함께 건설됐다. 이는 주권에 대한 주장이었고, 자부심에 대한 주장이었다”며 “우리도 ‘호주 인민들 일어서라(澳大利人民站起來)’고 말하고자 한다(And we stand up and so we say, the Australian people stand up.)”고 밝혔다. 특히 이 부분은 중국어로 말해 주목을 받았다. 호주 총리는 “호주 정계가 과거에도 외국 (정부)의 간섭을 받았다”며 이에 대해 주의할 것을 촉구했다. 호주 국내 정치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에 우려 이날 턴불 총리는 외국 정부가 자신의 견해를 밝힐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비밀 로비, 특히 우리가 최근 본 그러한 로비는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이를 법률 개정을 통해 처리하려 한다”고 밝혔다. 지난 주 화요일 호주 의회는 외국 간섭 반대에 대한 신규 법안 초안을 제출해 외국 정부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데 나섰다. 이는 호주에서 수십 년 만에 진행된 최대 규모의 방첩 법률 개혁이다. 턴불 총리는 호주 정치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에 우려를 표하는 한편, 이 법안이 어느 한 국가를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호주 총리가 중국의 간섭에 대한 언론보도를 인용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호주 총리는 외국인이 호주 정치에서 갖는 역할이 올바른 것인지 자문해볼 때라면서 샘 데스티에리(Sam Dastyari) 노동당 의원이 중국 후원자로부터 법률 비용을 지원받은 사건을 언급했다. 중국은 미국-호주 간 동맹 파괴 시도 중국 대사관은 곧바로 성명을 발표하고 호주 총리의 연설을 반박했다. 호주 정치인들이 중국을 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주 전략정치연구원 국방 분석가 말콤 데이비스(Malcolm Davis) 박사는 중국의 성명문을 비판하면서 이들이 호주를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이 우리를 위협하려 하고 있다. 호주 언론은 중국의 침투와 호주 정계를 조정하려는 데 대해 보도할 자유가 있으며 이는 합법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국이 온갖 수단을 통해 호주 정치에 개입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데이비스는 중국이 호주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한다며 “중국의 최종 목표는 호주를 친중(親中) 성향으로 바꾸고 미국을 적대시하게 만드는 데 있다. 종국에는 미국-호주 동맹을 깨뜨리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중국 공산당의 정체를 알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그들에게 반격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제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회의(19차 당대회) 이후 당 고위층을 대상으로 반부패 호랑이 사냥(打虎)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회적, 정치적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관영매체는 루웨이(魯煒) 전 중앙선전부 부부장의 낙마, 장양(張陽) 중앙군사위 주임의 자살 등을 두고 적폐 세력의 청산이라며 ‘매우 좋은 정세’라고 평가했다. 한편 상하이 씨트립(攜程), 베이징 홍황란(紅黃藍) 유치원에서 아동학대 사실이 밝혀지며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또 공원 실명제 추문, 베이징 화재 대참사 이후 당국의 대처 등 사회적 이슈가 계속 터지면서 여론은 급속히 악화되는 추세이다. 19차 당대회 이후 중난하이(中南海)가 이른바 ‘타키투스 함정(Tacitus Trap)’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타키투스 함정’ ‘타키투스 함정’은 고대 로마의 역사학자인 타키투스가 저술한 <타키투스의 역사>에서 비롯됐다. 타키투스는 이 책에서 ‘황제가 한번 사람들의 원한의 대상이 되면 그가 하는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 시민들의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훗날 학자들에 의해 하나의 사회 현상을 가리키는 뜻으로 파생됐다. 정부 혹은 한 조직이 공신력을 잃으면 진실을 말하든 거짓을 말하든, 또는 선정을 하든 폭정을 하든 시민들은 모두 거짓과 폭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2014년 시진핑은 허난성 시찰 당시 타키투스 함정을 거론한 바 있다. “공권력이 공신력을 잃으면 어떠한 말이나 행동도 부정적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물론 우리는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각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그런 날이 오게 된다면 당의 집권 기반과 지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4년도 지나지 않아 중국은 각종 사회 현상으로 몸살을 앓게 됐다. ‘공신력을 잃은 공권력’, 즉 타키투스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어째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두 가지 실례 민중의 분노를 산 베이징시 ‘디돤런커우’(低端人口·하층민) 강제퇴거 명령을 예로 들어보자. 근래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당서기는 안전과 관련된 회의에서 “기층 국민을 대할 때에는 진짜 총과 칼(真刀真槍)에 피를 묻히듯(刺刀見紅) 강경한 태도(硬碰硬)로 대응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내부 발언을 한 바 있다. 도시 및 유동 인구 관리는 서방 국가의 대도시의 경우에서 보듯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의 도시들은 도시 계획, 재정 문제 등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이롭고 인간적인 조치를 취하며 엄격한 법률 제도와 언론매체의 관리 감독 아래 이를 실행한다. 이들에게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국민의 고난과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반대로 베이징시 당서기가 말하는 ‘문제 해결’은 ‘총과 칼에 피를 묻힌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사건의 원인을 근절시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공무원들 역시 책임 소재를 축소하기에 바빴다. 따라서 수많은 ‘디돤런커우’ 국민들은 하룻밤 사이에 몸 둘 곳 없이 유랑하는 신세가 됐다. 시진핑이 신뢰하는 측근이자 직접 발탁한 인재인 차이치 당서기가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체제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즉, 차이치와 같은 공산당 체제하 관리들이 당문화 고유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국민들의 생사를 고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공산당 체제 자체가 이미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회문제와 위기를 해결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스모그에 대한 당국의 조치를 살펴보자. 스모그 현상을 억제하고 베이징의 심각한 동절기 공기 오염을 완화시키기 위해 당국은 올해 베이징시, 톈진시, 허베이성과 주변 지역에 석탄 금지령을 내렸다. 민간의 석탄 사용을 금지하고 ‘석탄 에너지를 가스 에너지로, 석탄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라는 슬로건 아래 규제를 강제로 실시했다. 그러나 배관 건설이 완공되지 않은 데다 전기와 가스 역시 심각한 공급 부족을 빚고 있다. 정부에서 집중적으로 구매한 가스난로는 품질 문제 등을 이유로 또 다른 문제를 키웠다. 현재 화베이(華北) 지구의 몇몇 도시에서 천만 명 이상이 영하 4, 5도의 혹한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허베이성 랑팡(廊坊)시와 바오딩(保定)시의 석탄 금지 구역에서만 만 세대가 넘는 국민들이 난방 공급에 문제가 발생했거나 심지어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최근 허베이 바오딩시 취양(曲陽)현에서 최저 기온이 줄곧 0도 이하로 떨어졌지만 현지의 여러 향(鄕)과 진(鎭)의 학교들은 제때 난방을 공급하지 못했다. 취양현 치춘진(齊村鎮)에 있는 한 초등학교 교사는 11월 15일부터 현재까지 학교에 단 한 번도 난방이 공급된 적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아이들이 너무 추워 견딜 수가 없어 하기에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을 뛰면서 몸을 덥혔어요”라고 덧붙였다. 난야워(南雅握) 초등학교에는 이미 적지 않은 학생들이 동상을 입었다고 했다. 하지만 언론은 여론조작에만 몰두하는 모양새이다. 하북일보(河北日報)는 허베이성 성장 쉬친(許勤)이 주말 동안 스자좡(石家莊)을 방문해 천연가스 설비를 시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인민을 중심으로 하는 발전 사상을 견지한다. 민중의 어떠한 호소에도 모두 응할 것이며 민중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며 국민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라는 쉬친 성장의 말을 그대로 실었다. 중국 공산당의 '타키투스 함정' 시진핑이 집권한 지 5년 동안 중국 사회에는 여러 변화가 있어 왔다. ‘의법치국(依法治國)’, 노교제도(勞教制度) 폐지, 한자녀정책 완화, 호구제도(戶籍制度) 개혁 추진, 여아 성매매죄(嫖宿幼女罪) 폐지, 군 개혁 및 전통문화 제창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동시에 대대적인 반부패 호랑이 사냥이 이어지면서 장쩌민 집단을 중심으로 한 부패 세력들을 대거 낙마시켰다. 전국종교공작회의(全國宗教工作會議)를 열어 장쩌민의 탄압 위주의 종교정책을 시정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들로 미루어 짐작하면 시진핑은 개인적인 면에서 중국 사회에 법치, 정의, 공평, 전통 도덕 등 여러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야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19차 당대회가 열리기 전 5년이라는 기간이 장쩌민 집단 세력의 방해로 시정에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장쩌민 세력은 당정군(党政軍)과 지방 성시에 널리 분포되어 지속적으로 시진핑을 겨냥해 정변과 정권찬탈을 도모해왔다. 19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은 핵심 지위를 공식적으로 확립했다. 시진핑 사상이 공산당 당헌에 명기되고 시진핑 진영의 인사들이 내부 요직에 전면적으로 승진해 장쩌민 세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
베를린 장벽이 자유를 가로막고 희망을 좌절시킨 시기, 몇몇 인물들은 장벽이 유럽의 영원한 경관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며 역설했고 28년 뒤 장벽은 붕괴됐다. 그날 독일 시민들은 ‘환희의 송가’로 자축했고 세계는 감탄했다. 그러나 다시 28년이 지난 지금, 무형의 장벽은 여전히 굳건했다. 유럽을 배회하는 유령은 계속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생명을 억압하며 영혼을 비틀고 있다. 우리는 1억 여 명의 시민들이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현재 이 세계에는 다시금 붉은 물결이 일렁이고 세기의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다. 공산주의의 거짓과 악몽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가? ‘수치의 벽’, 철의 장막의 상징 2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베를린은 구소련, 미국, 영국 및 프랑스에 의해 4개 점령지로 분할됐다. 1949년에는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 두 개의 주권 국가로 자리 잡았다. 구소련의 점령지역인 동독은 동베를린을, 영미법(美英法)의 관할 하에 있는 서독은 본(Bonn)을 수도로(통일 전까지) 삼았다. 법률 규정 상 서독의 영토였던 서베를린은 마치 섬처럼 동독 한가운데 있어 ‘자유세계의 쇼윈도’로 불리기도 했다. 1949~1961년에만 약 250만 명의 동독인이 사살될 위험을 무릅쓰고 서베를린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이를 지켜본 구소련은 1950년대 초 동유럽 국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서방 국가로의 도주를 막으라고 지시했다. 1961년 8월 13일 동독 정부는 베를린 장벽 건설에 나섰다. 공사 초기에는 철조망과 벽돌을 재료로 사용했으나 이후 감시탑, 콘크리트 벽, 개방 지대 및 차량 통행 방해물 등으로 구성된 방어시설을 보강했다. 전방위 폐쇄 국경 수비시스템으로 거듭난 장벽은 그 길이만 167.8km에 달했다. 동독은 이 벽을 ‘반파시즘 방위벽’이라고 불렀다. 베를린 장벽 증축 후인 1961~1989년에는 약 5,000명의 시민들이 이 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했고, 이중 사살된 인원은 136~245명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3,221명은 체포됐으며 260명은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천여 명의 시민들은 장벽의 서쪽 측면을 통해 탈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주: 1960년부터 <총기 발사령>이 발효되어 동독 진영의 방어군이 불법으로 국경을 통과하는 자에게 총기 사격이 가능해졌다.) 1961년 부임한 미국 딘 러스크(Dean Rusk) 국무 장관은 “장벽이 유럽의 영원한 풍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소련이 장벽을 왜 필요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이 장벽은 공산주의의 실패를 드러내는 기념비밖에 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1963년 6월 25일 케네디 대통령은 서베를린 시청의 장벽 앞에서 ‘나는 베를린 인입니다’라는 제목의 연설을 발표했다. 이날 연설은 “자유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민주주의도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장벽을 세워 우리 국민을 가둔 적이 없으며, 그들이 우리를 떠나지 못하게 막은 적도 없다”라는 발언으로 유명하다. “이 장벽을 무너뜨리자” 1987년 6월 12일은 냉전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꼽힌다. 이날은 동서 베를린의 교차 지역을 방문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에서 연설을 하며 당시 소련의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총서기에게 베를린 장벽 철거를 호소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우리는 개혁과 개방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자유와 안전이 병행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인류 자유의 발전이 세계 평화를 추구하도록 만든다. 소련은 아주 명확한 일, 자유와 평화로 한 발 나아갈 수 있는 큰일을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 총서기님, 당신이 평화를 원한다면, 소련과 동유럽의 번영을 원한다면, 당신이 자유를 원한다면 문을 열어 달라!”라고 말했다. 연설 말미에 레이건 대통령은 “얼마 전 나는 국회 빌딩에서 ‘독일 통일 실현’을 바라보았다. 장벽에 페인트로 크게 쓰인, 어느 베를린의 청년이 쓴 것이리라 생각된다. ‘이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신념은 반드시 실현된다’라는 글귀였다. 그렇다, 이 장벽은 유럽에서 사라질 것이다. 장벽은 신념을 이기지 못하며, 진리를 당해내지 못한다. 장벽은 자유를 막지 못한다”라고 덧붙였다. 29개월 후 대변화가 찾아왔다. 동유럽 국가의 정치 변혁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동독 국민들이 수주에 걸쳐 항의 시위를 진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부는 여행 제한을 해제하고 서독 및 서베를린을 방문하도록 허용했다. 그런데 당시 이 소식을 발표한 관료가 상부의 지시를 오인하여 베를린 장벽 개방을 선포하고 말았다.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은 확산되면서 같은 날 저녁 동독인들이 장벽 주변으로 집결했다. 서베를린으로 넘어갈 수 있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서독인들 역시 장벽의 반대편에서 꽃다발과 샴페인을 들고 환영할 준비를 마쳤다. 그 뒤 며칠 동안 엄청난 수의 동독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장벽을 부수고, 부서진 조각을 기념품으로 간직했다. 이것이 바로 ‘베를린 장벽 붕괴’ 사건이다. 1989년 12월 25일 독일 통일을 축하하기 위해 유명한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이 베를린 음악당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지휘했다. 그는 ‘환희의 송가’ 중 ‘환희’를 ‘자유’로 바꾸어 연주했다. 이 공연에는 동독, 서독,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 국가에서 온 천 여명의 연주자와 합창단이 참여했고, 20여 개 국가의 1억 명 이상의 시청자들이 생방송으로 지켜봤다. 1990년 6월, 동독 정부는 공식적으로 장벽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해 7월 21일, 영국의 록 싱어 로저 워터스(Roger Waters)는 포츠담(Potsdam) 광장에서 ‘장벽(The Wall)’을 불렀다. 미국의 배우 데이비드 해셀호프(David Hasselhoff)는 베를린 장벽 위에서 ‘자유를 찾아서(Looking for Freedom)’라는 노래를 불렀다. 1990년 10월 3일 도이치 민주공화국(동독)이 도이치 연방공화국에 가입함으로써 독일과 베를린은 완전히 통일되었다. 장벽 붕괴 후, 동서 베를린의 도로, 철도 및 다리가 빠르게 연결되었다. 기념과 반추(反思) 베를린 장벽의 기억은 시간의 조류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독일인들은 여전히 이 시간을 반추하며 고통을 느끼고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2011년 8월 13일은 ‘베를린 장벽’ 축조 50주년이었다. 독일 각지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개최됐다. 행사에서는 당시 장벽을 넘다 동독 군경에게 사살된 무고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울딩겐(Uhldingen) 거리 베를린 장벽 기념관 앞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독일 크리스티안 울프(Christian Wolff) 대통령은 당시 1900만 독일인이 전제 제도에 갇혀 이 ‘수치의 벽’ 뒤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방식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며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는 역사의 필연적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장벽의 붕괴야말로 ‘자유는 무너지지 않는다’ ‘어떠한 장벽도 오랫동안 인간의 자유의 소망을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밝혔다. ...
TV조선 다큐멘터리 ‘탐사보도 세븐’은 지난달 15일에 방송한 ‘죽여야 산다’ 편에서 중국 공산당이 발명한 ‘원발성 뇌간손상 충격장치’, 일명 ‘뇌사기’ 모형을 제작해 공개했다. 뇌사기는 둥근 금속 공이 뇌관을 타격해 그 충격파가 두개골을 넘어 뇌로 전달되면서 사람을 순식간에 뇌사시킨다. 이런 살인기계가 중국에서 충칭시 부시장이자 공안국장이었던 왕리쥔(王立軍)에 의해 발명됐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중국 언론은 왕리쥔이 관직을 지낸 기간에만 특허출원한 건수가 무려 254개라고 보도했다. 최첨단 과학기술 기계인 뇌사기는 단지 그중 하나일 뿐이다. 의학적 배경이 없던 왕리쥔은 왜 이 기계를 발명했을까? 사람을 뇌사시키는 이 기계 배후에는 충격적인 비밀이 숨어 있다. 인체 장기이식을 연구하는 공안국장 외과전문의이기도 한 한국 이승원 장기이식윤리협회장은 ‘탐사보도 세븐’에서 “뇌사기는 장기를 적출하기 전 뇌사시키는 용도로 쓰는 것 외에 다른 용도가 없다. 누가 사람을 뇌사시키겠느냐?”라고 말했다. 왕리쥔은 진저우(錦州) 공안국장을 지내면서 2003년 5월부터 2008년 6월까지 ‘진저우시 공안국 현장심리연구센터’를 설립했다. 당시 그는 진저우시 센터가 중국에서 유일한 현장심리학 연구센터로서 인체 장기이식을 연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보시라이에 의해 충칭시로 발령된 2008년 6월 이후, 다시 ‘충칭시 공안국 현장심리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충칭시 센터가 시난대학교와 손잡으면서 왕리쥔은 시난대 교수로 임용돼 박사과정을 지도하기도 했다. 왕리쥔이 이식하는 장기의 출처는? 왕리쥔은 2006년 ‘광화혁신특별기여상’(光華創新特別貢獻獎)을 받았다. 그는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으로 “우리가 종사하는 현장과 우리의 과학기술 성과는 수천 곳의 현장이 집약된 결정체”라며 장기이식을 언급했다. 그가 말한 ‘결정체’란 무엇이며 어디서 오는가? 런진양(任晉陽) 광화기금회의 비서장은 “왕리쥔에게 그 상을 준 이유는 ‘기초연구와 현장테스트’가 장기이식 성공률을 높이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2년에 발생한 ‘왕리쥔 사건’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늦은 밤 왕리쥔이 여장한 채 청두 주재 미국총영사관에 난입한 것이다. 이후 보시라이는 영사관 포위 명령과 함께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왕리쥔을 죽여라”라고 지시했다. 미국 군사안보 전문매체 ‘워싱턴 프리비콘’에 따르면 왕리쥔이 영사관에 들어갔을 때 그의 손에는 다량의 국가 기밀문서가 들려 있었다. 그는 당국에 체포될 경우 문서를 비장의 카드로 쓸 요량이었지만 끝내 공개하지는 않았다. 문서에는 장기 출처 관련 기밀을 담았을 거란 추측이 유력했다. ‘파룬궁박해 국제추적조사기구(WOIPFG)’는 2009년 파룬궁 수련자에게 일어난 생체 장기 적출의 목격자 증언을 공개했다. 목격자는 왕리쥔 수하에서 경찰로 근무했었다. 그는 “파룬궁 수련자는 반드시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왕리쥔의 명령에 따라 파룬궁 수련자 여러 명을 체포해 고문하면서 자백을 강요했었다고 털어놨다. WOIPFG의 전화조사 녹음에는 2006년 5월 22일 랴오닝성 진저우시 중급인민법원 형1 재판소 직원이 “지도자와 협상한 후 젊고 건강한 파룬궁 수련자의 신장을 제공할 수 있었다”라고 나와 있다. 진저우는 파룬궁 박해가 가장 심한 곳 중 하나다. 파룬궁 매체 밍후이왕은 2017년 5월, 진저우에서 수련자 163명이 박해로 사망했고 158명은 불법 판결을 받았으며 694명이 노동교양형을 선고받았고 체포만 수천 명이라고 보도했다. 그 외에 1만여 명이 당국으로부터 훼방 또는 납치를 당했고 11명은 실종됐으며 공직을 잃은 사람만 최소 3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는 중국의 인터넷 봉쇄를 뚫고 해외로 알려진 것만으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수치다. 왕즈위안(汪志遠) WOIPFG 대표는 “왕리쥔은 2003년 5월에 진저우시 공안국장 자리에 앉은 후 파룬궁 수련자를 대거 체포했으며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행방불명됐다. 그가 설립한 ‘현장심리연구센터’는 장기 이식만 수천 건 이뤄져 파룬궁 수련자의 생체 장기적출 및 생체실험 혐의를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 이후 선전계통이 사정 국면에 들어서면서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는 류윈산과 함께 신화사(新華社) 출신인 루웨이 전 중앙선전부 부부장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얼마 전 홍콩 언론은 류윈산의 아들이 조사를 받는 중이라면서 이들이 저우융캉(周永康)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홍콩 동방일보(東方日報)는 11월 26일 루웨이 전 중앙선전부 부부장이 조사를 받은 뒤 수사 범위가 그의 측근 및 친척들로 확대됐다고 보도했다. 또 국영 미디어 매체인 CCTV(中央電視臺)를 비롯해 신문출판(新聞出版) 등 언론 인사들 역시 조사 대상에 포함됐으며 이중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사건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11월 21일 ‘인터넷 차르’ 루웨이가 낙마하면서 19차 당대회 후 ‘첫 낙마 호랑이’가 된데 이어 이튿날 그의 안후이(安徽)성 동향 장진화(張金華) 안칭(安慶)시 선전부 전 상무부부장이 조사를 받게 됐다. 한 보도에 따르면, 문화 선전계통 전체에 폭풍이 몰아칠 것이라면서 루웨이(魯煒) 인터넷정보판공실 주임에 대한 조사는 부패 척결의 서막일 뿐이라고 전했다. 후폭풍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사태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루웨이, 류윈산이 추천한 인물 홍콩 언론은 류윈산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야말로 문화 선전계통의 최고 '장문인(掌門人·문파의 우두머리)'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5년간 선전계통은 시진핑(習近平)에 대해 '고급흑(高級黑·칭송하는 척하면서 깎아내리기)'의 자세를 취해왔다. 관영매체를 통해 시진핑을 숭배하는 척하며 실제로는 자유파 인사들을 조종해 문화혁명 부활, 개인숭배 회귀 등을 공격하며 혼란을 가중시켜왔다. 따라서 시진핑이 중앙선전부에 배치한 황쿤밍(黃坤明) 부장은 이들의 계속된 공격에 업무 수행도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류치바오(劉奇葆) 중앙선전부장은 직무태만으로 조기 ‘퇴진’한 상태다. 시진핑의 옛 수하인 황쿤밍이 선전부장을 맡고 있는데 외부에서는 이미 퇴직한 류윈산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루웨이는 신화사 계열에서 오래 근무했던 인물로, 선배인 류윈산에 의해 발탁됐다. 특히 18차 당대회에서 류윈산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한 뒤 루웨이는 중앙선전부 부부장, 중앙 대외선전판공실(中共中央對外宣傳辦公室) 주임 및 인터넷정보판공실 주임 등 요직을 차지했다. 류윈산, 저우융캉의 전철을 밟을 듯 류윈산의 아들인 류러페이와 관련해 그가 조사 중이란 소문은 19차 당대회 기간에도 이미 있었다. 류러페이는 중국 중신증권(中信證券) 부사장을 맡아 2015년 주가 폭락 사건에 깊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그가 경기 부양에 기여하는 척하며 공매도를 통해 거액을 벌어들이기 위해 경제 정변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중신증권의 고위층 일부는 이미 가벼운 처벌을 받은 바 있는데, 이들이 관련자들의 이름을 자백해 중형을 면했다는 추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시진핑 당국은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을 조사할 당시에도 그의 조직인 ‘비서방(祕書幫)’ ‘쓰촨방(四川幫)’ ‘정법계(政法系)’ ‘석유방(石油幫)’ 등을 먼저 조사한 후 저우융캉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당국은 반부패와 관련해 과거부터 줄곧 양파 껍질을 벗기는 방식을 취해왔다. 주변 인물을 공략해 부정한 이익의 전모를 밝힌 뒤 최후에 핵심 인물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현재 류윈산의 옛 부하와 가족이 모두 조사를 받고 있어, 류윈산이 저우융캉과 같은 결말을 맞게 될지를 두고 각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 홍콩 민정사무국장 겸 전국정협위원인 패트릭 호(何志平)와 전 세네갈 외교부장관 셰이크 가디오(Cheikh Gadio)가 중국 국영기업의 브로커로 활동하며 아프리카 고위층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됐다고 최근 미국 사법부가 밝혔다. 혐의가 인정되면 이들은 최대 2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동안 패트릭 호는 화신(華信)에너지 기업의 예퉁밍(葉簡明) 사장이 주석으로 있는 홍콩중화에너지기금회에서 이사국 상무 부주석이자 비서장직을 맡아 왔다. 화신에너지는 중국 최대 민영 에너지 기업으로, 중국 언론이 2017년 발표한 보도에 따르면 석유산업 총 매출액이 1,081억 위안을 차지해 중국해양석유(中海油)를 앞지르고 4위를 기록한 바 있다. 중국 공산당, 서방 사회에 침투하다 패트릭 호의 뇌물공여 사건이 중국 본토, 홍콩, 타이완, 아프리카, 미국에까지 그 여파를 미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부패와 적색사상이 국제사회에 어느 정도까지 침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산당이 국가와 사회자원 전반을 장악한 중국에서 화신에너지는 표면적으로 대형 민간 기업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국영은행에서의 잦은 대출, 일반적이지 않은 회사구조 등을 이유로 화신이 외형적으로만 민영기업일 뿐 사실상 국영기업이라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점에서 중국 공산당의 부패 체제가 중국 내 거의 모든 기업을 당의 생산업체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일었다. 공산당이 해외에서 서방 국가의 고위 관료를 매수한 사건은 단편적 사안이 아니며, 밝혀진 사례 역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2014년 12월 19일, 홍콩에서 전 정무사장인 쉬좡런(許仕仁) 사건 공판이 열렸다. 관련자 5명 중 4명이 유죄를 선고받고, 쉬좡런의 경우 5개 죄목이 유죄로 인정되었다. 쉬좡런은 이미 홍콩 사무반 랴오후이(廖暉) 주임으로 의심되는 출처불명의 거액을 수수했다고 자백했다. 랴오후이는 중국 공산당 원로인 랴오청즈(廖承志)의 아들로, 장쩌민(江澤民)에 의해 발탁돼 쩡칭훙(曾慶紅)의 심복으로 활동했다. 그는 오랜 기간 홍콩-마카오 사무실 주임직을 맡아왔다. 자유 인권을 핵심가치로 여겼던 홍콩은 중국 공산당의 수중에 들어간 후 점차 변질되기 시작했다. 공산당은 금전과 권력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홍콩 정부의 핵심 고위관료들을 매수했다. 이를 통해 관료들을 당의 꼭두각시로 만들었던 것이다. 홍콩 정치와 경제 발전을 결정하는 주요 정책 결정에서 이들은 중국 공산당의 의도에 따라 행동했다. 특히 2003년에는 23개 조항의 악법을 통과시키려고 했다. 2015년 10월 6일 프리트 바라라(Preet Bharara) 미국 뉴욕 남부 연방검찰관은 존 애쉬(John Ashe) 전 국제연합총회 의장을 포함해 중국 공산당 정협위원겸 마카오 부동산 재벌 응랍셍(吳立勝) 등 6명을 수년간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체포 및 기소했다. 해당 기소문에 따르면 2013년 제68회 국제연합총회 의장에 출마한 중앙아메리카의 섬 국가 앤티카 바부다 주 국제연합 대사인 존 애쉬가 2011년부터 2014년 12월까지 응랍셍 등 여러 중국계 기업가로부터 미화 130만 달러가 넘는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한 대가로 그는 국제연합 의장 신분과 앤티카 바부다 정부의 직권을 이용, 중국 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응랍셍은 브로커를 통해 애쉬에게 미화 50만 달러 이상의 뇌물을 전달했고, 국제연합은 마카오에 10억 마카오 달러에 달하는 총회 빌딩 건설에 투자하도록 지시했다. 한편 응랍셍은 1996년 미국 대선 전에 일어난 외국 정치헌금 스캔들에도 연루된 전력을 갖고 있다. 그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6년 재임 경선 당시 약 140만 위안의 거액을 중국계 기업인 찰리 트리(Charlie Trie)에게 송금했고 찰리 트리는 그 돈을 다시 민주당 전국위원회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산당의 국제 사회 침투 목적 국제적으로 중국 공산당 정권은 경제력을 앞세워 서방 사회와 정부를 압박하고, 공산주의 사상 및 공산당의 부패를 서방 세계에 전파하는 데 노력해왔다. 이로 인해 서방 세계의 자유 인권 등 보편적 세계관이 잠식되고 있다. 공산당은 뇌물을 통해 서방 국가의 관료들을 매수해 당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도모해왔다. 이들의 최종 목적은 통치 명분 강화와 정권 유지에 있다. 그러나 이는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해 세계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밑그림의 일부분일 따름이다. 이들은 서방 관료들의 약점을 찾아 경제적 이익을 미끼로 삼아왔다. 뇌물, 성적 유혹 등 수단을 동원해 매수에 성공하면 서방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끼쳤다. 더 나아가 자유 인권과 같은 핵심가치를 위협해왔다. 이와 관련해 경선자금 스캔들에 연루됐던 류춘이(劉醇逸) 뉴욕시 재무담당관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의 가치관을 미국에 전파하기 위해 미국 정계의 대리인을 필요로 했다. 공산당은 그를 통해 정계에 침투해 최종적으로 미국 정치와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다. 중국 공산당의 침투 노력에 타격, 공산주의 위협 중국 공산당이 추진하는 공산주의 사상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류 사회의 사상, 가치관은 태생적으로 대립된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를 포함한 서방 주류 국가들은 세계평화에 큰 위협을 끼치는 요소로 중국과 그 국민들이 아닌, 이들을 인질로 삼고 있는 중국 공산당 정권을 지목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자면, 공산당이 미국과 국제사회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해 전방위적 침투를 꾀하는 데에는 단지 공산당과 미국 등 각국의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둘의 대결은 곧 두 가치관의 대립, 정의와 악, 문명과 야만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유 인권을 국가 이념으로 삼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인류 문명의 선두에 서며 자유세계 및 문명사회의 리더 역할을 해왔다. 미국은 전 세계에 인권, 자유, 법제 등 가치를 전파하고 중국 공산당이 신봉하는 독재, 전제, 야만, 폭력 통치를 악으로 여겨 왔다. ...
에포크타임스는 2004년 11월 19일, 평론 시리즈 <9평 공산당>을 발표했고 같은 해 12월 3일부터 ‘대기원 뉴스넷’에서 3대 공산당 조직(공산당‧공청단‧소년선봉대)을 탈퇴하는 이른바 ‘삼퇴(三退)’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듬해 1월 1일, 해외 중국인 전문가와 학자 50명이 공산당 조직 탈퇴 집단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공산당 탈퇴’ 물결을 일으켰다. 발간 13주년을 맞은 현재(11월 19일 기준), 삼퇴에 동참한 인원은 2억 8천만 명이 넘는다. <9평 공산당>은 중국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과 그 폭력적 본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피'를 통해 세운 역사와 폭력을 통한 정권 유지, 파룬궁(法輪功) 박해, 중화민족 문화의 파괴 등 공산당이 중국과 중국인에게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저지른 죄행을 기술했다. 그밖에 도덕적 측면에서 반성하고, 공산당의 독해를 깊이 받은 중국 민중에게 희망과 함께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공산당이 금지할수록 나는 더 본다.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 <9평 공산당>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중국 민중이 중국 공산당의 역사와 본질을 꿰뚫어보게 됐다. 산시(陝西)성에 사는 왕란(王嵐.여) 씨는 친구 집에서 인터넷 우회접속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9평 공산당>을 다운받았다. 그녀는 “아주 명확하고 분명하게 쓰여져 있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읽었다”라면서 비록 <9평 공산당>이 중국에서 금서로 지정돼 있어 발각 즉시 처벌되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 볼 것이다.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9평 공산당>을 가리켜 '기서(奇書)'라고 말했다. 공산당의 시작부터 깊이 있게 분석해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위 ‘위대하고, 광명하며, 정확하다[偉光正]’는 몰골의 추악한 진실을 철저히 폭로하면서 국민에게 주입한 당문화의 허상을 벗겨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도 <9평 공산당>을 읽은 후 머릿속이 확 깨이는 느낌을 받았고, 자발적으로 ‘삼퇴’ 의사를 밝혀 공산당과 분명한 선을 그었다. 상하이(上海)에 거주하는 위(于) 모씨는 <9평 공산당>이 아주 잘 쓰인 글이며,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진상을 모두 밝혔다고 평했다. 그는 “공산당이 말로만 내세울수록 제대로 하는 것은 더욱 없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말도 공산당이 다 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나쁜 말도 모두 공산당이 했다”면서 “공산당 통치 하에서는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으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벙어리‧장님‧귀머거리’가 된다”라고 했다. 그는 “<9평 공산당>이 해야될 말을 아주 잘 말했고 <9평 공산당>이야말로 진정 위대하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 “공산당의 본질 드러내 의미가 커” 왕여우췬(王友群) 박사는 <9평 공산당>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왕 박사는 <9평 공산당>이 하늘과 땅, 사람의 보편적인 도리에 어긋나는 공산당의 반자연적이고 반우주적인 사악한 본질을 남김없이 파헤친 최초의 작품으로서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고위층에서 일했을 때, 어느 누구도 마르크스주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라며 “사실상 ‘강압’ ‘기만’, 이 네 글자로 요약할 수 있고 세 글자로 표현하자면 ‘가(假), 악(惡), 투(鬥)’, 두 글자로는 ‘사교(邪教)’”라고 말했다. 공산당은 당(黨)에 반하는 집단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세뇌하면서 결국에는 당원으로 하여금 양심과 인성을 상실하게 한다. 당원의 대표적인 특성은 이렇게 해서 형성된다. 왕 박사는 아직 양심과 인성이 남아 있는 당원을 향해 “양심, 인성, 도덕, 정의가 없다면 그게 사람인가? 이런 소굴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삼퇴를 촉구했다. <9평 공산당>, 공산당을 공포에 떨게 하다 2004년 <9평 공산당>이 발표됐을 때 공산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분명하고 정확한 '팩트' 앞에서 침묵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호주 시드니의 중국문제 연구학자인 링샤오후이(凌曉輝) 박사는 <9평 공산당>이 중국사회에 미친 충격이 컸기에 공산당이 공포를 느꼈다고 지적했다. 한 학자는 “중국 중앙정부가 <9평 공산당>을 하나씩 반박하고자 논의했으나 그 속에 담긴 내용이 모두 사실이어서 반박하게 되면 공산당의 죄행이 드러나야 했다. 결국 그들은 ‘9평 공산당’이라는 글자를 중국 언론과 인터넷에서 금지하는 쪽을 택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9평 공산당>은 현재까지 30여종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나라에서 출판됐고 세계 100여개 도시에서 5000여 회의 포럼과 기자회견, 집회와 사진전 등 다양한 활동이 이어졌으며 1만여 명의 전문가와 학자, 정계 인사, 언론인, 공산주의 피해자 등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9평 공산당>은 중국과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세계적 ‘공산주의 해체’ 캠페인을 크게 촉진시켰다. '삼퇴 물결', 중국을 격변시켜 <9평 공산당>으로 시작된 삼퇴 물결은 전 중국인의 정신을 각성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9평 공산당>이 발표된 후인 2005년 1월 12일, 대기원시보는 탈당 사이트를 개설해 “공산당이나 공산당의 기타 조직에 가입한 사람은 속히 탈퇴하라”며 ‘성명’을 발표했다. 한 달 후, ‘세계 탈당서비스센터’를 위시로 세계 각지에서 ‘탈당서비스센터’가 생겨났다. 공산당의 진실을 알게 된 중국 내외 중국인들은 각종 경로를 통해 자발적으로 <9평 공산당>을 퍼뜨리고 탈당을 권유했다. 대인 접촉, 인터넷과 이메일, 전단, CD, 휴대폰 문자 또는 공공장소에 현수막을 걸거나 인민폐에 ‘천멸중공(天滅中共: 하늘이 중국공산당을 멸한다)’ 등의 글귀를 적는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됐다. 많은 사람이 실명 또는 가명으로 탈당했는데, 고위 관료, 간부, 기업가, 과학자, 지식인, 석‧박사, 대학생, 노동자, 농민 및 해외 중국인 등 탈당자들은 사회 각계각층에 모두 있었다. ...
11월 21일 밤 10시, 중앙기율검사위(중기위)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루웨이(魯煒·57)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 부부장 겸 전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주임이 ‘엄중한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9차 당대회 후 낙마한 첫 ‘호랑이(고위급 간부)’가 루웨이인 것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정치적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루웨이는 전 중앙선전부 부부장이자 전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주임으로 정부급(正部級, 장관급) 관료다. 즉 시진핑이 18차 당대회에서 취임한 이래 시작된 반부패 호랑이 사냥 캠페인에서 선전계통 최고위직 관료로는 처음으로 낙마한 것이다. 특히 선전계통을 주관하는 장쩌민파 류윈산(劉雲山)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퇴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루웨이가 낙마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시진핑이 선전계통의 장관급 관료 한 명을 실각시키기 위해 류윈산이 퇴진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는 것이다. 또한 장쩌민파 류윈산이 19차 당대회 이전 중국 공산당 선전계통을 장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8차 당대회 이후 고위층의 권력 구조와 운영체제가 여전히 장쩌민 시기에 형성된 상무위원 분담 체제, 즉 7명의 상무위원이 중앙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집단지도체제로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19차 당대회 이후 첫 호랑이가 낙마하면서 이러한 상황에는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장관급인 루 부부장의 낙마는 지난달 19차 당대회를 통해 반부패 사령탑이 된 자오러지(趙樂際) 중앙기율위 서기의 첫 작품이라는 점이다. 19차 당대회를 마친 시진핑이 그에게 강도 높은 반부패 운동을 지시한 것으로 파악된다. 19차 당대회가 끝난 시점에서 시진핑이 권력의 핵심인 ‘붓대(筆杆子)’에 직접 칼을 들이댔다는 것이다. 이는 장쩌민파 선전계통에 대해 심층 정화 작업을 펼칠 것이라는 신호로 풀이된다. 현재 권력 배치에 따르면 장쩌민파의 마지막 보루는 주로 선전계통에 집중돼 있다. 비록 왕후닝(王滬寧) 정치국 상무위원이 류윈산의 직무를 대체했지만 그는 학자 출신으로 지방과 중앙에서의 행정 경험이 전무하다. 따라서 권력을 운영할 배경이나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우선 선전계통의 첫 호랑이를 실각시킨 데는 왕후닝에게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루웨이가 낙마한 주요 원인은 신화사(新華社)나 중앙선전부 재임 기간 중 있었던 비리 문제때문만은 아니다. 그 원인은 여전히 ‘정치부패’와 관련 깊다. 류윈산과의 밀접한 관계, 2016년 3월 중국 공산당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 신장 무계망(無界網)이 게재한 시진핑의 퇴진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에 대한 책임 등 그는 꾸준히 정변 집단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얼마 전 왕치산은 언론을 통해 정치부패가 최대 부패이며 정치부패범들이 이익집단을 결성해 당과 국가의 권력 찬탈을 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었다. 이는 시진핑 당국의 향후 반부패 방향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대목이다. 당국이 ‘경제부패’ 외에 ‘정치부패’까지 척결하겠다는 뜻인 것이다. 따라서 장쩌민파 관료가 향후 반부패 호랑이 사냥의 대상이 될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셋째, 언론자유를 억압하고 인터넷 검열·통제 정책을 주도한 루웨이가 낙마했지만 중국의 인터넷 통제 정책은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루웨이와 그 후임자는 단지 동전의 양면일 뿐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인터넷과 언론 통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국면이 잠시 나타날지라도 그것은 단지 정권 안정을 위한 공산당의 또 다른 수단에 불과하다. 중국 공산당 정권의 본질은 이전부터 이미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폭력과 거짓으로 일관된 통치 방식이다. 거짓이 존재하는 시장에는 언론 통제, 진상 봉쇄, 거짓 날조, 민중들에 대한 세뇌 등이 필요하다. 공산당 체제가 존재하는 한 이 점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루웨이가 낙마한 뒤 외부와 중국 내 네티즌들이 모두 환호하고 있다. 이는 인심의 향배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각급 관료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정권을 장악한 관료들은 민중들을 계속해서 박해하고 정의와 보편적인 가치를 적으로 치부하며 목숨 걸고 악행을 저지른다면 결국 청산을 면치 못할 것이며, 역사에 치욕으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것이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중국 방문을 마친 11월 15일 미국 의회 산하 미중무역안전심사위원회(USCC)가 미중 무역관계 및 미중 안전관계 등 여러 방면에 대한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미국 의회의 브리핑을 두고 중국 공산당의 ‘후설’(喉舌·목구멍과 혀)인 환구시보는 이에 대해 맹렬히 비난했다. ‘미국이 방금 발표한 브리핑으로, 국외의 모든 반중세력은 기뻐하고 흥분했다’면서 미국 의회위원회를 통칭 ‘반중세력’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브리핑 내용은 ‘반중방침’이 됐다. 이 연장선상에서 환구시보는 브리핑 내용과 파룬궁을 연결해 파룬궁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지금까지 중국 공산당 정권은 국가적 차원에서 사회공제, 언론조작, 민중박해, 반체제 인사 박해 등을 실시해왔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적을 만들어 ‘조국 분열, 국가정권 전복 및 반중세력’이라는 누명을 씌워 이들을 공격하고 박해했다. 환구시보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산하의 신문이다. 환구시보와 인터넷판 환구망(環球網)의 보도와 사설들은 꾸준히 극좌 성향을 보여 왔다. 또 매우 공격적 어조로 욕설과 유언비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 역시 특징 중 하나다. 이 신문의 이념은 반(反)미, 반(反)일 등 세계 보편적 가치관에 반하는 방향으로, 중국에서 공산당 체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민중을 세뇌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환구시보는 날조를 반복하며 유언비어를 전파하고 있다. 특히 중국 대내외에서 발생한 민중 사건에 대해 공산당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앞잡이 역할을 자처해왔다. 환구시보는 장쩌민 세력의 주요한 도구로, 파룬궁에 대한 비난과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데 주도했다. 그 예로, 환구시보는 2016년 8월 20일 파룬궁이 공산당의 강제장기적출 만행을 폭로한 것과 관련해 ‘이는 파룬궁 측이 날조한 유언비어다’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그 논평은 맥락과 근거를 알 수 없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과연 어떤 세력이 반중세력인가? 중화민족에 대해 반대하고, 중화민족에게 재난을 불러오는 세력이 진정한 ‘반중’이다. 중국의 인권 실태에 대해 주목하고, 민중의 주권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단체와 인사가 중국 민중의 친구인 것이다. 이들은 중국 인권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공산당의 폭정에 저항해 온 진정한 애국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애국자들은 역사에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 예로, 중국 청나라의 통치를 뒤엎고 중화민국을 세운 국부(国父) 쑨원이 있다. 공산당은 폭력을 기반으로 일어서 몇천 만 명의 중국인을 살해하고 중화민족의 전통문화를 파괴해 민중에게 엄청난 재난을 불러왔다. 즉 이들이 반중세력이다. 장쩌민 세력이 참혹하게 파룬궁을 박해하고 수련자들의 장기를 강제적출한 만행은 이제 백일하에 드러났다. 하지만 환구시보만 계속해서 파룬궁을 비난하며, 파룬궁 박해 초기와 같이 대대적으로 사실을 조작, 공격하며 공산당의 만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길러온 환구시보야말로 진정한 반중세력인 것이다. 환구시보와 같은 반중세력 때문에 중국인은 공산당의 박해 속에서 자유와 존엄을 잃었다. 하지만 중국 고위층 간부들의 아내와 아이들은 일찍부터 미국 국적과 영주권을 취득해 이른바 ‘반중세력’인 미국이 제공하는 온갖 권리를 누리며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다. 환구시보가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다. 점점 많은 중국인들이 중국 공산당의 실체를 꿰뚫어 보고 중공과 중국을 구별하며 그 사악한 본질을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공산당이 사회에 끼치는 위해를 생각하고 파룬궁 박해에 대한 진실을 향해 근접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환구시보가 이번에 보여준 ‘누워서 침 뱉기’는 또 한 번 사람들에게 진정한 반중세력이 누구인지, 그 실체를 드러낸 셈이다. 그것은 바로 중국 공산당이 길러온 도구, ‘환구시보’이다.
장기 이식을 간절히 기다리는 국내 환자는 3만 2000명, 신장이식 대기시간 평균 5년. 한 의사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식을 안 하면 1년도 못사는 환자인데, 장기가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강제로) 적출한 것이든 아니든, 당신은 중국에 가서라도 이식수술을 받겠는가 안 받겠는가?” TV조선 ‘탐사보도세븐’은 지난 15일과 16일 ‘죽여야 산다’ 라는 중국원정 장기이식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룬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원정 장기이식은 인간 생명의 존엄과 윤리가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과 맞부딪힌 문제다. 쉽게 무엇이라고 결론 내리기 어렵다. 그래서 방송은 이번 회가 "심각한 윤리적 고통을 다 같이 느껴보는 시간"이라고 안내했다. 한국인이 장기 이식을 받으러 중국에 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중국에서 이식수술이 가능한 병원은 공식적으로 169개, 그중 한국인이 많이 찾는 병원은 8개다. 중국의 강제 장기적출 문제를 다룬 저서 <피의 수확(BLOODY HARVEST/THE SLAUGHTER)>에 따르면, 3년 간 8개 병원 중 모 병원에 다녀간 한국인 환자는 3000명이 넘는다. 1년에 평균 1000명꼴이다. 나머지 7개 병원의 한국인 환자 총합이 그와 같다고 보수적으로 가정하면, 중국 원정 장기이식 환자는 연간 2000명이 된다. 지난 10년간 2만여 명이 중국에 가서 장기를 이식하고 새 생명을 얻어 왔다는 뜻이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이 ‘담당 의사의 권유’로 장기 이식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의사에게서 “이식만 하고 오면 치료 관리는 내가 확실히 해주겠다”는 말도 들었다. 이들은 돌아온 후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끼리 정기모임도 만들었다. 그러나 장기가 누구의 것인지, 어떻게 왔는지는 모른다. 중국 이식병원의 한 조선족 간호사는 “어제 신장이식 3건, 간이식 4건 했다”라며 “(이식을 원하면) 빠르면 2~7일 만에 수술을 받을 수 있고 오래 걸려도 1~1.5개월”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신장이식에 평균 5년 정도 걸리는데, 중국이 인구 대국이라 해도 지난 20년간 중국의 장기기증자는 37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 많은 장기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제작진은 중국의 강제 장기적출과 불법 매매를 다룬 다큐멘터리 <인간수확(Human Harvest)>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생체장기적출을 목격했던 경찰관은 <인간수확>에서 “그녀(피해자)는 일주일 동안 심한 고문을 당해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의사들은 (장기 보존을 위해) 마취제를 사용하지 않고 주저 없이 그녀의 00를 갈랐다. 심장이 먼저 적출되고 이어 신장이 적출됐다. 가위가 그녀의 00를 자르자 그녀는 온몸을 뒤틀었다. 너무도 끔찍했다”라고 한 뒤 “아…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겠다”라며 괴로워했다. 랴오닝성의 한 병원에서 근무했던 간호사는 “나와 전 남편은 1999년부터 2004년까지 근무했다. 남편은 신경외과 의사였는데 파룬궁 수련자의 각막 적출을 맡았다. 그 병원은 살아있는 파룬궁 수련자에게서 간이나 각막 등을 강제로 적출했다. 일부 수련자는 장기가 적출당한 뒤에도 여전히 숨을 쉬었지만 병원 소각로에 던져졌다. 그 소각로는 병원 보일러실에 있었는데 화장터로도 사용됐다”라고 증언했다. 그녀는 이 일을 겪은 뒤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남편과 이혼했다. 직접 생체 장기를 적출했던 의사의 증언도 따랐다. 지난 2013년 4월, 중국 출신 의사 엔버 도허티는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내가 그(사형수)를 절개했을 때 놀랍게도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다. 나는 양쪽으로 절개해 간과 신장 2개를 적출했다. 이 과정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라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제작진은 중국에서 개발한 ‘원발성 뇌간손상 충격장치’라는 기계를 소개했다. 일명 ‘뇌사기’라고 부르는 이것은 둥근 금속공이 뇌관을 타격해 그 충격파가 두개골을 넘어 뇌로 전달되면서 사람을 순식간에 뇌사시키는 살인기계다. 제작진은 뇌사기 모형을 제작해 이승원 장기이식윤리협회장 겸 외과전문의에게 자문했다. 이 협회장은 “뇌사기는 장기를 적출하기 전 뇌사시키는 용도로 쓰는 것 외에 다른 용도가 없다. 누가 사람을 뇌사시키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제작진은 신뢰할만한 근거와 증언을 통해 중국에서 수술 받은 한국인 상당수가 중국의 양심수, 특히 파룬궁 수련자에게서 불법적으로 적출한 장기를 이식받았다고 결론 내렸다. 중국의 전통 심신수련 ‘파룬궁’은 탁월한 건강증진 효과를 인정받아 많은 지지를 받았으나 수련자 수가 급격히 늘면서 1999년 7월부터 중국 공산당에 의해 불법 탄압을 받고 있다. 중국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극적으로 풀려난 김 모 씨는 직접 강제 장기적출을 목격한 사람이다. 그는 “(교도소에서) 파룬궁 수련자가 학대당해 맞아 죽었다. 그날 밤, 병원에서 사람이 와 장기를 적출했고 보온 상자에 담아갔다. 다른 수감자들도 모두 봤다”라고 털어놨다. 중국 원정 장기이식이 막 시작되던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중국의 강제 장기적출을 안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신의 환자에게 중국행을 권했던 의사는 이 사실을 알고부터는 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전에 권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에 신장이식 받으러 간 한국인 환자 역시 “살고자 하면 그 방법(장기 이식)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 사람들은 죽지 않으려고 (수술비 마련을 위해) 보통 집을 팔아서 온다”라고 했다. 자, 이제 당신은 앞선 질문에 대답할 차례이다. 당신이 또는 당신 가족이 장기 이식을 해야만 살 수 있고 한국에서는 5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중국에 가면 일주일, 늦어도 한 달이면 이식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장기는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강제로 적출한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 독자를 위해 다음 두 마디를 남긴다. ...
“중국 강제장기적출 여전” 국제 NGO, 추적보고서 발표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장기 기증자, 중국 발표와 조사 결과 달라 #. 적십자 우루무치(烏鲁木齐)시 지사(2017. 9.12.) 장기기증 부서 책임자 천(陳) 씨 “신장(新疆) 전 지역에서 장기기증제도를 시행한 이래 지금까지 기증 사례는 수십 건에 불과하다. 자발적 기증은 확실히 적다. 기증자 등록을 해도 모두 실제로 기증하는 것도 아니다. 매년 증가율이 얼마냐고?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뚜렷한 증가는 없다.(녹취 103 참조) #. 적십자 구이양(貴陽)시 지사(2017. 9.26.) 장기기증 부서 책임자 “기증으로 이어진 사례는 최근 몇 년간 30여 건인데 그중 10여 건이 올해 수치다.”(녹취 104 참조) #. 적십자 닝보(寧波)시 지사(2017. 9.26.) 장기기증 담당자 “지난해 38건의 기증을 받았고, 올해에는 10~20건 정도다.”(녹취 105 참조) 이와 관련해 중국 정부는, 장기의 주요 출처가 기증이며 중국인 상당수가 사후 장기를 적십자에 기증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발표는 병원과 적십자를 조사한 결과와 전혀 달랐다. 병원에서는 이식수술 건수에 대해 항상 머뭇거렸고, 부득이 대답할 때에는 ‘고객’을 잃더라도 되도록 적게 말했다. 장기 출처를 묻는 말에는 더 예민하게 반응했는데, 다음에 나오는 녹취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 ...
19차 당대회가 폐막했지만 중국 공산당 고위층 내부 투쟁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당국이 장쩌민 집단을 겨냥한 행보를 이어나가는 가운데 10월 31일 무장경찰 제도 개혁안이 통과됐다. 장쩌민파의 쿠데타 기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10월 31일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무장경찰 부대 개혁 기간의 임시 법규 조정에 관한 결정 초안’을 심의해 무장경찰에 대한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단일 지휘를 받도록 바꿨다. 개정안은 무장경찰 부대에 대한 ‘당의 통일 영도’를 강화하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시진핑) 책임제를 정착시키는 데 있다. 또 ‘군은 군, 경찰은 경찰, 민간은 민간’이라는 원칙에 따라 무장경찰 부대의 지휘관리 체제를 개선하고 우수한 군사역량을 결집시켜 부대를 재편성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무장경찰 ‘일통이분(一統二分)’ 제도 무장경찰은 편제와 병역 제도가 정규군과 거의 유사하나 주로 대내적으로 ‘안정’을 유지하는 무장세력이다. 이들은 공산당 체제 안정을 위한 수단의 하나였다. 1982년 6월에 창설된 중국의 무장경찰 부대는 ‘일통이분(一統二分)’의 지휘체제를 채택했다. 구조적으로는 국무원, 중앙군사위가 일괄 지휘하고 각 지방 공안기관이 등급을 나누어 관리, 지휘하는 체제이지만 사실상 ‘양분(兩分)’이 주축을 이루었다. 일통양분제에 따라 무장경찰 부대는 그동안 중앙군사위와 국무원의 이중 관리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 같은 이중 관리 체제하에서 지방 무장경찰은 정법위 계통 및 부속 공안계통으로부터 직접적인 지휘를 받아 각 지방의 ‘안정 유지’ 업무를 수행한다. 즉 중앙군사위는 무장경찰의 모집과 제도 관리 등만 담당할 뿐, 지방의 부대를 직접 지휘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 공안계통은 무장경찰에 대해 비교적 큰 발언권을 행사해왔다. 따라서 공안부장은 무장경찰 부대의 제1정치위원, 당위원회 제1서기를 겸직하며 각 성(省) 무장경찰 부대 역시 성(省) 공안청장이 제1정치위원, 제1서기를 겸하는 구조로 조직이 이루어졌다. 이는 사실상 무장경찰 부대의 분권을 초래했다. 저우융캉(周永康) 시기의 경우, 그는 정법위 서기, 공안부장 등을 역임하며 무장경찰에 대한 지휘권을 적극 행사해왔다. 또 무장경찰 사령원을 최초로 중앙정법위 위원에 포함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체제는 또 다른 세력의 중심을 형성시켰다. 무장경찰은 한때 장쩌민의 사병 장쩌민은 집권 초기 ‘양가장(楊家將, 양상쿤(楊尙昆)-양바이빙(楊白氷) 형제로 당시 군부를 장악한 세력)’이 군권을 장악했던 탓에 무장경찰에 집중투자하며 세력을 키웠다. 이 시기 급속도로 발전한 무장경찰은 국내외에서 ‘장가군(江家軍)’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1996년 12월, 중앙군사위는 무장경찰 부대 총부를 부(副) 대군구급(大軍區級)에서 정대군구급(正大軍區級)으로 승격하고, 무장경찰 사령원의 등급을 7대군구의 사령원과 동급인 상장 계급으로 조정했다. 1999년 당시 중앙군사위 주석이었던 장쩌민은 새해를 맞아 베이징(北京)시 무장경찰 총대대 11지대를 시찰했다. 그 뒤부터 공산당은 무장경찰 부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왔다. 무장부대 체계에서 ‘비주력 부대’에 해당되었던 무장경찰은 이후 육·해·공 3군 및 제2포병과 대등한 지위로 올라섰다. 그 규모 역시 불어나 장비 개선 및 구성원에 대한 대우 향상이 이뤄졌다. 무장경찰 수도 급격히 늘었는데, 외부에서 추산한 바에 따르면 총병력은 150만 명에 이르며 이중 절반은 80만 명 규모의 국내 보위 부대가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인권침해 사건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민중들의 폭력에 맞선 권익 수호 집단 사건도 폭증했다. 특히 2000년 이후 저우융캉이 정법위를 넘겨받으면서 각지에서 집단행동이 빈번해졌다. 무장경찰은 장쩌민 집단이 국민들을 탄압하기 위한 주된 폭력 수단이 됐다. 2006년 중국 무장경찰 사령과 정치위원은 무장경찰을 대규모 군중사건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사실상 대규모 민중 청원 사건을 진압하기 위한 준비였다. 무장경찰은 장쩌민파의 버팀목 장쩌민과 저우융캉이 장악한 정법위는 무장경찰의 사병화 · 지방화를 꾀함으로써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의 중앙 정부에 대항해왔다. 지난 10여 년간 장쩌민은 무장경찰에 거액을 투자해 ‘제2의 권력 중앙’으로 불릴 정도로 세력을 확장했다. 또 정법위와 산하 공안계통은 ‘안정 유지’라는 명목으로 지방의 무장경찰 세력을 움직여 국민을 탄압했으나 법적 제한을 받지 않았고 중앙군사위도 손을 대기 어려웠다. 무장경찰 부대는 여러 차례 정변에 참여한 의혹을 받아왔다. 장쩌민, 쩡칭훙(曾慶紅), 보시라이(薄熙來), 저우융캉 등이 무장경찰에 의지해 18대 이후 시진핑에 대한 정변을 시도했던 것이다. 왕리쥔(王立軍)의 중국 영사관 도주 사건 당시 보시라이는 무장경찰을 동원해 미(美) 영사관을 포위한 것이 대표적이다. 저우융캉 또한 3·19정변을 일으키며 무장경찰을 동원한 바 있었다. 2012년 3.19 정변 과정에서 중앙정법위에 주둔해 있던 무장경찰 특수부대는 하늘을 향해 총을 쏘면서 38군에 대항했다. 그러나 38군 부대는 신속히 무장경찰을 제압했다. 베이징 시민들다수가 이날 밤 총성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3.19’정변은 미수로 그쳤는데 주범으로는 당시 중국 공산당 정법위 서기인 저우융캉이 지목됐다. 보시라이 사건의 결정적 증인인 다롄스더(大連實德) 그룹의 쉬밍(徐明)이 장쩌민파에 불리한 증언을 하는 것을 막기위해 사전에 체포하려는 목적이었다. 이 사건 당시 후진타오는 38군 부대를 베이징으로 긴급 투입해 정법위 건물 밖 무장경찰과 대치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무장경찰 부대는 명목상 국무원과 중앙군사위의 이중 관리를 받는다. 그러나 실제 통제권은 국무원의 공안부, 즉 정법위에 있다. 저우융캉이 정법위 서기로 재임 시 연간 안정 유지비용이 군비 지출을 넘어섰으며, 정법위 권력은 ‘제2의 권력 중앙’으로 부상했다. 후진타오-원자바오의 ‘정치 명령이 중난하이 밖으로 전달되기 어렵다(政令難出中南海)’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우융캉이 장악한 무장경찰 세력은 그만큼 위협적인 존재였다. 중국 공산당의 말을 빌면, 저우융캉은 ‘칼자루(刀把子, 공안과 법원, 검찰 등을 총관장하는 정법위원회)’를 손에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장경찰 부대라는 ‘총대(槍杆子)’도 쥐고 있었던 것이다. 시진핑, 무장경찰내 장쩌민파 세력 청산 ...
자기 검열과 외부 조사를 회피하는 것은 공자학원이 대화를 피하고 외부와 차단하는 기본적인 방식이다. 뉴저지 주립대 공자학원의 중국 주무 인슈리(殷秀麗, 음역)는 몇몇 특정 주제가 토론 의제로는 일체 선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들은) 민감한 화제는 피합니다. 타이완이나 파룬궁 문제 같은 것들이지요.”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이 규정으로 명문화돼 있지 않다. 한반(漢辦·중국어보급위원회) 소속 언어 교사들의 중국어, 영어 계약서를 살펴본 결과,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제한 조항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인터뷰에 응한 공자학원 교사, 심지어 공자학원과 관련된 교직원들 모두가 천안문 학살이나 중국의 일당 독재 비판과 같은 화제가 외부 규정에 의해 금지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화제를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고 밝혔다. 천안문 학살, 파룬궁 이외에 타이완 및 티베트 문제도 금기시되고 있었다. 천안문 학살, 파룬궁 등 공자학원 금기어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미묘한 압력은 엄청난 결과를 불러왔다. 교사들의 자체적 검열을 유도하는 것뿐만 아니었다. 중국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공자학원에 부적절한 조치나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사용했다. 중국 정부가 비밀리에 대학을 여론 대리인으로 이용한 것이다. 프린스턴대학교의 페리 링크(Perry Link) 동아시아 연구 명예교수는 자기 검열은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특히 금기시된 주제가 없다고 밝힌 공자학원 관계자의 말을 그 예로 삼았다. “자체 검열의 방식은 미국 관계자의 말에서도 나타납니다. 압력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고도의 전략적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검열을 거쳤기 때문에 파룬궁이나 타이완 독립 등의 문제가 거론되지 않는 것이니까요. 여기에 압력은 없었습니다. 또한 본인과 한반 간의 충돌도 없었겠지요”라고 페리 교수는 말했다. 또. 다른 국가의 정부가 언어와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미국에 교사를 파견하는 것과 비교할 때, 공자학원의 문제점은 더욱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다른 국가들은 교사를 파견하여 개별적 과정을 가르치는 반면, 중국은 교사를 상급 교육기관으로 파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공자학원은 일종의 패키지 교육으로, 중국 정부가 수업에 필요한 교사, 교재, 경비 등의 전체를 지원하고 있어요. 따라서 공자학원에서는 해당 상급 교육기관의 학점까지 취득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줄리 왕(Julie Wang)은 빙엄턴 대학(Binghamton University)에서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는데, 이 대학에 설립된 공자학원의 일부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한반에서 천여 권의 도서를 기증했는데 그 책에는 역사상 중요한 사건들이 일부 삭제되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가 대다수의 중국 국민들에 대한 세뇌를 이미 마쳤고, 이제는 미국 학생을 겨냥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이 자라서 미국의 중국 전문가나 외교 정책 관리가 된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조사에 대한 캠퍼스 반응 양극화 피터슨이 조사 중인 대학 캠퍼스들은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용감한 교사나 교직원이 필사적으로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지요. 하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 민감한 화제에 대해 전략적 침묵을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관계를 유지하거나 이미 획득한 이익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이지요. 또 일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서방 대학의 공자학원에서 새로운 중국학자들이 배출돼 학문의 자유를 위해 나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버지니아주립대의 동남아시아 연구학과 찰스 라플린(Charles Laughlin) 교수는 2015년 베이징(北京) 중국인민대학과 한반이 협찬한 공자학원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공자학원은 국제 중국어 연구의 기둥으로서 이를 주도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들과 협력할 경우 엄청난 자금을 지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라플린 교수는 “공자학원은 중국 문화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모든 이들에게 심어주고자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중국문화를 어떻게 학생들에게 보여줄 것인지를 확정해 주려고 합니다. 이러한 방식은(학문 분야에 침투 및 조종하는 수법) 미국과 다른 나라 학자들의 윤리에 위배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한반과 공자학원을 대변해 나서는 학자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협력하는 기관과 학자들이 있으며 자신도 그중 하나라고 라플린 교수는 말했다. 공자학원과 거리를 두기보다 협력하는 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해 선택적인 비판을 함으로써 그들의 일부 문서와 연구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지켰다고 그는 토로했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넘어서는 안되는 최저선이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중국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교수 요강을 수정하라고 요구한다면 그는 단호히 거절할 것이라고 했다. 외국 정부에 교육 맡기는 행위 중단해야 중국 정부는 2004년부터 거액을 투자해 세계 각지에 수백여 개의 공자학원을 설립했다. 한반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6년 12월 31일까지 전 세계 140개 국가(지역)에 공자학원 512곳과 공자학당 1073개가 위치해 있었다. 공자학원과 공자학당이 3일 간격으로 해외에 하나씩 설립되는 셈이다. 현재 미국에만 공자학원 103곳과 공자학당 501곳이 존재하며 한반은 각각의 공자학원에 자금, 서적 및 교사를 지원하고 있었다. 모든 공자학원은 미화 10~20만 달러의 운영 자금 외에도 매년 미화 수만에서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활동 경비를 지원받았다. 공식자료에 따르면, 공자학원 프로젝트 경비는 중국 정부의 재정으로 지출되며, 2004년에 설립된 이래 현재까지 총 미화 20억 달러가 소모됐다. “대학에게 이것은 매우 매력적인 선물입니다. 특히 학점에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비를 지원 받을 수도 있지요. 대학 입장에서는 무료 수익인 것입니다. 많은 대학의 경우 재정적 이익을 고려하여 공자학원 설립을 결정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학문 자유에 대한 고려는 뒷전에 둔다는 것입니다”라고 피터슨은 말했다. 전미대학교수협회 우더 회장은 “공자학원이 중국의 국가적 파워를 미국 대학에까지 과시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사실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크게 놀랐습니다”라고 밝혔다. ...
1990년대 세계 공산주의 진영이 잇따라 몰락하면서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는 중국과 북한 뿐이다. 60여 년간 중국을 통치해온 중국 공산당 정권은 2017년, 특히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부터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당내 이권 투쟁이 본격화되고 중국 경제성장에는 제동이 걸렸다. 공산당 집권 60여 년 동안 누적된 갈등은 일촉즉발에 이르렀다. 국제 상황 역시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이 정권을 고립시키는 양상을 띠고 있다. 공산주의가 세계로부터 전면적 타격을 받고 있는 현 시점, 역사의 기로에 서 있는 중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트럼프, 공산주의 종식 위해 행동 시작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으로 부임한 지 불과 반년 남짓 만에 공산주의를 향해 여러 차례 경고를 보내며 이를 행동으로 옮겨왔다. 6월 16일, 마이애미에서 그는 새 쿠바 정책을 선포하면서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망명자와 반체제 인사들은 이미 공산주의가 한 국가를 괴멸시키는 것을 목격했다. 공산주의가 치하에 두었던 국가를 하나씩 괴멸시킨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압박에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말했다. 9월 19일, 유엔 총회에서는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가 전 국민에게 빈곤과 고난을 안겨주었다며 규탄했다. 그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국가는 모두가 고통, 붕괴와 멸망에 이르는 결말을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10월 6일, 백악관에서 열린 ‘히스패닉 문화유산의 달’을 경축하는 자리에서 그는 미국 정부가 자유와 번영을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쿠바와 베네수엘라 국민들과 함께 공동으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전제 제도에 반대할 것임을 표명했다. 그는 “쿠바 국민들을 압박하는, 실패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세계 곳곳에 비통과 고난을 안겨주었다. 공산주의는 과거에 속하고, 자유는 미래에 속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공산주의를 향한 선전포고는 단순 발언에 그치지 않았다. 취임 이후 이루어진 각종 시정운영 또한 공산주의 이념과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국 다큐멘터리 <아젠다(Agenda)>가 미국과 전 세계로 침투한 공산주의에 대해 폭로한 바에 따르면 공산주의의 주요 목표는 인류의 전통적 도덕 가치관을 파괴하는 데 있다. 트럼프는 여기에 맞서 일련의 시정정책, 법안, 법령을 통해 전통적 이념을 결연히 수호하려는 의지를 보여왔다. 이는 많은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트럼프는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경제를 살리며, 일자리 창출, 세수 감소에 힘썼다. 트럼프는 전통을 복구하고 도덕 유지를 강조했다. 취임 직후 행정명령을 통해 지난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낙태수술이나 정보 제공, 카운슬링 등의 활동을 하는 외국 단체에 대한 미연방의 자금 지원 금지하는 방안을 다시 실시했다. 이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정책 ‘성전환자 화장실 권리 보장 지침’ 등을 폐기했다. 신에 대한 겸손함과 신앙은 트럼프의 언사에 일관되게 나타났다. 트럼프는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공산주의, 테러리스트와 극단주의 분자를 규탄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전 세계적 저항에 직면한 중국공산당 침투 최근 몇 년간 공산당의 홍색(红色) 침투는 각종 수단과 방법을 통해 전 세계로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이에 대해 여러 서구 국가들과 해외 매체들이 자국 국민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반격에 나섰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개설한 특무 기관 '공자학원'이 폐쇄됐다. 또 올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사건은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호주 매체는 중국 공산당 정권 및 부속 기관이 현재 호주에 전면적이며 전략적 배치를 진행하며 호주의 정치 질서를 어지럽히고 이익을 꾀하려 한다고 폭로했다. 공산당의 타깃은 호주의 최고위직 정계 요인, 호주대학, 중국 유학생, 호주 중국인 커뮤니티와 호주 중문 매체였다. 이 매체에 따르면 현재 호주 정보기관은 공산당이 호주의 정치, 경제 등에 침투한 사실에 대해 조사 중이며 공산당을 통해 정치적 뇌물을 받은 일부 정계 인사를 공개한 바 있다. 이러한 공산당의 점진적 침투를 통해 호주 정치에 끼치는 무형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얼마 전 호주 법무장관 조지 브랜디스(George Brandis)는 외국 정치자금 수수 금지 및 외부 간섭을 금지하는 법률 개정을 시도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중국계 의원 양젠(杨健)이 12년 동안 공산당 군부 스파이로 활동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건의 파문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뉴질랜드 총리, 의원, 전문가, 학자와 매체 등이 해당 사건에 주목하면서 양젠에 대한 조사가 강도 높게 진행 중에 있다. 캔터베리 대학교 중국 전문가 브래디 교수는 최근 연구 보고를 통해 공산당의 뉴질랜드에 대한 영향력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브래디 교수는 뉴질랜드가 호주와 마찬가지로 공산당의 위협과 침투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
백악관은 10월 16일 트럼프 미 대통령이 11월 8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동을 가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기 전 ‘301조사’ 결과를 공개할 것이라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이전에 이뤄졌던 ‘301조사’의 착수 기간은 미정이었다. 8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통상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명령하는 각서에 서명해 미국무역대표 라이트 하이저(Robert Lighthizer)에게 중국에 대한 조사 권한을 부여했다. 해당 조사는 미국의 지식재산권과 기술혁신 및 발전에 손해를 입힐 우려가 있는 중국의 법률과 정책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4일 뒤인 8월 18일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301조사’ 착수를 공식 발표했다. 이 조사는 중국 정부의 미국기업에 대한 지식재산권 침해 및 기술이전 강요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301조사’는 미국의 <1974년 무역법> 제301조에 근거한 것으로, 중국을 상대로 ‘301조사’에 착수한 것은 7년만이다. 무역대표부의 규정에 따르면 ‘301조사’ 초기, 미국은 중국과 협상을 통해 조사를 종결할 수 있다. 그러나 양국이 결과 도출에 실패했을 시 USTR은 6개월 내 조사를 마무리하고 제재여부를 결정한다. 무역제재 조치로는 관세 인상이나 수입제한 등이 있다. 이를 통해 상대 국가를 압박해 법률 및 무역방식을 바꾸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제재조치가 결정되면 대통령의 동의 없이 30일 이내에 발동된다.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가 백악관 고위관료의 말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중국과의 협상과 공개청문회를 포함해 모든 조사과정을 마치려면 약 1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스티브 배넌(Steve Bannon) 백악관 전 수석 전략가는 9월 홍콩 연설에서 트럼프의 중국 방문을 기점으로 워싱턴이 ‘301조사’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트럼프 정부의 핵심 부처들이 미국기업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 기업들은 현재 기술공유와 중국 진출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301조사’ 후 중국이 다시 양보할 가능성 높아 만약 미국이 일방적인 처벌조치를 취한다면 미국 기업 대표가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이에 대한 답은 미중 양국 간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갈등에서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미국은 지식재산권에 관한 ‘슈퍼 301조’를 근거로 중국에 대해 ‘슈퍼 301’ 조사를 실행한 바 있었다. 이때 양국은 협상 끝에 중국이 한 발 물러나는 것으로 정리됐다. 이를 계기로 중국내 미국기업의 지식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한층 강화됐다. 또한 양국은 1992년, 1995년, 1996년에 세 차례에 걸쳐 지식재산권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당시 베이징 당국은 지식재산권 보호 및 강화를 약속하며 잇따라 <특허법>, <상표법>을 개정하고 <반(反)불공정경쟁법>등 관련 법률 법규를 제정했다. 중국의 싱크탱크이자 중국사회과학원 산하의 세계경제 및 정치연구소 니위에쥐(倪月菊) 연구원은 니혼게이자이와의 인터뷰에서 ‘301조사’ 과정은 사실상 중미 간 협상 과정의 일부라고 밝혔다. 그녀는 이번 ‘301조사’가 궁극적으로 협상을 통해 지식재산권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전에도 중국의 양보로 미국이 아무런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그녀는 중국의 지식재산권 관련 법률은 모두 미국 측의 ‘301조사’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중 미국기업의 자기 검열, 효과 있을까? 미국 해군사관학교 인터넷분쟁연구소 크리스 댐착(Chris Demchak) 소장은 5월 국회의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 청문회에서 “미국 과학기술분야의 대기업들은 중국의 방대한 시장 규모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중국으로부터 기대했던 ‘무료’ 진출권조차 받아보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그녀는 여러 사례를 들며 “중국은 통신분야에서 줄곧 강력한 통제정책을 펼쳐왔으며 지금은 첨단과학기술을 통해 인터넷 검열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은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통해 서방국가의 IT기업으로부터 손쉽게 가져온 것이다”라고 밝혔다. 일부 외국기업은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아예 자국정부에게 중국의 민주화 혹은 기타 정당한 요구를 포기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그녀는 “서방국가의 ‘자유파’ IT업계 기업인들이 민주국가에서는 제로 규칙을 호소하는 반면 중국 전제 정부하에서는 기술이전과 사생활 공개 등 무리한 요구를 조용히 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기업들은 민주주의의 반 제약력을 상실해나가면서 중국의 상업과 조직 모델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는 곧 명령체계가 불투명하며 구조가 복잡하고 자체 검열을 진행하는 기업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
미국무역대표부가 10월 10일 워싱턴에서 ‘301조사’ 공개 청문회를 처음으로 열었다. 미국 기업대표와 임원, 전문가들이 각각 서면 및 구두진술을 통해 이번 조사에 협조했다. 하지만 중국의 무역보복과 이에 따른 손실, 나아가 중미간 무역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해 진술서와 증거를 제출한 기업은 극소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301조사’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임 후 미국 기업을 대변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확고히 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 소식통은 트럼프가 11월 중국을 방문하기 전에 조사 결과가 발표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결국 중국이 기존의 방법대로 미국에 타협적 양보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재중 미국기업의 1/3 강제 기술이전 첫 청문회에서 미국기업의 업계 대표는 “중국이 자국 기업에게 미국기업의 기술을 이전하도록 규정해 재중 미국기업들이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청문회에 참가한 미중무역전국위원회는 애플, IBM, 아마존, 구글, 오라클 등 IT 대기업 200개가 포함된 조직이다. 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재중 미국기업의 1/3이 중국에서 기술이전을 요구 받았으며 일부는 “강제 기술이전을 하고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중국 무역행위 조사를 지지한다고 밝힌 미중무역전국위원회의 에린 에니스(Erin Ennis) 부위원장은 기업계는 미국 정부가 베이징과 양자간의 협상을 통해 재중 미국 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지식재산권 침해문제를 점진적으로 해결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녀는 미국의 일방적인 강경책으로 인한 무역전쟁 발발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고 덧붙였다. 상하이 주재 미국 상공회의소 역시 제출한 진술서를 통해 미 정부의 강경책이 중국의 경제개방을 촉진시키는 것은 지지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보복성 무역전쟁은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지식재산권침해를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미국 지식재산권 침해(Theft of American Intellectual)’가 많은 재중 미국기업을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거의 모든 기업이 핵심 기술특허 이전을 중국 정부에게 강요받았다고 전했다. 해당기관의 리차드 일링스(Richard Ellings) 대표는 중국이 가면을 쓴 채 외국기업의 중국 공장 건설을 동의하는 척하며 곧바로 기술이전을 강요해 핵심기술을 빼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파워와 레버리지’를 통해 중국의 이 같은 꼼수에 대응해야 한다고 그는 호소했다. 재중 미국기업 40%, 지식재산권 안전에 우려 주중 미국 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17년 <중국상무환경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약 40%의 기업이 데이터 안전과 지식재산권 유출, 중국의 인터넷 검열 제도에 대해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년간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 바 없었다. 54%의 재중 미국 기업은 다른 지역보다 중국의 지식재산권 유출 및 데이터 안전 위협이 더 크다고 밝혔다. 특히 R&D업계의 57%가 향후 2년의 중국정부 관리감독 환경에 대해 ‘부정적’ 또는 ’다소 부정적’이라고 응답했으며, ‘낙관적’ 또는 ‘다소 낙관적’ 이라고 대답한 기업은 10%에 불과했다. 900개의 재중 미국 기업을 회원으로 둔 주중 미국 상공회의소는 영향력 있는 주중 외국 상공회의소 중 하나이자 재중 미국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이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80% 이상의 재중 기업인들이 재중 외국기업이 과거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4곳 중 1곳이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생산설비를 이전시켰거나 계획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기업이 다음 투자 타깃을 중국에서 아시아의 다른 국가나 북미국가로 결정한 것이었다. 올해 4월 이 단체는 재중 미국기업이 수십 년 이래 가장 열악한 무역환경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조사 결과도 주중 미국 상공회의소의 보고서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미국무역대표부가 상반기에 발표한 2017년 <특별 301조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8년 연속 지식재산권 우선관찰 대상국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기업계에서 상업기밀 유출 문제는 갈수록 악화되고 심각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기밀유출은 주로 네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퇴사 직원이 메모리 장치를 이용한 유출, 중국과 외국기업의 합작을 통한 유출, 인터넷 해킹을 통한 유출, 상업기밀 소유자에게 ‘의무’를 이행하도록 요구해 중국 정부에 제출하지 않아도 될 정보를 제공하게 하는 것 등이 있었다. 미국 기업, 당당히 진실 말하고 조사에 협조해야 ...
미국에서 출간된 <벌거벗은 공산주의자: 공산주의를 폭로하고 자유를 회복하다>(The Naked Communist: Exposing Communism and Restoring Freedom)는 공산주의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해 그들의 음모를 밝혀낸 책이다. 초판이 출간된 1958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재판을 거듭해 총 200여만 부 판매됐으며 ‘미국 가치관의 시금석’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책의 저자 외에는 공산주의가 미국에 끼친 위협을 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당신도 이 책을 통해 공산주의를 경계하고 알게 될 것이며, 그래서 기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초대 국장을 지낸 존 에드거 후버 역시 저자의 노력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것이라고 했다. <벌거벗은 공산주의자>의 저자 클리온 스카우슨(W. Cleon Skousen)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북미를 포함 60개국에서 연설가‧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자유 원칙, 미국 헌법, 경제학, 고대역사 및 경전을 아우르는 역사‧법률 연구학자로서 캐나다의 헌법 개정에도 참여했고 대학교수, FBI 직원으로도 16년 근무했다. 그는 “지식과 이해는 국가의 자유를 유지하는 필수조건”이라고 말한다. 스카우슨이 <벌거벗은 공산주의자>를 쓴 것은 당시 ‘적색 공포’가 한창임에도 공산주의의 위협을 깊게 다룬 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미국인을 토론으로 이끌 책이 시급하다고 여겨, FBI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공산주의 관련 서적과 조약들을 수십 년간 연구, 이 선구적 저서를 발표했다. 그는 책에서 공산주의 선전 활동과 허위를 벗겨내 그들의 음모를 세부적으로 밝혔다. 독자가 공산주의의 내부 운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공산주의 기본 개념, 주장, 역사, 심지어 비밀 정복 시간표까지 수록했다. 또 ‘공산주의의 가장 은밀한 무기’ ‘공산주의자의 미래’ ‘공산주의 침투를 막는 방법’ ‘전쟁 없이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방법’ 등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에즈라 태프트 벤슨 전 농업장관은 “우리는 도덕기준을 옹호하지만 공산주의자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거부한다. 스카우슨은 책에서 ‘공산주의는 악(惡)은 없다며 사람들을 오도하고, 자기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밝혔다. 가장 저주받아야 할 이 교리를 진정 받아들이는 사람은 양심도 명예도 없다. 그들은 폭력, 계략, 배신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잠식하기 위한 45개 목표 <벌거벗은 공산주의자>는 공산당이 미국을 잠식하기 위해 계획한 45개 행동목표를 폭로했다. 1963년 1월 10일, 알버트 헐롱 플로리다주 하원의원은 국회 연설에서 이 목표를 읽으면서 공산주의의 잠재적 위협을 경고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거의 모든 행동목표가 이미 실현되고 있다. 일부 학자는 공산주의자들의 배치를 면밀히 살펴보면 자유주의파 엘리트들의 생각과 전략을 한층 깊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래는 45개 행동 목표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괄호 안은 저자가 쓴 것이 아니라 나중에 추가된 주석임) 목표 6. 모든 국가에 미국의 원조를 제공한다. 공산당 집권 여부는 상관하지 않는다. (몇 십 년 전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원조와 무역으로 전 세계 1억이 넘는 인구를 소멸시킬 수 있었다. 미국의 원조와 무역이 없었다면 ‘좌파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은 더욱 빨리 자멸하고 수백만 인구가 빈곤과 굶주림, 사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목표 7. 적색 중국을 인정하고, 중국의 UN 가입을 허용한다. 목표 12. 공산당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을 막는다. 목표 15. 미국의 1개 혹은 2개 정당을 장악한다. 목표 17. 학교와 교사협회를 통제해 교과서를 바꾸고 학교를 사회주의 사상과 공산주의 전파 교두보로 이용한다. 목표 18. 모든 학생 신문을 통제한다. 목표 20. 언론에 침투해 서평, 사설, 창작, 정책 결정자의 직위를 통제한다. ...
중국 국영기업 남방항공은 생체장기 수송용 루트를 개설해 500여 개의 생체장기를 공수했으며, 그 중에는 남방 신장(新疆)지역 지사도 협력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중국에서 급증하고 있는 장기 이식 수술 배후에는 반(反)인도주의의 참혹함이 숨어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외국 언론은 크게 의혹을 제기했다. 10월6일, ‘자유아시아(RFA)’ 방송에 따르면, 남방항공 신장 지사가 생체 장기를 공수한 것에 대해 ‘세계위구르대표대회’ 대변인 디리샤티는, “신장에서 실종된 위구르 사람이나 사라진 죄수들은 당국에 의해 장기를 강제 적출당하고 사망했다는 것을 위구르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아무도 나서서 증언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기의 신선도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체에서 적출한 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수송해야 하므로, 항공 회사가 수송용 특별 탑승 루트를 개설했다는 것은 장기의 반출 빈도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뜻한다. 디리샤티 대변인은 민간항공사가 이 일에 정식으로 참여한 것은, 단순한 수익 추구를 넘어서서, 중국 정부의 불법 장기적출을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당국이 적으로 지목한 사람이나 위구르족 학생들이 실종되는 현상이 아주 심각하지만, 당국의 엄한 통제로 외부세계는 신장지역 전체의 통계를 내기가 아주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국 고위층의 비리를 폭로하고 미국에 피신해 있는 중국인 부호 궈원구이(郭文貴)도 폭로 동영상에서 밝히기를 “저우융캉은 ‘장쩌민 등 공산당 상무위원들이 젊은이들의 장기로 목숨을 연장했는데 (상무위원)집집마다 몇 사람을 살해해 장기를 구했다’는 폭로를 한 바 있는데. 이런 장기 공급자 중 상당수는 신장의 젊은이들”이라고 말했다. 올 7월, 중국 관영언론 중신왕(中新网)은 ‘남방항공 신장 지사, 신장 아커수 공항. 우루무치 공항, 그리고 공중 관제 부서가 합동으로 생체 장기 세 점을 긴급 이송 했는데, 하나는 우루무치에, 두개는 항저우에 이송됐다고 보도했다. 남방항공이 인체장기를 수송하는 루트를 개설한 것은 작년이었다. 남방항공 신장 지사는 작년 7개월 동안 7건의 장기 수송을 완수했으며, 올해에는 생체 장기를 500점 넘게 수송했다고 밝혔다. 민간항공 담당부서의 공식 보도에 따르면, 장기 수송 루트는 아주 편벽한 지역인 이닝이나 카스 등 작은 지선 공항에도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사는 곳도 다르고 서로 아무런 접점도 없는 30여 명의 대학생들이 우한(武漢)에서 잇따라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이를 부인하고 있고 경찰은 실종 신고도 접수하지 않고 있다. 실종된 젊은이들은 ‘불법 장기매매의 피해자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9월 27일, 중국 인터넷에서는 ‘생각하면 무서운 미스터리 사건, 우한에서 30여 명 대학생 실종’이라는 기사가 게재됐다. 기사에는 2011년부터 우한시에서 32명의 대학생이 잇따라 실종됐고, 그들의 이름, 나이, 신장, 실종된 날, 당시 상황, 가족 연락처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실종자 가족은 아이 행방의 단서를 찾기 위해 이러한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하지만, 기사가 인터넷에 게재된 지 하루 만에 당국에 의해 삭제됐고, 관영 매체 신화망(新華網)은 ‘완전히 날조’라는 기사로 사건을 전면 부인했다. 동시에 인터넷에 기사를 올린 사람도 구속됐다. 그 후, 장시(江西)성 주장(九江)시에 거주하는 여성 예(葉) 모씨는 ‘우한의 대학생은 왜 증발했는가’라는 내용을 인터넷에 게시했으나 경찰 당국은 “세상을 혼란하게 하는 매우 나쁜 영향을 주는 글”이라며 내용을 삭제했다. 많은 실종자 가족이 “취재에 응하지 말라”는 당국의 경고에 입을 다물고 있지만, 500일 이상 스스로 아들을 찾아왔던 린사오칭(林少卿)은 취재에 응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린 씨는 대기원과의 인터뷰에서 인터넷에 게재된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이 사건은 날조도 아니고 루머도 아님을 입증할 수 있다고 했다. “관영 언론은 날조된 이야기라고 보도했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실종된 아이들을 찾아주지도 않으면서 우리를 방해한다. 상식적으로도 옳지 않다.” 또한, 아들이 실종됐다는 저우(周) 모씨도 대기원과 취재에 실종자 명단에 적혀 있는 것은 모두 사실이며, 실종자 가족도 서로 자주 연락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우 씨의 아들 차오싱(曹興 24)은 2014년 2월 14일 우한 대학 근처에서 행방불명 됐다. 린 씨에 따르면, 아들 린페이양(林飛陽 당시 20세)은 2015년 8월 말부터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에 유학했다. 같은 해 11월 24일, 아들이 아버지에게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자 어머니에게 전화해 “아빠는 괜찮아? 혹시 연행되진 않았지?”라고 아버지의 안부를 매우 걱정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많으니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안전에 주의하세요”라고 말한 것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어졌다.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자, 린 씨는 바로 허난(河南)성 뤄양(洛陽)시에서 모스크바로 갔다. 대학에 알아본 결과 보름 전부터 페이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현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페이양은 11월 26일 우한행 비행기에 탑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린 씨가 서둘러 우한 톈허(天河)국제 공항으로 달려가 공항 감시 카메라를 통해 배낭을 멘 아들이 공항 로비를 걸어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린 씨는 사방으로 아들을 찾아다녔다. 아들이 탔던 택시 운전사를 통해 우한시위원회 당 학교(중국 공산당 고급 간부 양성 기관)로 향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린 씨가 당 학교 근처의 감시 카메라를 통해 검은 옷차림의 아들이 당 학교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우한에 100만 개의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지만, 감시 영상의 녹화를 보려면 경찰이 사건을 접수한 인증서가 필요하다. 린 씨는 경찰에 사건 수사를 의뢰했지만 “취급할 수 없는 사건이며, 게다가 조사할 필요조차 없다고 결론 내렸다”는 답변만 들었다. 이때부터 아들을 찾기 위한 린 씨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린 씨는 자신의 차를 방송 차량으로 개조해 아들을 찾는 육성을 방송하며 전국 각지를 찾아 다녔다. 그 거리는 약 4만 ㎞에 달한다. 그는 정보제보를 받으면 즉시 현지에 달려갔고, 현상금도 10만 위안(약 1726만 원)에서 50만 위안(약 8635만 원)으로 늘렸다. 아들을 찾기 위해, 선전(深圳)에 있는 사업도 그만뒀고, 저축한 돈을 쓰면서 ‘반드시 찾겠다’고 다짐하며 매일 무작정 나서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해도 아들의 행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린 씨는 아들을 찾아다닌 지난 2년간 자신과 같은 처지의 가족이 다른 지역에도 많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게다가 그들의 자녀들도 모두 우한에서 행적이 끊겼으며, 대학생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것을 알았을 때, 린 씨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른 실종 대학생의 정보도 모으면서, 계속 다른 가족과 연락해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격려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 가족들은 실종 사건의 실마리를 찾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기만 하면 찾아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당국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에 체류하는 일본인의 자전거를 잃어버리면 찾아준다. 독일인의 가방을 잃어버린 경우도 찾아준다. 실종된 중국인의 아이도 찾아 달라!”라고 가족들은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
“이것은 미국을 보위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인류 문명을 위한 싸움이다.” 공산주의는 자유세계를 이끄는 핵심 국가인 미국을 괴멸시키기 위해 사면팔방과 안팎 모두에서 전방위 공세를 취해왔다. 이는 인류의 생사존망이 걸린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영어 다큐멘터리 <Agenda 2: Masters of Deceit>가 2015년 개봉됐다. 전작인 <Agenda:Grinding America Down>의 속편으로, 충분한 이론과 사실 증거를 바탕으로 심층조사 연구를 진행한 끝에 백여 년 간 공산주의가 미국과 세계를 전면통제하려는 정밀한 배치와 음모를 폭로해 그 진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또한 공산주의가 꾸민 각종 사기극들을 정조준해 낱낱이 해부했으며, 효과적인 반격 전술까지 제공했다. 다큐멘터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신의 편에 서서 원칙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편에 서서 위험에 빠지겠는가?"라는 대사를 통해 관객들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 미디어 평론가 테드 베이어(Ted Baehr)는 “<Agenda: Grinding America Down>은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진보주의자들이 미국을 탈취하려는 음모를 가장 투철하게 폭로한 뛰어난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한 미국인의 사명 커티스 바우어스는 하나의 사명을 짊어져왔다. 2008년, 아이다호 주 의원으로 재임하던 그는 1992년 열렸던 미국 공산당의 회의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미국 내부 침투 계획과 절차에 대해 논의했던 것을 떠올렸다. 바우어스는 당시 그들의 계획과 현재 사회상을 비교하고 크게 놀랐다. 공산주의자들이 성공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이 사건을 현지 신문에 기고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각계각층으로부터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으며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적금을 털어 2년 동안 연구, 조사, 방문을 통해 다큐멘터리 <Agenda: Grinding America Down>를 제작했다. <Agenda: Grinding America Down>는 개봉 직후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상금이 10만 달러에 달하는 영화제의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후 2년 반 동안 이 영화는 전미 지역에서 매주 평균 천여 차례 상영되면서 누적 관객만 수백만 명에 이르렀다. 이를 본 관객들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음을 토로했다. 속편에서 바우어스는 순회 상영 도중 벌어진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미네소타주에 있는 한 커뮤니티 컬리지(Community Colleges)의 모 티파티 정기 모임에서 <Grinding America Down>를 상영한 직후 바우어스는 관객과의 시간을 가졌다. 이때 한 남자가 일어나서 “당신의 연구에 경의를 표합니다. 각종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조가 미국에 미친 영향을 발견했네요. 존경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저는 이 대학교의 교수인 동시에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당신들의 다음 세대를 우리가 이미 장악했기 때문이죠”라고 덧붙였다. 이 남자가 자리를 떠난 후 앞줄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은 “저 사람이 어떻게 우리 학교에 있을 수 있죠”라고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바우어스는 “그는 미국의 모든 학교에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이를 통해 바우어스는 그의 사명이 결코 완수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공산주의자들은 각종 사회적 ‘문제’를 빌미로 위기를 고조시켜 미국을 파괴하고 있었다. 그는 적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필요했다. ‘지기지피(知己知彼)’이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기 때문이었다. <Agenda>의 속편 제2부에서는 공산주의가 일찍이 백 년 전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운 끝에 전방위로 서구 사회, 특히 미국의 정치·경제·종교·교육 등의 방면으로 침투한 사실을 계속해서 폭로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인들의 생활과 대대로 관련된 경제, 교육 정책과 전 세계적으로 추진되는 환경보호방침 등이 사실 공산주의자들의 ‘목마(木马)’ 사기극이며 미국이라는 최종 목표를 무너뜨리기 위한 연막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눈앞으로 다가온 위기 영화에서 바우어스는 보수 성향 전문가들과 학자, 관료들을 인터뷰했는데 그중 어떤 사람은 공산국가 출신이기도 했다. 이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공산주의의 사악한 본질을 상세히 논술하고 공산주의자들의 침투와 사기 수단을 분석했다. 여기에 따른 논증은 가히 놀라웠다. 전(前) 백악관 경제학자이자 작가 겸 연구원인 짐 심슨(Jim Simpson)은 “그것이 추악한 머리를 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는 줄곧 전 세계의 공산주의를 막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쿠바에서 자라 미국 시민이자 영화 제작자가 된 어거스틴 블라스케스(Augustin Blazquez)은 미국이 공산주의 국가로 변질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나는 쿠바에서 자랐는데 쿠바가 공산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당시, 공산당이 쿠바를 점령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경고했지만, 우리는 모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으며, 적어도 여기에서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현재 미국에서 되풀이되고 있어 매우 불안하다. 나는 결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좀더 지나면 미국인들이 무엇을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 과거에는 익숙했던 그것들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자신이 집에 있다고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집이 있어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그들은 기어코 찾아내 팔을 잡고 당신의 모든 것을 가져갈 것이다. 당신의 생활 방식까지 말이다. 결국 오로지 국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소련 출신인 파벨 스트로일로프(Pavel Stroilov)는 2003년 국외로 망명해 영국으로부터 정치적 비호를 받았다. <사막폭풍의 배후(Behind the Desert Storm)>의 작가이기도 한 그는 “냉전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또한 서방(西方)이 결코 승리를 거둔 것도 아니다. 냉전은 두 집단 간 군사적 대항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전쟁이다. 유토피아, 강권,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자유주의, 시장경제 간 대항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스트로일로프는 “이데올로기 전쟁의 종결이나 한 이데올로기를 제거하는 방법은 역사에 선례가 남아 있다. 나치에 대한 심판이 그것이다. 이십 년 전 뉘른베르크식의 재판과 같은 방법으로 공산주의를 심판해 냉전을 종결시켜야 했다. 모든 죄악을 폭로하고 모든 문서를 공개해 역사적인 심판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심판은 일어나지 않았다.” 뉴질랜드 정치활동가 겸 연설가인 트레버 루돈(Trevor Loudon)은 몇 년 전 뉴질랜드 공산당 내부에서 활동했던 뉴질랜드인을 인터뷰한 바 있었다. 이 뉴질랜드인은 1983년 소련에 있는 레닌 대학으로 보내져 훈련을 받았다. 레닌 대학은 세계 각지에서 온 공산주의자들을 배양하는 곳으로 재학생만 6,000명에 달했다. 어떤 학생은 7년 동안 공부하려고 했다. 루돈은 “학교는 그들에게 서방(西方)을 향한 대문을 활짝 열어 적대적인 상황을 완화시키는 것이 공산주의 발전에 더욱 이롭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서구를 향해 문을 열고 더 이상 공산주의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며 그들의 시스템을 바꾸려 했다.”라고 말했다. G. 에드워드 그리핀(G. Edward Griffin)은 미국 영화 제작자 겸 연설가이다. 그는 공산주의자는 끊임없이 면모를 바꾸면서 세계를 미혹시킨다고 지적했다. 또 “레닌이 제기한 한 가지 책략은 바로 패배당한 척 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는 훗날 꽤 듣기 좋은 ‘레닌주의’라는 말로 바뀌었고, ‘우호’와 ‘적대’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위장했다. 단지 상대방에게 안전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모자에 쓰인 ‘공산당 정치위원’이라는 글자를 ‘기업가’, ‘자본가’, ‘사회민주 인사’로 고쳤을 뿐이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 쓰고 있는 같은 모자로, ‘레닌주의자’임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
2001년 9월 11일 테러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기리는 추도행사가 워싱턴에서 열렸다. 당시 2997명이 사망했고 6000명이 넘게 부상당했다. 테러리스트들이 아메리칸 에어라인 11편 기와 175편 기를 납치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충돌시켰고 무역센터는 파괴됐다. 워싱턴에서는 세 번째 비행기 77편 기가 납치돼 펜타곤에 추락했다. 93편 기인 네 번째 비행기는 워싱턴을 향해 날아갔으나 승객들의 강력한 대항으로 펜실베이니아에 추락했다. "그날 세계가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모두 변했다. 우리의 눈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악의 깊이를 볼 수 있었다"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다. "그러나 그 어둠의 시간에 우리 모두는 새로운 목적으로 함께 모였다. 평상시 우리의 유대는 강하게 느끼지 못했지만 당시 우리의 차이점은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미국은 굴복하지 않는다. 우리는 약하지 않다. 우리는 언제든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여기 이 자리에서 우리는 비장한 마음으로 우리의 생명과 자유를 지켜 온 모든 영웅을 기리며, 함께 일하고 함께 싸워 모든 적과 우리 앞에 놓인 장애를 돌파하겠다고 맹세한다”고 밝혔다. 추도식은 백악관 잔디에서 거행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영부인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종이 울리자 머리 숙여 묵념했고 악대가 추도 나팔을 연주하자 손을 가슴에 올리며 추도의 뜻을 표했다. 그들이 떠날 때 해병대가 트럼프에게 거수경례를 하자 그는 경례를 받고 이어서 열리는 국방부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발했다. 거기서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와 합참의장 조세프 던포드와 합류했다. 트럼프는 펜타곤에서 희생된 사람을 위한 화환에 손을 올리고 미 공군 군종감(군목) 돈디 코스틴 소장이 개회 기도를 하기 전 잠시 침묵했다. 그때 던포드가 단상에 올라왔다. “테러리스트는 공격 목표를 의도적으로 그렇게 선택했다. 그들은 우리 삶의 방식과 가치를 반영하는 상징을 공격했다. 이런 공격으로 우리의 가치를 향한 노력과 헌신을 흔들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 판단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으며, 그 비극은 우리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들었다.” 이어서 매티스는 “2001년 9월 11일 미국인들 사이에는 영웅주의와 동정심이 끝이 없었다”면서 “각계각층의 여러 배경을 가진 애국자들이 재빠르게 용기와 동정심으로 반응했다. 공격의 여파로 우리의 봉사자와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로 뭉쳤다”고 발언했다. 매티스는 “거짓 종교의 옷을 걸친 미치광이들이 우리를 다치게 함으로써 우리를 겁먹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 미국인들은 솜사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조류를 따라 표류하는 해초가 아니다. 우리는 적에게 겁을 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매티스는 미국 국민을 향해 “당신의 군대는 이 나라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은 또 민주주의 틀 안에서 행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계속 그렇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서 트럼프가 연단으로 올라와 허리케인 어마(Irma)와 하비(Harvey)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허리케인의 영향을 받는 모든 지역의 사람들에게 정부의 지원이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함께 협력한다. 우리는 하나의 나라이며, 우리는 곤란을 만나면 그 어느 때보다 더 가까워지고, 더 강해지고, 더 단단해진다.” 트럼프는 “펜타곤은 나라의 통일과 힘을 상징하는 기념비이며 지구상에서 70년 넘게 미국의 힘을 상징해 왔다. 위대한 힘이 이 강당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여기 자리한 사람들의 믿기 힘든 기질 때문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깃발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세계 여러 곳에 있는 우리의 용감한 병사들을 지원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는 “오늘 우리가 이 신성한 땅에 서있을 때, 미국이 단결한다면 지구상의 어떤 힘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변치 않을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중국서 진행되는 국제 불법무역 내막(상) 중국과 홍콩, 인도는 모조품과 불법 복제물을 수출하는 3대 국가이다. 현재 중국은 지적 재산권에 대한 입법과 법 집행 능력을 갖추지 못한 데 비해 뛰어난 생산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매년 전 세계의 2/3~3/4 가량의 가짜 상품이 중국에서 제조된다. 저비용으로 제작한 모조품을 통해 큰 이익을 얻는 동시에 처벌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조품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데 모조품과 불법 복제물 무역 거래 규모는 매년 미화 9,200억~1조 1,300억 달러에 달한다. 국제 및 국내 거래와 디지털을 통한 불법 복제가 대표적인 유통 방법이다. 모조품 생산이 극심한 분야에는 전자 제품, 의류 및 신발, 컴퓨터 및 관련 액세서리, 화장품, 전기 기기, 식품, 음료 등이 꼽힌다. 중국의 모조품 제조는 특정 상품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모조 상품 산업으로까지 파생했다. 세관의 적발을 피하기 위해 밀반입하는 방식 역시 최근 몇 년 간 전문화, 집단화됐다. 모조품은 전 세계 공급 라인을 통해 분업 제작된다. 생산, 포장, 조립이 각기 다른 나라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또 복잡한 화물 운송 노선을 사용해 ‘신분 세탁’도 비일비재하다. 모조품 무역은 정품 제조업자와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을 끼친다. 또한 다국적 범죄 조직의 돈 세탁이나 자금 제공의 수단으로 사용될 위험이 높다. 중국 당국은 모조품과 불법 복제물에 대한 단속을 약속했다. 하지만 불법 복제물의 경우 수만 명의 생업이 걸린 ‘정당한’ 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자칫 잘못하면 대량 실업과 경제적 타격을 야기할 수 있다. 도덕을 상실한 중국 사회는 모조품 사업에 그 모습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가짜 약품 범람, 테러보다 치명적 가짜 약은 모조품 무역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상품이다. 전 세계 가짜 약품 산업 거래액은 미화 700~2,000억 달러에 달하며, 전체 모조품 무역의 1/4에 이른다. 가장 흔한 가짜 약품에는 진통제, 소염제, 결핵약, 남성 성 기능 강화제, 항생제 및 위장약 등이 있다. 이것들은 주로 개발도상국으로 유통되며 시장의 10~30%를 잠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진국의 경우는 1% 정도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가짜 약품 생산국 중 하나로, 면허를 취득하지 못한 화학 회사뿐 아니라 상장 회사들까지 버젓이 생산하고 있다. 정품과 모조품을 동시에 생산해 비용을 절감하고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12년 아프리카 앙골라에서는 수많은 환자들이 중국의 말라리아 치료제 140만 포를 복용한 뒤 사망하기도 했다. 2012년 미국연방정부가 중국인 밀수 사건의 범죄 조직을 적발한 적이 있었다. 그 조직의 총책은 가짜 화장품이 피부와 신체에 유해하냐는 질문에 “장사를 하는데 그런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 양심을 따지려면 절에 가서 중을 해야지…” 라고 답했다. 한 보고에 따르면, 가짜 약품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100만 명에 달한다. 국제 형사경찰 조직은 가짜 약품으로 인한 위험이 테러리즘보다 크다고 경고했다. 과거 40년 동안 테러로 인한 사망자는 6만 5천 명이었지만 가짜 약품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중국에서만 한 해 20만 명에 이르렀다. 가짜 약품 무역에 종사하는 집단들은 대부분 다른 국제 무역 범죄와도 연루되어 있다. 가짜 약품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중개와 조달 과정이기 때문에 조직적인 범죄집단은 대규모의 신속한 돈 세탁이 가능하다고 유엔 마약 범죄 사무실(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 UNODC)은 지적했다. 야생 동식물 밀수, 중국 수요 감당 못해 야생 동식물 밀수는 중국이 유일하게 해외로 ‘수출’하지 않는 국제 범죄이지만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니다. 코뿔소 뿔, 상아, 고가 목재와 같은 밀수품이 여전히 해외로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전 세계 목재의 주요 수입국인 동시에 불법 목재를 수출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환경 조사 기관의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이 2000~2013년 동안 수입한 홍목은 임야 면적으로 환산 시 총 350만 평방미터에 이르며, 미화로는 약 24억 달러에 달한다. 지금 중국에서는 전례 없는 반부패 운동이 진행 중이지만 이 같은 수요는 여전했다. 밀수 행위는 생산지의 환경, 생태 및 인문 환경 파괴를 묵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중국에서 수입하는 미가공 목재 제품의 10%가량은 불법 목재로 추정된다. 중국은 표면적으로 불법 무역을 지지하지 않지만, 불법 벌목된 상당한 양의 목재는 아무런 제재 없이 유통되는 실정이다. 중국을 포함한 10대 묵재 수입국은 러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라오스 및 파푸아뉴기니 등인데, 이들 국가에서도 불법 벌목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시대주간(時代週刊)>은 중국의 홍목 가구 수요 폭증이 태국의 삼림을 불법 벌목꾼과 삼림 보호자 간의 전쟁터로 전락시켰다고 밝혔다. 이 보도에 따르면, 벌목공은 미화 17~34 달러로 10톤의 서아프리카 홍목을 판매한다. 중개 과정에서 가격은 미화 4,900~6,550달러로 뛰게 되고, 중국 업자에게 판매될 때에는 미화 9,800~11,500달러로 거래된다. 현지인들이 이 같은 행위를 자원 약탈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법 벌목 거래는 코카인 등과 같은 마약과 함께 진행되기도 하는데, 돈 세탁은 중국의 은행 시스템을 통해 최종적으로 이뤄진다. 해외 불법 채광으로 현지인들과 충돌 빈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