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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고향 달이 더 밝다지만,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수백만 명의 중국 국민들이 산과 고개를 넘고 바다를 건너 고향과 작별하고 먼 곳으로 떠났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망명자들은 그들의 조국이 적색(紅色·공산주의와 혁명을 비유) 통치하의 기이한 흑색(黑色·비관적이고 답답하고 침통함을 비유) 모습이지만, 그들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바다 건너 있는 자유 1990년 2월 말의 어느 날 밤, 우런화(吳仁華)가 주하이(珠海)에서 헤엄쳐 마카오로 건너갔다. 섭씨 7도의 기온에서 파도와 4시간 동안 싸운 그가 육지에 다다랐을 때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그 후 홍콩의 참새작전(黃雀行動·반체제 인사 구출작전) 멤버들과 연락이 닿은 그는 어선 지하 창고에 몸을 숨겨 홍콩으로 넘어갔다. 같은 해 7월, 베이징 정법대 전임강사였던 그는 정치적 난민 신분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우런화가 망명을 택한 이유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붙잡힌 왕쥔타오(王軍濤)와 천쯔밍(陳子明) 등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1989년 6월 3일 밤, 그는 중공군의 민간인 학살을 직접 목격했다. 다음 날인 4일 새벽, 그는 학생 시신 앞에서 ‘영원히 잊지 않겠다’며 비분에 차서 맹세했다. 29년 동안 ‘톈안먼 사건’ 희생자와 계엄군 관련 자료를 모으는 데 전념해온 그는 ‘톈안먼 사건’ 역사 연구의 권위자가 됐다. 일찍이 우런화가 망명하기 전인 1950~80년대에도 100만 명이 넘는 중국인이 기근과 가난,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해 걸어서, 혹은 헤엄치거나 배를 타고 홍콩으로 밀입국했다. 이는 냉전시대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에 걸친 집단 망명 사건으로, 역사는 이를 ‘대도항(大逃港·많은 사람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홍콩으로 도망간 사건)’이라 한다. 홍콩으로 밀입국한 자는 대부분 농민이었으나, 일부 도시 주민, 학생, 지식 청년, 노동자, 심지어 군인들도 포함됐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밀입국하는 과정에서 물에 빠져 죽고 상어에 물려 죽고 산에서 떨어져 죽고 병사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 1967년 1월 15일 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중앙음악학원 초대 원장인 마쓰충(馬思聰) 씨 일가족 네 명도 농민으로 변장해 5만 홍콩달러(약 742만 원)를 주고 홍콩으로 밀입국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마쓰충은 문화혁명 기간의 모욕을 견디지 못해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했다. 그러나 그가 떠난 뒤 중국에 남아있던 친척과 친구 수십 명이 연좌됐다. 그의 둘째 형은 투신자살했으며, 그의 장모와 조카딸 및 조리사는 박해를 받다 죽었다. 중국 당국이 그에게 씌운 죄명은 ‘반역죄’였다. 마쓰충은 ‘나는 왜 중국에서 도망쳤나? ‘문화대혁명’의 끔찍한 진실에 대해’라는 제하의 글에서 “문화대혁명은 중국의 지식인들을 파멸시키고 있다. 지난해 여름과 가을에 일어난 일들은 나를 완전히 절망에 빠뜨렸고, 나와 내 가족을 도망자로 만들어 사방을 떠도는 ‘배고픈 유령’이 되게 했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망명자들 2012년 4월 6일, 왕단(王丹), 후핑(胡平), 왕쥔타오, 우얼카이시(吾爾開希), 우런화, 샹샤오지(項小吉) 등, 해외로 망명한 ‘톈안먼 학생운동’ 주역들은 ‘우리는 중국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며, 이를 중국 당국에 공개적으로 호소한다’는 제하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1989년 민주화운동에 참가했다가 해외로 망명한 중국인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여권 연장이 거부되거나 여권이 아예 정지되거나 입국을 거부당했다면서 “귀국할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호소했다. 여류작가 모리화(莫莉花)는 원래 후난(湖南) 사오양(邵陽) 사범전문대학 교수였으나, ‘톈안먼 사태’ 때 학생운동을 지지했다가 ‘반(反)혁명선전선동죄’라는 죄명으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녀는 1992년 홍콩으로 망명한 뒤 스웨덴에 체류하고 있다. 2009년, 그녀의 남편 푸쩡민(傅正明)은 인터뷰에서, 그들 부부는 한 번도 중국에 가지 않았다고 밝히며 “물론 우리도 우리 고국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고 싶다. 하지만 다른 친구나 사람들이 중국으로 돌아간 뒤 국가안전부에 미행당하거나 심문당하는 상황을 많이 봤다. 우리는 매우 실망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존엄성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중국이 진정으로 진보하고 자유로워져야 우리가 존엄하게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불가능한 일을 해낸 천광청 2012년 4월 22일 깊은 밤, 가택연금을 당한 시각장애 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이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그는 홀로 담장 8개를 넘고 울퉁불퉁한 밭고랑 10여 개를 건너서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을 만났다. 그 후 그는 여러 네티즌의 도움을 받아 여기저기를 전전하면서 경찰 수백 명과 촌락위원회의 감시를 따돌리고 4월 26일 마침내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에 들어갔다. 이어 5월 19일, 천광청(陳光誠) 일가족도 미국으로 떠났다. 산둥(山東)성 린이(臨沂)시 이난(沂南)현 솽허우(雙堠)진 둥스구(東師古)촌 출신의 천광청은 독학으로 습득한 법률 지식으로 현지 농민들의 인권 보호에 앞장섰으며, ‘맨발의 변호사’로 유명했다. 2005년, 천광청은 린이시가 강제로 산아제한을 하고 낙태를 불법으로 시행한 사실을 폭로했다가 구타와 구금을 당했다. 2006년 4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2010년 9월 출소한 뒤에도 가택연금을 당했다. 현지 정부는 천광청 문제가 ‘적대적 모순’에 속한다고 했다. 천광천의 집에는 CCTV, 휴대전화 수신 차단기가 설치됐고, 그와 그의 아내에게는 외출 금지 조치가 떨어졌다. 또한 수십 명이 그의 집 주변을 24시간 교대로 지켰고, 외부인 출입도 금지됐다. 생활용품은 그의 어머니만이 가져다줄 수 있었고, 이웃들이 도와주면 그 즉시 경고나 위협을 받았다. 이 기간에 그를 찾아온 국내외 인사들도 여러 차례 저지, 구타, 모욕, 약탈을 당했고 강제송환되기도 했다. 2015년 6월, 천광청은 홍콩 시민들에게 “국민을 노예로 삼는 정권은 없는 것이 낫다. 우리는 이미 중국 공산당에 여러 해 동안 속아왔고 그들의 속임수를 직접 경험했다. 그들에 대한 믿음의 결과는 언제나 우리를 우롱했다. 홍콩 시민과 각성한 본토 민중들이 손잡고 노력한다면, 우리의 권리와 자유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나는 어째서 이런 나라에서 태어났을까? 2016년 10월, 25살의 후베이(湖北) 여성 장롄쟈오(蒋炼娇)가 중국에서 탈출했다. 유년시절과 청소년기, 그리고 청년기까지 그녀는 줄곧 힘들고 고생스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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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요리(흔히 ‘중화요리’라 불린다)는 다채롭기 그지없다. ‘중국요리 5품(색, 향, 맛, 의미, 형태)’의 특색이 남에서 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식탁 위에 성대하게 펼쳐졌다. 유명한 ‘동파육(東坡肉)’ ‘사자두(獅子頭)’ ‘궁바우지딩(宮保雞丁)’ ‘만한전석(滿漢全席)’ ‘봉황정상(龍鳳呈祥)’ 외에도 홍루몽에 나오는 ‘우유복령상(牛乳茯苓霜)’ 등 산해진미 배후에는 모두 깊이 연구할 것이 있고 스토리가 있다.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말이 있다. 수천 년을 이어온 중국의 음식문화는 넓고 깊다. 식자재 선택에서 가공, 요리, 조리기구는 물론 보건양생과 식사예절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 식사 분위기와 미적 정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에서 풍부하고 독특한 내용이 있다. 여기에는 오래된 지혜와 깜짝 놀랄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바로 이렇게 깊이 있는 내포 때문에 중국은 각지의 일반 요리와 궁정의 대연회를 범상치 않게 만들었고 직간접적으로 아시아 및 세계 음식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국 전통 음식문화의 이론과 철학 1. 천인합일(天人合一) 천인합일 사상이 중국 전통 음식문화에 배어 있다. 음식을 만들고 먹음에 계절을 거스르지 않고 기후에 순응해 계절에 맞지 않는 음식을 멀리했다. 주나라 시대에는 궁중에 식의(食醫)가 있어 음식의 맛은 물론 온도와 분량 등을 관장했는데 지금으로 치면 영양사에 해당한다. <주례·천관(天官)·식의(食醫)>에서는 “무릇 밥은 봄기운처럼 따뜻하게, 국은 여름 기운처럼 따끈하게, 장(醬)은 가을 기운처럼 서늘하게, 음료는 겨울 기운처럼 차갑게 한다. 무릇 조미(調味)는 봄에는 신맛을, 여름에는 쓴맛을, 가을에는 매운맛을, 겨울에는 짠맛을 돋우는데, 맛의 조화는 단맛으로 맞춘다”고 했다. 즉 음식을 요리할 때 사계절의 기후를 보며 오미(五味)도 절기에 따라 조절해야 한다. 2. 의식동원(醫食同源) “약으로 보(補)하는 것은 음식으로 보하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음식과 약은 하나로, 사실 그 근원 역시 천인합일이다. 곡물과 채소와 과일이 생장하는 것은 본래 대자연의 조화로서 사람을 위해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 전통 의학과 농업은 음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황제내경>에서는 “오곡(다섯 가지 곡식)으로 기르고, 오과(5가지 과일)로 도우며, 오축(5가지 가축)으로 더하고, 오채(5가지 채소)로 채워 기(氣)와 영양을 함께 섭취함으로써 정기를 보한다”고 했다. 이 이치를 두고 청나라 때 명의 서대춘(徐大椿)은 <용약여용병론(用药如用兵论>에서 “성인이 백성의 생명을 유지할 방도를 온전히 보호했다”고 평했다. 한편 당나라의 명의 손사막이 지은 <천금요방(千金要方)>의 제1권은 ‘식치(食治)’다. 즉 음식으로 치료하는 분야를 따로 다뤘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는 약재 이외에도 300여 가지 일상 음식의 치료 효과를 기록했고 아울러 다양한 약선(藥膳) 처방을 제시했다. 3. 중화의 미(中和之美) ‘중화의 미(中和之美)’란 중국 전통문화에서 추구하는 미적 표준이다. 즉, 적절하고 평온하고 균형 잡히고 조화로우며, 진하지도 않고 옅지도 않으며, 강(剛)하지도 않고 유(柔)하지도 않은, 딱 알맞은 경지를 말한다. 요리를 잘하는 것 역시 각종 식재료와 조미료를 균형을 맞춰 조리하는 데 있으며 최종적으로 좋은 맛은 다양한 요소를 적절히 배합한 결과다. 춘추시대 사상가 안자(晏子)는 고깃국을 끓이는 것으로 조화를 해석했다. “조화(和)는 국을 끓이는 것과 같다. 불, 물, 식초, 젓갈, 소금, 매실로 어육(魚肉)을 조리하는데, 장작으로 불을 지펴 끓인다. 재부(宰夫·궁중의 요리사)가 부족한 것은 채우고 지나친 것은 덜어내 조화를 맞추면 군자가 이를 먹고 마음이 화평해진다.” 《좌전·소공20년》에 수록된 내용이다. 4. 음식과 치국(治國) 노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治大国,若烹小鲜)”고 했다. 이렇듯 ‘치국(治國)의 도(道)’를 요리하는 것에 비유한 고대 선현들의 견해는 가히 독창적이다. 《상서(尙書)·열명하(說命下)》에서 “국을 맛있게 끓이려면 소금과 매실을 잘 써라(若作和羮,尔惟盐梅)”고 했다. 이는 소금과 식초만 잘 써도 국을 맛있게 끓일 수 있다는 말인데, 치국의 도에 비유한 말이다. 후대의 사람들이 노자의 ‘작은 생선’ 논리에는 견해를 달리할 수 있지만, 재료를 적절히 사용하고 불을 잘 조절하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은 모두 동의한다. 소금은 짠맛을 띠고 매실은 신맛을 띠는데, 이 두 가지는 마치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현명한 인재와 같다. 임금이 현명한 자를 등용하면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은 편안해진다. 안자는 군신관계 또한 국을 끓이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신하는 임금이 옳다고 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일이 바르게 되고, 임금이 아니라고 해도 옳은 것은 옳다고 해야 일이 잘못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정사가 평화롭고 예에 어긋나지 않게 되고 백성은 다투는 마음이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역시 잘 끓인 국은 오미가 갖추어져 평온하다. 삼가 신명께 올리니 다툼이 없게 된다”고 했다. 5. 공자의 ‘식도(食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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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단(天壇)은 하늘과 서로 연계돼 있다. 기나긴 통로를 지나 남에서 북으로 가다 보면 푸르른 소나무와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가운데 높고 아득한 하늘을 느끼며 하늘의 ‘지고무상’함을 느낄 수 있다. 천단은 베이징성 남쪽에 위치한 거대한 정원으로, 명청(明靑) 두 왕조에서 역대 제왕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오곡의 풍요를 기원하던 장소다. 일설에 따르면 프랑스의 한 건축 전문가가 이곳을 둘러본 후, 마천루 빌딩도 천단공원의 기년전(祈年殿)과 같은 높고 크고 심오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예술 수준 역시 기년전에 못 미친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하늘과 제천(祭天) 하늘은 중국 전통 신앙 체계의 핵심 개념 중 하나다. 설문해자에서는 ‘천’(天)은 ‘지고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천은 ‘지(地)’의 상대개념으로 지칭할 수도 있고 광의의 대자연, 우주를 지칭할 수도 있다. 또 모든 것을 통치하는 최고의 신, 즉 황천(皇天), 호천(昊天), 황천상제(上帝), 호천상제(上帝) 등을 지칭하기도 한다. 창천(苍天), 상창(上苍), 노천야(老天爷) 등의 말이 바로 이런 의미를 지닌다. 고대 중국인들은 ‘천인합일’의 우주관을 지녔고 ‘하늘의 뜻’에 순종했다. 황제도 스스로를 ‘천자’로 칭하며 “하늘을 받들어 운을 이어받는다(奉天承運)”고 했다. “하늘에 눈이 있다”거나 “나쁜 일을 저지르면 천벌을 받는다”는 말도 모두 상천(上天)에 대한 겸손과 순응을 나타낸 것이다. 화하(華夏‧중국을 일컫는 고대 명칭, 즉 ‘중화’) 민족은 상고시대부터 이미 제천(하늘에 올리는 제사)활동을 거행했다. 서주(西周) 시기에 천자가 직접 상제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천의식이 확립됐고 백성들은 조상을 통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상제가 덕행이 있는 사람에게 복을 내렸다. 역대 제왕들은 모두 천지(天地)에 올리는 제사를 아주 중시했으며, 제사 올리는 건축은 도성 건설에서도 가장 막대한 인력과 재력, 그리고 최고의 기술을 투입했다. 고대 황제는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목욕재계를 했고 제사를 지낼 때는 황제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예배하고 제물을 올려 하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순조로운 날씨로 풍년이 들길 기원했다. 천단과 하늘 천단의 면적은 273만m²로, 현재 중국에서 최대 규모이자 최고 등급의 고대 제사 건축군(群)이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를 거치며 총 22분의 황제가 이곳에서 제사를 올렸다. 천단이 처음 건축된 것은 영락 18년(1420년)이고 청나라 건륭제와 광서제 시기에 중건됐다. 천단은 내단과 외단으로 나뉘는데 ‘回’ 자 모양을 띤다. 주요 건축은 모두 내단에 집중돼 있다. 내단은 또 남북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북쪽의 기곡단은 봄가을에 풍년을 기원할 때 사용했고, 남쪽의 환구단(圜丘壇)은 동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다. 두 단은 모두 남북축선(南北軸線) 위에 있으며 그 사이에 땅을 높여서 가운데 통로(甬道)를 만들었는데 단폐교(丹陛橋)로 연결돼 있다. 천단 기곡단(祈谷壇)의 조감 | 에포크타임스내단의 4대 건축은 기곡단, 환구단, 재궁(齋宫‧황제가 제사를 지내기 전에 재계하는 장소) 및 신악서(神樂署‧제사에 사용하는 춤과 음악을 관장하는 곳)다. 모두 92개의 고건축이 있는데 여기에는 기년전, 황간전, 환구, 황궁우, 무량전, 장랑, 쌍환만수정, 회음벽, 삼음석, 칠성석 등의 여러 가지 명승고적이 포함돼 있다. 1998년 11월, 천단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세계유산위원회의 평가에 따르면 천단은 전체적인 배치뿐 아니라 단일 건축물에서도 모두 천지간의 관계를 반영하며 이 관계는 중국 고대의 우주관 중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언급했다. 동시에 이 건축물들은 또 제왕과 장상(將相)이 이 관계 중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역할을 체현하고 있다. 웅장한 건축, 뛰어난 성취 천단은 배치가 엄밀하고 설계가 독특해서 광활하고 아득히 높은 하늘을 두드러지게 한다. 원내에서 웅장한 기세의 건축물과 빽빽한 거목이 어우러져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천단의 건축 특색은 고대의 철학, 역사, 수학, 역학, 미학, 화성학, 생태학을 한데 모았으며 중국 전통문화의 사상과 내포를 충분히 체현하고 있다. 음양, 오행, 천상, 존비(尊卑) 질서 등이 모두 그 속에 있다. 우선 담벽의 형상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남쪽 담장의 모서리는 모두 직각인 반면 북쪽 담장은 원형을 이뤄 천원지방을 상징하는데 흔히 천지장(天地墻‧천지의 벽)이라 불린다. 단(壇) 내부의 주요 건축물은 대부분 푸른색 유리 기와를 사용해 하늘의 색을 상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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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이 말하는 외계인 미국 IT전문가 샤를 홀(Charles Hall)은 ‘외계인과의 접촉’ 3부작을 집필했다. 책은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네바다주에서 진행된 넬리스 공군기지(Nellis Air Force Base)과 ‘톨 화이트’의 접촉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홀은 “외계인이 미 공군 방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미공군과 협력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홀은 “넬리스 공군기지의 기상 관측원이던 1964년, 공군 측과 인간 형태의 크고 하얀 외계인 무리가 접촉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들의 비행선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날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많은 사람이 해당 공군기지에서 크고 하얀 외계인을 보거나 접촉을 한 적이 있다”며 “당신이 그 외계인을 보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귀신을 본 건지, 천사를 본 건지, 꿈을 꾸는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동영상: 외계인에 대해 말하고 있는 샤를 홀 2014년 8월에 사망한 미국 항공우주 과학자 보이드 부시맨(Boyd Bushman)은 오랜 기간 동안 베일에 가려진 ‘51구역(Area 51)’을 전담한 엔지니어였다. 임종 직전 부시맨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외계인이 미군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 사업이 51구역에서 비밀리에 진행됐다. 나도 그 사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51구역에서는 18명의 외계인이 미국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으며 미국 시민권도 얻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부시맨은 비행물체와 외계인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퀸툼니아(Quintumnia)’에서 온 외계인들은 키가 130~150cm정도이고 긴 손가락과 갈퀴가 달린 발가락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동영상: 외계인에 대해 인터뷰 하는 미국 과학자 보이드 부시맨 ◇미국 전 국방부장관의 암시 12월 18일 루이스 엘리존도(Luis Elizondo) 미국 전 국방부장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증거들이 외계인의 지구 방문을 입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 “많은 증거들이 지구상에 우리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정황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엘리존도는 펜타곤이 추진한 ‘항공위협우선식별계획(AATIP)’을 주도했다. UFO 조사를 주요 임무로 선정한 이 계획은 당시 상원 원내대표였던 해리 리드(Harry Reid,D-Nevada)의 도움을 얻어 시작됐다. 리드는 이미 외계인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 10월 엘리존도는 ‘뉴욕타임스’에서 “AATIP의 연구대상은 이 ‘UFO’라 불리는 물체다. 이 물체는 현재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비행기와 다른 특징을 가진다”며 “공기 역학의 법칙을 위반하는 듯한 이 물체는 조종설비나 추진체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이 이상한 비행기가 가속과 감속을 할 때 생기는 에너지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수용력을 뛰어넘는다”고 밝혔다. 동영상: 미국 전 국방부장관 루이스 엘리존도의 CNN인터뷰 ◇항성 간 비행 프레이버 소장은 “우리는 무한한 우주에 수많은 행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이 지구뿐이라면 우주는 아주 외로운 공간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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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4일, 미 해군 항공기조종사 겸 퇴역 소령 데이비드 프레이버(David Fravor)가 비행임무 도중 날개 없는 비행물체를 발견했다. 캘리포니아주(州) 해안 상공에서 빠르고 불안정한 모습으로 약 40피트를 비행한 이 미확인 비행물체는 적외선 감지기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프레이버는 “이 UFO는 다른 세계로부터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치광이가 아니고, 술에 취한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지난 18년 동안 비행임무를 수행하면서 이 분야의 모든 비행물체를 봐왔지만, 해당 UFO는 제가 알고 있는 비행체와는 전혀 다른 종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외계인에 관한 괴담은 여러 나라의 역사서에 기록돼 있으며 종종 기사로 보도되기도 한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제보한 생생한 목격담에는 외계인과 친구가 되어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은 경우도 있고, 외계인에게 납치를 당하는 등 두려운 경험을 한 사람도 있다. 1947년, 미국 뉴멕시코주 로즈웰에서 발생한 미확인 비행물체 추락 사건이 화제로 떠올랐다. 해당 뉴스는 외계인에 대한 관심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이후 미국은 거금을 들여 하버드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캠퍼스 등의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외계지적생명탐사연구소 ‘세티(SETI)’를 설립했다. 정부와 민간의 끊임없는 관심과 연구를 통해 수년 이내로 많은 비밀이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정계인사들이 말하는 외계인 영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우주에는 확실히 외계인이 존재한다”라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유명한 영적교사 드룬발로 멜기세덱(Drunvalo Melchizedek)은 미국에서 ‘메모리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외계문명이 실존한다고 주장하는 그의 학설은 외계인의 존재 입증에 힘을 실어주었다. 2012년 12월 7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y Medvedev) 러시아 총리는 ‘Ren TV’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진행자가 제기한 “대통령의 ‘핵 가방’ 내부에는 비밀코드 뿐만 아니라 외계인에 관한 문서도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그는 “사실이다. 핵 가방 내부에는 외계인 관련 문서가 두 가지 있는데, ‘외계인이 지구에 왔다’는 정보와 ‘러시아에서 외계인 모니터링 훈련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기 위해, 우리 주변에 외계인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는 밝힐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 메드베데프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 공개되자 그의 비서는 “비공개 담화였지만 거짓이라는 말은 없었다. 메드베데프도 부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 대통령은 조지아주 주지사를 역임하던 1969년 1월 22일 밤, UFO를 목격했다. 당시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난 미확인 비행물체는 그의 눈앞에서 밝은 빛을 내뿜었다. 그 비행물체는 붉은색과 초록색의 빛을 반짝이다가 10분 후 사라졌다. 카터는 자신의 목격담을 공식 보고서로 작성해 UFO를 연구하는 단체에 제출했다. 수년이 지난 후 카터는 남부 주지사회의에서 “앞으로 UFO 목격자들을 비웃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폴 헬러(Paul Hellyer)는 1963년부터 1967년까지 캐나다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지금까지 외계문명에 대한 정계의 연구 상황을 발표해온 최고위급 정부인사이다. 외계인을 오랜 기간 동안 연구해 온 헬러는 UFO목격자다. 그는 “미확인 비행물체는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는 비행기처럼 실존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05년 9월 헬러는 “UFO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했다. 9월 25일 토론토의 ‘엑소폴리틱스(Exopolitics)’ 회의에 초대받은 헬러는 연설을 통해 “아내, 그리고 친구와 함께 비행접시를 목격했다. 비록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에 대해 개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같은 해 2월 미국 ABC가 제작한 UFO 특별 프로그램을 시청한 후 해당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허핑턴 포스트에 따르면, 2013년 5월 헬러는 미국 공개 청문회에서 “최소 두 명의 외계인이 미국 정부부처에서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전 미국국회의원 6명이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 헬러는 “미국 국회가 최근 45년 동안 자주 발생한 중요한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사건의 정황 및 증거는 외계인이 실존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헬러는 ‘러시아 투데이(Russia Today)’에서 “대부분 외계인은 다른 행성에서 왔지만 화성이나 금성, 토성에서 거주하는 외계인도 있다. 수천 년 간 각기 다른 곳으로부터 온 외계인들은 계속 지구를 방문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인간과 닮은 외계인도 있고 만화 속 생물체처럼 생긴 외계인도 있다”고 주장했다. 헬러는 “외계인이 보유한 기술은 인간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다. LED 전등, 마이크로 칩, 케블라(Kevlar) 합성섬유 방탄복 등의 제품들은 모두 외계인이 인간에게 전수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50cm 정도의 신장과 큰 머리를 가진 ‘쇼트 그레이(Short Greys)’와 ‘톨 화이트(Tall White)’라 불리는 외계인이 있다”며 “이들은 네바다주에서 공군과 협업하고 있으며 이미 거주증까지 얻었다”고 밝혔다. 2015년 4월 18일, 90세를 넘긴 헬러는 캘거리 대학교(University of Calgary)에서의 강연을 통해 지구에 온 외계인에 대해 소개했다. 헬러는 자신이 믿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 학교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동영상: 폴 헬러 캐나다 전 국방부장관의 외계인에 관한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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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출간된 <벌거벗은 공산주의자: 공산주의를 폭로하고 자유를 회복하다>(The Naked Communist: Exposing Communism and Restoring Freedom)는 공산주의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해 그들의 음모를 밝혀낸 책이다. 초판이 출간된 1958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재판을 거듭해 총 200여만 부 판매됐으며 ‘미국 가치관의 시금석’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책의 저자 외에는 공산주의가 미국에 끼친 위협을 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당신도 이 책을 통해 공산주의를 경계하고 알게 될 것이며, 그래서 기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초대 국장을 지낸 존 에드거 후버 역시 저자의 노력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것이라고 했다. <벌거벗은 공산주의자>의 저자 클리온 스카우슨(W. Cleon Skousen)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북미를 포함 60개국에서 연설가‧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자유 원칙, 미국 헌법, 경제학, 고대역사 및 경전을 아우르는 역사‧법률 연구학자로서 캐나다의 헌법 개정에도 참여했고 대학교수, FBI 직원으로도 16년 근무했다. 그는 “지식과 이해는 국가의 자유를 유지하는 필수조건”이라고 말한다. 스카우슨이 <벌거벗은 공산주의자>를 쓴 것은 당시 ‘적색 공포’가 한창임에도 공산주의의 위협을 깊게 다룬 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미국인을 토론으로 이끌 책이 시급하다고 여겨, FBI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공산주의 관련 서적과 조약들을 수십 년간 연구, 이 선구적 저서를 발표했다. 그는 책에서 공산주의 선전 활동과 허위를 벗겨내 그들의 음모를 세부적으로 밝혔다. 독자가 공산주의의 내부 운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공산주의 기본 개념, 주장, 역사, 심지어 비밀 정복 시간표까지 수록했다. 또 ‘공산주의의 가장 은밀한 무기’ ‘공산주의자의 미래’ ‘공산주의 침투를 막는 방법’ ‘전쟁 없이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방법’ 등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에즈라 태프트 벤슨 전 농업장관은 “우리는 도덕기준을 옹호하지만 공산주의자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거부한다. 스카우슨은 책에서 ‘공산주의는 악(惡)은 없다며 사람들을 오도하고, 자기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밝혔다. 가장 저주받아야 할 이 교리를 진정 받아들이는 사람은 양심도 명예도 없다. 그들은 폭력, 계략, 배신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잠식하기 위한 45개 목표 <벌거벗은 공산주의자>는 공산당이 미국을 잠식하기 위해 계획한 45개 행동목표를 폭로했다. 1963년 1월 10일, 알버트 헐롱 플로리다주 하원의원은 국회 연설에서 이 목표를 읽으면서 공산주의의 잠재적 위협을 경고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거의 모든 행동목표가 이미 실현되고 있다. 일부 학자는 공산주의자들의 배치를 면밀히 살펴보면 자유주의파 엘리트들의 생각과 전략을 한층 깊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래는 45개 행동 목표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괄호 안은 저자가 쓴 것이 아니라 나중에 추가된 주석임) 목표 6. 모든 국가에 미국의 원조를 제공한다. 공산당 집권 여부는 상관하지 않는다. (몇 십 년 전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원조와 무역으로 전 세계 1억이 넘는 인구를 소멸시킬 수 있었다. 미국의 원조와 무역이 없었다면 ‘좌파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은 더욱 빨리 자멸하고 수백만 인구가 빈곤과 굶주림, 사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목표 7. 적색 중국을 인정하고, 중국의 UN 가입을 허용한다. 목표 12. 공산당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을 막는다. 목표 15. 미국의 1개 혹은 2개 정당을 장악한다. 목표 17. 학교와 교사협회를 통제해 교과서를 바꾸고 학교를 사회주의 사상과 공산주의 전파 교두보로 이용한다. 목표 18. 모든 학생 신문을 통제한다. 목표 20. 언론에 침투해 서평, 사설, 창작, 정책 결정자의 직위를 통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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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국을 보위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인류 문명을 위한 싸움이다.” 공산주의는 자유세계를 이끄는 핵심 국가인 미국을 괴멸시키기 위해 사면팔방과 안팎 모두에서 전방위 공세를 취해왔다. 이는 인류의 생사존망이 걸린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영어 다큐멘터리 <Agenda 2: Masters of Deceit>가 2015년 개봉됐다. 전작인 <Agenda:Grinding America Down>의 속편으로, 충분한 이론과 사실 증거를 바탕으로 심층조사 연구를 진행한 끝에 백여 년 간 공산주의가 미국과 세계를 전면통제하려는 정밀한 배치와 음모를 폭로해 그 진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또한 공산주의가 꾸민 각종 사기극들을 정조준해 낱낱이 해부했으며, 효과적인 반격 전술까지 제공했다. 다큐멘터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신의 편에 서서 원칙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편에 서서 위험에 빠지겠는가?"라는 대사를 통해 관객들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 미디어 평론가 테드 베이어(Ted Baehr)는 “<Agenda: Grinding America Down>은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진보주의자들이 미국을 탈취하려는 음모를 가장 투철하게 폭로한 뛰어난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한 미국인의 사명 커티스 바우어스는 하나의 사명을 짊어져왔다. 2008년, 아이다호 주 의원으로 재임하던 그는 1992년 열렸던 미국 공산당의 회의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미국 내부 침투 계획과 절차에 대해 논의했던 것을 떠올렸다. 바우어스는 당시 그들의 계획과 현재 사회상을 비교하고 크게 놀랐다. 공산주의자들이 성공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이 사건을 현지 신문에 기고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각계각층으로부터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으며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적금을 털어 2년 동안 연구, 조사, 방문을 통해 다큐멘터리 <Agenda: Grinding America Down>를 제작했다. <Agenda: Grinding America Down>는 개봉 직후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상금이 10만 달러에 달하는 영화제의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후 2년 반 동안 이 영화는 전미 지역에서 매주 평균 천여 차례 상영되면서 누적 관객만 수백만 명에 이르렀다. 이를 본 관객들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음을 토로했다. 속편에서 바우어스는 순회 상영 도중 벌어진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미네소타주에 있는 한 커뮤니티 컬리지(Community Colleges)의 모 티파티 정기 모임에서 <Grinding America Down>를 상영한 직후 바우어스는 관객과의 시간을 가졌다. 이때 한 남자가 일어나서 “당신의 연구에 경의를 표합니다. 각종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조가 미국에 미친 영향을 발견했네요. 존경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저는 이 대학교의 교수인 동시에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당신들의 다음 세대를 우리가 이미 장악했기 때문이죠”라고 덧붙였다. 이 남자가 자리를 떠난 후 앞줄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은 “저 사람이 어떻게 우리 학교에 있을 수 있죠”라고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바우어스는 “그는 미국의 모든 학교에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이를 통해 바우어스는 그의 사명이 결코 완수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공산주의자들은 각종 사회적 ‘문제’를 빌미로 위기를 고조시켜 미국을 파괴하고 있었다. 그는 적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필요했다. ‘지기지피(知己知彼)’이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기 때문이었다. <Agenda>의 속편 제2부에서는 공산주의가 일찍이 백 년 전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운 끝에 전방위로 서구 사회, 특히 미국의 정치·경제·종교·교육 등의 방면으로 침투한 사실을 계속해서 폭로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인들의 생활과 대대로 관련된 경제, 교육 정책과 전 세계적으로 추진되는 환경보호방침 등이 사실 공산주의자들의 ‘목마(木马)’ 사기극이며 미국이라는 최종 목표를 무너뜨리기 위한 연막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눈앞으로 다가온 위기 영화에서 바우어스는 보수 성향 전문가들과 학자, 관료들을 인터뷰했는데 그중 어떤 사람은 공산국가 출신이기도 했다. 이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공산주의의 사악한 본질을 상세히 논술하고 공산주의자들의 침투와 사기 수단을 분석했다. 여기에 따른 논증은 가히 놀라웠다. 전(前) 백악관 경제학자이자 작가 겸 연구원인 짐 심슨(Jim Simpson)은 “그것이 추악한 머리를 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는 줄곧 전 세계의 공산주의를 막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쿠바에서 자라 미국 시민이자 영화 제작자가 된 어거스틴 블라스케스(Augustin Blazquez)은 미국이 공산주의 국가로 변질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나는 쿠바에서 자랐는데 쿠바가 공산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당시, 공산당이 쿠바를 점령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경고했지만, 우리는 모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으며, 적어도 여기에서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현재 미국에서 되풀이되고 있어 매우 불안하다. 나는 결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좀더 지나면 미국인들이 무엇을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 과거에는 익숙했던 그것들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자신이 집에 있다고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집이 있어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그들은 기어코 찾아내 팔을 잡고 당신의 모든 것을 가져갈 것이다. 당신의 생활 방식까지 말이다. 결국 오로지 국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소련 출신인 파벨 스트로일로프(Pavel Stroilov)는 2003년 국외로 망명해 영국으로부터 정치적 비호를 받았다. <사막폭풍의 배후(Behind the Desert Storm)>의 작가이기도 한 그는 “냉전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또한 서방(西方)이 결코 승리를 거둔 것도 아니다. 냉전은 두 집단 간 군사적 대항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전쟁이다. 유토피아, 강권,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자유주의, 시장경제 간 대항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스트로일로프는 “이데올로기 전쟁의 종결이나 한 이데올로기를 제거하는 방법은 역사에 선례가 남아 있다. 나치에 대한 심판이 그것이다. 이십 년 전 뉘른베르크식의 재판과 같은 방법으로 공산주의를 심판해 냉전을 종결시켜야 했다. 모든 죄악을 폭로하고 모든 문서를 공개해 역사적인 심판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심판은 일어나지 않았다.” 뉴질랜드 정치활동가 겸 연설가인 트레버 루돈(Trevor Loudon)은 몇 년 전 뉴질랜드 공산당 내부에서 활동했던 뉴질랜드인을 인터뷰한 바 있었다. 이 뉴질랜드인은 1983년 소련에 있는 레닌 대학으로 보내져 훈련을 받았다. 레닌 대학은 세계 각지에서 온 공산주의자들을 배양하는 곳으로 재학생만 6,000명에 달했다. 어떤 학생은 7년 동안 공부하려고 했다. 루돈은 “학교는 그들에게 서방(西方)을 향한 대문을 활짝 열어 적대적인 상황을 완화시키는 것이 공산주의 발전에 더욱 이롭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서구를 향해 문을 열고 더 이상 공산주의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며 그들의 시스템을 바꾸려 했다.”라고 말했다. G. 에드워드 그리핀(G. Edward Griffin)은 미국 영화 제작자 겸 연설가이다. 그는 공산주의자는 끊임없이 면모를 바꾸면서 세계를 미혹시킨다고 지적했다. 또 “레닌이 제기한 한 가지 책략은 바로 패배당한 척 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는 훗날 꽤 듣기 좋은 ‘레닌주의’라는 말로 바뀌었고, ‘우호’와 ‘적대’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위장했다. 단지 상대방에게 안전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모자에 쓰인 ‘공산당 정치위원’이라는 글자를 ‘기업가’, ‘자본가’, ‘사회민주 인사’로 고쳤을 뿐이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 쓰고 있는 같은 모자로, ‘레닌주의자’임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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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정의와 사악의 총성 없는 대결이다. 한 민족의 도덕, 신앙, 문화, 그리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 운명에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2010년 미국 아이다호 주의 의원을 역임한 커티스 바우어스(Curtis Bowers)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Agenda: Grinding America Down>는 공산주의 운동이 미국에서 어떻게 발전하고 성장했는지 그 과정을 다루고 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와 현 미국 좌파 간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동시에 공산주의가 장기간의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내부로부터 미국 사회에 침투해 미국의 도덕, 신앙, 교육, 경제를 파괴하고 이 자유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는 사실에 대해 분석했다. “미국은 하나의 건강한 몸처럼 세 가지 방면에서 저항력을 갖고 있다: 애국주의, 도덕관념과 정신적 생활이 그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세 가지를 파괴할 수 있으면 미국을 내부로부터 무너뜨릴 수 있다.” _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주의자들의 음모 1992년 여름, 커티스 바우어스(Curtis Bowers)는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다. 어느 날 한 작가가 그에게 미국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을 어떻게 자신들 손아귀에 넣을지를 놓고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알려줬다. 어떤 이는 폭력혁명을 주장하고 또 어떤 이는 대중 책략으로 내부 침투에 주력해야 한다고 여겼다. 작가는 생각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세계는 “공산주의는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데 이 공산주의자들은 무슨 음모를 꾸미는 것일까? 그는 커티스 바우어스에게 미국 공산당이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곧 회의를 개최하는데 그들이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자신을 대신해 회의에 참석해주기를 부탁했다. 바우어스는 작가의 부탁을 수락했다. 회의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놀랐다. 참석자들 대부분이 그의 상상과 달리 급진적인 대학생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의 5, 60대, 심지어 70대에 이르는 노인도 있었다. 정장을 입고 서류 가방을 든 이들의 모습을 보고 바우어스는 이번 일이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회의에서 바우어스는 공산주의자들의 계획과 실행 절차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미국 각종 기관에 곧 침투해 미국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작정이었다. 예를 들어, 가정을 파괴하기 위해 결혼이 아닌 동거를 주장한다. 아이들을 하루 빨리 독립시켜 정부의 각종 계획에 참여케 한다. 또한 여권운동에 개입, 여성들로 하여금 결혼 제도와 어머니 역할에 불만을 느끼게 만든다. 산업 발전을 방해하기 위해 환경보호 운동을 이용한다. 그 당시 환경보호 운동은 영향력이 미미했으나 그들은 규칙을 만들어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종교 신앙과 도덕을 어떻게 파괴할지에 대해 논의했다. 미국인들로 하여금 동성애를 받아들이게 한다면 이전까지 고수해 오던 전통적인 가치관을 소멸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 당시 바우어스는 공산주의자들의 토론을 들으면서 “이 계획은 현실적이지 않아. 내 평생에 이와 관련한 일들로 걱정할 필요는 없어”라고 생각했다. 논란을 일으킨 한편의 기사 15년 후, 바우어스는 아이다호 주지사로부터 입법 대표로 임명되면서 매달 현지 신문에 각종 화제와 관련된 평론을 투고하고 있었다. 2008년 1월, 새로운 주제를 검토하던 중 1992년 그가 참여한 회의를 떠올렸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의 계획과 현재 미국의 상황을 대조한 결과 그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실현된 것이었다. 예를 들어 환경보호 운동은 자유 시장을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또 워싱턴 D.C에서는 ‘증오 범죄’에 대한 입법이 검토 중이었다. 즉 동성애를 반대하면 범죄로 간주하겠다는 법안이었다. 바우어스는 “사람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바우어스가 이와 관련한 평론을 발표하자 곧 큰 파문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며칠 동안 국회 앞에서 항의했다. 그의 평론은 저녁 뉴스의 핫이슈였다. 신문에는 40여 개에 달하는 독자 투고를 게재했다. 바우어스는 자신이 하나의 큰 사건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때 바우어스를 지지하는 한 편의 편지가 도착했다. 이 독자는 1958년에 출간된 <벌거벗은 공산주의자(The Naked Communist)>라는 책에서도 이와 같은 공산당의 목표가 제기된 적 있다고 지적했다. <벌거벗은 공산주의자>의 저자 클리온 스카우슨(W. Cleon Skousen)은 일찍이 연방수사국(FBI) 요원으로 활동하며 1958년부터 공산당의 45가지 목표를 이 책에 기록했다. 바우어스는 이 책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의 미국 내부 침투 계획이 오래전부터 세세하게 계획된 것임을 발견했다. 일부 목표는 아래와 같다: 17번째 목표: 학교를 통제한다.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컨베이어 벨트로 이용한다. 교본을 바꾸고 교사협회를 통제한다. 21 번째와 22번째 목표: 매체에 침투한다. 라디오, TV, 영화 관련 기관에 중요한 자리를 장악한다. 25 번째 목표: 책, 잡지, TV, 영화를 통해 음란물을 배포하여 도덕 문화 규범을 타파한다. 26 번째 목표: 동성애, 성적 타락, 음란 관계를 ‘정상화, 자연화, 건강화’ 시킨다. 27 번째 목표: 교회에 침투한다. ‘하늘의 계시 종교’를 ‘사회의’ 종교로 대체하고 <성경>을 비방한다. 다큐멘터리 <Agenda: Grinding America Down> 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