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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민주화”
장교 출신으로 장쩌민에 의해 군적과 당적 발탈 후 민주화 길 軍부패, 생체장기적출 기밀 폭로 올해 71세인 뤄위는 마오쩌둥의 심복이자 중공 초대 원로 뤄뤼칭 장군의 아들로 전형적인 '훙얼다이(红二代:혁명 원로 2세)'다. 중공 총참무부에 근무한 바 있으며 1988년 대교(大校, 한국군의 대령에 해당)로 임명됐다. 군대 내 부패상 및 1989년 천안문 사건 당시 학생들에 대한 중공의 진압에 불만을 느껴 1990년 중국을 떠나면서 중공 체제와 단절했다. 1992년 장쩌민의 명령으로 군적과 당적을 박탈당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뤄위는 최근 시진핑을 향해 '일당전제를 폐지하라'고 촉구하는 등 민주화의 길을 걸어왔다. 일생토록 마오쩌둥을 따라 '천하 평정'에 나섰던 부친의 아들인 그는 왜 같은 '훙얼다이'인 시진핑이 중공 일당전제를 폐지하기를 바랄까? 뤄위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시진핑의 집권에 얽힌 기밀, 군대 내 부패상, 생체장기적출, 보시라이 부자(父子)의 진실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자: 안녕하십니까? 선생께서 최근 <빈과일보>에 기고하신 글을 봤더니 제목이 '시진핑 아우에게 보내는 상의문'이고 또 형제의 정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뤄위: 그야 시진핑이 옛날 아우니까 그랬습니다. 게다가 분명 형제의 정이 있다고 할 수 있고요. 사실 시진핑 본인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그 부모님을 압니다. 기자: 시진핑이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보십니까? 뤄위: 내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내가 그 글을 쓴 것은 바로 그래서이기도 합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부모님은 매우 친절하고 진실한 분들이셨거든요. 시중쉰(習仲勳, 시진핑의 부친) 선생님은 민주파이자 진보파였는데, 역시 여러 차례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마오쩌둥에게도 몇 차례 핍박을 당했고 덩샤오핑에게도 한 차례 당했어요. 시진핑이 취임한 이후에서야 사람들은 기대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대는 시중쉰 선생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온 것이죠. 선생이 민주파이자 진보파였으니 사람들은 자연히 '아들인 시진핑은 아버지보다 한층 더 진보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진핑에게 희망을 걸게 된 것입니다. 장쩌민은 시진핑을 조정하려 했으나 실패 기자: 선생께서는 ‘시진핑이 집권하게 된 것은 우연에 의한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시진핑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뤄위: 중국의 일당전제 시스템 하에서는 사실상 권력 승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마오쩌둥 때부터 이어져왔는데, 중국에는 선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장쩌민은 왜 시진핑을 선택했을까요. 우선 장쩌민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후진타오를 승계자로 삼게 되어 내심 불쾌해 하고 있었습니다. 후진타오를 고른 사람은 덩샤오핑이었습니다. 후진타오는 나중에 분명 리커창에게 권력을 넘겨줄 텐데,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장쩌민은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자기 체면을 세우기 위해 후진타오가 누구를 고르든 간에 무조건 그 사람 외의 다른 사람을 지목한 것이죠.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이유입니다. 장쩌민이 시진핑을 고른 것은 매우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장쩌민이 후진타오 집권 시절 쉬차이허우(徐才厚)와 궈보슝(郭伯雄)을 통해 후진타오를 견제해 왔던 버릇대로 마음껏 조종할 수 있는 인물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시진핑의 어수룩해 보이는 겉모습에 속은 것이겠죠. 1인자가 되기 전 시진핑은 어떤 일도 묵묵히 받아들였습니다. 장쩌민은 시진핑을 높은 자리에 올려 두고 조종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기자: 보시라이는 린뱌오(林彪)와 유사하다고 보십니까? 뤄위: 하나도 그렇지 않습니다. 린뱌오가 수재라면 보시라이는 건달에 불과합니다. 지모도 책략도 없고, 어리석으며 머리도 나쁜 깡패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자: 말씀하신 것처럼 지모도 책략도 없다면 어떻게 관직을 수행했을까요? 전부 아버지 보이보의 권세에 편승한 덕분인가요? 뤄위: 보이보와 장쩌민의 결탁에 편승한 것이죠. 중국에서 관직에 앉는 것은 꼭 책략이 있어야만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관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중국 관리들 가운데 많은 수가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동창이었던 우리들은 보이보의 아들 보시라이가 항상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보시라이 역시 많은 고생을 겪었고, 감옥에 있었던 기간은 나보다도 길었지요. 보이보가 비교적 늦게 복권되었기 때문에 보시라이는 줄곧 감옥에 있었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나는 이 일당전제라는 것은 몹쓸 제도이니 반드시 민주제로 가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7, 8년간 감옥에 있었던 보시라이(보시라이는 문화대혁명 기간 중 절도죄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공식 약력에는 문화대혁명 기간 중 1968년 1월부터 1972년 11월까지 노동에 참가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위조된 것으로 그는 사실 복역했었다)는 어떤 결론을 내렸습니까? 나중에 그가 관직을 차지하는 과정을 보고 나는, 그가 이 전제 제도의 폐해를 겪고도 제도가 나쁘다거나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도 이 전제 제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박해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매관매직은 한 시대 종말을 알리는 신호 기자: 선생께서 군대 내 부패상을 보고 중국 대륙을 떠나신 것은 천안문 사태 때였습니다. 당시는 덩샤오핑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상태였죠. 그렇다면 장쩌민에게 권력이 넘어간 이후부터 제18차 전국대표대회 시점까지, 즉 장쩌민이 군권을 통제하던 기간 동안 군대 내 부패 정도는 어땠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뤄위: 그야 내가 있던 시절보다 훨씬 심해졌지요. 내가 있을 당시에는 아직 매관매직은 없었고, 리베이트를 챙기거나 무기, 탄약을 내다팔거나, 무기상에게 커미션을 받는 정도였지 '장군이 되려면 수천만 위안을 내야 한다'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중국 역사를 살펴보면, 관료제도라고 하는 관직 시스템이 매관매직 수준에 이르게 되면 그야말로 끝장이 난 것입니다. 매관매직은 한 시대가 몰락해 간다는 신호입니다. 기자: 현재 시진핑이 군대 내 부패 청산을 추진한 결과 장군 47명을 이미 체포한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면 선생께서는 군대 내 부패 청산 운동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군대 내 부패 청산은 당내 부패 청산, 정부내 부패 청산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장군 몇 명을 잡아냈든 간에 이는 좋은 일입니다. '크고 작은 호랑이들'을 백 명 넘게 청산해도 어쨌든 좋은 일이지요. 그렇지만 사실상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시진핑에게 '지금 부패 청산에 나서봤자, 부패하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는가? 몇 명 있기야 하겠지만, 대부분은 부패한 상태다. 모조리 숙청하면 관료제 자체가 무너질 판이니, 아무리 부패 청산이라도 대다수를 숙청할 수는 없다'고 말한 것은 바로 그래서입니다. 부패를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민주화입니다. 사람만 바꿔서야, 사람이 없는데 어디 가서 사람을 데려오겠습니까? 현재 시진핑의 최대 문제는 바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점진적으로 민주화를 추진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며, 보폭이 너무 커서도 곤란합니다. 한 발짝 한 발짝씩 민주화를 추진해야만 비로소 관리들이 감히 부정부패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생체장기적출은 시스템을 갖춘 거대한 작업 기자: 장쩌민은 1998년 '군의 상업활동 금지'를 규정했고 시진핑은 지난해 11월 재차 '군의 유상 서비스 금지'를 규정했는데,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장쩌민이 당시 ‘유상 서비스’는 건드리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뤄위: 유상 서비스라는 여지를 남겨둔 것은 기본적으로 군대 내 부패 관리들의 돈줄을 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유상 서비스는 장쩌민 자신의 돈줄이기도 했지요. 생체장기적출, 장기이식 이런 것들이 모두 유상 서비스입니다. 군대에 장기를 이식해줄 사람이 어디 그렇게 많겠습니까? 지방에 일임해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고, 여기서 돈을 벌 여지가 생겨났습니다. ...위안화 ‘SDR 편입’은 강심제인가 진통제인가
중국 위안화가 SDR(Special Drawing Rights‧가상의 국제준비통화)에 편입된 것은 위안화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규칙에 부합하기 때문이 아니다. IMF에 의해서든 미국에 의해서든 그것은 정치적인 고려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지난 4월, 로이터 통신은 데이비드 립톤 IMF 수석부총재가 한 언론에 “중국이 위안화를 SDR에 편입시켜달라고 IMF에 요구했고, IMF는 위안화가 편입될 수 있도록 앞으로 기준을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위안화의 SDR 편입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동의한 후에 확정됐으나, 중국 관영언론은 마치 미국에 대승을 거둔 것처럼 전과를 부풀리고 있다. 이 ‘전과’가 얼마나 건실한지 아래에서 분석해보겠다 중국몽 1: 위안화 SDR 편입으로 각국 중앙은행과 투자자가 위안화 보유 비중을 확대할 것이다 홍콩매체 봉황망(鳳凰網)은 ‘위안화 자산, 어떤 변화 생기나’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SDR 편입으로 예상되는 세 가지 변화를 제시했다. 하나는, 적어도 1조 달러의 외화보유액이 중국의 자산으로 전환될 것이란 전망이다. 또 하나는, 향후 5년 이내에 외국회사가 중국에서 발행한 위안화 표시채권, 즉 판다채권이 500억 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중앙은행 외화보유액 관리기관과 기관투자자는 위안화 표시자산을 사재기할 것이란 전망이다. 봉황망만 이렇게 예상한 것이 아니다. 여러 언론에서 같은 소식을 전했는데 이를 종합하면, SDR에 편입됨으로써 안전한 화폐라는 지위를 얻게 되고, 그러면 국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위안화 사용이 늘어날 것이 분명해지고, 그러면 전 세계 기금배분의 구조가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즉 위안화가 자산배분(asset allocation)으로 작용할 때의 비율이 대폭 상승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베키 류 아시아 금리 프리미엄 전략가는 한 인터뷰에서 “SDR 편입 후 5년 동안 중국은 4조~7조 위안의 국제자산을 위안화 채권시장으로 배분하게끔 유도할 것이며, 내년에 유입될 해외자금은 5천억 위안에 달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IMF의 SDR은 일종의 ‘종이황금’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각국에 분배해 사용하도록 만든 일종의 국제통화기금 할당액으로서 실제로 유통이 가능한 화폐가 아니다. SDR의 용도는 ▲기존 보유자산이 부족할 경우, 지정된 화폐 인수국에서 해당 국가의 화폐로 바꿔 지불하는 수단 ▲IMF 회원국의 경상수지가 적자일 때 IMF 지정국에 SDR를 주고 사용 가능한 화폐를 받아 적자를 메우고 IMF에서 정한 대출금과 이자 지급 ▲IMF 내부 거래 등 세 가지다. IMF가 위안화를 SDR에 편입시킨 것은 개혁의 일부분으로 보인다. 국제무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위안화를 편입시켜 SDR의 구조를 더 합리적이게 하고 SDR의 대표성과 일반성을 강화함으로써 더 흡인력 있는 보유자산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이다. 그러나 SDR은 세계화폐시스템에서 비주류에 속한다. 따라서 위안화 편입으로 세계 자산배분의 구조가 바뀔 수 있을지는 각국 중앙은행과 기관투자자가 위안화 자산의 비중을 실제로 확대할 것인지, 그 여부에 달렸다. 중국몽 2: 위안화가 달러의 지위에 도전할 것이다 중국인의 영혼 속에는 ‘뛰어넘고자 하는 의식’이 있다. 영국을 뛰어넘고 미국을 따라잡자는 식이다. 이런 의식은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온다. 위안화의 SDR 편입은 국제화로 나아가는 작은 한 걸음일 뿐이지만 중국의 많은 평론에서는 ‘위안화가 달러의 지위에 도전할 것’이라고 한다. 과거 중국에서는 달러가 위안화의 도전으로 국제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빼앗길까 우려하는 미국이 위안화의 SDR 편입을 저지해왔다는 여론이 계속 조성됐다. 그러나 위안화의 SDR 편입은 국제 결제통화로서의 명분을 얻었을 뿐이며 달러에 도전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달러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국제 결제통화, 가치저장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주요 국가의 외화보유액이 달러라는 점 외에 국제무역거래 중 3분의 2는 달러로 결제된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대부분의 도매거래는 달러로 거래하고, 각국 중앙은행의 금융정책도 달러를 이용한다. 국제차관 및 채권시장에서의 거래 역시 대부분 달러 혹은 달러화 채권이다. 현재 외국인이 보유한 중국주식과 채권은 2천억 달러 정도지만 달러화 자산은 16조 위안 규모로 위안화의 80배다. 위안화가 정말로 달러와 경쟁할 수 있을까. 중국은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일부 중국경제 분석가들은 위안화가 달러에 도전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다소 겸손한 입장이지만, 속뜻은 언젠가는 위안화가 달러를 도전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의미다. 그때가 15년 이후가 될 수도 있고 더 늦을 수도 있다. 올해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위안화는 세계무대에서 아직 작은 역할이지만, 달러도 20세기 초에는 그랬다”고 다소 비아냥대는 조로 평했다. 경제 예측의 범위가 100년을 넘어간다면 예측이 아니라 예언이다. 그러나 20년 내의 경제 예측은 가능할 수도 있다. 강한 화폐가 되려면 두 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하나는 강한 국가경제력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신용이다. 이 점에서 중국은 20세기 미국과 같은 발전을 이뤄내기 힘들다. 우선 중국경제의 체질(기술력, 자원력)이 미국만 못하다. 미국과 같은 국가신용 보장제도 역시 부족하다. 게다가 중국경제는 현재 장기침체기에 진입했다. 국내제조업이 전반적으로 쇠퇴하고, 거액의 악성 부채가 다시 나타나고 유령은행이 잇따라 부도나는 등 금융이 위태롭고 실업률 또한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5~10년 안에 밑바닥을 탈출할지도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중앙은행과 기관투자자가 달러를 버리고 위안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매우 어렵다. 앞으로 100년 이내에 세계에는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인가. 지난 100년간의 중국만 봐도 신해혁명부터 지금까지 세월의 격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 기간에 정권이 몇 차례나 바뀌었고, 화폐는 중화민국 때 위안다토우(袁大頭))를 발행하고 국민정부의 지폐를 거쳐 위안화로 바뀌었다. ...커지는 위안화 영향력, 해외 금융시장 잠식하나
중국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기 위한 추가적인 단계를 밟으면서, 중국 정부와 외국 정부, 은행 그리고 기업들이 위안 통화를 사용하려는 방식에 대한 계획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주 한국이 ‘팬더 본드(중국 본토에서 해외 기업들이 발행하는 위안화 표시 외국채) ‘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한 후 국제 채권 시장은 급격한 동요를 겪었다. 3년 만기인 30억 위안 (4억6천만5백만 달러)의 채권은 12월 16일 화요일에 다 마감됐다. 이 선언은 국제통화기금(IMF)이 특별인출권을 받쳐 주기 위해 중국 위안을 준비 통화로 포함하기로 결정한 2주 후에 발표된 것이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이달 상하이와 베이징의 중국 투자자들에게 채권을 내놓으면서 “한국과 상하이 증권 거래소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주식과 채권 거래를 공유할 수 있도록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라고 설명했다. 한국 관계자는 이번 채권발행은 향후 한국 회사가 중국에서 채무를 발행할 때의 가격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한국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이다. 다른 나라 정부들 역시 팬더 본드를 발행하기 직전이다. 캐나다 지방 브리티시 컬럼비아주(50만 명의 화교가 거주) 역시 중국 채권 발행을 고려하고 있다. 이 주는 60억 위안 발행을 베이징으로 부터 승인 받았다. 세계은행의 한 축인 국제금융공사와 아시아개발은행은 2005년 처음으로 팬더 본드를 발행했고, 총합 22억 위안 (3억 5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중국의 6조8천억 달러의 채권 시장(미국과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시장)은 중국에서 은행과 기업이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금 제공 출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채권 발행은 지금까지는 별 움직임이 없었다. 금융 소프트웨어 회사 딜로직에 의하면 지금까지 팬더 본드 시장에서는 모두 18조 달러의 수익이 있었지만 이런 국제금융기관들 외에는, 독일 자동차회사 다임러AG만이 유일한 발행자였고, 2014년에 사모채권 5억 위안을 발행했을 정도였다. 그동안 중국의 채권 시장은 외국 발행자에게 대부분이 막혀있었다. 중국인민은행과 다수의 다른 규제당국들이 2005년 처음 규제를 시도했고, 이는 중국에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기관에 대해 엄청나게 엄격한 요구 사항을 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베이징이 투자를 신장시키고 위안 통화의 국제적 사용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규제들을 완화하고 있다. 12월 8일, 중국 인민은행은 2개의 홍콩 기반 금융 기업인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중국은행 (홍콩)에게 각각 10억 위안과 100억 위안의 팬더 본드를 발행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중앙은행이 이런 종류의 채권 발행을 해외 금융 기관에게 허락했다는 것은 다른 대안적인 자금의 출처가 열릴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라고 홍콩상하이은행장 헬렌 웡이 말했다. 중국 규제당국은 올해부터 규제들을 완화시키기 시작했다. 2015년 7월, 중국인민은행은 외국 중앙은행, 독립적인 국부펀드, 그리고 다른 다국적 금융 기업들은 채권 거래, 금리스왑시장, 환매조건부매매 시장 등 중국의 은행 간 채권 시장에 투자하는 데 중국 중앙은행의 사전 승인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발표했다. 이 선언은 나중에 해외 금융 기업들이 처음으로 중국 팬더 본드 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그렇다면 왜 베이징이 이제 와서 외국 기업에게 팬더 채권 시장을 여는 것일까? 이는 위안 통화가 앞으로 더욱 많은 국제적인 노출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채권을 통해 중국 경제를 부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팬더 채권 발행 승인은 중국 금융 시장의 혼란 속에서 이루어졌다. 상해종합주가지수, 중국의 가장 큰 증시지수는 6월 최고점을 달한 후 40%나 하락했으며, 중국의 10년 만기 정부 채권의 수익률은 3.66%에서 3.30%으로 하락했다. 비공식적인 3분기 GDP 성장률이 2에서 5퍼센트로 평가되면서 중국 경제 성장에 대한 자신감은 허우적거리고 있다. 중국인민은행은 경제 부양을 위해 지난 12개월간 다섯 차례에 걸쳐 이자율을 낮췄다. 이는 다국적 기업들이 위안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데 최고의 환경이다. 과거 위안표시 채권을 파려는 기업들은 대륙 시장, 구체적으로는 홍콩 시장에 의지했다. 홍콩 시장은 작년 베이징이 홍콩과 상하이 시장 간의 자본회전 경로를 승인하여 위안 채권 판매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채권들은 ‘딤섬 본드(홍콩에서 해외 기업들이 발행하는 위안화 표시 채권’라고 불린다. ...中 은행업, 인터넷 대기업들의 신 개척지
중국의 인터넷 세대 대다수의 사람들은 친구들과 대화할 때 텐센트 지주의 메시징 플랫폼인 위챗을 사용한다. 커피숍에서 라떼의 가격을 지불해야 될 때 위챗 결제 어플을 스마트폰으로 키는 것 만큼이나 간단하고, 이걸로 다 끝난다. 소기업 아이디어를 위한 대출 지원에도 텐센트 어플이 사용되는데 이 서비스는 위뱅크라 불린다. 2015년 초 승인한 이 어플은 중국 규제당국이 승인한 첫 온라인전용 은행이다. 소기업을 위한 소금액 대출 2015년, 온라인 뱅킹은 중국 인터넷 대기업들에게 새로운 전쟁터가 됐다. 위뱅크와 알리바바 그룹 지주가 지원하는 마이뱅크가 대출 및 투자 상품 온라인 제공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베이징은 은행산업을 다양화시키고 사업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온라인전용 사은행을 승인하고 있다. 과거에 모든 중국의 은행은 국유였다. 이들은 최우선적으로 큰 국유 사업 (SOEs)과 정부의 요구를 채워줬다. 사기업들과 개인들은 담보 제한 때문에 큰 은행에서 신용을 얻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경제학자들은 중국에서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 중 3/4이 중소기업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국유사업들이 축소되거나 합병되면서, 베이징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성장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작은 사기업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독특함을 갖추다 온라인뱅킹 플랫폼은 고객들과 소기업에게 대출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독특하게 갖춰졌다. 알리바바의 알리페이 온라인 결제 플랫폼은 4억 명이 넘는 회원들이 있으며, 이 소비자들은 일상 생활에 이미 인터넷과 이동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 '3대 인터넷 거인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와 제휴한 온라인 은행들은 기존 서비스에서 이미 수집한 고객들의 행동적, 지리적, 금융 데이터를 발굴해 고객들의 신용도를 심사하려고 한다. 소셜 플랫폼, 온라인 상점과 포털로 매일 몇 억명의 사용자를 받는 인터넷거인과 제휴한 온라인 은행들은 오프라인 거래 회사들은 거의 접근할 수 없는 마케팅과 광고 플랫폼에 접근할 수 있다. 위뱅크는 2015년 1월 은행 인가서를 받았다. 앤트 파이낸셜의 온라인 전용 부문, 알리바바의 금융 서비스 부문인 마이뱅크는 그 이후 머지 않아 출시됐다. 11월에는, 바이두와 시틱은행이 온라인으로 대출과 투자 상품을 제공하는 공동 사업 은행을 설립할 계획을 발표했다. 12월 초까지 이 어플은 아직 규제당국에 의해 승인 받지는 못했다. 텐센트는 위뱅크의 최대주주로 30%지분을 가진다. 위뱅크의 다른 대주주는 심천바이예위안투자와 심천리예로, 블룸버그의 자료에 따르면 각각 20%씩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 온라인 은행들은 고객들에게 화폐시장 자금, 투자 상품과 대출 등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점포가 없는 이 온라인 전용 은행들은 오프라인 거래 은행들보다 낮은 가격 기준선으로 경쟁하고 있다." "전통적인 은행에서, 기업은 여러 가지 부서를 통과하며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위뱅크 부사장 정신린이 말했다. "우리의 서비스는 저비용, 한 번으로 끝나는 서비스입니다." ...WTO에서 TPP까지 ‘국제고아’의 세계 합류기
TPP는 중국과 어울려주지 않는다. 이는 중국을 너무나도 자극하는 일이다. 몇 년 전부터 중국 정부는 TTP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음모라고 주장해왔고, 그 영향은 이미 중국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 그로 인해, 이번 TPP 타결 소식이 전해졌을 때 굳이 중국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중국 각계각층에서 강렬한 반응이 나타났다. 다양한 반응에서 드러난 한 가지 공통점은 중국이 고립됐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립의 원인과 결과, 그 대처방안에 대해서는 견해가 제각각이다. 이번 현상은 외부의 관측자에게 중국과 외부의 관계를 통찰할 좋은 기회다. 견해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봤다. 견해 1: 고립의 원인은 중국이 국제규범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중국은 10여 년 전 WTO에 가입했지만 아직 국제사회의 규칙을 잘 지키지 않아 다른 국가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다. 그래서 미국 등으로부터 소외당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는 다시 세 가지로 의견이 엇갈린다. 하나는 중국경제가 이로 인해 쇠약해지고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본다. 이러한 의견은 해외 웹사이트에서 많이 제기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TPP로 촉발된 위기감이 ‘부도개혁’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주로 국내에서 보는 시각이다. 이러한 ‘부도개혁론’은 이달 8일 재경망(財經網)에서 게재한 ‘TPP는 경제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아니다. 효력발효는 빨라야 2017년부터다’라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기사에서는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수석연구원이자 백악관 경제보좌관을 지낸 매튜 굿맨(Matthew Goodman)과 인터뷰를 통해 ‘부도개혁론’을 제기했다. 골자는 TPP는 내부정치와 투명성에 있다는 것. 따라서 중국이 가입하려면 계속해서 국내 개혁을 실행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굿맨은 TPP 참가국 중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은 나라도 있다면서 베트남을 예로 들었다. 예외 조항이 많아 타결까지 별도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 따라서 중국이 TPP 가입을 희망한다면, 중국에도 준비시간이 주어지리라는 분석이다. 다만, “중국은 몇 가지 선택권이 있다”며 “첫째, TPP에 가입하는 것을 장기적으로 바라본다. 둘째, 전면적으로 경제협정을 추진한다(RCEP). 셋째, 중국과 미국 쌍방 투자 협정(BIT)에 대해 빠른 결정을 내린다. 넷째, 아시아와 태평양의 자유무역(FTAAP)에 대한 판단을 빠르게 한다”고 덧붙였다. 기사의 목적은 ‘TPP에 가입해 중국 부도를 개혁하자’임이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중국이 결국 TPP에 가입하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7일 펑파이(澎湃)뉴스는 기사에서 ‘TPP가 일단락되고 나서, 중국은 뒤따르는 것 외에 선택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뒤따른다’ 역시 부도개혁을 의미한다. 이 기사에서는 TPP가 상품의 무역자유화라는 목표 외에도 서비스무역•지식재산권•환경보호•노동기본권•경쟁중립성 등을 목표로 포함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중국은 WTO 가입 후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런 목표를 실현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단기간 안에 이러한 조건들을 받아들이기란 확실히 어렵다. 이 기사에서는 ‘음모론’에 대해 반박하며, “WTO 가입 전에도 음모론과 우려감이 중국을 괴롭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차이점은 좇겠다는 생각이 작아지고 맞서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분명한 점은 좇아가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의 내용은 모두 정론이다. 양펑덩(楊鵬等)의 기고문 ‘TPP 총론: 역사 변동 정세가 시작될 것이다’에서는 위기를 지나치게 부각한 면이 있지만, 이 또한 중국이 부도 위험 상황에서 개혁하길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TPP 조항의 궁극적 목표는 중국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견해 2: TPP는 미국이 세운 자본제국의 음모다. 중국은 계속 ‘똥 막대기’를 저어야 한다. 이러한 견해는 TPP가 중국에 고의성을 갖고 있다고 여긴다. 이것은 ‘경제적 NATO’이며 중국을 봉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가진 거의 모든 사람은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ISDS)에 대해 의견이 많다. ISDS가 국가보다 다국적 기업에 더 큰 권한을 준다고 생각한다. ISDS로 다국적 기업은 국가의 법률과 정책변화로 인한 손실에 배상을 요구할 수 있으며,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과도하게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TPP에서 가장 무서운 장치이며, 이로 인해 미국이 가장 큰 이익을 볼 것으로 여긴다. 최근 중국 온라인에서 퍼진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TPP의 놀라운 비밀'이라는 게시물이 바로 이러한 견해의 대표적 사례다. 이 게시물에서는 미국이 TTP로 자기만의 집단을 형성한 이유를 거대한 대중 무역 적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위키리크스 창시자 줄리언 어산지가 올해 밝힌 내용을 인용해 “TPP와 WTO의 가장 큰 차이는 포함하고 있는 범위나 협정의 강도가 아니며 관세의 높낮이는 더더욱 아니다. 핵심은 다국적 기업에 대한 법적 규제의 차이”라고 말했다. TPP에 따르면 회원국의 주권이 제약을 받는다. 무역분쟁이 생길 경우 뉴욕 국제사법재판소에 중재를 요청하고 판결에 따라야 한다. 어산지는 한 인터뷰에서 “TPP가 토론하는 것은 자유무역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의 지배”라고 말했다. 게시물에서는 TPP 법안이 미 하원에서 통과되고 회원국의 승인을 받게 되면 미국을 포함한 회원국은 자국 법률에 반드시 TPP 협정 정신을 포함시켜야 하며 뉴욕 국제사법재판소는 전 세계 최고의 법정이 된다면서 “미국의 이러한 조치는 각 회원국이 주권을 팔도록 하여 빗발치는 저항을 불러일으켰다”고 해석했다. 또한, 게시물에서는 “이러한 TPP는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명백한데 중국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국적 기업이 결정한 조항은 주권을 초월해 존재하는 것으로 이것은 매국이다!”라며 TPP가 중국을 끼워주지 않는 문제에 대해 “나라의 주권을 팔아야 한다면, 중국은 절대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재한 후 “어떻게 하나하나 와해시킬 것인가”를 논했다. 싱가포르대 동아시아연구소장 정융녠(鄭永年)은 ‘TPP가 세계에 가져온 것은 하나의 새로운 자본제국 경제이다’라는 책에서, 아직 형성중인 TPP는 일종의 주권국가의 자본경영 방식을 초월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이 자본제국과 현재 자본 세계화는 다르다. 이것은 더 깊은 단계의 자본제국이다. 즉,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고 민족과 국가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민족과 국가의 영향에서 벗어난 자본제국이다. 싱가포르대 아시아법률연구센터 왕장위(王江雨)는 엄청나게 긴 강연인 ‘대중국 자유무역 구역에서 태평양 전체의 협의’에서 TPP는 두 명의 피해자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중국, 다른 하나는 WTO다. 이에 따르면 중국은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국가와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한•중•일 자유무역을 구축하며, TPP에 가입하는 방안이었다. 그 목적에 대해서는 “우리는 가서 똥 막대기 젓듯 훼방할 수 있다.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하고, 당신이 측정한 가격에 대해 하나도 동의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시간을 끌며 방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리카싱의 도피가 신호하는 중국 경제의 몰락
홍콩의 억만장자이자 아시아 제일의 부자 리카싱이 최근 중국에서 자금을 철수한 이후, 중국 경기가 좋을 때크게 이익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둔해지자 떠나는 그를 향해 정부 언론은 비도덕적이고 배은망덕하다는 비난을 했다. 저명한 경제학자 허칭롄은 오늘날 중국에서 벌어지는 권력과 자본 사이의 마찰을 살펴봤다. 리카싱의 ‘도피’는 중국 내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이 논쟁은 권력과 자본 사이의 싸움으로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중국에서 투자의 3가지 딜레마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첫 번째 딜레마는 홍콩 투자가 대외적인 이름에도 불구하고 항상 국내 자본으로 간주돼 왔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할 때부터 1990년대까지 해외투자 전체에서 홍콩이 가장 중요했고, 대만이 뒤를 이었다. 홍콩의 지리적 위치와 특수한 경제적 역할은 중국공산당이 홍콩을 ‘해외’ 투자로 취급하게끔 한 정치적 고려사항의 일부였다. 그 전에 중국공산당이 서방으로부터 포괄적인 봉쇄를 당하고 있던 때에는 홍콩이 ‘대외창구’ 역할을 수행해, 해외 자본 및 기술의 유통체계 뿐만 아니라 수입·수출의 무역기지였다. 중국은 1979년 개혁개방을 시작했다. 홍콩 기업들은 주요 투자자뿐만 아니라 중국이 개방될 수 있도록 선도자 및 다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홍콩은 해외투자의 70%를 차지했으며, 대만과 일본이 뒤를 따랐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홍콩은 중국의 수출입항의 지위를 점점 상실했고, 역외 금융업은 서서히 약화됐다. 홍콩은 공산당 임원들이 자본을 해외로 옮겨서 배치하는 근거지로 일명 ‘돈세탁 창구’가 됐다. 1978년부터 2001년까지 공산당은 정치적 이유로 홍콩 투자를 해외자본으로 분류했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이나 그 직후였기 때문이다. 2001년 이후에도 홍콩 투자를 해외자본으로 간주하는 것이 공산당에게 이익이었다. 이익 단체들에 홍콩은 돈세탁에 중요한 경로였다. 오늘날에도 홍콩 최고 경영인들과 홍콩에서의 중국 투자는 공산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돈의 유입은 자유지만 유출은 안 된다 두 번째 딜레마는 자본 흐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투자 자본의 유입은 자유이지만 유출은 그렇지 않다. 올해 중국공산당은 중국 주식시장 침체에 강제적으로 개입했다. 결국, 중국에서 돈을 빼냈다는 혐의로 사람들을 체포했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부적절한 금융시장 개입 및 자유로운 자본 흐름을 악의적으로 제한하는 행동으로 판단된다. 해외자본 흐름이란 국가 및 지역 간의 자본 유출입을 가리킨다. 투자·채무(債)·원조·구매자 신용·판매자 신용·외환차액(FX)거래, 증권발행 및 순환 등을 포함한다. 국경을 넘는 해외자본 흐름은 유입과 유출로 나누어진다. 중국이 WTO에 가입했을 때, 미국과 유럽 같은 주요 회원국들은 중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해외자본의 유입을 허락하도록 요구했다. WTO 회원국 중에 해외자본 유입을 환영하면서 자본 유출을 제한하는 것을 환영하는 국가는 없다. 자본 흐름을 제한하는 중국공산당의 정책은 새로운 판례를 만들었다. WTO에는 이 정책에 대한 대항조치가 없다. 이는 해외자본에 관해 또 하나의 우려를 낳았다. 중국이 어느 날 자본 유출을 제한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다른 국가들은 중국이 완전한 자본 이동성 원칙을 시행해, 자유로운 자본 유입을 환영할 뿐만 아니라 유출될 수 있도록 하길 바라고 있다. 부자라는 ‘원죄’(原罪) 세 번째 딜레마는 민간 투자 자본을 보유한 중국인의 신변이 위협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민간 자본은 늘 ‘원죄’ 취급을 받았다. 중국에는 민영 기업들이 권력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이해가 깔렸다. 고위직 임원들과의 관계로 만든 ‘중간영역’에서 비즈니스를 함으로써 성장해나간다. 그들의 부는 깨끗하지 못하다. 정부는 민간 부문의 ‘왕’들이 탈세 및 사기성 부기 등 정부가 허락해준 빈틈을 활용한다고 간주한다. 빈틈은 대단히 많다. 정부가 돈이 부족한 경우는 별로 없다. 민영 기업이 정부 고위직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가 돈이 부족하거나, 민영 기업들이 의존했던 정치인이 부패혐의로 체포되거나 은퇴할 경우, 자본가들은 더는 안전하지 못한 것이다. 중국은 사모 활성을 위해 2014년 국영기업 개혁안을 발표했다. 많은 민간 기업인들은 공산당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하게 됐다. 중국을 떠나기 시작하고 다수의 해외투자를 하게 됐다. 이로 인해 최근 몇 달간 외화 보유액이 급격히 감소해 외환 통제가 강화됐다(이코노미스트지 9월 28일 기사에 의하면 6천억 달러 상당의 유출이 발생했다고 한다). 담보 브로커 수십 명이 돈을 국외로 빼돌린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자본과 권력 간의 관계는 극도의 긴장 상태에 달했다. ...중국 ‘포스트 톈안먼 세대’에게 가해지는 교묘한 정치 세뇌
1989년 6월 4일, 베이징의 중심가에서 수천 명으로 이루어진 시위대가 기관총 사격에 쓰러지거나 탱크에 깔려 무너졌던 날, 그 희생자는 ...중국 국영 기업 개혁안, 사기업 위협한다
중국 국영기업이 민영화된다면 소유권은 혼합소유제로 혹은 여전히 국영으로? 이런 문제는 몇 년 동안이나 설왕설래했던 문제들이다. ‘국영기업 개혁 심화에 대한 지침’이라는 제목의 양면성을 가진 다큐가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와 국무원에서 마침내 나왔다. 어떤 분석가들은 이 다큐에 대해 국영기업개혁제안의 목적이 국영기업을 확장하고 강화하려는 데 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부가 자유시장경제에 기초하여 국영기업 민영화를 촉진시키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오는 이유는 개혁안이 포함하고 있는 상충하는 언급 때문이다. 혼합소유제 국영기업 개혁안의 하이라이트는 주요목표로 '혼합소유제'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산의 다각화를 위해 다른 국가소유자본이나 비국가소유자본을 적극적으로 소개한다. 국가소유자본은 절대적 통제, 상대적 통제 또는 자산참여를 유지할 수 있고, 시장에서 기업경쟁력제고를 도울 수 있다.” 그러나 제안 2조에서 계속하기를 “공적인 소유가 여전히 우세한 지위이다. 그것이 기본적인 경제 시스템을 대표하며, 그것의 강화와 발전이 초점이다. 공공적이지 않은 경제는 종속적인 지위이다.” 2조에서 '혼합소유제'는 사기업들이 국영기업의 주를 살 수 있고, 주주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이어진다. 그러나 국영기업자산의 대부분은 국가소유자본으로 구성된다. 사기업은 다만 종속적 지위이며, 그들은 의사결정 권력을 가질 수 없다. 개혁안이 나온 뒤, 오해를 피하기 위해, 국영 신화사는 “우리는 명백하게 민영화를 반대해야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시장지향 개혁안의 두 번째 중요한 포인트는 국영기업을 “시장 지향 운용 메커니즘”으로 훈련시키고 “당의 지도를 강화하는 것”이다. 다큐는 시장지향을 14번 언급하면서 그것이 주요 주제임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14조는 이렇다. “당이 국영기업의 정치적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 국영기업의 기업지배구조에서 당의 법률적 지위를 명확히 하라.” “당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이 마오 아래에서의 정치 경제적 지향이었다. 자오쯔양 총서기는 정치와 비즈니스를 분리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그래서 기업에 대한 당의 통제를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이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물거품이 되었다. 민간기업 개혁 개혁안의 세 번째 포인트는 “큰 발전 가능성과 성장잠재력”을 가진 사기업이 개혁의 중요 타깃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18조의 제안은 국가 소유자본이 다양한 방식으로 민간기업에 투자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 시장 지향적 접근을 통해 핵심영역, 즉 공공서비스, 하이테크, 환경보호와 전략산업 등에서 큰 발전가능성과 성장잠재력을 가진 사기업에 자산투자를 함으로써.” ...중국 금속거래소 70억 달러 폰지사기 ‘빙산의 일각’
수백 명의 시위대가 지난주 베이징과 상하이에 모여 당국이 비철금속거래소의 수십억 달러 사기혐의에 대해 조사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위)로부터 아무런 반응도 이끌어 내지 못했으며 몇 시간 만에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그러한 항의는 곳곳에서 일어났다. 대체투자, 투기적 자산노출을 한 중국 투자자들의 불만이 증가하고 있지만 공공적인 증권시장 투자와는 달리 정부의 개입 희망은 거의 없어 보인다. 시위대의 분노가 향하는 곳은 바로 윈난성 남서쪽에 위치한 쿤밍시의 판야 금속거래소이다. 이 거래소는 인증받은 곳이고 지방정부가 감독했다. 인디움, 비스무스, 안티모니, 테르비움 등 14종의 비철금속을 취급한다. 판야는 13.7%에 이르는 고정수익에 원금을 보장하는 “리진바오”라고 이름 붙인 금융상품을 내놓고 있다. 금융뉴스 웹사이트 차이신에 따르면, 판야는 지난 7월 22만 명으로부터 모은 거의 430억 위안(67억 달러)에 이르는 자산을 동결하고 투자자의 예금인출을 정지 시켰다. 시위대는 판야가 폰지사기 행위를 했다고 한다. 희토류 거래소는 금속을 담보로 금속거래상들에게 투자자들이 대출해주도록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담보용 금속은 거래상들이 판야에 관리를 맡기고 관리비를 지불한 금속이다. 이론적으로, 대부분의 원자재와 금속들이 자주 거래가 이루어지는 동안은 이것이 작동될 수 있다. 그러나 판야의 비즈니스를 한번 들여다보면 명백한 의문이 생긴다. 판야가 다루는 금속은 생산량도 희귀하지만 사용되는 곳도 희귀한 금속이다. 인디움은 아연원석의 부산물이다. LCD 화면생산에 소량 사용된다. 판야는 3,740톤 이상의 인디움을 저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국제적 연간수요의 몇 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누가 과연 이자와 마진 13.7%를 커버할 정도로 많은 돈을 거래소에 지불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누가 판야로 하여금 그렇게 많은 양의 희토류를 저장하라고 했는지 헤아리기 또한 어렵다. 판야는 그만한 물량을 소화할 인디움 시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재고(투자자의 담보물)는 완전히 유동성이 없었다. 수익이 합법적이라 해도, 어느 정도 크기의 예금 인출 요청이 있으면 ,즉각 유동성 위기가 촉발될 상황인 것이다 판야가 이자율을 감당하고 투자자 원금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논리적인 방법은, 신규 투자자의 돈을 기존투자자에게 갚는 데 이용하는 것뿐이다. 실질적으로는 폰지사기인 것이다. 의문스런 수익 지난주 어떤 시위자는 은행대출과 신용카드대출로 1백만 위안 가치의 리진바오를 판야에서 구매했다고 했다. 수십만의 사람들이 자신의 평생 저축을 이 잘 알려지지도 않은 금속에 쏟아 부은 것은 왜일까? 그에 대한 답은 지난 10년 동안 중국공산당이 진행해온 부채(빚)를 부채질하는 경제정책에 있다. 당국은 예금이자율은 인위적으로 낮춰놓고, 개인들이 해외에 투자하는 것은 막았다. 이 모든 정책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부동산을 사고, 인프라 펀드에 투자하며, 국내증시에 참여하도록 몰아갔다. 이들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고, 가치가 부풀려지자 투자자들은 점점 더 희토류 파생상품 같은 불투명하고, 리스키한 자산에 도박을 걸기 시작했다. 빙산의 일각 ...중국 9월 제조업 PMI, 아직 바닥 아니다
중국 제조업 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글로벌 경기에 다소간 희망이 보였다. 1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9월 제조업 구매관리지수(PMI)가 49.8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전월에 비해 0.1포인트 상승한 수치에 조심스런 낙관론이 제기됐다. PMI는 기업의 신규 주문과 생산, 생산, 재고, 고용 등을 조사해 집계한 것으로 50이상이면 경기 확장세, 50미만이면 경기 위축세를 나타낸다. 같은 날 발표된 중국 미디어그룹 차이신(財新)이 영국 금융정보 조사회사 마킷과 공동으로 집계하는 차이신 제조업 PMI는 전월에 비해 0.1포인트 떨어진 47.2로 나타났다. 2009년 3월 이후 6년 6개월만에 최저치였다. 기준치 50을 밑도는 9월 PMI는 지난달 경기 위축과 수요 감소로 중국 기업의 생산 감소로 제조업의 생산이 급감했음을 나타낸다. 이로써 3개월 연속 원자재 구매 감소와 투입 감소로 이어졌으며, 차이신은 9월 고용 하락이 6년 8개월만에 가장 빨랐다고 발표했다. 차이신의 허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지근한 수요와 제조업 과잉공급이 제조업의 회복이 더딘 이유”라며 분석했다. 장이핑 자오상(招商)증권 거시경제 애널리스트는 9월 PMI 속보가 전해진 23일 월스트리트 저널과 인터뷰에서 “PIM 약세는 세계 제2의 경제대국(중국)의 경기 둔화가 점점 악화되고 있음을 나타낸다”며 “국내외 수요 부진으로 위축된 중국 제조업의 어려움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차이신 제조업 PMI는 조사 대상이 중소 기업과 민영 기업이다. 반면 중국 국가통계국의 제조업 PMI는 주로 대기업과 국영기업을 조사한다. 이들 대기업과 국영 기업은 최근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따른 위안화 평가절하와 사회적 기반시설 투자의 주된 수혜 대상이었다. 중국의 대형 기업은 소비자 수요를 바탕으로 해외, 특히 미국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중국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중소기업에도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소규모 민영기업이 정상적으로 자금지원을 받기란 매우 어렵다. 약한 위안화 역시 이들 기업의 주요 시장인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력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이미 부채와 재정난에 허덕이는 중국의 민영기업을 더 어렵게 만든다. 1일 차이신 제조업 PMI가 발표되고 브렌트 원유가격이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배럴당 48.37달러에서 14% 폭락한 $47.69를 기록했다. 같은 날, 블룸버그 원자재 지수는 거의 1% 떨어졌다. 해외시장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자 원자재 소비대국인 중국 PMI 수치에 특히 민감하다. 중국 지도부는 정부 발표 수치에 대한 기대와 어려운 경제적 현실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중국은 5% 금리인하, 위안화 평가절하, 주가폭락을 경험했다. 복잡한 경제상황에 대한 중국의 관리능력에 미심쩍은 눈총이 쏟아지고 있다. 제조업 PMI는 중국경제가 더 악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오는 19일 중국의 3분기 GDP 발표에 앞서 이미 나쁜 소식이 전해졌다.“리카싱 철수, 中 권력과 자본 사이 긴장고조”
아시아 최대 부호 리카싱(李嘉誠) 청쿵프라퍼티홀딩스(長江實業地産) 회장의 중국시장 철수를 둘러싸고 중국에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중국의 권력(정계)과 자본(재계) 사이에 긴장이 고조됐다. 지난달 12일 관영 신화사 계열 국책연구기관 ‘료왕싱크탱크’(瞭望智庫)에서 중국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국자위) 상업기술품질센터 뤄톈하오(罗天昊) 연구원이 ‘리카싱을 도망가도록 놔둬선 안 된다’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이 논평으로 리카싱 철수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자 같은 달 21일 인민일보는 “리카싱이 어려움을 함께 할 수 없다면 만류할 필요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리카싱에 대한 험악한 분위기가 외국인 투자 유치에 도움이 안 된다는 속내였다. 이번 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된다. 하나는 자본유입은 환영하되 자본유출을 적대하는 중국의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다는 점, 다른 하나는 권력과 자본의 대리전 양상을 띈다는 점이다. 중국자본과 홍콩자본의 밀월관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실시한 1979년 당시 개방은 곧 외국자본 유치를 의미했다. 이후 1990년대까지 외국자본 유치의 핵심은 홍콩자본이었고 그 다음이 대만자본이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세계 각국의 화교자본으로 가능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당시 중국입장에서 홍콩자본은 당연히 외국자본이었다. 홍콩은 1997년 7월 중국에 반환됐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1978년부터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전까지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기 전이었거나 반환 초기였다. 홍콩의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적 특수성도 홍콩자본이 중국자본과 구분되는 요인이었다. 필자는 ‘중국 통치위기의 기원: 경제편’에서 홍콩의 지정학적 우위를 분석한 바가 있다. 중공 집권 후 홍콩은 중국의 국제 브로커가 됐다. 서방세계와 단절된 중국의 유일한 대외창구이자 외국자본과 기술을 들여오는 수출입 기지였다. 홍콩 상인들은 대중국 투자를 주도하며 중국의 대외개방을 이끄는 안내자 역할을 했다. 당시 중국이 유치한 외국자본의 70%가 홍콩자본이었고 이어 대만, 일본자본 순이었다. 상황은 2001년 중국의 WTO가입 후 달라졌다. 중국의 수출입 기지로서 홍콩의 위상은 점차 약화됐다. 역외금융업도 서서히 쇠퇴했다. 따라서 중국자본과 홍콩자본을 구분할 근거도 약해졌다. 그러나 중국은 홍콩자본을 여전히 외국자본으로 취급했다. 중공 이익집단에게 돈세탁과 자본도피의 창구가 필요했던 까닭이었다. 홍콩으로 유입된 중국 지하자금은 돈세탁을 거쳐 홍콩자본으로 둔갑했다. 필자는 ‘인민일보 10대 외자 출처의 비밀’라는 기고문에서 2013년8월12일자 인민일보 기사 ‘외국자본은 중국에서 이탈한 적이 없다’(外资并未大规模撤离中国)에 실린 그래프를 분석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따르면 중국으로 유입된 외국자본 중 홍콩에서 유입된 자금이 397억1500만 달러로 전체의 65%를 차지했다. 그러니까 중국 권력층인 중공으로서는 홍콩자본과 홍콩의 재벌기업이 피붙이 같은 존재였다. 자수성가한 홍콩 중견기업도 중공의 지원을 받고 성장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였다. 중국경제가 어려워지자 미련없이 철수한 리카싱에 대해 중국 권력층이 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이동을 보는 중국의 이중적 태도 최근 중국정부는 폭락하는 증시를 지탱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를 지나친 개입이라고 지적하면서 중국증시를 ‘사나운 개가 물고 있는 고기만두’에 비유했다. 중국정부를 사나운 개로 묘사하며 경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카싱을 도망가게 놔둬선 안 된다”는 논설은 불에 기름부은 격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중국정부가 국제 자본이동을 통제하려 한다고 질타했다. 국제 자본이동은 투자•대출•원조•수출입•여신거래•외환거래•증권발행 및 유통 등의 방법으로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자본이 이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자본이동은 방향에 따라 자본유입과 자본유출로 나뉜다. 국제사회의 통념상 자본유입과 자본유출은 모두 자유롭다. 미국과 유럽각국 등 WTO회원국은 2001년 중국의 WTO가입을 승인하면서 추후 금융시장 개방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아무도 중국이 자본유입만 환영하고 자본유출은 적대하리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이전까지 그런 국가는 없었기에 뾰족한 대응책도 없었다. 현재 국제 자본시장은 중국에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허가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중국에서 자본이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사회적 통념으로도 존재한다. 중국여론은 민간자본에 대해 원죄의식이 있다. 정경유착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민중은 대다수의 민영기업이 권력과 결탁해 무풍지대에서 성장하며 자산을 축적했다고 본다. 정부는 정부대로 특혜가 없었으면 민영기업이 성장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이런 특혜 하에 중국 민영기업에서는 탈세•조세회피•회계장부조작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중국 정부의 ‘자금 보위전’
전 세계는 중국 정부가 ‘증시 보위전’을 벌이는 걸 알고 있지만, 또 다른 사실에 대해서는 소수 경제계 인사만이 알고 있다. 8월부터 시작해 보위전의 주요 전장은 이미 외환시장으로 옮겨졌다. 이에 신흥 경제범죄는 ‘악의적 공매도’뿐 아니라 ‘악의적 환투기’도 추가됐다. 작전 상대는 외부 세력이 아니라 중공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권력자, 관료, 재계 부호이다. 줄줄 새는 정부 자금 중국 정부가 세계에서 환영을 받는 이유는 정부가 보유한 두둑한 자금, 즉 보유외환 때문이다. 사실 이 자금은 중국 정부의 자산이 아니며, 중앙은행이 외환관리제도를 이용해 국내 외국 자본, 외무기업 및 외환을 보유한 각종 기관, 개인 예금주에게서 ‘빌려’ 온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낮은 비용으로 빌릴 수 있기 때문에, 대다수 중국인을 포함해 중국 정부나 외국 투자자는 이를 중국 정부의 자산, 즉 ‘중국 인민의 자산’으로 여겼다. 당시 일부 사람이 외환보유액을 모든 중국 인민에게 고르게 나눠주자고 주장하자, 저우샤우촨 중앙은행장이 어쩔 수 없이 전면에 나서 진실을 설명했다. “외환보유액은 모두 중앙은행의 부채와 대응한다. 다만 사람들이 믿지 않을 뿐이다.” 현재 이 ‘대차관계’에 말썽거리가 생겼다. ‘채무’ 측이 형세를 비관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6월부터 중국 정부가 강력한 ‘증시 구제’ 조치를 취한 이래로, 그들은 집정자가 중요한 순간에 본색을 드러내는 걸 발견했다. 즉, 그는 시장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고, 약속이나 한 듯 ‘집단행동’에 나서, 외환시장에 몰려들어 달러를 환전해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중앙은행의 달러 보유액은 계속 유출돼,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중국 외환보유액, 3000~4000억 달러 감소 시 심각한 자금 부족 직면할 것 정상적인 상황에서, 중국의 외환 거래량은 일일 100억 달러 정도이다. 2014년 6월,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3조 9,900억 달러에 달했지만, 1년이 채 안 된 올해 7월 말, 외환자산은 3조 6900억 달러로 3000억이 줄어들었다. 올해 8월 11일 이후, 외환시장 거래량은 일일 300억 달러 이상을 유지했다. 8월 하순, 3일간의 기록은 매우 놀라운 정도이다. 8월 26일 489억 달러, 8월 27일 385억 달러, 8월 28일 512억 달러가 거래됐다. 만약 이렇게 빠른 유출이 평소 상태가 된다면, 중앙은행은 외환 고갈에 직면해 더는 통화 유동성을 내보내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자금량 지원이 필요한 증시는 자금 단절에 직면하고 부동산 거품도 터질 것이다. 이 결과를 막기 위해, 중국 중앙은행은 할 수 없이 각종 방법을 동원해 자금 유출을 완화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시장에 위안화를 주입해 시장 유동성을 보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대규모 달러로 위안화를 사들여 위안화 환율을 보증한다. 또한 각종 방법을 동원해 외화 환전의 난이도를 높이고 있다. 9월 1일, 중국 중앙은행은 외환 선물계약 설정에 관한 부가 조건을 선포해, 투자자가 위안화 공매도 시 드는 비용을 증가시켰다. 신규정은 고객에게 위탁받아 외환 선물을 구매하는 금융기관이 중앙은행에 거래 대금의 20%를 외환준비금으로 1년 동안 납부하도록 요구했다. 이 규정은 10월 15일에 효력이 발생한다. 이 규정을 실질적으로 공매도자에게 8:1의 비율로 달러를 구매하게 한 것이다. 중국자본 은행업계의 고위층에 따르면, 중국은행, 중신은행을 포함한 일부 대형 중국자본 금융기관이 기업고객의 대규모 외환거래에 대한 내부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중국 금융감독 기관 및 법 집행 기관은 불법수단을 통해 타인의 해외 자금 유출을 대리하는 기관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위의 모든 조치는 금융 위험을 방비하기 위해서이다. 채무 측 반부패 공포에 떨어 중국 정부가 외화 유출을 통제할 때 나름대로 논리가 있다. ...중국경제 2차 뇌관, P2P 대출 버블 터지나?
P2P 대출회사 대표인 하이촨 텅은 중국에서 잘 나가는 22살의 인기 사업가였다. 중국 공영 중앙방송국 CCTV는 텅이 16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2014년 1월 개인 사업을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10월 8일, 청도에 본사를 둔 P2P 대출회사 볼리야(Boliya)의 대표인 텅이 갑작스레 사라졌다. 그 이유는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볼리야가 투자자들에게 빚진 돈은 7000만 위안(1100만 달러; 129억 8550만 원)이 넘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볼리야의 파산은 현재 중국에서 급증하고 있는 인터넷 금융 시장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고 인터넷 금융 시장이 중국경제의 또 다른 버블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P2P 성장 미국의 인터넷 금융 관련 서비스는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재 이체와 잔액 조회 기능만 온라인․모바일 금융 서비스에서 제공된다. 일정한 고정 고객들은 온라인 은행 심플(Simple)을 포함한 미국의 인터넷 금융사들과 P2P 대출회사인 ‘렌딩클럽(Lending Club)’서비스를 사용한다. 하지만 제공되는 서비스는 '언제 어디서나'의 유비쿼터스식 서비스와는 거리와 멀다. 반면, 중국에서는 디지털 뱅킹․투자․대출이 상용화된 지 한참 됐다. 잊어버리고 지갑을 안 가져와도 문제 될 게 없다. 텐센트 홀딩스의 중국판 카톡 '위챗(We Chat)'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계산하면 손쉽게 해결된다.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가 7억 4000명이 넘는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이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건 어렵지 않은 결정이다. 이미 중국 시장에 자리 잡은 텐센트, 알리바바 그룹 홀딩스, 주식회사 바이두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뿐 아니라 P2P 대출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P2P 대출이란 텐센트 등과 같은 인터넷 회사들이 투자자(대출자)와 차용자를 연결해 회사와 무관한 개인에게도 돈을 빌려주는 시스템이다. 중국의 인터넷 대출정보 사이트인 왕다이지지아(Wangdaizhijia)는 올해 6월까지 중국 인터넷 P2P 대출 총액이 3006억 위안(470억 달러; 55조 4365억 원)에 달했고, 2014년 한 해의 대출액수가 2528억 위안이었다고 발표했다. 또한, 왕다이지지아는 P2P 대출이 올해 말까지 8000억 위안(147조 3299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6월 30일 현재 중국에는 2000개 이상의 인터넷 대출 플랫폼이 있다. 이는 지난해 말보다 29% 증가한 수치다. 대규모 P2P 대출기관 중 하나인 통반지에(Tongbanjie)는 자사의 대출 서비스를 매달 이용하는 고객 수가 3000만 명이 넘는다. 통반지에의 경쟁사인 디안롱(Dianrong)은 지난주 총 매출이 2억 7000만 달러(497억 2000만 원)였다. 디안롱의 주요 투자자는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다. 디안롱 대표는 ‘렌딩클럽’의 공동 설립자이자, 소울타이트(Soul Htite)의 전 최고기술책임자였다. P2P 활약 두드러져 P2P 대출의 성장세는 수요에 발맞춘 공급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지난 20년간 중국 국영 은행들은 지자체 정부와 인프라 투자, 국영 기업들에 대출해주면서 불어난 빚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영 은행들은 일반가계나 소상공인들에게 융자를 주는 것을 꺼린다. 물리적 담보 대출을 할 수 없는 일반가계와 소상공인들은 결국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게 돼 P2P 대출이 급증한 것이다. 반면 공급 측면에서 볼 때, 중국 중산층은 엄청난 현금을 벌어들이지만 투자할 곳이 없는 게 문제였다. 또, 주식시장을 구하기 위해 정부가 최근 시행한 구제책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상하이 종합 주가 지수는 지난 6월 12일 최고치를 경신한 이후 39% 하락했다. 그 결과 중국 주식 시장에서 자금을 빼기 시작한 많은 투자자는 인터넷 대출기관이 대안 투자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왕다이지지아는 P2P 대출의 연평균 수익률이 15%에 달했다고 밝혔다. ...군권 장악한 시진핑, 장쩌민 처리는 법대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 3일에 있은 열병식에 중산복을 입고 나타났다. 중산복은 중국 근대혁명의 아버지 쑨원이 고안한 옷으로, 그의 호 ...중국은 세계 경제 구할 ‘노아의 방주’ 아니다
최근 국제 사회는 대체로 중국 경제가 ‘쇠퇴’한다고 보고 있다. 기존의 ‘번영’과 비교할 때, ‘쇠퇴’는 정말 천양지차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소로스는 “중국 경제의 쇠퇴는 제3차 세계대전을 야기할 것”이라는 밝혔고, 뉴질랜드 재무장관은 중국-뉴질랜드 경제는 샴쌍둥이와 같아서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면 뉴질랜드의 쇠퇴 위기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다만 쇠퇴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어떤 이는 반(反)부패로 인한 정국 불안이 경제 쇠퇴를 야기했다고 생각하고, 다른 이는 중국 정부의 증시 간섭이 직접 경제 위기를 불러왔다고 여긴다. 사실 이런 논의들은 중국 경제를 진지하게 생각한 게 아니다. 중국 경제는 체질상 번영을 지속하기 어렵고, 중국은 세계 경제를 구하는 노아의 방주가 아니다. 유럽·미국·남미·아프리카의 같은 꿈: 중국 정부가 지갑을 여는 것 많은 중국인이 중국의 실업률 증가와 나날이 힘들어지는 서민 생활로 인해 중국 지도자가 주창한 ‘중국의 꿈(中國 夢)’이라는 허상을 비웃고 있을 때 국제 사회는 또 다른 ‘중국의 꿈’을 꾸고 있었다. 즉 ‘중국 정부가 자금을 풀고 투자해 자국의 경제 성장과 취업률 상승을 이끈다는 것’이다. 이 꿈은 공허한 것 같지만 오히려 현실적이다. 세계에서 중국 같은 경제 이야기를 가진 곳은 여태껏 없었다. 30년 동안 국민 소득이 연평균 10% 성장했고, 중국 인민 수억 명이 빈곤에서 벗어났으며, 빈털터리에서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전 세계 GDP의 15%, 전 세계 GDP 성장의 25%를 담당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나라의 위정자가 4조가 넘는 중국의 세계 최대 외환보유액 중 일부만이라도 자신에게 나눠주기를 오매불망 바라고 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지갑 끈을 열어 대규모 해외 투자를 진행 중이다. ‘2013년 중국의 대외직접투자 통계 공보’에 따르면 2013년 말까지 1만 5300명의 경내 투자자가 184개 국가와 지구에 2만 5400개의 대외직접투자 기업을 설립했다고 한다. 유엔무역개발회의 데이터에 따르면 2013년 중국은 미국의 3383억과 일본의 1357억에 이어 이미 세계 제3대 대외 투자국이 되었다. 2005년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중국의 해외직접투자 누계액은 5153억 달러, 프로젝트 투자 누계액은 3551억 달러였다. 투자업계에서는 2014년 중국의 해외투자가 일본을 초과해 1조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중국의 해외투자는 부국과 빈국을 모두 동일시하는데 이는 투자은행계의 분포를 보면 알 수 있다. 직접투자와 프로젝트 투자 중 에너지 산업이 약 50%의 비중을 차지하며, 금속광산업도 직접투자의 주요 대상이다. 또한 해외 프로젝트 투자의 또 다른 중점은 산과 물에 길과 다리를 놓는 교통산업이다. 이는 모두 개발도상국에 투자가 돌아갔는데 중국의 기간시설 건설능력은 ‘비교적 우위’에 있어 중국 투자가 현지 기간시설의 개선과 취업률 증가를 이끌기 때문이다. 미·영·독은 최근 중국의 투자가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나라이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중국의 대미 직접투자는 714배 증가했다. 현재 미국 50개 주 가운데 35개 주가 중국의 직접투자를 받았고, 이중 투자를 가장 많이 받은 3개 주가 바로 뉴욕 주·캘리포니아 주·텍사스 주이다. 중국의 투자 범위도 상당히 넓은데 에너지·부동산·제조업·금융·서비스업·정보·전자·생명공학·녹지 프로젝트 등 다양하며 미국에 8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독일도 중국 투자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2012년 독일은 중국의 대유럽 FDI 항목 중 38%를 독점해 영국과 프랑스의 합계를 뛰어넘었다. 중국의 양국 투자율은 각각 22%, 5%였다. 독일 투자청(GTAI) 데이터에 따르면 2013년 중국이 독일에서 직접 투자한 프로젝트 수는 139개였다. 이는 미국과 스위스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수치다. 독일 Das Statistik-Portalke Next 사이트에서 인용한 데이터를 보면 2014년 말까지 중국은 독일에 2500개의 기업을 세워 독일에 1만 2000개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투자업계가 중국 시장에서 거둔 수익도 적지 않은데 2014년 투자은행은 중국 시장에서 60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수익을 거뒀다. 물론 미국과 EU 국가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중국 이외에 어디에서 이렇게 성장하는 ‘파이’를 찾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희망의 빛이 눈앞에서 빛나고 있다. 독일 메르카토르 중국연구 센터가 미국 컨설팅 업체인 로디움 그룹과 협력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중국은 세계 최대 해외 투자자가 될 것이며, 중국의 전 세계 역외 자산은 현재 수준의 3배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즉 현재의 6조 4000억 달러에서 약 20조 달러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중국은 이미 중요한 글로벌 투자자가 됐으며, 10년 후 대외직접투자의 증가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희망한다”고 말했다. 기대가 높을수록 실망도 커지는 법이다. 중국의 경제 쇠퇴에 전 세계가 크게 실망한 이유는 중국이 세계 경제를 구할 것이라고 너무 크게 기대했기 때문이다. 베이징, 세계 경제 구할 능력 없어 중국 정부의 본심은 세계 제2대 경제 강국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세는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특히 시진핑-리커창의 상황은 후진타오-원자바오보다 훨씬 못했다. ...여성 모델 섭외한 중국 전승절 열병식… 키크고 가슴둘레 같아
여성 의장대 대표단은 톈안먼광장의 거대한 마오쩌둥 초상화 앞을 지나가면서 다리를 굽히지 않고 높이 들면서 걷는 ‘거위걸음’을 할 것이며 ...선전 칭수이허 대폭발이 톈진에서 되풀이된 이유
선전이 눈물 흘리며 톈진에 묻다. 22년 전에 일어난 칭수이허 대폭발은 선전시 안마오 위험물 보관운송회사에서 공공연히 위험물 보관 규정을 어겼기 때문에 일어났다. 당시 소방안전을 책임졌던 왕주밍 공안국 부국장은 권력 지대추구를 이용해 직접 그 기업의 이사장을 맡았다. 이 비극적 사고는 ‘중국 대형사고 계시록’에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돼, 유독 화학물질 운영업계의 필독서가 되었다. 하지만 당신들은 왜 아직도 나의 오래된 길을 걷고 있는가? - 이 글을 선전과 톈진의 대폭발에 희생된 영혼에 바친다. 각종 정보를 살펴보면, 8.12 톈진 빈하이 대폭발은 1993년 선전 칭수이허 대폭발과 매우 유사하며, 비극을 일으킨 주요 원인도 동일하다. 즉 권력 지대추구의 비호 아래, 기업이 유독 화학물질 취급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톈진의 아픔은 선전의 잊을 수 없는 상처 톈진 대폭발의 참혹한 현장 사진을 본 후, 난 22년 전인 1993년 8월 5일, 선전 칭수이허에서 일어났던 대폭발을 곧바로 생각해냈다. 내가 기억하는 당시 사고는 하늘로 솟아오른 2개의 버섯구름과 핏빛으로 물든 하늘, 심하게 휘어진 철로, 근처의 건축물 잔해와 어슴푸레 보이는 잘린 팔다리 등이었다. 첫 번째 폭발 진동은 홍콩까지 전해졌다. 당시 우리 집은 원진두 세관 근처였는데, 문과 창문이 모두 흔들렸고, 윙윙대는 소리가 몇 분간 계속되면서 땅이 흔들렸다. 난 큰 사고가 난 걸 직감하고 불빛을 따라 현장으로 달렸다. 하지만 현장은 이미 봉쇄됐고, 멀리서 폭발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폭발의 충격이 방향을 바꾸자 불덩어리가 하늘로 치솟았고, 칭수이허 창고지역 뒤편의 칭산은 검은 연기와 불빛으로 휩싸였다. 현장 안전요원은 구경꾼들에게 즉시 떠나라고 권고했다. 만약 당시 바람이 가스 저장탱크 외부의 철근을 통과해 2층까지 들어왔다면, 선전 특구는 지도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당시 선전 칭수이허 폭발은 주거지와 비교적 먼 창고지역에서 일어났고, 구조에 나선 3천 명의 무장경찰이 맹렬한 화염 속에서 시멘트 방화벽을 세워, 폭발이 기타 위험물 보관 창고로 파급되는 걸 곧바로 막았다. 비록 사망자 수는 정보에서 발표한 수보다 훨씬 많았지만, 톈진에 비해서는 적었다. 톈진 폭발사건의 심각성에 SNS 시대의 파급 효과까지 더해져 조성된 사회 공포와 그로 인한 분노는 선전 칭수이허 대폭발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미 드러난 각종 소식을 살펴보면, 이 사고의 원인과 사후 대응, 반영돼 나온 문제는 22년 일어난 선전 칭수이허 대폭발과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1993년~2015년의 22년 동안, 중국은 WTO 가입, ‘평화굴기’로 상징된 경제번영 및 ‘세계 공장’의 발전과 쇠락을 경험했다. 세계는 1989년 잠깐의 대중국 경제제재 이후 다시 한 번 중국을 열정적으로 껴안았고, 현재 또다시 냉대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22년 동안, 중국은 수백 명의 억만장자를 배출해 전 세계에 널리 발자취를 남겼다. 유일하게 변하지는 않은 것은 체제와 점점 더 격렬해지는 권력 지대추구이다. 석유 중화학 공업은 중국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끈 원동력 중 하나이다. 중화학 공업에는 적지 않은 인화성, 폭발성 위험물이 사용되기 때문에, 생산 시설은 환경 평가를 거쳐야 하고, 생산 경영은 공안부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중국의 환경 평가는 일찍부터 부패의 온상이 되었고, 위험물 경영 심사도 지대추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 중국에는 2,489개의 유사한 중화학 공업 프로젝트가 거주지에 분포돼 있다. 이는 2,489개의 시한폭탄이 숨겨진 것과 같아, 중국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위협 아래 도망갈 곳이 없는 상황이다. 톈진 8.12 대폭발 배후의 권력 그림자 톈진 빈하이 대폭발 사고 후, 가장 의심스러운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루이하이 국제 창고 부지는 규정을 명백히 위반 2001년 국가 안감국은 ‘위험 화학물질 경영기업의 개업 조건과 기술 요구’를 정식 발표했는데, 그중 중대형 위험 화학물질 창고는 주변 공공건물, 간선도로, 광공업 기업 등에 최소한 1000m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했다. 언론 폭로에 따르면, 루이하이 국제는 4만 6226㎡ 면적의 야적장을 사용했는데, 500m 부근에 주요 간선도로인 하이빈 고속도로와 진하이 경전철이 있었고, 600m 근처에 완커하이강청 3기 주민 주택이 위치했다. 시간상으로 볼 때, 루이하이 국제 위에진루 야적장이 위험물 야적장으로 개조된 것은 2014년이며, 그전에 이미 주변의 하이빈 고속도로, 완커하이강청, 진하이 경전철 등 프로젝트는 모두 준공된 상태였다. 위의 내용은, 루이하이 국제 야적장 개조 프로젝트에서 부지 선정에 필요한 환경 평가 과정이 규정을 위반해 조작됐다는 걸 설명한다. ‘톈진 루이하이 물류 환경 문서’에 따르면, 루이하이에 환경평가를 한 곳은 톈진시 환경보호 과학연구원이었다. ...주식 매각 ‘가해자’ 찾고 있는 중국
지난 주 상하이종합주가지수(SCI)가 11.5% 하락하자 중국 규제 기관들이 국제증권 매각과 주식시장의 하락에 관한 조사를 실시 전망이다. 중국 펀드의 운용성과를 비교하는 기준이 되는 지수인 BM지수는 6월 12일 상한가를 치던 지수가 32% 하락하였으며 중국이 지난 2개월 간의 주식시장을 강화하기 위해 무역거래를 중지하거나 주식공개상장을 미루고 중개업체에 대출을 늘리도록 은행에 강요를 하여 당국이 주식시장을 상승시키려는 노력을 했다. 중국 주식시장이 과대평가가 된 이후에도 주식시장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어놓아야 하지만 당국자들은 중국 주식시장의 하락을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스스로 하기도 했다. 다른말로 하면 주식은 정치와 너무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처음부터 부드럽게 대중을 조정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주식시장과 신용을 전부 잃어버리지 않게 노력을 많이 하여 주식시장 하락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국 당국이 실시하는 가장 가혹하고 놀랄만한 조치는 중국 정부가 일부 ‘가해자’나 ‘악의적인’ 공매자와 ‘적대적인 외국인 투자자’를 단속하는 상황이 주식시장 하락의 주된 요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헤지펀드 목표 헤지펀드가 가장 최근의 희생양으로 작용했다. 규제가들은 중국 중개인들에게 일부 헤지 금융시장분석가 거래에 대응하기 위해 조사팀을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중국 관영 중국증권보(中國證券報)가 8월 21일 밝혔다. 양적무역거래를 담당하는 거래자들은 무역기회 또는 알고리즘매매를 정의하거나 데이터를 계산하거나 무역 거래 횟수를 늘려 단기분리 또는 극초단타매매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중국의 주식시장은 주식시장에서의 상품거래를 컴퓨터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방식인 알고리즘매매를 하기에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SCI는 하루 중에만 3%의 변동폭이 있었으며 지난 60일 중의 38일 동안에는 이 변화의 영향을 받았다. 충동적인 개인 투자자들이 거래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서 이윤을 얻는 경우도 있다. 시카고에 있는 헤지펀드 사무실인 시타델(Citadel LLC)은 중국 당국이 자동화된 무역거래 시스템의 문제를 추궁하며 시타델과 관련이 있는 계좌를 이달 초에 정지시키며 시타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중국 당국에서 지켜보았다. 대부분의 외국기업들이 홍콩과 상하이의 주식 거래소에 의존하여 자국의 주식시장에 접근하려는 반면에 시타델은 중국 내의 중개업체와 제휴를 맺어 중국 본토 내에서 매매계정을 개설하려는 몇 안되는 기업 중의 하나이다. 공매도 거래자 찾기? 이달 초에 소위 ‘악의적인’ 공매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요즘 가해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가 제안한 바에 따르면 중국의 주요 중개업체인 중신(中信)증권, 후아타이증권과 그레이트월증권은 이미 제한적인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서 파는 공매도거래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CSRC가 홍콩의 주식시장에 개입하는 권리가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홍콩에 위치한 중개업체에 접촉하여 고객의 무역 거래를 확인하여 중국 주식시장에서 보유하고 있는 순공매도 금액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로이터가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중국 주식을 공매도하는 행위는 반드시 중국 당국에서 정식 허가를 받은 중개업체를 통해서만 해야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중국의 모든 중개업체는 공매도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CSRC의 발언에 의하면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파는 무차입 공매도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다는 말을 했지만 우리 말을 믿지 않았다” 라고 홍콩의 국제 중개업체의 간부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외국인 투자자 처음에는 ‘적대적인 외국인 투자자’는 관계자들과 주식시장 하락이 원인을 찾기 위해 힘쓰는 중국 관영 방송 논객에게는 선호하는 주범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의 공식 매체인 신화통신은 중국인들에게 외국인 투자자들이 중국의 주가가 떨어졌다고 환호할 때 그들에게 저항할 수 있게 애국자답게 주식을 사들이자는 제안을 촉구하기도 했다. 중국공산당 내의 미디어 논객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적대적인 외국인 투자자”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이들은 사회, 정치,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적대적인 외국인 투자자’는 홍콩의 시위에 가담한 행위로 비난받은 적도 있으며, 서부 신장성에서 폭력을 선동하고 남중국해의 평화를 방해한 것과 중국인들에게 미국인의 가치를 심어줬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중국 부동산 거물, 톈진 폭발 정부 대응 맹렬 비난
중국 북부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산업재해의 구조작업을 일주일간 지켜본 이후, 노골적인 표현을 잘하는 중국의 부동산 거물이며 소셜 미디어에서 유명인이며, ...전제정치와 혁명의 틈에서 되새기는 ‘중국인 후스즈’
전반적인 서양화 주장, 계몽 운동과 어려운 문체 대신 일상 생활 쓰이는 말을 그대로 작품에 쓰자는 '백화 운동' 추진 역사상 인류사회에서 역사적 인물 한 사람을 놓쳐서 끝없는 아쉬움을 남긴 많은 사례가 있다. 일의 공로가 주가 되어 놓친 역사적 인물 장쥐정(張居正)을 예로 들자면 사람들은 만력(萬曆) 중기 이후 명나라 통치 사정이 점점 나빠졌기 때문에 ‘세상에 다신 없을 장쥐정’이라는 감탄을 내뱉었다. 그러나 생각에서부터 역사의 갈림길을 바꾸고 싶어하는 일반 사람들은 그의 가치를 알기 어렵다. 다음은 <중국인 후스즈>를 읽은 감상이다. 후스와 천두슈, 중국 현대화의 양대 표지 후스의 사상에 대해 연구한 학술 논문은 꽤 많다. 하지만 이 시대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열심히 책을 읽는 사람들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류나이슌(劉乃順)과 티엔총슈에(田崇雪)라는 두 명의 작가는 후스의 일생을 장편의 문학 다큐멘터리 극본으로 쓸 예정이다. 다시 말해 TV드라마라는 형식을 통해서 더 많은 중국 사람이 후스를 알게 하고 이해하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작가는 역사 재현이라는 취지로 이 책은 결코 해학적으로 서술한 책 따위가 아니라 대략 모든 이야기가 모두 본질을 가지고 있다. 역사에 흥미는 있지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어하지 않는 현대 중국인에게 이 책은 한 권의 좋은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책 속 후스와 진독수(陳獨秀) 두 사람의 길은 다르지만 우정의 끈은 끊어지지 않은 ‘은원지교’에 매우 흥미가 있다. 진독수는 만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5·4운동은 중국 현대사회 발전에 있어 필연적인 산물이다. 맞든 틀리든 간에 그 몇 사람에게 잘못을 돌리면 안됐다. 그러나 채원배(蔡元培)선생, 스즈(適之)그리고 나는 바로 그때 사상언론에서 주요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이 말도 물론 괜찮다. 하지만 사상에 영향을 준 결과로 말하자면 진씨(陳氏)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1910~1920년대에 자유주의, 무정부주의, 니힐리즘 그리고 사회주의 등 각종 사조가 한꺼번에 중국에 들어왔고, 당시와 그후 20여년간 중국 청년 지식인 대부분은 전 세계에 성행하는 좌경 사조와 사회주의 사상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후스가 살던 시대는 때마침 중국 현대화가 사거리 프로세스를 배회하던 시기였다. 여기서 ‘사거리’라는 것은 중국 지식 엘리트들이 서양의 양대 정치 사조에 취사선택하던 시기를 말한다. 그때, 영미 제도를 숭상하는 자유주의 정치사조, 프랑스대혁명과 러시아10월 혁명을 숭배하는 사회주의 정치 사조가 동시에 중국에 들어왔고, 당시 중국 지식계의 사상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그 후 중국 정치노선의 선택, 즉 영국과 미국이 대표하는 건전한 발전과 프랑스와 러시아가 대표하는 격동적인 발전 방식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후스는 미국에서 10년 동안 유학하는 동안 실험주의 철학의 대가인 두웨이(杜威)를 스승으로 모시며 자유주의에 점차 깊이 스며들었고 평생 미국 민주정치에 정례를 표했다. 줄곧 미국을 근대화의 성공 전형으로 여겼으나 낭만주의에 심정을 관철시킨 한결 같은 프랑스대혁명에는 비판적인 태도를 지니며 ‘낭만병’을 ‘게으름병’이라고 꾸짖었고, “정확한 방법은 정확한 건축 재료 위에 짓는 것이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만년 까지 후스는 처음의 소망을 바꾸지 않았다. ‘미국 개국은 단지 3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인데, 300여 년 동안 그렇게 큰 지역을 개척하였고, 문화 수준이 가장 높고 사람들의 생활이 가장 안락하며, 국력이 가장 큰 국가가 된 것은 인류 역사의 기적이다!’ 일생을 후스와 친하게 지냈던 진독수는 오히려 프랑스대혁명의 열정적인 숭배자였습니다. <프랑스인과 근세문명>이라는 책에서 그는 ‘근대문명의 특징은 가장 고대의 도리(道理)로 변할 수 있어서 민심과 사회가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인권설이고, 두 번째는 생물진화설이며 세 번째는 사회주의다. 이 세 가지 근대문명은 모두 프랑스 사람이 하사한 것이다. 세계에 프랑스가 없다면 어쩌면 오늘날 어둠에 대해서 여전히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고 썼다. 진독수는 프랑스인의 혁명 정신을 추앙했고, 프랑스 문학 또한 매우 찬양한다. <유럽문예담>에서 프랑스 문학 예술의 각 유파 예를 들어 고전주의, 현실주의, 낭만주의, 자연주의를 중국에 소개하였고, 프랑스문학에 대한 중국인들의 흥미를 일으켰다. 러시아 10월 혁명이 발생한 후, 진독수는 열정이 충만하게 <러시아혁명과 우리 국민들의 착오>라는 책을 발표했다. ‘이번 혁명은 민주주의의 승리다’고 찬양했고, ‘18세기 프랑스의 정치혁명, 20세기 러시아의 사회혁명 당시 사람들은 모두 온갖 욕설에 대치하였으나, 그 후의 역사가들은 모두 그들을 인류 사회 변동과 진화의 관건으로 여겼다’고 단언했다. 후스와 진독수 두 사람은 1910~1920년대의 중국 청년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후스는 자유주의를 깊게 믿었고, 미국의 민주를 추앙하며, 5·4시기에 실험주의를 힘껏 홍보했다. 표면적으로는 그의 지도 교수인 두웨이의 실험주의 철학 이론을 널리 퍼뜨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미국 민주제도 이론의 정수를 발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중국인들에게 미국의 민주제도를 소개할 때, 후스는 특히 미국 민주의 정수는 여전히 국민에 의한 정치이며, 이것은 마침 그 당시와 그 후에 미국 민주제도를 연구한 사람들이 비교적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진독수는 프랑스대혁명에서부터 러시아의 10월 혁명까지, 루소의 급진적 민주주의부터 레닌의 사회주의까지 걸어왔으며, 중국 공산당의 창시자 및 초대 서기가 되었다. 그는 단지 러시아의 방법을 모방하는 방법과, 혁명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낡은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제도를 강력하게 추진해야만 중국이 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깊게 믿었다. ...링완청은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할까?
중국 부호가 미국으로 도망치는 사례는 부지기수지만 중난하이의 이번 주인을 걱정하게 만든 건 링완청(令完成)과 궈원구이(郭文貴) 두 사람이 단연 으뜸이다. 앞서 링완청은 형인 링지화가 훔친 2700건의 기밀문서를 건네받아 외국으로 도망쳤지만 아직 행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궈원구이는 중국 정부의 일급기밀을 손에 넣었다고 자처하면서 보쉰 기자와의 인터뷰에 여러 차례 응한 후 종적을 감췄다. 현재 궈원구이의 종적은 확실치 않지만 링완청의 행적은 ‘뉴욕타임스’ 포시드 기자에 의해 만천하에 드러났다. 중국 차이신망은 ‘뉴욕타임스’가 제공한 단서를 토대로 Google 맵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검색해 중국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이미 확인된 세부 내용 아래 세부 내용은 출처를 명기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1. 링완청의 호화주택 상세 내용 포시드 기자는 ‘링지화 동생 미국으로 잠적, 정치적 보호 찾나’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부동산 기록을 살펴보면 링완청은 시에라네바다 산맥 아래 7800제곱피트(약 725㎡)의 주택을 보유했다.” 단 주소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링완청의 호화주택 주소는 다른 기사에서 이미 언급되었다. 올해 3월 7일 중국 ‘시나 해외 블로거’ 야오훙언은 ‘미국 호화주택은 공짜로 줘도 살 수 없다’(blog.sina.com.cn/yaohongen)라는 글에서 이 호화주택의 주소를 폭로했다. “Wang Cheng으로 검색하면 그가 보유한 캘리포니아 루미스의 부동산을 찾을 수 있다. 소유권(Ownership)을 보면, Li Ping이라는 사람과 함께 각각 50%씩 소유하고 있다. Wang Cheng과 Li Ping은 누구인가? 물론 유명인으로, 누구와 관련됐는지 쓴다면 아마 이 글은 게재하지 못할 것이다. 주택 주소는 6105 Terracina Ct, Loomis, CA 95650으로 루미스는 캘리포니아의 주도 새크라멘토의 동북부에 위치한다.” 야오는 블로그에서 링완청이 미국에서 링완청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Wang Cheng이라는 이름의 비자를 사용한다고 폭로했다. 차이신망의 보도에 따르면 외부 사람들은 링완청이 ‘왕청’이라는 가명으로 사업한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의 아내 리핑은 산시 사람으로 CCTV 앵커 출신이다. 따라서 위의 두 사람은 의심할 여지 없이 링완청 부부이다. 2. 도주 시기는 2014년 9월 이전에 이미 결정했다 올해 8월 4일 차이신망은 이렇게 폭로했다. “56세의 베이징 상인 링완청은 지난해(2014년) 가을 실종됐다. 당시 일부 소식은 그가 링지화의 아들 링후젠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고 전했다.” 이때 나는 이를 거의 믿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다음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차이신망은 2014년 11월 26일 ‘링완청의 부 이야기’ 기사에서 이렇게 밝혔다. “둘째 형 링정처가 2014년 6월(정확한 날짜는 6월 19일) 중앙기위 감찰부 사이트에 심각한 기율위반으로 조직의 조사를 받은 지 4개월 후 55세의 베이징 상인 링완청도 인신의 자유를 잃었다.” 외부 사회에서는 이 내용을 인용해 그의 ‘해외 도피’를 부정했다. 차이신망이 ‘인신의 자유를 잃었다’고 한 것은 그가 해외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걸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시끌벅적한 생활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이민생활을 ‘이민 감옥’에 갇혔다고 말하곤 한다. 올해 8월 4일 차이신망은 장위안안 워싱턴 특파원의 ‘링완청 미국 은둔 확인, 캘리포니아에 725㎡ 저택 소유’ 기사를 보도했다. 그중 일부 내용을 보면 링완청 부부가 미국으로 달아난 시간을 추측할 수 있다. “부동산 판매망에서 발췌한 내용을 보면 링완청 부부는 2013년 9월 250만 달러에 이 부동산을 매입한 후 약 반년 후인 2014년 1월 22일 389만 달러에 매물로 내놓았다. 이후 가격이 떨어지자 팔지 않았고 2014년 5월 23일 매물을 취소했다. 2014년 9월 16일 다시 매물로 내놓았지만 275만 달러에 팔지 않았고 2014년 11월 3일 매물을 취소한 후 더는 팔지 않았다.” 링정처가 6월 19일 조직의 조사를 받은 후 2개월 후인 9월 16일 링완청은 미국에 나타나 부동산 매도를 계획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몇 가지 퍼즐 ...중국 주식 ‘대마불사’ 정책, 경제 대공황 불러올 수도
중국 주식 시장은 7월 지난 6년간의 실적 가운데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주식 시장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에서 당국의 과도한 개입은 투자자들에게 해답은커녕 의문만 품게 했다. 상하이종합주가지수(Shanghai Composite Index)는 지난주에 10% 하락했고 7월엔 14% 하락했다. 이는 2009년 8월 이후 한 달 동안 최고 많이 하락한 수치다. 하지만 주가 하락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해주진 않는다. 주식 시장은 거대한 변동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이 주식 하락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조처를 하기도 전에 6월 12일과 7월 8일 사이에 시장의 32%가 하락했다. 당국은 재정 기업의 수익을 강화하고 단기 판매를 금지하며 주식을 사들이기 위해 국영기금을 사용하도록 권고하는 조처를 했다. 상해종합주가지수는 7월 23일까지 일시적으로 18% 반등했지만, 주식 시장을 관리하는 중국 당국에 대한 신뢰성 하락과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유동성 변동이 증가했다. 각종 매각에도 중국의 주식 시장은 여전히 과대평가 됐다. 은행으로부터의 도피 투자자들은 현재 중국 주식 시장의 흐름에서 피해야 할 대상이 있다. 중국의 재정 부문에 대한 투자, 특히 대규모 은행에 대한 투자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중국의 은행 부문에는 거대한 장애물 2가지가 있다. 주식 시장에 거품이 있음에도 은행은 위험 부담을 떠안은 채 재정 지원을 했다. 이와 동시에 저금리 상황도 압박 요인 중 하나다.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China Securities Regulatory Commission, CSRC)는 시장을 강화하려는 최근의 노력이 현재 하락하고 있는 일부 주식 가격의 ‘제도적 위험’에 맞서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지난주에 밝혔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실제로는 은행에 거대한 ‘제도적 위험’을 가져오는 허점이 있다. 로이터 7월 28일 자 기사는 중국은행들이 ‘주식 시장에서 은행의 재정적 노출에 대한 대처’를 시도했다고 보도했다. 그레이마켓(회색시장) 업체들, 즉, 소규모 상업 은행, 자산 관리 기업, 소비자 재정 기업, 또는 신탁을 관리하는 기업에 중국은행들이 빌려준 자금의 액수를 살펴보면 재정적 노출에 대처하기란 어렵다. 제이캐피털리서치(J Capital Research)는 연구 조사를 통해 중국의 은행 간 대출 비용이 2015년 상반기에 상승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6월 총 레포(repo: 환매조건부매매) 거래와 역(逆)레포(reverse repo) 거래는 41조 위안(6조 6000억 달러)으로, 1월에 비해 19조 위안 증가(또는 86% 상승)했다. 레포(repo: 환매조건부매매)는 회사 담보증권의 단기 대출을 의미한다. 최종적으로 자금이 흘러들어 갈 곳을 알 수 없고 자금 사용에 대한 투명성이 없지만, 자금이 쓰일 가능성이 큰 곳은 증거금융자금(margin financing)을 이용한 주식 시장이다. 더 나아가 중국 인민은행(PBOC)은 순이자마진(net interest margin)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춰 은행들을 압박해 금리를 낮추게 할 것이다. 또는 차입대출이자율과 대출 금리에 차등을 둘 것이다. 단기적 혼란에서 찾은 기회 중국 당국은 시장 지원을 유지할 것이라고 확답했고 공매자와 ‘의심스러운 거래 행위’에 가담한 사람들을 기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또한 상해종합주가지수가 7월 31일보다 18% 상승한 4500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주식을 사들일 것이라는 종합증권회사와 국가가 운영하는 자산 관리자들의 약속을 받아냈다. 중국 당국은 상승하는 주식 시장을 사회적 안정과 동일시한다. 이는 공산당 체제에서 가장 불확실한 요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중국은 시장의 장기적 개혁안을 희생해 시장 내 단기적 안정과 바꿀 가능성이 있다. 위에 제시된 모든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이다. 시장이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은 내용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특히 소매 투자자들의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다. 세련된 거래자에겐 변동성과 시장 혼란이 때로는 대단한 가치가 될 수 있다. 7월 주식 시장 폭락 기간에 상해증권거래소에서 대규모 단면 주식 거래는 몇 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며칠 동안 중지됐다. 이는 기업과 부문에서 단기적 이윤을 낼 수 있었지만, 거래 중지는 그들의 관련 가치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컬럼비아 스레드니들 인베스트먼트(Columbia Threadneedle Investments) 의 국제 리서치 총괄인 로버트 매커너히(Robert McConnaughey)는 최근 시장 회전이 “시장 내의 기저 펀더멘털과 시장의 가치 사이에 중요한 틈의 분산을 형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료와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기술, 그리고 현재 상황을 조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신중한 투자자라면 현재의 ‘정리 기간’에도 불구하고 주식을 획득할 흥미로운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1929년의 그림자 중국공산당 체제가 주식시장과 관련한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중국 주식시장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의 장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몇 년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만들어 놓은 금융시장의 다양화와 개혁을 시도하려던 노력, 그리고 그에 대한 신뢰성은 현 금융시장에서 볼 수 없다. 중국의 흔한 운용방식은 주식시장을 지원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풀리지 않는 주요 부문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는 것이다. 이런 대규모 위험 부담을 권장하는 방식은 과도한 영향력을 부여하고 기업과 정부가 많은 부채를 떠안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중국 주식 시장의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하려면 중국의 정책수립자들은 반드시 현재의 정책을 완전히 개정해야 한다. 카네기재단(Carnegie Endowment) 전 세계은행(World Bank) 중국지부 중국 총괄인 유콘 후앙(Yukon Huang)은 “규정을 보호하고 위험부담을 완화하는 규제자 역할을 하는 정부는 순수 가치를 상승하는 사안을 지지한다는 상충적 압박에 타협해서는 안 된다” 며 “이를 실행하려면 규제 기업의 선임 관계자들의 역할과 책임, 예를 들어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 같은 곳은 중국 지배당원 관계자와 명백히 분리돼야 하고 순수 시장이 또 다른 하나의 시장이라는 확실성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문제가 존재한다. 중국의 금융시장은 수요, 공급, 기저 경제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시장이 아니다. 시장 자체에서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건전한 시장 성장 패턴을 촉진하는 방법 대신 중국 당국은 중국 내의 거의 모든 경제 여건에 간섭한다. 이는 부동산부터 국영기업, 은행과 주식에까지 ‘대마불사(大馬不死)’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겐하임파트너스(Guggenheim Partners) 투자 총괄 담당 스캇 미너드(Scott Minerd)는 “만일 중국 정책수립자들이 이른 시일 내에 노선을 변경하지 않으면 현재 중국은 지난 1929년 미국에서 발생한 주식 시장 폭락과 유사한 사태를 겪을 것이다”고 한 기고문에서 밝혔다.7월 A주 긴급 구제, 권력과 시장의 대결
중국 정부의 강력한 증시 구제를 살펴보면 그 방법은 정말 다른 나라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이다. 마침내 7월 9일 증시 방향이 급변해 주가지수가 빠르게 상승했고, 7월 13일까지 상승세를 유지했다. 중국의 주식 사태가 그리스 채무 위기보다 심각하다고 우려하던 언론은 순식간에 국제 언론에서 사라졌다. 여론이 이런 증시 구제가 중국 정부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닌지, 중국의 미래 경제 발전에 정말 이로운 것인지 토론하기 시작할 때 나는 오히려 다른 문제를 생각했다. 응급조치의 시작에서 볼 때 베이징은 사실상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예행연습을 한 차례 겪은 것과 같다. 증시 구제 조치로 드러난 정부의 독재 본색 이번 증시 구제는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단계는 증감위, 중앙은행에서 할당했기에 조치도 비교적 적었다. 6월 28일 중앙은행이 공포한 기준금리 및 지준율 인하는 상당한 조치로 여겨졌지만, 증시는 오르지 않고 오히려 하락했다. 7월 6일 이후 3일간 증시가 폭락하자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다. 증시 상황이 국가 안보 분야로까지 격상된 것이다. 증감위, 은감위, 중앙은행, 재정부, 국자위 등이 증시 구제에 나섰을 뿐 아니라 공안부도 ‘악의적인 공매도 세력을 철저히 조사’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렇게 강력하게 증시를 구제하는 데는 물론 시진핑 주석의 명령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가적 시스템’을 발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7월 8일 정오, 증감위는 긴급히 ‘증감발 (2015) 51호’를 공포해 두 가지 조치를 내놓았다. 첫째, 6개월 이내에, 상장기업의 지배주주와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주주 및 이사, 감사, 고위층은 2차 시장을 통해 해당 기업의 주식 수를 줄일 수 없다고 규정했다. 위의 관련 인원이 규정을 위반하고 해당 기업의 주식 수를 줄이면, 엄격한 처벌을 받는다. 둘째, 각 증감국은 최근 6개월 내 해당 기업의 주식 수를 줄인 대주주 및 이사, 감사, 고위층을 면담하고, 그중 5억 이하로 줄인 주주는 누적 감소 금액의 10% 이상으로 주식 보유를 높이고, 5억 이상으로 줄인 주주는 누적 감소 금액의 20% 이상으로 주식 보유를 높일 것을 명확히 요구했다. ‘국가적 시스템’의 위력은 역시 대단했다. 곧바로 상장기업 655곳이 주식 수를 높이거나 재구매할 계획을 발표했고, 기타 금융기관도 소문을 듣고 즉시 움직였다. 중커증권과 자오상증권은 1억 6300만 위안을 들여 상장기업 3곳의 주식을 사들였다. 중국증권금융주식유한공사가 증자, 채권발행, 동종업 대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획득한 유동성 지원은 7월 9일까지 수천억 위안에 달했다. 국영기업의 반부패를 두려워한 국영기업 관리층은 지난해부터 증시를 통해 주식을 매매했고, 당해 경영자매수라는 국영기업 개혁을 통해 가로챈 주식을 ‘판매해’ 올 상반기 총 5천억을 현금화했다. 이 주식은 원래 고위층이 국영기업 개혁을 이용해 아무런 투자 없이 이익을 챙긴 것이다. 지금 당 중앙이 이런 주식 일부를 토해내 국난을 넘기고, 대부분 주식을 남긴 것은 그들의 사정을 봐준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고위층의 지도 아래, ‘국가팀’은 일치단결해 주식을 사들였고, ‘공매도’하는 시장세력(즉 외부세력)과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대결을 벌였다. 마침내 2015년 7월 A주 증시 사태에서 승리해 주가지수를 떠받쳤고,(매도를 제한했기 때문에 ‘증시를 떠받쳤다’라고 할 수 없다) 중소 투자자를 포함한 국내 투자자의 믿음을 안정시켰다. 2008년 금융위기가 미국에 도래했을 때 ‘월스트리트저널’은 ‘당 지부가 월스트리트에 공수한다’는 사설을 통해 오직 중공만이 미국 증시를 구할 수 있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후 당 중앙이 중국 증시에 내려와 주가지수를 성공적으로 떠받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붕괴되던 증시 회복, 시 주석 전능 이미지 공고 7월 5일, 베이징의 다양한 증시 조치가 실패하자, ‘만일 2015년 증시가 붕괴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라는 문장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문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만약 주식시장, 부동산시장, 실물경제 및 은행 시스템에 위기가 나타나면, 다음에 충격을 받을 곳은 분명히 환율이다. 중앙은행은 예외 없이 주식시장과 환율시장 양측에 조치를 취할 것이고, 그 결과 위안화의 국제화는 여기서 끝날 것이다. 홍콩은 다시 한 번 막대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중국은 열 차례 넘게 불마켓이 전복됐지만, 시의 결단력과 그가 이끄는 증시 조치의 용맹함은 결코 양 전임 총서기가 따라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번의 최대 특징은 경찰과 국안이 증시 구제에 개입한 것이다. 7월 9일, 신화사는 “당일 오전 멍칭펑 공안부 부부장이 부대를 이끌고 증감위에 도착해, 증감위와 함께 최근 악의적으로 주식과 주가지수를 공매한 단서를 조사하고, 위법 행위는 강력히 제재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공안과 국안이 증시 구제에 개입해 어떠한 구체적인 행동을 했는지, 외부에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7월 12일 보쉰이 전한 소식에 따르면, 7월 9일 오후 6시까지 국안국은 대형 지하 금융기관 286곳을 조사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약 3조 위안의 현금을 압류해, ‘국내 금융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명으로 국고에 환수했다는 것이다. 다만, 다른 소식통이 없는 탓에 한동안 근거 없는 소문으로 여겨졌는데, 어쨌든 참고해 볼 만 사항이다. 최근 주가 하락은 매우 위급해 뉴욕 증시까지 하락했다. 일부 국제 옵서버들은 중국 증시로 인해 세계 금융위기가 다시 폭발할 것으로 여겼고, 그 결과 ‘전능’하다고 여겨진 시진핑의 통제 능력에 강한 의심을 품었다. 하지만 7월 A주 증시 구제로 사람들은 시의 강세와 결단력을 다시는 의심하지 않았고, 시의 강세가 중국의 운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증시 구제에 긍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대부분 중국인)은 증시 구제로 한 차례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한다. 일부 평론가들은 완곡하게 이번 경험을 거울삼아 다시는 이런 위기를 맞아서는 안 된다고 제안했다. 증시 구제를 찬양하는 목소리가 높지 않은 이유는 이번 증시 사태는 ‘정책성 불마켓’이 자초한 화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에, 관영 언론은 무안하게 이 사실을 회피하면서, 오직 “중요한 순간에 당이 당과 전 국민을 인도해 재난을 성공적으로 종식시켰다”라고만 말할 뿐이다. 7월 A주 증시 구제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위기가 정권 교체를 일으키는 촉매제가 되는 동시에, 중국이 시장화 개혁을 통해 시장경제 체제 국가의 해외 투자자가 되길 희망한다. 그들은 중국이 시장화 수준을 높여 국제 사회에 융합되고, 세계 각국과의 무역 거래를 막는 장애물을 감소시키길 바란다. 이런 견해는 7월 13일 ‘파이낸셜 타임스’의 ‘중국의 증시 구제 조치가 위안화 개혁을 위협한다’는 기사에 잘 나타나 있다. 기사에는 일부 사람들의 실망을 언급했다. “정권을 잡은 중공은 결국 중국 경제와 금융 시스템 주요 부분의 통제권을 포기할 수 없었다… 중국에 있는 외국 투자자도 종종 원망을 한다. 그들은 자신이 좋지 않은 감독 분위기에 처했다고 느끼며, 관료주의의 높은 시장 진입 장벽은 여전히 그들을 슬프게 만든다.” ...중국 신사이버보안법, 국내외 IT 기업 타격
지난 7월 8일 중국에서 신(新) 사이버보안법이 승인되어 IT(정보통신) 산업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통제권이 강화되었다. 정치적 사안에서부터 개인정보까지 모든 내용을 아우르고 있는 이 사이버보안법은 외국 IT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뿐더러, 중국 국내 IT 분야의 혁신도 저해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보안법은 ‘사이버 공간에 대한 통제권과 국가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68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은 보안을 강화하는 데 더해, 정보 통제와 검열을 늘리고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제한하려는 계획이다. 그 중 돋보이는 것이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와 IT 기업들이 중국에 데이터를 저장해야 한다는 조항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요건 덕분에 흔히 국가의 적으로 불리는 반체제 세력이나 국권 위협자로 간주하는 인물을 추적하기 수월해졌다. 하지만 현재 이 법이 중국 내에서 수집된 데이터에만 적용되는 것인지, 중국 기업이 타국에서 수집한 데이터에까지 적용되는지는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 제 50조에서는 정부에 ‘유사 시’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전 지역의 인터넷 접근을 차단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즉, 사이버 공간에 계엄령이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불리한 상황에 놓인 외국 기업 주중 유럽연합 상공회의소 조르그 우트케 소장은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중국의 수많은 법을 망라해 제일 우려가 되는 사항은, 표현이 모호하여 법이 어떻게 시행될 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스튜어트 하그리브스 홍콩 중문대학교 IT 법학 교수는 중국 내 외국 기업들이 불리한 입장에 놓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규정으로 중국 내 생산업체와 프로그래머들이 유리해질 것이다. 외국 기업이 소스 코드나 디자인 명세서를 중국 정부에 넘겨주지 않으려 할 것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외국 정부가 나서서 그를 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그리브스 교수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밝힌 내용이다. 중국 내의 외국 IT 기업들은 앞으로 경영 계획에 더 많이 맞부딪히게 될 것이고, 이 상황을 걱정하면서 인권 관련 문제를 제기하는 주주와 미래의 공공 이해관계자들도 많아질 것이다. 매출 감소 중국 공산당 정권이 외국 정부와 기업에 대한 정보 해킹을 허가했다는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중국의 7월 8일 발표는 매우 특이한 데가 있다. 최근 어처구니 없는 예로, 미국 인사관리부에서 몇 차례 보안 침입이 발생해 수백만 건의 정부 인사 정보가 유출되었다. 정부 주도 하에 해킹을 저질렀다는 혐의에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중국 정부는 올해 초 정부 대상판매 회사 리스트에서 시스코 시스템, 시트릭스 시스템, 애플을 제외해버렸다. 중국 정부는 보복 차원에서 해당 미국 IT 기업 제품에 스파이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 있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 IT 기업은 7월 8일 사이버보안법 발표 이전부터 이미 중국 내 매출이 감소하고 있었다. 지난 5월 분석가가 낸 수익 결산을 보면, 시스코의 중국 내 매출이 지난 분기 대비 20% 하락했다고 시스코 시스템 퇴임 CEO인 존 챔버스씨가 밝혔다. 사실 시스코는 그동안 중국 검열 규정을 준수하여 하드웨어를 제작했고, 전해진 바에 따르면 반체제 인사들을 추적하는 복잡한 작업까지 도와주는 등 오랫동안 중국 정부와 협업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 노력 이후 시스코가 맞은 결과는 매출 감소인 것이다. 혁신 저해 신(新) 사이버보안법에는 IT 산업이 ‘안전하고 통제 가능해야 한다’는 표현도 있어, 중국 정부가 자국 내 모든 기업에게 이른바 ‘하드웨어 개방권’을 내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 IT 기업 측의 의견이다. 중국은 이러한 조치를 통해 기업들에게 암호화 키와 소스 코드마저 넘겨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지적 재산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 해당 표현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우선, 중국 정부는 기업 등록 소스 코드를 이용해 자국 IT 산업의 성장을 빠르게 추적할 수 있다. 현재 중국 정부는 IT 산업을 확장하면 수익 및 일자리가 창출되어 GDP 추정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외국 자동차 기업이 중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기술과 노하우를 넘겨줘야 했던 선례가 있었다. 중국 국내 자동차 업체의 매출이 여전히 일본과 유럽 업체에 뒤처지고 있지만, 지식 이전을 강행한 덕에 연구 개발 기간을 수십 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성장하고 있는 자국 스타트업까지 억제하는 과정에서 타격이 있을 수 있다. 중국이 IT 분야를 강압적으로 규제하는 행동은 최근 인터넷 스타트업 기업에 대해 투자와 혁신을 장려하던 중국 정부의 모습과 상반된다. 신(新) 사이버보안법에서 요구하는 대로 매년 검열을 진행하고 소스 코드 접근을 허락하면 관료주의는 심화되고, 기술 연구 속도가 둔화될 것이며, 외국 벤처기업의 직접 투자까지 무산될 수 있다. 또한 중국 스타트업 기업의 안보에 대한 불신으로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는데, 이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불가피하게 중국 정부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어보안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수적 대처가, 최근 주식 시장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상황도 실패로 돌아갈 것임을 입증하고 있다.중국 증시, 공산 정권 고수익 효자상품
최근 중국인 수백만 명이 당국의 주식 거래 장려로 주식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중국 주식시장은 시작부터 중국공산당의 통제 아래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증시로 국영기업의 금고를 채우고, 국영기업 CEO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한 일종 ATM(현금자동인출기)으로 여긴다. 그 와중에 소액투자자들의 저축이 고갈되어 버리는 것이다. “국영기업들을 가난에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증시가 필요하다.” 주룽지 전 총리가 재임 중 한 말이다. 중국 공산당은 증시를 이용해 3년 안에 국영기업을 가난에서 탈피시키려는 목표를 세웠다. 경영이 부실하고 유지가 힘든 국영기업들을 증시에 상장시키면서 일이 시작됐다. 이러한 방침으로 주식제도 개혁과 주식상장은 오랫동안 국영기업에 제한되어 있었다. 개인 소유 기업은 대중의 투자를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으로 국영기업은 증시를 투자 기회로 활용했다. 모(母)기업의 계열사들이 현금 흐름을 끌어오는 ATM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증시는 “10년 만에 100년에 이룰 진보”를 이뤄냈다. 타이캉 생명보험 천동셩 회장에 따르면 주룽지는 모든 기업들이 증시에 상장되는 것을 허락하는 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더 나아가 당시 주요 아젠다가 자본시장 개혁이어서 모든 지방정부에 목표치가 할당되고, 모두가 그것을 시행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이것이 중국의 자본시장이 성립하게 된 방식이라고 천 회장은 말했다. 중국 증권시장은 탄생부터 국영기업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풀어주기 위한 펀드를 조성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라며 “왜 우리가 우리 자본시장을 잘 운용할 수 없는가? 총리가 하라고 하면 국영기업들이 상장되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증권시장은 자금세탁 기구 중국 국영기업의 중요한 개혁은 소위 자사주 매점 방식이다. 외부 세계에서는 이것을 이사들이 권력을 이용해 국가 자산을 분할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국영기업의 최고 중역인 공산당 고위 지도층과 그 가족들이 이 개혁의 최고 수혜자들이다. 시진핑이 최근 국영기업 이사들의 호시절을 끝내버렸다. 지난 2년간 중국 당국은 국영기업은 궁극적으로 당이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리고 2014년 11월에 ‘주요국영기업개혁 국가위원회’가 발족했다. 18대 전국인민대표회의 후 반부패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국영기업 임원이 해고되면서, 국영기업 임원들은 자신의 보유 주식이 부패로 분류될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들은 서둘러 주식을 현금화했다. 2014년 10월 17일까지 중국의 상장기업 임원들의 주식 보유는 상당히 감소했으며, 470억 4300만 위안(70억 6800만 달러)이 현금화 됐다. 2015년 전반 6개월 동안 국영기업은 또다시 5000억 위안(810억 달러 )을 추가로 현금화했다. 역사적 기록이다. 이들 임원들이 국영기업과 증시를 자금세탁기구로 이용했음을 보여 준다. 주주들의 투자금 고갈 1992년 이래 중국 증시는 10번 이상의 큰 부침을 경험했다. 대체로 득보다 실이 컸던 투자자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시장에서 도박을 계속하고 있다. 2008년에 A주(외국투자자들에게 개방된)시장이 70% 이상 하락했다. 상하이 증권뉴스가 중국 전역의 2만 5000명 이상의 투자자들에게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90% 이상이 돈을 잃었다. 돈을 잃은 사람의 60% 이상이 주가의 70% 이상 손실을 보았다. 6%의 투자자만 이익을 냈다. 2013년 중국증시는 아시아에서 최악의 실적을 내고 있었다. 시나닷컴이 2014년 1월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2013년에 약 65%의 주주들이 손실을 보았다. 주식투자로 인해 32.2%의 투자자들의 생활수준이 심각하게 저하됐으며, 9%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전반 6개월 동안 중국 투자자들의 손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5월 마지막 2주 동안에 시장에서 13조 2600억 위안(2조 1480억 달러)이 증발했다. 투자자당 평균 손실액이 14만 7000위안(23814 달러)에 이르러, 연간 국민소득의 거의 3배에 이른다. ‘2015 전반기 증시 투자자들의 손실’이라는 보고서가 제시한 통계다. ...“중국 혁명, 이미 시작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혁명을 끝없이 반복하기 위해 결성된 정치 조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혁명을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혁명은 중국에서 이미 진행 중이며, 그 결과가 곧 나타날 것이다. 현 정권의 큰 모순 중 하나가 창당 이념과 실제 행동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학생들은 마르크시즘(최소한 중국 공산당판 마르크시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당수에 관한 정치 수업을 전부 들어야 한다. 사실 중국의 권력 있는 부호들은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에 대한 지지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 이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보험으로, 현 정권의 합법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하지만 중국 인구 14억 중 60%로 추정되는 빈곤층에게 중국 공산당의 사상은 빈약할 뿐이다. 게다가 20년 가까이 일말의 변화도 없었던 사회 구조 속에서 극빈곤층은 신분 상승의 길이 막힌 반면, 부호들은 끊임없이 국가와 공공 자산을 제멋대로 약탈하는 상황 속에서, 빈부격차는 격화되기만 할 것이다. 정통 마르크시즘에서는 엘리트 부르주아 약탈자를 공산혁명의 대상으로 본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이러한 엘리트 부르주아 약탈자로 전락한 지도 벌써 오래이다. 이제 사회 최하위층에게 중국 공산당이라는 역사상 최악의 독재 정권을 타도할 정치적 타당성이 생긴 것이다. 중국의 현 정권의 이념 원칙이 오늘날 양날의 칼이 되었음에도, 중국 공산당은 이를 절대 포기할 기색이 없다. 덩샤오핑 전 최고 지도자는 재임 중 경제 및 타 개혁에 대해 개방적이었으나 마르크시즘과 마오쩌둥 사상을 부정한 적은 없다. 혁명 지도자를 찾아 중국 국민들은 마르크스 혁명과는 다른 종류의 혁명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다. 이들은 마르크시즘이라는 무기를 버리고 대신 보편적인 민주주의 가치를 수용했다. 일부는 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가 즉시 제도화되는 완전한 민주혁명을 바란다. 또 한편에서는 중국 공산당을 타도하여 부에 대해 균등한 기회를 가지더라도, ‘사회 안정’을 위해 당의 구성은 유지하기를 바라고 있다. 후자는 ‘민주 혁명’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현 정권과 가장 연루되어 있는 이들이다. 트위터나 웨이보 상에 개혁에 대한 의견 표현이 많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현재 이렇게 혁명에 대한 의견이 확산되고 잠재적 혁명 대중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이 개혁을 이끌어나갈 조직이나 지도자는 아직 없다. 이는 창당 과정에서도 등장했던 ‘조직’에 중국 공산당이 병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이다. ‘검열’, ‘폐쇄’, 체포’는 중국 공산당이 중국 내 모든 조직을 진압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북클럽, 비영리단체, 대학 곳곳에 정보원들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공맹(OCI: Open Consititiution Initiative)이나 중국지방도서관(China Rural Library)와 같은 시민단체와 해외지원 비정부기구가 폐쇄되었고, 쉬즈융, 우간과 같은 다소 유명한 활동가들마저 연행되고, 석방권도 제한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 중국 공산당의 검열이 철저했지만 한 정치 운동가가 중국 혁명 대중을 이용하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충칭에서 당 서기로 재임할 당시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보시라이는 마오쩌둥의 영향을 받은 좌익 사상을 공표하고 문화대혁명 방식으로 ‘혁명 가요 부르기’ 및 ‘조직 폭력배 소탕’ 캠페인을 추진하여, 약해진 충칭 시민의 공산주의 정신을 일시적으로 부활시켰다. 다수 중국 공산당원들과 일반 시민들은 보시라이의 말을 신뢰했고 그가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줄 지도자라고 믿었다. 중국 공산당이 경쟁자를 용납하지 못하는 탓에, 시진핑 주석은 보시라이가 인기 있던 초기에 ‘비조직적 행동’과 부정부패를 이유로 그를 숙청했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이었을 뿐이다. 혁명 대중들은 이미 카리스마 있는 유명 지도자를 맛보았고, 모든 상황은 언제든지 다시 수면으로 떠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청의 최후 중국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씨가 2010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혁명의 씨를 말려버렸고 정부는 특히 ‘혁명’ 조성에 매우 민감해졌다. 지난 6월 14일자 인민일보의 특집 기사 5개가 독재 정부를 타도하는 운동인 ‘색깔 혁명’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민주주의 체제는 중국에 억지로 융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사에 따르면 중국은 ‘색깔 혁명’의 침투와 확산에 주의해야 하며, ‘해로운’ 서양 세력들이 그 동안 끈질기게 중국 공산당을 잠식하고 축출하고자 했으므로 서양 제도와 서구화에 대한 미신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는 ‘사회 안정’ 촉진을 위한 지출 전략을 고수하고 있지만, 이는 중국 경제 침체와 실업률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면서 소용이 없어질 것이다. 사실, ‘혁명’이란 단어가 중국 인터넷 상에 더 잦은 빈도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혁명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미국의 ‘국민에 의한 정치’를 논하다 (하)
주민은 언제 지방 정부에 요구하나? 미국에서 이민자가 귀화하기 전 정부 부서와 자주 접촉하는 걸 제외하고 미국인이 정부와 만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