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 칭수이허 대폭발이 톈진에서 되풀이된 이유

He qinglian
2015년 9월 3일 업데이트: 2019년 11월 3일

선전이 눈물 흘리며 톈진에 묻다. 22년 전에 일어난 칭수이허 대폭발은 선전시 안마오 위험물 보관운송회사에서 공공연히 위험물 보관 규정을 어겼기 때문에 일어났다. 당시 소방안전을 책임졌던 왕주밍 공안국 부국장은 권력 지대추구를 이용해 직접 그 기업의 이사장을 맡았다. 이 비극적 사고는 ‘중국 대형사고 계시록’에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돼, 유독 화학물질 운영업계의 필독서가 되었다. 하지만 당신들은 왜 아직도 나의 오래된 길을 걷고 있는가?

– 이 글을 선전과 톈진의 대폭발에 희생된 영혼에 바친다.

각종 정보를 살펴보면, 8.12 톈진 빈하이 대폭발은 1993년 선전 칭수이허 대폭발과 매우 유사하며, 비극을 일으킨 주요 원인도 동일하다. 즉 권력 지대추구의 비호 아래, 기업이 유독 화학물질 취급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톈진의 아픔은 선전의 잊을 수 없는 상처

톈진 대폭발의 참혹한 현장 사진을 본 후, 난 22년 전인 1993년 8월 5일, 선전 칭수이허에서 일어났던 대폭발을 곧바로 생각해냈다. 내가 기억하는 당시 사고는 하늘로 솟아오른 2개의 버섯구름과 핏빛으로 물든 하늘, 심하게 휘어진 철로, 근처의 건축물 잔해와 어슴푸레 보이는 잘린 팔다리 등이었다.

첫 번째 폭발 진동은 홍콩까지 전해졌다. 당시 우리 집은 원진두 세관 근처였는데, 문과 창문이 모두 흔들렸고, 윙윙대는 소리가 몇 분간 계속되면서 땅이 흔들렸다. 난 큰 사고가 난 걸 직감하고 불빛을 따라 현장으로 달렸다. 하지만 현장은 이미 봉쇄됐고, 멀리서 폭발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폭발의 충격이 방향을 바꾸자 불덩어리가 하늘로 치솟았고, 칭수이허 창고지역 뒤편의 칭산은 검은 연기와 불빛으로 휩싸였다. 현장 안전요원은 구경꾼들에게 즉시 떠나라고 권고했다.

만약 당시 바람이 가스 저장탱크 외부의 철근을 통과해 2층까지 들어왔다면, 선전 특구는 지도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당시 선전 칭수이허 폭발은 주거지와 비교적 먼 창고지역에서 일어났고, 구조에 나선 3천 명의 무장경찰이 맹렬한 화염 속에서 시멘트 방화벽을 세워, 폭발이 기타 위험물 보관 창고로 파급되는 걸 곧바로 막았다. 비록 사망자 수는 정보에서 발표한 수보다 훨씬 많았지만, 톈진에 비해서는 적었다. 톈진 폭발사건의 심각성에 SNS 시대의 파급 효과까지 더해져 조성된 사회 공포와 그로 인한 분노는 선전 칭수이허 대폭발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미 드러난 각종 소식을 살펴보면, 이 사고의 원인과 사후 대응, 반영돼 나온 문제는 22년 일어난 선전 칭수이허 대폭발과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1993년~2015년의 22년 동안, 중국은 WTO 가입, ‘평화굴기’로 상징된 경제번영 및 ‘세계 공장’의 발전과 쇠락을 경험했다. 세계는 1989년 잠깐의 대중국 경제제재 이후 다시 한 번 중국을 열정적으로 껴안았고, 현재 또다시 냉대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22년 동안, 중국은 수백 명의 억만장자를 배출해 전 세계에 널리 발자취를 남겼다. 유일하게 변하지는 않은 것은 체제와 점점 더 격렬해지는 권력 지대추구이다.

석유 중화학 공업은 중국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끈 원동력 중 하나이다. 중화학 공업에는 적지 않은 인화성, 폭발성 위험물이 사용되기 때문에, 생산 시설은 환경 평가를 거쳐야 하고, 생산 경영은 공안부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중국의 환경 평가는 일찍부터 부패의 온상이 되었고, 위험물 경영 심사도 지대추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 중국에는 2,489개의 유사한 중화학 공업 프로젝트가 거주지에 분포돼 있다. 이는 2,489개의 시한폭탄이 숨겨진 것과 같아, 중국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위협 아래 도망갈 곳이 없는 상황이다.

톈진 8.12 대폭발 배후의 권력 그림자

톈진 빈하이 대폭발 사고 후, 가장 의심스러운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루이하이 국제 창고 부지는 규정을 명백히 위반

2001년 국가 안감국은 ‘위험 화학물질 경영기업의 개업 조건과 기술 요구’를 정식 발표했는데, 그중 중대형 위험 화학물질 창고는 주변 공공건물, 간선도로, 광공업 기업 등에 최소한 1000m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했다.

언론 폭로에 따르면, 루이하이 국제는 4만 6226㎡ 면적의 야적장을 사용했는데, 500m 부근에 주요 간선도로인 하이빈 고속도로와 진하이 경전철이 있었고, 600m 근처에 완커하이강청 3기 주민 주택이 위치했다. 시간상으로 볼 때, 루이하이 국제 위에진루 야적장이 위험물 야적장으로 개조된 것은 2014년이며, 그전에 이미 주변의 하이빈 고속도로, 완커하이강청, 진하이 경전철 등 프로젝트는 모두 준공된 상태였다.

위의 내용은, 루이하이 국제 야적장 개조 프로젝트에서 부지 선정에 필요한 환경 평가 과정이 규정을 위반해 조작됐다는 걸 설명한다. ‘톈진 루이하이 물류 환경 문서’에 따르면, 루이하이에 환경평가를 한 곳은 톈진시 환경보호 과학연구원이었다.

2. 루이하이가 위험 화학물질 업무를 경영하는 것은 규정 위반

루이하이는 톈진시 안감국의‘위험 화학물질 경영기업 명당(2015년)’ 중에 포함되지 않으며, 경영 허가는 원래 ‘항구 내 창고 업무 경영(위험물 제외)’로 받은 것이었다.

상공업 등기 자료에는 업무 범위가 항구 내 하역, 저장 등 업무로 기재돼 있다. 루이하이 국제 한 하차 직원은 양광망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위험 화학물질 관련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다시 말해 톈진 항항국이 경영 허가증을 발행해 자격 미달의 루이하이 국제가 위험 화학물질을 취급하도록 한 것은 그 자체로 위법이다.

환경 평가에서 1000m 안전거리 확보를 회피하고, 사업 허가증 범위 밖에서 장기간 위법으로 위험 화학물질을 다룰 수 있었던 것은당연히 무소불능의 권력이 작용한 결과였다.

중국 언론이 밝힌 상공업 등기 자료를 보면 루이하이는 2012년 11월 28일 톈진 자유무역지구 둥장 보세항구에 설립됐으며, 자본금은 1억 위안, 법정대리인은 ‘즈펑’이었다. 기업 유형은 유한책임공사(자연인 투자 혹은 지분 보유)이며 기업에는 리량, 수정이라는 2명의 자연인 주주가 있다.

중국 인터넷에는 즈펑 루이하이 총재가 즈성화 톈진 부시장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는데 이는 중국의 제도 환경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의심이라고 하겠다. ‘언론 추적, 톈진 폭발과 관련된 기업은 도대체 어떤 배경이 있는가?’에서 나타낸 의문은 대다수 중국인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의문이다.

현재 즈펑의 실제 신분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펑파이 뉴스는 ‘즈펑은 즈성화 전 톈진 부시장의 아들인가… 즈성화의 친척 삼촌은 이를 부인’에서 즈성화의 친척 삼촌의 말을 인용, 즈성화는 딸만 하나 있을 뿐 아들은 없다고 보도했다.

홍콩 ‘핑궈일보’는 대주주인 리량의 신분을 조사해 ‘대폭발 창고 규정 위반 경영, 사장은 리루이환의 조카’라는 기사에서 ‘중국 소식통’을 인용, 루이하이 국제의 대주주 리량의 아버지는 리루이하이로 오랫동안 톈진을 주관한 리루이환 전 중공 정치국 상무위원의 동생이라고 폭로했다. 그 결과 이 회사는 줄곧 혜택을 봤고, 톈진 경찰은 이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상공업 기록에 따르면 리량은 톈진 산촨 국제무역유한공사의 집행이사도 겸하고 있으며, 이 기업은 위험물 보관 자격을 갖추었다고 한다.

1993년 선전 칭수이허 대폭발 배후가 은폐된 진상

1993년 선전 칭수이허 대폭발의 주범은 왕주밍 공안국 부국장이 이사장을 역임한 선전시 안마오 위험물 보관운송회사였다. 칭수이허의 위험물 창고는 원래 건, 생과일을 보관하는 창고로 인화성 위험물을 쌓아놓는 데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안부와 외경무부는 안마오를 공동 경영하면서 왕주밍 선전시 공안국 부국장을 회사 이사장으로 초빙했다.

왕주밍은 안전 소방과 위험물 운영업무 심사를 주관했는데, 이 건달의 비호 아래 안전 검사는 완전히 유명무실해져 적합하지 않은 건, 생과일 창고가 위험물 저장 창고로 탈바꿈했다. 폭발 직후 더 놀라운 소문이 전해졌다.

이 창고에 저장된 것은 사실 국안부가 동남아와 아프리카로 수출하려던 무기, 화약, 지뢰, 탄약으로 8월에 고온이 지속되면서 이 물품들이 자연적으로 폭파했다는 것이다. 어떤 소문이 사실이든 간에 왕주밍이 권력 지대추구를 이용했고, 위험물(혹은 군수품)을 부적합하게 보관하다 폭발을 야기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1993년 9월 21일, 왕중푸 선전시 상무 부시장은 ‘선전시 안전생산 동원대회’에서 국가노동부(‘8·5’ 대형 폭발 화재 사고 조사 결과에 관한 지시 요청) 및 국무원의 비준하고 공시한 결론을 발표했다.

“사건의 책임은 선전시 정부, 시 공안국 및 선전시 안마오 위험물 보관운송회사 등 정부 부서 및 기업과 연관돼 있다.”

권력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22년 전, 왕주밍이 가지고 있던 진상은 그의 사망과 함께 연기 속으로 사라졌고, 선전 사람들은 3명이 영웅 칭호를 얻었다가 잃은 것만 알 수 있었다.

영웅 칭호를 얻을 당시에는 ‘비극을 희극으로 만들기 좋아하는’ 선전시 선전부의 대규모 선전으로 인해 사람들은 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칭호를 잃을 당시에는 뉴스 언론에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열사의 사적을 더는 선전하지 못하게 통보했을 뿐이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공안국 부국장 2명의 사무실에 놓아둔 거액을 가족들이 요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거액 자산의 출처를 밝혀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또한 쩡즈더 순톈 파출소 부소장의 2명의 ‘부인’ 중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한 ‘부인’이 아이를 안고 정부 기관에 와서 유산과 열사 대우를 계승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왕주밍이 사망해 현장을 구한 것에 대해, 내막을 잘 아는 인사들은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다행히 왕주밍이 죽었다. 그가 죽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머리를 내놓았어야 했을 것이다.”

현재 톈진 폭발물이 무슨 종류인지 외부 사회는 알지 못한다. 8월 14일 오후 3시경, 허베이의 한 화공기업 사장이 기술자들을 이끌고 톈진항에 도착해, 공안부 ‘812’ 특별 중대 화재 폭발 사고 현장 지휘부를 찾았다. 그들은 폭발이 일어난 루이하이 국제 물류유한공사의 창고에 700톤의 시안화나트륨이 있었다고 밝혔지만, 시안화나트륨은 톈진시 정부가 발표한 위험물 명단에 있지 않았다.

당국은 22년 전 선전시 당국과 마찬가지로 언론을 통제하고 있지만, 이미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어 통제는 효력을 잃고 있다. 톈진 대폭발의 진상은 점차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중국 정부가 이를 계기로 재난의 원인을 철저히 밝혀 재난이 반복되는 걸 막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빈번히 일어나는 인재는 결코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없다. 매번 재난이 일어날 때면 상처를 가득한 중국 사회는 또다시 분열되곤 한다. 22년 전 선전 칭수이허 대폭발은 중국 위험물 산업의 귀감이 되지 못했고, 이는 오늘날 톈진의 고통이 되었다.

당나라 시인 두목은 ‘아방궁부’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아아! 6국을 멸한 것은 6국 자신이지, 진나라가 아니었다. 진나라 일족을 멸한 것은 진나라 자신이지, 천하가 아니다. 진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슬퍼할 수 없어 후세 사람들이 그것을 슬퍼했다. 하지만 후세 사람들도 슬퍼만 하고 이를 거울삼지 않아서,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그 후세 사람들을 슬퍼하게 한다.”

‘자신을 없애려는 외부세력’을 두려워한 중국 정부는 NGO를 정리하고 엄격히 통제하고 있지만, 이는 인력과 재력을 동원해 중국에 분포한 위험물 창고를 정리하는 것만 못 하다.

위 기사 내용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