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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법 반대 운동으로 촉발돼 계속되고 있는 홍콩 시위가 위안랑(元朗)역 백색테러 사건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21일 밤, 홍콩 위안랑 전철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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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야생동물을 생애 처음으로 맞닥트린 것은 1980년대 티벳의 원시림에서였다. 표범 한 마리가 우리 캠프에서 약 70~80m 떨어진 언덕을 살금살금 오르고 있었다. 해 질 무렵이었다. 표범은 가다가 가끔 멈춰 서서 몸을 돌려 우리 캠프를 보았다. 우리는 신경이 곤두서서 표범을 지켜보았다. 표범이 멀리 가버린 후에도, 우리는 망원경으로 표범의 자취를 계속 좇았다. 위협적이면서도 태평스러운 표범의 강함에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티베트 속담에는 “사나워 보이는 동물은 사실상 겁낼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오랜 세월 사냥에서 얻게 된 지혜다. 경계를 심하게 하며 더 공격적으로 보이는 동물일수록 실제 공격력은 낮기 마련이다. 이런 동물들은 대체로 먹이사슬의 하위에 있는 종이다. 베트남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다: “껍질이 딱딱한 동물은 뼈가 없다.” 그 의미는 겉이 단단할수록 속은 무르다는 뜻이다. 지난 2년간 중국 공산당 정권은 공식적인 위상이 약화함에 따라 점점 더 공격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이는 내부 깊은 곳에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 중국 공산당 언론매체는 점점 더 ‘양보할 수 없는 선’, ‘레드 라인’, ‘불가침의 핵심 이익’ 등과 같은 말을 남발하게 되었다. 이런 말은 대만이나 홍콩의 독립, 티벳과 신장의 소요, 종교자유, 북한, 남중국해 분쟁, 인터넷 검열, 인권변호사 탄압, 일당 독재, 보편적 가치, 공산당 이데올로기 등과 같은 문제와 관련 주로 사용된다. 공산당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외국 또는 ‘반국가 세력’과 결탁한 것으로 간주한다. 외국에서 중국을 비판하는 것은 내정 간섭으로 간주된다. 중국 사람이 중국을 비판하는 것은 ‘국가권력 전복’ 행위라고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공허한 힘의 과시에 불과하다. 정치학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어떤 정치 권력이 온갖 종류의 ‘양보할 수 없는 선(bottom line)’을 설정하고 있다는 것은, 그 정치 권력이 상대방에 의해 이용되기 쉬운 온갖 종류의 약점으로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공산당의 습관적인 공격성은 통치 기간 거의 70년에 걸쳐 꾸준히 약점의 징후가 있는 부분을 건드리면 나타났다. 예를 들면, 문화혁명 기간에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만약 그 무렵 홍콩에서 온 어떤 외국인의 ‘반혁명적인’ 헤어스타일이 거리에서 발견되었다면, 그들은 그 사람의 머리카락도 똑같이 잘라버렸을 것이다. 당시의 중국인들은 오늘날보다 훨씬 더 광적이었고, 게다가 세상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 중의 한 곳에서 살고 있었다. 올해 세계의 정치 상황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지난 50~60년간의 경험으로는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점에 미중 관계가 놓여 있다. 과거에는 작은 갈등이 있더라도 전반적인 관계를 협력으로 간주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소규모 협력은 있을지라도 전반적으로는 갈등인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은 사실 중국이 자초한 것이지만, 여기서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다. 이런 대결 구도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중국의 모든 ‘양보할 수 없는 선’과 ‘레드 라인’은 중국의 약점을 표현하는 것이며 결국은 미국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대만 문제는 이제 막 그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으며, 곧 티벳과 신장 문제가 그 뒤를 따를 것이다. 북한 상황도 언급해야만 하겠다. 과거에 미국은 중국을 북한 문제 해결의 열쇠로 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바뀌었다. 북한이 중국을 다루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일찍이 미군과 한국군이 북한 지도부에 대한 기습 공격인 참수 작전을 준비하면서 어떻게 훈련을 했을지 수많은 추측이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북한과 같은 가치 있는 카드는 그리 쉽게 낭비되지 않을 것이다! ※이 기사에 표명된 견해는 작성자의 것이며, 에포크타임스의 견해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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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변화가 있었다. 얼마 전 역사박물관 앞에 세워졌던 9.5m의 공자(孔子) 동상이 갑자기 실종(失踪)된 것이다. 다른 실종자들의 상황과 유사하게 중공 당국은 공자의 실종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한 기자가 이리저리 파헤쳐보니 돌아온 대답은 보수를 위해 옮겼다는 결론 뿐이었다. 중국에서 부실공사가 널리 퍼져 있기는 하지만 불과 3월에 세운 공자의 동상에 보수가 필요하다는 것은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당국의 말을 그대로 빋지 않고 정치적인 각도에서 공자의 실종을 바라본다. 베이징의 저명한 문화인사 톄류(鐵流)는 이에 대해 "중국에서는 역대로 천하를 뒤엎을 때 공자를 억누르고 천하를 잡고 나면 공자를 존중해왔는데 중공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공자를 비판하고 훼손하며 억누르다가 최근에 들어와 민중들에게 ‘군위신강(君爲臣綱: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기본)’이 필요하자 특별히 공자를 공경하는 풍조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공자가 천안문에 정착한 것은 중공이 조화로운 중용(中庸)의 도(道)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물론 공자 동상이 실종된 후 중공은 새로운 선전 수단이 필요할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통치는 일종의 범(汎)정치화된 통치다. 다시 말해 그 어떤 이름, 말, 표어, 인물이든 모두 극히 정치적인 함의를 지니게 된다. 이 가운데 중국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온갖 고초를 외부인들은 이해하기가 아주 어렵다. 필자와 비슷한 연령대의 중국인들은 변화무쌍한 정치 풍파를 겪어야 했으니 기타 역사인물이나 철학유파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소로웠던 것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린 동화책을 우연히 봤다는 이유로 차이코프스키에게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들으며 아마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필자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동화는 사실 지금의 중국과 큰 차이가 없다. 때문에 공자 동상이 천안문광장에서 사라진 것을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정치적인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 아주 정확히 태도를 표시한 것이다. 얼마 전 공청단파 인물로 간주되는 중공중앙정치국 위원이자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조직부 부장 리위안차오(李源潮)가 충칭(重慶)을 방문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는 충칭 당서기 보시라이(薄熙來)의 창홍타흑(唱紅打黑: 공산주의 이념을 중시하고 흑사회를 타도한다는 의미)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충칭일보(重慶日報)’의 보도에 따르면 리위안차오는 이 정책이 “중국과학발전이 직면한 난제(難題)를 타파하는데 새로운 사고와 경험을 제공해주었다”고 인정했다. 만약 기자가 잘못 보도한 것이 아니라면 리위안차오는 공청단파 인물 중 이번 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최초의 인물이자 중공 고위층 인사 중에서 태도를 표시한 아홉 번째 인사가 된다. 충칭은 보시라이의 주도하에 최근 적지 않은 소위 ‘개혁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이데올로기 방면에서 전면적으로 좌경화 된 것이다. '홍가(紅歌 공산당 찬양노래)'를 부르는 것은 다만 겉으로 드러난 표현일 뿐이다. 가령 최근에 있었던 '리장(李莊) 사건'은 비록 충칭검찰이 마지막에 소를 취하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조사와 수색 및 기소과정에서 분명하게 법률의 명문(明文)규정을 따르지 않았다. 또한 충칭당국은 거짓 민의(民意)를 동원해 ‘민중(民衆 사실은 동원된 사람들)’시위로 당국을 지지하도록 꾸몄으며 각종 여론선전도구를 총 동원해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전면적인 선전을 진행했다. 이는 문화혁명 이전 중공의 풍격과 흡사하다. 때문에 리위안차오가 “새로운 사고와 경험을 제공해주었다”고 한 말은 사실 과거 중공의 낡은 사고와 경험이 끝났다는 뜻이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앞으로 수 년 간 중공의 정책방향이 전면적으로 좌경화되어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또 쉽게 실시할 수 있는 사상통제로 되돌아가고 의견이 다른 인사들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지난 20년 간 중공은 이데올로기 방면에서 도처에서 땜질식 처방을 써왔다. 전통문화를 빌리는 것 역시 그중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때문에 과거 수년 간 중공은 세계 곳곳에 공자학원을 설립하고 황제(黃帝)의 묘에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이번에 공자의 동상이 천안문광장에서 실종된 것은 중공이 이미 과거의 옛길로 되돌아 갈 것을 결정했고 이 때문에 공산이데올로기 이외의 다른 방법들은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자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오히려 좋은 일일지 모른다. 공자는 일찍이 “나라에 도(道)가 없는데 부귀하다면 오히려 수치가 된다”고 말했다. 지금 천하는 인(仁)이 얇고 의(義)가 적으니 귀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다. 어쩌면 여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보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편집자 주 리장(李莊) 사건: 보시라이가 추진하는 소위 창홍타흑(唱紅打黑) 정책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베이징의 변호사 리장이 당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자 충칭당국은 그에게 강간과 매춘혐의를 뒤집어 씌워 탄압을 시도했다. 즉 창홍타흑의 핵심이 공산당 일당전제(一黨專制)를 강화하고 이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탄압하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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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GDP가 일본을 넘어섰다. 비록 중국 공산당이 50여 년 전 대약진 운동을 전개하면서 영국을 따라잡고 미국을 추월하자고 제안할 때 일본은 안중에도 없었지만, 반세기에 걸친 노력을 거쳐 중국은 마침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이는 또 많은 중국인들을 기쁘게 했다. 하지만 이 ‘GDP 세계 2위’는 많은 중국인들을 곤혹스럽게도 한다. 보통 사람들의 생활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GDP란 무엇일까? 바로 국내총생산을 가리키는데 즉, 한 나라 국내경제활동의 총합이다. 사실 GDP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경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정부 입장에서 본다면 GDP는 단지 세수(稅收) 체계로 들어와 화폐로 평가할 수 있는 경제활동일 뿐이다. 전에 이런 우스갯 소리가 있었다. 대학원생 두 명이 숲속을 걷다 우연히 개똥더미를 발견했다. 갑(甲)이 을(乙)에게 “만약 당신이 개똥을 먹는다면 5천만 위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을은 주저하지 않고 개똥을 먹어치웠다. 갑이 후회막급해할 때 을이 또 다른 개똥더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만약 저 개똥을 다 먹어치운다면 역시 5천만 위안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갑 역시 재빨리 개똥을 먹어버렸다. 두 사람이 학교로 돌아와 교수에게 이 일을 말하자 교수는 두 사람을 축하했다. 왜냐하면 방금 그들이 ‘국가 GDP를 1억 위안이나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사실 이론적으로 보자면 두 사람이 각자 5천만 위안을 세금으로 납부하지 않는다면 GDP 는 늘지 않는다. 2년 전쯤 필자는 한 경제학교수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피라미드를 수리해도 GDP를 크게 증가시킬 수 있지만 국민경제에는 오히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경제실체든 화폐경제활동과 비(非)화폐경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중국 농촌에서는 식량과 채소를 자급자족했기 때문에 예전에는 GDP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10년 간 중국 각지 정부가 ‘GDP 광란’에 돌입하면서 현지 GDP로 잡아 계산한다. 어느 할머니가 키우는 닭이 계란을 낳아도 중국경제규모에 50전의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현지 정부에서 이 계란에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할머니 자신이 계란을 먹기 때문에 GDP로 잡을 수 없다. 중국경제가 개혁개방되는 과정에서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의료, 교육, 부동산을 예로 들면 과거 중국에 이런 활동들이 없던 것이 아니다. 단지 ‘개혁’을 거친 후 이들 항목들이 비로소 화폐가치로 평가되기 시작했고 드디어 중국 GDP의 주요부분이 된 것이다. 화폐경제와 비화폐경제의 상호 전환은 상업 활동에 확실히 중요한 요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슈퍼마켓에는 고객이 구매한 물품을 스스로 계산하는 셀프카운터가 많이 설치돼 있다. 고객은 자신이 구입한 물품의 목록을 기입하고 신용카드로 계산한다. 슈퍼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화폐경제활동이 비화폐경제활동으로 전환된 것이다. 왜냐하면 본래 상점에서 점원을 고용해 하던 일을 지금은 고객이 직접 하기 때문이다(대신 주인은 인건비를 지불하지 않는다). 이는 상점의 지출을 줄이기 때문에 GDP를 감소시키지만 상점의 이윤은 오히려 는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기업(외자기업을 포함)은 모두 정반대 과정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본래 기계로 하던 일을 중국에서는 사람을 고용해 한다. 한 친구가 중국의 어느 기업에 기술을 혁신해 자동화기기를 사용하면 효율이 높아진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기업 책임자는 자동화 설비에 투자할 자금이면 10년 동안 백 명을 고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연히 이 설비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경제의 화폐화 정도는 사회의 분업화 정도로 간단히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중국은 전 세계에서 비교 대상이 없다. 그 어떤 국가에서도 전문적으로 귀를 후비거나 발을 씻고 등을 마사지하는 직업은 찾을 수 없다. 이는 중국 도시경제의 화폐화가 지나치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겉으로는 도리어 중국 경제활동의 이윤이 지나치게 집중되고 인건비가 지나치게 저렴한 것으로 설명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분석하면 중국 부자와 권력자들이 시장과 자원을 지나치게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2천년 동안 전쟁이 끝나고 30~50년이 지나면 중국은 반드시 세계 1위 혹은 2위의 경제규모를 이뤘다. 왕조의 말기에 이르면 극히 세분화된 분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후 왕조가 교체되고 사회가 혼란해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중국은 여태껏 이런 테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 21세기 중국의 미래가 보다 낙관적일지는 독자마다 견해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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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미국 펜타곤에서 분석한 전 세계 6대 분쟁지역 중 3곳이 중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바로 대만해협, 한반도 및 남중국해(사진)가 그것이다. 최근 들어 남중국해(南中國海)가 점차 이슈로 부각되고 있고 심지어 장차 가장 첨예한 국제분쟁지역으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보인다. 올해 초 중국측은 중국을 방문한 미국 관리들에게 남중국해는 티베트, 신장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핵심 이익(核心利益)’에 속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측은 이에 대해 아무 반응도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에게 있어 남중국해는 마찬가지로 미국의 ‘핵심 이익’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 지역이 중국의 ‘핵심 이익’임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중국에서 제작된 지도를 펼쳐보면 중국은 남중국해를 모두 자국 영해로 포함시켜 놓았다. 이 중에는 도서(島嶼), 암초, 개펄, 모래사장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미국의 핵심이익 역시 마찬가지로 실제적인데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선박운행의 자유이다. 남중국해는 서태평양에서 중동으로 건너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만약 미 태평양함대가 이 지역을 우회해 중동으로 가려면 한 달 이상의 노정이 필요하다. 중국 관방의 자료에 따르면 남중국해는 세계 제3대 연해(緣海)로 면적이 광활하며 300여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드넓은 해역이다. 이 사이에는 수천에 달하는 섬, 암초, 개펄, 모래사장 등이 놓여 있다. 위도가 낮은 곳은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 속하며 풍부한 수산자원과 심해(深海) 생물자원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한 것은 해저에 상당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초보적인 계산에 따르면 석유 매장량이 200억 톤에 달한다. 때문에 이곳을 ‘제2의 페르시아 만’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풍부한 자연자원을 지닌 것을 감안할 때 남중국해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무시할 수 없다. 한편 남중국해 주변의 동남아 국가들은 모두 남해도서에 대한 일부 또는 전부의 주권을 요구한다. 앞서 서술한 이유 때문에 이 지역의 주권을 차지하려는 각국의 추동력은 더욱 절실해졌다. 중국이 남중국해의 주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주로 이곳 도서를 최초로 발견하고 명명하고 개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중국은 해군력이 부족하고 제해권(制海權)이 미약하기 때문에 일부 개별적인 도서에 대한 주권만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 설사 중국이 모든 남사군도에 대해 논쟁의 여지없는 주권을 갖고 있다 해도 여전히 도서 사이에 존재하는 해역에 대해서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유엔 해양조약에 따르면 한 나라의 영해(領海)는 해안에서 12해리까지만 인정된다. 배타적인 경제수역조차 200해리를 넘지 못한다. 때문에 남중국해 해역 중에 있는 흩어진 도서에 대한 주권 및 모든 해역에 대한 주권은 국제법상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또 도서 사이(200해리 초과) 해역은 국제법상 공해(公海)이기 때문에 그 어떤 선박이든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다. 미국, 일본, 한국 입장에서는 자유로운 항해권이 주권이나 해저자원보다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일본과 한국의 경우 석유 및 기타 자원 수입의 80%가 이 지역을 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중국해 문제의 복잡성은 이보다는 주변 각국들의 영토 분쟁에 달려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 해역을 중국의 핵심 문제로 정하자 이들 국가들은 단지 연합해서 대항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미국, 일본 등과 이익공동체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의 능력으로는 이런 연합체에 대해 앞으로 50년 이내에는 대항할 수 없다고 한다. 국제정치에서 핵심 이익의 의미는 절대적으로 양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해 ‘핵심 이익’을 표시한 후 곧장 직면한 것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였다. 바로 어떻게 이 ‘핵심 이익’을 실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필자가 보기에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이익을 표현한 것은 상당부분 일종의 태도표시에 불과하다. 중국은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도 이 해역을 진정하게 통제할 능력이 없다. 또 가까운 장래에도 실제적인 군사행동을 통해 남중국해의 주권을 차지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태도표시는 동남아 각국에 깊은 우려를 자아내 중국의 근린(近?)외교를 아주 난처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