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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는 흑막(黑幕) 정치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사건과 실제 일어난 사건의 차이가 크다.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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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황웨이밍(黃偉明)은 1989년 6월 3일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다음 날 따로 장소를 마련해 피로연을 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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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범죄인 송환법안(송환법)’ 반대 운동이 6월 9일부터 현재까지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송환법을 강제로 통과시키려 했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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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인들의 시위가 각계각층으로 확산하며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시작해 두 달 가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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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지금 ‘범죄인 인도 법안’으로 악화일로에 놓여있다. 자유·민주·법치를 지키려는 100만 홍콩 시민들과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에도 ‘법안 통과’ 강행을 시도한 람 장관의 정치적 의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수차례 언급한 바대로 파룬궁 탄압은 오늘날 중국 정국의 핵심 문제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 불거지는 모든 문제가 ‘파룬궁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4월 3일 이래 본보는 <'천명(天命)' 실천하는 미국...해체 운명에 처한 중국공산당> <가라앉는 '中공산당호'... 난파선은 버리는 게 상책> <"장쩌민 일파 '해외 자산' 제보 환영합니다"> 등 특별 보도를 잇달아 내보냈다. 이는 파룬궁 탄압으로 하늘에 사무치는 범죄를 저지른 장쩌민, 쩡칭훙을 비롯한 '혈채방(血債邦, 파룬궁 탄압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장쩌민 계열의 세력)'을 청산하라는 신호탄이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전 세계의 비난에도 송환법을 강행 처리하려는 것은 표면 현상일 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장쩌민, 쩡칭훙을 위시한 혈채방이 작은 문제를 크게 확대해 이를 이용해 혈채방을 숙청했던 시진핑을 끌어내리려는 것이다. 1999년 7월 20일 당시 중공 독재자 장쩌민은 국가기구를 총동원해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광란의 수법이 총망라됐다. 장쩌민은 자신이 장악한 군대, 독재 기구, 선전 도구, 국가 자원,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 수십 년간 쌓아온 타격 방법으로 단시간 내에 파룬궁을 철저히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파룬궁은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전해질만큼 중공의 사악한 박해는 철저히 실패했다. 중공의 강압과 기만 없이는 중국에서도 파룬궁 박해는 하루도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 1999년 7월 20일부터 장쩌민과 그의 오른팔로 불린 쩡칭훙은 파룬궁 말살을 목표로 부패한 관리들을 발탁해 중용했다. 장쩌민과 쩡칭훙을 비롯한 '혈채방'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빚을 갚는 것은 하늘의 이치다. 더구나 피의 빚은 더더욱 그렇다. 장쩌민과 쩡칭훙의 가장 큰 두려움은 그들의 만행이 낱낱이 드러나 죗값을 치르는 상황이다. 이를 막으려면 중공의 권좌를 지켜야 했다. 2002년 당시 은퇴를 앞두고 장쩌민 일당은 간계를 모색했다. 장쩌민과 쩡칭훙은 2002년 11월, 중국 공산당 16차 당대회(16대)에서 5가지 조치를 했다. 첫째, 장쩌민은 은퇴 후에도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을 연임했다. 둘째,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7명에서 9명으로 늘렸다. 셋째, 쩡칭훙은 중공 17대에서 후진타오의 직무를 승계하려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당교 교장, 국가부주석을 담임했다. 넷째, 파룬궁 박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뤄간을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정법위 서기로 중용했다. 다섯째, 파룬궁 박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저우융캉을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공안국장으로 중용하고 이듬해 국무위원으로 중용했다. 그리하여 후진타오 집권 5년간 파룬궁 탄압은 내부적으로 계속 강화했고, 쩡찡훙은 차기 집권 야욕을 달성하려 했다. 2007년 10월 17대 당시 쩡칭훙은 중국 공산당 원로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후진타오의 뒤를 이을 수 없었다. 장쩌민과 쩡칭훙은 최악의 평판에도 권력 유지 방편으로 5개 조치를 취했다. 첫째,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여전히 9명으로 유지해 그들의 심복을 등용했다. 둘째, 궈보슝, 쉬차이허우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이용해 중앙군사위 주석을 맡게 된 후진타오를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셋째, 저우융캉을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정법위 서기로 중용했다. 넷째, 장쩌민의 측근이자 파룬궁 박해를 가장 악랄하게 지휘한 보시라이를 정치국 위원, 충칭시 당서기로 발탁했다. 다섯째, 쩡칭훙의 고향 장시(江西)성 서기인 멍젠주를 공안부장으로 등용, 이듬해 국무위원으로 겸직시켰다. 그리하여 또 5년간 ‘파룬궁 박해’를 유지했다. 이어 장쩌민, 쩡칭훙, 저우융캉은 보시라이를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 서기의 뒤를 이어 18대 자리에 앉힐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하늘의 뜻을 알 수 없다. 2012년 2월 6일, 왕리쥔 충칭시 공안국장이 청두(成都) 주재 미국 영사관으로 망명하는 대형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써 두 가지 직접적인 결과가 발생했다. 첫째, 2012년 3월 15일, 보시라이가 체포됐다. 둘째, 보시라이, 저우융캉이 쿠데타를 모의한 음모가 드러났다. 외신들은 왕리쥔이 청두 주재 미국 영사관에 제공한 정보를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이 시진핑에게 알려줬다고 전했다. 2012년 2월 6일 ‘왕리쥔 사건’은 장쩌민, 쩡칭훙을 위시한 ‘혈채방’이 쇠락에 이르는 전환점이 됐다. 2012년 11월 중공 18대 인사 과정에서 두드러졌다. 첫째, 후진타오는 당·정·군 대권을 한꺼번에 시진핑에게 넘겼다. 둘째,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9명에서 7명으로 되돌렸다. 셋째, 왕치산을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기위 서기로 중용했다. 넷째, 중앙정법위 서기를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과 겸직하도록 격하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장쩌민은 중앙에서 지방까지 자신의 인맥을 앉히는 데 주력했다. 장더장, 장가오리, 류윈산 등 3명을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앉혔고, 멍젠주를 중용해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 중앙정법위 서기로 임명했다. 또 궈성쿤을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으로 발탁했고, 쑨정차이를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 충칭시 당서기 등으로 중용했다. 후진타오는 10년 집권 기간 장쩌민의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데 불과했다. 중대한 문제는 장쩌민과 쩡칭훙이 결정했다. 시진핑이 후진타오처럼 되지 않으려면 장쩌민과 쩡칭훙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야 했다. 시진핑이 장쩌민으로 부터 정권을 탈환하려는 대전투는 2013년 1월 18기 중기위 제2차 전회에서 시작됐다. 시진핑은 전례 없는 ‘반부패 호랑이 잡기’ 캠페인을 벌였다. 즉 흔히 말하는 ‘시진핑-장쩌민 투쟁’을 벌인 결과 440여 명의 부성(부)급 및 그 이상의 고위 관리를 처리했는데 그중 절대다수가 '혈채방' 멤버들이었다. 시진핑은 또 '강력한 군 개혁'을 통해 군권을 장악했다. 2017년 10월 19대엔 이미 최고 권력을 손에 넣은 상태였다. 하지만 시진핑이 부패와의 전쟁에서 가장 큰 실수는 ‘도둑을 잡고도 두목’을 잡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 시진핑이 19대 이전에 장쩌민, 쩡칭훙과 타협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시진핑이 장쩌민·쩡칭훙의 문제를 덮기로 하고, 장쩌민·쩡칭훙은 시진핑에게 맞서지 않기로 동의했을 수 있다. 시진핑은 최고 권력을 잡았으니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19대 이후 시진핑은 반부패 척결 수위를 즉시 낮추었다. 그러나 장쩌민·쩡칭훙이 어떤 인물인가? 그들은 이를 갈았을 것이다. ‘우리가 중용한 저우융캉, 보시라이, 궈보슝, 쉬차이허우, 링지하, 쑨정차이 등을 잡아들였는데 이것으로 끝났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어림없어!' 이로써 ’시진핑과 장쩌민의 투쟁’ 다시 시작됐으나 그것은 은밀하면서도 교묘하게 진행됐다. 시진핑이 홍콩 문제에서 장쩌민·쩡칭훙과 타협한 것도 엄청난 실책이었다. 제18기 장쩌민의 측근인 장더장 전인대 상무위원장에게 중국공산당의 홍콩·마카오 업무 협조소조 조장을 맡겼다. 장더장은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 때 직접 관여했다. 그 결과 여론조사와 대중적 지지율이 더 높았던 존 창(曾俊華) 전 재정사장(재정장관 격)이 떨어지고 대중적 지지율이 낮았던 캐리 람이 당선됐다. 중공 19대에서 장쩌민·쩡칭훙의 측근인 한정(韓正)이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돼 홍콩·마카오 업무 협조소조 조장 자리에 올랐다. 이는 장쩌민·쩡칭훙에게 계속 홍콩에 간여할 기회를 준 것이다. 장쩌민·쩡칭훙·한정·캐리 람, 네 사람은 오늘날의 홍콩 난국에 복선을 깐 주요 인물들이다. 2018년 3월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공을 굴복시킬 무역전쟁 카드를 한 장씩 추가했고 중국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중공은 장쩌민 집권 때부터 쌓인 갈등이 모두 폭발해 시진핑은 순식간에 안팎으로 궁지에 몰렸다. 장쩌민·쩡칭훙은 중국 내부에서는 물론 국외에서도 끊임없이 시진핑을 공격해 왔다. 시진핑이 궁지에서 벗어나는 길은 미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미·중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장쩌민·쩡칭훙은 사력을 다해 결렬시켜 시진핑에 그 책임을 지우려 한다. 올 5월 미·중 무역협정 체결을 앞둔 시점에서 중국 측이 갑자기 번복하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도적을 잡을 때 두목을 잡지 못하면 반드시 재앙을 당한다. 시진핑은 지금 본인이 '도적의 두목' 장쩌민·쩡칭훙과 타협한 결과를 맞고 있는 것이다! 장쩌민·쩡칭훙의 홍콩 대리인 캐리람이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시진핑을 끌어내리려는 음모다. 1949년~2018년까지 중국에서 수백만 명이 홍콩으로 도피했을 때, 중공은 한 명도 중국으로 인도하라고 영국 당국에 요청한 적 없었고, 홍콩에서도 그로 인해 어떤 대란도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홍콩은 전 세계를 빛내는 '동방의 구슬(東方之珠)'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가 됐다. 중국의 대국(大局)으로 보나 홍콩으로 보나 범죄인 인도법을 개정할 필요 없다. 무역전쟁과 민생 문제와 비교해 봐도 범죄인 인도법과는 어떤 긴급성도 없다. 그러나 장쩌민·쩡칭훙은 계속 홍콩에서 문제를 일으키려 한다. 범죄인 인도법 개정은 순전히 사회 혼란을 노린 장쩌민·쩡칭훙의 획책이다. 따라서 캐리 람은 ‘임무’를 맡은 이상 전 세계를 뒤흔드는 대사건으로 키워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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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우리가 중·미 관계를 우호적으로 가져야 할 1천 가지 이유는 있어도 중·미 관계를 망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시진핑이 국내외적으로 봉착한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중국 관영언론 신화사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일 백악관에서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를 만났다. 류허는 시 주석의 메시지를 트럼프에게 전달한 뒤 “양측이 중요 문제를 한 달 이상 집중 논의해 ‘실질적 진전’을 이뤄냈다”고 밝혔다. 시진핑은 무역 합의가 빠르게 성사되길 원했다. 그는 각종 채널을 통해 트럼프와의 밀접한 관계 유지를 언급했고, 트럼프 또한 가장 곤란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응답했다. 지난 4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시진핑 주석을 빠른 시일 내 초대할 것이고, 그때 미중 무역협상을 최종 타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5월 3일, 중국의 태도가 돌변해 무역 합의안을 번복했고, 5월 5일 미중 무역 분쟁은 다시 격화했다. 도대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이는 시진핑 집권 이후 부패와의 전쟁에서 ‘적의 왕을 잡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적의 왕’은 장쩌민과 쩡칭훙(曾慶紅) 두 사람이다. 그들 중 장쩌민은 올해 93세로 수차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만큼 현재 임종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현재 진정한 ‘적의 왕’은 쩡칭훙이다. 쩡칭훙은 공산당 상하이방(上海帮), 장시방(江西帮), 석유방(石油帮), 홍얼다이(紅二代)의 핵심 인물이다. 쩡칭훙은 1989년부터 1999년까지 중난하이에서 장쩌민이 가장 신임하는 ‘대내총관(對內總管·대내 업무 총관리자)’이었다. 그는 2007년까지 중공중앙조직부장, 중앙서기처 서기, 중공정치국상무위원, 중앙당교 교장, 국가부주석, 홍콩-마카오 중앙공작협조팀 팀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쩡칭훙은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며 주어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당‧정‧군‧국가안전‧외교 계통에 많은 심복을 심어 두었다. 현재 이 심복들이 쩡칭훙을 도와 미·중 무역 분쟁을 격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 ‘공격’ 당해도 함구하는 中 외교부 시진핑이 5년간 부패와의 전쟁에 돌입했어도 장기간 쩡칭훙이 장악했던 외교부와 국가안전부의 부패 연루자들을 청산하지 못했다. 쩡칭훙은 외교부와 국가안전부에 심어 둔 심복들을 이용해 끊임없이 시진핑을 교란했다. 쩡찡홍은 지능적이고 교활한 수법을 일삼았다. 늘 사소한 일에도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큰 것처럼 떠들썩하게 반응했다. 2018년 10월 7일, 스웨덴 방송국은 ‘시진핑이 원하는 세계’란 주제의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아니라 시진핑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일관됐다. 그런데도 중국 외교부, 해외 영사관, 당 기관지인 우마오 등 시진핑을 옹호해 항의하는 기관이 한 군데도 없었다. 중국이 직면한 난국에 대한 책임, 시진핑에 물어 2018년 3월부터 12월까지 중국 고위층은 미중 무역 분쟁을 둘러싸고 내부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시진핑은 12월 1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중 무역협상이 재개되도록 많은 것을 양보했다. 12월 3일 쩡칭훙의 지배하에 놓인 해외 매체들은 ‘극좌에 분열된 중국, 시진핑이 책임져야’ 등의 평론으로 시진핑을 맹공격했다. 이와 관련해 재미 학자 허칭롄(何清漣)은 “국가안전부가 장악한 해외 선전 언론이 시진핑을 향해 역습의 나팔을 분 것으로 보인다”며 그들의 평론에 대해 “시진핑의 큰 죄 몇 가지를 열거하는 ‘역습’을 당과 정권의 생사존망이 걸린 큰일로 보는 것 같다. 모든 것을 잃을 때를 대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들에게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시진핑이 미중 간 합의하려고 했지만, 쩡칭훙 세력이 시진핑에게 ‘극좌’의 책임을 물어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되도록 방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진핑, 협상 번복 책임 모두 진다’는 보도 나돌아 올해 5월 5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보류해 두었던 무역 전쟁이 계속된다고 발표했다. 다음날 6일, 외신들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측 협상단이 대폭 양보한 협의 문안을 올렸지만 고위층에서 그 협의안을 기각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시진핑은 “모든 결과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시진핑의 최우선 대외 업무는 미중 무역협상이다. 미중은 지난해 12월 1일부터 지난 5월 1일까지 10차 회담을 열었다. 그 기간 동안 양국은 현안 95%를 합의했고, 류허가 취한 입장은 모두 시진핑의 뜻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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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는 지난 7일 미국 텍사스 연방 지법에 미국 정부를 제소했다. 화웨이는 소장(訴狀)에서 화웨이 제품 사용 금지를 규정한 미국 국방수권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법률 전문가, 미국 국회의원, 논평가들은 대부분 화웨이가 제기한 이 소송이 승산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화웨이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미·중 무역협상 훼방 놓기 지난 1년간 미·중 무역전쟁은 시진핑 당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극단적 보수 세력은 미·중 무역협정 체결에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 무역협상을 둘러싸고 내부에서는 첨예하고 치열한 박빙의 승부가 이어져 온 것이다. 2018년 12월 1일의 '미·중 정상회담'은 이 힘겨루기의 전환점이 됐다. 시 주석은 중대한 양보를 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무역협정 기한을 90일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시진핑이 2019년에 직면한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 데 있어 미국과의 무역협정을 성사시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이것이 지난해 12월 1일 시진핑이 화웨이의 CFO인 멍완저우가 캐나다에서 체포된 사실을 알면서도 트럼프와의 협상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다. 이후 무역협상이 급물살을 탔고, 시 주석과 트럼프는 무역협상과 멍완저우 사건을 분리했다. 이 사건이 양국 간 협상에 영향을 주는 것을 원치 않아서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중은 4차례의 팽팽한 협상 끝에 이제 합의점에 거의 다다랐다. 하지만, 이때가 고비다. 바로 이 결정적인 대목에서 화웨이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미국에 맞섰다. 화웨이는 전 세계 최대의 통신설비 제조업체인 화웨이가 왜 미국에서 ‘자유무역’을 할 수 없는지, 그리고 화웨이가 어떻게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했는지를 도무지 모르겠다는 식이다. 또한 미국이 화웨이 제품 구매를 금지한 마당에 굳이 무역협정을 맺을 필요가 있느냐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그러면서 화웨이는 일관되게 '늑대 문화'를 내세웠다. 늑대 본성이 크게 발작하면 사람을 물게 된다. 네가 나를 못살게 굴면 나도 너를 물겠다는 태도다. 화웨이를 배후에서 지지하는 중국 공산당의 극단적 보수 세력이 의도적으로 무역협상에 훼방을 놓고 있는 것이다. 중국 당국, 화웨이 위해 반미 선동 반미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세뇌된 일부 중국 민중들에게 여전히 매력 있는 소재다. 그들은 1949년 정권을 잡은 이래 줄곧 미국을 반대해 왔다. 중국 공산당은 ‘국내외 적대 세력’을 자주 언급하며 미국을 최대의 적대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마오쩌둥은 수십 년 동안 미국에 도전하면서 많은 중국인의 마음속에 이 개념을 깊이 각인시켰다.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가 가장 숭배하는 사람이 마오쩌둥이다. 미국인의 도움 없이는 오늘의 화웨이가 없다고 할 정도로 화웨이의 성장은 미국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만, 런정페이 뼛속에는 반미 감정이 줄곧 존재해 왔다. 멍완저우가 체포된 지 9일째 되는 날 위쳇 아이디 ‘21세기 사진기사’는 런정페이의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사진에는 ‘런정페이가 노호(怒號)한다! 투항하지 않는다! 망국노가 되지 않겠다!’는 글이 쓰여있다. 이는 런정페이가 화웨이 내부에서 한 연설이라고 한다. 런정페이는 “화웨이 회사 전체가 함성을 지르니, 아무도 두렵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 일어설 능력이 있고 망국노가 되지 않겠다” “미국과 겨룬다. 이제는 총을 들고 말을 타고 전쟁터에 나갈 때가 됐다”며 현장에 있던 직원들을 선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말들은 중국 내 일부 ‘애국 펀칭(憤靑‧분노한 청년)’들의 생각에 매우 잘 맞는다. 멍완저우가 체포된 후 런정페이는 한동안은 비교적 몸을 낮추었다. 지난 1월 15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는 "트럼프는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우면서 “화웨이는 단지 미·중 무역 마찰 중의 작은 깨알 하나에 불과하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서자 그는 광기를 드러냈다. 1월 17일 중국 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쏟아냈다. “전 세계적으로 5G는 화웨이가 가장 잘하고 있다.”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 구미는 사지 않으면 안 된다.” “사지 않으면 어리석다.” 2월 18일 BBC와의 인터뷰에서는 “세계는 화웨이를 떠날 수 없고 미국도 화웨이를 죽일 수 없다”며 “미국이 멍완저우를 체포하는 데는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했다. 현재 화웨이는 국방수권법에 서명한 미국 정부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러한 언동은 중국 내의 일부 ‘애국 펀칭’의 입맛에 잘 맞는다. 화웨이의 이런 행보는 이들의 구매를 자극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화웨이의 내막을 알게 된다면, 이 선전 효과는 크게 떨어질지도 모른다. 중국 공산당의 독재자 장쩌민(江澤民)의 전폭적인 지지로 발전한 화웨이는 중국 공산당의 감시와 탄압, 박해를 돕는 중요한 협력자다. ‘금순공정’에서부터 ‘톈왕공정’ ‘쉐량공정’ ‘평안도시’ 등 영상감시시스템, 만리방화벽에 이르기까지 화웨이가 핵심 역할을 했다. 화웨이는 중국 공산당 공안‧검사‧법원‧사법 기관이 중국 민중을 박해하는 데 사용하는 통신장비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화웨이폰도 민중을 감시하는 도구다. 2015~2018년 화웨이는 중국 내에서 휴대전화 3억6000만 대를 팔았다. 이들 휴대전화 사용자의 개인 생활 정보는 모두 중국 공산당의 감시하에 있다. 또한 런정페이의 딸 멍완저우는 여권을 8개나 가지고 있으며, 캐나다에는 두 곳에 대저택이 있으며 캐나다 영주권도 있다. 그녀가 위임한 변호사는 전부 서양인이고, 그녀가 고용한 보안관도 전부 서양인이다. 그리고 그녀의 네 아이는 모두 외국에 있다. 런정페이가 진정 애국자인가? 멍완저우는 또 어떤가? 화웨이, 미국에 맞서고 영국에 손 내밀어 지난해부터 화웨이는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 포위됐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나라로, 덩치가 크고 실력이 가장 강하며 영향력이 가장 크다. 미국의 호소는 많은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비록 화웨이가 미국 시장에서 잇따라 좌절당해 더는 큰 성과를 거둘 여지가 없지만, ‘지금 이때 공개적으로 미국에 도전하고 미국의 압력을 견뎌낸다면 동쪽이 밝지 않으면 서쪽이 밝고, 남쪽이 어두우면 북쪽이 있을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활로를 찾으려는 듯하다. 화웨이는 미국의 동맹을 끊임없이 분화, 와해했다. 예컨대 런정페이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국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면서 "미국이 우리를 신뢰하지 않아 우리는 영국으로 옮겨가서 더욱더 대규모로 투자할 것이다. 영국을 여전히 신뢰한다"고 했다. 이참에 미국 정부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해 명예를 지키고, 5G 프로그램을 계속 확장하기 위해 영국과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화웨이가 미국의 압력을 견뎌낼 수 있을까.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도 화웨이의 92개 핵심 공급 업체 가운데 외국 기업이 3분의 2가량(미국 33개, 일본 11개, 대만 10개, 독일 4개, 스위스‧한국‧홍콩 각 2개, 네덜란드‧프랑스‧싱가포르 각 1개) 차지한다. 멍완저우가 미국에 인도돼 재판을 받게 되고, 미국이 화웨이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경우 미국 편에 서는 나라가 점점 많아질 것이다. 미국의 의지, 어느 때보다 강력 지난 1월 28일, 휘터커 법무장관 직무대행은 기자회견을 열고 화웨이를 23가지 혐의로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미 상무장관, 국토안보부 장관, 연방수사국 국장 등 많은 고위 관리가 배석했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금융 사기, 기술 절취, T모바일 영업기밀 탈취 공모 등 13개 혐의를 적용해 기소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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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 시진핑(習近平)은 2019년 반(反)부패 사정 작업을 거론하면서 ‘이익집단’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현재 시진핑이 경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익집단은 어느 것일까? 필자는 여전히 ‘장쩌민(江澤民) 집단’이라 생각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오정융 사건의 근원을 쫓아 올라가면 장쩌민에 닿는다 시진핑 당국은 1월 15일, 자오정융(趙正永) 전(前) 중국 공산당 산시(陝西)성 당서기를 엄중한 규율 위반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직접적인 이유는 당연히 자오정융이 친링(秦嶺) 지역에 불법 건축된 호화 별장촌 철거 문제에 있어서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시진핑을 속이고 양봉음위(陽奉陰違·겉으로는 복종하나 속으로는 따르지 않음)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2014년 5월에서 2016년 2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친링에 불법 건축된 별장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자오정융 당시 산시성 당서기는 계속해서 시진핑을 속였다. 시진핑의 첫 번째 지시는 2014년 5월 13일에 내렸다. 자오정융은 지시를 받고도 성 상무위원회에 이를 전달하지도, 이에 대한 전문적 연구도 진행하지 않았다. 그는 “성 위원회 감찰실과 시안(西安)시는 가능한 빨리 위법 건축 상황을 조사해서 중앙정부에 보고하라”고 간략한 지시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10일이 돼서야 시안시는 ‘친링 북쪽 산맥 불법 건축물 정비조사팀’을 꾸렸고, 한 달간의 조사 후, 산시성 위원회는 중앙정부에 “조사 결과, 불법 건축된 별장 수는 모두 202동”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그 후, 이 조사에서 불법 건축된 별장 1000여 동이 누락된 사실이 밝혀졌다. 2014년 10월, 2015년 2월, 2016년 2월까지 시진핑은 연이어 세 차례나 추가 지시를 내렸지만, 자오정융은 이를 계속해서 무시했다. 친링은 예부터 ‘용맥(龍脈·풍수지리에서 산의 정기가 흐르는 산줄기)’이라 불렸다. 이 ‘용맥’ 위에 지은 불법 별장이 무려 천 동이 넘다니! 이 별장들은 당연히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지은 것이다. 또한 산시성에서 이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인물은 바로 자오정융이다. 그러나 어쨌든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이자 국가 주석이면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고, 또한 시허신(習核心·시진핑이 핵심)인데, 자오정융은 뭘 믿고 감히 시진핑에 맞선 것일까? 자오정융의 뒤에 있는 인물이 보통 사람이 아닌, ‘장허신(江核心·장쩌민이 핵심)’, 즉 장쩌민이기 때문이다. 자오정융은 장쩌민이 직접 뽑은 지방 제후이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은 파룬궁(法輪功) 박해를 시작했는데, 당시 중국 공산당 안후이(安徽)성 공안청장이었던 자오정융은 파룬궁 박해에 적극 앞장서 장쩌민의 눈에 들었다. 2001년 6월, 자오정융은 장쩌민이 직접 산시성당위 상무위원이자 성 정법위 서기로 뽑았다. 그 후 자오정융은 파룬궁 박해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장쩌민은 계속해서 그의 관직을 올려줬고, 그는 산시성 부성장, 성장대리, 성장을 거쳐 당서기까지 됐다. 자오정융은 장쩌민의 산시성 대리인인 셈이다. 장쩌민 집권 시기,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유지하기 위해 장쩌민은 부패로 나라를 다스렸고, 파룬궁 박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고위관리들은 조용히 큰돈을 벌었다. 바로 이런 배경 아래에서, 자오정융은 산시성 각계각층에 부패 분자들의 이익을 실어나르는 합류점이 됐다. 또한 자오정융을 중심으로 산시성 부패 분자의 이익공동체가 형성됐다. 펑신주(馮新柱) 산시성 부성장, 우신청(吳新成) 산시성 정법위 부서기이자 성 610사무실 주임, 웨이민저우(魏民洲) 산시성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주임이자 전(前) 시안시 서기, 첸인안(錢引安) 산시성위원회 상무위원이자 성위원회 비서실장, 리다여우(李大有) 시안관광그룹 회장, 종젠넝(鍾健能) 시안시위원회 조직부장, 자오훙주안(趙紅專) 시안시 정협 부주석, 고우리우(苟立武) 시안시 신문미디어그룹 회장, 우이룬(吳逸倫) 시안시 문화광전신문출판국장, 왕더안(王德安) 시안시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비서실장, 우즈민(吳智民) 시안시 신팡국(信訪局·민원국) 국장, 탕젠핑(唐建平) 시안시 공안국 옌타(雁塔) 지국장 등이 이에 속한다. 이 이익공동체는 장쩌민에게 붙어서 시진핑과 상호 대립하는 지방 세력을 형성하고는 시진핑을 권력은 있지만 세력은 없는 국가주석으로 만들었다. 둘째, 저우창의 문제의 근원을 쫓아 올라가면 장쩌민에 닿는다 지난해 연말부터 CCTV의 유명 앵커 추이융위안(崔永元)의 맹공격을 줄곧 받아온 저우창(周強) 최고인민법원장은 바로 중국 공산당 사법기관의 ‘악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추이융위안은 웨이보에, 중국 공산당 부국급(副國級·부총리급) 고위관리이면서 중국 공산당 수석대법관이자 중국 공산당 최고인민법원장인 저우창을 실명으로 지목해, 법을 알면서도 일부러 어겼다고 심하게 비난했다. 이 소식은 국내외로 퍼졌지만, 한때 미친 듯이 날뛰며 말끝마다 ‘량젠(亮劍·적군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검을 빼들어 적과 목숨을 걸고 싸움)을 외치던 저우창이 뜻밖에도 한마디도 못 하고 있다. 추이융위안은 인터넷에 저우창이 ‘산시성 천억 광산권 사건’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공개했는데, ‘기밀’로 표시된 ‘상황 보고서’에는 “이 사건은 상황 처리와 관련해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저우창 본인의 지시가 나와 있다. 또한 “저우원장의 지시를 받아 이 사건은 지금 소송을 중지한다. 재정서는 내가 이미 발급했다. 저우원장의 지시에 따라 사건 관련 상황에 대해 철저히 기밀을 유지할 것을 관계자들에게 통보하라”는 시샤오밍(奚曉明) 당시 최고인민법원 부원장의 지시도 나와 있다. 최고인민법원 최초민사재판소의 왕린칭(王林清) 판사는 직접 올린 동영상에서, 저우창이 사건을 재심에 회부하라는 지시를 내릴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왕린칭은 당시 “이번 사건은 이미 한 차례 재심을 청구했기에 민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다시 재판에 회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저우창은 또다시 ‘당사자 쌍방의 계약을 해지하라’는 판결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왕린칭은 “당사자들이 이런 요구를 하지 않았으므로, 불고불리(不告不理·검사의 공소제기가 없는 사건에 대하여는 법원이 심판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 절차의 원칙)의 원칙에 따라, 최고법원이 이런 판결을 내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위의 지시와 왕린칭 판사의 자술 내용을 보면, 저우창의 요구가 모두 불법적이고 무리한 것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저우창은 어째서 그렇게 했을까? 저우창이 사건 관계자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건 아닐까? 저우창은 이 사건 외에 또 얼마나 많은 사건 심리에 불법적으로 관여했을까? 2015년 5월 이후, 전 세계 파룬궁 수련생은 계속해서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에 파룬궁 박해의 원흉인 장쩌민을 실명 고발해왔다. 지금까지 그 수만 해도 21만 명이 넘는다. 이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위대한 쾌거이다. 최고인민법원장 저우창은 장쩌민 일당 정치 깡패들이 저지른,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집단 학살, 고문, 반인륜 범죄 등을 조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저우창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파룬궁 박해를 더욱 심화했다. 2017년 1월 25일, 저우창은 차오젠밍(曹建明) 당시 최고인민검찰원 검찰장과 함께 파룬궁 박해에 쓰이는 중요한 ‘사법(司法) 해석’을 발표했다. 2017년 2월 1일부터 중국 공산당 각급 법원은 이 ‘사법 해석’에 따라 파룬궁 수련생들을 감옥에 가뒀다. 밍후이왕(明慧網)의 불안전한 통계에 따르면, 2018년에만 파룬궁 수련생 933명이 불법적으로 형을 선고받았다. 이렇듯 파룬궁 박해를 강화한 저우창도 장쩌민의 ‘혈채방(血債幫·파룬궁을 박해한 집단)’의 중요 구성원 중 한 명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리잔수(栗戰書)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며칠 전에 열린 회의에서 이달 말에 제8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회의를 열어 개별 인사의 임면(任免) 문제를 심의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상무회의에서 ‘산시성 천억 광산권 사건’에 개입한 저우창 최고인민법원장을 처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저우창은 저우융캉(周永康) 전(前)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중앙정법위 서기의 뒤를 이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또 한 명의 정법 고위관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멍완저우 사건의 근원을 쫓아 올라가면 장쩌민에 닿는다 2018년 12월 1일, 멍완저우(孟晚舟) 화웨이(華爲) 부회장이자 최고재무책임자가 캐나다에서 체포됐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전 세계의 이목이 단번에 화웨이에 쏠렸다. 멍완저우의 아버지 런정페이(任正非)가 세운 화웨이와 중국 공산당 장쩌민 집단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은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이날부터 전 세계 파룬궁 수련생들은 박해에 대항하며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장쩌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 대륙의 민중이 파룬궁의 진상을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아들 장몐헝(江綿恒)을 시켜 인터넷에 ‘만리장성 방화벽’을 만들어 중국 대륙에서 파룬궁 관련 해외 보도를 볼 수 없게 했다. 화웨이는 바로 이 방화벽의 주요 건설자이다.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전국의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을 전방위로 감시하는 것이 화웨이의 주요 임무였다. 그리하여 ‘금순공정(金盾工程)’ 같은 프로젝트가 잇따라 시작됐고, 화웨이는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건설자가 됐다. 화웨이는 여전히 중국 공산당 610 사무실, 공안, 검찰, 법원, 사법국 시스템에서 파룬궁 박해에 쓰이는 통신장비를 제공하는 가장 큰 업체이다. 화웨이 휴대전화도 파룬궁 수련생을 감시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독일 보안회사는 2015년, 화웨이를 포함한 중국산 스마트폰에 26종의 하드웨어에 감시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사실을 발견했다. 런정페이가 적극적으로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를 도왔기 때문에 장쩌민은 그에게 경제적으로 매우 큰 지원을 해줬다. 2011년 10월, 미국 중앙정보국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화웨이는 중국 공산당 정부로부터 2억 5000만 달러(2822억 원)를 지원받았다. 2004년, 중국 공산당 국가개발은행은 화웨이에 100억 달러(11조 2850억 원)의 융자 한도를 제공했고, 2009년에 또 다시 화웨이에 300억 달러(33조 8550억 원)의 신용공여 한도를 제공했다. 1998년부터 2013년까지 15년간 천위안(陳元)이 국가개발은행을 장악했다. 중국 공산당 정치판의 공공연한 비밀 가운데 하나는 장쩌민이 없었다면 국가개발은행의 천위안의 시대도 없었다는 것이다. 천위안은 중국 공산당 원로 천윈(陳雲)의 아들이다. 천윈은 1989년, 6.4 톈안먼 대학살 사건 후 장쩌민을 발탁해 중국 공산당 당수 자리에 올려준 핵심 인물이다. 천윈에 보답하기 위해 1998년, 장쩌민은 천위안에게 정부급(正部級, 장관급)의 국가개발은행 은행장이자 당 서기 자리를 줬다. 천윈-장쩌민-천위안-런전페이의 정경유착은 이렇게 형성됐다. 앞에서 거론한 세 명은 중국 공산당 지방 실력파, 중국 공산당 정법 고위관리, 중국 공산당 과학기술계 거물, 이렇게 세 방면과 관련돼 있다. 또한 그들의 주군은 모두 장쩌민이다. 자오정융은 시진핑 고향인 산시성의 정무주관자였다. 시진핑은 3년 동안 4차례나 지시를 내렸지만, 자오정융은 이를 무시했다. 시진핑의 고향 정무주관자조차 시진핑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데, 하물며 다른 지방 제후들은 시진핑을 어떻게 대했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 걸림돌을 치우지 않는 한 시진핑은 각 지방의 제후들을 절대 호령할 수 없다. 중국 공산당 정법 시스템은 오랫동안 장쩌민 집단이 장악해왔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법 시스템은 ‘법을 알면서 법을 어기는’ 많은 국제적인 스캔들을 양산해 왔고, 그 ‘오명’은 모두 시진핑에게 씌워졌다. 저우창 최고인민법원장은 정쩌민의 최측근인 자오정융과도 얽혀 있다. 그러므로 정법 시스템의 ‘해군지마(害群之馬·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인물)’를 제거하지 않는 한 시진핑은 편하게 지낼 수 없다. 멍완저우의 아버지 런정페이는 장쩌민이 뒤를 봐줬기 때문에 ‘흡혈’의 촉각을 중국 전역과 170개가 넘는 나라에 뻗쳐 장쩌민 집단의 가장 중요한 ‘현금 인출기’가 될 수 있었다. 멍완저우가 체포된 후, 시진핑은 처음부터 이 사건을 미중 무역협상과는 선을 그었다. 그러나 런정페이는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판을 흔들어 시진핑을 진퇴양난에 빠뜨리고 있다. 이 ‘지뢰’를 제거하지 않는 한 시진핑은 안팎으로 사람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우정융, 저우창, 런정페이, 이 세 사람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모두 장쩌민 집단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시진핑의 반부패 정책은 장쩌민의 측근인 저우융캉(周永康) 전(前)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중앙 정법위 서기를 잡아내는 데 그쳤다. 이 이익집단의 우두머리는 장쩌민이고 ‘이인자’는 쩡칭훙(曾慶紅)이며, 그 핵심멤버는 자칭린(賈慶林), 우관정(吳官正), 리장춘(李長春), 허궈창(賀國強), 류윈산(劉雲山), 장가오리(張高麗), 장더장(張德江) 등인데, 시진핑은 이들을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다. 이들은 겉으로는 시진핑에게 대적할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속으로는 시진핑을 따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암암리에 그들은 여전히 한통속이다. 그들은 시진핑을 속일 수 있으면 속이고, 버틸 수 있으면 버티다가 시진핑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되면, 분명 세상을 혼란으로 몰고 갈 것이다. 중국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장쩌민집단이야말로 시진핑의 최대 ‘정치적 근심거리’임을 알 수 있다. 지난 1월 14일은 중국의 유명 경제학자인 마오위스(茅於軾)의 90번째 생일이었다. 이날 마오위스는 “나는 중국이 아직도 독재사회라는 점이 가장 유감이다. 나는 중국이 하루빨리 민주법치헌정국가가 되길 바란다”며, “만약 내게 선택권이 있다면 나는 미국으로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중화문화는 예부터 ‘엽락귀근(葉落歸根·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감)’의 전통이 있고, 집을 떠나 먼 길을 떠난 나그네도 말년에는 모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그런데 90세의 고령인 마오위스가 선택권이 있다면 미국으로 가길 원한다니, 이는 그가 중국 공산당의 통치에 얼마나 절망했는지를 보여준다. 2019년 들어, 정예푸(鄭也夫) 베이징대 교수도 “중국 공산당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쉬장룬(許章潤) 칭화대 교수도 칼럼을 통해 “중국 공산당은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뜻밖의 놀라운 말을 했다. 또한 “각하(시진핑)가 마지막 황제가 되려는 욕심을 버리면, 초대 민선대통령이 되기 위해 경쟁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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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일의 ‘미중 정상회담’은 예상 밖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같은 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위터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아르헨티나 회담은 대단했고, 중국과의 관계는 큰 진전을 이뤘다. 매우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우리는 강력한 힘으로 거래를 하고 있고, 만약 거래가 성사된다면 중국도 마찬가지로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공평한 경쟁!”이라고 올렸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은 90일간의 협상 기간을 정했다. 미국은 3월 1일까지 양국이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2019년 3월 2일 오전 0시 1분부터 2000억 달러(약 226조 원)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 25%가 부과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렇다면 2019년 3월 2일 최종 시한이 오기 전, 시진핑은 미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할 수 있을까? 현재 해외의 많은 언론의 보도를 보면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필자는 난도가 매우 높지만 시진핑이 하늘의 뜻을 따른다면 미중 간 무역협정이 체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왜 난도가 매우 높은가? 트럼프가 요구하는 것은 중국이 미국 제품을 좀 더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구조적 개혁이다. 그러나 구조적 개혁은 중국 공산당 권력 가문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중국 공산당 ‘개혁개방’ 40년 동안 수많은 권력 가문이 형성됐다. 그들이 국내외에서 크게 축재한 것은 권력이 자원 배치에 결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구조적 개혁은 떼돈을 벌 수 있는 시장에서 권력을 퇴출시키는 것으로, 그들의 숨통을 끊는 것과 같다. 이 세력들은 미국과 중국이 역사적 타협을 이루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3월 2일이 오기 전에 그들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둘째, 권력이 경제생활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공산당의 본질적인 속성에 의해 결정된다.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은 이후 모든 공산당이 집권하는 국가는 하나의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공산당이 권력을 독점하고 경제를 독점하고 ‘진리’를 독점하는 이른바 정치·경제·문화 ‘3독점(三壟斷)’이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에 소련과 동유럽 각국의 공산당 정권이 붕괴하면서 ‘3독점’의 필연적 결말은 죽음뿐이라는 사실이 충분히 증명됐다. 중국 공산당이 중국을 통치한 69년 동안, ‘3독점’은 중국 사회의 생기와 활력이 질식시켰고, 중국 인민을 계속해서 대재앙 속으로 몰아넣었다. 중국 공산당이 최후에 붕괴하기 전, 그 본질적 속성은 필연적으로 ‘3독점’을 강화할 것다. 트럼프는 미중 간 공정한 무역관계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지금까지 이런 거래를 한 적이 없다. 중국 공산당 ‘3독점’ 기득권 세력은 반드시 온갖 사태를 벌일 것이다. 그러나 한 고인(高人)이 이르기를 “하늘이 변하려고 하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전 세계를 둘러보면 세계의 대세는 이미 변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2년 가까이 미국과 세계를 ‘전통과 보편적 가치로 회귀’하는 밝은 길로 이끌고 있다. 트럼프는 “우리는 신을 숭배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도 트럼프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사회주의를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공산당은 무신론을 믿고 있고, 중국 공산당 통치하의 중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장 큰 사회주의 국가이다. 트럼프가 취임한 이후에 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전 세계 모든 정의 세력을 결집해 중국 공산당을 포위한 것이다. 2018년 트럼프는 미중 무역전쟁을 앞세워 경제, 정치, 군사, 외교, 과학기술, 이데올로기 등 각 방면에서 강하게 공격해 중국 공산당을 막아낼 힘이 없게 만들었다. 중국 공산당은 ‘개혁개방’ 40년 동안, 이렇게 심하게 얻어맞은 적이 없다. 중국 내에서도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경제적으로는 증시와 외환시장의 급락, 부동산 거품 붕괴 임박, 채무 빙산(숨겨진 부채)의 붕괴 임박, 공장 부도, 실업 급증, 외자 철수, P2P 대출 부실화, 소비 부진, 물가 상승, 인심 불안 등으로 이미 대붕괴 직전에 놓여있다. 2018년 중국 증시는 세계 최악의 증시가 됐으며, 3대 주가지수는 모두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상하이 종합주가지수의 시가총액은 2조 4000억 달러(약 2697조 6000억 원) 증발해 대략 16조 위안(약 2614조 8800억 원)에 머물렀고, 개인 투자자들은 1인당 평균 11만 위안(약 1798만 원) 이상의 손실을 보았다. “중국 증시가 오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떨어지는 이유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시장의 믿음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만약 중국이 계속해서 미국과 무역전쟁을 이어간다면 중국 경제는 완전히 무너질지도 모른다! 정치적으로 중국 공산당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정당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분오열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시진핑은 첫 임기 5년 동안 반(反)부패 정책을 펼쳐 부·성(副省)급 이상의 고위급 관리 440명을 입건했다. 이로써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 당정군(黨政軍)의 최고위층은 이미 뼛속까지 썩었고, 중국 공산당은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정당이 됐다는 사실을 전 세계인 앞에 여실히 드러냈다. 2018년 시진핑의 반부패 ‘호랑이’ 사냥의 수위는 크게 낮아졌지만, 중국 공산당의 부패 공직자들은 여전히 부패의 말로를 향해 달리고 있다. 지난해 4월, 화융(華融)그룹 라이샤오민(賴小民) 회장이 낙마했다. 경찰 수사를 통해 그의 부동산 몇 군데에서 2억 7000만 위안(약 442억 원) 상당의 외화가 발견됐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부패 혐의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중국 공산당의 부정부패는 이미 말기암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고, 어느 누구도 되돌릴 힘이 없다! 중국 공산당의 극단적인 부패는 비록 그것이 지금은 거물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매우 허약한 육체만 남아 있을 뿐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미중 무역전의 충격으로 말미암아 부패하기 이를 데 없는 중국 공산당은 사분오열되는 상황에 내몰렸다. 시진핑의 사람들, 장쩌민(江澤民)의 사람들, 덩샤오핑(鄧小平)의 사람들, 지방 기득권 세력, 기회주의 세력들 모두 끊임없이 분열되고 있다. 관례상, 지난해 가을 열렸어야 할 중국 공산당 ‘4중전회(四中全會·제4차 중국 공산당 전체회의)’도 합의점을 찾지 못해 아직까지 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2월 25일과 26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은 ‘민주생활회(民主生活會)’를 개최했다. 시진핑은 최종 발언에서 ‘투쟁’을 8차례나 언급하며, “투쟁 주도권을 확실히 장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 내부가 여러 사안을 놓고 극심한 갈등을 보이면서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군권(軍權)이 시진핑 손에 있는 한 중국 공산당의 어느 계파도 당분간 시진핑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문화적으로 획일적인 이데올로기는 이미 무너졌다. 중국 공산당의 최하위층부터 최고위층까지, 마르크스주의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국 공산당이 현재 진짜 믿는 것은 배권(拜權)주의와 배금(拜金)주의로, 즉 권력과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중국 선전기구를 빗대 풍자하는 이런 즉흥시가 유행하고 있다. “나는 권전(權錢·권력과 돈)이 기르는 개. 권전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누구를 물라고 하면 그를 물고, 몇 번 물라고 하면 몇 번 문다.” 권전이 있으면 사람이 모이고, 권전이 떠나면 사람도 제각기 흩어진다. 만약 권력도 없고 돈 벌 일도 없다면 중국 공산당을 대신해 목숨을 내걸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중국 공산당은 단지 돈에 살고 권력에 죽는, 명리에 급급한 자들의 집합체이다. 그들의 돈과 권력이 위험해지면, 겉으로는 큰소리를 땅땅 치겠지만, 속으로는 저마다 겁에 질려 죽을 지경일 것이다. 12월 1일,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華爲) 창립자의 딸 멍완저우(孟晚舟)의 체포는 곧바로 중국 공산당 권력 가문 안에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중국 공산당 모든 권력 가문의 전형적 대표 인물인 멍완저우는 여권을 8개나 가지고 있고, 외국에 큰 저택을 사뒀으며, 아이 넷도 모두 외국에 유학을 보내는 등, 중국 공산당이 무너지면 도주할 준비를 이미 마쳐 놓았다. 그런데 미국이 멍완저우를 잡은 것은 중국 공산당 권력 가문의 ‘급소’를 친 것이다. 중국 공산당 권력자들이 진짜로 미국과 맞서고자 한다면 그들의 돈줄과 퇴로가 끊길 가능성이 높다. 지난 12월 1일에서 30일까지 멍완저우 사건이 일어났고, 시진핑이 12월 18일의 ‘개혁개방’ 40주년 기념 대회에서 늘 하던 지긋지긋한 말들을 쏟아냈지만, 미중 무역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미·중 양측 모두 멍완저우의 체포가 미중 무역협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시진핑이 장계취계(將計就計·상대편의 계략을 역이용하는 계략) 차원에서 멍완저우라는 뜨거운 감자를 버리고, 전 세계가 화웨이를 봉쇄하는 곤경하에서 그것을 헝클어뜨려 다시 판을 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많은 언론 보도를 통해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이 장쩌민 집단의 주요 인물임이 확인됐으니 이 분석 또한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이 시점에 시진핑이 12월 18일 했던 “바꾸지 말아야 할 것, 바꿀 수 없는 것은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 같은 말들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그의 정적(政敵)에게 하는 소리일 것이고, 둘째는 미중 무역전쟁을 두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던 것 같은, 시진핑이 이전에 했던 강경한 말투를 이미 버렸다는 뜻일 것이다. 셋째는 “하늘이 변하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하는 고인(高人)의 말에 부합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아래는 12월, 무역 문제에서 미·중 양측이 상호 교류한 내용을 거꾸로 되짚어 본 것이다. 12월 29일, 트럼프는 트위터에 “방금 전 시진핑 주석과 전화통화로 매우 길고 좋은 대화를 나눴다. 협상은 아주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다.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모든 주제와 분야, 그리고 쟁점을 망라하는 매우 포괄적인 합의가 될 것이다. 현재 큰 진전을 보이고 있다!”라는 글을 올렸다. 12월 28일, 미국 무역대표부는 340억 달러(약 37조7400억 원) 규모의 중국산 첫 과세 상품에 대한 관세 면제 리스트를 발표했다. 이로써 984개 상품이 1년간 관세 면제를 받는다. 첫 과세 조치는 지난 7월 6일부로 효력이 발생했던 것으로, 과세율은 25%였다. 면제 조치는 과세 개시일부터 소급 적용된다. 같은 날, 중국도 미국산 쌀 수입을 발표했다. 12월 27일, 가오펑(高峰) 중국공산당 상무부 대변인은 “크리스마스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미·중 양측은 여전히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며 “협상은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1월에도 양국은 긴밀한 전화 협상을 계속해 나갈 것이며, 대면 협상의 구체적 일정도 확정했다. 가오펑은 또한 “중국 공산당은 전방위적인 대외 개방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12월 26일, 블룸버그 통신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2019년 1월 7일 미국은 제프리 게리시 미 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이끄는 대표단을 베이징에 보내 무역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12월 26일, 베이징은 ‘외국인 투자법’ 초안을 발표하면서, “행정수단을 이용해서 기술 이전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외국 투자자의 투자와 외환거래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시장 진입과 퇴출 조건을 불법으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 외국인 투자 기업의 정상적인 생산 및 경영 활동에 불법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등의 내용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 법은 미국이 중국에 요구한 구조적 조정에 대한 답으로 간주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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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 후의 90일은 역사가 시진핑(習近平)에게 장쩌민(江澤民)을 붙잡을 소중한 기회를 다시 준 것이다. 이 90일 이내에 시진핑이 장쩌민을 체포하고 트럼프와 구조적 개혁을 위한 협정을 맺는다면 이는 그에게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허사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잘못에 따른 대가와 책임 또한 스스로 져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시진핑과 트럼프는 미중 무역 문제에 있어서 중대한 타협을 이끌어냈고, 양측은 90일 내에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하며 검증 가능한 합의를 도출하기로 약속했다. 따라서 2018년 12월 1일부터 2019년 3월 1일까지 90일은 시진핑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면서도 극히 짧은, 특수한 역사적 기회이다. 시진핑은 첫 임기 5년 동안 권력을 장악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후진타오(胡錦濤) 정권 당시의 ‘태상황(太上皇·배후의 실권자)’ 장쩌민과 목숨을 건 싸움을 벌였다. 따라서 ‘시진핑과 장쩌민의 싸움’은 5년간 중국 정국(政局)의 화두였다. 시진핑은 두 번째 임기 시작 후 이 싸움을 잠시 멈추고 다른 사업을 주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싸움에서 장쩌민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시진핑과 장쩌민의 싸움’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각종 갈등이 격화된 틈을 타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시 중국 정국의 화두로 떠올랐다. 12월 1일의 미중 정상회담은 이 싸움에 대한 하나의 매듭이며, 트럼프와 이룬 중대한 합의는 시진핑의 성과로 볼 수 있다. 향후 90일 동안 시진핑과 장쩌민의 싸움은 또다시 중국 정국의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장쩌민을 필두로 한 중국 공산당 세력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미중 정상회담이 이룬 중대한 성과를 무산시키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어떤 도전에 직면하게 될까? 1. 장쩌민파의 ‘이론(理論)’ 도전 ‘미중 정상회담’이 막을 내린 12월 3일, 장쩌민 계파 색채가 짙은 해외 인터넷 매체 둬웨이왕(多維網)은 ‘극좌로 찢어진 중국, 시진핑이 책임져야’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시진핑은 또 다른 마오쩌둥(毛澤東)이 되고 싶어 한다”, “시진핑은 황제가 되려 한다” 등의 표현을 쓰며 시진핑을 맹비난했다. 따라서 시진핑은 여러 가지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우선 검토해야 할 것은 기초가 허약한 중국 공산당 이론이고, 두 번째는 현 단계에서의 생산력과 생산 관계를 재정의하지 못해 생길 수 있는 중국 공산당의 전통 이론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각종 사건이다. 그다음 검토 사항은 애매모호한 이데올로기이고, 마지막으로 검토할 사항은 ‘한계성’과 ‘오도’를 뜻하는 ‘정어일존(定於一尊·모든 것은 황제가 결정함)’이다.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국민들에게 유리한 합의를 막 이룬 시점에 어째서 둬웨이왕은 이렇게 시진핑에 맞서는 기사를 냈을까? 재미학자 허칭롄(何清漣)은 트위터를 통해 “국가안전부 계파의 해외 선전매체가 시진핑을 무너뜨리자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이 기사는 시진핑의 몇 가지 죄상을 나열하면서 시진핑을 무너뜨리는 것을 당과 정권의 사활이 걸린 대사(大事)로 간주했다. 이 매체의 본부는 베이징에 있는데, 이렇게 나오는 데는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하나는 ‘너 죽고 나 죽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편에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허칭롄의 이 분석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중국은 여태껏 그럴듯한 이론(理論)이 없었고, 중국공산당의 이른바 이론 싸움은 사실상 권력다툼이었다. 체제 내부에서 권력을 잃은 사람은 온갖 방법으로 권력을 다시 찾으려 하고, 권력을 가진 자는 방법을 총동원해 권력을 지키려 한다. 그렇다면 현재 중국 정치판에서 권력을 잃은 자는 누구일까? 바로 장쩌민파이다. 시진핑은 첫 임기 동안 반(反)부패 정책을 통해 성‧부급(省部級) 및 호랑이(老虎·고위 인사)급 부패 관리 170명 이상을 처벌했는데, 대부분 장쩌민파 사람이었다. 권력을 뺏긴 것이 달갑지 않은 그들은 틈만 나면 시진핑에게서 권력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빼앗는 것은 반역이다. 시진핑이 현재 군사력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대 놓고 반역을 꾀하다가는 분명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어떻게 할까? 최근 몇 년간, 중국의 극좌 여론은 매우 시끄러웠다. 이런 극좌 여론은 누가 만들어 낸 것일까? 바로 장쩌민파다. 공산당의 이데올로기는 오랫동안 장쩌민파 손아귀에 있었으며, 현재 시진핑 이데올로기 책임자인 왕후닝(王滬甯·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도 장쩌민의 비간쯔(筆杆子·정권을 위한 언론매체 종사자)였다. 왕후닝 등은 각종 극좌 여론을 만들어냈고, 이는 미중 무역전쟁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시진핑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극좌 노선을 걷지 않음으로써 장쩌민 등 권력 가문의 기득권이 크게 훼손될 것으로 보이자 그들은 즉시 튀어나와서 이전 단계에서 만들어 놓은 극좌 여론을 전부 시진핑에게 덮어씌우고 있다. 그 목적은 단 하나, 시진핑을 하루빨리 몰아내는 것이다. 2. 장쩌민 등 권력 가문의 도전 12월 1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우리 팀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고 농담했을 때, 시진핑도 “우리 팀 또한 그렇다”고 답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되기 전, 대만의 한 언론은 공산당 ‘내부 인사’의 말을 인용해 “왕치산(王岐山), 류허(劉鶴), 왕양(汪洋) 등의 실무파는 국력이 피폐해 전쟁을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실무에 어두운 당(黨) 고관’과 ‘심보가 음흉한 보수파’는 민족주의 정서를 부추기며 미국과의 전쟁을 선동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된 후 8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 전까지, ‘정변(쿠데타)’을 포함한 시진핑과 관련한 각종 부정적인 소문들이 난무했다. 이는 모두 지난 5년 동안 시진핑이 청소한 ‘호랑이’ 배후의 사람들이 시진핑을 향해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9월 이후, 덩샤오핑(鄧小平) 아들 덩푸팡(鄧樸方)이 공공연히 시진핑을 도발한 것 또한 ‘덩샤오핑 일가 사위’인 우샤오후이(吳小暉)을 체포한 데 대한 불만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중국의 ‘개혁개방’ 40년 동안 장쩌민 일가, 쩡칭훙(曾慶紅) 일가, 뤄간(羅幹) 일가, 자칭린(賈慶林) 일가, 우관정(吳官正) 일가, 허궈창(賀國強) 일가, 리창춘(李長春) 일가, 류윈산(劉雲山) 일가, 장더장(張德江) 일가, 장가오리(張高麗) 일가 같은 권력 가문들이 나타났다. 이 권력 가문은 권력과 돈이 긴밀히 결합된 체제를 이용해 기를 쓰고 돈을 모으는 한편, 그들의 가족과 재산을 외국으로 빼돌리려고 갖은 방법을 다 쓰고 있다. 12월 1일,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창립자의 딸 멍완저우(孟晚舟)가 캐나다 경찰에 체포됐다. 멍완저우는 현재 중국 권력 가문의 중요한 구성원 중 한 명이다. 중국의 한 학자는 “그녀는 중국에서 특권층이지만, 일반 특권층하고는 다르다. 그녀의 역할은 지위와 권력이 높은 여러 정계 요인보다 크다. 그녀는 바로 그녀의 아버지 다음가는 군수업체의 매우 중요한 책임자이다. 게다가 이 군수업체는 중국이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무기를 포함한 일련의 네트워크 장비를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멍완저우는 11년 동안 총 7개의 여권(중국 여권 4개, 홍콩특별구 여권 3개)을 사용해 미국을 여행했다. 또한 홍콩 명보(明報)의 보도에 따르면, 그녀에게는 여권이 하나 더 있다. 멍완저우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단지 그의 아버지 런정페이가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런정페이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도 단지 그가 장쩌민 집단과 협력해 조용히 큰돈을 벌어들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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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중화민국이 중국 공산당에 전복된 지 70년 이자, 천안문 민주화운동 진압 30주년, 파룬궁 박해 20주년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중국 공산당이 ‘멸망’으로 나아갈 또 하나의 1년이 될 해이기도 하다. 이제 14억 염황제의 자손들이 중국 공산당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저버릴 때가 왔다. 중국 공산당의 시초는 중화민족의 조상이 아닌 사탄을 신봉한 서양의 마르크스이며, 중국 공산당의 이론은 중화 신전문화가 아닌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에서 유래한다. 마르크스는 공산당원들이 ‘기존의 모든 사회제도’와 대적하여, 전 국가 정권을 폭력 혁명으로 전복시킬 것을 명했다. 여기에서 마르크스는 유사 이래 최대의 테러주의자이며, 공산당은 인류 역사상 가장 사악한 테러 조직임을 알 수 있다. 2019년은 중국 공산당의 중화민국 전복 70주년 1949년 10월 1일, 중국 공산당이 중화민국을 전복시킨 후 장장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중국 공산당은 1921년 7월에 설립되었으며, 당의 제1 강령에는 ‘무산계급 혁명 군대가 자산계급을 전복한다’는 통치이념이 명확히 제시되어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처음부터 ‘중화민국 전복’을 제1의 임무로 삼았다는 것을 뜻한다. 당시 중화민국은 9년밖에 되지 않았다. 1921년부터 1949년까지 중화민국 발전의 ‘황금 10년’이든, 국난이 눈앞에 닥쳐 민생이 불안한 세월이든, 중국 공산당은 단지 폭력 혁명으로 ‘중화민국 전복’을 꾀할 뿐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려고 각계각층의 인사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중국의 ‘무한한 아름다운 청사진’을 그려주며, 중국 공산당에 돈과 힘을 보태고 피와 목숨을 바치도록 유인했다. 마오쩌둥이 1945년 9월 27일 ‘신화일보’에 기고한 사례를 보면 ‘자유민주의 중국은 평등하고 선거에 의해 중앙정부가 이루어질 것이다. 쑨원 선생의 삼민주의,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원칙, 그리고 루스벨트의 4대 자유를 실현할 것이다’ 쑨원의 삼민주의나 링컨의 원칙은 두고 ‘루스벨트의 4대 자유인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해방, 궁핍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70년이 지난 지금 중국 공산당은 권력, 경제, ‘진리’에 대한 ‘3대 농단’과 중국 공산당 집권자들의 주색과 도박을 일삼으며 무위도식하는 ‘충분한 자유’ 외에, 일반 민중의 ‘4대 자유’는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1949년부터 1976년까지, 마오쩌둥은 50차례 이상의 피비린내 나는 정치 운동을 일으켰고, 8천만 이상의 중국인을 죽음으로 몰았다. 그중 1959년에서 1962년까지의 ‘대약진운동’은 3860만 대중을 산 채로 아사하게 했다. 1962년 9월 24일,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 제8기 10 중전회에서 ‘역사적으로 무산계급 혁명과 무산계급 독재의 시기에는 무산계급과 자산계급 간의 계급투쟁이 항상 존재해왔다”며 “우리는 지금부터 매해 매달 매일 이를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2년부터 1966년까지 ‘계급투쟁’의 끈을 팽팽히 묶은 마오쩌둥은 늘 누군가가 ‘당의 권력을 찬탈’할까 봐 두려워하며 ‘시중쉰 반당 집단’ 타도 등의 정치 운동을 차례로 개시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은 중국 공산당 뤄루이칭(羅瑞卿) 장군의 아들 뤄위(羅宇)의 말처럼, ‘전 당·군·민이 발광한 10년’이었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에 대한 환상과 중국에 남아있던 문화 엘리트를 모두 일망타진해 전멸시켰다. 5천 년 문화재와 유적은 흔적도 없이 없어졌다. 이에 장제스는 “10년 혁명으로 마오쩌둥은 중국대륙전체를 ‘정신병원’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했다. 중국 공산당 원로 예젠잉(葉劍英)은 내부회의에서 문화대혁명이 1억 명을 핍박하고 2천만 명을 죽였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1980년 5월 판샤오(潘曉)는 ‘중국청년’지에 ‘‘인생의 길이여, 어찌 갈수록 좁아지는가’라는 편지글을 발표해 막 ‘문화대혁명’을 경험한 억만 청년의 마음에 방황, 고민, 불안, 회의를 토로하며 호소했다. 판샤오는 “23세의 나이로 이제 막 내민 삶의 문턱에서 인생의 모든 오묘함과 삶의 매력이 내게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책도 조직도 가족도 사랑도 우정도 믿을 수 없으며, 누구도 입에 발린 숭고한 도덕과 신념 따위를 진정으로 경건하게 따를 자는 없다. 10년 혁명을 통해 수많은 중국인은 중국 공산당에 대한 환상을 깼다”고 언급했다. 2019년은 중국 공산당의 천안문 민주화운동 탄압 30주년 1989년 베이징 천안문 대학살 사건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관료 브로커, 부패에 반대하고, 민주, 자유를 외치는 대학생들은 천안문광장에서 중국 공산당 군대의 대학살로 처참히 무너졌다. 미국 백악관의 한 기밀문서에 의하면 워싱턴은 중국 측 계엄부대의 정보원을 통해 천안문 사건 사상자가 4만 명에 달하며 이 중 10454명이 학살됐다는 중난하이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 하지만 장공(張工)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 대변인은 “계엄부대가 천안문광장 임무 수행때 학생과 군중을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18년 천안문 대학살로 자녀를 잃은 어머니 128명은 천안문사건 29주년을 맞이해 시진핑 주석에게 보내는 ‘공개 연명서’를 발표했다. 연명서에는 ‘29년이 되도록 역대 정부는 우리에게 안부를 묻거나 사과 한마디도 없었고.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대학살은 마치 일어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인명과 직결된 중대사를 없던 일로 취급하므로 우리는 당국의 무심함과 냉혹함을 절실히 느낄 따름이다. 인간 세상의 괴로움이 마음속 골수마저 얼게 했다. 우리는 천안문사태 피해자들로서 1995년부터 수차례 양회와 국가 지도자에게 태도를 바꿔 용감하게 그 결과에 책임질 것을 촉구했지만, 정부 당국은 우리의 호소를 무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