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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객기 격추에 반정부 시위…트럼프 “시민 죽이지 말라” 경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이하 현지시간) 이란 지도자들을 향해 “시위자를 죽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지난 8일 발생한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로 82명의 이란 인을 포함한 탑승자 176명이 숨진 사건에 대해 이란혁명수비대 지도부가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 미사일 공격, 인명 살상 의도 없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라크에 주둔 미군 기지에 대한 미사일 공격은 인명을 살상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12일 밝혔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테헤란르포] “거짓말 지도부는 물러가라”…정부·군부에 성난 젊은이들
군경, 테헤란 아자디광장 지키며 최루탄·공포탄·곤봉 진압 테헤란주재 영국대사관 앞에선 반미·반서방 시위 12일(현지시간) 오후 6시가 다가오자 테헤란 남서부 아자디광장에는 ...톈안먼 사태 ‘탱크맨’ 사진작가 “당시 현장에서 목숨 걸고 찍었다”
1989년 6·4 톈안먼 민주화 항쟁의 발발은 그해 4월부터 계엄령이 선포된 5월20일까지 민주화와 부정부패 척결을 외친 20만명이 넘는 학생과 시민들에 의해 규모가 갈수록 커졌다. 결국 이를 '난동'으로 규정한 중국 공산당의 명령으로 인민 해방군이 유혈 진압해 일어난 사건이란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대만 중앙통신의 5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6·4 30주년을 앞두고 AP통신 전 사진작가 제프 와이드너(Jeff Widener)가 당시 총탄 속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과 그 당시 '탱크맨'을 찍어 미국에 보낸 과정을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와이드너는 "사진 기자로서 그것은 내가 보도했던 가장 불가사의한 이야기 중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1989년 초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의 광경을 떠올리며 와이드너는 “시위하던 학생들이 너무 기뻐했고 흥분된 분위기였다고 기억한다. 나는 학생들이 세운 민주 여신상의 위치가 자금성의 마오쩌둥 상을 마주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민주와 전제의 직접적인 충돌이었다. 표현의 자유가 중국에서 통제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흥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베이징의 심한 공기 오염은 처음 온 와이드너를 심각한 독감에 걸리게 했고 6월 4일 밤의 무장 충돌은 그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다. 그는 그때를 상기하며 "톈안먼 광장 인근에서 장갑차를 불태운 사건 당시 시위대가 던진 돌멩이 하나가 나의 얼굴에 떨어졌다. 돌이 나의 카메라에 먼저 부딪혀 죽음을 면했지만 나의 머리는 상처가 났다”고 했다. 돌에 맞은 뒤 와이드너는 여권을 높이 쳐들고 "American(미국인)!"이라고 외쳤다. 앞장선 한 학생이 진정하라고 하며 한 시체를 가리켰다. “그 시체는 불타는 장갑차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 학생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시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거리의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촬영한 후, 와이드너는 거리에서 LA타임스 기자의 인터뷰를 수행하던 미국 교환학생 마르센을 만났고, 그의 협조로 카메라를 가지고 베이징호텔 6층 발코니에 들어가 톈안먼 광장 상황을 촬영했다. 1989년 6월 5일, 베이징호텔에서 와이드너가 찍은 육신으로 탱크를 막아선 ‘탱크맨’ 사진이 톈안먼 사태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와이드너는 머리 부상에 심한 독감까지 겹쳐 그의 판단력이 이미 영향을 받았고, '탱크맨'을 찍을 때 카메라 셔터 속도를 점검하는 것도 깜빡했다고 말했다. 그는 “800mm의 긴 렌즈로 셔터 속도가 1/30초로 느렸다. 그것은 불가능한 임무였지만 기적처럼 한 장이 성공했다”고 했다. 사진을 찍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어떻게 사진을 전달하는가가 중요했다. 다행히, 말슨은 필름을 속옷에 넣고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갔다. 그는 대사관 직원에게 필름을 AP통신에 전달하도록 해 세계 각지의 신문에 채택될 수 있었다. 홍콩 ‘빈과일보’ 5월 5일 자 보도에 따르면, '6.4'에 참여했던 베이징전영학원(北京電影學院)의 하오젠(郝建) 교수는 인터뷰에서 군인들이 쏜 총에 여러 명의 학생이 살해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1989년 6월 3일 저녁 10시가 넘자 중공군 계엄부대가 총을 쏘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은 당시 군이 총을 쏘지 않으면 정권에 치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고 했다. 계엄부대가 돌격해 왔을 때, 하오젠 교수는 톈안먼 서쪽 남장안가 부근에 있었다. 군인이 방패를 든 채 기관총을 들고 몰려왔다. 그의 앞에서 20~30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진을 찍는 학생이 있었다. 그는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하자 탄알 한 발이 즉시 날라왔다. 나는 두 학생이 바닥에 쓰러지는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민중들과 "파시스트! 폭도!"를 외치던 하오젠 교수는 베이징영화학원으로 돌아가면서 정법대학을 지날 때 본관 현관에 5구의 희생자 시신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시체는 그 당시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 머리가 탱크에 깔려 터진 사람도 있었는데 머리에 묶인 붉은 천 조각은 이미 볼에 깊이 박혀 있었다. 그의 사촌 동생인 하오즈징(郝致京)도 그 사건으로 살해됐다. 그는 당시 베이징의 여러 병원 시체실을 샅샅이 뒤졌지만, 20여 일 뒤에야 푸싱병원(復興醫院)의 비좁은 냉장고에서 온몸이 새까맣게 변한 사촌 동생의 시신을 찾았다. 1989년 6월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30만 명에 가까운 계엄부대가 탱크, 장갑차, 기관총을 동원해 톈안먼 광장에서 청원한 학생과 시민들을 진압했다. 중국 공산당은 몇 명을 학살했는가? 미국과 영국의 기밀해제 문건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이 진압에서 최소 1만여 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한다. /차이나뉴스팀런던 ‘독립민간재판소’서 쏟아진 중국 ‘강제 장기 적출’ 관련 증언들
런던의 독립민간재판소에서, 중국에서 장기 적출을 하기 위해 양심수를 대량 학살한 만행과 관련해 증언을 들었다. 이 재판은 4월 6일부터 7일까지 열렸으며, 연구자, 의료 전문가, 언론인, 세계 각국에서 온 생존자 등 20여 명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들 증인은 파룬궁 수련인과 위구르족 등 중국에서 박해받는 단체를 대상으로 한 국가 차원의 장기 적출 만행에 관해 증언했다. 지난 12월 열린 재판에서 3일간 심리한 후, 법정 패널들은 중국에서 양심수들을 대상으로 한 장기 적출이 "상당한 규모로” 이루어졌다고 결론 낸 판결문 초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정의 패널은 중국에서 자행되는 강제 장기 적출 만행에 대해 세계 최초로 독립적인 분석 임무를 수행하는 7명의 전문가로 구성됐다. 이 재판소의 소장은 과거에 국제형사재판소에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을 제소한 영국 칙선변호사(최고 등급의 공판변호사) 제프리 나이스 경이 맡고 있다. 법률 고문 하미드 사빔에 따르면 해당 재판소에서 중국 보건 부서 최고위 공무원들과 런던 주재 중국 대사관 직원 등에게 중국 정권을 대표해서 증인으로 참석할 것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광범위하게 진행된 혈액검사 중국에서 박해받았던 증인들이 구금 중 혈액검사와 건강검진을 받은 사실을 증언했다. 4월 7일, 위구르족 미흐리굴 투르순은 수용소 수감자들이 혈액검사와 초음파검사 등 정밀 건강검진을 받았다고 비디오를 통해 재판부에 밝혔다. 그는 신장 북서쪽에 위치한 수용소에서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고 지난해 미의회 위원회에서 증언한 바 있다. 미 국무부와 국제 전문가들은 중국 공산 정권이 '극단적인 위협'에 맞서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신장 내 방대한 수용소에 100만 명 이상의 위구르족, 카자흐족 및 기타 이슬람 소수민족을 억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투르순은 2017년 4월 사흘간 고문을 받은 후, 두건을 쓰고 수갑과 족쇄가 채워진 채 병원에 있는 검사실로 이송됐다고 증언했다. 투르순은 통역을 통해 "내 팔에서 피를 두 번 채취한 사실은 알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피를 뽑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심장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혈압 테스트와 의학 테스트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병원의 지하실로 짐작되는 어두운 방으로 안내됐고, 그 방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두건, 수갑, 족쇄, 옷 등을 모두 벗겼다. 그들이 그녀의 가슴 부위에 장비를 부착해 그녀의 몸을 검사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녀의 이마, 어깨, 심장 바로 아래, 그리고 두 다리 위에 액체를 끼얹고는 그녀를 유리로 된 기계에 넣었고, 그 안에서 그녀에게 1에서 10까지 세면서 몸을 둥글게 만들라고 요구했다. 투르순은 기계 안에 있는 동안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 기계에 투입된 후 두려움에 떨었다. 나는 그들이 내 장기를 가져가고 있고 내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2017년 신장 지역 3개 시설에 1년 넘게 구금됐던 또 다른 위구르 여성 굴바하르 젤릴로바도 4월 6일, 구금 중 정기적으로 혈액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받은 사실을 증언했다. 위구르 인권단체인 세계위구르의회 의장, 돌쿤 이사도 4월 7일 재판정에 출두하여 세계위구르의회도 신장 위구르 수감시설에서 광범위한 건강 검진이 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수감됐던 위구르인들로부터 모았으며, 아울러 수감자들이 감방에서 끌려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보고도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사 의장은 또 2016년 신장에서 중국 당국이 시작한 대규모 '신체검사' 프로젝트를 통해 수감시설 밖에서도 약 1100만 명에 이르는 위구르인들이 혈액검사 대상이 됐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