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진짜 현실”…중국서 ‘국뽕’ 깬 팩트폭격 뉴스 삭제

차이나뉴스팀
2023년 06월 21일 오후 2:51 업데이트: 2023년 06월 21일 오후 4:01

대형포탈 뉴스어플 ‘소후뉴스’ 카드뉴스 시리즈 배포
청년실업률, 낮은 임금, 높은 부양부담 등 ‘현실’ 직격
논란 후 삭제…中 네티즌 “진실을 말할 용기” 평가도

중국 대형매체가 침울한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 담은 카드뉴스를 공개했다가 파문 끝에 삭제당했다.

그러나 경제, 사회적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당초 기대한 효과인 ‘청년층의 냉정한 현실 인식 유도’를 뛰어넘어 중앙 정부와 중국 공산당에 직격탄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 뉴스어플 ‘소후뉴스(搜狐新聞)’는 최근 민생칼럼 코너인 ‘쭈이광(追光·추광)’을 통해 주로 중국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전하는 총 9매의 카드뉴스 시리즈를 제작, 온라인에 배포했다.

해당 카드뉴스는 강렬한 이미지를 주는 사진을 배경으로 상단에 힘 있는 짧은 문구를 넣고 그에 관해 설명하는 단신 뉴스를 하단에 배치했다. 중국에서는 ‘포스터(海報·하이빠오)’로 불리는 형태다. 미중 정상회담 등 특별한 뉴스를 강조해서 전달할 때 종종 사용된다.

각 카드에는 △61년 만에 첫 인구 마이너스 성장 △청년실업률 첫 20% 돌파 △미성년 범죄 용의자 42.8% 증가 △1억5천만 명, 노부모 부양 압력 △월평균 가처분소득 2614위안(약 47만원) 미만 인구 7억 명 △70세 미만 퇴직노인 5천만 명 여전히 돈벌이 등 경제 분야 뉴스가 실렸다.

아울러 △무직·실업자 우울증 위험 31%(일반인 3배) △중국 장애 인구 약 8500만 명 △중국 희귀병 환자 2천만 명 이상 등 어두운 사회상을 인구통계학적으로 분석한 소식도 있었다.

특히 모든 카드 최하단에는 작은 글씨로 해당 뉴스의 출처도 명시했다. 중국 국무원, 국가통계국, 발전개혁위원회, 최고검찰원 등 소위 ‘공신력 있는’ 정부기관이 발표한 공식 자료였다. 즉 ‘세계 경제대국’이라는 도취감에 취한 중국 청년층에게 ‘반박 불가의 팩트 폭격’이 된 셈이다.

중국 24세 이하 실업률(청년실업률)이 20%를 넘어섰다는 소후뉴스 카드뉴스. 하단에 자세한 소식을 전하며 국가발전개혁위원회라는 출처를 표시했다. | 웨이보

뉴스를 접한 중국 네티즌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한 네티즌은 자신의 웨이보에 “소후뉴스, 죽기를 각오했네(搜狐新聞不要命了)”라며 카드뉴스들을 공유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24세 이하 청년실업률이 20%를 돌파했으니 아이를 낳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같은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현재 해당 카드뉴스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으며, 이 소식을 전하던 웨이보 계정에서도 빈 이미지만 표시된다. 논란이 커지자 당국의 검열에 의해 삭제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검열 전 뉴스를 접한 이들 사이에서는 반향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중국 1인 미디어들은 진실을 말한 소후뉴스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트위터 계정 ‘리선생’은 “소후뉴스의 의도가 무엇이든 진실을 말하면 위험한 이 시대에 진실을 말한 용기는 소중히 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소후뉴스는 중국 대형 포털사이트 소후에서 서비스하며, ‘진르터우탸오(今日头条·오늘의 헤드라인)’, 왕이뉴스( 网易新闻) 등과 함께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뉴스어플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대기업인 소후뉴스가 정권을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해당 카드뉴스를 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오히려 온라인의 과열된 여론을 식혀 정권 안정에 기여하려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평론가 리닝은 “그동안의 빠른 경제 성장으로 축적된 자부심, 시진핑 정권 출범 후 강화된 애국주의 교육이 더해지면서 현재 적잖은 중국 청년층은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단적 추종 세력은 정권 호위병 노릇을 하지만 때로는 독이 된다. 이들 눈치를 보느라 정책이 포퓰리즘으로 흐르기 쉽다”며 “현재 중국은 높은 청년실업률로 시진핑까지 직접 나서서 청년들에게 노점창업, 농촌행을 독려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소후뉴스 카드뉴스들. ‘미성년 범죄 용의자 42.8% 증가’, ‘무직·실업자 우울증 위험 31%’, ‘중국 희귀병 환자 2천만명’(왼쪽부터) | 웨이보

그러면서 “정권은 ‘중국 최고’, ‘공산당 만세’를 외치던 애국주의 청년들에게 실망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소후뉴스에서 이런 뉴스가 나온 것”이라면서 “하지만 청년들이 팩트에 강타당해 세뇌가 풀려버리는 효과가 났다”고 지적했다.

6월 15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홈페이지에 5월 경제 데이터를 발표했다. 5월 전국 도시조사 실업률은 5.2%로 4월과 같았다. 하지만 청년실업률은 20.8%로 4월보다 0.4%포인트 올라 2018년 관련 통계 발표 이후 두 달 연속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가통계국은 청년실업률이 치솟은 것과 관련해 16~24세 청년인구 9600만 명 대부분이 재학 중이며 실제 고용시장에 진입한 인원은 3300만 명으로 이 중 2600만 명이 취업해 실제 실업자는 600만 명이라고 해명했다.

이는 청년인구 9600만 명을 고려하면 실제 실업률이 6.3%이라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중국은 한 주에 1시간만 일해도 ‘취업(고용)’으로 분류하고 있어 20.8%라는 실업률도 실제보다 여전히 과소평가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