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러-우 전쟁, 글로벌 분업체계에 재편 압력 작용

허칭롄(何淸漣)
2022년 04월 22일 오후 8:24 업데이트: 2022년 04월 23일 오전 8:57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국제사회 질서를 흔들고 있다. 서방의 러시아 경제 제재는 글로벌 분업체계를 재편하도록 하는 거대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시장과 자원을 외국에 의존해온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이번 전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상위 10개국 가운데 1위 미국, 10위 캐나다를 제외한 나머지 8개국인 중국, 일본, 독일, 인도, 프랑스, 영국, 브라질, 이탈리아는 시장과 자원의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다. 미국과 캐나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높은 대외 의존도는 평화 시기에는 큰 효율을 낼 수 있지만, 전쟁이 터지면 효율은 곧 위기로 되돌아 온다. 2월 24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자, 미국과 동맹국 및 파트너들은 러시아를 상대로 전면적인 금융 제재와 수출 규제를 시행했다. 러시아의 경제·금융시스템, 과학기술 개발은 즉각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됐다. 동시에 EU가 의존하고 있던 러시아산 에너지와 농산물도 공급이 중단됐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무역항에 적재된 컨테이너 | 타스/연합뉴스

세계화가 전 분야 확산된 원동력은 평화

세계화가 처음 시작됐을 때는 경제 분야에 그쳤다.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 시애틀 회의 당시 미국의 좌파 인사 5만 명이 벌인 반세계화 운동인 이른바 ‘시애틀 전투(Battle in Seattle)’ 이후 미국 내 좌파들의 입장은 세계화 반대에서 세계화 지지로 바뀌었다. 단, 기존 세계화와 다른 형태의 대안 세계화였다. 이후 세계화의 개념은 주로 미국 좌파의 정치적 주장에 따라 변형됐다.

아랍권은 민주화 시위였던 ‘아랍의 봄’이 세계화의 기폭제가 됐다. 따스한 봄날을 되찾아줄 것으로 여겨졌던 아람의 봄 시위는 혼란과 사회 불안으로 이어지며 ‘아랍의 겨울’을 불러들였다.

자유·민주·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던 혁명은 암울하게 퇴장했고, 그 빈 자리에는 서방 세계의 유토피아적 개념인 ‘평화주의’와 기후변화 대응을 표방한 ‘녹색에너지주의’가 들어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평화주의와 녹색에너지주의가 파탄에 이르렀음을 선언하고 있다. 아울러 그동안 세계화를 뒷받침하던 ‘생산비 비교우위에 기반한 국제 분업 체제’와 ‘자본의 글로벌 이동’은 대규모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서방 각국은 러시아 및 러시아와 경제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경제블록을 상대로 벽을 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가리켜 “새로운 철의 장막이 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철의 장막은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을 동서로 나누던 경계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이라는 중립지대가 존재해 양쪽을 완전히 차단하는 개념인 장막과는 좀 다르다.

세계화는 냉전 종식 후 세계가 평화 시기에 들어갔기에 가능했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겸 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역사의 종언’에서 그의 스승인 새뮤얼 헌팅턴과는 완전히 다른 청사진의 세계를 제시했다.

후쿠야마는 민주제도는 인류사회의 마지막 정치제도가 될 것이며 세계의 모든 문명이 당시 전 세계에서 수용되고 있었던 백인 문명에 동화할 것이라고 암시했다. 그는 헌팅턴이 강조한 ‘문명의 충돌’ 개념을 완전히 부정하고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과학기술과 통신의 발전으로 온 인류가 쉽게 왕래하고 소통하게 되면서 지구가 하나의 마을처럼 된다는 개념이다.

경제학에서의 생산비 비교우위설은 국제 분업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이론이다. 어떤 국가는 첨단 과학기술에, 어떤 국가는 농산물에, 어떤 국가는 석유 등 광물자원에 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저렴한 노동력과 토지가 우위로 평가된다.

효용 극대화를 위해서 자본은 국경 없이 전 세계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원가가 가장 저렴한 곳을 찾는다. 각 국가는 가장 잘하는 상품을 생산하거나 가장 저렴한 자원을 제공해 자신이 소유한 것으로 다른 국가의 부족분을 채운다.

이렇게 되면 모든 국가는 저렴하고 양질의 상품을 누릴 수 있다. 적어도 세계화 초기 단계까지는 그랬다. 뉴욕에서부터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각국의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는 자신의 소비 능력에 따라 의류·신발·식품·원료는 물론 첨단 제품들까지 같은 브랜드 제품을 사용했다.

국제 분업 체제는 글로벌 산업사슬(Industry Chain)을 형성한다. 글로벌 산업 사슬의 안전은 자본 안전에 달려있으며, 자본 안전의 요소는 자유로운 유동과 사유 재산권이 존중·보장받는 것이다.

이는 미국, 유럽 등 글로벌 대자본 집중 국가들이 개발도상국들이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 세계화의 기본 원칙이며, 글로벌 자본 안전 흐름의 기초이다.

독일 정유공장으로 연결되는 파이프 | AFP/연합

취약해진 글로벌 분업, 러-우 전쟁으로 파국

세계 각국은 1990년대부터 20년 가까이 세계화에 따른 물질적 이익을 톡톡히 누렸다. 그러나 2013년부터 세계화의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업사슬(Industry Chain)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해 개발도상국의 제조업이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실업이 급증했다. 수많은 산업 노동자는 세계화로 실직하고 수입이 감소했으며, 생활 형편이 악화됐다.

세계은행에서 선임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브랑코 밀라노비치 뉴욕 시립대학(CUNY) 객원교수는 1998~2008년 전 세계적으로 소득증가 변화를 추적 연구한 결과 중국과 인도 중산층의 소득은 1998~2008년 사이 60~70% 증가했지만, 미국 중산층과 샐러리맨의 소득은 정체돼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밀라노비치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화는 전 세계적(또는 국가 간) 불평등을 낮췄지만, 한편으로는 국가 내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전자는 아시아 등 신흥 중산층의 부상과 관련이 있으며, 후자는 주로 고소득 국가 내부의 불평등과 관련됐다. 선진국 블루칼라 노동자의 소득 정체가 두드러졌다.

그의 연구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아우터, 스페인 통화·금융연구센터의 데이빗 돈,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의 고든 핸슨 등 거물급 경제학자도 논쟁에 참여했다. 이들 3명은 글로벌 무역과 기술 발전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해 밀라노비치 교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세계화가 불평등을 가져왔으며 미국 등 선진국 노동자들의 피해가 가장 컸다는 점은 미국 대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2016년 대선 당시, 민주당은 ‘세계화 주도’와 ‘세계 각국 취약 계층에 대한 배려를 내세웠다. 그러나 자국 납세자에 대한 보호 의지를 내보이지 않았고, 미국 내 백인 노동계층의 표심을 공략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후 세계는 급변했다.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는 글로벌 공급망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 대량생산의 시대에 익숙해졌던 소비자들은 이 사태를 통해 상품을 언제든 원하는 만큼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코로나19가 지나가기도 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 서방 국가들은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러시아를 상대로 전례 없는 제재를 발동했다. 러시아는 국제금융결제망(SWIFT)에서 퇴출됐고, 정부기관·관리·기업·개인은 금융자산과 부동산 몰수 등 금융제재를 받게 됐다.

서구 좌파가 혐오 반대, 차별 철폐 등을 내세워 저명한 개인·단체·기업을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동원하는 일종의 거부 행위인 ‘캔슬 컬처(cancel culture·취소 문화)’의 서슬 퍼런 칼날이 러시아의 음악·발레·문학작품으로 향했다. 심지어 러시아 고양이와 나무도 캔슬 컬처의 희생양이 됐다.

러시아도 반격했다. 러시아 의회는 반(反)제제 법안을 통과시키고 호주, 캐나다, 노르웨이, 일본에서 식품을 수입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렸다.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불이익을 줬다.

서방의 제재는 본질적으로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입혀 러시아 화폐인 루블화 가치를 무너뜨리고 금융위기를 발생시키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더 나아가 서방이 주도하는 질서에 역행하는 행보를 거듭해온 러시아를 징벌하려는 의도였겠지만, 그 여파로 미국 좌파가 주도한 세계화가 대거 퇴보하는 결과로 이어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30여 년간에 걸쳐 추진된 세계화는 올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가 양분되며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재임 기간에 세계화를 달성한 것을 과업으로 자평한 민주당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심경이 궁금해진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 AFP/연합

남보다 더 빨리 곤경에 빠진 독일과 EU…왜?

서방 국가들은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이용해 그동안 수많은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에 경제 제재를 가해왔다. 때로는 목적을 달성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관건은 제재 대상국이 글로벌 분업체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글로벌 분업체계에는 ‘상품대체성’의 개념이 존재한다. 어느 국가·지역 상품의 원가가 상승하면, 자본은 원가가 낮은 지역에 따라 움직인다. 자본은 원가가 높은 생산지를 버리고 원가가 낮은 생산지를 찾는 성질이 있다.

중국 제조업은 글로벌 공급망의 최하단에 있으며 산업구조에서 기술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런 상태에서 인건비와 토지 임대료가 상승하자 외국자본은 중국에서 철수해 생산 원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동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으로 옮겨갔다. 기술력이 낮은 상품은 대체성이 강하다는 상품대체성이 중국의 사례를 통해 입증됐다.

그렇다면 러시아산 에너지는? EU 회원국들은 러시아 제재를 발동해 러시아산 석유·천연가스 공급을 차단했지만, 이를 대체할 공급자를 찾지 못해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석유는 러시아의 주요 수입원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은 러시아의 자금줄을 차단하겠다며 러시아산 석유의 수입을 금지했다.

상품대체성은 국가마다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국가마다 해당 상품에 대한 타국 의존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미국과 영국은 상대적으로 강력한 제재를 발동했다. 영국은 천연가스 수입량의 4%, 원유 수입량의 8%를 러시아에 의존한다. 미국은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하지 않는다. 다만, 수입하는 석탄의 45%가 러시아산이다.

폴란드와 발트 3국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낮아 러시아산 석유·천연가스 수입 금지를 지지하고 있다.

반면 독일, 벨기에 등 국가들은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제재를 유예해 줄 것을 원하고 있다.

독일은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55%를 러시아에서 들여온다. 독일 총리와 경제부 장관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 조치가 독일과 유럽 전체를 경제적 침체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이 같은 독일 등의 우려를 고려해 지난 3월 25일 올해 유럽에 액화천연가스(LNG)를 최소 150억㎥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 2021년 한 해 유럽이 러시아에서 공급받는 천연가스의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러나 독일의 철강업계와 화학업계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독일 철강산업협회 한스 유르겐 케르코프 회장은 “러시아산 에너지가 없으면 생산이 정체될 것”이라며 서방의 러시아 제재가 철강업계에는 강제 봉쇄 조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 철강업은 EU 최대, 세계 8위 규모의 산업이다. 독일에서 제조한 철강은 다른 제조업 분야의 기초 소재가 된다. 철강 산업에 제동이 걸리면 건설·금속·전기·자동차 산업과 산하 하청업체들이 역시 줄줄이 제동이 걸리게 된다.

케르코프 회장은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단기 일자리가 줄고 실업이 증가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화학업계의 고민은 더 깊다. 화학산업에서 러시아 천연가스의 중요성은 다른 산업과 차원이 다르다. 독일 화학업계는 천연가스 수요량의 4%만 단기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추산 방식에 따라 수요량의 100분의 1에 그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발언하고 있다. | Chip Somodevilla/Getty Images

글로벌 분업체계의 개편은 이제 막 시작됐다.

공업 선진국 입장에서 외국에 의존하는 시장과 자원을 모두 안정되게 유지하는 일은 이제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지구촌은 다극화되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글로벌 일체화를 이룬 시장과 자본의 이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를 미리 예견한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글로벌 리더십 복원을 주장해왔지만, 국제질서에 엄청난 파장을 미친 러시아 제재와 관련해 준비가 부족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 제재 발표 후 계속 입장을 바꿔왔다.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고 대비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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