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져온 유럽의 격변

청샤오눙
2022년 03월 31일 오후 4:01 업데이트: 2022년 03월 31일 오후 4:01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 지금까지 세계 각국 언론들은 전쟁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유럽이 일대 변화에 휩싸인 점을 놓치고 있다. 지금 유럽 국가들은 당황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간 누려온 ‘번영과 평화’는 깨졌고, 정치적·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제 유럽은 더는 과거의  부유하고 행복한 대륙이 아니다. 그들의 고통은 올해부터 시작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EU가 느낀 상실감 3가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에 거대한 변화를 몰고 왔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평화와 행복을 누려 온 호시절이 갑자기 끝나버린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전쟁 없는 평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U는 또다시 러시아를 적국으로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둘째,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 국가들의 ‘수장’이 되려는 꿈이 깨졌다. EU는 우크라이나 난민 위기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안정과 부유와 화합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그린에너지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이 깨졌다. EU가 그린에너지 정책을 계속 고집한다면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야기해 유럽 경제가 파탄날 위험이 있다.

이 3가지 결과는 EU 국가들이 충분히 예견했어야 했다. 이 같은 결과는 서구권의 황당하고 취약한 국제 정치·경제 전략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3가지 결과는 서구 좌파의 3가지 유토피아 환상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첫 번째 환상은 유럽은 영원히 전쟁이 없을 테니 국방비를 줄여 복지 향상에 써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환상은 유럽 대통합이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고, 독일과 프랑스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체를 이끌어 유럽의 영광을 되찾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 환상은 유럽의 성공한 그린에너지 정책을 앞세워 전 세계를 호령한다는 것이다. 즉 유럽이 정한 글로벌 기후정책에 따라 전 세계 국가들이 유럽 국가들이 그린에너지 실행으로 감축한 탄소배출권을 사게 해 유럽이 투입한 그린에너지 원가를 보상받는다는 것이다.

이 3가지 유토피아적 환상은 서구 좌파 정부들의 가치체계가 낳은, 국제정치와 글로벌 경제활동을 지배하는 전략적 지침이다.

첫 번째 환상은 좌파 ‘평화주의’의 산물로, 이 평화주의 사상의 이면에는 공산주의 ‘붉은 대국’을 선망하는 가치관이 깔려 있다.

두 번째 환상의 산물이 바로 EU이다. 이 환상의 이면에는 좌파의 세계 대통합의 가치관뿐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의 전통적인 국제적 야심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국가는 과거에 누렸던, 국제사회에서의 주도적 지위를 회복하려 한다.

이 같은 야망 이면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좌파가 신봉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제도적 자신감’과 ‘이데올로기적 자신감’이 깔려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서구 사회의 대중적 가치관인 이른바 ‘진보’의 고지를 영원히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유토피아 환상에 대해는 필자가 지난 칼럼(링크)에서 자세히 언급했다.

‘붉은 호랑이’ 두 마리, 또다시 세계 평화 위협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과 중유럽 국가들은 전쟁을 겪지 않았다. 과거 미·소 냉전 시대에는 동서양 진영에서 열전이 일어나지 않았고, 소련 붕괴로 미·소 냉전이 종식되면서 전 세계는 평화로운 경제 발전 시기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경제 세계화는 이러한 국제 정치적 배경에서 점진적으로 완성됐다.

그러나 미·소 냉전이 종식된 뒤 세계는 조용하지만, 세계 평화를 뒤흔들 만한 큰 변화를 겪었다. 평화주의 사조에 휩싸인 서구 국가들은 ‘붉은 패권’, 즉 공산주의 국가의 패권 야망이 또다시 세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또한 독일과 프랑스는 EU를 통해 유럽 전체를 장악하고 세계 최대의 경제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키웠고, 이것이 러시아에 잠재적 위협이 됐다.

바로 이런 평화로운 시절, 미국과 유럽의 지도자들은 공산주의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고 실력이 커지면 패권주의가 부활할 수 있음을, 그리고 러시아가 민주화에 실패하면 역시 패권주의가 부활할 수 있음을 예견하지 못했다. 그 결과 ‘붉은 호랑이’ 두 마리를 키우고 만 것이다.

이제 이 두 마리 ‘붉은 호랑이’는 다시 세계 평화와 지역 안보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호랑이들은 고립되지 않기 위해 등을 맞대고 서로 보호하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화상통화에서 베이징 당국이 푸틴을 지지하면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베이징 당국은 러시아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인도적 지원’ 물품을 실은 열차에 무엇이 실렸는지는 시진핑만 알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 국가들이 ‘붉은 호랑이’와 대결하는 구도로 되돌려 놓았다. 이 새로운 구도에서 미·중 관계는 미국의 ‘판다 허거들(Panda Hugger·공산 중국을 지지하는 서구 정치인)’이 기대하는 것처럼 오바마 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U 국가들도 엄청난 압력에 직면했다.

서유럽, 또다시 냉전 방식으로 열전에 대응

우크라이나 전쟁은 EU가 독일·프랑스 주도의 유럽 대통합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동진한 데서 비롯됐다. EU의 동진으로 EU의 경계는 러시아에 가까워졌고 우크라이나 등 몇몇 나라만 남아 러시아와 EU 사이의 마지막 중간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EU 회원국은 대부분 NATO에 가입했기 때문에 EU의 새 회원국들도 국방 안보를 위해 NATO에 가입하려 한다. 그러나 NATO 회원국들은 이들 국가를 군사적으로 보호할 만큼 군사력이 강하지 않다. 따라서 NATO 회원국들조차 미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은 이들 EU 신규 회원국에 상징적으로 소규모 병력을 파견했을 뿐이다.

푸틴은 이들 국가에 미군이 주둔한 것을 빌미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켜 최후의 중간 지대를 빼앗아 EU의 동진 위협을 줄이고, 나아가 NATO가 모든 EU 신규 회원국의 안보에 개입하지 않기를 원했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내세운 조건이자 ‘최고 목표’다.

‘이빨 빠진 호랑이’나 다름없는 EU의 대다수 국가들은 어쩔수 없이 다시 무장하고 앞으로 러시아와 새로운 냉전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됐다. 유럽의 신냉전은 이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됐다. EU는 유럽의 신냉전을 이용해 동유럽과 중부유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열전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 한다.

이 때문에 EU는 2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외교장관·국방장관 합동회의를 열어 EU 공동의 안전보장전략인 ‘전략적 나침반(Strategic Compass)’에 합의하고, 5000명 규모의 신속대응군을 창설해 2025년부터 본격 운영하기로 했다. 전략적 나침반은 2030년까지 EU의 안보와 국방을 강화하는 계획이다.

조셉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현재의 적대적인 환경은 비약적인 도약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방금 EU 외무·국방장관들과 함께 ‘전략적 나침반’을 승인했다. 나침반은 우리에게 향후 10년간 더 강력한 EU 안보와 방어를 위한 야심찬 행동 계획을 제시한다. … 지금은 유럽이 전쟁과 같은 미래의 도전을 마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할 때다. 이것이 EU 회원국이 군사력을 높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구 국가들이 직면한 3가지 난제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서구 국가들은 3가지 난제에 직면했다. △군사비 증액, △에너지 가격 급등,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 등이다.

◇첫 번째 난제는 군사비 증액이다.

서구 국가들은 오랫동안 국방비를 GDP 대비 1% 안팎으로 유지해왔다. 이는 다른 지역의 국가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지만, 그마저도 전투 부대를 양성하고 유지하는 데는 별로 쓰이지 않았다. 이제 EU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평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EU의 최신 ‘전략적 나침반’은 5000명 규모의 신속대응군을 창설하고, 노후 항공기·탱크·미사일 등을 신형으로 개체한다고 제시했다. 이는 국방비를 대폭 늘려야 함을 의미한다.

유럽 국가들은 재정 예산을 대부분 사회복지에 쏟아붓고 있어 군비를 늘릴 여력이 없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군비를 늘리려면 사회복지비를 삭감하든지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복지비는 손을 댈 수 없다.

22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EU는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 회원국) 공동 채권을 발행해 1년 내에 1500억에서 2000억 유로를 빌리고, 이후 계속 빌릴 계획이다.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하므로 EU 국가들에 재정 부담을 준다.

EU는 정상적인 재정 수입 범위 내에서 군비를 증액할 수 없을까? 군비를 증액하는 것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다. 즉, 경제적으로 할 수 있어도 정치적으로 할 수 없다. 유럽 정치계가 절대선으로 여기는 ‘정치적 올바름’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복지국가를 지향했기 때문에 복지를 줄이면 집권 여당이 위태로워진다. 이는 프랑스에서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사실이다. 더구나 복지를 축소해 군비를 늘리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유럽 국가들이 신봉해온 ‘평화주의’ 이념에 반하는 것으로, 유럽의 좌파 정당들에는 ‘정치적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그 위험은 유럽 외 국민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두 번째 난제는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이다.

유럽 국가들은 그린에너지 정책으로 인해 딜레마에 빠졌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정치적 판단에 따라 그린에너지 정책을 폄으로써 에너지 공급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해왔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공급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적 대가이자 정치적 대가이다. 독일은 현재 석탄을 채굴해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을 슬그머니 논의하고 있지만, 이는 그린에너지 방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꼴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 영국과 스페인을 제외한 유럽 대다수 국가는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았다. EU 국가들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40%에 달한다. 독일이 약 50%로 가장 높고 그다음이 이탈리아로 46%이며, 그 외 프랑스 25%, 헝가리 20% 등이다.

EU가 러시아에 금융제재를 가한 이후 푸틴은 러시아산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만 결제하도록 하는 초강수 맞대응을 했다. 이 같은 조치는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EU 회원국 국가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외환시장에서 루블화를 사들여 가스를 계속 수입하면 대(對)러시아 금융제재 결정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금융 제재 결정을 그대로 이행하면 에너지 공급 위기를 맞게 된다.

유럽 국가들은 값싼 러시아산 가스를 일부 포기하고 비싸더라도 다른 나라 액화천연가스로 대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려면 추가 비용이 매년 1300억 유로 정도 발생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이 재원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 에너지 원가 상승분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면 국민이 고통받게 될 뿐만 아니라 생산원가를 높여 기업의 국제 경쟁력도 약화될 것이다.

◇세 번째 난제는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다.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국민 3700만 명 중 최소 330만 명이 주변국으로 대피했고, 앞으로 주변국으로 대피할 난민이 650만 명 가까이 된다. 이들은 현재 우크라이나 내에서 떠돌고 있다.

우크라이나 난민 중 최소 2백만 명이 폴란드로 갔고, 지금도 하루에 몇 만 명씩 폴란드 국경을 넘고 있다. 현재 루마니아와 헝가리도 각각 50만여 명, 30만여 명을 수용한 상태다.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EU 회원국들은 이들 난민을 수용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일부는 서유럽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서유럽 국가들은 재정 부담이 늘어날까 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독일은 현재 입국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1인당 월 350유로(주거비 제외)를 지급하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추산하면 우크라이나 난민 구제에 연간 천억 유로가 넘게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우크라이나 난민 천만 명(최종 가정치)에게 지급하는 구제비와 간접적으로 지출하는 의료·교육비 등을 합산한 금액이다.

유럽 국가들, 특히 서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하는 것은 인도적 차원 이상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된 국제 정책으로 푸틴에게 침략의 길을 터준 것이 난민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 좌파들의 위선은 서서히 실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그들 국가의 사회복지비를 난민들과 나눌 생각이 없다. 앞으로 EU는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 문제를 둘러싸고 시끄러울 것이고, EU의 ‘단결’은 내부에서부터 와해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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