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 “중국 공산당의 침투 심각, 범정부 차원 조사 착수”

박숙자, 강우찬
2024년 03월 30일 오후 4:29 업데이트: 2024년 03월 30일 오후 7:52

9개 주요 부처에 서한…中 정치전·통일전선 조사 요청
법무장관에 보낸 편지에는 ‘중공(CCP)’ 표현만 95차례

미국 하원 감독위원회가 연방정부 9개 부처에 서한을 보내 중국 공산당의 전방위적인 미국 침투 활동에 관한 범정부 차원의 조사에 착수할 것을 요청했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하원 감독위원회는 제임스 코머 위원장 이름으로 법무부, 농무부, 환경보호국, 마약단속국, 미국글로벌미디어국, 재무부 금융범죄단속국, 항공우주국(NASA),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 국립과학재단 등 9개 부처에 서한을 보냈다(미 하원 감독위).

하원 감독위원회는 연방정부 활동을 감독하고 예산 낭비 등을 조사하는 강력한 권한을 지닌 위원회다. 정부 부패를 감찰하는 위원회로도 유명하다.

공화당 소속인 코머 위원장은 서한에서 “중공(CCP·중국 공산당)이 지난 수십 년간 미국 사회의 모든 측면에 침투해 영향을 미치려 해왔다”며 “중공의 목표는 명확하다. ‘주적(main enemy)’으로 규정한 미국을 물리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중공은 총 한 발 쏘지 않고 미국의 전 경제 부문과 공동체를 표적으로 삼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침투해 미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중공의 이러한 전쟁을 ‘정치전(political warfare)’이라고 밝혔다.

정치전이란 영향력 공작과 정치 선전을 통해 이념적·군사적 목표를 달성하는 형태의 전쟁이다.

미국의 중국 정치전 전문가 케리 거샤낵 교수에 따르면, 정치전은 상대국 정부·조직·개인의 정서와 동기, 객관적 판단력과 행동에 영향을 줘 자국의 정치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형태의 전쟁이다.

코머 위원장은 이러한 정치전과 이전까지의 물리적 다툼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대응할 것을 미 법무부 등 9개 정부 부처의 수장들에게 당부했다.

이 서한에서는 미국을 위협하는 세력을 가리킬 때 시종일관 ‘중국(China)’이 아닌 ‘중공’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일례로 법무부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에 보낸 총 12장짜리 서한에서는 중공이라는 용어가 95번 등장했다. 그만큼 둘을 엄밀히 구분한 셈이다(서한 링크).

중국과 중공을 구분하는 것은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이었던 마이크 폼페이오의 대중정책 브레인 마일스 위(중국명 위마오춘) 박사가 제안한 대중 경쟁 필승 전략이다.

위 박사는 미국 정부 관리와 정치인들이 적의 정체조차 혼동하는 것을 보고 우선 중공과 중국을 분리해 접근하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는 암 치료를 할 때 건강한 세포와 암세포를 구분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멀쩡한 세포는 피하고 암세포만 공격하면 효과가 훨씬 크다는 논리다.

2023년 2월 1일, 제임스 코머 미 하원 감독위원장이 워싱턴DC 레이번 하원 청사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Anna Moneymaker/Getty Images

하원 감독위, 9개 부처 맞춤형 대책 제안

코머 위원장이 발송한 서한은 각 부처의 역할에 맞춰 서로 다르게 작성됐다.

앞서 보낸 서한은 중공이 노리는 3대 목표물인 미국 기업인, 중국계 미국인, 미국 사법체계 보호 방안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에 따르면, 중공은 미국인 기업가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미국의 정책을 방해하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고 있다. 실제로 2021년 말 워싱턴 주재 중국 대사관은 기업인, 재계 인사들에게 서한을 보내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시도했다.

중공은 또한 중국계 미국인들을 협박·회유해 기술을 빼돌리고, ‘인종 차별’을 내세워 중공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며 사법 체계를 교란하고 있다.

그러면서 법무장관에게 5가지 조치를 요구했다. ▲ 미국의 번영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한 공동체 강화 및 혁신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중공의 정치전 인식 및 대처 교육 ▲대중 업무 담당자에 대한 중공의 각종 위협과 연방법에 근거한 대처방법 교육 ▲중공의 주요 목표인 재계, 중국계 미국인, 그 외 공동체에 대한 방첩 브리핑 ▲미국 내 중공의 불법행위 신고 핫라인 설치 등이다.

농무부에 보낸 서한에서는 중공의 종자 기술 절도와 농지 구매로 인한 안보 위협을 거론했고, 환경보호국에 보낸 서한은 중공이 통일전선으로 환경보호 단체를 포섭해 미국과 서방 각국의 에너지 안보를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약단속국과 재무부 금융범죄단속국, 항공우주국에 보낸 서한에서도 각각 펜타닐 확산, 자금 세탁, 우주 공간 확보 경쟁과 관련한 중공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감독위는 특히 글로벌미디어부에 보낸 서한에서 미국 언론계에서 활동하는 중공 대리인이 700명이라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며 언론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미국인을 조종하려 암약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 밖에 에너지규제위원회, 국립과학재단에 보낸 서한에서도 해당 기관과 관련된 분야에서 중공의 침투 공작을 폭로했다.

베이징의 한 전시회장에 공산당을 상징하는 낫과 망치 휘장이 걸려 있다. | WANG ZHAO/AFP/Getty Images/연합뉴스

전국민이 목표인 정치전…범사회적 접근 필요

정치전은 미소 냉전 당시 등장한 개념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물리적 전쟁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대국의 전 국민을 포함해 모든 분야를 목표로 한다.

중국전략연구소(소장 추봉기)가 지난 1월 개최한 세미나 ‘중국의 정치전과 대만 선거’에서는 대만의 사례를 통해 타국의 선거에 개입하는 것 역시 정치전의 한 수단이라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이 세미나에 참석한 거샤넥 교수(대만 국립정치대)는 “(중공은) 여론전, 심리전, 법률전 등 ‘3전’과 통일전선 공작, 내통작전을 펼친다”며 이 중에는 ‘중국의 승리가 대세’, ‘미국은 악하다, 신뢰할 수 없다’ 같은 인식을 퍼뜨리는 것이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도 향후 ‘중국 대세론’, ‘균형외교’ 등을 내세워 결과적으로는 미국과 거리를 두고 중국(중공)을 가까이 하자는 여론이 사회를 주도한 사례가 있다.

거샤넥 교수는 전쟁과 평화도 중공 정치전의 단골 소재라고 짚었다. 중국 혹은 사회주의 진영 국가와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특정 정치 세력(정당·정치인)에 지지해야 한다는 여론을 퍼뜨리고, 그 반대 정당은 전쟁 위협을 키운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행위다.

즉 상대국 내부에 동조 세력을 만들거나 친중공 인사를 포섭해, 정서적으로 중공에 대한 경계를 누그러뜨리거나 침투를 차단할 동기를 약화시키고 더 나아가 객관적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공작이다. 언론을 매수하거나 가짜 뉴스를 퍼뜨려 여론을 분열하는 것도 정치전 영역에 속한다.

코머 위원장은 9개 정부 부처에 보낸 서한에서 이러한 정치전을 방어하려면, 범사회적·범정부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공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개방성을 틈타 제약 없이 휘젓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미국 시민이 중공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지역사회는 물론 학교, 교회(종교 장소), 기업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중공의 침투를 차단하고 이런 방어를 장려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자국 9개 정부 부처에 중공의 침투 공작에 맞서야 한다고 당부한 미 하원 감독위원회의 서한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을 준다.

케리 거샤넥 대만 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방문교수 | 한기민/에포크타임스

거샤넥 교수는 지난 1월 중국전략연구소 세미나에서 “대만 선거 개입에 사용한 중공의 전략·전술은 한국에도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한국 정부와 정치권에도 대만 사례를 면밀히 연구해 반침투법 제정 등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다.

* 이 기사는 에포크타임스 중국어판 쑹탕, 이루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