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때 사마광이 저술한 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재주와 덕을 온전히 갖춘 사람을 성인이라 일컫는다”는 구절이 있다. 광활한 중국 문명의 역사를 돌아보면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선성(仙聖)이 배출돼 뛰어난 공적을 남겼다. 음악, 회화, 문학, 서예, 의약, 다도, 병법 등 도처에 신의 흔적이 보이며 선기(仙氣)가 가득하다. 5천 년 신전문화(神傳文化)는 신의 땅을 윤택하게 했고 온세상에 혜택을 주었다. 고대 선성들의 전기와 빼어난 성취는 전통 철학과 도덕 정신을 빛나게 하는 동시에 인심을 교화하고 후대를 계도하는 작용을 한다. 의학 대작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 장기(張機)는 자(字)가 중경(仲景)이며 동한 말기의 유명한 의사다. 210년경 《상한잡병론》 16권을 저술했다. ‘상한졸병론(傷寒卒病論)’이라고도 하는 이 위대한 책은 중의학 역사상 최초로 이(理), 법(法), 방(方), 약(藥)을 두루 갖춘 경전으로, 육경변증논치(六經辯證論治)의 원칙을 확립했다. 그뿐만 아니라 뛰어난 처방을 많이 기록해 역대 의가들은 물론이고 외국 의학계에서도 존경한다. 흔히들 ‘뭇 처방의 근본이자 원조(衆方之宗 羣方之祖)’라 부른다. 이 책은 후세에 《상한론(傷寒論)》과 《금궤요략(金匱要略)》으로 나뉘었다. 청나라 때의 명의 장지총(張志聰)은 “사서(四書)에 밝지 않으면 선비라 할 수 없고, 상한론을 제대로 모르면 의사라 할 수 없다”고 했다. 진(晋)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이 책을 정리하고 주석하거나 연구한 학자만 천 명이 넘는다. 이 책과 수록된 방제(方劑‧처방)는 한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몽골 등의 의학 발전에 영향을 끼치고 추동작용을 했다. 일본 의학회 ‘최고공훈상’을 수상한 한방의사 오츠카 케이세츠(大塚敬節)은 일찍이 “상한론은 치료학을 논술한 세계 최고의 고전 의서다”라고 했다. 장중경은 원나라와 명나라 때부터 ‘의성(醫聖)’으로 존중됐고 심지어 사찰에서 향불을 피워 공양할 정도였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발동한 문화대혁명 시기에 허난성 난양(南陽)에 있던 장중경의 무덤과 비석이 파괴됐다. 지금 장중경 기념관에 전시된 물품들은 한 차례 겁난을 거친 것들이다. 옛것을 부지런히 익혀 뛰어난 의술을 이루다 장중경은 소년 시절부터 편작을 흠모해 의학을 사랑했다. 그가 열 살 되던 해 같은 군(郡)의 명의 장백조(張伯祖)를 스승으로 모시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의학을 배웠다. 장중경은 이렇게 ‘근구고훈(勤求古訓‧부지런히 옛사람의 가르침을 구함)’하고 고대 의서를 자세히 연구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지식과 의술이 스승보다 낫다”고 했다. 그는 또 ‘박채중방(博採衆方‧처방을 널리 채집함)’하고 고금의 약재를 널리 수집했으며 민간의 다양한 치료법들까지 연구해 대량의 자료를 축적했다. 병을 진찰하고 학습할 때 그는 매번 ‘고교이구험(考校以求驗‧임상시험을 거쳐 바로잡음)’함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장중경의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는 상한론 서문에 잘 드러난다. “공자는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으뜸이고, 배워서 아는 자는 그다음이며, 많이 보고 들어 아는 것이 많은 자는 또 그다음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오래전부터 방술을 숭상했으니 이 말씀대로 해보련다.” 서진(西晋)시대 명의 황보밀은 《침구갑을경(鍼灸甲乙經)》 서문에서 장중경이 ‘건안칠자(建安七子‧중국 후한 건안 때의 유명한 시문가 7인)’의 한 사람인 왕찬(王粲)을 치료한 일화를 기록했다. 왕찬이 20대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장중경이 그를 보고는 “그대는 병에 걸려 40이 되면 눈썹이 다 떨어질 것이고 또 반년이 지나면 죽을 것이다. 지금 오석탕(五石湯)을 복용하면 이 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네”라고 말했다. 왕찬이 이 말을 듣고는 불쾌하게 여겨 약을 먹지 않았다. 사흘 후 장중경이 그를 만나 약을 먹었는지 물었다. 왕찬이 이미 먹었노라고 거짓말을 했다. 장중경은 그가 약을 쓰지 않았음을 간파하고는 말했다. “그대는 왜 자신의 생명을 소홀히하는가?”라고 말했다. 왕찬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0년 후 정말로 그의 눈썹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180일 후 사망했다. 장중경은 이처럼 20년 후의 질병과 그 세부 증상까지 예견했고, 심지어 그 시간까지도 정확히 맞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또 각종 질병을 없앨 수 있는 묘방(妙方)을 제공했다. 애석한 것은 환자가 그의 진단을 따르지 않아 결국 의성(醫聖)의 예언을 사실로 입증시켰다는 점이다. 중국 전통의학은 아주 절묘하고 비범하며 천인합일‧음양오행‧신통력 등 여러 가지 현기(玄機)를 담고 있는바, 이는 현대의학이 절대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후세인을 일깨운 《상한론》 서문 장중경은 진단의 원리와 처방뿐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철리(哲理)도 남겨주었다. 상한론 서문에는 “무릇 하늘이 오행을 펼쳐 만물을 운행함에 사람은 오상(五常)을 받아 오장이 있으며, 경(經)‧락(絡)‧부(府)‧유(俞)와 음양이 만나고 통함이 현묘하고 심오해 그 변화를 다 알기 어렵다. 재주가 높고 지식이 빼어나지 않고서야 어찌 그 이치를 탐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장중경은 또 “괴이하게도 지금 세상의 선비들은 신의(神醫)의 약을 보존하지 않고 의술도 제대로 궁구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위로는 임금과 부모님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빈천한 이들의 고통을 구제하지 못하며, 그 가운데서 자신의 몸도 보전하고 양생할 줄 모른다. 오직 영화와 권세만을 좇아 권력자에게 빌붙고 명리를 구하기에 급급하다. 말단을 숭상하되 근본에는 소홀하고, 겉은 화려하되 안은 초췌하다. 가죽이 없으면 털이 제대로 붙어 있겠는가?”라고 했다. 장중경은 확실히 성인이다. 그는 의학을 논술할 때도 인간의 도리를 천명했다. 그는 당시 지식층이 의약을 중시하지 않고 의술도 애써 연구하지 않은 채 오히려 영화와 권세를 좇아 권문세가를 우러러보며 명리를 유일하게 중요한 것으로 여김으로써 결국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쇠잔하고 됐다고 지적했다. 가죽이 없는데 털이 어디에 붙겠는가? 이 문제는 오늘날의 중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의 무신론과 투쟁철학의 작용하에서 사람들은 전통 도덕과 조상들이 남겨준 가르침과 문화, 그리고 기술의 정화(精華)를 포기한 채 앞 다퉈 근본을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쫓아 위험한 길로 가고 있다. ...
도덕성 보다 기능적인 측면이 더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제대로 된 도덕을 가르치기란 교사의 입장에서 쉽지 않다. 30년 이상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 최영숙 교장선생님은 교권이 떨어졌어도 교사의 책임감에 진정성이 담기면 희망이 있다고 한다. 평소 파룬궁의 기본 원리인 ‘진선인(眞善忍)’을 기준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한다는 최 교장은 교사가 된 후 교육자로서 사명감을 잊어 본 적이 없지만, 파룬궁을 수련하고부터 교육자로서 진심으로 부끄럽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최영숙(56.김해이북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아내·엄마·며느리·딸로서 지금까지 평탄하게 살아온 것은 그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실 최 교장은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큼 집안일을 잘 돕는 교직원 남편에다, 입맛에 맞는 각종 밑반찬을 만들어주는 시어머니가 있다. 거기에다 공부도 알아서 척척 잘하는 아들과 어여쁜 딸까지 부족함 없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건강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저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서 쉽게 피곤하고 지쳤어요. 그래서 약봉지를 늘 달고 살았는데 갑자기 어린딸까지 건강이 나빠졌어요.” 최교장은 2004년 당시 딸과 함께 다니던 ...
1. 나는 '마싼자에서 온 편지' 책을 쓴 윈자오(雲昭)이다. 어떤 일로 마싼자 노동교양소 구금 경력이 있는 책의 주인공과 한번 만난 적이 있는데 우연히 그에게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에서 보내온 한 통의 구원 요청 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미국 여성이 4년이 지나서야 이 편지를 받았다고 하자 그는 차분하게 “그 편지는 제가 썼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정말 놀랐다. 나는 스스로를 정상적인 사람이라 여겼다. 친구와 직장이 있고, 친구들과 웨이신을 통해 좋아하는 음식, 건강여행, 친환경과 애완동물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또 좋은 글귀를 공유하곤 했으니 말이다. 이에 비하면 구원 요청 편지에 담긴 내용은 정말이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일어난 일 같았다. 친구들에게 들은 얘기를 말해줬다. 그들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긴 했지만 이내 본래의 화제로 돌아가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치 우리와 관계없고 또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실제로 발생했고 나는 알게 된 이상 이를 회피할 수는 없으며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련자들을 만나고, 인터뷰하고 그들의 진술을 통해 마싼자 남자 노동교양소의 ‘그대로의 모습’에 접근해 보려고 시도했다. 2. 나는 2013년 7월 3일부터 원고가 완성될 때까지 녹음기를 사용해 인터뷰를 계속했다. 인터뷰를 해본 경험은 별로 없었다. 원래 갖고 있는 능력만으로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접촉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1년 남짓한 기간에 30여명의 ‘구두 진술' 기록을 얻을 수 있었다. 진술한 사람은 파룬궁 수련자, 일반 수감자, 파룬궁의 결백을 주장하며 청원했던 사람, 파룬궁 수련자의 가족과 친구, 마싼자 노동교양소 경찰과 운전기사, 마싼자의 행상, 상점주인, 현지 주민 등등이다. 그들을 통해 100시간이 넘는 녹음 자료를 얻었고 당사자가 제공한 많은 양의 서류, 법률 문서, 마싼자 노동교양소에서 몰래 갖고 나온 영상 자료와 사진들도 모을 수 있었다. 주인공은 마싼자 노동교양소의 지리적 위치, 공간 배치, 잔혹한 고문 시연과 고문 도구 등의 그림 자료도 직접 제작해 내게 줬다. 덕분에 나는 더욱 구체적인 정황을 서술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암호화된 메일을 통해 주인공과 서면 인터뷰를 하면서 거의 100개에 달하는 사실에 대해 자세한 실태를 조사해 나갔다. 나는 마싼자 교양소와 관련한 중국 내의 많은 보도를 참고했고 오리건주 신문, CNN, 뉴욕타임스, 대기원시보, NTDTV, 희망의 소리 국제 라디오 방송 등 해외 매체의 보도도 참고했다. 그 외에도 마싼자교양소와 관련한 국내의 사료들을 모두 수집했다. 그 중 <랴오닝성 마싼자노동교양소 간행물(1957~1997)>, <마싼자 진 간행물(馬三家鎭志)>, <비바람 60년(전 선양 마싼자교양소 정치위원 회고록)> 등의 자료는 내게 큰 도움이 됐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당사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나는 어쩔 수 없이 등장인물의 실명을 밝힐 수는 없었다. 다만 시의 적절하게 관련 실증 자료만 공개할 수 있었을 뿐이다. 어떤 문체로 이 소재들을 정리해야 할까? 이전에 나는 르포르타주(보고문학) 문체를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그 경험에서 나는 글 배후의 뜻을 전달하는 것은 단지 문법적 수사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표현해 내느냐 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독자들에게 이미 익숙한 ‘르포르타주 문학’은 분명 나의 선택지는 아니었다. 나중에야 나는 나의 서술 방식이 중국에서 이제 막 발전하고 있는 일종의 ‘논픽션 문학’과 상응하는 것임을 깨닫게 됐다. 결국 ‘논픽션 문학’과 같은 문체를 채택하게 된 것은 내가 수집한 소재들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의 서술은 어떠한 허구로도 다다를 수 없는 생동감이 있었고, 말 속의 어조와 끊김, 심지어 숨기고 덮어두고 싶어하는 것까지도 이미 벌써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만 현실의 진실과 풍부함이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본래 그대로 표현하려고 나는 인터뷰 녹음을 반복해서 들었다. 원래의 말과 어조를 최대한 살린 결과 책은 내가 처음 쓰려고 한 내용보다 훨씬 더 잘 표현됐음을 볼 수 있었다. 3. ...
“중국에서 수백 만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박해 받고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정의를 위해 비인간적인 박해를 중지시켜야 합니다.” 2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청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장얼핑(張而平) 파룬궁 대변인은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대미문의 인권 박해 중단을 위해 국제사회가 나서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했다. 법회 참석을 위해 세계 각국에서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파룬궁 수련자 2천 여 명은 지난 22일부터 중국공산당의 탄압을 알리기 위해 길거리 퍼레이드, 촛불집회, 서명, 금문교 도보횡단, 집회, 토론회 등 다양한 행사를 잇따라 열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은 25일 집회에 서한을 보내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나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이며 국가가 개입한 중국의 강제 장기적출에 큰 우려를 갖고 있다”며 “중국은 국제법을 어기고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 나는 캘리포니아 선거구의 중국계 주민들과 함께 계속 중국의 인권 박해를 주시하고 정치인사, 소수민족과 종교단체에 대한 탄압을 중단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펠로시 의원은 미국 하원 343호 결의안 발기인 중 한 명이다. 지난 6월 통과된 이 결의안은 파룬궁 등 양심수들의 장기를 강제 적출해 불법 거래하는 만행을 중단할 것을 중국 당국에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왕즈위안(汪志遠) ‘파룬궁박해추적조사국제조직’ 대표는 집회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의 조사를 통해 중국 장쩌민 일파가 당, 정, 군, 사법, 선전과 의료체계를 포함한 모든 국가기구를 동원해 파룬궁 수련자들을 상대로 대학살을 벌인 정황이 확연히 드러났고 밝혔다. 그는 “대량의 증거들은 파룬궁 수련자를 상대로 벌어지는 장기적출 만행이 실제로 존재하며, 이는 중국공산당 전 지도자 장쩌민의 지시로 일어난 국가적 범죄라는 사실을 증명해 줬다”라고 말했다. 이날 팡정(方政) 중국민주교육재단 이사장과 탕바이차오(唐柏橋) 민주대학 총장 등 중국 민주인사들도 집회에 참석해 발언했다. 1989년 천안문사태 당시 인민해방군 탱크에 깔려 다리를 잃은 팡정은 “강제 장기적출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그처럼 처참하고 반인륜적인 죄악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최근 몇 해 동안 증거가 갈수록 많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중국공산당의 죄행을 낱낱이 기록해 폭로한 ‘파룬궁박해추적조사국제조직’을 높이 평가했다. 탕바이차오는, 그동안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받은 사람들은 많지만 “끝까지 남아서 저항하는 사람들은 파룬궁 수련자들뿐”이라면서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당신들의 견고함은 내가 오늘날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 계속 노력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파룬궁 수련자들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영사관 앞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었다. 22일 저녁(현지시간), 법회 참석차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각국 파룬궁 수련자 2천 여 명은 중국영사관 앞에서 지난 17년 동안 박해로 희생된 수련자들을 추모하면서 박해 중지를 촉구했다. 지린성 창춘(長春)의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왕롄쑤(王聯蘇)는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지난 2001년 불법 감금됐다 2013년에야 풀려났다. 현재 뉴저지에 살고 있는 그는 “지난 12년 동안 중국 감옥에서 갖은 고문을 당했다”면서 “3일 동안 물과 음식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못해 동공이 확장되는 응급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번은 경찰들이 그의 옷을 모두 벗기고 철제 의자에 앉힌 후, 손과 발을 묶었다. 다리와 복부는 철 파이프로 고정시켰다. 이어 사정없는 주먹질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또 찬물을 끼얹는가 하면 전기봉으로 얼굴과 가슴 부위를 검게 타들어가 갈 때까지 지졌다. 왕롄쑤는 “그들은 나를 작은 방에 15동안 가둬놓고 신앙 포기를 강요한 적이 있는데 내 머리를 콘크리트 벽에 힘껏 박거나 목을 졸라 오랫동안 음식을 삼키기조차 힘들었다. 가슴을 벽에 부딪치게 하여 숨이 멎을 정도로 심장에 큰 충격을 가하기도 했다”라고 폭로했다. 그는 “주변의 20여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은 모두 그렇게 하여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며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사건 동영상 삽입 방송을 지휘했던 량전싱(梁振興)은 쓰핑(四平) 감옥에 함께 수감됐었는데, 피골이 상접할 때까지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번 집회에 동참한 많은 파룬궁 수련자들은 중국 감옥에서 빈번한 혈액검사를 실시했다는 등 강제 장기적출 만행과 관련된 증언을 했다. 덴마크에서 온 바오쉐전(鮑學珍)은 지난 2003년 상하이 여자 감옥에 수감된 바 있다. 그는 당시 감옥에서 단체 신체검사가 실시됐고 그 후 많은 수련자들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당시 바오쉐전이 내장 초음파 검사를 받을 때 의사는 옆에 있는 경찰에게 “이 사람의 담은 결석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중국을 탈출해 프랑스로 간 중수란(仲淑蘭)은 지난 2012년 산둥(山東)성 여자감옥에 수감됐다. 그는 경찰이 수감자들의 음식에 정체불명의 약물을 섞어 넣는 것을 봤는데, 그 후 자신에게 고혈압, 편두통, 무릎관절통, 시력저하 등 각종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중수란은 이 때문에 지난해 조기 석방됐다 . 광둥성의 여자감옥에 수감된 바 있는 양칭팡(楊淸芳)은 풀려나기 전 감옥 측이 신체검사 명목으로 3개월 동안 무려 15번이나 채혈을 실시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매번 꽤 많은 양을 채취했는데 검사 결과를 통보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들 파룬궁 수련자들은 지난해 중국 최고인민검찰원과 최고인민법원에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반인류죄와 집단학살죄로 고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