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퇴장’ 논란… 답은 붉은색 서류에 있다

린옌(林燕)
2022년 10월 28일 오전 11:01 업데이트: 2022년 10월 28일 오전 11:01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 폐막식에서 ‘퇴장’당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의문의 붉은색 표지의 서류가 그가 퇴장당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후진타오가 폐막식에서 과거 천사오민(陳少敏)처럼 바로 이어질 투표에서 불찬성표를 던지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천사오민은 1968년 류사오치(劉少奇) 당시 국가주석을 반역자, 내부 간첩, 노동계급의 배신자로 몰아 당적에서 ‘영원히 제명’하는 결의안을 최종 의결할 때 유일하게 손을 들지 않은 중앙위원이었다.

스페인 언론 ABC인터내셔널의 베이징 특파원 제이미 산티르소(Jaime Santirso)는 24일(현지시간) 발표한 기사에서 후진타오 앞에 놓인 서류철에는 ‘당 지도부 명단’이 들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 근거로 자신이 고해상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제시했다.

기사에 따르면, 후진타오를 자리에서 일으킨 보좌관이 붉은색 서류철을 들어줬는데, 그때 서류 내용이 일부 노출됐다.

기사는 “멀리서 찍은 사진이어서 또렷이는 보이지 않지만, 일부 글자는 알아볼 수 있어서 (이 서류가) 중앙위원회와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위원 명단임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후진타는 20차 당대회 마지막 날인 22일 오전 비공개 회의에 참석했다. 그다음 회의는 마지막 일정으로, 언론이 취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언론들이 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좌관 두 명이 갑자기 후진타오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의 몸짓은 떠나기 싫어하는 모습이었다. 또 주석단에 앉은 원로들은 물론 현 지도부도 아무런 표정이 없었고, 뒤돌아 보거나 후진타오의 퇴장에 주목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 장면은 마침 외신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싱가포르 매체 채널뉴스아시아(CNA)는 25일 후진타오가 퇴장하는 모습을 담은 3분가량의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영상에는 후진타오가 붉은색 표지의 서류를 펼치려 하자 옆에 앉아 있던 리잔수(栗戰書)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서류를 펼치지 못하게 손으로 막고 이어서 가져가는 모습이 담겼다. 리잔수가 후진타오를 설득하는가 싶더니 이내 두 사람은 미묘한 실랑이를 벌이는 듯했다. 이어 시진핑이 중앙판공실 부주임을 불렀고, 결국 중앙판공청 부주임과 보좌관 한 명이 후진타오를 데리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기자들이 입장하기 몇 분 전 중국 관영언론은 당대회에서 새로운 중앙위원회 위원이 선출됐다고 보도했다.

“후진타오, 천사오민처럼 반기 들려 했을 것”

아메리칸대학(American University) 조교수인 조셉 토리기안(Joseph Torigian)은 동영상을 분석한 후 이날 벌어진 사건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시진핑과 그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勛)을 수년간 연구한 중국통이다.

조셉은 이번 후진타오 사건은 수십 년간 이어온 중국 공산당의 제도적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 체제에서 모든 사람은 당의 이익이 최우선이라는 가르침을 받아 설사 어떤 사안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며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중국 정치는 치열한 투쟁을 벌이지만 지도자가 명백하게 규범을 위반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전형적인 유형이 아니라고 했다.

“레닌주의 지도자들은 통상적으로 특별한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한 공식 회의에서 숙청하지 않는다(소련 공산당 지도자 라브렌티 베리야는 예외). 1989년 후야오방(胡耀邦)이 죽었을 때 학생들이 불안감에 휩싸여 시위를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후야오방이 정치국 회의에서 화가 치밀어 심장병이 발작해 사망했다는 루머가 떠돌았기 때문이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왕춘한(王春翰) 기자가 최근 발표한 ‘시진핑, 중국 통제 추구… 오랜 친구도 겨냥한다’는 기사를 인용해 ‘시진핑의 스타일은 당대회에서 숙청하는 등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일을 하기보다는 일정한 정치적 수완으로 서서히 상대를 약화시키는 스타일’이라고 주장했다.

조셉은 시진핑이 20차 당대회 보고서에서 개혁·개방을 명시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았다며 ‘후진타오계를 숙청하는 것으로 과거와 결별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진핑의 시각과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후진타오가 건강 문제로 퇴장했을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조셉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심지어 티베트에 근무할 때부터 보도가 돼 왔던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셉은 후진타오가 중앙위원 선출 과정에서 반대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충격을 주려 했을 것으로 보았다.

“후진타오가 천사오민처럼 행동하고 싶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당의 8기 12중전회에서 류샤오치를 비판할 때 유일하게 손을 들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역사의 연속성을 고려할 때 이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일 것이다.”

“당대회가 ‘판다 허거들’을 정신 차리게 했다” 

워싱턴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에드워드 루트왁(Edward N.Luttwak) 선임고문은 트위터에 “판다허거(Panda Hugger)들이 여전히 있다면 여기에 시진핑이 전 지도자인 후진타오를 당대회에서 퇴장시키는 사진이 있다. (후진타오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했다.

이어 그는 “당대회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줬다. 시진핑이 말한 것, 그리고 발언하는 사람마다 ‘시진핑 사상’ 어록을 반복하는 것, 왕후닝이 계속 유임된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면서 “왕후닝의 논리는 ‘당의 통치가 유지되게 하기 위해서는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자유를 억압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판다허거’란 중국 공산당을 지지하는 서구 정치인을 가리킨다. 루트왁은 ‘중국의 부상과 전략논리’ 등을 저술했으며, 그의 저서 중 일부는 중국어로 번역돼 중국 본토에서 발간되기도 했다.

칼 빌트(Carl Bildt) 전 스웨덴 총리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후진타오에게 긴급한 건강 문제가 있었다면 시진핑이 공감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일은 없었다. 공감하기보다 아예 무시했다. 그는 바로 끌려나갔다. 이것이 중국 공산당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