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그 이상 : ‘피터 래빗’ 베아트릭스 포터가 남긴 유산

로레인 페리에(Lorraine Ferrier)
2023년 07월 19일 오전 10:30 업데이트: 2024년 02월 3일 오후 11:14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 ‘피터 래빗’은 감기에 걸려 침대에 누워 있던 어느 4세 소년이 받은 그림 편지에서 처음 등장했다.

“너에게 아기 토끼 이야기를 들려줄게.”

100년에 걸쳐 세상을 따뜻하게 할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1893년, 지인의 아들이 감기가 걸렸다는 소식에 피터 래빗의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는 그림을 곁들인 이야기를 써서 편지로 보냈다. 토끼 이야기가 담긴 편지에 어린아이와 아이의 친구들, 그리고 어른들까지 흠뻑 빠져들었다.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몇 년 후 포터는 편지에 담긴 이야기들을 모아 동화 ‘피터 래빗 이야기’를 출간했다. 출간 직후부터 베스트셀러가 된 ‘피터 래빗 이야기’는 오늘날 세계 36개국 언어로 1억5000만 권이 넘게 팔렸으며, 지금도 전 세계에서 1년에 200만 부씩 팔리는 명작이다.

‘피터 래빗 이야기’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는 다름 아닌 피터 래빗을 만들어낸 작가의 삶 그 자체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영국의 작가이자 삽화가였다. 열렬한 자연주의자인 동시에 목동 겸 농부였으며 환경보호 운동가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포터는 아동문학 그 이상의 유산을 남긴 사람이었다. 영국에서 수천 년 동안 서식해 온 토종 양인 허드윅 양이 멸종 위기에 처하자 포터는 직접 전통 방목 방식으로 길러 번식시켰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자신이 평생을 바쳐 가꾼 정원 500만 평을 전부 환경단체에 기증했다. 해당 정원은 지금까지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National Trust images

예술을 접하다

포터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그 시절 여성들은 가정교사에게 교육받았다. 포터도 마찬가지였다. 라틴어, 프랑스어, 기하학, 수학 등을 배웠으며 종종 가정교사를 따라 박물관과 미술관을 견학했다.

처음 영국 왕립 미술 아카데미를 방문했던 17세의 포터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1883년 1월 13일, 포터는 자신의 일기에 “이런 그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렇게 큰 기쁨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고 썼다. 이후 정식으로 그림 수업을 받지는 않았지만, 포터는 여러 예술 작품을 모사하고 습작했다.

어린 시절 베아트릭스 포터|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예술과 집안환경

포터가 자라온 집안 또한 예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위기였다. 변호사였던 포터의 부친은 소묘를, 모친은 수채화를, 오빠는 풍경화를 즐겨 그리곤 했다. 부모님은 미술품 수집가이기도 했다. 포터의 작은 취미 중 하나는 조부모가 소장한 책들의 표지를 따라 그리는 것이었다.

포터는 또한 아버지를 따라 근처에 있던 미술 스튜디오를 자주 찾았다. 그곳에서 한 작가는 포터의 재능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포터는 관찰하는 사람이다.”

포터는 자연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고, 그러한 포터의 표현력 덕분에 오늘날의 우리는 포터가 그린 실제 장소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반려견을 안고 있는 10대 시절의 베아트릭스 포터|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크고 작은 모든 생명들

부모님은 딸의 재능을 응원하고 지지했다. 부모님의 믿음 속에서 포터는 또한 강아지와 토끼 등 다양한 반려동물과 함께 자랐다. 동물을 깊이 사랑한 포터는 일평생 총 92마리의 반려동물을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대부분이 포터의 책 속 등장인물이 됐다. ‘피터 래빗’ 또한 포터가 기르던 피터라는 이름의 토끼에서 따왔다.

포터 가족은 매년 여름이면 시골에서 3개월의 긴 여름휴가를 보냈는데, 늘 반려동물과 함께였다. 특히 포터는 영국 북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호수 마을 ‘레이크 디스트릭트’ 지역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훗날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포터의 수채화 배경으로 등장하게 된다.

집에서도, 또 자신이 사랑하는 자연에서도 동물들을 주의 깊게 관찰한 덕분에 포터는 동물들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한번은 사슴의 표정을 보고 싶어 사슴을 쫓아다니기도 했다. 뛰어다니는 생쥐의 몸동작을 포착해 스케치북에 그리는 등 포터는 동물들을 세심하게 지켜보고 연구했다.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Courtesy of Frederick Warne & Co. Ltd.

피터 래빗을 뒤로하고

런던에서 태어난 포터였지만, 그는 자신의 진짜 고향이 영국 북부 시골이라고 여겼다. 포터 가족이 북부 출신이기도 했거니와 포터의 조상도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땅을 소유했었기 때문이다.

1913년 결혼한 포터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이사해 남은 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17세기 후반에 지어진 자그마한 농가인 ‘힐 탑’을 사들여 정성껏 가꾸며 살았는데, 포터는 이 집을 “내가 살았던 곳 중 가장 완벽한 장소”라고 말하곤 했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포터의 삶은 양을 키우는 목동 그 자체였다. 잠시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접어둔 채, 포터는 지역의 전통적인 농업을 보존하는 한편 사라져 가는 토종 양인 허드윅 양을 되살리기 위해 헌신했다.

멸종 위기에서 허드윅 양을 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목초지만 있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전통적인 농업 방식을 보존해야 했다. 동화를 쓸 때와 마찬가지로 포터는 양을 기르는 데에도 엄청난 열정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결국 허드윅 양 되살리기에 성공했다.

National Trust

요정 캐러반

포터는 일평생 모국인 영국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외국에 있는 자신의 팬들과 꾸준히 소통했다.

당시 아동문학은 다소 가볍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었다. 당대 영국인들에 비해 미국인들이 아동문학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몇몇 미국인은 포터에게 편지를 보냈다.

1929년, 포터는 새로운 책 ‘요정 캐러밴’을 출간했다. 미국 독점이었다.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요정 캐러밴’은 포터의 이전 책들에서 한층 벗어난 작품이었다. 기니피그가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여행하면서 만나는 모든 동물들과 그에 얽힌 여러 가지 모험에 관한 이야기로 허드윅 양, 양치기 개 등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살아가는 포터의 삶이 이야기 속에 담겼다. 포터는 이 책을 미국의 어린 팬들에게 헌정했다.

Tate

자연의 아름다움을 유산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포터가 남긴 말이다. 포터 자신이 바로 그 극소수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자연의 섬세함을 포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포터. 자연을 향한 포터의 사랑은 한결같이 올곧았다.

생의 마지막, 포터는 “내 늙은 다리로 인해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지만, 침대에 누운 채로도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산비탈과 거친 땅을 걸을 수 있다. 그곳에 있는 모든 돌과 꽃들, 늪지, 목화밭을 볼 수 있다. 그 사실에 신께 감사드린다”고 썼다.

포터는 아름다움을 분명히 보았고, 자연 속에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추구했다. ‘피터 래빗 이야기’로 자신이 번 돈을 몽땅 털어 여의도의 다섯 배가 넘는 드넓은 시골 땅을, 호수를, 숲을 사들이고 사들였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땅과 소중한 전통적 가치를 보존해 오늘날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포터가 본 아름다움을, 이제는 우리가 볼 차례다.

포터가 그린 풍경화|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Courtesy of Frederick Warne & Co. Ltd.

*이 기사는 번역 및 정리에 황효정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