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북극 표류’ 바탕으로 쓴 감동 소설…레졸루트호의 마지막 항해

케이트 비디모스 (Kate Vidimos)
2023년 11월 24일 오후 3:48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19

역사가이자 작가인 에드워드 E. 헤일(1822-1909)이 쓴 단편 소설 ‘레졸루트호의 마지막 항해’에는 실제 존재했던 북극 탐험선 ‘HMS 레졸루트’의 여정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헤일은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기록의 빈틈마다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세상의 끝 북극에 고립됐지만, 레졸루트호의 선원들은 인내심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들은 ‘모험의 상징’으로 길이 남았다.

도전할 용기

1850년, 영국은 북극해를 탐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배 한 척을 진수했다. 북극의 극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게 튼튼한 티크나무로 만든 선박의 이름은 ‘HMS 레졸루트’. HMS는 당시 영국 수장인 ‘빅토리아 여왕 폐하의 배’라는 뜻이고 레졸루트(Resolute)는 ‘단호하다’는 말이다. 흔들리지 말고 북극해를 개척하라는 뜻이었다.

1852년 4월 21일, 마침내 레졸루트호가 북극을 향해 출발했다. 영국의 탐험가이자 해군 제독인 존 프랭클린을 수색하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앞서 1845년 5월 북서항로(유럽에서 출발해 북극해를 지나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영국을 떠난 프랭클린 제독은 그 뒤로 소식이 끊긴 상태였다. 영국은 몇 년 동안 행방불명된 프랭클린 제독을 찾기 위해 여러 탐험대를 보냈다. 레졸루트호도 그중 하나였다.

헨리 켈렛 선장의 지휘 아래 레졸루트호는 1852년 8월 10일 캐나다 북극 군도의 비치섬에 정박해 5일간 머물렀다. 8월 15일, 비치섬을 떠난 레졸루트호는 눈 덮인 얼음 바다를 따라 프랭클린 제독이 타고 있었을 난파선의 흔적을 추적했다.

켈렛 선장은 딜리섬 앞바다에 레졸루트호를 정박한 후 30~40명의 수색대를 파견했다. 이때 수색대는 1851년 9월 좌초된 ‘인베스티게이터’호를 발견한다. 해당 선박은 프랭클린 제독의 배는 아니었으나,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선원들은 덕분에 무사히 구조됐다.

레졸루트호의 선원들은 탐험을 계속했다. 영하 51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이들은 ‘즐거운 겨울’을 보냈다. 배에 학교를 세워 수업을 진행했고, 연극을 준비해 공연하며 문화생활도 향유했다.

1852년부터 1853년 사이 북극 멜빌반도에서 ‘HMS 레졸루트’호와 ‘HMS 인트레피드’호 모습|공개 도메인

인내할 용기

그러다 1854년 5월 15일,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레졸루트호가 북극해 빙하에 갇히고 만 것이다. 선원들은 단단한 북극 얼음에 갇힌 배를 포기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비치섬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고 다행히 전원 무사히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웃음도, 온기도 사라진 텅 빈 레졸루트호였지만, 이름처럼 ‘단호’한 배였다. 레졸루트호는 북극을 견뎌냈다.

1년 뒤인 1855년 9월 19일, 미국의 한 포경선이 표류하던 레졸루트호를 발견했다. 버려진 지 15개월 만이었다. 얼음에서 건져진 레졸루트호는 미국으로 옮겨졌다.

육지로 간 레졸루트호는 해체됐다. 1880년, 해체된 레졸루트호의 목재들은 미국 백악관 집무실의 책상으로 재탄생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 등 많은 미국 대통령이 이 앞에 앉았으며 2023년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도 ‘레졸루트 책상’에서 집무를 본다.

레졸루트호의 이 같은 모험을 소설화한 작가 헤일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레졸루트호의 정신으로 당신의 영혼을 채워라. 도전하고, 인내할 용기를 마음에 품어라!”

케이트 비디모스는 댈러스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 학사 학위를 받았다. 모든 형태의 스토리텔링을 추구하며 현재 동화책을 집필하고 있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