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 없는 초기 치매, 장 검사로 조기 발견해 예후 바꿀 수 있다

에이미 데니
2023년 07월 13일 오후 11:36 업데이트: 2024년 02월 3일 오후 11:29

증상이 나타나기도 전에 장내 세균 검사로 극초기 치매를 발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1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발표된 연구 내용에 따르면, 연구팀은 인지 장애가 없는 68~94세 성인 164명을 대상으로 분변·혈액·뇌척수액 검사 등을 진행하고 장내에 서식하는 미생물군집(마이크로바이옴) 구성을 조사했다.

분석 결과, 뇌 척수액 검사 및 뇌 MRI 스캔 영상을 통해 알츠하이머병 초기 징후가 확인된 49명의 참가자들은 정상으로 판명된 나머지 115명에 비해 장내 세균(박테리아)의 종류와 그 균이 수행하는 생물학적 작용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최근 몇 년 동안 장내 미생물군집과 알츠하이머병 사이 연관성에 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현재까지는 장내 세균 또는 미생물군집의 불균형이 알츠하이머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 정도가 밝혀진 상태다. 이번 연구 결과로도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장내 미생물군집에 변화가 생기는지, 아니면 장내 미생물군집의 변화로 인해 알츠하이머병이 유발되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번의 새로운 발견은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나아가 증상 발병을 지연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할 방법이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했다.

연구 논문 저자 중 한 명인 보 앤세스 미국 세인트루이스워싱턴대 신경학과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증상을 보일 무렵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인 경우가 왕왕 존재한다”면서 “병 진행 초기에 이를 발견하고 진단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시점에 효과적으로 개입해 최적의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연구진은 신경퇴화나 인지기능 저하 징후가 나타나기 10여 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의 뇌 안에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및 타우 단백질 응집체가 비정상적으로 쌓인다는 사실도 발견했다고 밝혔다. 아밀로이드와 타우, 이 2종의 단백질은 알츠하이머 주요 원인으로 의심되는 뇌신경세포의 비정상 단백질이다.

알츠하이머 발병 이전에 발생하는 해당 단계는 그러나 항상 알츠하이머병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미국 국립보건원은 이 단계를 ‘임상 전 단계’로 분류했다.

치매 감지

과거 부검을 통해서만 진단할 수 있었던 알츠하이머병. 지난 20년간 의과학이 발전하며 살아있는 환자에게서도 비로소 알츠하이머병 바이오마커(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를 발견할 수 있게 됐다.

혈액 검사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수치를 측정한다. 다만 현재까지의 의학 수준으로는 단일 검사로만 진단해서는 안 되며 영상 촬영 등 다른 검사들과 함께 진행해야 한다.

일례로 워싱턴대 의과대학 연구진은 뇌 MRI 촬영과 뇌 척수액 검사를 통해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의 비정상적 축적 징후를 찾아냈다.

연구팀은 “장내 미생물군집을 알츠하이머병 선별 도구로 사용할 때의 장점은 쉽고 간단하다는 사실”이라며 “언젠가는 개개인이 분변 검사를 받는 방식으로 알츠하이머병 발병 여부를 알아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뇌 MRI 촬영 같은 검사에 비해 훨씬 간단하고 안전하다. 연구팀은 또 “앞으로 많은 사람들, 특히 소외된 계층이 더 쉽게 검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방은 가능하다

알츠하이머병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앤 해서웨이 박사는 해당 연구의 진정한 이점은 예방이 완전히 가능한 단계에서 질병을 예측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는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예측 도구로는 알츠하이머협회에서 권장하는 몬트리올 인지평가(MoCA)다. 몬트리올 인지평가는 9개 항목으로 구성해 30점 만점 기준으로 26~30점이 정상, 26점 미만이면 치매에 해당한다.

현재 미국 전역의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정밀 의학과 생활 습관 개입이 초기 및 경증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인 해서웨이 박사는 몬트리올 인지평가에서 18점이라는 낮은 점수를 받은 환자가 증상이 호전된 사례를 제시했다.

해서웨이 박사는 이어 “5년, 10년 이처럼 장기간 인지 기능이 저하되면 되돌리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며 “그렇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오늘날 많은 의료진과 프로그램은 인지기능 저하를 막기 위한 프로토콜을 제공하고 있다.

치매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단체 샤프 어게인 내추럴리(Sharp Again Naturally)는 생활방식의 변화를 통해 질병의 환경적 위험 요인을 해결하는 그룹 또는 개별 코칭을 제공한다. 해서웨이 박사는 건강 코치를 고용, 함께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진료한다. 물론 무엇보다도 환자 본인의 생활습관을 바꾸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해서웨이 박사는 “치매도 되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모른다”며 “의학계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여러 원인에 의한 결과로 발생하는 다인성 질환으로 보고 있는 만큼, 40대부터는 자신의 위험 요인이 무엇인지 개개인이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의 중요성

장내에 서식하는 미생물군집을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의 역할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워싱턴대 연구진은 미생물군집 이상이 초기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후속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를 담당한 가우탐 단타스 워싱턴대 의대 병리학·면역학 교수는 “만약 마이크로바이옴의 변화와 알츠하이머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염증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몸속 ‘화학공장’ 역할을 한다. 단타스 교수는 “장 박테리아가 만드는 대사산물 중 일부는 장에 염증을 일으키기도 하며 혈류를 타고 돌면서 몸 전체의 면역 체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직은 추측 단계이지만 마이크로바이옴과 알츠하이머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유익균을 촉진하고 유해균을 제거하는 것이 알츠하이머병 증상 발현을 늦추거나 멈추게 하는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을 정기적으로 섭취하는 행위가 건강한 박테리아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 건강전문매체 하버드 헬스 퍼블리싱(Harvard Health Publishing)은 최근 프로바이오틱스 균주가 함유된 우유가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지 점수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등을 소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