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 교수 “사법불신 타파 위해 공화주의 회복해야”

대한민국 발전의 세계사적 의의 ③

김태영
2023년 06월 21일 오후 6:14 업데이트: 2023년 06월 21일 오후 6:14

선관위 특혜 채용·방탄국회…법치 붕괴 심각
다수 의견만 좇는 ‘완전 민주정’이 병인으로 작용
사법부 타락 막으려면 시민사회가 나서야

송재윤 교수는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테네시주립대를 거쳐 지난 2009년부터 캐나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총 3부작으로 기획한, 중화인민공화국 설립부터 현재까지의 중국 현대사 70년을 다룬 책 ‘슬픈 중국’의 저자이기도 하다. 1부작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와 2부작 ‘슬픈 중국: 문화대반란 1964~1976’은 각각 2020년 4월과 2022년 1월 출간됐으며, 3부작 ‘대륙의 자유인들’은 최근 집필을 마치고 출간을 앞두고 있다. 슬픈 중국 1부작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국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송재윤 교수는 지난 6월 15일 한반도선진화재단과 박수영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한 제432회 공동체자유주의 웹 세미나에서 ‘대한민국 발전의 세계사적 의의’를 주제로 발표했다. 총 3개의 발제 중 마지막 순서로 송 교수는 완전 민주정(pure democracy)의 병폐와 사법개혁의 필요성에 관해 설명했다.

지난 6월 12일 공정 선거를 책임지는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아빠 찬스’ 특혜 채용 논란에 휩싸이며 국민적 공분을 샀다.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수호하기 위해 연일 ‘방탄 국회’를 연출하다 여론의 반응이 악화하자 지난 19일 이재명 대표가 직접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며 검찰 수사에 응할 것임을 암시했다. 하지만 이날 발언이 실제로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도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해 놓고 대장동 개발 의혹 관련 수사망이 조여오자 즉각 방탄 국회를 연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3월 30일 박영수 전 특별검사(특검)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 등 대장동 일당에게 최소 200억 원을 약정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주거지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 조사에 돌입했다.

최근 이러한 논란에 대해 송 교수는 “이 정도면 법치의 붕괴다. 일부의 비위라면 법으로 처리하면 되겠지만 선관위, 정당, 특검 등의 부정은 법만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국가적 중병”이라며 “헌정사적 위기의 전조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법치 붕괴 원인으로 ‘완전 민주정의 환상’을 꼽은 송 교수는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이러한 병폐에 원인이 됐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선 어떤 세력이든 다수 여론만 장악하면 헌법을 무시하고 무슨 조치든 자의적으로 취할 수 있다고 여기는 중우정치의 미망과 군중 독재의 유혹이 판을 쳐왔다. 사흘돌이로 쏟아지는 여론조사에서 잠시라도 여론이 한쪽으로 쏠릴 때면 정치꾼들은 재빨리 ‘다수’를 선점한 후 ‘국민’을 사칭하는 여론몰이를 펼친다”며 “선거전에서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가 범람하는 이유도 정권만 잡으면 모든 죄과가 씻기듯 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국방, 외교, 치안, 교육, 경제, 전략자산, 공공사업 등 국가의 중대사를 가변적 여론에 맡기고 다수결로 결정하는 국가는 실패를 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도 다수 의견만 좇는 완전 민주정은 최악의 무정부 상태를 초래했다”며 “이런 점을 고려해 근대 정치 사상가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설계할 때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다수 독재, 군중 지배, 폭민 통치의 위험을 막기 위한 헌법적 제약을 명시했다. 국민 주권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선 엄격한 감시와 감독, 관리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류 정치사의 경험을 통해서 배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헌정사를 돌아보면 민주주의만 강조할 뿐, 공화주의에 관해선 공적 논의조차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무늬만 공화제일 뿐, 한국 정치는 공적 가치와 공공 이익을 저버린 채 여론의 추이를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는 완전 민주정의 위험을 보인다”며 “오늘날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는 다수 여론만을 따르는 완전 민주정이 아닌 엄격한 법의 지배로 유지되는 ‘입헌민주주의’, 개인의 자유와 보편 인권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시민의 정치적 참여를 독려하고 공공선과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민주공화제’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헌법의 제1장 총강 제1조 1항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명기돼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건국 정체성인 민주공화국의 취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관해 송 교수는 “무엇보다 사법부의 타락을 바로잡고 법의 지배를 구현해야 한다”고 답했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37개 회원국 중에서 사법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가장 낮은 나라로 나타났다. 송 교수는 “삼권 분립 중 사법권의 독립은 자유와 민주의 생명줄로 볼 수 있다. 사법부가 외압에 굴하거나 권력과 결탁하면 법치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사망한다”며 “이러한 사법부의 타락을 막으려면 시민사회가 나서서 감시해야 하고 법원은 국민 앞에 법정 문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연방 및 주(州) 대법원, 항소법원, 지방법원, 파산법원 등의 법정 기록 수십억 건이 정부 공식 사이트에 공개돼 있다. 법정 기록 수백만 건을 따로 수집해서 무제한 공개하는 시민 단체도 있다. 또한 영어권 판결문의 문장은 간명하고 논지가 명확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 대법원 판례는 대학에서 철학, 역사, 정치학 교보재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송 교수는 “미국 법률가들이 스스로 ‘법조 은어(legalese)’를 폐기하고 평이하고 정확한 언어로 대중에게 다가간 결과”라고 분석했다.

반면 미국과 달리 한국 법원은 판결문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 교수는 “한국 법원은 현재 확정된 민·형사 판결문은 공개하고 있지만 일반인이 접근하기엔 장벽이 높다. 쉽게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종합 법률 정보시스템’에는 대법원 판결문의 3.2%, 각급 법원 판결문의 0.003%만이 공개돼 있을 뿐이다”라며 “그나마 공개된 판결문도 복잡하고 난해해서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들다. 문장 구분도 없이 법률 상투어(legal jargon)만 나열돼 있어 옛날 서리들의 이두체 행정 문서가 연상될 정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낡은 법조 언어는 사법 정의의 장애물로, 이는 소통 실패를 낳고 사법 불신만 키운다. 법원은 국민이 알기 쉽게 법조 언어를 개혁하고 헌법이 선언한 국민 주권 원리에 따라 법정 문서를 전면 공개해야 한다”면서 “국민의 지성 앞에 법관이 엎드릴 때 법원은 비로소 권력의 외압을 벗어나 사법권의 독립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쟁의 폐허로 인해 한때 세계 최빈국에 속했던 대한민국이 불과 수십 년 만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를 건설하고 자유·인권·법치를 국가의 철학으로 삼은 덕분”이라며 “사법 불신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완정 민주정의 환상에서 벗어나 법치 실현의 출발점인 공화주의의 회복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