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공안당국, 자국 정치권에 ‘中 공산당과의 교류’ 경고…“간첩행위 연루”

한동훈
2023년 08월 9일 오후 9:43 업데이트: 2023년 08월 9일 오후 9:43

독일 당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교류기관 아냐 실제론 정보기관”
“中 간첩활동, 민간·군사에서 정당 쪽으로 무게…개인적 접촉 확대”

중국 공산당의 대외 협력기구와 접촉할 때 은연중에 비밀공작 활동에 휘말려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미국이 대중국 압박 기조를 이어가는데도 유럽 지역에서 가장 중국에 기울어진 행보를 보였던 독일이 중국 공산당의 침투에 맞서 대응 수위를 조금씩 높여간다는 관측이 나온다.

독일 공안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BfV)은 최근 자국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에게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및 그 관계자와 만날 때 “특히 신중히 행동해야 한다”며 형법 제99조에 규정된 행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이 조항은 “사실, 물건 및 지식을 전달하거나 전달할 목적으로 하는 외국 세력의 비밀 활동을 위해 독일 연방공화국에 대한 정보 활동을 수행하거나, 외국 세력의 비밀 기관 혹은 그 대리인의 그러한 활동에 동의한 경우 최고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대외연락부는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기관인 중앙위원회 직속기관이다. 과거에는 외국 공산당과의 연계가 주 임무였다. 사실상 공산권 국가들에 한해 외교부 역할을 수행했다.

구소련과 동유럽이 몰락한 후 대외연락부의 역할도 달라졌다. 이제는 외국의 민주당, 사회당, 노동당 등 진보· 좌파 정당과의 연계를 추진하고 보수 성향 정당과 국제 조직과도 접촉한다.

외국의 영향력 있는 인사를 끌어들이고 호의적 관계를 맺어 중국 공산당에 이로운 발언과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나아가 외국에서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어젠다에 동참하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활동도 수행하고 있다.

독일 헌법수호청은 중공의 간첩활동은 당초 민간 차원이나 군사 부문에서 이뤄져 왔으나 최근 정당 공작에 무게를 두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대외연락부가 독일 내 정책 결정자에게 접근해 중공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도록 독려하며, 개인적 만남을 통해 민감한 정보와 중요한 이슈에 대한 생각을 듣고 정보 수집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외연락부가 실제로 중공의 첩보기관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중공의 첩보기관으로 분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공 대외연락부, 외국 정치인의 ‘대중 태도’ 교정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가 자주 쓰는 방법의 하나로 현직 혹은 전직 독일 의원들을 중국으로 초청해 중국에 대한 인상을 그들의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중국 공산당에 대해 평소 중립적 입장을 보여온 의원들이 주요 타깃이다. 대외연락부는 중국 공산당 가치관을 확산시키는 데 시간과 비용을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독일 일간지 ‘한델스블라트’는 “현직이나 은퇴한 의원들이 대외연락부와 교류하는 사례가 많이 확인되고 있다”고 보도했다(기사 링크).

집권당인 사회민주당(SPD)의 라스 클링바일 대표는 지난 6월 5일 방중 당시 베이징에서 대외연락부의 류젠차오(劉建超) 부장(장관)과 회담했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클링바일 대표는 이날 리창(李強) 중국 국무원 총리와도 만나 “독일은 중국의 대외개방 지속 시행을 높이 평가한다”며 “(중국과의) ‘디커플링(경제적 분리)’은 독일-중국 관계의 선택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진영이 공산주의 중국과 경제적 분리 혹은 ‘디리스킹(위험 완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의 ‘맏형’ 격인 독일의 집권당 대표가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대외연락부가 접촉하는 독일 정치인이 중국 공산당에 유리한 발언을 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22년 6월5일 리창 중국 총리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독일 집권 사회민주당 라시 클링바일 대표를 만나고 있다. | 신화/연합

또한 작년 10월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는 사민당 롤프 뮈체니이 원내대표가 류젠차오에게 축전을 보내 신임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대승을 기원했다.

독일의 중도우파 성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해당 소식을 보도했을 때 독일 정치계에는 파문이 일었다.

사회민주당 전 당 대표이자 독일 국방장관을 지낸 루돌프 샤르핑 역시 대외연락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주요 인사다.

친중파로 알려진 샤르핑은 현재 중국에 투자한 독일 기업에 컨설팅 업무를 제공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지난해 9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한 독일-중국 비즈니스 회의에는 션베이리(沈蓓莉), 류징친(劉敬欽) 등 대외연락부 전현직 부부장이 참석해 연설하는 등 친분을 과시했다.

샤르핑은 중국과의 디커플링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그는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면서 무역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중국과의 협력을 호소했다. 또한 ‘뉘앙스’의 전달을 위해서는 독일-중국 고위 관계자 간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교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헌법수호청이 자국 정관계 인사들에게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와의 접촉에 주의하라고 한 것은 이러한 독일 내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맞물려 있다.

학술·연구기관에서의 스파이 침투를 막기 위한 조치도 이뤄지고 있다. 독일 프리드리히 알렉산더 에어랑겐 뉘른베르크대학(FAU)은 지난 6월부터 중국 정부 장학금 유학생의 수용을 중단했다고 독일 유력지 슈피겔이 7월 말 보도했다. 독일 교육부도 이 판단을 지지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지난달 사상 최초로 대중국 국가전략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겠다고 밝혔다.

6월 헌법수호청이 발표한 최신 연례 안보보고서에서는 중공 스파이의 산업과학 분야 침투가 독일이 마주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