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노동당 당원 출신 “현재 북한, 90년대처럼 끔찍한 기근 상태”

얀 예켈렉(Jan Jekielek)
2023년 08월 9일 오전 8:10 업데이트: 2023년 08월 10일 오전 11:12

현재 북한의 상황이 지난 1990년대 300만 명이 아사한 이른바 ‘고난의 행군’ 대기근 때와 무척이나 비슷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영문 에포크TV ‘미국의 사상 리더들(ATL·American Thought Leaders)’ 프로그램에는 북한의 집권 노동당 당원 출신 탈북민 이현승(미국명 아서 리) 씨가 출연해 최근 북한의 식량 위기, 핵무기 프로그램과 북한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일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래는 영문 에포크타임스 수석 편집자이자 ‘미국의 사상 리더들’ 진행자 얀 예켈렉과 이 씨와의 일문일답.

-최근 북한으로부터 매우 걱정스러운 정보들이 들어오고 있다.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는 북한 기근 관련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1990년대와 같은 끔찍한 기근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편으로 북한은 미국이 핵전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면서 대규모 군중 집회를 열고 핵무기로 엄포를 놓고 있다. 이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나 또한 BBC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이후 북한 내부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해 왔다. BBC 다큐멘터리는 대단히 믿을 만한 근거를 토대로 제작됐음이 확인됐다. 실제 최근 기근이 1990년대 당시 상황과 대단히 비슷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300만 명이 사망했는데, 북한의 수도인 평양에 살고 있는 주민은 대부분 지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도시에 살고 있는 최고위층은 모른다. 시골에 사는 주민들은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 정권은 주민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북한 내에서 반미 선동을 이어가고 있다. 반미를 통해 주민들을 결속시키려는 전략이다.”

-말하자면 핵무기로 엄포를 놓는 것도 기본적으로 북한 내부 주민들을 대상으로 ‘저들이 우리의 적이고, 하나로 뭉쳐 맞서야 한다’고 하는 그런 얘기인가.

“정확한 분석이다. 핵무기는 김정은의 숙원 사업이다. 내가 북한에 있을 때 북한 정권에서는 ‘일단 핵무기만 가지게 되면 전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강국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게 됐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 정권 입장에서 핵무기란 일종의 내러티브다. 반미가 북한 정권의 핵심 정책인 셈이다. 핵무기 개발에 자원을 총동원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조금 전 평양 주민들과 시골에 있는 주민들이 서로에 대해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엘리트들만 거주하는 평양 출신으로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에 비해 윤택한 삶을 살다가 망명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많은 탈북자와 나의 경우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평양은 자원과 권력을 포함해 모든 것이 집중돼 있는 곳이다. 평양에 사는 사람들은 북한의 지배 계층이다. 나는 북한 사회에서 엘리트 계층이었다. 내 부친 또한 고위 요직을 두 차례 역임했다. 김정일이 직접 부친을 임명했다. 고위직에 있었던 부친 덕분에 나는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정권에도 충성했다. 3년 동안 군에 복무하고 집권 정당인 노동당원이 됐다. 나는 북한을 이끌어 나갈 젊은 인재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다 중국에 유학할 기회가 생기면서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울러 2013년, 김정은이 삼촌 장성택과 측근들을 처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관계자 수백 명이 처형됐고 그들의 가족은 수용소로 보내졌다. 실제로 부친의 친구 중 많은 분이 처형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이송됐다. 중국에서 나와 같이 공부한 친구의 가족도 전원이 수용소로 보내졌다. 내 여동생도 당시 중국에 있었는데, 여동생이 보는 앞에서 룸메이트를 체포해 중국에서 북한으로 압송해 갔다고 들었다.”

“일련의 사건들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북한 사회를 바꾸고 더 나은 사회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믿음이 무너졌다. 내가 살고자 했던 사회가 아니었으며 내가 섬기고자 했던 지도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나와 내 가족은 망명을 결심했다.”

-가족들과는 어떻게 망명을 의논했는가.

“망명을 논의한다거나 지도자를 비판하는 건 북한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당시 우리는 중국에 체류 중이었다. 물론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집 안에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탁 트인 공원으로 갔다. 모든 전자기기는 승용차 안에 둔 채 공원으로 나가 논의를 이어갔다.”

“우리 가족은 북한 주민들을 위해, 북한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특히 부친의 경우 사회 개방과 경제 개혁을 적극 지지,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장성택 처형은 북한 엘리트들이 사회에 대해 꿈꿨던 모든 희망을 무너뜨렸다.”

-김정은은 그들이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부 숙청하고 처형했던 건가. 또 어째서 개혁·개방을 멈춘 것인가.

“장성택은 북한에 돈을 벌어다 주는 일을 담당했고, 개혁·개방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던 중이었다. 김정은은 장성택이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위협을 느낀 것 같다. 김정은은 개혁·개방 정책이 자신의 권위를 약화할 것이라 여겼다.”

“이는 일리 있는 생각이었다. 장성택이 추진하던 정책을 시행할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북한 사회를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모든 정보가 북한으로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김정은의 권위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었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이 합법적인 지도자가 아니고 애초에 지도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장성택과 같은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다음은 우리 차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그렇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북한의 엘리트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삼촌까지도 처형하는데 망설일 것이 더 있겠는가. 김정은은 누구든 처형할 수 있는 인물이다.”

-평양 사람들과 지방 사람들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군에 있을 때 지방에 있는 분들과 같이 일한 적이 있다. 지방의 관심사는 많이 달랐다. 지방 상황은 수도인 평양에 비해 크게 열악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평양을 동경했다. 평양 시민이 되고 싶어 했다. 기회만 되면 수도인 평양에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동시에 평양을 증오했다. 북한 사회는 김 씨 일가와 평양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평양에 입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방 사람들은 증오를 느끼곤 했다. ‘왜 정권은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 건가?’ 반문하며 말이다. 그래서 지방에서는 엘리트 사회에 대한 반감이 팽배해 있다. 내가 실제 느낀 분위기도 그러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평양 번호판에 돌을 던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평양 주민들, 바꿔 말해 엘리트들은 나머지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신들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선민의식이다. 특히 핵심 엘리트 집단의 경우 대대로 권력을 세습했기 때문에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보통의 평양 시민들은 지방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평양 안에서도 엘리트 핵심 집단과 일반 시민들 사이 간극이 존재한다.”

2011년 황해도 속사리 집단농장에서 삽을 들고 있는 북한 소년 | 로이터/연합뉴스

-기근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보겠다. 평양 사람들은 어째서 다른 지역의 사정을 모르는 건가.

“정보가 차단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정보의 유통을 엄격히 통제하고 정보를 공유하려는 주민들을 엄벌에 처한다. 이러한 통제는 평양 시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로 인해 평양에 사는 사람들, 특히 고위층은 평양 밖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도시 안팎에 사는 사람들과 각각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럼 그들로부터 각자 다른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가.

“그렇다. 평양 내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기근 사태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기근을 이야기한다. ‘지난주에는 다섯 명이 굶어 죽었다’ ‘가족 전부가 죽었다’ 같은 얘기다. 아무도 주민들을 들여다보지 않아서 시신은 며칠이 지나서 발견되기도 한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만일 북한의 누군가가 외부와 소통한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그건 사망 선고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렇다. 물론 위험이 크다. 그러나 외부에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결국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보가 중요하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북한 정보를 (외부와) 공유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중국 국경이 차단된 이후 그나마 제한적으로 얻을 수 있었던 정보도 더욱 줄어들었다고 들었다.

“맞다. 그래도 외부에 나와있는 북한 주민도 있고, 그런 주민들이 내부에 있는 주민들과 연락을 취하기도 한다. 그래서 비교적 다양한 출처를 통해 정보를 얻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밝힐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보가 있다면 무엇인가.

“첫 번째, 기근이다. 몇 달 전 북한의 한 농장에서 19명이 아사했다. 농장은 쌀과 식량을 생산하는 곳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생산되는 모든 쌀을 군대에 보급했다. 농민들은 몇 차례 이의를 제기했으나 북한 정권은 무시했고 주민들이 집단 아사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두 번째, 정보를 공유한 사람들이 처형당하고 있다. 2년 전 북한 정권은 정보를 공유하는 자를 처형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했다. 이로 인해 남한 드라마나 미국 영화를 돌려봤다는 이유로 처형된 사람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 게 아닌데.

“정보의 수준과 관계없이 사람들을 처벌하고 있다.”

-핵전쟁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내부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현재 북한에 대한 외부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건가.

“사실 북한 입장에서는 외부 위협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과 남한이 북한을 침공해 주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빼앗을 것’이라는 선전을 되풀이함으로써 일부러 위협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북한 정권은 ‘그러니까 침공에 대비하려면 자원을 총동원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 한다. 실제로 외부적 위협은 존재하지 않지만 북한 내부는 고립돼 있고, 외부에서 진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북한 내부 주민들은 알 길이 없다. 결국 주민들은 정권의 내러티브를 믿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외부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 건가.

“위협이 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남한과 미국의 합동 군사훈련에 대해 북한은 늘 비난해 왔지만, 사실 해당 훈련은 공격이 아닌 방어를 위해 일반적으로 실시되는 훈련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해당 군사훈련이 북한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간주하며 항상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대중을 동원해 집회를 열고, 입대 서명을 받는다.”

-전략적으로 계획된 메시지를 엄격하게 반복하는 한편 외부 정보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진공 상태를 만드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선전을 믿는다고 보는가.

“1990년대까지는 대부분의 북한 주민이 정권이 하는 말을 믿었다. 그러다 대기근이 닥쳤다. 기근을 겪는 동안 사람들은 외부의 여러 정보를 접했으며, 장마당을 만들었고 정권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갔다. 정권의 장악력은 점차 약화했다. 주민들은 정권에 대한 신뢰를 접었다. 그럼에도 불구, 주민들 가운데 절반가량은 여전히 정권의 어젠다와 약속을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양 사람들은 어떤가. 더 믿는가, 아니면 덜 믿는가.

“내가 북한에 있었을 때는 정권이 하는 말을 믿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사회 전반의 분위기라는 게 있다. 믿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다. 믿지 않아도 내색은 못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런 상황이라고 본다. 북한은 정치 선전이 극단적으로 이뤄지는 곳인 만큼, 선택의 여지 없이 믿어야 하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황효정 기자가 이 영상기사의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