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톈안먼 31주기를 맞이하여…광장은 잊지 않는다

닝셴화
2020년 6월 3일
업데이트: 2020년 6월 24일

오는 4일 톈안먼 학살 31주기를 코앞에 두고 중국은 또 다른 격랑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중국 공산당이 홍콩의 ‘반역’을 억누르기 위한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하면서, 홍콩 시민들의 거센 반발과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촉발됐다.

이하 1989년 6월 톈안먼 민주화 요구시위에 참여했던 중국인 닝셴화 씨의 기고문을 통해 새롭고 건강한 중국을 꿈꿨던 당시 청년과 지식인들의 희망과 좌절 그리고 불굴의 의지를 되돌아본다. – 편집부

 

“31년이 지났다.” 발표한 톈안먼 사태 민간인 희생자는 약 900여 명. 그러나 실제 사망자 수는 5천여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진실은 여전히 붉은 장막 너머에 가리워져 있다.

그날 자유의 이상을 위해 꿈꿨다가 선혈을 흘리며 스러져간 시위대 가운데에는 대학생, 시민, 근로자 외에도 열여섯 꽃다운 나이의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당국은 베이징 창안제 거리와 가로수를 적신 피를 씻어내고 페인트칠로 덮었지만, 톈안먼은 여전히 참극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의 ‘탱크맨’인 팡정(方政)은 탱크에 쫓기고 치이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맨몸으로 맞서다가 결국 다리를 잃었다. 오늘날 그는 미국에 머물며 자유민을 위해, 중국을 위해 우리와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학생들을 보호했던 그날의 또 다른 용사는 이후 중국 당국의 추적을 받으며 온갖 고생을 겪었다가 지금은 신장투석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다. 고난의 31년 세월을 지내며 우리는 톈안먼을 잊지 않았다.

6·4 톈안먼 사태 이후, 자랑스러운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은 ‘톈안먼 어머니회’를 조직해 중국 공산당에 진상규명과 사망자 명단 발표를 요구하며 싸워오고 있다. 31년을 이어온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항거는 세계를 감동하게 했다.

31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중국 공산당 정권의 탄압과 학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군과 경찰은 티베트인을 ‘폭도’로 몰아붙여 총살했다. 억울함을 참지 못한 티베트인들은 스스로 몸을 불사르는 분신 투쟁으로 맞서며 지금까지 약 150여 명의 티베트인이 산화했다.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는 종교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100만명이 ‘직업 훈련’이란 구실로 수용소에 갇혀 자유를 잃어버린 채 가혹한 대우와 잔인한 살인에 노출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공산 폭정은 나치보다 더 악랄하고 파시스트보다 훨씬 사악하다.

1949년, 정권을 수립한 중국 공산당은 한국전쟁 참전, 우파탄압, 대기근, 문화대혁명, 베트남 전쟁, 한자녀정책, 범죄와의 전쟁, 인권활동가 대거 체포, 파룬궁 탄압 등 쉼 없는 ‘운동’을 일으켰다.

그 기간 중국 본토에선 별다른 전쟁 한번 없었지만 1억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연사가 아닌 방식으로 사망했는데, 중국의 감옥에서는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수많은 용사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숨을 거뒀다.

오늘날, 중국의 독재정권은 홍콩에 기어이 폭정 체제를 수립하려 한다. 홍콩반환협정 등 국제협약을 파기하고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홍콩의 시민과 학생들은 부지런히 반대하고 항거하고 있다. 자유와 민주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홍콩시민과 나란히 서야 한다.

30여년 전 6월, 중국 당국은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주도한 학생과 근로자, 지식인들을 추적했다.

당시 홍콩에서는 각계각층 인사들이 힘을 모아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섰고, 그렇게 중국을 빠져나온 이들은 이후 다양한 경로로 해외에 망명해 고국의 발전과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31년이 지났지만 톈안먼은 잊히지 않은 것이다.

6·4 톈안먼 학살은 인류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31년의 세월은 살아온 우리에게 행운이자 불행이다. 행운은 우리가 아직 살아있음이요, 불행은 그때 광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던 학우들의 희망과 이상을 아직 실현하지 못했음이다.

우리는 무거운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낀다. 반드시 이념과 진실을 지키고, 거짓과 망각을 거부하며 6·4 정신을 대대로 이어나가야 한다.

2020년 6월 2일


닝셴화(寧先華)는 1961년 중국 랴오닝성 선양(沈阳)시 출생으로 1989년 선양시 시민단체인 ‘선양애국시민자치연합회’를 규합, 대표신분으로 베이징에 상경해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을 지원했다. 이후 ‘불법단체 조직’ 등의 혐의로 옥고를 치렀고 1998년 중국민주당 랴오닝성 지부를 공동설립하고 장쩌민 전 총서기 등을 비판하며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현재 미국으로 건너와 중국민주당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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