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인도 국경분쟁] 중국, 곤경에 빠질 때마다 인도를 친다

청샤오눙
2020년 6월 23일
업데이트: 2020년 6월 24일

뉴스분석

중국-인도 사이 58년간 지속되던 평화가 깨졌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국내정치 실패, 국제갈등 고조 시 상대적으로 약한 주변국과 분쟁을 일으켰다. 1962년 마오쩌둥(毛澤東)은 “실수를 범할수록 담담해져라, 전선을 옮겨 출로를 찾는다”(越是犯錯越淡定, 轉移戰線求出路)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은 1962년 인도와의 전쟁에서 빈손으로 물러났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1. 두 번의 굴기, 두 번의 곤경

최근 발생한 중국-인도 국경분쟁은 양국 간 오랜 국경분쟁의 일부다. 이 문제는 100년 가까이 미 해결상태였다. 이 기간 양측간 충돌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처럼 사상자가 많이 난 분쟁은 딱 두 번 있었다. 1962년 중인전쟁과 이번 국경분쟁이다. 60년 가까이 평화를 유지해온 양국 사이에 왜 다시 분쟁이 일어난 것일까? 답은 ‘언제’에 있다. 그러나 단순히 시기만 알아서는 두 사건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각각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야 한다.

중국-인도 분쟁이 발생한 1962년과 2020년은 모두 중국이 사상 유례없는 국내외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려움은 모두 중국이 ‘굴기’( 起·우뚝 섬)’ 정책을 펴다 자초한 결과였다. 1962년은 마오쩌둥이 ‘대약진 운동’(1958~1961)으로 영국, 미국과 소련을 추월하려다가 철저히 실패한 때였다. 2020년 중국은 미국을 추월하려다 미국의 반격을 받아 곤경에 빠졌다.

두 ‘굴기’는 국제적 야심을 품은 중국 정권이 내린 소모적이고 공격적인 경제정책이었다. 결국 국내경제는 심각하게 침체되고 우방국은 등을 돌렸다. ‘대약진 운동’은 농촌 공업화로 농업생산을 증대시키려는 것이었으나 도리어 농업만 붕괴하고 수천만 농민이 아사하는 결과를 낳았다.

마오쩌둥은 1958년 대만과 진먼(金門·금문) 포격전을 벌였다. 사태가 확산되자 소련에 “미국과의 핵전쟁에 참가해달라”고 요구까지 했다. 이런 정신 나간 정책에 소련은 중국과의 밀월을 끝내고 대중 기술원조를 중지했고, 중소·미중 관계가 동시에 악화했다.

현재 중국 경제 침체의 기원은 후진타오-원자바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 거품을 심화시켜 경제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었다. 미국을 추월해 우뚝 선다(굴기)는 전략도 후진타오-원자바오 시대에 시작됐다.

굴기를 위해 미국을 상대로 대규모 기술 절도를 벌이고 장기간 거액의 대미무역흑자를 거뒀다. 공해(公海)인 남중국해에 국제해양법을 위반하며 인공섬을 건설하고 해군 함정과 군용기를 위한 군사기지화를 시도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중국의 위협에 맞서 경제적 반격으로 중국경제 하락을 가속화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중공 바이러스) 사태로 미중관계는 더 악화됐다.

2. 잘못을 범할수록 담담해져라, 전선을 옮겨 출로를 찾는다

이러한 정책 실패가 민주국가에서 발생했다면, 내각이 사퇴하거나 책임추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산국가에서 정권이 잘못을 인정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독재 권력은 이 경우 대외적 사건을 만들어 국내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고 민족주의를 자극할 것이다. 동시에 당 내부에서는 통제력을 과시해 잠재적 내부도전자들의 움직임을 차단할 것이다.

1962년 마오쩌둥의 전략은 “잘못을 범할수록 담담해져라, 전선을 옮겨 출로를 찾는다”였다. “담담해져라”는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말라는 것이고 “출로를 찾는다”는 새로운 투쟁을 일으키라는 것이다. 그 여파는 주변국이 뒤집어쓴다. 이때 그 주변국은 너무 약소국이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승리가 자랑스럽지 않고 민족주의 선동력이 약해진다. 중국의 주변국 중에서, 유일하게 크면서 약한 나라가 인도다.

양국은 오랫동안 미결상태인 국경문제도 있다. 그래서 인도와의 마찰은 중국 공산당의 선택지가 된다. 다만 공산당도 마지노선은 있다. 분쟁을 일으키더라도 인도 내지로 깊이 들어가면서 영토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국제적 고립이 심해지고 득보다 실이 크다. 인도와의 분쟁은 영토를 빼앗거나 손해배상 청구가 목적이 아니라 국내에서 시선을 옮기는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다.

중국-인도 간 국경선은 척도가 1인치당 8마일(약 13km)인 지도 위에 그어졌다. 이 지도에서 국경은 강이나 산 등 지형지물로 경계를 삼지 않았고 정확한 경도·위도가 기재되지도 않았다. 경계가 불분명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국경표시를 세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중국-인도 양측은 군이 관할하는 실질통제선(LAC)을 경계로 삼았다. 그러므로 실제 국경 상황은 쌍방이 모두 자신의 실질통제선이 있고 그사이에는 양측 누구도 점령하지 않은 완충 지역이 있다. 만약 완충 지역에서 한쪽이 공사나 보루 설치 등 어떤 행위를 하면 바로 분쟁이 일어난다. 1962년의 중국-인도 분쟁이 그랬다. 올해 중국-인도 분쟁 또한 마찬가지다.

두 번의 중국-인도 분쟁은 공통의 패턴이 있다. 중국 측은 미결인 국경 상황을 이용해 마찰을 일으킨다. 병력을 보내 미리 준비했다가 돌연 기습한 후 사태를 축소하고 국경을 원상으로 되돌리거나 적절히 후퇴해 평화를 회복한다. 매번 중국이 군사상 주도권을 쥐었다. 다음으로 두 번의 분쟁 특징을 살펴보자.

3. 1962년 중인 전쟁의 승패

1962년 말 중국은 중인전쟁을 일으킨다. 그해 10월 20일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은 중국-인도 국경의 동부지역에서 공격을 감행했고, 인도군은 패전했다. 11월 16일 중공군은 다시 국경선 동부와 서부지역에서 장거리 기습 전법으로 인도 주둔군을 포위 공격해 또 한 번 인도군을 대량 섬멸한다.

중국은 군사적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뒀지만, 외교적으로는 크게 실패했다.

전 세계 서방국가, 공산국가와 기타 개발도상국 50여 개 국가가 공개적으로 인도를 지지했다. 이집트, 이라크, 스리랑카, 네팔, 몽골,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등의 국가는 중립을 유지했다. 공개적으로 중국지지를 선언한 국가는 베트남, 북한, 파키스탄 정도였다. 이들 국가는 각각 부득이한 상황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미국과 소련 양국이 확실하게 인도를 지지해 대형수송기, 전투기와 헬기를 포함한 대량의 군사원조를 제공했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됐고 인도군은 미국, 소련에서 제공한 대량의 현대식 장비를 도입해 군사력이 증가했다. 더 싸운다면 이제는 중국 군대가 유리하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마오쩌둥은 전쟁 이전의 일부 점령지역까지 일부 포기하고 완전철수를 명령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당시 친중 성향 호주 기자인 네밀 막스빌은 <인도의 대중국전쟁>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중국군이 승리를 거뒀을 때 중국 정부는 돌연 일방적으로 무조건 철군을 선언했다. 이는 세계를 안도하게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놀라게 했다. 세계전쟁사에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패전국이 아무 약속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승전국이 일방적으로 무조건 철군을 했다. 이는 큰 대가를 치르고 얻은 성과를 무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군(軍) 작가인 진휘(金輝)는 1995년 출간한 티베트를 배경으로 한 여행기에서 “승자와 패자는 분명하다. 다만,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그 전쟁과 성과를 되돌아보면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승자는 패배하지 않았다는 명분을 제외하면 패자의 모든 것을 갖췄다. 패자는 승리하지 못했다는 명분 외에 승자의 모든 것을 갖췄다. 승자는 승리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 했다. 심지어 승리의 이점을 모두 잃는 큰 굴욕을 당하고도 무감각했다. 패자는 승자라는 헛된 이름만 얻지 못했을 뿐 여전히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 아마도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4. 2020년의 중국-인도 분쟁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올해 다시 분쟁이 일어났다. 분쟁지역은 중국-인도 국경 서부의 네팔에 가까운 지역으로 해발고도가 높은 황무지, 극한지역이다. 기후는 열악하고 지형은 험준하며 교통은 불편하다. 양국 모두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은 없다. 쟁탈할 만한 자원도 없다.

과거에 국경순찰병은 완충 지역에서 플래카드를 펼쳐서 각자의 주장을 하고는 다시 각자 갈 길을 가곤 했다. 최근 매년 수백 차례 중국이 인도 측 실제통제선을 넘는 사건이 발생하고, 중국은 심지어 인도 측의 실질 통제지역까지 들어와서 초소를 세우고 수 주간 대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사망에까지 이르지는 않았고 구타나 적의도 표시하지 않았다.

최근 인도의 순찰병이 완충 지역에서 중공군이 건축물을 짓는 것을 발견했다. 인도군은 이 건축물을 파괴하려다가 중국 순찰병의 공격을 받았다. 중국과 인도는 1996년 최전방에서의 비무장 합의 후 군사 분쟁을 피하고자 무기를 휴대하지 않는다. 양국 군대의 분쟁은 주로 맨손으로 싸우는 것이다.

5월 말에 있었던 분쟁에서 중공군은 72명의 인도군을 구타해 부상을 입히고 5명을 포로로 잡았다. 단번에 1개 중대의 인도군을 상처 입힌 것을 보면 중공군의 출동병력은 수백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6월 15일 저녁 몇 시간 동안 발생한 분쟁 과정에서 중국 측은 못이 박힌 몽둥이를 썼다. 맨손의 인도군은 속수무책으로 백 명 이상이 몽둥이에 맞아 산 아래 계곡으로 추락했다. 지형이 험준해 적시에 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최소 20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지난 15일 중국 서부 고원 지대에서 발생한 국경분쟁에서 중국 군인들이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 몽둥이. | 트위터 캡처

우세한 병력을 동원하고 공격형 몽둥이까지 준비한 것을 보면 올해의 중국-인도 분쟁은 중국이 사전에 준비하고 선발한 군대의 기습공격이다. 군인은 명령 없이는 대규모 공격을 일으킬 수 없다. 이번 기습의 배후에는 도발을 위한 중국 정부의 결정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현재 양국은 잠시 분쟁 현장에서 벗어나 있지만 각자 전선에 대규모 병력과 중장비를 모으고 있다. 이후 국면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는 살펴봐야 한다.

며칠 전 중국 관영매체는 “이번의 중국-인도 분쟁은 사태 해결이 어렵지 않다. 중국-인도 간에는 성숙한 메커니즘으로 의견 차이를 관리한다. 이것이 수십 년간 계속된 양국 간 분쟁에서 사망사례가 나오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나) 중국이 1962년 중인 전쟁 당시 가졌던 심리적 우세는 여전히 뿌리 깊다”고 전했다.

이러한 논평은 중국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고의로 국경분쟁을 일으켰음을 시사한다.

5. 중국은 또 ‘승리’할까?

중국은 왜 중인 국경분쟁을 일으킨 것일까? 위에서 이미 분석한 바 있다. 직접적 원인으로는 중국이 미중냉전이 시작된 후 국제사회에서 계속 견제받고 있는 가운데 인도가 중국과의 협력을 거절한 것도 있다. 중국은 미국의 경제압력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계속 벽에 부딪히자 이번에 인도를 한번 쳐서 인도가 말을 듣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과거 1년여 동안 인도는 일본이 앞장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참여를 거절하고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가입도 거절했다. 인도가 중국의 말을 듣지 않는 것에 대해 중국은 이를 갈고 있었고 결국 이번 분쟁에 이르게 된 것이다.

1962년 중인전쟁과 비교하면, 이번 분쟁은 규모와 심각성에서 훨씬 약하다. 양국은 총기를 동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제적 영향은 1962년과 비슷하다. 중국은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 분쟁에서 외교적 고립에 처했다. 어느 국가도 공개적으로 중국을 지지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의 국제형세는 이미 1962년과 크게 다르다. 첫째, 국제연합(UN)은 점점 반(反)서방 성향의 개발도상국 다수가 회원국이 됐고 중국의 무대가 됐으며 미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예전처럼 국제 질서를 주도하기 어려워진 UN은 더는 이번 중국-인도 분쟁의 효과적인 중재자가 될 수 없다.

둘째, 중국은 경제 글로벌화 이후 적지 않은 나라를 경제적 이익으로 회유했다. 따라서 중국은 이런 소규모 분쟁으로 국제적 제재를 받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인도의 국제 지위와 경제력은 과거와는 다르다. 자체 역량만으로도 국제적인 지지 없이 정치와 경제에서 중국에 반격할 수 있다.

독일의 소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번 국경분쟁 후 인도는 외교와 경제정책을 신속히 변경해 중국에 반격을 가했다.

우선 화웨이 5G를 거부하고, 민간에서는 중국 제품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다. 7천만 인도 사업가들로 구성된 전인도상인연합회(CAIT)가 전국에서 중국상품 불매운동을 하기로 했다.

또한 인도 정부는 중국 우한 폐렴의 기원에 대한 조사 압력을 지속하고, 국제협력을 통해 중국에 대항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최근 중국과의 분쟁과 관련해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전략에 참여해, 중국이 남해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군사활동하는 것을 억제하기로 했다.

국제 참여도 확대한다. 전문가들을 국제조직에 파견하고 학계와 민간부문에서도 적극적으로 국제활동에 참여해 발언권을 확보한다. 마지막으로 군사력 증강이다.

중국은 1962년의 중인전쟁에서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이번에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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