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회담 우려스럽다” 美 경고에 러 “가르치려 들지 말라” 응수

애덤 머로우(Adam Morrow)
2023년 09월 15일 오후 5:14 업데이트: 2023년 09월 15일 오후 10:43

미국이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이 군사 분야에서 서로 이득을 취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러시아는 “미국은 우리를 가르칠 권리가 없다”고 날을 세웠다.

지난 13일(현지 시간) 언론 브리핑에서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김정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소위 ‘성스러운 싸움’으로 규정하고 지지를 표명한 것과 관련해 북러 간 협력 확대, 특히 무기 이전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서 매우 우려된다고 밝혔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이날 오후 러시아 보스토치키 우주기지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5시간 넘게 함께하며 두터워진 관계를 과시했다.

북한에서는 최선희 외무상과 강순남 국방상 등 군부 실세들이 참석했다. 러시아에서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 장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 등이 총출동했다.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에게 “북한의 최우선 과제는 러시아와의 관계”라고 강조했다.

또한 “러시아는 패권을 주장하고 팽창주의자의 환상을 키우는 악의 결집(서방)을 벌하고 안정적인 발전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신성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우호적이었던 양국 관계를 굳건한 전략적 협력 관계로 전환하는 하나의 이정표”라고 덧붙였다.

두 정상이 무기 거래를 논의할지 여부와 관련,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물론 이웃 국가로서 공개되거나 발표돼서는 안 되는 민감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이튿날인 14일 크렘린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을 받아들였다고 발표했다.

크렘린궁에 따르면, 이미 오는 10월 중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방북이 예정돼 있는 상태다.

양국 정상이 회담하는 것은 지난 2019년 4월 이후 약 4년 5개월 만이다.

앞서 지난 2019년 4월 25일(현지 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났다.|Alexey Nikolsky/Sputnik/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무기 이전 우려

13일 북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정계와 언론계에서는 러시아와 북한이 무기 및 군사기술 교환을 모색하고 있다는 추측이 잇따라 나왔다.

이달 4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미 정부 관계자 등을 인용해 양국 정상이 회담을 열고 무기 이전과 군사 협력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위성, 핵 추진 잠수함 등과 관련한 첨단기술을 북한에 이전하고 북한은그 대가로 러시아가 원하는 탄약과 대전차 미사일 등을 공급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전에 투입할 상당한 수량과 다양한 유형의 군수품을 공급받을 수 있다.

이에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북한과 러시아 간 무기 거래 협상이 활발하게 진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할 경우 “그들은 국제사회에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과 러시아는 양국 모두 무기 거래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양국 간 ‘전략적 협력’을 강화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상회담 후 푸틴 대통령은 회담에서 군사기술 협력 문제가 논의됐냐는 질문을 받았다.

푸틴 대통령은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염두에 둔 듯 “일정한 제한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러시아는 이 모든 제한을 준수한다”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협의할 수 있는 것들은 있으며 이에 대해 논의하고 생각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도 전망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17년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응해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후 러시아는 이에 대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북한에 대한 안보리의 추가 제재 논의에 미온적으로 대응한 것인데, 여기에는 중국도 합세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Drew Angerer/Getty Images/연합뉴스

미국의 감시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가 기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무시할 것이냐는 질문에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 발전을 계속하는 동시에 유엔의 약속도 이행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에 의문을 표했다.

밀러 대변인은 “러시아가 스스로 찬성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할 (무기 개발) 프로그램과 관련해 북한과 협력 논의를 하는 게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러시아로의 어떤 무기 이전도 다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했다.

밀러 대변인은 “(미국은) 북한과 러시아 양쪽 모두 긴밀히 주시하면서 적절한 경우 제재 부과를 주저하지 않겠다”고 확언했다.

실제 미국은 지난달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북한과 러시아 간 무기 거래와 관련한 제재를 단행하기도 했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대사|Mandel Ngan/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러시아의 대응

14일 아나톨리 안토노프 미국 워싱턴 주재 러시아 대사는 텔레그램 계정을 통해 “미국은 러북 대화를 국제적 불안정 요소로 몰아가려 한다”고 주장했다.

안토노프 대사는 “미국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칠 권리가 없다”고 날을 세웠다.

또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같은 분쟁 지역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러시아와 외국 간의 군사기술 협력은 불법이라며 우리 파트너들에 제재 위협을 가하고 러시아도 제재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의 이중성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토노프 대사는 “이제는 미국이 경제 제재라는 오랜 관행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때”라고 촉구하며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Unipolar dominance)가 더는 불가능하다”라고 전했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