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총리 저장성 시찰에서 드러난 중국 경제 실상

2021년 5월 29일
업데이트: 2021년 5월 29일

중국 국무원이 최근 홈페이지에 7편의 게시물을 발표하며 리커창 중국 총리의 지난 24~25일 저장성 시찰을 자세하게 알렸다.

신화통신 등 관영매체가 리 총리 시찰을 단신으로 간단히 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7편의 게시물은 리 총리의 시찰 성과를 전하면서 중국 경제의 어려운 실상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중국 공산당과 관영매체는 경제 성과를 과대포장하기 바쁘지만, 리 총리는 만만치 않은 현실을 그대로 전하며 민생을 보살피는 모습을 연출해왔다.

앞서 작년 5월 리 총리는 “중국의 1인당 연평균소득은 3만위안(약 525만원)에 달하지만, 6억명의 월수입은 1천위안(17만5천원)”이라며 “중형 도시에서 집을 빌리고 세를 내는 것조차 어렵다”는 발언으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국무원은 홈페이지 게시물에 따르면, 저장성 시찰 첫날이었던 24일 리 총리의 오전 첫 일정은 중국 최대 철광석·원유 수입항인 닝보의 저우산 항구였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의 구리·아연·철강재 등 제조업 원재료 선물 가격은 지난해 1분기보다 50% 이상 급등했다. 현물 가격도 두 자릿수 오름세를 기록했다. 고무, PVC 등 주요 원재료 가격도 전년 동기대비 20~30% 올랐다.

리 총리는 지난 19일 국무원 회의를 주재하고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는 에너지·금속·농산품 등 기초 원자재인 대종 상품(벌크스톡) 가격 안정 및 수급 대책을 모색한 바 있다. 이후 저장성 첫 시찰지로 대종 상품 수입항을 방문한 것이다.

리 총리는 항구에서 대종 상품 가격 동향을 보고받고, 10여 개 제조업 관계자들과 만나 현장의 이야기를 청취했다.

이 자리에서 한 가전업체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영 압박이 크다”고 괴로움을 호소했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스마트 생산관리를 강화하고 기업 잠재력 키워 원가를 낮춰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압박에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무원 게시물은 두 관계자의 발언을 그대로 전할 뿐이었지만, 행간에서 전하는 의미는 명확했다.

두 번째 관계자는 현지 정부 관리들이 ‘미리 섭외한’ 인물임이 분명했다. 번지르르한 발언으로 정책 결정자를 속이고 오판을 내리도록 하는 역할이다.

이런 인물을 투입해 고위층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게 하는 행위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아부와 거짓 보고로 자기 자리만 지키는 것만 익힌 지방 관리들의 전형적인 처세술이자 이미 굳어진 관행이었다.

공산주의 관료사회에서 잔뼈가 굵은 리 총리 역시 이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리 총리는 업계 관계자 두 명의 엇갈리는 발언을 듣고 실상을 정확히 포착했음이 분명하다. 업계가 곤경에 처했고 지방 관리들은 이를 덮어 감추기에 급급하다는 현실이다.

게시물에 따르면 리 총리는 올해 들어 국제 원자재 시장의 변동으로 원자재 가격이 올라 제조업계의 어려움이 크고 소비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대종 상품 가격 안정화를 실시하고 공급 안정화를 꾀해 원가 상승 등 경영난에 기업들이 대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리 총리의 발언은 정부가 중국의 원자재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의미다. 동시에 국제 원자재 시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한 해 수입하는 철광석의 60% 이상이 호주산이다. 중국은 호주에 대한 철광석 의존도가 절대적인 수준이지만, 호주를 상대로 늑대전사 외교를 펼쳐 갈등을 해소하는 대신 오히려 증폭시켜왔다.

중국 공산당은 호주 경제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약점으로 삼아 ‘갑질’을 했다. 중국은 지난 1년간 호주 산 물품 수입을 금지하는 등 경제 제재를 가했지만 호주에는 거의 타격을 주지 못한 채 오히려 상처만 입었다.

리 총리는 제조업 관계자들과의 만남에서 “국내와 국제라는 양대 시장과 자원을 활용해 세계 각국과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할 수 있도록 개방을 확대해야 한다”는 다소 원론적인 발언을 했다.

정부 개입을 시사했다가 다시 시장경제를 강조한 리 총리의 횡설수설은 제조업 관계자들이 아니라, 미국·호주·캐나다를 향해 던지는 변명처럼 들린다.

이들 국가는 이제 중국 공산당이 말하는 “개방, 시장경제, 자유롭고 공정무역 보장”이라는 주장을 더는 믿지 않는다. 공산주의 중국이 진짜로 변하지 않으면 계속 호의를 보여줄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로 돌아섰다.

거의 유일한 출로였던 유럽연합(EU)은 유럽의회가 최근 ‘EU-중국 포괄적투자협정(CAI)’ 비준 절차를 중단하며 중국과 거리를 벌리고 있다. 신장 지역 탄압과 관련해 중국의 보복을 당한 EU의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리 총리 입장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외교 책임자들이 만들어 놓은 재앙과 같은 상황에 직면해 무력감과 허탈감을 느꼈으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시진핑 중국 주석과 류허 부총리를 비롯해 공산당 지도부는 세계적인 반중 연대에 맞서 ‘내부순환’을 새로운 경제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내부순환은 외부 문호를 닫고 계란 껍질 속에서 자생하겠다는 주장이다.

물론 국내와 국제의 쌍순환(2개의 순환)으로 서로 촉진하는 새 발전 방식을 만들어 내겠다고는 했지만, 국제 순환은 실제로는 들러리 개념이고 국내순환(내부순환)이 모델의 본질이다.

리 총리는 “미래 세계 경제의 주기적인 변동에 대응하고 산업체인의 공급사슬을 안정시키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로 제조업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학업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자’고 조언한 격이다. 내부순환은 배제한 발언이자 실제로는 내용이 없는 말이었다.

리 총리는 닝보 취업시장도 살펴봤다. 지방 정부 관계자는 관련 보고에서 “60만 명의 ‘유연한 취업자’를 기초연금보험에 가입시켰다”며 “온라인 콜택시, 배달, 택배 물류 등 신규 업종 종사자에게 산재보험 우선 가입을 제공했다”고 했다.

닝보는 저장성에서 가장 경제가 활발한 도시다. 이러한 곳에서 주된 일자리 정책이 ‘유연한 취업’이었다. 유연한 취업은 근무시간과 장소를 유연하게 조절하는 형태다.

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대면 근무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거론되지만 정규직이 아닌 임시직, 아르바이트에 가까운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보고를 받은 리 총리는 “우리 나라(중국)의 유연한 취업 인원은 이미 2억 명에 이른다며 가능한 한 많은 유연한 취업 인원이 보험을 보장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전염병으로 위축된 중국 기업 입장에서 임시직과 아르바이트 근로자에게 보험을 제공하는 것은 여건상 쉽지 않다.

국무부는 홈페이지 게시물에서 중국 대학생과 졸업 예정자들이 유연한 취업이나 창업을 희망하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그러나 유연한 취업과 창업을 희망하는 대학생들이 왜 닝보의 취업시장에 몰려드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창업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첫 직장을 갖는 일도 창업 못지 않게 중요하다. 직장 경험으로 창업의 성공 가능성을 더 높일 수도 있다.

리 총리는 이날 “대중창업, 만인혁신(大衆創業 萬衆創新)을 통해 해 큰 사업을 창출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있기를 바란다”며 “기준과 능력을 갖춰 유연한 취업을 할 수 있다면 부를 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전문적인 경험과 인생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중창업, 만중혁신은 모두가 창업하고 모두가 혁신하라며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표어다. 쌍촹(雙創)이라고도 불린다. 중국 공산당이 과거 지주와 기업가 계급을 살해하고 무너뜨리는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임을 고려하면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리 총리의 발언은 취업하지 못한 중국의 많은 청년들에게 아마도 위로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적잖은 사람들이 ‘창업’이나 ‘유연한 취업’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암울한 상황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리 총리의 저장성 시찰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서 일반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을 보여줬다.

/중위안(鍾原)·중국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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