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얼음 속에서 일주일…고속도로에서 맞이하는 혹독한 새해, 中 후베이성

강우찬
2024년 02월 11일 오전 9:03 업데이트: 2024년 02월 11일 오전 10:57

지난 10일은 음력 설날이다. 전날인 9일은 중국에서 새해 전야에 해당한다. 예년 같으면 설 연휴에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식탁을 둘러싸고 활기차게 새해를 맞이했겠지만, 올해 중국에서는 그렇지 못한 지역도 있다.

올해 중국 화중지역(허난, 후베이, 후난)은 예년보다 많은 눈이 내렸다. 이로 인해 후베이성 고속도로에서는 대규모 정체가 발생했고, 계속된 적설과 노면 결빙으로 인해 꼼짝 못 하고 멈춰 서는 차량이 속출했다. 후베이 고속도로의 교통 체증은 수백 킬로미터에 달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번 정체는 오르막길에서 대형 트럭이 눈 때문에 미끄러져 멈춰서고 뒤따라오는 차량이 장시간 움직이지 못한 상태에서 눈이 계속 내린 것이 주요 원인이다. 그외 다수 차량이 몰리면서 전반적인 교통량이 급증한 것도 정체를 부채질했다.

지난 9일, 중국 화중지역에서는 귀성길에 오른 많은 시민이 고향에 도착하지 못한 채 고속도로에서 설날 밤을 보냈다. 10일 기준으로 정체 일수가 최장 7일에 이르는 곳도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주변국에서는 중국의 교통체증을 전하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눈길에 도로에 갇힌 사람들의 위급한 상황을 전하는 동영상과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9일부터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사이 지자체의 적극적인 구호활동이나 제설작업이 이뤄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 전문가 리닝은 “소셜미디어에 쏟아졌던 위기상황을 알리는 게시물이 당국의 검열에 의해 삭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추위 속에서 고속도로에 갇힌 사람들의 곤란한 처지나 이들의 어려움을 알게 된 지역 주민들이 지원의 손길을 내민 소식들이 보도됐다. 그러나 수일간 정체에 시달리다 위험을 무릅쓰고 걸어서 탈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량의 사람들에 대한 보도는 중국 언론에서 다루지 않고 있다.

대신 현재 중국 인터넷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후베이성 고속도로는 현지 당국의 노력으로 전 구간이 원활하게 통행할 수 있게 됐다”는 선전성 게시물이다. 리닝은 “중국 공산당 관영매체가 주도하고, 인터넷 댓글부대가 가담하면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웨이보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하루 이틀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갇혀 있었는데, 정말 다들 무사히 귀가했을까”라며 의문을 표기하는 게시물이 이어지고 있으나, 당국이 설 연휴 교통체증과 관련한 정보 검열을 시작했기 때문에 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실상을 알 수 없게 됐다.

다만, 당국의 정보 봉쇄 속에서도 “9일 현재 후베이성 일부 고속도로에는 여전히 많은 시민이 발이 묶여 있다”는 동영상이 유출되고 있다.

인터넷에 유출된 여러 동영상에 따르면 8일 심야에 얼어붙은 노면에서 미끄러지는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겨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도로가 다시 정체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대규모 정체 사태를 두고 인터넷에서는 ‘지방정부의 직무유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이제 고속도로의 정체 정보는 더 이상 전달할 수 없게 됐다. 왜냐하면 전날까지 수백 킬로미터에 걸친 대정체가 순식간에 해결됐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무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누리꾼은 “비어있던 휘발유는 저절로 채워졌고, 도로를 꽁꽁 막았던 눈은 운전자들의 오줌으로 완전히 녹아내렸을 것”이라며 “도로에 갇혀있던 모든 차들은 날개가 생겨 각자의 목적지로 날아갔다”는 황당무계한 표현으로 이번 사건을 풍자했다.

한편, 중국에서는 강추위와 폭설 속에서 일주일여 이어진 후베이 고속도로 대규모 정체와 관련해 발생했을, 추위나 도보 탈출 중 조난 등으로 인한 인명 피해 규모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