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시진핑 타도”…중국서 ‘베이징 현수막’ 모방 사건

강우찬
2024년 01월 26일 오전 11:35 업데이트: 2024년 01월 29일 오전 11:35

산둥성 부동산 임대업자, 제로 코로나 봉쇄로 폐업
‘더는 못 살겠다’ 중국 탈출 후 원격으로 정권 비판

지난해 2월 산둥성 지난시의 복합쇼핑몰 완다플라자(萬達廣場) 건물 외벽에 ‘공산당 타도, 시진핑 타도’ 슬로건이 등장했다.

앞서 2022년 10월 중국 베이징 도심 고가도로 쓰퉁차오(四通橋)에 걸렸던 ‘독재자 시진핑을 파면하라’는 현수막을 연상시키는 사건이다. 다만, 이번에는 천으로 된 현수막이 아니라 빔프로젝터로 쏜 이미지였다.

이 일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인물은 허베이성 출신의 사업가 차이쑹(柴松) 씨이다. 베이징과 산둥성에서 부동산 임대업을 했던 그는 지난 3년간 중국 공산당의 ‘제로 코로나’ 봉쇄를 겪으며 사업과 생계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결국 사업을 접어야 했다고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차이씨는 올해 초 마카오를 통해 출국, 태국과 에콰도르를 거쳐 중남미를 도보와 차량으로 통과한 후 미국-멕시코 남부 국경을 넘어 미국에 입국했다고 그간의 사정을 설명한 후 이번 사건에 관해 “앞서 베이징 고가도로에 현수막을 내건 펑리파(彭立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당국의 인터넷 차단을 우회해 해외 인터넷에 자주 접속하면서 쓰퉁차오 사건을 알게 됐으며, 펑리파의 용기에 큰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한 해외 중국 반체제 언론에 따르면 쓰퉁차오에 현수막을 내건 직후 체포된 펑리파는 올해 1월 7일 감옥에서 50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펑리파는 신체의 자유를 잃었지만 그의 목소리가 여전히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차이 씨는 “항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국 대륙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자신의 준비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 빔프로젝터를 설치하고 테스트까지 했으며, 이후 중국 탈출한 후 자신의 신변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원격 제어를 통해 메시지를 알린다는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차이 씨가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공산당 타도 메시지를 알릴 장소로 선택한 곳은 인파가 많이 몰리는 번화가인 산둥성 지난시의 완다플라자였다.

그는 먼저 지난 2022년 11월, 완다플라자 근처에 아파트를 빌리기 위해 두 차례 현장 답사를 했다. 그러나 1차로 물색했던 아파트 계약은 불발로 끝났다. 계약을 위해 만난 집주인이 “공안국을 위해 일하고 있다”며 “인터넷으로 외국 세력을 잡는 일을 돕는다”고 자랑삼아 말했기 때문이다.

차이씨는 12월에 다른 아파트를 찾아 계약했고 이후 공산당 타도와는 전혀 다른 오리 요리에 관한 내용으로 빔프로젝터를 통해 투사한 글이 잘 보이는지 테스트까지 무사히 마쳤다. 이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자신이 중국을 빠져나간 후 빔프로젝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원격제어 장치를 설치했다. 또 CCTV를 설치하고 휴대전화와 연결해, 해외에서도 자신의 아파트에 침입하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미국 FBI “중국 당국이 국경 넘어 당신 추적”

요즘 중국에서는 ‘저우셴(走線)’이란 신조어가 유행이다. ‘선 위를 걷는다’라는 뜻으로 주로 멕시코 등 중남미를 경유해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국내에서 살길이 막막해 해외로 나가는 유랑민 대열에 합류하는 셈이다.

차이 씨 역시 선 위를 걸었다. 그는 지난해 1월 18일, 마카오를 통해 출국해 태국으로 이동한 후 터키로 날아갔다가 에콰도르 키토에 도착했다.

2월 21일 파나마의 한 호텔에서 소지하고 있던 휴대전화를 통해 빔프로젝터를 가동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제20기 중앙위원회 2중전회를 열어 시진핑의 국가주석 연임을 확정하고 당·정·군 주요 인사를 확정할 계획이었다. 차이 씨는 이 소식을 접하고 ‘공산당 타도, 시진핑 타도’라는 문구를 게시할 시간이 됐음을 직감했다.

이날 오후 8시께 완다플라자의 건물 외벽에는 차이 씨가 작동시킨 빔프로젝터에 의해 ‘공산당 타도, 시진핑 타도’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당시 차이 씨의 계획을 미리 알고 있던 한 친구가 현장에서 촬영해 차이 씨에게 전송한 영상을 보면,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메시지를 보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차이 씨가 지인을 통해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곧 경찰차가 현장에 도착해 통제에 들어갔다. 지역 경찰은 물론 산둥성, 지난시 당국에 국가안전부 요원까지 약 70명이 출동했다. 현장에서 차이 씨를 지원했던 친구는 그날 밤 9~10시경 자신의 집에서 체포됐고 차이 씨의 부모도 체포됐다.

경찰 당국은 차이 씨의 부모를 일주일 동안 심문하고 아들을 설득해 귀국하게 하도록 종용했다. 또한 차이 씨에게 송금하지 못하도록 가족의 은행 계좌를 전부 동결했다. 경찰에 끌려간 차이 씨의 친구들은 현재까지 연락이 닿질 않고 있다.

차이 씨는 현재 심한 심적 고통을 겪고 있다. 그는 “나도 친구도 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며 “나를 체포하려 할 줄만 알았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해 큰 소동을 피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계좌가 동결된 후 한동안 무일푼으로 떠돌았고 멕시코에서 알게 된 베네수엘라인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기차에 올라타 마지막 희망인 미국으로 향했다.

차이쑹(맨 왼쪽) 씨가 멕시코에서 만난 베네수엘라인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 차이쑹 제공

미국은 막다른 궁지에 몰렸던 차이 씨를 품에 안아줬다. 그는 미국에 입국할 때 국토안보부와 연방수사국(FBI) 관계자들로부터 “중국 경찰이 당신을 체포하려 국경을 넘어 추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제 미국에 정착한 지 1년이 돼가는 차이 씨는 망설임 끝에 이 사건을 언론에 폭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산당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지만, 자신과 주변인들이 피해를 입을까 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시위의 물결이 일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펑리파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직면할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고도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라며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중국의 개혁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고 말했다.

차이 씨는 그런 펑리파의 모습에서 용기를 얻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내줄 것을 희망했다.

* 이 기사는 리위안밍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