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갈림길에 선 9·19 남북군사합의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2023년 09월 27일 오후 11:00 업데이트: 2023년 09월 28일 오전 10:35

2023년 9월 19일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보수 정부 동안 안보와 경제가 후퇴했다”라면서 “보수 정부가 안보와 경제를 더 잘한다는 것은 조작된 신화일 뿐”이라고 했다. 그에 앞서 2017년 5월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에는 ‘20대 국정전략’과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안보와 외교와 관련해서 ‘국제협력을 주도하는 당당한 외교,’ ‘튼튼한 안보와 한미동맹 강화,’ ‘남북 간 화해협력과 한반도 비핵화’ 등을 공약했었다. 하지만, 이런 공약들은 허언(虛言)으로 끝났고, 안보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집권 동안 안보가 개선되었다는 문 전 대통령의 자화자찬에 동의할 사람은 거의 없다. 당연히, ‘9·19 남북군사합의’를 ‘평화의 진전’이라고 했던 문 정부의 자평에 대해서도 공감하기 어렵다. 북한은 남쪽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대화하는 동안에도 등 뒤에서 대한민국을 겨냥하는 무서운 무기들을 만드는 일을 멈춘 적이 없다. 따라서 북한이 평화공세를 펼치던 기간 동안 군사도발이 그 전보다 뜸해졌다는 일시적 현상을 이유로 안보가 개선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속은 썩어 들어가되 겉만 멀쩡한 과일을 ‘좋은 과일’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이는 국민의 환상과 무사안일을 불러일으키는 위험한 발언이다. 이후 2023년 1월 4일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2월 26일에 발생한 북한의 무인기 침범 사태와 관련하여 국방부 및 안보 기관들과 가진 회의에서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자행하면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지시는 위험한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지만, 문 전 대통령의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 발언은 윤 대통령의 경고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018년 9·19 군사합의는 제1조에서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인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라고 천명하고 서해 평화수역 설정, 휴전선 일대 비행금지구역 설정,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 상호 철거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합의는 한국군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들을 담아냈고, 그래서 많은 전문가와 예비역 군인들은 ‘남침대로(南侵大路)를 열어준 이적(利敵)성 문건’으로 우려했다. 그나마 북한은 준수하지도 않았다.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는 야멸치게 지속되었고 해안포 사격, 개성연락사무소 폭파, 무인기 도발, 해양수산부 공무원 살해 등 적대적 행위들이 이어졌다. 바야흐로 9·19 군사합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남침대로 열어준 이적성 합의

9·19 군사합의는 군비통제 원칙들을 위배한 것이자 공자(攻者)와 방자(防者)를 구분하지 않은 합의였으며, 한반도 군사 긴장의 원인인 북핵과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말하자면 원인과 처방이 일치하지 않는 괴문서였다. 군비통제란 군비경쟁 안정화를 통해 잠재적 적대국 간 전쟁 위험과 부담을 제거 또는 최소화함으로써 상호 안보를 증대시키는 노력을 말하며, 여기에는 운용적 군비통제, 구조적 군비통제, 합의 위반사항 제재 등이 있을 수 있다. 운용적 군비통제는 군사력 운용을 통제하여 충돌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고, 구조적 군비통제는 실제 병력과 장비의 규모를 통제하는 것으로 군비 해제(disarmament), 군비 축소(arms reduction), 군비 제한(arms limitation) 등의 개념을 포괄한다. 군비통제가 성공하려면 군사적 신뢰 구축과 검증 시스템이 필수다. 즉, 군사적 신뢰는 약속 준수를 확인할 수 있을 때 만들어지므로 철저한 상호 검증이 필수다. 하지만, 9·19 군사합의는 제5조 3항에서 “쌍방은 남북 모든 합의를 철저히 이행하며 이행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 평가해 가기로 했다”라고만 되어 있을 뿐 어떻게 점검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때문에 북한의 위반과 자의적 주장에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해에 설정된 평화수역도 문제투성이였다. 우선은 NLL 기준 북쪽으로 50km 그리고 남쪽으로 85km로 설정되어 ‘등거리·등면적’ 원칙마저 지켜지지 않은 평화수역이었다. 또한, 황해도에 배치된 북한군 4군단의 장사정포, 대함 미사일 등이 한국 수도권과 함정에 대한 주요 위협임에도 불구하고 군사합의는 4군단에 어떠한 제약도 가하지 않았고, 반대로 북방한계선과 인근 5개 섬에 배치된 한국 해군과 해병대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한미 연합 공군은 사격훈련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합의서는 한강·임진강 하구를 공동이용 수역으로 정했는데, 합의 후 곧바로 남북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수로 조사를 시행하는 것을 보면서 전문가들은 아연실색했다. 북한군 특수부대에게 서울로 들어오는 수로를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9·19 군사합의로 인하여 인구의 절반이 밀집한 수도권은 북한의 기습공격에 더욱 취약해졌다.

북 기습도발의 성공을 보장해준 비행금지구역

9·19군사합의는 고정익 항공기(군사분계선 기준 서부 20km, 동부 40km), 헬기(10km), 무인기(서부 10km, 동부 15km) 등에 대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다. 이로써 한국군은 수도권 북방 북한군의 동향을 감시하는데 제약받게 되었고 근접 정밀타격도 어려워졌다. 특히 서부전선에서는 최전방에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40~50km에 불과해 20km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북한군 도발 시 이를 탐지하고 대응하는 시간적·공간적 여유는 크게 줄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당시 문 정부는 남북 간 등거리 원칙을 준수한 것이므로 공정하다고 했다. 한국군은 북침을 상상할 수 없는 근대로서 항상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방자(防者)이고 북한군은 한국군의 동향을 파악할 필요조차 없는 공자(攻者)라는 사실을 대입해보면 공정했다는 주장이 얼마나 비논리적인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강도와 시민이 이웃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시민이 CCTV를 설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강도에게는 필요 없는 장비다. 그런데 시민과 강도가 함께 CCTV를 달지 않기로 한다면 공정한 합의인가? 지금까지 한국군의 우수한 정보·감시·정찰 능력은 북한군 재래전력의 현격한 양적 우위를 상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해왔지만, 9·19 군사합의로 한국군의 이런 이점은 심하게 축소되었다.

문 정부는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이 비무장지대에 있는 GP를 각각 11개씩 동수로 줄인 것에 대해서도 공정했다고 자평했지만, 북한군 GP의 숫자가 160여 개로 한국군의 세 배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대입하면 이 역시 궤변이 되고 만다. 이런 논리라면 남북이 등거리·등면적 원칙에 따라 군사력 배치를 뒤로 물리기로 합의해주자고 할 수도 있었다. 판문점에서 평양까지가 147km로 서울까지는 불과 52km인 점을 감안하면 이런 합의는 중대한 ‘안보 자해(自害)’임이 자명하지만, ‘평화를 향한 공정한 합의’라고 우겼을 수 있다.

정론에 입각한 안보정책과 대북정책을

이렇듯 대충만 훑어보더라도 9·19 군사합의는 동기에서부터 결과까지가 모두 부실한 합의였다. 즉, 문 정부는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면서 한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독소조항으로 가득 찬 ‘이적성 합의’에 서명한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문 정부 동안 ‘국방개혁’과 ‘군 인권’이라는 미명하에 한국군은 질량(質量) 면에서 약소화(弱小化)의 길을 걸었다. 간부들의 일반공무원화와 병사들의 유약화가 진행되었으며, 고위 간부들의 ‘정치권 줄서기’도 유행했다. 미국이 문 정부와의 ‘이념적 상응성’을 의심하면서 한미동맹은 휘청거렸고, 한미 연합연습 폐기·축소, 과도한 반일(反日) 캠페인 등으로 안보 고립이 심화하였다. 그 과정에서 9·19 군사합의는 남과 북의 정상들이 만나서 악수하는 ‘평화쇼’ 연출에는 기여했지만, 실제로는 대한민국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진보 정부하에서 안보가 더 좋았다”라는 평가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한국은 이제부터라도 정론(正論)에 입각한 안보정책과 대북정책을 견지해 나가야 한다. 최대의 정론은 ‘확고한 안보태세와 남북관계 개선의 병행’일 것이다. 즉, 북한을 설득하거나 북한과의 교류 협력을 통해 항구적 평화를 모색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하지만, 남북관계의 기복과 무관하게 안보태세는 확고하게 유지해야 한다. 북한은 약속을 지키는 정상 국가가 아니며 끊임없이 핵무력 고도화를 꾀하는 나라임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평화쇼를 위해 안보태세를 희생시키는 것은 정론에 입각한 정책이 아니며, 그런 정책을 잘한 정책이라고 자평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정론을 중시한다면, 북한이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 합의를 무시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서 무한정 9·19 군사합의를 껴안고 갈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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