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등급은 악마적”…담배 제조사가 테슬라보다 우수

나빈 아트라풀리
2023년 06월 26일 오후 8:49 업데이트: 2023년 06월 26일 오후 8:49

요즘 트렌드인 ESG(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는 “지속가능한 발전,”, “미래 세대를 위한 솔루션” 등 장밋빛 표현들과 묶여서 사용된다.

ESG 경영의 초점은 환경이나 사회에 실질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 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양성, 포괄성 등 진보적 의제와 관련 깊다. 이런 의제를 추구하고 실행하는 기업을 지지하고 밀어주며, 거부하는 기업을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전기자 제조사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CEO) 일론 머스크는 이달 중순 트위터를 통해 한 기사의 링크를 공유하며 “ESG가 악마인 이유(Why ESG is the devil)’라는 논평을 덧붙였다.

해당 기사는 미국의 인터넷 매체 워싱턴 프리비컨 기자 애런 시바리움이 작성한 것으로 글로벌 금융정보 서비스 업체인 S&P 글로벌의 ESG 평가를 다뤘다.

이에 따르면, 테슬라는 100점 만점 중 37점의 저조한 점수를 받았다. 반면, 말보로 담배를 제조하는 필립 모리스는 84점의 고득점을 받았다. 같은 담배회사인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는 88점을 받았다.

다른 두 담배회사인 임페리얼, 알트리아 그룹도 각각 42점으로 테슬라보다는 높았다.

기사에서는 “S&P 글로벌부터 런던증권거래소에 이르기까지 ESG 평가에서 담배 회사들이 테슬라를 압도하고 있다”며 “연간 800만 명 이상을 숨지게 하는 담배회사에 대한 투자가 전기차(EV)보다 더 윤리적인 투자로 간주되는 이유가 뭐냐”고 추궁했다.

S&P글로벌은 모건스탠리(MSCI), 서스테널리틱스, 무디스, 피치 등과 함께 대표적인 국제적 ESG 평가 기관이다. 기업의 지속가능성 평가(CSA) 등을 활용해 ESG 점수를 발표하고 있다.

이 점수는 기업 이사회의 성별 비율, 임직원을 상대로 한 포용성 교육 수행, 트랜스젠더와 동성애 등에 대한 대우,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 등에 따라 기업의 진정성을 보고 브랜드를 평가한다.

테슬라, 왜 담배회사보다 ESG 점수 낮았나

S&P 글로벌에 따르면, 테슬라는 환경에서 60점을 받았으나 사회적 책임에서 20점, 지배구조에서 34점을 받아 평균 37점에 그쳤다.

그러나 담배 제조사들은 다수의 사망과 관련된 것으로 지탄을 받으면서도, 다양성과 포괄성 등 진보적 이념을 적극적으로 추구해 ESG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하고 있다.

알트리아 그룹은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기업 지배구조 지침에 신규 이사 후보에 여성과 유색인종을 포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명시했으며, 2020년 6월에는 미국 흑인 인종차별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500만 달러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또한 동성애·성전환자 등(LGBT)의 직원에 대한 평등성 정도를 나타내는 ‘휴먼라이츠 캠페인 재단 2021년 기업평등지수’에서 100점을 획득했으며, 성전환자의 여성 스포츠 참여를 금지하는 아이다호주 법률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필립모리스와 임페리얼 역시 고용과 승진에서 양성평등 추진, 성평등 의식 향상 캠페인, 무의식적 편견 없애기 교육 등 기업 내 다양성·포용성 확대를 추진한 것으로 S&P 글로벌은 ESG 보고서에서 평가됐다.

반면, 테슬라는 다양성에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주주의 이익과 무관하고 회사 효율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작년 6월 테슬라는 사내 LGBT 커뮤니티 리더와 사내 다양성·포용성 확대를 추진하던 인사를 해고했고, 올해 초에는 노조 조직 움직임과 관련해 직원 30명 이상을 해고했다. 이것이 글로벌 ESG 평가기관의 나쁜 평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환경 오염 일으키는 ‘ESG 우등생’ 담배 산업

ESG 경영은 용어의 구성에서 보이듯 ‘환경’에 대한 기업의 기여를 가장 높게 평가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환경 오염을 크게 일으키는 담배산업이 S&P글로벌의 ESG 평가에서 80점대의 고득점을 기록한 것은 매우 눈길을 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작년 5월 담배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WHO는 매년 800만 명 이상, 6억 그루의 나무, 220억 t의 물, 8400만 t의 이산화탄소(CO₂), 2만 헥타르의 토지가 손실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담배는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제품 중 가장 많이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환경에 버려지는 품목이다. 담배에는 7천 종 이상의 유독한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어 버려지면 토양과 물 등 환경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WHO 건강증진 책임자인 뤼디거 크레치 박사는 “매년 약 4조5천억 개의 담배꽁초가 바다, 강, 길거리, 공원, 토양, 해변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배터리 생산을 위한 코발트 채굴 등을 고려하면 전기차가 환경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러나 미국의 보수 성향의 평론가들은 만약 테슬라가 ESG 평가 기준에 맞춰 기존의 생산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진보적 이념을 추구하면 ESG 점수가 급상승할 것이라며 ESG 평가가 이념적으로 좌편향됐다는 비판을 굽히지 않고 있다.

기업들의 ESG 경영 채택이 그 취지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대형 투자사들의 압박하에 이뤄지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모든 투자 결정 과정에서 환경보호와 성평등 등 ESG 요소를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SG 경영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사건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판매 1위 맥주였던 버드라이트는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와 홍보행사를 진행했다가 보수 진영의 불매운동을 당해 시장점유율이 급락하며 20년 만에 1위 자리를 내줬다.

대형 마트 체인인 타깃은 LGBT 진영에서 ‘LGBT 자긍심의 달’로 삼은 6월을 맞아 대대적인 동성애·성전환자 제품 마케팅을 펼치다가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 매장을 찾은 가족 단위 쇼핑객이 동성애 슬로건이 가득한 매장을 보고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는 이들 기업이 ESG 지침에 따라 다양성과 수용성 확대하려 했으나, 정작 고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