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국 브릭스…“영향력 막강” vs “G7 대항마론 부족”

김연진
2023년 08월 24일 오후 11:48 업데이트: 2023년 08월 25일 오전 10:02

브릭스, 사우디·이란·UAE  6개국 가입 승인

지난 22일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제15차 브릭스(BRICS)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외연 확장을 놓고 회원국들의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이란·아랍에미리트(UAE)·아르헨티나·이집트·에티오피아 등 6개국이 새 회원국으로 선정됐다.

올해 의장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각) 요하네스버그 샌튼 컨벤션센터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번 정상회의에서 5개 회원국은 브릭스 확장을 위한 원칙, 기준, 절차 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각국 정상들은 이를 토대로 장시간의 토론 끝에 6개 신규 회원국 가입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창설된 브릭스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경제 5개국 협의체다. 브릭스 이름은 각 나라 영문 이니셜을 따서 지었다. 2010년 합류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회원국 확대의 첫 번째 수혜국이기도 하다.

이번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는 회원국 확대 문제다. 이미 브릭스는 전 세계 인구의 약 42%, 전 세계 경제의 약 33%를 차지하고 있지만, 외연과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브릭스의 외연 확장에 적극적이다.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브릭스 회원국을 늘려 G7(7국)에 대항하는 정치·경제 협력체로 키우겠다는 의도를 드러내 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대학교 학술진흥센터의 선임 연구원인 대니 브래들로우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미국 주도의 서구 패권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브릭스가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인도와 브라질은 “사실상 반대” 의사를 내비치며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두 나라는 브릭스가 ‘반(反)서방 동맹’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한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새 회원국은 ‘민주주의 국가’여야 한다”며 신규 회원 가입 요건을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22일 SNS 계정에서 “브릭스는 G7이나 G20(20국)의 대항마가 아니며, 미국과 경쟁 체제를 구축하지도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브릭스 관계자는 “현재 인도는 미국의 동맹국이며, 중국과도 국경 분쟁 등 많은 문제가 얽혀 있다. 이에 인도가 브릭스의 외연 확장에 신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인도가 어느 편에 설지 결정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리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시내 풍경 | 연합뉴스

브릭스 확장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다.

브래들로우 교수는 “브릭스의 확장은 세계 무역과 경제에 상상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모든 분야에서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며, 세계 질서도 뒤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브릭스 고위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들은 개편된 브릭스가 세계 경제에 혁명을 일으키고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브릭스가 확장될 경우 이들 국가가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50%, 전 세계 가스 매장량의 약 60%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국적 경영컨설팅기업인 데잔 시라 앤 어소시에이츠의 경제학자 크리스 데본셔-엘리스는 “앞으로 브릭스가 외연을 확장하면 그 영향력은 실로 막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 “브릭스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치면 약 30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럽연합의 두 배에 육박하며, 미국의 경제 규모까지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브릭스 수석 관리인 아닐 수크랄은 “브릭스는 절대 반(反)서구적인 리그가 아니며,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브릭스 전문가인 콩고의 경제학자 패트릭 루쿠사는 “인도와 브라질의 신중한 태도가 브릭스의 신규 회원국 가입을 늦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인도는 점점 더 미국의 편에 서고 있다”며 “브라질은 신규 회원국을 받아들일수록 브릭스의 영향력이 약해질 것으로 판단해 외연 확장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루쿠사는 “브릭스의 금융협력체제인 신개발은행(NDB)에 더 많은 국가가 참여하고 부유한 개발도상국들이 돈을 쏟아붓기 시작하면, NDB는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과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네바 안보 정책 센터 고위 관계자는 “브릭스가 급격히 팽창한다 해도 더 강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탈(脫)달러라는 목표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 일관성 없고 합의 도출도 안 되는 모임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브릭스의 외연 확대와 관련해 “브릭스는 매우 다양한 국가로 구성돼 있고 중요한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며 “브릭스가 미국의 지정학적 라이벌이 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평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제관계협력부 날레디 판도르 장관은 에포크타임스에 “브릭스 외무장관들은 브릭스 확장과 관련해 회의를 거칠 것”이라며 “정상회의가 끝날 무렵 결정적인 성명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존하는 다자간 조직은 대부분 특권 국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며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때다. 우리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대런 테일러 기자가 이 기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