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에 걸친 활동…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바흐’ 가문

앤드루 벤슨 브라운 (Andrew Benson Brown)
2024년 03월 25일 오후 8:10 업데이트: 2024년 03월 25일 오후 9:22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는 작센 선제후국(選帝侯國·로마 제국 카를 4세에 의해 1356년 선제후 지위를 부여받고 성립된 국가)의 궁정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가였다. 그의 빛나는 재능과 음악적 천재성은 천부적이긴 하지만, 그의 세대에서만 빛난 것이 아니다.

겸손한 시작에서 전국적 명성까지

바흐 가문은 17~19세기 200여 년 동안 50여 명의 음악가를 배출했으며 7세대에 걸쳐 예술 활동을 펼쳤다. 그들은 부계 직업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에 따라 직업을 선택했다.

‘지터를 연주하는 필리스 허렐’(1762), 조슈아 레이놀즈 | 공개 도메인

요한 바흐가 나오기 200년 전, 그의 선조 파이트 바흐(Veit Bach / 16세기)가 있었다. 그는 루터교 박해를 피해 16세기에 헝가리에서 탈출했다. 독일 튀링겐 지방에 터를 잡은 그는 방앗간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지만, 현악기의 일종인 치터(Zither)를 연주하며 음악적 열정을 드러냈다.

파이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후손에게 전해져 많은 음악가를 탄생시켰다. 그의 세 아들은 각각 재능 있는 음악가로 성장했고, 특히 맏아들 요하네스 바흐(1580~1625)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재능을 적극적으로 후손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자필로 기록한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도다’의 악보 (1708년경)

요하네스의 맏아들 요한과 크리스토프, 하인리히는 독일 에르푸르트와 아른슈타트 지방에서 악사로 활동하며 널리 이름을 알렸다. 그의 동생 하인리히 또한 뛰어난 음악가로 그가 작곡한 칸타타(독창・중창・합창과 악기 반주가 동반되는 성악곡의 형식) 곡은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그들이 활동했던 17세기 초반 30년 전쟁이 발발해 독일의 문학과 예술작품 다수가 소실됐지만 음악은 종교 예배의식·행사에 많이 사용되면서 계속 번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힘입어 바흐 가문은 더욱 명성을 널리 알리며 세력을 굳건히 했다.

‘요한 암브로지우스 바흐의 초상’(1685), 다비드 헤르리시우스 | 공개 도메인

파이트의 3대손 크리스토프의 아들 중 한 명인 요한 암브로지우스(1645~1695)는 신성 로마 제국의 튀링엔 지방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다. 그의 막내아들이자 바흐 가문의 4대손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다.

국제적 명성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초상’(1748), 엘리아스 고틀롭 오스만 | 공개 도메인

요한 제바스티안(이하 요한)은 가문의 일원 중 최초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음악가다. 그의 선조들은 대부분 작곡에만 치중해 연주 실력이 비교적 미흡했지만, 그는 뛰어난 오르간 연주자로 먼저 이름을 알린 후 작곡가로 인정받았다. 요한은 열 살 무렵 양친을 여읜 후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 중이던 맏형 요한 크리스토프(1671~1721)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빛낸 요한은 바로크 음악의 선구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그가 남긴 곡 중 ‘관현악 모음곡 3번 라장조’는 ‘G선상의 아리아(Air on G)’로 편곡돼 지금까지도 널리 연주되고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의 후손

요한은 두 명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20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절반은 성인기 이전에 사망했다. 그러나 1750년 요한이 사망한 이후 그의 아들들 또한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했다. 그의 자식들은 유럽 전역으로 흩어져 각지에서 음악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초상’(1776), 토마스 게인즈버러 | 공개 도메인

요한의 아들 중 막내 요한 크리스티안(1735~1782)은 런던의 바흐라 불리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유행을 따르는 곡을 다수 작곡해 상업적으로도 많은 부를 얻었다. 특히 그는 18세기 빈 고전파를 대표하는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유년기 시절 스승으로도 활약했다.

사라져가는 재능

크리스티안과 그의 형제들의 아들들 또한 음악가로 활동했다. 그리고 그 후손인 바흐 7대손까지도 음악가로서 활동했으나, 뚜렷한 재능을 보이지 못한 채 가문의 쇠퇴를 맞이했다. 1871년, 바흐의 마지막 직계 후손이 숨을 거두며 영감의 횃불은 사그라들었다.

세계 최고의 음악가 가문

비록 쇠퇴했지만 바흐 가문은 세계 최고의 음악가 가문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들이 남긴 작품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앤드루 벤슨 브라운은 미국 미주리주에 거주하는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입니다. 그는 음유시인 부엉이 출판사의 편집자이자 미국 혁명에 관한 서사시인 ‘자유의 전설’의 저자입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