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모형제작’ 외길에 깃든 명장의 정성, ‘기흥성뮤지엄’

2021년 10월 15일
업데이트: 2021년 10월 15일

모형 제작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50여 년간 모형 제작 외길을 걸어온 명장이 있습니다. 

“잘 만들고 잘 그리는 애로 우리 어머니가 낳아주신 것 같아요.”

“어느 만큼 섬세하고 정확하느냐는 제작자의 생각에 달렸어요.” 

중국의 명문대 칭화대(淸華大)에서는 ‘동시통역 수업’이라는 파격적 조건을 내걸고 석좌교수로 영입하기까지 했던 한국 모형계의 선구자, 기흥성 명장을 만나봤습니다.

양평 남한강변에 자리한 기흥성뮤지엄은 기흥성 명장의 모형 작품 제작 50주년을 기념해 2016년 개관했습니다. 

그동안 기 명장이 제작한 모형 작품은 무려 6천 여점. 기 명장은 모형의 아름다운 가치를 관람객들과 모형을 공부하는 후배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기흥성 | 기흥성뮤지엄 관장 ] :

“후학들이 와서 연구하는 장소도 되고 또 미니어처라는 것이 예쁘게 만들어지니까 좋아하고 그래서 장소를 한번 만들어 볼까. 그런 취지에서 시작이 됐고..” 

건축 모형은 평면으로 된 설계를 입체화해 건축의 기능과 구조를 검토하는 데 사용됩니다. 또한 문화재 복원에도 쓰입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완성된 형태의 모습을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시대에 모형이 왜 필요할까요? 

기 명장은 “디자인 등에서 오는 문제점을 사전에 알아보고 체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양복을 가봉하는 것처럼 모형을 만들면서 설계해야 ‘좋은 설계’가 된다는 건데요.

[기흥성 | 기흥성뮤지엄 관장 ] :

“모형은 건축만 필요한 게 아니라 선박 또 항공 등 사물에 다 필요합니다. 모든 설계 디자인에서는 꼭 사전에 해보고 모형, 소위 모델 씨어리(model theory, 모형 이론)라고 해서 외국에서는 철저히 하니까 필수로 건축 디자인에서는 해야 돼요.”

“브릿지(다리) 같은 것은 무너지는 실험을 하죠. 구조 실험. 브리지 같은 것도 바람이 불면 아래로 떨어요. 그런 것을 다 풍동실험을 해서 모형을 통해서 연구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모형은) 다양하게 쓰이죠.”

 박물관에 전시된 신라 최대의 왕실 사찰 황룡사 9층 목탑은 기흥성 명장이 2년에 걸쳐 만든 한국의 단 한 점뿐인 고증 모형입니다. 그 정교함이 극치를 이룹니다.   

[현장음] “이 기와도 다 구웠거든. 이 색깔 내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데.. 페인트 칠한 게 아니에요. 자연스럽잖아. 칠한 게 아니고 구워서 만든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기흥성 | 기흥성뮤지엄 관장 ] :

박사들을 모아서 고증해서 설계하고 저 과정이 이루어졌으니까 굉장히 복잡하게 완료된 겁니다. 목재도 피나무. 오래 견딜 수 있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그런 목재라야지 아무 목재나 쓰면 안 돼요. 그래야 그 멋을 따라가죠.” 

25분의 1로 축소해 정교하게 제작한 국보 1호 숭례문. 원형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접착제를 쓰지 않고 요철을 일일이 맞춰 조립했습니다.

기 명장의 모형과의 인연은 1967년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에 입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기술용역업체입니다. 기 명장은 입사 첫해 김수근 건축가의 눈에 들었습니다. 당시 수석부사장이던 김수근 건축가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프로젝트 설계를 직접 보고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기흥성 | 기흥성뮤지엄 관장 ] :

“대통령께 보고할 때 이 도면을 가지고 하니까 대통령도 이해가 안 돼서 모형을 가지고 설명하니까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김수근) 선생님이 청와대 들어갔다 와서 ‘야! 기흥성 앞으로 모형을 본격적으로 해라. 그리고 그러지 말고 모형팀을 아예 설립하자.’ 그래서 회사에 7~8명 동원해 모형팀을 만들었어요. 그때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고”

기 명장은 김수근 선생의 전폭적인 신임 아래 1969년 신설된 모형제작팀 팀장을 맡아 대규모 국가 개발 프로젝트에 사용될 모형을 설계, 제작했습니다. 그때 기 명장의 나이는 31세.

[기흥성 | 기흥성뮤지엄 관장 ] :

“작업 순서는 그래요.스터디(Study)’ 모드라고 해서 조금 정교하고 괜찮은 모형을 적당히 만들어 보고, ‘아, 이 정도면 되지.’ 자신감을 찾고 스케치하고 익혀서 그다음에는 파이널 모델이라고 해서 진짜 설계의 마지막 모형. 촬영을 잘하면 진짜 빌딩 같이 느껴지고 그것이 살아 있는 건축에 대한 느낌을 다 볼 수 있어요. 그게 완벽하게 연구 과정이 끝나는 과정이야.”

“그렇게 되면 그다음부터 설계에 들어가면서 디테일하게 작업이 나눠지면서 본 설계로 들어가는 진입이 시작되는 거죠. 매우 필요한 거예요.”

기 명장은 74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만든 모형업체와 연구소를 맡아 운영하며 한국의 모형제작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기 명장이 생각하는 잘 만든 모형은 무엇일까요?

[기흥성 | 기흥성뮤지엄 관장 ] :

“모형에 필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그 확실한 자료 근거 자료가 필요하고 설계가 제대로 돼야 해요. 주먹구구식으로 만들면 안 돼요.”

“완벽한 설계가 이루어진 다음에 그 설계대로 공사를 하는 거예요.  쇠 덩어리만 안 들어가지 공사는 똑같아. 배도 똑같아. 항공기도 똑같고, 똑같은 설계가 들어가야 해. 외부 디자인도 그러고 또 성능에 맞도록 무게까지 달아가면서 해야 돼요. 무거우면 안 되고. 실제로 똑같은 원칙을 따져야 돼요.”

그래서 종류에 따라서 어느 만큼 섬세하고 정확하느냐는 제작자의 생각이 달렸어요.”

모형은 정확하게 ‘설계 의도’를 표현해야 한다는 기 명장. 명장의 작업에는 정성과 시간뿐 아니라 완벽함을 추구하는 고집이 담겨있습니다. 찬란한 시절을 빚어낸 작품들에는 현대 기술로 흉내 낼 수 없는 장인의 혼이 깃들어 있습니다. 

NTD뉴스였습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