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황호의 음식약식] 온순하고 굳센 ‘오리’

2013년 06월 15일 오후 1:53 업데이트: 2019년 06월 28일 오후 4:20

 

집오리를 키웠던 적이 있습니다. 뒤뚱뒤뚱 느리고 성격도 온순한데다, 닭처럼 뾰족한 부리와 발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약할 수 있는 힘찬 다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먹이를 먹을 때면 닭에게 치이고 심지어 염소에게도 밀려서 늘 뒷전에 서 있다가 남은 것을 먹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오리는 끈질깁니다. 전염병에도 쉬이 죽지 않았고 추운 겨울도 잘 났으며, 다른 가축이 갈 수 없는 물을 마음껏 떠다닐 수 있습니다. 논과 물가로 집을 옮겼더니 제 세상마냥 지내던 모습이 선합니다.

 

오리를 압(鴨)이라고 합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보면 오리 우는 소리가 ‘합’이어서 ‘압’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리의 효능은 생김새와도 관련이 큽니다. 오리는 물에서 사는 동물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 다리며, 물에 젖지 않는 깃털하며, 유선형 몸매가 그러합니다. 오리와 같이 물에 사는 동물은 수분 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효능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리는 부종을 가라앉히고, 소변을 잘 보게 하는 작용이 있습니다.

 

오리의 모양새와 성질은 음에 가깝습니다. 닭은 사납고 재빠르고 모양새가 양에 가깝습니다. 닭과 비교해 볼 때 오리 고기를 비롯한 오리의 효능은 몸의 음과 혈을 보충해 주는 작용이 강합니다.

 

사람은 처음 태어날 때 평생 쓸 정(精)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 정을 가진 채 호흡하고 음식을 먹음으로써 육신이 점점 자라고 활동을 하는 기반이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 정이 소모되고, 특히 음주와 잦은 성생활 등으로 더욱 소모가 빨라집니다. 연로해지면 기본적으로 몸의 근간이 되는 정이 부족해지고, 이를 다른 의미로는 음과 혈(血)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어르신들이 오리를 보신 차원에서 먹는 것은 충분히 지혜로운 일입니다. 한 가지 더 응용한다면 혈의 소모가 많은 여성에게도 좋습니다.

 

오리는 기름이 많습니다. 오리 고기를 구워보면 돼지고기 보다 더욱 많은 기름이 나옵니다. 하지만 돼지기름처럼 딱딱하게 굳지 않고 맑습니다. 그래서 소화가 잘 돼 오리 고기를 먹고 탈나는 사람이 드뭅니다.

 

오리는 성질이 따뜻한 편에 가깝고 소화도 잘돼,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도 좋고, 위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기능도 있습니다. 또 예부터 오리의 피와 알을 이용해 중풍 초기에 인사불성이 된 환자를 치료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또 오리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중풍 예방을 위해 복용하기도 했습니다.

 

오리가 여러 가축과 어울려서 지내는 것처럼 혈과 음이 허할 때는 혈과 음을 보하는 음식, 이를테면 전복 등과 함께 요리를 해서 먹습니다. 기가 허하고 위장이 냉할 때는 황기, 인삼 등 기를 보하는 것과 함께 먹었습니다.

 

오리로 국물을 낼 때는 뼈가 좋습니다. 최근에는 오리뼈로 국물을 내서 먹는 사람이 늘면서 인터넷 쇼핑몰에서 오리뼈만 따로 팔기도 합니다. 오리는 고기와 뼈 모두 기름이 우러나도 느끼하지 않고 맑아서 국물용으로 제격입니다. 오래 끓여서 모든 것을 이끌어 낸 국물 요리는 소화와 흡수에 유리하기 때문에 좋습니다. 특히 오리뼈는 오리의 음을 보하는 작용이 가장 강하면서도 뼈의 특성상 국물맛이 시원해집니다.

 

삼계탕은 닭과 인삼 등 양기가 강한 음식이 주재료여서 맛이며 효능이 균형이 잡혔다기 보다는 한쪽을 치우친 감이 있습니다. 조류는 기본적으로 양기를 가진 음식으로 보기 때문에 주로 소음인과 몸이 찬 태음인 등 음인에게 권하는데, 닭은 양기가 아주 강한 음식으로 양인에게는 해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리는 양기를 지니면서도 음기가 강한 성질을 지니고 있기에 남녀노소 두루 먹기에 부담이 없다 하겠습니다.

 

 

 

 

 

 

 

 

 

 

 

 

 

 

 

 

 

 

 

 

 

 

 

 

 

 

 

 

 

 

 

 

 

 

 

 

 

 

 

 

 

 

 

 

 

 

 

 

 

 

 

 

 

 

 

 

 

 

 

 

글/ 한의사

 

경희대 한의학과 졸
대한한방신경정신과학회
現 강남경희한의원 원장
저서 ‘채소스프로 시작하는 아침불끈대혁명’

김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