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황호의 飮食藥食] 오곡 중에 으뜸 ‘밀’

2013년 12월 17일 오후 9:01 업데이트: 2019년 06월 28일 오후 4:20

밀이 오곡 중에 으뜸이라고 한다면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밀처럼 오해를 많이 사는 곡물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빵, 국수, 라면의 재료로서 늘 접하는 인기 식품입니다만, 밀가루는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 또한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밀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대부분이 국내산이 아닌 수입산이고, 수입 과정에서 인체에 그다지 이롭지 않은 가공과정과 첨가 물질이 더해지면서 생긴 오해입니다.

밀 자체는 아주 우수한 음식이자 약재입니다. 최근 들어 밀 재배 농가도 늘고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우리밀이 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의보감에서 밀을 설명하기를, 가을에 심어 겨울에 자라고 봄에 이삭이 팬 다음 여름에 익기 때문에 사시사철의 기운을 고르게 갖고 있다. 그러므로 오곡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다.

기후가 따뜻한 곳에서는 봄에 심었다가 여름에 걷기도 하는데 이것은 기를 부족하게 받아 독이 있기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밀가루가 가을에 심어 여름에 거두는 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부분도 점검이 필요하다 싶습니다.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곡물 약재의 종류는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식탁에서 먹는 것과는 유통 경로가 다르고 별도로 관리된다는 점만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밀, 보리, 찹쌀, 멥쌀, 메밀, 옥수수를 비롯해 쌀과 보리의 밑둥도 약으로 씁니다. 여기에 누룩, 붉은 발효 보리 등 발효 과정을 거쳐서 별도로 쓰는 곡물도 있습니다. 어림잡아 10여 가지가 넘습니다.

심장을 진정시키는 천연 수면제

밀은 제가 가장 많이 쓰는 곡물 약재이며 소맥(小麥)이라고 합니다다.

약재로 쓸 때는 보통 소맥을 쓰기도 하고 밀의 미성숙한 열매로 물에 뜨는 것을 쓰기도 합니다. 이를 부소맥(浮小麥)이라 합니다.

밀은 좋은 수면제입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미열이 나면서 안정이 안되는 것을 번열(煩熱)이라고 하는데 소맥이 번열을 잡아줍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에서는 소맥이 심장의 기를 길러주므로 심장의 병에는 마땅히 소맥을 써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임상에서도 소맥은 가슴 두근거림, 화병, 불면증, 공황장애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합니다.

심장의 기를 길러준다는 부분처럼 소맥을 활용한 처방을 장기간 복용하면, 긴장 상황에서 가슴 두근거림이 덜해지고 기운이 나며 체력도 좋아집니다.

밀의 성질은 약간 찬 편이고 맛으로는 단맛에 속합니다. 그래서 미세한 갈증도 잡아줍니다. 세부적으로는 껍질이 더 성질이 차서 열을 식혀주고 잠을 오게 하는 작용이 좀 더 강하고, 알맹이는 껍질보다 따뜻합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로 지친 현대인이 밀을 먹을 때는 가급적 껍질을 많이 벗기지 않은 것을 차로 끓여서 먹으면 좋습니다.

밀은 태음인에게 가장 좋습니다. 실제로 임상에서도 태음인에게 밀을 잘 가려서 쓰면 탁월한 효과를 보입니다.
다만 태음인이라 하더라도 변비가 심하고 갈증이 심한 경우에는 밀을 쓰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