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룬궁 反박해 13년, 진상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지성
2012년 07월 20일 오전 11:54 업데이트: 2020년 04월 24일 오후 2:50

13년은 기나긴 역사에서 한순간에 불과하지만, 인생에서는 긴 시간이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당국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파룬궁 수련자들은 비폭력 평화적 운동으로 탄압에 반대해왔다. 이 기간 동안 파룬궁 수련자들은 무수한 생명을 잃고 명예를 실추 당했지만 그들이 지불한 대가는 평화와 선량함을 더욱 부각시켰다. 이는 중국과 세계에 길이 남을 귀중한 정신적 자산이기도 하다. 지난 13년간 파룬궁 수련자들의 반박해 활동을 조명해본다.

眞·善·忍 지도원리, 수련자들 모습 역사에 기록될 것
중공, 국가재정 1/4 써 잔혹히 탄압했지만 결국 실패

2001년 ‘사하로프 사상의 자유상’, 미국 프리덤하우스에서 주는 ‘종교의 자유상’을 수상하는 등 전 세계 각지의 정부와 단체로부터 3000여 회 이상의 감사패와 표창장.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여러 나라의 도시와 주정부로부터 적극적인 지지와 존경. 전 세계 114개국에 전해져 1억 명 이상이 수련. 그런데 유독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만 13년째 잔혹한 박해를 받고 있는 수련단체. 바로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설명이다.

파룬궁은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불리며,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여러 나라와 주정부에서 ‘파룬따파의 날’ ‘파룬따파의 주(週)’ ‘리훙쯔(李洪志) 대사의 날’ 등을 선포한 세계 최고·최대의 수련법이다.

2000년 8월 21일, 캐나다 에이드리어 클락슨 총독은 ‘캐나다 파룬따파의 주’를 축하하는 서신을 보내 “파룬궁 수련자들은 수련을 통해 내심의 평화에 도달하고 우주특성에 동화함으로써 타인을 위하는 선량한 마음을 지녔으며, 보다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사회를 창조하는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특히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 선생은 사람들의 건강과 도덕성 회복 및 세계인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부터 4년 연속 ‘노벨평화상’ 후보로 선정된 바 있다.

지난 2001년, 오스트리아에서 카톨릭교회 교수인 프란츠 스스만 박사는 파룬궁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늘날 파룬궁은 인류의 가장 큰 희망입니다. 왜냐하면 그 가르침은 삶과 모든 것들의 조화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류가 파룬궁을 하나의 모델로 하여 행동할 수 있다면 수많은 종교나 국가는 그 공통의 뿌리로 돌아갈 수 있으며, 여기서 우리는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파룬궁 수련자를 만나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파룬궁은 인류의 큰 희망”

파룬궁은 1992년 5월 중국에서 최초로 전수된 이후 중국에서는 이미 최고의 기공 공파로 인정을 받았으며, 1995년 3월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전 세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후 수련서인 전법륜(轉法輪)과 기타 관련 서적은 이미 전 세계 약 40종의 언어로 번역 출판됐다.

하지만 파룬궁이 유래된 중국에서만 유독 이 수련이 탄압받고 있다. 이는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라는 체제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초기 공산주의가 발전한 과정은 정치선전과 이념전쟁을 통한 ‘계급투쟁’이었다. 이러한 투쟁을 위해서는 정치적인 힘을 모을 ‘구실’을 제공하는 정치적 ‘불안’이 존재해야 한다.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은 정권을 잡은 이래 우파투쟁, 대약진운동, 문화혁명, 톈안먼 사태 등을 통해 크고 작은 불안요소를 조장했다. 그리고 이를 투쟁의 구실로 삼아 대대적인 탄압을 자행했다. 매번의 투쟁운동은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으며, 이를 통해 정권을 유지했다.

또한, 중공은 신에 대한 믿음이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전통적 가치관과 모든 믿음(신앙)을 말살하는 정책을 폈다. 중공은 집권 이래 문화혁명 같은 다양한 ‘극좌사회주의운동’을 일으켜 문화·종교 유적지를 파괴하는 한편,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우고, 사람과 싸운다’는 투쟁철학을 중국인들에게 강요했다.

중국이 공산화된 1949년 이후 중공의 투쟁운동에 말려들어 사상(死傷)에 이른 중국인들의 숫자는 그 이전 30년간의 세계대전 시기 사상자를 훨씬 능가했다. 정권교체기가 아닌 정권이 유지되는 평화시기임에도 대학살에 가까운 탄압이 중국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다 중공이 경제개혁을 적극 추진하던 1992년 이후, 중공의 관심은 정치선전과 이념전쟁에서 경제, 기술적인 발전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안정되고 평화로운 중국은 권력자들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켰다. 따라서 권력자들은 불안을 일으킬만한 기회를 노렸다.

1999년 7월 20일, 중국 전역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대규모 체포와 가택수색이 시작됐다. 중국 최대의 기공 공파였던 파룬궁에 대해 당시 중공 총서기였던 장쩌민이 ‘중국에서 파룬궁을 소멸하라’는 지령을 내린 것이다. 대대적인 탄압으로 중국사회는 급속히 불안해졌다. 문화혁명 때와 같은 마녀사냥이 이번엔 파룬궁을 겨냥했다. 양심을 속이고 권력자의 편에 서지 않으면 누구도 생명을 보장받지 못했다.

장쩌민, “파룬궁 소멸하라” 지시

수만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탄압 소식을 듣고 국무원 신방사무실에 가서 청원하다 체포됐다. 체포된 수련자들은 베이징시 풍대 체육관과 석경 산구 체육관 등 규모가 큰 체육관에 감금됐다. 장쩌민은 중국 공산당이 통제할 수 있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조직과 역량을 파룬궁 탄압에 집중시켰다.

신문과 잡지, 라디오 방송국과 모든 텔레비전 채널은 24시간 반복적으로 파룬궁을 비방하고 모독하는 문장과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베이징 중앙TV의 경우 하루 중 7시간을 파룬궁 비방 프로그램으로 편성했다. 전국 각지의 경찰은 수련자들을 각 연공 장소로부터 내쫓았으며 순순히 따르지 않은 사람들은 경찰차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중국어로 청원을 의미하는 ‘상방(上訪)’은 ‘신방(信訪)’이라고도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는 중국 공민이 국가 기관이나 국가 공무원을 고소, 제소하거나 제보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많은 파룬궁 수련자들이 베이징에 ‘상방’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정치적인 일에 관심이 없고, 오직 진(眞), 선(善), 인(忍)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려는 수련법을 국가가 왜 금지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탄압이 시작되자 해외에서도 각 국 정부와 대사관에 탄압의 부당함을 알리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미국, 캐나다, 유럽, 이스라엘, 싱가폴, 호주, 대만과 중국대륙에서 온 파룬궁 수련자들은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각국 대사관과 국제기구, 미 정부와 의원들을 상대로 도의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모든 청원은 소용없었다. 중공은 경제적 문제를 내세우며 각 나라들이 파룬궁 박해에 동조하게 했고, 중국에서는 국가 예산의 1/4이란 거액의 재정을 집행해 ‘사회질서유지’라는 이름으로 파룬궁 수련자들을 잔혹하게 박해했다. 이는 비폭력 수련단체에 대해 군대에 준하는 무력을 사용하여 권력자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마오쩌둥식 정치운동이었다. 장쩌민은 파룬궁 탄압을 이용해 자신의 기득권을 확고히 했으며, 탄압을 반대한 다수의 고위관리들을 굴복 시키는데 성공했다.

또한, 그들은 박해를 통해 중국 전역에 ‘공포’를 조장했으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모든 증거를 조작했다. 심지어 파룬궁이 해외 반 중국 단체와 연결돼 있다는 거짓 증거를 만들어 언론에 흘림으로써 국가적 위기를 조장,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대중을 끌어들였다.

지금도 박해는 ‘진행 중’

1999년 7월 20일, 그날로부터 벌써 13년이 흘렀다. 하지만 파룬궁은 여전히 박해를 받고 있다. 거짓선전과 잔인한 폭력, 나아가 반인류적 범죄를 통해 그동안 3500만 명 이상이 강제조사를 받았고, 그중 21만 명이 넘는 수련자들이 재판 없이 강제수용소(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돼 고문, 박해를 당했다. 2011년 까지 최소한 3429명 이상이 고문 중 사망했으며, 생체장기적출 등으로 희생된 수련자 수는 8만 7000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파룬궁 탄압 과정에서 가장 추악하고 사악한 박해였던 ‘생체장기적출’은 UN인권위 등 국제인권단체들의 거센 비난을 받아왔다. 생체장기적출은 2006년 캐나다 전 아태담당 국무장관 데이비드 킬구어와 국제인권변호사 데이비드 메이터스의 수개월 간의 조사 끝에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이러한 엄중한 박해에도 파룬궁 수련자들은 여전히 진·선·인을 지도원리로 삼아 평화적인 반(反)박해 활동을 해오고 있다. 또한 오랜 중국 전통문화가 지닌 핵심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진·선·인 사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중국 전통문화의 핵심인 유(儒), 불(佛), 도(道) 사상을 이해하고, 도덕과 인성 그리고 전통적 가치를 회복하게 했다.

前 헝가리 미국대사 마크 팔머는 박해 속에서도 인내하며, 선함을 잃지 않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파룬궁 수련자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들의 운동, 파룬궁이 21세기 초 우리의 시대를 정의할 운동이라고 믿는다. 나는 사람들이 장래에 다음과 같이 말할 것으로 생각한다. 아, 그래 간디가 있었고, 미국 시민권 운동이 있었고, 폴란드 노조운동이 있었고 그리고 파룬궁이 있었다. 중국에서 유래한 시대를 정의한 운동이었고, 결국 성공했다.”

대표적인 파룬궁 박해 사건
◎ 4.25 평화대청원
‘4.25 평화대청원’은 수련자들이 중난하이(中南海, 중공 최고 지도부 거주지)에 있는 중앙정부에 가서 불법체포된 수련자들을 석방하라고 청원한 사건으로 중국사회에서는 유례없이 평화로운 이성의 힘을 보여줬다. 당시 그들은 구호나 표어 한 번 외치지 않았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중공은 방송을 통해 이를 심하게 왜곡시켜 중국지도자 관저에 공격을 가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게 해 탄압의 빌미를 만들었다.
◎ 1400사례
‘1400 사례’는 1992년부터 1999년까지 7년간 파룬궁 수련자 1400명이 자살?사망했다는 중공의 주장이다. 하지만 사망자로 주장한 사람들 상당수가 수련자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으며, 오히려 고문과정에서 사망한 수련자들을 이 사례에 포함시키는 등 거짓선전임이 밝혀졌다.
◎ 톈안먼분신자살조작 사건
‘톈안먼 분신자살 사건’은 2001년 당시 중앙정법위 서기인 뤄간이 파룬궁 수련자가 톈안먼에서 분신자살하는 모습을 연출하라고 지시해 조작한 사건이다. 하지만 그해 8월, 국제교육발전기구(IED)는 UN 회의석상에서 이 연출된 영상물이 중공당국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발표함으로써 중공은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 생체장기적출
2006년 7월 캐나다 인권변호사와 검사출신 전직 의회의원이 1999년을 기점으로 중국 내 장기이식 건수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점에 주목해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가족 간 자발적 기증이나 뇌사 기증은 2% 정도로 2006년까지 별 변화가 없었으나 이식 건수는 1999년 이후 급격히 상승한 것이다. 일례로 상하이자오퉁(交通)대학병원의 경우 2001년 7건이던 간이식 건수가 2005년 2,168건(누적통계)으로 상승했다. 톈진 둥팡(東方)장기이식센터도 간 이식 건수가 1998년 9건에서 2005년 2248건(누적통계)으로 급상승했다. 보고서는 장기적출에 가담했던 의사와 그 가족들의 증언 그리고 각종 증거를 수집해 중공이 살아있는 파룬궁 수련자의 장기를 적출하여 매매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