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시위 해산했는데…트뤼도 총리, 비상사태·긴급명령권 유지

한동훈
2022년 02월 22일 오후 6:02 업데이트: 2022년 02월 22일 오후 6:02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비상사태와 그에 따른 긴급명령권을 계속 유지한다고 밝혔다. 이미 시위대가 해산한 상황에서 과도한 권력 집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트뤼도 총리는 21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며칠간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총리는 “트럭 운전사들이 다시 집결할 수 있다는 징후가 보인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앞서 14일 트뤼도 총리는 1988년 <비상사태법>이 제정된 이후 34년 만에 처음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 법의 전신은 내전 등 상황에서 발동된 <전시특별법>이다. 트럭 운전사들의 도로 봉쇄 시위를 진압하려 이 법을 발동한 조치에 대해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캐나다는 지난달 말 시작된 트럭 운전사 시위로 수도 오타와 의회 청사 부근과 미국-캐나다 간 주요 교역로인 앰배서더 브릿지 등이 봉쇄되면서 불편이 야기됐다. 시위가 2주가 넘어가자, 트뤼도 총리는 경제적 손실을 더 방치할 수 없다며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지난 18일 시작된 경찰의 해산 작전 과정에서 시위대 191명이 체포됐고 차량 79대가 견인됐다. 389명이 난동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또한 트뤼도 총리가 서명한 <자금세탁(방지)법> 확대 적용 긴급명령으로 시위대를 지원한 은행계좌 200여개가 동결됐다.

경찰이 2022년 2월 20일 오타와 시내 중심가에서 시위 트럭 견인을 위해 검사하고있다. (The Canadian Press/Adrian Wyld)

시위 주최자들은 19일 오타와 시내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잔혹한 행위를 견디면서 얻을 것이 없다”며 자진 해산을 선언했다. 주최 측은 운전사들이 경적을 울리는 등 불편을 끼치기는 했지만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적 자유에 따라 권한을 평화롭게 행사했으며 불법 행위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주최 측은 경찰 진압으로 다치거나 체포된 이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트뤼도 총리의 태도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는 시위대가 불법적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외국 자금이 이를 지원했다고 주장하면서 비상사태 선포로 이를 막아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몇 주 동안 전국에서 폭력적인 극단주의 활동이 증가했다는 증거가 나왔다. 질서회복을 위해 더 많은 수단이 필요하다”며 비상사태와 긴급명령권 유지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연방정부의 비상사태 선포로 주 정부와 이하 지방자치단체에도 제한된 긴급명령권이 부여됐다. 짐 왓슨 오타와 시장은 “압수한 시위 차량을 판매해 시위 기간 발생한 손실을 충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9일 CBC방송에 “총리의 비상사태법 발동으로 오타와 시당국은 압수 차량을 처분할 권한이 생겼다”며 “차량들이 팔리는 것을 보고 싶다. 우리 사회에 좌절과 불안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캐나다 트럭시위는 트뤼도 총리의 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 조치 확대로 촉발됐다. 국경을 오가는 트럭 운전사들은 지난달 중순부터 백신 접종 증빙서 제시가 요구됐다. 백신을 맞지 않은 운전사들은 미국에서 들어오면 격리조치를 받아야 한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운전사들은 생계가 막히게 되자 항의 표시로 전국에서 출발, 지난달 말 오타와의 의회 건물 주변 등에 집결해 항의하며 총리와의 대화를 요구했다. 트럭 운전사들이 수시로 경적을 울리며 소음이 발생했지만 시위 현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트뤼도 총리가 대화를 거부하며 시간이 길어지는 사이, 다양한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시위는 정부를 향해 더 다양한 사안에 대한 관심과 개선을 요구하는 모임으로 전환됐다.

캐나다 의회에서는 비상사태 선포와 장기화에 따라 여야 의원들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총리의 친정인 자유당은 비상사태를 지지하고 있지만, 보수당과 블랙퀘벡당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좌파 성향인 신민주당(NDP)도 선뜻 지지를 표명해주지 않고 있다.

트뤼도 총리는 비상사태를 선포할 당시 “현지 경찰의 판단에 따라 필요하면 (비상권한을) 사용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며 현지 상황에 맞춰 필요한 만큼 대응하는 “비례적 조치”와 제한적 사용을 약속한 바 있다.

보수당에서는 퀘백 등 일부 주에서는 주 정부가 비상사태에 찬성하지 않는데도 총리가 전국을 대상으로 비상사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비례적 조치”라는 약속에 어긋난다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