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워싱턴 선언’ 이후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2023년 06월 23일 오후 1:15 업데이트: 2023년 06월 23일 오후 1:15

4월 26일 한미 정상이 발표한 ‘워싱턴 선언’은 동맹 업그레이드, 북핵 위협에 대처하는 확대억제 강화, 한국의 핵 야망 제어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선언에 대한 비판은 주로 두 번째와 세 번째 부분에 집중되고 있다. 두 번째 부분에 대한 비판은 확대억제 강화의 불충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세 번째 부분과 관련해서는 한국 핵무장 가능성을 봉쇄하는 내용과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차단하는 내용이 비판의 과녁이 되고 있다. 이런 비판들은 최근의 각종 칼럼이나 학술행사를 통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전술핵 재배치가 배제된 워싱턴 선언은 한국의 불안감 해소에는 매우 부족한 어중간한 선언(half-way declaration)”(John Bolton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미국이 독자 핵보유라는 서울의 외도(dalliance)를 영리하게 제어한 것’(미 기업연구원 Zack Cooper 연구원), ‘미국이 여전히 한국을 지지하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성이 있으나 군사적 가치는 없는 선언’(Middlebury 연구소 Geoffrey Lewis 교수), ‘성과가 없지 않지만 과대 포장된 선언’(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원목 교수), ‘속이 텅 빈 예쁜 상자’(국민대 Andrei Lankov 교수), ‘빈껍데기 합의(nothingberger)’ 등 대부분이 확대억제 강화의 불충분성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세 번째 부분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제7차 핵실험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국가 생존을 위해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할 권리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 ‘미국이 북핵 억제보다 한국 핵무장 저지에 더 큰 비중을 둔 선언’ 등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다급한 처지에 있는 한국이 워싱턴 선언의 성과를 외면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은 전혀 현명하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선언을 ‘현 상황에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어낸 합리적인 결과’(CNAS 김두연 선임연구원, 대전대 이경석 교수)로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사실이 그렇다. 이번 선언이 1953년 한국전쟁 정전 후 참전국들이 전쟁 재발 시 재참전을 다짐했던 ‘제1차 워싱턴 선언’에 이어 한미 정상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문제를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다룬 ‘제2의 워싱턴 선언’으로서 한미동맹을 재래 군사동맹에서 핵공조 동맹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음을 부인할 수 없다. 확대억제 강화 부분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만만치 않은 성과도 거둔 ‘반 잔의 물’이었다. 지난 40년 동안 자국 영토 이외에 핵추진전략잠수함(SSBN)을 기항시킨 적이 없는 미국이 이 잠수함의 한국 기항을 약속한 것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한국의 독자 핵무장이나 핵잠 건조는 동맹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확대억제 강화’라는 ‘발등의 불’과는 분리하여 꾸준한 동맹외교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때문에 현재로는 기왕에 합의된 워싱턴 선언의 틀 내에서 북한의 핵위협을 봉쇄하여 국민을 ‘핵 악몽’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진력해야 한다.

구체화·제도화가 확대억제 강화의 핵심

확대억제의 신뢰성을 제고하는 방안으로 워싱턴 선언은 전술한 SSBN의 한국 기항 등을 통한 미 전략자산의 가시성 증대, 정보공유·기획·실행 등 전반에서 한미가 함께하는 확장억제 체계의 지향, 핵협의그룹(NCG)의 신설 등을 담아냈는데, 모두가 한국의 핵불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조치들이다. 그럼에도 ‘충분한 억제’를 위해서는 양국이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만들어 제도화하고 공개할 것은 공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SSBN의 한국 기항 시 이전 및 이후 항적을 공개해서는 안 되지만 기항 사실은 공개해야 하며, 핵탑재를 부인하기보다는 사용 가능성이 높은 전술핵 탑재 사실을 흘려야 한다. 핵무기가 아닌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154기를 운용하는 오하이오급 핵추진전략잠수함(SSGN)의 최근 부산 기항은 미국의 선언 이행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가시성과 구체성의 과시를 통해 확대억제 신뢰성을 높이는 조치였다. 북한의 핵도발을 양상별·단계별·시나리오별로 나누어 어떤 경우에 어떤 재래 또는 핵대응이 수반됨을 실기동 훈련이나 도상훈련을 통해 구체화·제도화하여 북한에게 알리는 것은 진실로 중요하다. 억제란 ‘인식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구체적인 북핵 대응 작전계획을 발전시켜 연합작계의 일부로 삼아야 한다”는 박정이 전 1군 사령관의 지적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핵협의그룹(NCG)은 무엇을 담아내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는 ‘빈그릇’이어서, 짚어야 하는 질문들이 많다. 기존의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억제전략위원회(DSC)·미사일대응정책협의그룹(CMWG) 등과 어떻게 업무를 연계·분장할 것인가, 일본을 포함하는 3자 기구로 갈 것인가 아니면 쿼드(QUAD), 오커스(AUKUS), 나토(NATO) 등과 결합된 다자협력체로 갈 것인가, 순수 정부기구(track 1.0)로 갈 것인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 기구(track 1.5)로 갈 것인가 등 물어야 할 질문들은 다양하다. 그래서 미 외교협회(CFR) 한반도 정책 실장 스나이더(Scott Snyder) 박사는 “핵협의그룹은 확대억제 강화를 위한 최종 결론(settlement)이 아니라 출발점(beginning)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핵균형’을 향한 동맹외교 과제

요컨대 정부와 군은 우선 워싱턴 선언이 마련해준 협력공간을 ‘구체성과 제도화’라는 내실로 채워나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 확대억제의 구체화·제도화는 ‘충분한 억제’의 핵심일 뿐 아니라 한미 양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변동과 무관하게 확대억제의 지속력을 담보하는 데에도 매우 긴요하다. 한국에 좌파 정부가 등장하든 또는 미국에 신고립주의 정부가 등장하든 확대억제는 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출발점은 한국 정부와 군이 동맹으로부터 얻어내야 하는 바들을 정확하게 식별하고 NCG 등을 통해 이를 관철해나가는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한국이 당장 핵무장에 나설 수 없는 현 상황에서 확대억제의 ‘충분한 강화’는 ‘동맹의 핵 역량에 의존하는 핵균형(alliance-reliant nuclear parity)’일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미 전술핵의 상시배치를 통해 동맹차원에서의 핵대응 의지(will), 사용가능성(useability), 가시성(visibility) 등을 최대화하는 것이 결정적이다. 즉, 한국의 핵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하다는 존 볼턴의 지적은 결코 틀리지 않다. 독자 핵무장을 통한 핵균형(nuclear self-reliance)은 동맹의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지만 언젠가는 가게 될 길이다. 이는 워싱턴 선언 이후에도 전술핵 상시 배치, 한국의 핵잠 건조, 독자 핵개발에 대비한 잠재력 배양 등이 윤석열 정부의 동맹외교 과제로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끝으로, ‘미국판 3불(不)’ 약속이 아쉬움을 남겼음도 유의해야 한다. 선언에 한국핵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의도로 보이는 한국의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준수’ 약속, 사실상 한국의 핵잠 건조를 저지하는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준수’ 약속, 백악관 발표를 통해 밝힌 ‘전술핵 재배치 배제’ 등은 미국이 북한과 중국에게 어떤 경우에도 한국의 핵무장과 핵잠 건조를 막아주고 전술핵도 재배치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합의가 불가피했더라도 공개적으로는 침묵하거나 오히려 애매하게나마 가능성을 흘림으로써 북핵을 견제하고 중국의 북한 비핵화 노력을 끌어내는 외교 지렛대가 될 수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동맹외교에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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