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제조사들, 美 환경보호청 전기차 추진책 “급진적” 비판

한동훈
2023년 07월 17일 오후 7:33 업데이트: 2023년 07월 17일 오후 7:33

일본 자동차 제조사 토요타와 다국적 자동차 제조사 스텔란티스가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자동차 전동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두 회사는 미 환경보호청의 차량 배기가스 오염물질 저감 추진 계획에 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며 희토류 채굴량 대폭 증가 등 많은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지난 4월 미 환경보호청은 자동차 제조사에 오는 2032년까지 신차의 배터리 전기차(BEV·EV) 비중을 경차 67%, 중형차 46%까지 높여야 한다는 오염물질 저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미 환경보호청은 또 버스, 화물트럭의 배터리 전기차 비중도 각각 50%, 25~35%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화물트럭은 운행거리에 따라 비율이 조절된다.

두 회사는 이와 관련 “바이든 정부의 목표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며 하이브리드 차량(HV)의 잠재적 이점을 무시하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배터리만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전기차와 달리 전기모터와 내연기관을 함께 사용한다.

토요타는 “이렇게 많은 전기차 제조에 필요한 핵심원료를 생산하려면 전 세계에 수백 개의 신규 광산이 필요하다”며 해당 핵심원료가 전량 외국에서 생산돼 일본 기업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 환경보호청 정책이) 환경단체의 불명확한 데이터와 분석을 바탕으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PHEV)를 차별한다”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생산량이 제한돼 있는 광물을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해 온실가스 감소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배터리전기차와 비교해 경제성이 높고 충전 인프라도 덜 필요하다”며 미국 정부의 자동차 전동화 가속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수십 년간은 내연기관을 탑재한 차량이 미국의 도로를 여전히 달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아트-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와 프랑스 PSA 그룹 합병으로 세워진 다국적 자동차 제조사 스텔란티스는 “2030년까지 미국 신규 출시 경차의 40~50%를 전동화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 목표를 지지한다”면서도 미 환경보호청의 계획은 지나치다고 밝혔다.

스텔란티스는 “환경보호청이 밝힌 계획은 2032년까지 신규 출시 경차의 66%를 전동화하겠다는 캘리포니아의 배터리 전기차 의무화 정책보다 더 목표치가 높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환경보호청은 단일 전기차 기술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고,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이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업계와 바이든 정부가 공동으로 합의한 내용을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스텔란티스는 전기차 비중 확대에 따른 충전 인프라 문제도 지적했다. ‘자동차혁신연합(AAI)’ 보고서를 인용해 “2030년까지 최대 4천만 대의 배터리 전기차가 도로를 주행할 가능성이 있으며, 580만 개 이상의 공공 충전기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자동차혁신연합은 현재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판매하는 자동차 업체 중 테슬라를 제외한 모든 업체가 회원사로 가입한 자동차 관련 최대 조직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 전역에 설치된 공공 충전기는 20만 개로, 향후 수요량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스텔란티스는 “목표치를 35% 정도로만 낮추면 배터리 전기차는 2600만 대, 공공 충전기 요구량은 380만 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은 인프라 투자법에 따라 2030년까지 50만 개의 공공 충전기를 설치할 예정이다. 이를 합하더라도 총 70만 개로, 스텔란티스가 추정한 380만 개와 비교해도 5분의 1 수준이다. 이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극심한 충전기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스텔란티스는 “이러한 예측은 경차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환경보호청 계획에 따르면 급격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형차 수요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환경보호청이 구상하고 있는 배터리 전기차로의 전환비율은 바이든 정권이 자동차 업계와 협의해서 설정한 야심 찬 목표마저 훨씬 웃도는 것”이라며 “배터리 전기차 시장의 성숙을 위해서 각종 대책이 필요하지만, 환경보호청의 계획은 일부 대책만 가지고 그린 낙관적 그림”이라고 논평했다.

전문가들 역시 환경보호청의 전기차 전환 계획이 급진적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달 열린 헤리티지 재단의 패널 토론에서 에너지 분야 전문가 마이크 맥켄나 전 트럼프 행정부 부보좌관은 “환경보호청의 계획은 실제로는 대량의 자동차 폐기나 처분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말했다.

멕켄나 전 부보좌관은 “자동차 전동화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해외에서 현재 필요한 리튬의 42배를 확보해야 한다. 가능하지 못한 이야기이며, 미국인들도 원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미국 내 연구에 따르면 미국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전환할 경우, 배터리 핵심원료인 리튬의 대량 부족 사태를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월 미 프로비던스 칼리지와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캠퍼스 공동연구팀 역시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현재의 전기차 수요를 기반으로 2050년까지 예측한다면, 미국 수요만으로도 현재 전 세계 리튬 생산량의 3배가 필요하다”며 “이로 인해 발생할 대규모 채굴은 사회와 환경에 피해를 주고 경관을 돌이킬 수 없이 훼손한다. 동시에 대부분의 경우 그 영향권에 있는 지역사회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전기차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나, 미국 소비자들은 관망세다.

미국 유명 시장조사 업체 JD 파워의 올해 4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전기차 구매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신차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기차 구매를 거의 검토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 비율은 21%로 1월(17.8%) 대비 증가했다.

보고서는 또한 “지난 10개월간 전기차 보급의 양대 장애물은 충전 인프라 부족과 (높은) 가격”이었다며 “주행거리에 대한 불안감, 충전시간과 정전 및 송전망에 관한 우려도 거론됐다”고 전했다.

팔리지 않은 전기차 재고물량도 증가 중이다. 미국 자동차 딜러·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마케팅과 소프웨어 제공 업체인 콕스 오토모티브는 지난 6월 발표한 2023년 중간 점검 평가에서 올해 2분기 딜러들이 보유한 전기차의 평균 재고량은 9만2천 대 이상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2%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