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 중국 공안의 비밀 해외 경찰서 조사 착수

한동훈
2022년 11월 3일 오후 2:12 업데이트: 2022년 12월 29일 오후 3:52

中 공안당국, 외국정부 허가 없이 몰래 설치·운영
현지서 반체제 인사, 소수민족, 종교·신앙인 추적

중국 공산당 당국이 외국 정부 몰래 21개국에 경찰센터 수십 곳을 설치해 운영 중이라는 조사 보고에 따른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이 조사에 착수했으며 독일 경찰과 내무부 안보당국도 조사 방침을 밝혔다.

중국 공산당의 해외 공작을 추적해 온 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지난 9월 ‘해외 110(110 overseas)’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중국 공안부 산하 푸젠성 푸저우시 공안국과 저장성 리수이시 칭톈현 공안국이 21개국에 54개의 무허가 불법 경찰센터를 운영 중이라는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 경찰센터를 해외 체류 중국인들에게 면허증이나 여권 갱신, 건강진단 진료 등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해외 도피사범에 대해 대처하는 편의시설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세이프가드 디펜더스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경찰센터들은 해외에서 중국 공산당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협박해 귀국을 강요하는 ‘설득’ 공작을 벌이는 거점이다.

중국의 해외 경찰센터는 대부분 유럽과 북미에 있지만 일본 도쿄에도 최소한 1곳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도쿄 센터는 주소지가 푸저우 출신 중국인 동향회(같은 고향 출신자들의 모임)로 등록된 곳이었다.

이는 중국의 해외 경찰센터가 각국 현지의 중국인 단체나 중국 우호단체와 연계됐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들 단체는 중국 공산당의 통일전선공작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의 현지법에 의거하지 않은, 중국 공안부의 경찰 활동이지만 중국 내에서는 이를 특별히 숨기려 하지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공안당국의 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푸젠성 푸저우 공안국의 스페인 바르셀로나 해외 경찰센터 관계자들이 화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자료사진

칭톈현 공안국은 지난해 2월 공안국 홈페이지에 올린 게시물에서 네덜란드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칭톈현 출신 중국인 진(金)모씨가 2020년 11월 리수이시 공안의 암스테르담 해외 경찰센터를 통해 운전면허증을 갱신했다고 홍보했다.

앞서 칭톈현 공안국은 2018년 해외로 도피한 부패관리와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하는 이른바 ‘여우 사냥’ 작전에 대한 기여도가 리수이시에서 최고라고 자화자찬했다.

푸젠일보에 따르면 푸저우 공안국의 해외 경찰센터는 “푸저우 호적의 화교를 섬기기 위한 해외 시스템”이며, 공안부가 선정한 전국 15개 우수 행정·법집행 서비스의 하나로 표창을 받았다.

이 기사에서는 “전 세계 푸저우 호적의 화교가 430만 명”이라며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이 시스템을 통해 해외에서도 국격을 초월한 공안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푸저우 공안국 판쩐잉(潘臻穎) 부국장의 말을 전했다.

중국에서는 운전면허증 시험이 어렵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이다. 운전면허증 갱신은 위탁신청이 가능하지만, 만료일이 11개월 경과하면 갱신이 불가능하며 직접 중국에 들어가 다시 시험을 통과해 발급받는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중국 공안부는 면허증 갱신서비스를 내세우며 외국 체류 중국인들을 상대로 해외 경찰센터의 유용성을 홍보하고 있다. 여기에 범죄 신고도 접수하면서 현지 중국인들을 상대로 인지도를 높여가는 실정이다.

하지만, 중국도 참여하고 있는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르면 외교사무는 현지 정부에 의해 인정된 각국 대사관과 영사관에만 제공될 수 있다. 즉 무허가 경찰센터는 비엔나 협약 위반 소지가 있다.

또한 상대국의 허가 없이 경찰센터를 세우고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주권 침해 논란도 일고 있다.

영국 하원의원들은 당국에 조사를 요청했다. 보수당 내 대중 강경파 의원 모임인 ‘중국연구그룹(CGR)’은 지난달 31일 중국의 무허가 경찰센터가 런던에 2곳,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1곳 있다는 보고와 관련해 즉각 대응을 촉구했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니콜라 스터전 수반 역시 이번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스코틀랜드 경찰이 이미 이 문제를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웝크 훅스트라 네덜란드 외무장관 | AP/연합뉴스

네덜란드 외무부는 지난달 26일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등 총 2곳의 불법 중국 해외경찰서에 대한 조사를 발표했다. 헤이그 주재 중국 대사관은 무허가 경찰센터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캐나다에서도 앞서 지난달 초 자국 내 중국 경찰센터 현황 조사를 시작했다. 지난달 4일 외교부 동북아시아국 엘던 엡 국장은 “중국이 제3국(캐나다)에서 벌이는 경찰권 행사는 완전히 불법이고 부적절하다”며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스페인에서는 내무부가 이번 사안에 대해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매체 ‘엘 꼬레오’는 지난달 9일 익명의 내무부 관계자를 인용해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는 확인해주지 않았지만,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일랜드는 직접적인 조치에 나섰다. 아일랜드 정부는 지난달 27일 수도 더블린시 중심부의 한 사무건물에 입주한 중국 경찰센터에 폐쇄명령을 내렸다. 이 센터는 다른 중국 조직과 사무실을 같이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BBC는 중국 정부가 폐쇄 명령을 받아들였다면서도, 중국 외교부가 네덜란드 외무부 대변인의 “해외 경찰센터는 반체제 인사를 침묵시키는 데 이용되는 불법 시설”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부인했다고 전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중국 대사관 정문. 2021.3.22 | Bart Maat/ANP/AFP/연합뉴스

중국 공안당국의 해외 거주 중국인에 대한 귀국 ‘설득’은 처음으로, 중국 본토에 있는 가족을 압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친인척을 체포하거나 임의로 구금하고 미성년 자녀는 등교를 방해해 교육받을 권리와 사회 보장권을 박탈한다. 재산을 불법으로 압류하기도 한다. 이후 겁에 질린 가족들을 통해 해외에 있는 ‘설득’ 대상자에게 귀국을 요구한다. 외국 현지에서 대리인을 동원해 괴롭히기도 한다.

해외 경찰센터는 이러한 대리인을 섭외하거나 귀국 작전 대상자를 추적하는 등 지원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지에서 중국인들에게 행정편의를 제공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중국 공산당을 위한 여론 공작을 수행한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 보고서의 공동 저자인 로라 하스는 “귀국 설득 작전 대상자는 반체제 인사, 공산당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 종교·신앙인과 소수민족 등 광범위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중국 공산당 정권은 갈수록 절제력을 잃고 있으며 담당 기관들은 점점 뻔뻔해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면서도 이제는 딱히 감추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