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순직이 뭐야?” 묻던 아들, 23년 뒤 공군 아버지 곁에 나란히 묻혔다

황효정
2023년 07월 11일 오후 1:26 업데이트: 2023년 07월 11일 오후 1:26

순직한 공군 남편에 이어 공군 아들까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어머니는 아들의 영상을 마주 보고 거수경례를 했다.

지난 5일 국방뉴스는 국방부 기획·국방홍보원 제작 ‘그날 군대 이야기-박인철 소령을 만나다’ 다큐멘터리 영상을 공개했다.

1984년 3월 14일, F-4E 전투기 조종사였던 박명렬 대위는 한·미 연합 군사 비행 훈련에 참여했다. 사실 이날은 박명렬 대위의 비행 일정이 없는 날이었다.

예정에 없던 훈련에 참여했던 박명렬 대위는 저고도 사격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불의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산화했다. 서른둘의 나이였다.

국방 NEWS ‘그날 군대 이야기-박인철 소령을 만나다’
국방 NEWS ‘그날 군대 이야기-박인철 소령을 만나다’

1984년, 박명렬 대위의 다섯 살 난 아들 인철은 너무 어려 아직 죽음의 의미를 몰랐다.

아빠의 묘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인철은 묘비에 적힌 ‘순직’이라는 단어를 보고 “엄마, 순직이 무슨 뜻이에요?” 하고 묻기도 했다.

23년 뒤 아들의 묘비에도 ‘순직’이라는 글자가 또 새겨질 줄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시간이 흘러 2000년, 아들은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아버지가 가신 그 길을, 아버지가 거신 그 가치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방 NEWS ‘그날 군대 이야기-박인철 소령을 만나다’
국방 NEWS ‘그날 군대 이야기-박인철 소령을 만나다’

공군 관계자는 “박인철 중위는 생도 시절 내내 가장 반듯하고 모범적인 생도였다.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최고의 조종 학생이었다”고 전했다.

박인철 중위는 2000년대 당시 최신형 전투기였던 KF-16 조종사가 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4년의 생도 생활을 마친 후 추가 고등비행훈련 수료 이외에도 약 18개월에 걸친 기종전환 및 작전 가능 훈련 과정을 마쳐야 했다.

박인철 중위는 부단한 노력 끝에 KF-16 전투기 조종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국방 NEWS ‘그날 군대 이야기-박인철 소령을 만나다’
국방 NEWS ‘그날 군대 이야기-박인철 소령을 만나다’

2007년 7월 20일, 아들은 야간 비행 훈련을 앞두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 오늘 야간비행 있어요. 나중에 저녁 9시쯤 서쪽하늘을 올려다보고 손 흔들어 주세요. 필승!”

통화를 끝낸 박인철 중위는 KF-16 전투기에 탑승했고, 이날 추락 사고로 순직해 27세라는 어린 나이로 창공의 별이 됐다.

순직하기 불과 한 달여 전, 박인철 중위는 현충원에 안장된 아버지를 찾았다.

국방 NEWS ‘그날 군대 이야기-박인철 소령을 만나다’
국방 NEWS ‘그날 군대 이야기-박인철 소령을 만나다’

아들은 “아버지가 못다 지킨 하늘, 이제부터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훌륭한 조종사가 되겠습니다”라고 맹세했다.

청춘을 바쳐 조국의 창공을 갈랐던 부자(父子)는 국립 서울현충원에 나란히 묻혔다. 故 박명렬·박인철 소령이 잠든 ‘호국부자의 묘’는 국민과 국군에게 귀감을 주는 곳이 됐다.

일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두 남자를 떠나보낸 故 박명렬 대위의 아내이자 故 박인철 중위의 어머니 이준신 씨는 최근 인공지능(AI)으로 복원한 아들의 영상에 거수경례를 했다.

“‘멋진 청년, 훌륭한 군인이었다’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