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 전 한국헌법학회장, 총리에 “검수완박 서명 거부하라” 촉구

이윤정
2022년 05월 2일 오후 4:58 업데이트: 2022년 05월 2일 오후 5:14

“기득권 지키려 국민 권익 희생…안타깝다”
“검수완박 국민투표 문제없다” 제언
“올바른 사법개혁은 공정한 수사·재판 보장 위한 것”

“정치권력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국민의 권익을 희생시키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한국헌법학회장을 지낸 신평 변호사는 5월 2일 전화 통화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 과정을 지켜본 소회를 묻자 “대단히 불편한 심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신평 변호사는 1983년 사법연수원 13기 수료 후 인천지법·대구지법 판사를 거쳐 사법개혁국민연대 상임대표, 앰네스티 법률가위원회 위원장, 경북대 법학전문대학 교수 등을 지냈다. 2019년부터는 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난 4월 30일, ‘검수완박’ 법안 중 검찰의 수사 대상 범죄를 기존 6대 범죄에서 부패·경제범죄로 축소하는 내용의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남은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3일 본회의 처리가 유력한 형국이다.

신 변호사는 지난 4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이 공청회 등을 통한 의견수렴 절차 하나 없이 입법 절차를 강행하려는 것을 두고 “절대 다수당의 위세를 이용한 입법 쿠데타이자 헌법 파괴 행위”라고 지적했다.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할 의도로 행해진 민형배 의원의 민주당 탈당에 대해 우리 민법상의 비진의(非眞意)의사표시로서 무효”라며 “이 사유만으로도 절차상의 심각한 흠결에 해당한다”고 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에 의해 다소 완화된 형태로 여야가 합의한 이른바 ‘검수완박 중재안’에 대해서도 “검사를 영장 신청의 주체로 하는 등의 헌법 조문을 심각하게 어겼다”며 위헌성의 근거로 “우리 헌법은 검사를 일관되게 영장 청구의 주체로 명시했고, 형사소송법 등은 헌법에 기반해 검사를 수사의 주체로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신 변호사는 ‘검수완박’ 입법 추진에서 가장 심각한 결함은 우리 사회의 사회적, 경제적 약자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행한 소위 ‘검찰개혁’에 의해 그들이 수사 과정에서 당하고 있는 불이익, 인간적 존엄성의 훼손에 관해선 여야 모두 일말의 고려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검수완박 최대 피해자는 힘없는 서민들”

4월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청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는 “올바른 사법개혁의 핵심은 ‘공정한 수사’와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검수완박’ 법률안에서 ‘공정한 수사’를 촉진하기 위한 고려는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검수완박’ 법률안은 검찰의 권한을 약화하고 이렇게 떼어낸 권한을 경찰에게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견제 장치를 두지 않은 채 확장하면 폭주의 궤도를 밟기 마련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의정 사상 유례없는 꼼수까지 불사하며 벌어지는 입법 폭주와 관련해 신 변호사는
“소추권자인 검사가 100% 수사권을 행사하지 않는 법제는 있을 수 없다”며 “이 정권에서 이뤄진 권력 부패 행위를 수사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은 헌법 원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헌법파괴 행위”라고 했다.

신 변호사는 검수완박 입법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국민의힘도 아니고 검사도 아닌, 힘없는 서민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 공화국’도 물론 나쁘지만 이보다 더 나쁜 악성의 ‘경찰 제국’이 등장할 것”이라면서 “특히 경찰 권력과 토호 세력의 유착은 가공할만한 위력의 폭탄을 힘없는 서민들에게 수시로 투척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검수완박 법률안은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을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부패·경제범죄로 제한한다. 이를 두고 대검찰청은 입장문을 통해 “선거·공직자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를 금지해 국가 범죄 대응 역량을 무력화한다”고 반발했다. 법안은 또 검찰의 보완 수사권을 박탈해 여죄 수사, 피해자 구제를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병석 의장이 내놓은 중재안은 검찰 보완 수사는 허용하되 경찰이 수사한 범위 내에서만 재수사가 가능하게 했지만, 본회의에 상정된 수정안에서는 이 조항마저 삭제됐다. 향후 수사와 재판에서 혼선이 예상된다. 검사의 수사권·기소권을 분리해 기소 검사는 수사 과정 없이 기록만 보고 사건을 판단하게 됨으로써 부실 기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고발인은 경찰의 무혐의 결론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도 담고 있어 헌법상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는 저항도 크다.

그는 “이 입법의 진정한 목적은 그들이 저지른 권력형 부패범죄를 증발시키고 형사책임 추궁에서 벗어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라며 “견제되지 않는 경찰 권력이 얼마나 잔인하게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들은 아예 눈을 감고 귀를 닫아버렸다”고 탄식했다.

‘국민투표’ 제안 이어 “김부겸 총리, 서명 거부해 폐기” 촉구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5월 1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검수완박’ 입법 관련 대통령 면담 및 거부권 행사요구 릴레이 피켓시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5월 3일 다시 임시국회를 열어 형사소송법 개정안까지 의결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 입법은 완료된다. 국회 의결을 거친 법률안은 행정부로 넘어가 대통령의 공포 절차를 거치면 법률로 확정된다.

신 변호사는 이를 시정하기 위한 조처로 ▲문재인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 행사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위헌법률심판, 위헌소원심판 절차를 거쳐 위헌성 확인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앞서 신 변호사는 4월 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검수완박에 대한 국민투표를 제안하면서 ‘검수완박 국민투표’가 가능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명시한 헌법 제72조를 근거로 검수완박이 국민투표 의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검수완박은) 사회적, 경제적 약자의 지위를 더욱 어렵게 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며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국가의 근본 헌법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점에서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국민투표법 재외국민 투표 부분이 해소되지 않아 국민투표가 어렵다”는 주장에 대해서 그는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위규범인 법률의 미비로 그보다 상위규범인 헌법의 효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국민투표법의 일부 흠결에도 불구하고 국민투표부의권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주장했다. 하나의 조항이 위헌이라고 해서 법률 전체가 위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면서 “국민투표법 자체를 사문화시켜서는 안 되고 재외국민 투표 절차가 상세히 규정된 공직선거법 제14장의 2 조항을 준용해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신 변호사는 국민투표 외에 실효성을 갖춘 대안으로 김부겸 국무총리를 향해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부서(副署‧국무문서에 대통령과 함께 서명하는 것)를 거부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5월 2일, 헌법 제82조를 인용해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고 돼 있다”며 “김 총리가 부서를 거부하면 검수완박 법률안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고 페이스북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