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건물 뛰어다니며 초인종 눌러 사람들 모두 살리고 혼자 숨진 28살 청년

황효정
2020년 09월 9일 오후 7:07 업데이트: 2022년 12월 13일 오후 5:54

띵-동, 띵-동!!

야심한 시간, 5층짜리 원룸 건물에 다급한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가 깊이 잠든 시간에 복도를 돌아다니며 집마다 초인종을 누른 사람. 그는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며 크게 외쳤다.

“불이 났어요!! 나오세요!!”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깬 이웃들은 과연 건물이 불길에 휩싸인 장면을 목격했고, 무사히 대피했다.

그러나 청년은 돌아오지 못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픽사베이

4년 전 오늘인 2016년 9월 9일 새벽 4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5층짜리 원룸 건물에서 불이 났다.

화재 원인은 화풀이한다는 이유로 건물에 불을 지른 누군가의 방화였다.

대부분 잠자리에 든 시간이었기 때문에 화재를 눈치채고 건물을 빠져나온 주민은 다섯 명에 불과했다.

그중 28살 청년 안치범 씨가 있었다.

안씨는 119에 서둘러 신고한 뒤, 신고 전화를 끝내기가 무섭게 연기가 가득 찬 건물 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안씨는 집마다 초인종을 눌렀다. 성우 지망생이었던 안씨는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해 이웃들을 잠에서 깨워 밖으로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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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5층 건물, 총 21개 원룸 주민 중 사망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정작 안씨 본인은 연기에 질식해 건물 5층 계단에서 쓰러졌고,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에게 발견됐다.

발견 당시 쓰러져있던 안씨의 손은 불길에 뜨겁게 달아오른 문들을 두드리느라 심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고 전해졌다.

안씨는 끝내 세상을 떠났다. 안씨가 숨진 당일은 생전 안씨가 응시했던 성우 입사 시험의 접수 마감일이기도 했다.

성우가 꿈이었던 자신의 목소리를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쓰고 떠난 안치범 씨.

안씨의 시신은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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